편지


- 이성복


1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 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 …… 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2

안녕
오늘 안으로 나는 기억을 버릴 거요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요
나는 선생이 될 거요 될 거라고 믿어요 사실, 나는
아무 것도 가르칠 게 없소 내가 가르치면 세상이
속아요 창피하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오 결혼할 수 없소
결혼할 거라고 믿어요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 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이성복 시인의 이 시를 연애시로만 읽어선 안 될 일이겠지만,
연애 한 번 안 해본 사람은 이 시의 맛을 알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아니, 단언하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지막 두 행의 맛이 절절하게 전해질 수 없다.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내가 억울하니까....

누군가에게 쥐어주지 못한 마지막 편지가 내게 아직 있으니까...

사랑의 끝은 언제나 전해주지 못한 마지막 한 마디를 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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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의 사랑

- 김경미

똥 빼고 머리 떼고 먹을 것 하나 없는 잔멸치
누르면 아무데서나 물 나오는
친수성
너무 오랫동안 슬픔을 자초한 죄
뼈째 다 먹을 수 있는 사랑이 어디 흔하랴

* 요 근자 들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성 시인은 김경미...
시는 '묘사'라고 배웠지만, 시의 묘미 중 하나는 분명 '진술'.
진술이야말로 시의 진경이기도 하다.
다만, 조심할 것 한 가지는 '진술하되 진부하지 않을 것!'

"뼈째 다 먹을 수 있는 사랑이 어디 흔하랴"

어디 멸치 같은 사랑만 그러하랴.
사랑이라 이름 붙은 것들은 죄다 그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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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는 내게는 조금, 혹은 아주 특별한 시인이다. 대학생은 아닌데 남들은 대학생인 줄 착각하던 시절에 나는 노가다 뛰는 젊은 막장 인생이었다. 그 무렵엔 왜 영화들도 하나 같이 그런 부류의 영화들이 많았던 건지 몰라도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의 영화들 중에는 방황하는 청춘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참 많았다. 예를 들어 이문열 원작, 곽지균 감독, 정보석, 이혜숙, 배종옥, 옥소리 주인공의 영화 "젊은 날의 초상"이 그랬고, "걸어서 하늘까지", 박광수 감독, 문성근, 박중훈, 심혜진 주연의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 같은 영화들 말이다. 한 시대를 떠받들던 이념이 무너진 시대에 한국 영화는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던 셈이다. 어쨌든 내가 실비아 플라스를 알게 되었던 시대가 대략 이무렵이었다.

89년에서 90년 무렵 실비아 플라스를 처음 접했는데, 실비아 플라스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난 조금 충격을 받았다. 소설은 중고등학생 때 이미 김성동과 황석영을 뗐는데 시는 여전히 중학생 시절에서 별반 진도를 나가지 못한 상황이었던 터라 여류 시인과 여성 시인의 차이점조차 제대로 깨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시 읽기가 중학생 수준이었다는 말은 김남조와 이해인 정도에서 별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말이다(물론 이 분들의 시를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고...다만 여류라는 표현이 주는 딱 그 수준의 감상이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듯). 물론 그런 감수성이란 것이 그 무렵 제대로 시를 읽지 않았다면 여류 시인이란 그저 "오, 아름다워라! 세상은"이란 말투라는 식의 오해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만난 여성 시인이 '실비아 플라스'였다. 그러니까 나에겐 최승자나 김혜순 보다 실비아 플라스가 먼저였다. 처음 시집을 읽는 순간 내 반응은 요즘 아이들 식 표현을 빌자면 딱 이랬다. "헉, 이뇬 모야!" 실비아 플라스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놀라움에 시집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외국 시인의 시를 통해 모던한 여성주의의 시세계를 처음 접했던 거다. 그녀가 처음이었다. 나의 감성과 맞는 여성 시인을 찾아낸 것은... 그 후 나는 고정희, 김혜순, 최승자 등등의 한국 여성 시인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마녀들의 세계에 한 발 들어선 셈이었다.

실비아 플라스를 다시 만난 건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당시 유명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남진우 선생이 진행하는 강의였는데, 수업 내용은 꽤 훌륭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남진우 선생 특유의 시니컬한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물론 걔중에는 그를 핸섬한 시인으로, 샤프하고 시크한 문학평론가로 좋아하던 여학생들도 꽤 있었다만). 어쨌든 그의 수업 시간 중에 실비아 플라스의 <아버지>란 시를 낭송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꼭 여학생에게 이 시의 낭송을 시켰다. 다소 악취미란 생각도 들긴 했지만 아마 내가 선생이라도 이 시는 반드시 여학생에게 낭송을 시켰을 게다. 사전에 이 시를 접해본 학생이라면 별 문제 없겠지만 간혹 이 시를 처음 접하는 순진한(?) 여학생들은 이 시의 마지막 행에 이르러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곤 했다. 이 시의 마지막 행은 이랬다.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넌 끝장이야!"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약간의 과장은 어쩔 수 없고) 낭송하는 여학생이 이 대목을 얼마나 리얼하게 낭송해주느냐에 따라 이 시가 죽고 산다. 당신도 한 번 소리내서 읽어보라. 얼마나 리얼할 수 있는지...

실비아 플라스의 마지막 행에 필적할 수 있는 구절은 문학보다는 '도어즈'의 짐 모리슨이 <This is The End>에서 "아버지, 난 당신을 죽이고 싶어. 어머니 난 당신을 밤새도록 사랑하고 싶어. 그건 가슴시리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정도나 되어야 하지 않을까?(나는 실비아 플라스의 이 시에서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를 엿보기도 했다만...)

솔직히 대학에서 이 시를 낭송해준 여학생과는 그리 친한 편이 아니었지만 이 시를 너무나 맛깔나게 읽어주었기 때문에 한동안 난 그 친구만 보면 이 시 이야기를 하며 '죽여줬다'고 칭찬을 했건 것 같다. 물론 졸업하고 이제는 그 친구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만...


아빠

- 실비아 플라스


이젠 안돼요, 더 이상은
안될 거예요. 검은 구두
전 그걸 삼십 년간이나 발처럼
신고 다녔어요. 초라하고 창백한 얼굴로,
감히 숨 한 번 쉬지도 재채기조차 못하며.

아빠, 전 아빠를 죽여야만 했었습니다.
그래볼 새도 없이 돌아가셨기 때문에요ㅡ
대리석처럼 무겁고, 神으로 가득찬 푸대자루.
샌프란시스코의 물개와
아름다운 노오쎄트 앞바다로

강남콩 같은 초록빛을 쏟아내는
변덕스러운 대서양의 岬처럼 커다란
잿빛 발가락을 하나 가진 무시무시한 彫像
전 아빠를 되찾으려고 기도드리곤 했답니다.
아, 아빠.

전쟁, 전쟁, 전쟁의
롤러로 납작하게 밀린
폴란드의 도시에서, 독일어로
하지만 그런 이름의 도시는 흔하더군요.
제 폴란드 친구는

그런 도시가 일이십 개는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전 아빠가 어디에 발을 디디고,
뿌리를 내렸는지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전 결코 아빠에게 말할 수가 없었어요.
혀가 턱에 붙어버렸거든요.

혀는 가시철조망의 덫에 달라붙어 버렸어요.
전, 전, 전, 전,
전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전 독일 사람은 죄다 아빤 줄 알았어요.
그리고 독일어를 음탕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유태인처럼 칙칙폭폭 실어가는
기관차, 기관차.
유태인처럼 다카우, 아우슈비츠, 벨젠으로.
전 유태인처럼 말하기 시작했어요.
전 유태인인지도 모르겠어요.

티롤의 눈, 비엔나의 맑은 맥주는
아주 순수한 것도, 진짜도 아니에요.
제 집시系의 선조 할머니와 저의 섬뜩한 운명
그리고 저의 타로 가드 한 벌, 타로 가드 한 벌로 봐서
전 조금은 유태인일 거예요.

전 언제나 아빠를 두려워했어요.
아빠의 독일 空軍, 아빠의 딱딱한 말투.
그리고 아빠의 말쑥한 콧수염
또 아리안족의 밝은 하늘색 눈.
기갑부대원, 기갑부대원, 아, 아빠ㅡ

神이 아니라, 너무 검은색이어서
어떤 하늘도 삐걱거리며 뚫고 들어올 수 없는 十字章(卍)
어떤 여자든 파시스트를 숭배한답니다.
얼굴을 짓밟은 장화, 이 짐승
아빠 같은 짐승의 야수 같은 마음을.

아빠, 제가 가진 사진 속에선
黑板 앞에 서 계시는군요.
발 대신 턱이 갈라져 있지만
그렇다고 악마가 아닌 건 아니에요. 아니,
내 예쁜 빠알간 심장을 둘로 쪼개버린

새까만 남자가 아닌 건 아니에요.
그들이 아빠를 묻었을 때 전 열 살이었어요.
스무 살 땐 죽어서
아빠께 돌아가려고, 돌아가려고, 돌아가 보려고 했어요.
전 뼈라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침낭에서 끌어내
떨어지지 않게 아교로 붙여버렸어요.
그리고 나니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었어요.
전 아빠를 본받기 시작했어요.
고문대와 나사못을 사랑하고

'나의 투쟁'의 표정을 지닌 검은 옷의 남자를.
그리고 저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그래서, 아빠, 이제 겨우 끝났어요.
검은 전화기가 뿌리째 뽑혀져
목소리가 기어나오질 못하는군요.

만일 제가 한 남자를 죽였다면, 전 둘을 죽인 셈이에요.
자기가 아빠라고 하며, 내 피를
일년 동안 빨아마신 흡혈귀,
아니, 사실은 칠년이지만요.
아빠, 이젠 누우셔도 돼요.

아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혔어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조금도 아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들은 춤추면서 아빠를 짓밟고 있어요.
그들은 그것이 아빠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어요.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젠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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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이후의 삶


- 곽효환


지구 역사상 스스로의 수명을 끊임없이 놀라울 정도로 늘려온 유일한 존재인 인간이 직

면한 가장 큰 고민은 삶  이후의 삶이다.
 

페루 중남부 안데스 산맥 고원에 자리 잡은 고대 잉카 제국의 후예들은 인생은 사람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쓰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살만치 살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좋은

날을 택해 가족과 친지, 은인, 더불어 살고 있는 마을 사람 그리고 척 지고 등 돌렸던 사

람들까지 모두를 불러 성대한 잔치를 연다. 그렇게 한바탕 놀고 나면 세상일에 손을 놓고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오랜 관습이다. 사람들도 그날 이후엔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가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고 보아도 보았다 하지 않는다.
남은 삶은 그렇게 살아 있으나 죽어 있고 혹은 그렇게 존재하거나 사라진다


출처: 곽효환, 지도에 없는 집, 문학과지성사, 2011


법률용어로 부존재(不存在)라는 말은 참으로 무미건조한 말이다. 존재여부가 분명하지 아니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거나 절차상의 하자로 인해 결정된 어떤 결의가 원칙적으로 성립되지 아니하는 상태, 다시 말해 특정한 권리나 법률적 존재 유무를 가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곽효환 시인은 그의 두 번째 시집 "지도에 없는 집"을 통해 끊임없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묻고 있다. 그 중에서 '삶 이후의 삶'은 타의에 의해 존재가 부정당한 것이 아닌 존재와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인간의 존엄, 존엄을 지키며 살고, 살고, 살고, 살아내는 일, 그리고 이 일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소멸 혹은 사라짐에 대해 말한다.

 

법률용어로 부존재는 권리의 문제에 해당한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는 많은 것들, 비정규직 노동자, 사회적 소수자들의 문제 역시 그렇다. 하지만 시인이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그는 좀더 철학적으로 존재와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존엄의 문제에 이르러서 이 문제들은 서로 만나게 되어 있다.

 

어쨌든 그들은 존재를 부정당한 존재들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엄을 위해 사라진 자들, 스스로 삶의 한 단계를 매듭짓고 삶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존엄의 문제는 주체성의 문제이자 인간의 존엄에 대한 사회의 제도적 장치, 합의의 문제이다.

 

자연적인 죽음이야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으나 스스로 선택하여 사라질 수 있는 사회적 죽음의 권리까지 인정하는 고대 잉카 제국의 후예들에게 인생은 사람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쓰는 것이라고 믿는단다. 우리의 인생은 무엇으로 쓰이는가? 너무 늦게까지 너무 열심히 살아낼 수밖에 없는 인생 앞에서 그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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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 김왕노
 

이별이나 상처가 생겼을 때는 백년이 참 지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로 쓰린 몸에 감각에 눈물에 스쳐가는 세월이 무심하다 생각했습니다.
백년 산다는 것은
백년의 고통뿐이라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상처고 아픔이고 슬픔이고 다 벗어버리고
어둠 속에 드러누워 있는 것이 축복이라 했습니다.
밑둥치 물에 빠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엉거주춤 죽어지내듯 사는 주산지 왕버들 같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알고부터 백년은 너무 짧다 생각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익히는데도
백년은 갈 거라 하고 손 한 번 잡는데도 백 년이 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마주 보고 웃는데도 백년이 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백년 동안 사랑으로 부풀어 오른 마음이
꽃피우는데도 백년이 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랑 속 백년은 참 터무니없이 짧습니다.
사랑 속 천년도 하루 햇살 같은 것입니다.

 

*

 

원효와 의상. 불법을 구하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목숨을 걸고 먼 길을 나선 두 젊은 승려가 육로를 이용한 길이 막히자 다시 해로를 이용해 당나라로 가고자 당항성 인근에 도착했다. 밤이 깊어 잠시 몸을 쉬기 위해 우연히 찾아든 움막이 알고보니 무덤이었고, 밤에 시원한 감로수인 줄 알고 마셨던 물이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골 썩은 물이었더라는 일화는 화엄경에 담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인 '一切唯心造'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너무나 짝이 맞는 이야기라 만들어낸 이야기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화를 거짓이라 폄하하는 사람이나 글을 읽어보지 못한 것을 보면 그 오랜 세월을 두고 이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 누구나 이 이야기에 담긴 진실에 공감한다는 뜻이리라.

 

김왕노 시인의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도 누군가는 분명히 엄살 혹은 과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랴. 당신이 사랑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그 순간, 이 엄살 혹은 과장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한 마음이 되는 것을...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관하라(應觀法界性).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一切唯心造)."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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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지


 

- 고영조


 

  맹지盲地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오세영 시인이 우포에서 가르쳐 주었다 경기도 안성 어딘가 만년에 누옥을 앉히겠다고 마련한 곳이 길 없는 땅 맹지라고 맹인이 있으면 맹지도 있다는 뜻이다 눈멀고 귀 먼 청맹과니 길 없는 땅 마음 끊긴 마음들 길도 마음도 닿을 수 없다면 그게 장님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 혜안이 눈부시다 가시덤불 길길이 우거진 저 쪽에 맹지가 있고 마음 굳게 닫힌 저쪽에 그대가 있다 산하도처 길 없는 땅 마음 끊긴 마음들 버려져 있다 눈 먼 마음으로 가는 그 곳에 맹지가 있다 그걸 배웠다.


 

출처 : 시집 <새로난 길> 2010. 현대시시인선


 

*

길 없는 땅, 길을 낼 수 없는 땅을 가리켜 '눈먼 땅'이란 의미에서 '맹지(盲地)'라 부른다는 걸 이 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시의 정황을 살펴보면 오세영 시인과 고영조 시인이 우포에 가서 대화를 나누다가 오 시인이 교수직을 정년하고 은퇴하여 안성 어딘가에 집을 한 채 짓고 소일하려다 알고보니 그 땅이 길을 낼 수 없는 땅이라 집을 지을 수 없는 '맹지'라 말하는 것을 듣고 새롭게 알게 된 단어 한 마디로 시작된 시이다.

 

진술로 이루어진 시(詩)인 만큼 자칫하면 단조롭게 흐르기 쉬운데 고영조 시인은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어조로 시를 이어간다. 길을 낼 수 없어 집을 지을 수도 없는 눈먼 땅 '맹지'라는 용어에서 "눈멀고 귀 먼 청맹과니 길 없는 땅 마음 끊긴 마음들"이라면 그게 장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로 이어지는 시인의 깨달음은 마음의 장애가 신체의 장애보다 더 큰 장애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헬렌 켈러는 "빛을 못보는 사람보다 마음 속에 빛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더 불행합니다"라고 했다. "산하도처 길 없는 땅 마음 끊긴 마음들 버려져 있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길을 내는 일, 그것을 가리켜 누구는 사랑이라 하고, 누구는 정치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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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청춘에 보내는 송가3


- 송경동



충남 서산군 대산면 돗곳리

삼성종합화학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교통사고를 내고는
서산경찰서 대용감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다시 내 인생 좃돼부렀다고 자포자기
신입식을 거부하자 돌주먹들이 날라왔다
두 번을 끌려 나갔다 오자
전라도 깽깽이놈이 벌떼짓 한다고
간수들이 제일 센 방으로 집어넣어버렸다
죽어라는 소리였다
목이 졸렸던가
두 번 기절하고 깨어보니
온몸 근육들을 자근자근 밟아놔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잘못했다고 빌어라 했지만
침만 한번 뱉어주었다
피가 흥건한데 아무데도 터진 곳이 없었다
쓰라려보니 음경 끝이 찢어져 있었다
그 와중에도 궁금한 건
어떻게 밟아야 거기가 짓이겨 찢어지냐는 것이었다
참 별난 경험도 다 있다라는 생각
서산 조폭들이
땜통님 땜통님 이 새끼 데리고 나가요
이 새끼 미친놈이에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맞다는 생각
난 미쳤다는 생각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 2011년 황해문화 겨울호(통권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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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청춘에 보내는 송가4



- 송경동


광양제철소 3기 공사장

배관공으로 쫒아 다니다
잠시 쉴 때였다
10년 된 고물 프레스토를 빼서
폼잡고 다닐 때였다


읍내 정다방에 미스 오가 왔다

메마른 시골 읍내에 촉촉한 기운이 돌고
볕이 갑자기 쨍쨍해질 정도로 예쁜 아이였다
뻔질나게 다방을 드나들고
아침저녁으로 커피를 시켜 먹었다


어느 비 오던 날

낙안읍성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
사랑고백을 했다
그날 저녁 담장을 넘어
내 품으로 한 마리 고양이처럼
달겨들던 그녀, 열 아홉이었다


처음으로 성을 배웠던 시간들

빚이 져서 떠나가던 그녀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어느 발전소 공사현장으로 떠나야 했던 나
아름다웠던 시간만을 기억하자고
깨끗이 돌아섰던 우리
돌아보면 아직도 거기 서 있는 그녀



* 황해문화, 2011년 겨울호(통권73호)



**

내게도 공사판 떠돌이로 살았던 시절이 있었지. 읍내 나가면 티켓 끊어주는 다방도 있었다. 여자를 사는 건 아주 쉽고 간편한 일이었을 텐데, 내가 돈을 주고 여자를 사지 않았던 건 어쩌면 내 신념이 강한 탓이 아니라 내 두려움이 너무 컸고,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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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다


- 이병률



새벽이 되어 지도를 들추다가

울진이라는 지명에 울컥하여 차를 몬다
울진에 도착하니 밥냄새와 나란히 해가 뜨고
나무가 울창하여 울진이 됐다는 어부의 말에
참 이름도 잘 지었구나 싶어 또 울컥
해변 식당에서 아침밥을 시켜 먹으며
찌개냄비에서 생선뼈를 건져내다 또다시
왈칵 눈물이 치솟는 것은 무슨 설움 때문일까
탕이 매워서 그래요? 식당 주인이 묻지만
눈가에 휴지를 대고 후룩후룩 국물을 떠먹다
대답 대신 소주 한 병을 시킨 건 다 설움이 매워서다
바닷가 여관에서 몇 시간을 자고
얼굴에 내려앉는 붉은 기운에 창을 여니
해 지는 여관 뒤편 누군가 끌어다 놓은 배 위에 올라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한 사내
해바라기 숲을 등지고 서럽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한 사내
내 설움은 저만도 못해서
내 눈알은 저만한 솜씨도 못 되어서 늘 찔끔하고 마는데
그가 올라앉은 뱃전을 적시던 물기가
내가 올라와 있는 이층 방까지 스며들고 있다
한 몇 달쯤 흠뻑 앉아 있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돌아가는 사내의 집채만한 그림자가
찬물처럼 내 가슴에 스미고 있다


*


시를 읽으니 갑자가 울진 바다 냄새가 코끝에 싸하게 스민다.
나도 울진 여자 한 명 알고 있다. 눈이 커서 눈물 많은, 입이 커서 말도 많고, 손이 커서 정도 많고, 발이 커서 가고 싶은 곳도 많은 여자인데 울진을 떠나지 못하는 건 왜 일까?


서러움 가득 출렁이는 허리,
산만한 내 덩치로도 모두 안을 수 없는데 그 큰 눈에 담긴 바다를 모두 퍼올리면 하얀 소금꽃이 뚝뚝 떨어질 울진 여자, 울진 누이. 손 한 번 덥석 잡아주지 못하고 돌아서 내가 우는 그 여자

울창한 푸른 눈물 그득 고여 바다가 되고 포구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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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먼저 더 오래

- 고정희


더 먼저 기다리고 더 오래 기다리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기다리는 고통 중에 사랑의 의미를 터득할 것이요
더 먼저 달려가고 더 나중까지 서 있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서 있는 아픔 중에 사랑의 길을 발견할 것이요
더 먼저 문을 두드리고 더 나중까지 문닫지 못하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문닫지 못하는 슬픔 중에 사랑의 문을 열게 될 것이요
더 먼저 그리워하고 더 나중까지 그리워 애통하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그리워 애통하는 눈물 중에 사랑의 삶을 차지할 것이요
더 먼저 외롭고 더 나중까지 외로움에 떠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외로움의 막막궁산 중에 사랑의 땅을 얻게 될 것이요
더 먼저 상처받고 더 나중까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상처로 얼싸안은 절망 중에 사랑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요
더 먼저 목마르고 더 나중까지 목말라 주린 사랑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주리고 목마른 무덤 중에서라도 사랑의 궁전을 짓게 되리라
그러므로 사랑으로 씨 부리고 열매 맺는 사람들아 사랑의 삼보-상처와 눈물과 외로움 가운데서 솟은 사랑의 일곱가지 무지개
이 세상 끝날까지 그대 이마에 찬란하리라

*

고정희 시인의 무덤엔 가본 적 없으나 대둔산 가는 길가 쓸쓸하고 외롭게 서 있는 시인의 생가에는 다녀와 본 적이 있다. 늦은 오후 길고긴 해바라기 늦은 태양이 저물던 무렵, 차를 돌려 되돌아 나올 수 없어 가던 길로 곧장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그 길 한 가운데 고정희 시인의 생가가 있었다. 고작 이것이었나? 할 만큼 허전함을 넘어 허탈하기까지 한 그녀의 생가엔 빛 바랜 양철 입간판이 지리산의 시인 고정희를 알리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잊고 지나면 다시 만나지 못할 해남 길, 논두렁 사이 고즈넉하게 서 있던 그녀의 집 앞에서 나는 문득 그녀의 "더 먼저 더 오래"가 떠올랐다.

시인이여, 당신의 마음에 누굴 품었기에, 아니 무엇을 품었기에 고통의 불도장(火印)마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찬란할 것이라 노래하였을까요? 그것은 혹여 사랑의 세 가지 보물(三寶) - 상처와 눈물, 외로움이었던지요. 그래서 당신이 가신 뒤 당신 집 앞으로 그토록 샛노랗게 물들인 벼이삭과 햇살과 대둔산을 보여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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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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