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편집자로서 우리 세대, 정확히 내 세대는 스티브 잡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대학에서 교지를 만들 때만 해도 대지바리 작업을 위해 손가락마다 3M스프레이 접착제를 덕지덕지 붙이고 살았으니까. 초기엔 안정성이 떨어져 작업한 것들 날려먹기 일쑤였지만..

인간의 위대한 진보는 위대한 한 사람의 거인이 독차지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갈망하며 때로 바보 같이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자들에 의해서만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흔들리지 않는 진실이다. 잡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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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캘러한(Harry Callahan, 1921 - 1999 , 미국)


Harry Callahan - Eleanor, Chicago, 1948


Harry Callahan - Eleanor, Chicago, 1948


Harry Callahan - Eleanor, New York, 1945


1921년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미시건 주립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다가 1938년부터 사진가의 길로 들어선 해리 캘러한. 신현림의 시집에도 인용되었던 적이 있어 일반인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진 사진가이다. 그는 독일의 바우하우스 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아 시각적 인식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조형적인 사진의 길을 닦은 사진가라는 평을 받는다. 1941년 안셀 아담스의 사진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그는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제네럴 모터스(GM)사의 사진실에서 근무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뉴욕에서 개인작업에 열중하였다. 그는 1979년까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해리 캘러한에 대해서는 언젠가 사진 분야에서 자세히 다룰 생각이므로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고...).

때로 어떤 관심들은 괄호()안에 그냥 담겨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입밖으로 나와야 말이 된다는 건 사실이지만 때로 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때는 이해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생각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말들, 어떤 생각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대화를 통해서는 충분히 납득하고 인정해줄 수 있다. 그것은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나에게도 극도로 싫어하는 기관이나 단체에 속한 사람에게 담배 한 개비를 나눠주고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 정도는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융통성은 있다. 적당한 파격은 즐거움을 주지만 그 파격이 도에 넘친다면 황당해진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포트레이트 사진을 촬영할 때 가장 고심 되는 것은 그(피사체)와 나의 심리적 거리이다. 그것은 글을 쓰는 행위와는 또 다른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망원렌즈로 잡게 되면 피사체라고 정의되는 대상의 땀구멍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피사체가 영혼이 담긴 그릇이라는데 있다. 그는 그냥 object가 아닌 Human이니까. 카메라를 구입하고 가장 먼저 카메라에 담은 대상이 누구일까? 아마도 대개는 가족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사진에 담는다. 


지금은 포기했지만 처음 카메라를 구입하고 아내에게 누드를 촬영해보자는 제안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단칼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하긴 아마추어 사진가인 나의 앵글이 담아주길 희망하는 누드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스튜디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란 사람이 성(性)과 성(聖)을 초월한 사람도, 그러고 싶은 사람도 아니니까, 신뢰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아내의 사진을 찍고 싶다. 어느 순간만큼은 세상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우니까.
그 순간을 영원히 기록하고 싶은 것이다.


결혼할 때 사람들은 대개 야외 촬영이란 과정을 거친다. 우리 부부는 스튜디오 촬영은 생략했지만 야외촬영까지 생략할 만큼 과감한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냥 예식장에서 정해준 사람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었다. 요새 결혼 사진이란 게 디지털 과정을 거치므로 잡티 하나 없이 예쁘게 나오긴 했지만 나는 그 여자가 예쁘다는 건 인정해도 내가 살을 섞고 사는 여자란 생각은 들지 않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차이가 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연애는 환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라는 차이만큼이나 큰 것이다. 즉, 결혼 사진에 담긴 아내와 나는 서로 사랑하는 포즈는 있을지 몰라도 그럴 마음의 여유는 담기지 못한 것이다. 웃으라니 웃고, 한 쪽 다리를 옆으로 기대라면 기대고, 팔짱을 끼라면 끼는 사진에는 사랑의 포즈는 있어도 정작 사랑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의 '해리 캘러한'의 부인 엘리노어를 촬영한 동명의 작품은 내게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 오곤 한다.
그녀는 뛰어난 모델이 아니므로 그 자체로 뛰어난 모델이다. 거기엔 남편을 위해 기꺼이 촬영에 응한 그녀의 사랑도, 망설임도, 기대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무엇보다 남편에 대한 더할 나위없는 신뢰가 .... 침대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고 앉은 엘리노어의 모습, 아마 정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거뭇하게 변해 있을 젖꼭지와 유방은 처져있을 것이고, 아랫배에도 살이 올라 겹으로 접혀있을 것이다. 허리에도 살이 올라 날씬한 처녀 때 모습은 오간데 없다.

거기에서 성적인 메시지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바보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로지 성적인 메시지만을 받는다면 그 사람 역시 바보다. 거기엔 부부로서 당연히 갖추고 있을 세속으로서의 성(性)이 있고, 그마저 초월해버린 성(聖)이 있다. 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에 오로지 성(聖)만 있을 수도, 성(性)만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용한다는 거...

연애 과정에서는 알기 어려운 것. 소녀의 미성숙한 아름다움에도, 처녀의 신비로움에도, 풍만한 여인의 몸매에도 담을 수 없는 남성의 원초적 본능이 느끼는 아름다움. 그것이 아내라는 이름의 여자에게는 있다. 해리 캘러한의 사진엔 그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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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무회 - 춤, 그 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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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그 신명 (30분)
2006년 5월 24일(수)

․ 안무 : 김매자
․ 조명 : 이광성
․ 음악 : 김재철, 서우석, 김수보, 염귀공
․ 출연 : 김선미, 최지연, 김지영, 윤수미, 김미선, 정란, 김은화, 최선아, 박수진, 박덕상, 김민섭

Canon EOS 350D 70-200mm.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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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부터 아카이브에서 다루는 인물들의 개별 타이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딜런 토마스"는 아주 초창기에 만들어진 것인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글도, 타이틀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무척 사랑하는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을 찾아 그의 개인 타이틀을 만들다 느낀 것인데
카메라에 담긴 그의 표정은 거의 언제나 궁색해보인다.
이때의 궁색이란 그가 가난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는 작품이 아니라 실제의 얼굴 자체도 세상을 향해
어떤 표정을 내어보여야 할지 늘 고민하는 흔적이 보인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의 얼굴은 그가 가지고 있던
여러 카드 패 혹은 가면들 중 하나였을 것 같다.

다자이 오사무 - http://windshoes.new21.org/novel-dazai.htm
딜런 토마스 - http://windshoes.new21.org/poem-dyla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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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어쩌면 실제로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들 마음속에는 오래전부터 핵폭탄 하나쯤, 핵미사일 하나쯤 이미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화가 이현세가 겉으로는 반군국주의를 표방하며 발표했던 "남벌(南伐)"이 1994년, 이때 이미 우리들은 마음속으로 일본을 핵공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 속에서 이현세는 일본에게 모두 12조의 항복문서를 받는다. 그 중 일부만 소개해보면 "<제8조> 독도와 그 반경 200해리를 완전한 한국영토로 인정한다. <제10조> 경도 130도에서 140도상, 위도 345도상의 바다를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표기할 것을 명문화하고 이를 전세계에 통보한다. <제11조> 방어적 개념 외의 자위대 군사기구를 대폭 축소하고 일 년에 한 번씩 한국 측의 공식 사찰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남북한이 합동으로 일본을 공격(공격의 내용 중에는 핵공격도 포함되어 있다)해 항복을 받아낸다는 만화의 내용은 심정적 좌우익을 막론하고 대중의 혐일 감정에 편승해 화제가 되었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상처 입은 우리 민족에 대한 비틀림을 바로 잡고... 청소년들에게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고, 김태흥(독도수호 및 일본교과서 왜곡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추천사를 통해 "청소년들에게는 자부심과 희망을 주고, 다시금 침략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는 일본에게는 준엄한 경고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보다 조금 앞서 1993년엔 이휘소 박사의 이야기를 드릴러물로 변부한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3백만부가 팔려나갔다. 이 소설의 내용 역시,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을 돕던 천재적인 재미 핵물리학자가 미첩보국의 음모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국립묘지에 묻히지만 한 기자의 끈질긴 추적으로 10여 년만에 전모가 밝혀진다는 내용이다.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는 일본에 의해 한반도가 공격당하고, 그에 맞서 남북한이 일본에 핵공격을 가한다는 내용이 다뤄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내면 깊숙이 감춰진 곳에서 핵폭탄은 이미 개발완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북한의 민족주의가 대동단결하여 성취한 유일한 결과는 독재와 핵개발이다.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가장 소중한 이데올로기일까? 나는 그것이 이데올로기 시장에서 가장 값싸게 팔리는 박리다매 상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주의는 누가 팔아먹든 잘 팔린다. 마치 닌텐도 DS의 작동법과 게임 내용이 단순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처럼...

* 당시 대문 이미지에 사용된 그림은 파블로 피카소의 판화 작품이다. 국제앰네스티에서 사용하는 것을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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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John Lennon - Imagine


우리 말 "속절없다"에서 "속절"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사전에도 잘 나와있지 않다. 다만 "속절(俗節)"이란 말은 제삿날을 제외하고도 세시나 추석, 한식, 단오 같이 철마다 조상을 받드는 제사를 의미한다. 예나지금이나 조상님 받드는데 으뜸인 민족이지만 예전에는 한다하는 집안에서는 달달이 돌아오는 '속절'에도 제사를 모셨다. 조상님 받들고자 하는 마음이야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매일반이겠으나 끼니조차 거르는 형편에 속절까지 챙기기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속절에 조상님 모시는 일을 단념하거나 차라리 속절이 없었다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속절없이", "속절없다"는 말은 그렇게 나온 말이리라...

미국이 오랫동안 이라크에 금수조처를 취한 결과 수많은 어린이들이 영양결핍과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공중보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숨져갔다. 그렇게 오랫동안 미국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는 구실로, 이라크에서 대량살상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드디어는 이라크를 침공했다. 온세계가 이것을 불의의 침략이라고 규탄했으나 우리는, 우리 정부는 이것을 승인했고, 지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제와 서구 제국주의의 침탈로부터 독립한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고, 친미국가로 줄을 서고자 했던 것처럼 9.11테러 이후 세계는 다시 한 번 미국 앞에 줄을 섰다.

친구가 아니면 모두가 적(敵)이라는 무자비한 겁박 앞에서 우리는 국제연합(UN)의 승인도, 국제관계의 상식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윤리도 팽개치고 미국의 친구가 되기 위해 앞장섰다. 그 앞에서 나는 속절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자라서 속절없이가 아니었다. '속절없이'란 말은 자신이 그것을 행할 수도, 막을 수도 없어 체념하고 단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설움이 담긴 말이다. 나는 이미 벌어진 침략전쟁 앞에서 속절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다만 나는 이라크침략에 반대한다는 내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이라크 어린이들의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찾았다.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나의 무기력과 국제사회의 무력함 앞에 다시 한 번 가슴이 메어지는 듯 했다. 드디어 이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는 순간... 아니, 사진 속의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분노와 슬픔으로 목이 메어 책상에 머리를 박고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나는 썼다.

"나는 전범이다."
"무엇으로도 속죄할 수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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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만들어주었는지 기억이 정확치 않은데...

문화망명지가 처음 생긴지 1주년을 기념하여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기념 배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바람구두연방공화국이라 불렀던 모양?
아니면 그 친구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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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과 거의 동일한 경로로 만든 대문이었다.

닉네임을 '바람구두'로 정한 것은 좋았는데 그에 합당한 이미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무척 고심했었다. 지금처럼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몰랐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비가 와도 우산을 들고다닌 기억이 거의 없다. 늘 비를 맞고 다녔다. 아마도 그런 기억이 나에게 "바람구두"의 이미지로 장화를 택하게 만든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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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는 지난 2004년 9월 천안에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그녀의 몸들 : 신디 셔먼 Vs 바네사 비크로프트> 전과 2007년 2월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렸던 바네사 비크로프트 레트로스펙티브(Retrospective)전, 전시회 며칠 전에는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일반 대중에게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그다지 낯익은 예술가는 아니다.


1969년 이탈라이 제노바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3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로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일찌기 페데리코 펠리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이탈리아 소도시의 가톨릭적인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이방인처럼 여기며 살았다. 이와 같은 성장 배경은 그녀의 작품 제작의 밑바탕에서 전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소외의 감정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image - 01
Vanessa Beecroft, Vogue Hommes, 2002(Teil 1 von 2)



image - 02
Vanessa Beecroft, Vogue Hommes, 2002(Teil 2 von 2)



실제로 G8 정상회담이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진행되는 동안 제노바를 방문한 비크로프트에 대해 지역언론들은 자기 지역 출신의 예술가인 바네사 비크포로트를 극진히 환대하며 '귀향'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비크로프트 자신은 도리어 이런 표현들에 대해 거부감을 느껴 흑인들을 모델로 선택해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것은 그녀 자신이 제노바에서 이방인처럼 스스로를 느꼈던 탓도 있지만 당시 이탈리아의 사회 문제가 되었던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차별 문제에 대한 항의의 뜻도 함께 담고 있었다. 남성 중심의 정상회담 장소였던 이탈리아 제노바의 듀칼레 궁전에서 성기만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흑인 여성들이 등장한
(2001) 퍼포먼스는 분명히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image3~4 : performance VB52(2003)


199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선보인 첫 퍼포먼스
는 바네사 비크로프트 본인의 이름 이니셜을 딴 것이다. 비록 본인의 이름이긴 하지만 신디 셔먼의 '무제(untitled)'시리즈처럼 현대문명의 익명성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작명법이기도 하다. 속옷 차림의 여성들은 퍼포먼스 중에 조용히 포즈를 취하고 있을 뿐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노출된 여성들의 몸은 구경꾼들의 눈요기 대상이지만 그들을 훔쳐보는 관음증적인 시선 자체도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퍼포먼스에서는 의도된, 의도되지 않은 예술 행위의 일부이다.


"나는 내가 의도했던 것과 실제 구현된 것 사이의 차이에 흥미를 느낀다."



첫 번째 전시회 이후 뉴욕으로 건너간 그녀는 여성의 나체와 음식, 속옷 등을 퍼포먼스의 주된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일견 헬무트 뉴턴의 작업들과 흡사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여성의 나체를 이용한 퍼포먼스 아트에 대해 대개의 평단의 평가는 대체로 두 가지 중 하나일 때가 많은데, 하나는 여성의 신체를 성적 욕망의 대상에서 '몸'으로 승화시킨 페미니즘 예술이라는 평과 단순히 지식인용 고급 포르노에 불과하다는 평이 그것이다. 어떻게 보느냐는 것은 각자의 평가에 맡길 일이다. 



실제로 거식증에 시달렸던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개인적인 체험이 녹아있는 퍼포먼스였다.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퍼포먼스에 참가하는 모델들은 대부분은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는 편인데, 비크로프트는 이 때 자신의 친구들을 비롯해 예술대학의 학생들, 거리에서 캐스팅한 여성들이다.
퍼포먼스에는 32명의 모델들이 자원해서 참가했는데, 옷을 입은 나이든 여성부터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젊은 여성들은 투명한 테이블 위로 베이지색 양복을 입은 남성들이 제공하는 초록색, 빨간색, 오렌지 색 등 음식을 받는다. 무려 5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벤트 동안 여성 모델들은 음식을 먹을지 먹지 않을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여 행동했다.


'여성의 몸은 전쟁터'라고 선포했던 바바라 크루거 이후 음식은 신체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신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아름답게 꾸미는 물질로 전환되었다. 사람들은 매일 운동을 하고, 음식물을 조절하면서 아름다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표출한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을 방문했던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매우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매의 소유자였다. 어쨌거나 날씬하고 아름다워야만 대접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먹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여자는 꾸며야 한다가 아니라 꾸며야 여자가 되는, 아름답지 않은 여자는 거리에 나오지도 말라는 거대한 강박 속에 여성의 신체는 전쟁터이자 동시에 가장 매력적인 상품이다.



image - 5 : Barbie Army


어쨌거나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회가 열리기 며칠 전인 지난 2007년 2월 26일 서울 신세계백화점에 그녀의 퍼포먼스가 열렸는데, 여성의 신체노출에 대해 한 편으론 매우 관대하면서, 다른 측면으론 매우 엄격하다는 점을 잘 아는 주최측의 부탁으로 이 퍼포먼스에 참가한 모델들은 살색 옷을 걸쳤었다.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모델들에게 "섹시하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는 요구 이외에는 서있다가 쉬고 싶으면 쉬는 것도 퍼포먼스의 일부라고 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1회성이라는 퍼포먼스 특성상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사진과 비디오만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데, 그녀 자신은 이것이 이벤트의 증거이긴 하지만 가장 재미없는 감상이라고 말한다.



image - 6 : white madonna with twins, 2006


마지막 사진은 어쩐지 베네통사의 광고를 역으로 패러디한 느낌이다.



살아있는 신체를 전시하는 행위와 인간(특히 남성들)의 관음적인 시선이 그려낸 완벽한 몸매의 마네킨, 바야흐로 죽은 것이 살아있는 것을 대체하는 living dead의 시간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아름다울 지어다, 아니면 말구."하셨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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