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들
- 히틀러 대 스탈린, 권력 작동의 비밀
리처드 오버리 (지은이) | 조행복 (옮긴이) | 교양인 | 2008-12-25 | 원제 The Dictators






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은이) | 김남섭 (옮긴이) | 교양인 | 2012-07-05 | 원제 Comrades: A World History of Communism (2007년)







속삭이는 사회 1.2
- 스탈린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삶, 내면, 기억
올랜도 파이지스 (지은이) | 김남섭 (옮긴이) | 교양인 | 2013-08-30



  





나타샤 댄스
- 러시아 문화사
올랜도 파이지스 (지은이) | 채계병 (옮긴이) | 이카루스미디어 | 2005-06-30 | 원제 Natasha's Dance (2002년)






* 책 한 권을 잘(?) 읽기 위해 반드시 많은 준비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최신간인 올랜도 파이지스의 "속삭이는 사회 1.2"를 잘 읽기 위해선 약간의 워밍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교양인이 "스페인내전" 이후 출간하는 책들의 흐름이랄까 기획 방향이 엿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교양인이 최근 펴내고 있는 책들은 저자들끼리도 매우 가까운 사이이다. 이건 학문적으로 그렇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도 가까운 듯 보인다. 서로서로 추천사를 써주는 사이들이니까 말이다.

먼저 "독재자들"에 대한 로버트 서비스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리처드 오버리의 책 "독재자들"에 대해 "도발적인 통찰력으로 흘러 넘치는 책"이라고 했다. 이번엔 리처드 오버리가 로버트 서비스의 책 "코뮤니스트"에 대해 한 말을 살펴보자.

"로버트 서비스는 이 흥미진진하고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책에서 역사를 공정하게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해냈다. 완전히 빠져들게 만든다."

이것들이 서로 상대방 책을 최고라고 추천하고 있는 거다.

"속삭이는 사회"는 누가 추천했나 한 번 볼까? 아니나 다를까... 같은 교양인 출판사에서 펴낸 "스페인 내전"의 저자 앤터니 비버다.

앤터니 비버는 올랜도 파이지스의 책 "속삭이는 사회"에 대해 "이 책의 가치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다. 저자와 그가 이끄는 연구 팀은 일기와 회고 기록을 발굴해내고 수백여 명의 생존자들과 직접 인터뷰했다. .... 조심하여라. 이 책을 읽으면 읽으면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현대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저작임이 틀림 없다."

ㅋㅋ

이 사람들 모두(앤터니 비버, 리처드 오버리, 로버트 서비스, 올랜도 파이지스) 영국에서 요즘 잘 나가는 역사학자들이다. 서로서로 칭찬해주는 분위기를 나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어쩐지 약간 낯이 뜨거워지는 건... 올랜도 파이지스의 책 "나타샤 댄스"는 러시아 문화사에 대한 상당한 재미를 주는 수작이므로 일독을 권한다. 물론 위에 이야기한 책들은 모두 한 번쯤 읽어둘 만한 것들이다.


다만, 이것이 대처 이후 영국의 역사학계의 흐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좌파를 묘사할 때 냉정하고 객관적인 기술과 냉소적이고 주관적인 기술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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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지난 금요일 울산 선생님들 모임에서 강의를 마친 뒤 몇몇 선생님들과 저녁 식사를 했어요. 그 자리에서 각자 궁금한 걸 제게 물었는데 한 선생님이 제게 "연을 쫒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와 관련해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해 참고할 만한 자료나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 몇몇 책을 추천해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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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프가니스탄을 다룬 영화로는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칸다하르"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벌써 보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슬람,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우리나라는 지역학 연구가 아직 미진한데다 지역학 연구의 대부분이 경제 중심적이거나 아니면 문학 작품 소개 위주라서 사실 아프가니스탄을 다룬 본격적인 저작을 찾기가 쉽지 않은 편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추천드릴 만한 책으로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계신 이주형 선생이 쓰신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 사라진 바미얀 대불을 위한 헌사"가 있습니다.

아프간의 탈레반들이 고대 불교미술의 진수라 할 수 있는 바미얀 석불을 파괴한 사건은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는데요. 고고미술을 전공한 이주형 선생에게도 놀라운 충격이었을 겁니다. 이 책은 1부, 2부로 되어 있는데 전반부는 미술(문화)사적인 접근이고, 후반부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습니다. 별도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다룬 책이 별로 없다는 점을 고려하시면 이만한 책이 없을 듯 합니다.

앞서의 책이 다소 전문적인 통사에 가깝다면 디디에 르페브르와 에마뉘엘 기베르가 지은 "평화의 사진가"는 만화와 사진이 어우러진 책으로 좀더 읽기 쉬운 책입니다. "앨런의 전쟁 -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송두리째 바뀐 소년병 코프의 인생 여정"의 작가이기도 한 에마뉘엘 기베르의 그림과 디디에 르페브르의 사진을 통해 당시 국경없는 의사회와 합류해 함께 활동했던 기자의 귀환기를 다루고 있지요.

서구인의 시선으로 그려졌다는 한계는 있겠으나 현장의 이미지와 직접 체험담이란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은 1980년대 후반, 그러니까 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이 전쟁을 치르고 있던 시점을 기록한 것이므로 전체적인 역사를 조망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크리스토프 드 퐁피이의 "판지셰르의 사자, 마수드"는 소련과의 투쟁을 이끌었던 아프간 북부동맹 사령관 마수드를 중심으로 그가 소련과의 투쟁을 어떻게 이끌었으며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간 내전 당시 미국과 북부동맹, 탈레반 간의 내전 상황들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마수드는 당시 아프간의 중요한 민족지도자 중 한 명이었지만 결국 암살당합니다. (물론 누가 암살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저자는 아마도 미국에게 호락호락한 정치지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암살당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해방 정국 무렵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 처럼 말이죠.)

아프간 문제를 세계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 있어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 정치지리의 세계사"란 책이 아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곳을 찾아가기 위해 지도를 보면 대략적인 감이 오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하기 위해 열강들이 어째서 치열한 쟁투를 벌이는지 지도를 펼쳐보면 이곳이 얼마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인지 매우 쉽게 보이기도 하거든요. 만약 꼭 한두 권만 추천하라고 하신다면 이주형 선생의 책과 이 책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정치지리의 세계사"를 추천드립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24200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22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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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간혹 별로 좋아하는 저자도 학자도 아닌 사람이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분야가 흥미로운 탓에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는 저자들이 있는데, 내 경우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이다. 그에 대한 소개다.

"세계사적 전환의 시점에서 최근 경제 위기를 예측하면서 국내외 언론에서 활발한 조명을 받았다. 폴 크루그먼과 조지 프리드먼의 최대 경쟁자로 꼽힌다.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로 중국과 미국의 공생관계를 설 명해냈으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관한 수정주의 시각으로 유명하다. 그는 1964년 글래스고에서 태어나 1985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했으며, 현재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비즈니스 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옥스퍼드 대학 지저스 칼리지와 스탠퍼드 대학의 후버 칼리지 선임 연구교수도 겸하고 있다.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올랐다. 1987년 저널리스트인 수잔 더글라스와 결혼했다.

영국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Ascent of Money’의 진행을 맡으면서 2007년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의 실체와 주식시장의 폭락 원인을 파헤쳐 큰 반향을 일으켰다(한국에서는 KBS 2TV에서 <돈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주요 저서로 <제국>, <현금의 지배>, <종이와 쇠>, <실제의 역사>, <전쟁의 연민>, <콜로서스>, <금융의 지배>, <하이 파이낸셔>,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등이 있다. "



이쪽 방면의 저자 소개들이 대체로 뭔가 거창하다. 이 출판사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니얼 퍼거슨은 폴 크루그먼이 조지 프리드먼과 맞짱뜰 수 있는 정도의 학자로 자체 평가(?)하고 있는데 그 사실 유무야 내가 이 방면 사람은 아니지만 뭔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저자 소개 같은 느낌은 피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사람에 대해서 좀 깬다, 아니 많이 깬다고 느낀 이유 중 상당 부분은 민음사에서 펴낸 "증오의 세기"란 책에도 원인이 있었다. 이쪽 방면의 책들은 거의 빼놓지 않고 쫓아가려고 하는 편인데... 좀더 심하게 말해서 나는 이 책을 읽고 욕지기까지 느낄 정도로 니얼 퍼거슨에 대해 화가 났었다.

그 이유를 구구절절 쓰고 싶은 마음조차 별로 없는데 마침 내 심정과 흡사한 이유를 댄 서평이 있어서 링크(http://blog.aladin.co.kr/pressian/4602354)를 걸어본다. 이 책에 대해 상당수 독자들이 별 넷에서 다섯을 주었다. ㅠ..ㅠ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3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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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요하다면 나는 이상을 위해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쿠누에서 태어난 넬슨 만델라는 1944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합류하면서 정치인이자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2년 그는 흑인을 차별하는 남아공 백인 정부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반대하다가 체포되어, 파괴행위와 관련해 네 가지 혐의로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전 세계에서 그에 대한 석방 여론이 일면서 1990년 2월 11일 풀려났고, 1993년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F.W.데 클레르크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듬해에는 흑인과 유색인종들에게 주어진 남아공 최초의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에 대한 가장 큰 업적은 무엇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협상을 통해 백인들에게서 권력을 이양받았으며 국민의 단합을 이룩해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그가 전격적으로 중재에 나서기 전까지 불가능해보인 일이었다. 다음의 인용문을 그가 피고석에 서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말했던 매우 긴 진술(1만 1,000단어가 넘는다) 중 극히 일부이자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인 넬슨 만델라의 쾌유를 빈다.

"나는 평생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 싸움에 헌신해 왔습니다. 나는 백인 지배에 맞서 싸워왔을 뿐 아니라 흑인 지배에도 맞서 싸워왔습니다. 나는 모두가 함께 조화롭게 생활하면서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의 이상을 소중하게 여겨왔습니다. 그 이상을 위해 살면서 그 이상을 달성하는 것이 나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나는 이상을 위해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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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의 역사 1 : 작전편 - 20세기를 배후 조종한 세기의 첩보전들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이창신 옮김 / 이마고 / 2003년 10월



어쩌다보니 별로 좋아하는 저자도 아닌 "어니스트 볼크먼Ernest Volkman"이 저술해 국내에서 출판된 3종의 책을 모두 읽고, 그 세 권의 책에 대해 모두 서평을 올리게 되었다. 저자 소개에는 그가 첩보기관 및 스파이 분야의 대단한(하긴 대단하다) 전문가인양 소개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가 전문가인 영역은 이런 자료들을 쫓아가서 공부하고, 종합해내서 글로 써내는 저널리스트란 점에서 전문가라는 것이지, 이 분야에 종사한 경험을 지닌 전문가는 아니다. 어니스트 볼크먼의 저서  세 권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스파이의 역사 1 : 작전편", "20세기 첩보전의 역사 : 인물편"은 국내에선 모두 "이마고" 출판사에서 나왔다. 내가 읽은 그의 저서 세 권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였고, 그 뒤로 읽은 책 "스파이의 역사"가 제법 재미있었다. 가장 근간인 :20세기 첩보전의 역사"는 생각외로 재미가 적었다.


어니스트 볼크먼은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그의 독특한 안목이 잘 발휘되는 것으로 대중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이지만 전문가들이 잘 손 대지 않거나, 대체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분야를 잘 파고 든다는 점, 둘째는 그가 풍부한 사료들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는 것, 셋째는 어려운 이야기를 대중적인 눈높이에서 잘 풀어낸다는 것이다. 이 책 "스파이의 역사"에서는 그의 이런 장점들이 특히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가장 훌륭하게 성공한 첩보작전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작전"이라거나 "권력은 총구가 아닌 정보에서 나온다"와 같은 구절들은 스파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전제가 된다. 즉, 저자가 다루고 있는 사건들은 이제 비밀 제한 기간이 완전히 지나서, 비밀이 해제되었거나 너무나 끔찍한 피해를 겪어서 더이상 숨길 수 없게 된 사건들로 국한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건들이거나 아직도 그 의미가 남아 있는 것들은 여전히 비공개로 남는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이 책의 제2부 "암호와 감청 전쟁: 보이지 않는 스파이들"에서 독일이 자랑스럽게 내세운 비밀암호작성기인 "에니그마"의 암호 코드를 영국은 "배틀 오브 브리튼" 이전에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이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할 수 있고,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해독해냈다는 사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비밀로 남아 있었다. 007을 감독한 가이 해밀튼이 1969년 감독한 영화 "배틀 오브 브리튼"은 독일의 영국 침공과 이에 맞서는 영국 공군의 대혈투를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 영화 어디에서도 에니그마 암호를 풀어냈기에 독일 공군이 어딜 목표로 날아오는지 미리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은 단 하나도 없다. 역시 이 영화의 DVD서플먼트에는 당시 공군 참모총장이었던 다우딩이 출연해 당시를 회고하는 대목이 있지만, 그 어디에도 에니그마 암호를 풀었다고 말하는 대목은 없다. 왜냐하면 영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한 것은 1970년대 초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시 전쟁의 최전방에서 이를 지휘했던 다우딩 중장조차 이를 영화든, 회고록이든 어디에도 언급할 수 없었고, 영화에도 그런 극적인 부분을 삽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근대적 개념에서 첩보전을 최초로 실시한 나라는 영국이었고, 특공대를 만들어 운용한 나라 역시 영국이었다. 오늘날 대테러부대의 전세계적 모델이 된 SAS를 만들어낸 나라 역시 영국이었다. 그런 영국도 바보같은 실수를 한 적이 많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제1차 세계대전 무렵의 비교적 낭만적인 첩보전이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더 한층 냉혹해지고, 이후 동서냉전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첩보전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혹시 캐빈 코스트너의 출세작이기도 했던 영화 "노웨이 아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캐빈 코스트너가 미 해군 장교로 등장하는 영화인데, 대통령이 케빈 코스트너의 애인과 밀통하다 우연히 그녀를 살해하고, 그 죄를 덮어 씌우려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엮은 영화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음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CIA내부에 소련이 침투시킨 스파이가 존재한다는 설정이 겹치면서 벌어지는 우여곡절을 다룬 것이다. 이 영화는 실화는 아니지만, 첩보전의 역사에는 실제로 이와 비슷한 맥락의 사건이 있었다.


이 책의 "제3부 반역작전: 내부의 적을 색출하라"는 첩보조직 내부에 침투한 첩보원, 이중첩보원에 대한 이야기와 이들을 추적해 색출하기 위한 첩보작전을 다루고 있다. 영화에서 거듭되는 반전을 경험하며 골머리를 앓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이 장을 펼쳐 읽으며 다시 골머리를 앓을 필요는 없다. 손자병법에서는 간첩의 종류를 향간, 내간, 반간, 사간, 생간이라 하여 다섯 가지로 구분하는데, 이들 다섯 종류의 간첩을 사용하여도 적이 그 방법을 알지 못하니 이를 신기, 즉 귀신 같은 경륜가 재능이라 일컫는다고 말한다. 우선 향간은 적국의 사람을 포섭하여 이를 활용함이고, 내간은 적국의 관리를 포섭하여 이를 활 용함이며, 반간은 적의 간첩을 포섭하여 이를 활용함이고, 사간은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아군 간첩이 이를 알리고 적에게 전달케 함이며, 생간은 돌아와 보고함을 말한다.


동서냉전 시기에 CIA와 KGB는 서로의 조직에 간첩을 침투시키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더군다나 영국 최고의 첩보기관인 MI6의 최고 책임자 지위에 오를 뻔한 킴 필비가 KGB의 간첩이었단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 첩보 기관의 스트레스는 하늘을 찔렀다. 이런 와중에 KGB로부터 탈출한 전직 KGB요원 하나가 말하길, CIA 내부엔 이미 KGB스파이들이 잠입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CIA의 방첩담당자는 CIA내부의 요원들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이후 KGB에서 망명한 요원을 CIA를 교란시키기 위해 침투한 간첩으로 오인해 수년간 스파이 혐의로 반인권적 처우를 가했다. 결국 이런 방첩 행위는 CIA내부의 반발을 불러왔고, 방첩담당자는 해직당한다. 그 이후 재조사한 결과 가장 많은 의심을 받은 이가 바로 방첩행위를 주도했던 그 담당자였다는 이야기는 웃어 넘기기엔 너무 슬픈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 역시 분단 이후 아직 풀지 못한 숱한 사건들을 가지고 있다. 위장 간첩 사건부터 시작해서, 권력의 안위를 위해 조작된 간첩 사건, 휴전선을 넘나드며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고투를 거듭했던 이들이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 종종 스파이들을 용도가 폐기됨으로 잊혀지거나 좀더 심할 경우 그들을 부렸던 조직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 책 "스파이의 역사"는 물론 그런 부분에 대해 소상한 언급을 하고 있거나 독자들에게 어떤 흥미 이상을 갖도록 이끌어주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노라면 저절로 우리 역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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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 사형의 기원과 역사, 그 희생자들 - 카를 브루노 레더 (지은이) | 이상혁 (옮긴이) | 하서출판사(2003)

끔찍한 연쇄살인마의 얼굴 - 인류(人類)의 자화상

나는 이 책의 구판을 가지고 있는데, 목차와 다른 이들의 리뷰를 보니 내용에는 변함이 없는 듯 하다. 최근 나는 사형과 사형제도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연이어 읽었다. 사실 이 책은 스콧 터로의 책 "극단의 형벌"을 읽기 위한 용도로 다시 읽은 것이다. 스콧 터로의 책이 보다 최근의 사형과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카를 브루노 레더 (Karl Bruno Leder)"의 이 책은 부제 '사형의 기원과 역사, 그 희생자들' 이 알려주듯 사형과 사형제도의 기원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모습을 역사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사형(死刑, Todesstrafe)이란 단어 자체로 이미 '제(制) 혹은 제도(制度)' 와 결부된다. 사형의 출발 자체가 국가나 사회 구조의 체계 및 형태에 따라 각기 다양한 목적과 형태를 띠고 실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형이 국가나 사회구조에 의한 것이 아닐 경우, 우리는 그것을 살인 혹은 살해라고 부른다. 영어로 살인 혹은 살해를 가리키는 단어인 'homicide, murder, man- slaughter' 는 각기 '살의의 유무' 로 구분되는데 사전에 살의가 있었던 살해 행위는 'murder' 로 사전에 모의가 없었던 살해 행위는 'manslaughter' 이 두 단어를 포괄하여 지칭하는 단어가  'homicide'이다. (이외에도 살해를 지칭하는 말은 'kill, slay, slaughter, assassinate' 등 그 양태와 양상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과연 '제도로서의 살해' 즉 '사형'은 'murder'인가? 'manslaughter'인가? 또 그런 규정 뒤에 오는 사형에 대한 판단은 어떤 것이 될까?

과연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몇 가지나 알고 있을까? 이 책은 사람을 살해하는 온갖 기술들을 나열하고 있는 듯 보인다. 사람 하나를 죽이기 위해 인류는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여 연구해온 것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겨레21"에 연재하는 '역사이야기'칼럼 "우리는 무덤 위에 서 있다"를 통해 여러가지 살해 방법을 나열한 바 있는데, 그 도움을 얻어보자.

참으로 죽이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때려죽이는 타살(打殺), 구살(毆殺), 주먹으로 쳐죽이는 박살(搏殺),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박살(撲殺), 격살(擊殺), 쏘아죽이는 사살(射殺), 총살(銃殺), 포살(砲殺), 칼로 찌르거나 베어죽이는 자살(刺殺), 찢어죽이는 육살(戮殺), 육시(戮屍), 생매장해 죽이는 갱살(坑殺), 바퀴로 치어죽이는 역살(轢殺), 단근질해 죽이는 낙살(烙殺), 밟아죽이는 답살(踏殺), 깔아죽이는 압살(壓殺), 독을 먹여죽이는 독살(毒殺), 껍데기를 벗겨 죽이는 박살(剝殺), 끓는 물에 삶아죽이는 팽살(烹殺), 불에 태워죽이는 분살(焚殺), 소살(燒殺), 베어죽이는 참살(斬殺), 여기서도 머리를 베어죽이는 참수(斬首), 허리를 끊어죽이는 요참(腰斬)이 있다. 또 물에 빠뜨려 죽이는 익살(溺殺), 수장(水葬), 잡아죽이는 포살(捕殺), 굶겨죽이는 아살(餓殺), 목졸라 죽이는 교살(絞殺), 액살(縊殺), 채찍질하여 때려죽이는 추살(추殺), 철퇴로 쳐죽이는 추살(鎚殺), 몽둥이로 쳐죽이는 추살(椎殺), 발로 차죽이는 축살(蹴殺), 높은 데서 내던져 죽이는 척살(擲殺), 곤장으로 때려죽이는 장살(杖殺), 폭탄을 터뜨려 죽이는 폭살(爆殺), 기둥에 묶고 창으로 찔러죽이는 책살(책殺), 꾀어내어 죽이는 유살(誘殺), 죽일 사람이 없을 때 가족 등 다른 사람을 대신 죽이는 대살(代殺) 등 인류의 역사에 있었던 사람 죽이는 방법이 모두 동원된 것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현실이었다.

저자는 인류 사회가 제도로서 실시한 사형의 기원은 종교적인 '인신공양'과 종족 살해에 대한 '피의 복수'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제도로서의 살해 행위인 사형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형벌이었다. 그것은 인류가 최초로 만든 법률이랄 수 있는 거의 모든 고대의 법에 드러나는 '받은 그대로를 돌려준다'는 인과응보 원칙과 함께 공동체가 느끼는 죄책감, 불만, 공포 등을 발산하는 한 형태로서 존재해 왔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 1 왕조 제 6 대 왕 함무라비(Hammurabi)왕이 제정한 함무라비 법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成文法)이다. 이 성문법은 또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이라는 복수주의(復讐主義) 법률로도 유명하다.즉, 타인의 목숨을 빼앗은 자는 그 자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인데, 다른 말로는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 탈리오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사형에는 자연재해나 기타등등의 사유로 공동체의 위기 의식이 고조될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한 희생양으로서 제거되는 인신 공양의 형태가 남아 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세계 101개 국가에 사형제도가 존치되고 있는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강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제도 존치론이 목소리를 얻는 까닭을 살펴보면 하나는 잔인한 범죄 행위가 주는 충격과 남겨진 유가족의 보복심리(동해보복형)에 기인하는 측면과 더불어 강력범죄로 인해 사회가 받는 스트레스(공포, 불안심리)를 사형이라는 제도의 존속으로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 때문으로 이는 과거 고대 사회의 인신공양이 주는 심리적 안정, 사회적 스트레스의 발산이란 측면에서 흡사하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사회에 의한 동일한 보복이라는 사형제도의 비윤리적인 측면이 강조되면서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한 34개국이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하고 있으며, 전범과 군범죄를 제외한 일반 점죄에 대하여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스위스와 영국을 비롯한 18개 국이 있다. 이외 법률로는 존속하지만 실제로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국가로 벨기에와 그리스 등 26개 국이 있다. 북한을 비롯한 소위 불량국가들의 인권 상황을 질책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인권 수호국을 자임하는 미국의 사형제도는 1972년 잠시 폐제되었다가 4년 뒤인 1976년 부활되어 2001년 현재까지 38개 주에서 사형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사법제도가 출범한 후 실시된 첫번째 사형 선고는1895년 3월 25일(양력 4월 19일) 재판소구성법이 공포되고 4일 뒤에 법무아문 권설재판소에서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에게 내린 교수형 선고가 최초이다. 1948년 이후 사형당한 사람은 모두 902명이다.

이 책은 고대와 중세, 근대를 거치면서 사형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준다. 아마도 저자가 강하게 주장하고 싶었던 말은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인 듯 싶다. 가장 이성적인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할 사법제도가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이유를 들어 사형이라는 비이성적인 제도를 이성을 가장한 제도로 존치시키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사형제도 뒤에 숨겨진 국가, 사회의 집단 의식이 어느 정도의 단계에 이르렀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형제도가 사회의 안전판 구실을 한다고 믿는 집단 의식은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집단 의식으로 연계된다. 그러나 사형제도가 범죄를 예방할 수 없고, 범죄율을 저하시킬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와 함께 더욱더 잘 알려진 사실은 사형이 빈번하게 실시된 시대일수록 독재자와 독재권력이 이를 그들의 목적에 맞게 적절하게 남용해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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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서양 20세기사 -
박무성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2년


세기말이었던 지난 2000년 무렵 나는 혼자서 이런저런 궁리 끝에 내나름으로 지난 20세기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혹은 세계를 움직인 10대 사건을 정리해보기로 결심했었다. 생각외로 이런 궁리는 재미있다. 오늘 하루 내게 일어난 일 가운데 재미있었던 혹은 재미와 상관없이 기억할만한 일 3가지를 정리해보는 일, 한달 동안, 아니면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10대 사건을 언론사에서 정리하는 것처럼 혼자 해보라. 그렇게 해서 막상 정리된 사건들을 보면 정말 이 한 해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저 일이 올해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내가 궁리 끝에 정리해낸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10대 사건"은 다음과 같았다.

1.유럽중심의 세계통합과 그 유산들
2.제1차 세계대전과 유럽 제국주의의 몰락(새로운 패권국가로서 미국의 등장)
3.사회주의 혁명과 전체주의의 등장
4. 대량생산·소비 사회의 도래와 경제 대공황
5. 제2차 세계대전과 핵시대의 도래
6. 팍스 아메리카나와 유럽의 재건
7. 제3세계와 청년운동
8. 환경파괴와 여성해방운동
9.대중사회의 도래와 정보기술혁명
10. 현실사회주의 몰락과 세계화
 
한 세기를 움직인 사건을 정리해보니 소위 '역사의 맥락' 이 잡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를 다시 주제별로 분류하고, 이와 관련해 읽어볼만한 책 10권씩을 선정하고, 이것을 스터디한 뒤에 내나름의 생각을 원고지 100매 내외로 정리해보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었다. 물론 2001년이 시작되기 전에 이 모든 것(내가 나에게 내어준 숙제)을 마무리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모든 면에서 역부족이란 분루를 삼키며 물러났었다.

박무성 단국대 명예교수의 이 책 "격동의 서양 20세기사"는 그런 점에서 나에게 중요한 참고서적 중 하나였다.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에서 역사가의 몫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는 역사학계의 오랜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역사서를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도 에세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많이 녹인 책을 읽을 것인지, 아니면 랑케식으로 실증에 치중해서 단순히 역사적 사실관계를 추적한 책을 읽을 것인지... 그렇다면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 방식일지, 어느 것이 보다 유익할지, 어느 것이 보다 재미있을 것인지는 고민해볼 만하다.

내 체험에 의거해 이야기해보자면 둘 다 읽는 것이 가장 좋다. 예를 들어 부부 혹은 애인 사이에 다툼이 있는데, 나는 이들 양자와 친분이 있다고 하자. 이쪽의 이야기와 저쪽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어보면 다들 나름의 입장이 있기 마련이다. 이유없는 무덤 없다는 격언이 증명하듯 모든 행위에는 그 이면에 도사린 원인이 있다. 이럴 경우 어느 일방의 이야기만 듣노라면 입체적인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만약 영국이 도발한 어느 전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영국 이야기만 듣는 것으로는 부족하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미국인들이 저술한 미국의 범죄 혹은 파렴치한 역사 이야기를 미국인 저널리스트들의 기술로 읽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기 마련이다. 이런 한계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굳이 국적에 의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관점을 알기 위해서라도 여러 종의 책을 읽는 것은 필요한 일이 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박무성 교수의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유익하고,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물리적인 시간으로서의 20세기는 분명 1901년에 시작해서 2000년에 종료되었지만, 역사적으로 20세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놓고는 아직도 많은 이견들이 있다. 어떤 이는 대영제국의 마감을 알리는 빅토리아 여왕의 죽음 이후를, 어떤 이는 그로부터 훨씬 뒤인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러시아 10월 혁명을 기점으로 잡기도 한다. 이는 역사를 기술하는 이의 관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박무성 교수는 이 책의 시발점을 제1차 세계대전으로 놓고 있는데, 이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은연중에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할 20세기의 역사는 서양을 중심으로 한 정치학적인 접근이 될 것이며, 현실 정치가 서로의 세력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는가? 균형의 파괴가 역사적으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를 중심으로 기술할 예정이란 뜻이 된다.

그것은 전체 29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소제목들만 살펴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인류사를 격변시킨 제1차 세계대전, 유익한 베르사유 체제의 성립과 붕괴, 비운의 바이마르 공화국,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중략)... 동유럽의 자유화운동과 공산체제의 붕괴, 독일의 통일과 그후, 북유럽 및 남유럽 국가들의 민주화, 세기말엽 영국의 변혁, 1990년대의 미국, 유럽의 변혁, 20세기의 서양문화, 서양 20세기사의 장을 닫으며"
서양의 20세기를 문화적인 관점에서 다룬 부분은 실질적으로는 맨마지막에 해당하는 28장에 배치해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통해 서양의 문화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필요로 접근하는 이에겐 그다지 도움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지닌 미덕은 그런 부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야를 한정시킨 덕에 이 책은 몇 가지 장점을 지닌다. 우선 지리학적으로 그 대상을 서양(미국과 유럽)으로 국한시켰다는 점, 주로 다룰 분야를 정치적인 부분으로 한정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 책에서는 그간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웠거나 정리하기 어려웠던 가까운 근과거의 유럽과 미국을 발견할 수 있고, 미국과 유럽이 주고 받는 체스게임의 관전자로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전체 29장을 다시 구분해보면 1장부터 9장에 이르는 부분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시작된 유럽의 몰락과정을 추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실제로는 동일한 목적과 원인으로 시작된 하나의 전쟁으로 파악하고 있다. 동일한 목적이란 유럽의 통합 - 물론 그 안에는 기존(식민지 시장을 이미 확보한) 공업국가인 영국과 프랑스, 신흥 공업국가인 독일의 대립이라는 경제적 요인들, 신흥강국으로 부상하는 미국을 견제하며 세계적 패권국가로서 유럽을 지속시킬 - 필요성을 느낀 유럽 제국들이 힘의 균형이 아닌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이란 것이고, 원인이란 이런 요인들이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서로 그것을 주도 혹은 견제하고자 했던 것을 말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균형과 견제를, 독일은 통합을 주장한 셈인데, 여기에 러시아 혁명 이후 등장한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서구 자본주의 세력의 통일 역시 중요한 몫을 한다.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구원의 희망을 찾고자 했던 부분도 여기에 있다.

제10장부터 제19장까지는 크게 보아 서구의 냉전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 시작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전쟁이 아니라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 이후 시작되어 1991년 8월 19일 소련의 보수강경파에 의한 군부 쿠데타 실패로 끝난다. 이 시기에 서유럽 일부 지역을 제외한 세계 각처에서는 전쟁, 무력분쟁, 군부 쿠데타, 민간인 학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웠으나 궁극적으로는 전쟁 상황일 수밖에 없는 충돌이 지속되었고, 나는 이것을 명칭은 어찌되었든 또 하나의 세계대전으로 보고 있다. 제20장부터 제27장까지는 소련의 해체 이후 미.소의 양극체제에서 미국에 의한 일극체제로 변모해가는 과정과 동서냉전 시기의 막바지에 유럽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앞서 말한 이 책의 장점은 20세기사에 대한 기술이 주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 치중된 나머지 소홀해지기 쉬운 유럽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제11장 '영국의 변혁' 편에서 우리는 노동당과 보수당의 양당 체제가 확립된 영국과 대영제국의 붕괴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제12장 '프랑스의 변혁' 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자에서 나치 제3제국의 협력국, 그리고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으로 극적인 변환을 거친 프랑스가 어떻게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 드골이즘의 '위대한 프랑스'가 되어가는가를 볼 수 있으며, 제13장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대변혁'에서는 세계대전의 패자였던 이들 나라들이 마셜 플랜과 미국의 후원으로 소위 자유진영의 일원이 되는가를 살필 수 있다. 이외에도 제21장 '동유럽의 자유화운동과 공산체제의 붕괴', 제22장 '독일의 통일과 그후', 제23장 '북유럽 및 남유럽국가들의 민주화' 등은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나라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언급해둘 필요성을 느끼는 부분은 우리가 서양이라 하면 쉽게 느끼게 되는 지리적 인상과 상관없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서양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완전히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가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20세기 서양정치사를 통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은 20세기 서양정치사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충실하게 다루는 중요한 텍스트 구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가까운 근과거를 다루기엔 여러가지 문제를 지닌다. 과거의 여러 사건들 가운데 당시로서는 하찮은 사건에 불과한 것이 결과적으로 중대한 사건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생기기도 하고, 당대에는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후세의 평가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는 것"이란 역사학의 중요한 화두를 다시 끄집어낸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다소간의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점이란 측면에서 서구와 비교해 동구 진영에 대해서는 보다 냉정한 시선을 유지한다는 점은 그에 대해 다소 동정적인 입장을 지닌 독자의 입장에서는 보다 객관적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나는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하나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을 했고, 진정한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트루먼 독트린 이후 소련의 붕괴 사이에 있었던 냉전을 다른 의미에서 세계대전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제3차 세계대전은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할 것인가? 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렇다. 제3차 세계대전은 지난 2001년 9월 11일 이미 시작되었다. 물리적 시간으로의 21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세계 인류는 이제야말로 인류가 번영과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20세기 인류가 남긴 죄악의 유산들은 여전히 인류가 짊어질 형벌로 남았다.

* 참고로 한 말씀 드리자면 2000년 현재 프랑스의 국방비 총예산은 343억불이다. 미국은 프랑스의 국방비 총예산보다 많은 금액을 단지 무기개발연구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의 국방비 총예산을 합친 금액은 미국의 국방비 총예산인 2,947억불 보다 적다. 여기에 더 추가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자주국방의 상징처럼 숭앙해 마지 않는 이스라엘이 한해 사용하는 국방비는 94억불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국방비는 128억불이다. 물론 국민 1인당으로는 우리가 더 적다. 전세계 국방비의 1%를 감축할 수 있고, 그 비용을 기아구제로 돌릴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 굶주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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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시대의 일상사 - 개마고원신서 33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개마고원 / 2003년 7월


국가규모의 범죄집단은 폭력과 공포만으로 지배하는가?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스펙터"와 같이 국가적 규모를 갖춘 범죄집단은 과연 가능할까? 어떤 만화나 영화들을 보면서 가끔 설명이 불충분하더라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도 나는 심각하게 궁리할 때가 있다. 앞서 말한 스펙터같이 국가와 경쟁할 수 있는 범죄집단의 가능성이 그렇고, 영화 "혹성탈출"에 등장하는 유인원 인류가 사용하는 자동소총(혹은 반자동소총)이 과연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문명 수준에서 개발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들이 그렇다(세계 최초의 반자동소총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주력으로 사용한 M1소총이었다).


과연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원숭이들의 문명 수준이 당시 미국의 문명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생각해보면 이런 의문이 나름대로 정당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총 한 자루 만드는 것에도 그에 합당한 기술 수준이란 것이 있으니까. 007 시리즈뿐만 아니라 거대한 조직을 유지하는 폭력집단(유사국가 혹은 국가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은)이 단순히 폭력과 억압을 이용한 공포만으로 국가라는 조직과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을까? 소규모 폭력조직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국가 단위의 폭력구조를 유지하는 일은 구태여 그람시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폭력과 공포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감지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책 "나치 시대의 일상사"는 역사란 "과거의 의미있는 사실만을 기록한다"는 원칙에 따라 그간 의미없음으로 치부되어 왔던 일상의 역사적 진실을 들춘다. 저자는 독일 나치 시대를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주목하여 나치의 인종주의와 같은 중세적 야만성이 선진사회에서 돌출할 수 있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결론삼아 저자의 주장을 미리 말하자면, 이것은 결코 돌출이 아니라 서구의 근대성, 선진 사회가 내세우는 '진보' 안에 내재된 당연한 귀결이었다. 저자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Detlev Peukert)는 독일의 역사가로 '나치 시대 공산당의 저항운동' 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그가 81년에 저작한 것으로 나치 시대의 일상사를 선구적으로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포이케르트의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며, 부제로 되어 있는 세 가지 "순응, 저항, 인종주의"란 맥락 가운데 좌파의 역할은 "저항"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제3공화국의 기억과 제3제국의 기억

평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유럽에서 소비에트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좌파 정당들이 존재했던 독일에서 어떻게 나치즘과 같은 극우파 정당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그의 책은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그런 의문이 모두 해갈된 것은 아니나 상당 부분 도움을 얻게 되었다. 포이케르트는 우선 "순응"이란 측면에서 나치즘이 폭력적인 권력 탈취 방식을 일부(?) 사용한 것은 사실이나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내 중산층과 부르주아지들이 이에 순응했기 때문으로 규정한다.


영국의 웰링턴 장군은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한 뒤  “워털루의 승리는 이튼 교정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을 독일식으로 바꿔보면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승리는 신무기인 후장식 소총의 도입이 아니라 프로이센 교사들의 몽둥이 찜질에 의한 훈육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독일 국민들에게는 1866년부터 일반적이었다. 독일의 민족주의는 모든 면에서 군대식으로 각을 잡은 직각형 인간들을 선호했다. 그들에게 직장에서 빈둥거린다거나 공연히 공적인 장소에서 모나게 행동하는 일탈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사회적 책무라고 여겼다. 저자의 지적은 때때로 우리에게도 뼈아픈 일침이 된다.


제3제국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노인들의 기억 속에 두 가지 업적으로 기억된다. 당시에는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문 앞에 세워둘 수 있었다는 것과, 당시에는 장발과 싸움패는 제국노동봉사단에 끌려갔다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그러한 생각이 당시 유행하던 사형 혹은 가스실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특수한 형태의 테러, 즉 일탈적인 입장 혹은 일탈적인 존재를 수용소에 집어넣고, 죽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곳에 격리시키고 훈련시키는데 테러 방식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히틀러 치하에서는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아도 도둑맞지 않았다는 판에 박힌 좋은 기억이 "절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집시들이 수용소에 수감된 것에 대한 기억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나치 시대의 일상사, 303-304쪽 중에서>


질서를 위한 폭력을 권장하는 세력들

오늘날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있는 제3공화국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독일 제3제국 히틀러에 대한 독일 노인들의 향수는 어딘지 모르게 일탈 행위를 그나마 용납해주는 현재의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이런 판에 박힌 기억은 과거 독재 시대를 미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전 광화문 광장에서 있었던 극우파들과 일부 교회의 목사들이 성조기를 나부끼며 벌였던 시위를 기억하고 있다.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기 전인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 개신교 총감독 디벨리우스가 "포츠담의 날"에 행한 설교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국가사의 새로운 장은 언제나 폭력과 더불어 열립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결정, 새로운 지향, 변화, 전복은 언제나 한 편에 대한 다른 한 편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존망이 걸린 경우, 국가 권력은 안을 향해서든 밖을 향해서든 강력하게 행사되어야 합니다. (...) 국가가 국가질서를 파괴하는 자들, 특히 더럽고 비열한 언어로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신앙을 경멸하는 자들, 그리고 조국을 위해 희생한 목숨을 비방하는 자들에 대해 자신의 직분을 다한다면, 그것은 신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 질서가 수립되면 다시 정의와 사랑이 지배해야 합니다.


그날 광화문에서 있었다는 쿠데타 선동 발언에 버금가는 말이다. 독일 개신교 세력이 모두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독일에서 나치즘이 발호할 수 있었던 근본 배경에는 독일 개신교 세력의 은근한, 때로는 적극적인 지지가 작동한다. 그들은 좌파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리어 나치즘을 선동하고 나섰다. 1933년 초 몇달 동안 독일 내 좌파들에게 행해졌던 가혹한 억압 상황에서 독일의 일반 국민들은 이것을 위협받고 있는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 들였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었다. 좌파에 대한 공포로 반공에 대한 공포를 잠시 잊은 결과 독일 국민은 최악의 전쟁을, 최악의 패배를, 최악의 생존을 감수해야 했다.


독일 제3제국의 신화

오늘날까지 독일 제3제국의 신화는 여전하다. 인터넷상으로도 쉽게 볼 수 있는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나치즘에 대한 이해보다는 그들이 보여준 절도와 형식에 깊이 매료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전쟁 발발 이전의 나치 시대는 부흥과 복지의 시대로 미화된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대공황과 전쟁동안, 전후(제1차 세계대전)의 질식할 듯한 궁핍과의 비교를 통한 것일 뿐이다. 실제 나치가 집권한 뒤인 1930년대의 경제 분위기도 낙관적이진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요컨대 사람들은 경제의 호전 기미만으로 이를 반가워했고, 이를 곧바로 경제호황에 대한 낙관적 기대와 연계시켰지만, 여전히 생필품은 치명적으로 부족했다. 지금 노무현 정부는 그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처해있다. 국가차원에서 보았을 때 경제는 여전히 나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내수경제가 살아나지 않아 실질경제는 불황 속에 처해 있는 현실은 전적으로 언론의 탓이라 할 수는 없어도, 부분적으로는 언론의 부풀리기가 경제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한 가지는 히틀러가 실업문제를 조속히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 제3제국의 현실이 아니라 나치의 선전이란 측면에서만 그러했다. 현실에서 수치와 통계로 드러난 실업자 감소 추세는 매우 느린 속도로 일어나고 있었다. 과거 5.16직후 군사정부가, 1978년 오일쇼크 이후 급증한 실업자 문제를 제5공화국이 해결한 방식은 이미 1930년대 독일에서 실시된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의 임금만을 받고 노동봉사대와 긴급노동대로 결성되어 체제 위신용 건물 건설에 동원되었다. 실업자 수치 자체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실질적인 실업자 감소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실제 독일에서 완전고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1936년 무렵 전시 경제에 접어들어 군수산업이 폭발적인 호황을 누린 뒤부터이다.


다른 하나의 신화는 독일 (나치)관료 집단이 청렴했다는 것인데, 이 역시 실제와는 완전히 다른 사실이다. 공직과 권위를 충분히 획득한 그들은 관료로서 권력과 직위, 특권을 마음대로 전용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과거 비판해 마지 않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공무원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아니 더욱 부패해 있었다. 그럼에도 히틀러 개인에 대한 인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그가 최초의 권력기반으로 삼았던 돌격대를 무자비한 폭력을 통해 해체한 결과로 얻은 것이었다. 초기 나치당의 지도자였던 에른스트 룀과 그의 사조직이라 할 수 있는 돌격대는 나치의 중요한 권력기반이었지만, 권력을 장악해 더이상 사병집단이 필요없어진 히틀러에게 그들은 골칫거리이자 장차 그의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으로 비춰졌다.


히틀러는 재빨리 룀을 제거함으로써 권력기반을 공고히하는 결과를 나았다. 그러나 이것이 독일 국민들에게는 묘하게도 그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한 일로 비춰지기 보다는 독일의 골칫거리가 된 자신의 신뢰하는 수하들인 돌격대를 국민들을 위해 제거한 것으로 보였다. 히틀러는 알기만 한다면 이를 악물고 부패한 자신의 수족을 잘라낼 만큼 결단력있고, 공정한 총통으로 비춰졌고, 실제로 그렇게 선전되었다. 독일 국민들이 전쟁에서 패배하는 그 순간까지도 독일 국민들의 총통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이승만이 모든 실정의 근간이자, 부패의 근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난이 이기붕과 자유당에 집중되었던 것처럼 히틀러는 나치당의 모든 부패와 실정으로부터 격리될 수 있었다. 과연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과 상관없이 집권당만 실책을 거듭할 수 있는가? 우리는 오늘의 현실에도 물어보아야 한다.


새로운 고전의 기미를 엿볼 수 있었던 책...

"나치 시대의 일상사"가 고전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가능하단 생각이 들고, 이미 어느 정도는 고전의 지위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몇 가지 이 책의 단점이랄까, 아쉬움이 남아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독일 내 좌파들의 맥없는 몰락에 대해 저자의 "일상사"적인 분야에 대한 연구는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독일 내부의 문제만으로 독일 좌파의 몰락이 빚어진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이 저자의 주된 연구 분야이므로 저자의 다른 책을 보노라면 더 세세한 지적들이 있을 것이고, 이 책의 주제가 일상사이므로 국제사적인 맥락을 짚기는 어려웠겠으나 당시 독일내 좌파가 나치에 대한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실책(소련은 영국과 프랑스의 대 소련 고립정책을 타개할 방편으로, 나치 독일이 프랑스와 우선적으로 경쟁할 것이란 판단에서 독일 내 공산주의자들의 나치에 대한 저항을 금지시켰고, 독일 좌파는 사분오열되고 만다.), 영국과 프랑스의 오판 등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다는 사실은 아쉽다.


그러나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것은 저자의 단명이다.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살아 있었다면 좋은 연구 업적들을 보다 많이 남겨주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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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 기광서 | 김성보 | 이신철 | 역사문제연구소 | 웅진지식하우스(2004)

출발하여 밤길을 걸어가는데, 구성시를 들어가지 않고 산고지에 집결하여 식사 등을 하는데 찬 돌 위에서 달게 먹으면서도 항상 집 생각에 눈물이 날듯하여 참을 수 없다. 저녁을 먹지도 못하고 출발하는 바, 떠날 당시 찬바람이 죽죽 부는데 눈물이 자연히 나도다. 내 아무리 고향을 찾아갈 날이 있겠지 라고 굳게 각오하고 목적지를 향하였다. 태천시, 자성시는 여전하더니 전부 불태워지고 말았다. 

<1950년 12월 13일 인민군 병사의 일기 - 본문 83쪽>


이 책은 1945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립부터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 현재에 이르는 북한, 북한 사회, 북한의 정치 경제사를 중심으로 알기 쉽게 풀어 쓰고 있는 일종의 역사책이다.  역사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북한학을 공부하고 있는 소장파 학자 3인이 중심이 되어 북한 정부의 탄생부터 성공과 실패, 일반 주민들의 생활상들을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기획되어 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은 1945년 해방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에 이르는 시간들을 다룬다.

 


제2장에서는 한국전쟁의 준비부터 휴전에 이르는 기간의 역사를 다룬다. 제3장에서는 전후 재건과 하나의 정치 체제로 수립되는 북한의 사회주의에 대해, 제4장에서는 재건 이후 북한의 최고권력자로서 그 지위를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김일성과 주체사상의 형성을, 제5장에서는 소위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북한의 독특한 정치체제 형성을 다룬다. 이 시기의 우리식 사회주의란 것은 동서 데탕트 분위기와 중소분쟁 등 사회주의권 내부의 균열을 북한이 어떻게 견뎌냈는가를 다루면서 동시에 북한의 자력갱생 경제 체제가 부딪치는 한계를 함께 다룬다. 제6장에서 다루고 있는 북한은 우리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진 시기의 북한이다.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북한과 그들의 선택에 대해 묻고 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북한 현대사를 관류하는 시대의 흐름을 사진과 그림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정치적 행보와는 상관없이 암암리에 너무나 '잘 생겼다고 소문난' 김일성 주석의 여러 얼굴들을 볼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는 로마 내부의 권력 투쟁이랄 수 있는 마리우스와 술라, 이들의 사상과 지도에 따라 벌어졌던 로마의 내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장에서 매우 중요한 언급 한 가지를 한다. "내전은 짧으면 짧을 수록 좋다"는.....


내전이 그 어떤 전쟁보다도 잔인한 까닭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 마을에서 한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그간 사이좋게 지내던, 혹은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하더라도 서로를 죽일 정도로 증오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서로 무기를 들고 서로를 죽인다. 그것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집단 체벌과 흡사하다. 서로 마주 보게 만든 뒤 같은 급우의 따귀를 올려부치게 한다. 마주 하고 있는 급우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일 수도 있고, 정나미 떨어져 하던 인간일 수도 있고,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때려주고 싶을 만큼 미운 친구는 아니었다. 처음엔 장난스레 한 대 때린다.


그러자 옆에서 구경하던 선생님이 몽둥이로 한 대씩 쥐어박는다. 그러자 맞은 편 녀석이 보다 힘차게 때린다. 맞은 녀석은 다시 보다 힘차게, 보다 힘차게 서로의 귀뺨을 올려부친다. 그 격렬한 귀뺨 치기가 지난 뒤 한동안 이 반 아이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내전이 잔인해지는 까닭, 그것은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한 이에게 당한 배신은 더욱 아프다. 이 책의 91쪽에는 낯익은 피카소의 그림 한 장이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학살"이다. 피카소가 한국전쟁 중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접하고 그렸다는 이 한 장의 그림이 증거하고 있는 것은 전쟁의 잔인함일 것이다. 혹자는 이 그림을 북한에서 일어난 신천학살을 다룬 것이라 분석하기도 한다. 신천학살이란 무엇이었던가? 북한 정부는 현재까지도 신천학살을 미군이 진주하며 일으킨 민간인 학살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군과 국군의 입성 소식을 미리 전해듣고 봉기한 우익청년단들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북한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북한 정부는 어째서 이 신천학살에 대한 진상을 알았을 텐데도 이를 미국의 소행으로 단정해버리고, 이들을 처벌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내전이었기 때문이다. 내전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이루어질 수 없게 만든다. 피가 피를 부르는 보복의 반복. 북한 정부는 이것을 그들 자신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지만 이 사건을 외부의 적, 미국의 소행으로 규정함으로써 전쟁의 상처 속에서 다시 일어나야만 하는 그네들의 상처를 덮어버리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왜곡을 통해 치유한다. 북한으로서도 분단의 무게는 묵직했던 것이다.


한국전쟁은 미국이
"북한은 앞으로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고  호언할만큼 잔인하고 처절했다. 한국전쟁 3년 기간 동안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모든 폭탄양을 능가하는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전쟁은 패전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초강대국이 된 거인 미국을 상대로 싸워 북한 정권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김일성 정권은 이를 통해 1950년대 일어난 두 차례의 중요한 권력투쟁에서 승리했다. 물론 거기엔 우리가 미처 잘 알지 못했던 몇 가지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다. 종종 북한의 정치사를 읽노라면 이것이 공화국의 역사인지, 아니면 고대 로마의 원로원에서 일어나는 정치인지 혹은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왕실 귀족들 사이의 정치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있다. 김일성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 정권에 대한 도전자 처리 등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교과서이면서 동시에 참고서의 형태를 띈다. 개관하는가하면 부분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포인트들을 짚어준다. 그렇다고 우리는 북한을 잘 알게 될 수 있을까?


한반도...

단일 민족의 신화.
동일한 언어와 동일한 문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적대하는 마음의 강도만큼은 세계 그 어떤 국가간의 대립보다도 극심한 증오를 담아 우리는 서로 대치하고 있다. 냉전은 해방 이후 현재까지 반세기에 이르는 동안 밖으로는 남북한 간의 적대적 분단체제로, 안으로는 '국내 냉전(이 용어는 최장집 교수의 것이다)'이라 할 수 있는 보수적인 반공 질서를 통해 더욱 강화되어 왔다. 냉전과 분단체제는 우리 한국 사회의 악이면서 동시에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해 왔다. 마치 "오토모 가츠히로""메모리즈(1995)"에 등장하는 '대포의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매일 포탄을 만들고 대포를 닦고, 네 거리 신호등처럼 일정한 시간이 되면 탄알을 장전하고, 거리를 측정한 뒤 한 방의 포화를 날린다.


이 대포를 처음 이 땅에 들여온 이들이 누구인지도 잊혀지고, 그 대포를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도 잊혀지고, 그 대포가 누굴 겨냥하고 있는지도 잊혀지고, 그저 시간이 되면 울리는 자명종 태엽처럼 재깍이며 사람들은 국민이란 이름으로 태엽 인형처럼 움직인다. 재깍재깍.... 대포를 닦는 사람, 대포를 조이는 사람, 대포알을 만드는 사람, 매일 같이 학교에서는 탄도학을 가르치고, 이 국가의 모든 활동은 오로지 한 방의 포탄을 더 멀리, 더 높이, 더 힘차게 날리기 위해 이루어진다. 모든 생산은, 모든 학문은, 모든 여가는 어떻게 하면 한 방의 포탄을 좀더 잘 날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쓰여야 했다. 대포 도시에서는 누구나 대포를 저주해선 안되었다. 대포의 존재 이유를 묻거나, 저주하는 것은 이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일이 되었다. 국가는 한 방의 대포를 위해 존재했고, 국민은 대포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바쳐야만 했다. 이 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절대적으로 염려하고 있는 것은 바로 대포의 안위였고, 사람들은 그것을 '안보'라 불렀다.


이 대포는 남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처럼 쌍동이인 북한에도 존재한다. 거울 속의 쌍동이가 오른 주먹을 들면 거울 속의 상대방은 왼 주먹을 든다. 거울 속의 쌍동이가 왼 주먹을 날리면 상대방도 마주 닿을 듯 주먹을 날려온다. 그러나 이 주먹은 서로 맞닿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랬다간 거울이 깨져버릴 테니까. 이 둘은 50년 전에 거울 너머로 서로에게 달려들어 피흘리며 싸운 경험이 있다. 누가 이들 사이에 이렇듯 보이는 보이지 않는 거울을 두었는가? 누가 냉전이란 겁나게 반짝이는 살기등등한 거울을 두었는가? 누가 이들로부터 서로를 겁주고 으르렁대도록 만드는 거울을 한 방에 날려줄 것인가?


아쉽게도 이 책은 그런 사실에 대해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다만 거울 너머 저 편의 땅에도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가르쳐 줄 뿐이다. 이 책은 매우 조심스러운 서술들로 일관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포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대포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으나 대포의 존재 자체에서 안위를 느끼기 때문에 그 대포가 결국 아무도 죽이지 못하거나 모두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냉전이 이 국가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과 실천을 가져다 주었는가? 사람들은 모두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러나 먼 북방에서 일어나는 한 오라기의 연기에도 기겁하며 새로운 대포를, 보다 구경이 크고, 보다 멀리 나아가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대포를 만들고, 수입하느라 온 힘을 다 한다. 그에 대해 이의를 달았다간 대포가 만들어낸 거대한 파놉티콘에서 다시 보다 음침하고, 보다 깊숙한 감옥으로 옮겨진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부분에서 가장 미약한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의 가장 강력한 파트너인 남한에 대한 것이다. 가령 북한에서 지난 1950년대 일어났던 두 번의 권력 투쟁에 대해 이 책은 중국의 팽덕회와 소련의 미코얀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고, 헝가리에서 일어난 의거에 대해 다룬다. 하지만 북한의 반쪽 거울인 남한이 어떻게 북한을 궁지로 몰고, 서로의 독재권력이 공고히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꼭 이 책의 한계라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런 일은 남북한 사이를 가로지르는 휴전선이 사라진 뒤에도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북한에 대해 알고, 이해하려는 시도는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로 규정당해 왔다. 권력의 최상층부에 있거나, 정치적으로 탈색된 학문 분야에 있어서만 그것이 부분적으로 허용되어 왔다.


우리는 우리의 반쪽을 너무나 모른다. 너무나 모르지만 정치적 좌파도, 우파도 통일을 주문외우듯 암송한다. 오로지 국민들만이 통일이 우리에게 줄 충격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남한의 일반적인 상식을 갖춘 시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이 남침해올까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네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준비없이 통일되었을 때 북한 사람들이 난민처럼 휴전선을 넘어 남한으로 쏟아져 들어올까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오늘날 북한은 더이상 적대적 존재이기 보다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마치 생판 한 번 본 적 없는 멀고 먼 친척이 어느날 갑자기 일가족을 대동하고 나타나 우리는 혈연이니 먹을 걸 다오. 입을 걸 다오. 나도 같이 좀 살게 해다오. 떼쓰는 것처럼 인식된다. 우리가 과연 진정으로 통일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북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각오를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 책의 저자들도 이 책을 통해 그런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나는 그 첫발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유없이 동상처럼 서 있는 거대한 대포의 그늘에서 이제막 벗어나려는 우리들에게 북한은 멀리 있지 않다. 그들은 우리가 원튼 원치 않든 우리들의 그림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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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 500만년의 역사와 문화
롤랜드 올리버 지음, 배기동 외 옮김 / 북피아(여강) / 2001년 5월


내가 처음 영어사전을 구입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본 단어는
"섹스sex"였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데, 중학교에 입학한 기념으로 막내 삼촌이 직접 서점에 데려가 골라 준 사전이 "혼비영영한사전"이었다. 영어공부를 열심히해야 한다는 다짐 끝에 골라준 사전이었다. 지금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범문사에서 나오던 이 사전은 더이상 출간되지 않는 모양이다. "영한사전"도 아닌 "영영한사전"이 이제 갓 중학교에 입학하던 나에게 과연 적절한 사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어단어를 영어로 우선 풀이한 뒤, 다시 한국어로 풀이하는 형태의 이 사전은 내게 영어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해 접근하는 경로를 열어준 첫 열쇠였다. 상식을 넓히는 방법은 누구에게나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건 사물이든 사건이든, 사람이든 그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걸 의미한다.

호기심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어서 뭔가 새로운 단어 한 가지를 알게 되면 그로부터 무수히 많은 궁금증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백과사전을 클릭해서 하나의 사건을 살피면 최소한 3개 이상의 링크들이 생겨나는 것처럼 어떤 하나의 대상에 대해 파악하는 과정이 단지 그 하나의 대상만으로는 불가능한 것과 같다. 영어사전에서 '블랙black'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대개 '검다'는 의미를 제외하고도, 'black'은 '음산한, 침울한, 화가 난, 험악한, 심사가 고약한, 사악한, 죄악으로 더럽혀진' 등등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의 'black'은 접두사로 사용되거나 관용적 용례까지 살피더라도 'black'이란 단어가 좋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을 찾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화이트white' 의 의미는 '희다'는 의미를 제외하고도 '결백한, 순진한, 오점이 없는, 악의가 없는, 정직한, 공정한, 훌륭한' 등의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 같은 이는 "화이트와 블랙은 색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선(善)과 악(惡), 희망과 절망의 상징이었다."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검은 대륙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피부색이 검고, 우리가 그곳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에서 검다. 우리 말을 우리는 국어라 말한다. 우리 역사를 국사라 말한다. 생각하기에 따라 아무 문제 없는 듯 보이지만, 이것은 우리들의 협소한 세계 인식을 보여주는 한 증빙이다. 우리는 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국사가 아니라 한국사를 배운다. 그리고 그 상대적인 개념으로 외국어, 세계사가 있다고 말해야 옳다. 국어와 국사란 말에는 이미 학문적 객관성을 상실하고 들어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바꿔 미국이란 나라가 자기들 기준으로 태평양을 서해로, 대서양을 동해로 표기하겠다고 나선다면 분명 우리는 코웃음 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도 이스트코스트와 웨스트코스트가 있다. 그리고 태평양도 있고, 대서양도 있다. 동해와 서해, 남해의 개념은 바다를 육지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는 협소한 개념이다. 우리의 바다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가 바뀌어가는 싸움에 우리가 밀리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나는 우리의 세계 인식이 그만큼 협소한 탓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세계화를 부르짖은지 햇수로는 어느새 10년여가 넘어간다. 어떤 이들은 그때의 해프닝을 기억할 것이다. 세계화가 국제화, 지구화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은 당시의 문민정부는 세계화의 영문 표기를 들어 개념도 미처 세우지 못했던 세계화를 다른 개념들과 차별화하려고 시도했었다. 어쨌든 문민정부는 세계화의 개념을 끝끝내 정의하지 못하고 IMF사태를 불러들였다. 오늘날 우리들도 세계화를 국제화나 지구화와는 조금 다른 무엇이지만 하여튼간에 잘 모르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굳이 이 개념들에 차별을 두자면 세계화란 말에는 "우리가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세계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보자"는 선언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게다. 어찌되었든 "세계화"란 단어가 인정투쟁의 과정에서 살아남아 성공리에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해외여행도 자유화되고, 유학생은 물론 단순한 여행목적의 해외방문도 흔해졌다.

그럼에도 아프리카는 아직도 멀고 낯설다. 롤랜드 올리버(Roland Anthony Oliver)의 책 "아프리카"는 부제로 "500만 년의 역사와 문화"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원저서명은 "The African Experience"다. 'experience'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경험(經驗)'이란 말로 체험보다는 간접적, 이지적인 인식의 함축성을 지닌다로 정의되고 있다. 지은이는 런던대학 아프리카사학과 명예교수로 아프리카사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고 한다. 그의 이력 중 이채로운 것은 그가 1948년 당시로서는 최초로 오리엔트, 아프리카사학과 교수에 임명되었다는 것인데, 이 말만 듣고 생각하기엔 1948년 이전엔 유럽, 영국에서는 아프리카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일이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롤랜드 올리버는 이 책의 서문에서 "아프리카의 경험"은 그가 런던대학 교수에서 은퇴한 뒤 4년 동안 아프리카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사로서 집필한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책 한 권에 아프리카 500만년의 역사를 담는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쓰였다는 걸 의미한다.

어떤 의미에서 쉽게 쓸 수 있다는 건, 대상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아프리카를 많이 공부하고, 많이 알고 있다는데는 동의할 수 있어도 과연 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었다. 이 책은 모두 21장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 중 역자 서문에도 등장하고 있듯 제20장의 제목은 '완전노출(full exposure)'이다. 이  책의 기본적 관점은 서양인의 시각에서 발견해 들어가는 혹은 "아프리카가 서구세계에 등장하는 과정으로서" 의 아프리카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구태여 이런 시각을 조목조목 따지고 들면서 그네들의 역사 인식 혹은 이 책의 저자인 롤랜드 올리버 교수의 시각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예를 들어 이런 부분만큼은 지적하고 싶다. 저자는 이 책의 '제10장 주인과 노예'편에서 악명높은 노예무역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축소하려 들거나 책임을 외면하려 드는 인상을 준다.

대서양 해안에서조차 노예무역은 별로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그 무역이 17, 18세기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느냐하는 것에 있다. 이에 대한 짧은 대답은 그것이 아프리카인들 사이의 전쟁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대서양 무역이 절정기에 왔을 때에도 대부분의 노예는 전쟁포로 출신이었으며, 상황을 좌우했던 유럽인은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도처에서 이러한 전쟁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은 유럽인의 출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전쟁의 원인은 주로 현지 사정이라고 하며, 포로를 이송하는 해양무역이 없었더라도 이러한 전쟁은 역시 발생했을 것이라고 한다. <본문 193쪽>

아프리카에서 팔려나간 혹은 롤랜드 올리버 교수의 표현을 빌어 수출된(?) 노예의 수가 1,100만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과연 이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민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 저런 방식의 기술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의 기술은 '나이지리아 내전(비아프라 전쟁)'에 대한 "무엇보다도 나이지리아 내전은 국가 기반 건설을 위한 사건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이 전쟁을 통해 나이지리아 전체의 단결이 크게 고양되었기 때문" 이라는 식의 기술에서도 엿보인다. 나이지리아 내전의 원인에 나이지리아의 비아프라 지역에 있던 석유가 서구의 다국적 석유기업들의 이해관계에 크게 좌우되었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폐지된 뒤, 과거 백인정권과의 참회와 화해의 정책에 대해서는 "이 기적의 많은 부분은 넬슨 만델라의 성격에 돌려져야 할 것이다" 라고 적고 있다. 남아연방국민들의, 흑인들의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아니라 넬슨 만델라의 리더십도 아니고, 넬슨 만델라의 성격이 원인이라니...

이 책에 대해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대륙에 관한 한 그의 모든 지식들을 이 한 권의 책에 품위 있고 이해하기 쉽게 압축한 것" 이라는 평가는 절반만 맞은 것이다. 원문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문장이 품위(refinement)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품위(dignity)가 있어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는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가 지난 2일 MBC 백분토론에서 했다는 발언으로 뜨겁다. 그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일제시대 정신대가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상업적 공창이었고, 역사청산은 먼저 우리들 자신의 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영훈 교수는 경제학부 교수지만 한국경제사를 연구한 역사학자이다. 그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해 한때 사회적 논쟁의 한 가운데 있었다. 나는 앞서 국사, 국어란 표현이 학문적 객관성과 인식의 문제를 협소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훈 교수는 지난(2003년)해 8월 21일 임지현 교수 등이 주도하는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이 주최한 ‘국사 해체를 향하여’라는 이름의 공개토론회에서 '국사해체'론을 주장한 바 있다(이 토론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담은 책이 "휴머니스트"에서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란 제목으로 지난 2004년 3월에 출간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 "국사라는 이름 아래 닫혀진 다양한 (역사적) 측면들을 보는데 '국사'가 큰 문제가 되는 것이며, 이런 뜻에서 내가 말하는 국사해체는 '역사의 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는 측면에 동의한 것이다. 재일동포인 이성시(와세다대) 교수는 "우리에게 국사는 은폐이며,억압이며,배제" 라고 말하기도 했다. 역사를 열린 자세로 논의하자는 주장은 합당하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이란 것을 거칠게 보자면, 우리의 근대화가 일본에 의해서 수행되었고, 일본의 식민지화 과정을 단순히 착취와 수탈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발전과 응전의 시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역사를 어느 시기이든 패배의 역사로만 바라보려는 시각에는 분명히 반대한다. 예를 들어 식민체험에 대해, 우리의 독립에 대해 어떤 이들은 우리의 독립이 자주적으로 성취되지 못하고, 세계 정세의 변화에 따라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것이라는 패배적인 역사인식을 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란 말을 붙이고 싶다. 우리는 전근대적인 봉건사회였다가, 식민지가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저항했고, 그 결과 세계 각국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 이영훈 교수의 주장대로 자본주의의 맹아도 경험했고, 미숙하나마 자체적인 근대화의 추진도 시도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주장대로 학문적인 맥락에서 수긍한다 할지라도 이런 주장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학문적 논의에서의 논리란 것은 주장하는 이의 손을 떠나 논리 그 자체의 추진력을 갖기 때문이다. 만약 이 논리의 어느 일방만을 받아들여 꾸준히 밀고나간다면 그 결과 우리가 경험한 일본 식민지 체험은 앞서 롤랜드 올리버 교수의 말대로 나이지리아 내전이 나이지리아의 국민 통합을 이룩하도록 해줬다는 식의 논리적 귀결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이영훈 교수는 방송에 나와 너무나 손쉽게 "정신대 관련 일본 자료를 보면 (정신대)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으며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한국업소 주인들이 있고, 그 명단이 있으며 일제 징용 11만명의 한국인들 중에서 다수가 군위안소를 다녀왔는데 이들의 반성은 없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의 경제사적 주장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주장이 일면의 작은 사실에만 주목하여 문제의 본말을 전도시켰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정신대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을 찾아보면 없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정신대피해할머니들 중 상당수의 증언은 초기에 그 진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동안엔 그것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일인 줄 알고 나섰다는 분들도 많이 계셨다. 게다가 11만명이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에 동원된 동안 거기에 끌려나간 조선인 중에서 군위안소를 이용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의 주장대로 그런 일부의 문제로 정신대 문제가 자발적인 참여와 공창이란 식의 인식에 다다르게 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그 누구도 처벌할 수가 없다. 5천만 겨레가 모두 죄인인데,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벌 줄 수 있겠나? 그의 논리대로라면 5천만이 여의도광장에 모여 총참회 의식이라도 열어야 하지 않는가?

최근 우리 학계 일각에서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탈민족주의 문제'에 대해 나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학문의 영역에서 일탈하여 사회적 이슈의 자리로 내려오는 것을 경계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임지현 교수 등이 주도하는 "우리안의 파시즘" 논의가 '개인의 성찰' 이란 위치에 있을 때는 위험하지 않으나 이를 넘어 '사회의 성찰' 로 전이될 때, 지극히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듯 보이는 이런 논의들이 도리어 수구보수세력들에게 매우 호의적인 반을 끌어내는 것, 매우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보야 한다. 이는 도덕적 근본주의 자체가 성찰을 타인에게 강제함으로써 파쇼화하고, 지적, 도덕적 폭력으로 진화해가는 내적 동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H.카(Carr)의 고전적 명제 "역사란 무엇인가?"로 돌아가보자. 그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카는 19세기를 지배했던 랑케의 실증사학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그 사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자신의해석에 따라 재구성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정의해보자면, 역사란 단순히 현재와 과거의 대화가 아닌 현재의 역사가가 과거 사실과 나누는 끊임없는 대화란 것이다. 카는 근대역사학의 확립자인 랑케의 주장 "역사가란 자기 자신을 죽이고 과거가 본래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가를 밝히는 것을 그 지상과제로 삼아야 하며, 오직 사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 를 비판하면서, "모든 역사적 판단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실천적 요구이기 이기때문에 모든 역사에는 현대의 역사라는 성격이 부여된다. 서술되는 사건이 아무리 먼 시대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역사가 실제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요구 및 현재의 상황이며, 사건은 다만 그 속에서 메아리 칠 따름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오늘날 많은 대학에서 필독서로 손꼽히고 있는 역사학의 고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난 1980년대 초 금서였다. 이 책이 금서였던 까닭은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인 E.H.카가 역사의 진보성을 주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니체는 말하길 "역사가는 과학적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의 문제를 고뇌하기 위해 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생을 살아가는 지도를 구하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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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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