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 이광주 | 한길아트(2001)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책에 대한 없던 애정이 샘솟거나 서재를 좀더 잘 꾸리게 되진 않을 게다. 지난 2004년 국민 1인당 독서량 6권 내외였다고 한다. 최악의 경기침체니, 불황이니 떠들 때마다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게 되는 곳이 출판사들인 걸 생각해보면, 지난 해 나름대로 선전했다고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실제로 몇몇 메이저 출판사들은 나름대로 매출 증대에 성공했다고 들었다). 이광주 선생의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은 책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교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광주 선생 자신이 "대학사"라는 뛰어난 저작을 남긴 학자이면서 또한 책에 관한 문필가로서 명성을 남긴 인물인 만큼 이 책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하지만 나는 지난 2001년에 나온 책을 최근에야 읽었다.

 

그 이유는 일단 게으름 때문이고, 두 번째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다른 책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를 읽고 다소 실망한 기억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 전체가 날 실망시켰다기 보다는 이 책의 헤드 카피인 양 쓰인 문장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성 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그리고 플로리안은 그 광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모카 커피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가 나의 변방 의식을 부추기며 독서를 방해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이 문장을 약간 비꼬아보면 "네가 우리 반에서 수학 성적이 꼴찌야. 그런데 우리 반이 전교에서 꼴찌거든. 그런데 우리 학교가 우리 도에서 꼴찌야. 그런데 우리 도가 우리나라에서 꼴찌 했거든. 우리나라가 세계 수학 경시대회에서 꼴찌 했어. 그래서 너는 세계 꼴찌야."가 된다. 나로서는 카페 플로리안의 저 문장이 책을 읽는 내내 목에 가시처럼 걸려서 불편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이광주 선생의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을 읽는데 다소 시일이 걸리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이광주 선생의 서구 편향은 계속된다. 그렇다고 이광주 선생의 서구 지향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는 서구 지성사를 중심으로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해온 노(老) 역사학자이다. 당신의 교양과 학식에 어떻게 부인할 수가 있겠나. 이 책에서 서양이 그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당연한 귀결이다. 당신의 전공이 서양인 것이고, 어떤 책이든 책이란 그 사람 자신과 그의 관심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약간의 불만을 끝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은 제목 만큼이나 잘 된 책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매우 흡족하게 읽었음을 고백해야겠다. 책 자체의 만듦새를 놓고 따져도 그렇고, 내용은 두말할 것 없이 잘 된 책이다. 책의 만듦새면에서 구조를 이야기할 때, 이 책은 하드커버(총양장본)에 해당하는 FM격으로 제작되었다. 머리띠(꽃천), 배, 면지놀이, 헛장, 덮개, 책테, 가름끈 무엇하나 부족하지 않으며, 올컬러 4도인쇄에, 용지는 아마도 하이크림계열의 용지를 사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대개 이런 용지는 미술서적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데 그 까닭은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볼만한 도판들을 돋보이게 하고 싶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주제 자체가 책에 대한 헌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은 아닐까 한다. 4X6판형 하드커버 책들을 보는 일이 요새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17,000원이나 하는 책이 문고본 판형이랄 수 있는 4X6판인 건 요근래에 와서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어찌되었든 이만하면 이 책 값이 어째서 17,000원이나 하는지 약간의 설명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그만한 대접을 받을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이 책이 책에 대한 헌사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은 여러 군데에서 등장하지만 그 중 가장 압축적인 대목 한 곳을 고르라면 말라르메의 시 구절 "결국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대목일 텐데 그 상징적인 의미는 둘째로 하고라도 과연 책을 사랑하는 이라면 한 번쯤 젖어봄직한 시구가 아닌가? 이광주 선생은 주로 서구 유럽의 책 이야기로 꾸려나가고 있는데, 당신의 전공과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긴 하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누스 시절의 독서는 모두 묵독이었다는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중세의 책읽기는 모두 소리내 읽는 음독이었고, 묵독은 악마의 소행이라고 비쳐졌다. 묵독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12, 13세기에 이르러서의 일이었다. 이렇듯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은 서구 중세와 근세, 근대와 현대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책의 롤러코스터, 책의 향연을 만끽하도록 해준다.

 

그야말로 독서인들의 독서 취미로부터, 책 자체에 정성을 들인 애서가들, 장서가들의 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말이다. 그들 가운데는 고상한 책벌레로부터 그야말로 엽기적인 책벌레까지 다양한 독서편력과 장서수집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15세기의 어느 독일 귀족은 그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상당수는 훔치고, 강제로 빼앗은 것임을 고백하고 있으며, 어떤 신부는 성직자의 신분으로 책에 미친 나머지 고서점을 열어 진귀한 희귀본들을 탐내어 여러 소장가들을 살해하여 교수형을 받기도 했다는 이야기 역시 책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느낌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독서의 핵심은 몽테뉴의 독서론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매일 많은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산다. 그런데 그들의 학식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그의 사람됨을 알고 싶을 뿐이다." 몽테뉴는 삶과 동떨어진 사유나 학식을 모두 '거짓 학문'으로 비웃었다고 하는데, 세계 최대의 도서관으로 전설적인 명성을 지녔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영혼의 치유소"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하니 인간의 영혼은 인간의 영혼으로만 치유될 수 있는 모양이다.

 

평생을 두고 벗 삼을 수 있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이 있다면 당신의 영혼은 이제 절반쯤은 구원받은 것이라고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은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TAG 이광주,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 김두식 | 교양인(2004)


개인적으로 지난해(2004년) 책을 통해 알게 되고, 만나게 된 저자 혹은 사람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자면 한동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두식 선생을 꼽아야겠다. 해마다 반복되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많은 일이 일어났던 지난 한 해였지만 가장 많은 이들이 사건 1위로 꼽은 것은 대통령 탄핵 사태였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기각처분은 민주주의란 곧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그러나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이란 논리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리자 우리는 헌법을 새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우리 정치권이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논쟁 등 갈등 요소를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을 상실했음을 의미하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내막이야 어찌되었든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과 신행정수도 위헌 판결은 우리에게 법에 의한 통치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만들어준 소중한 정치적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다.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헌법 - 법에 의한 통치에 대한 고민
“헌법의 풍경”은 이런 2004년의 분위기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시의적절한 시기에 출판된 책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한 것처럼 “헌법의 풍경”은 헌법 자체를 문제 삼고 있지는 않다. “헌법의 풍경”은 민주공화국의 기본 틀이 되는 헌법이 만들어 낸 우리 사회의 다양한 풍경들을 때론 원경으로, 때론 클로즈업하듯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우선 이 책은 그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 헌법학 개론서이거나, 우리 헌법을 역사적으로 개괄하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몇 가지 문제의식을 통해 우리가 헌법 혹은 우리가 당연시해 왔던 법에 의한 통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내게 있어선 그 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그와 관련해서는 김두식 선생이 차후에 이와 관련한 좋은 책을 써줄 것으로 믿어 본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미덕은 일반인들 누구나가 알고 있는 상식이면서도 실제 일상사에서는 쉽게 인식하기 어려운 교훈을 풀어주고 있는 점이다. 그 교훈이란
“법이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란 사실, 헌법은 국가라는 괴물을 시민에 의해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 시민사회의 감시 없는 법률(헌법)은 때때로 독재(권위주의) 정부로 흐르며, 법률가, 그들만을 위한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보호되어야 할 시민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일견 당연해 보이나 그간 우리들이 실감하지 못했던 중요한 문제의식들이다. 이 책은 서장을 제외하고 모두 8장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서장 “법학과의 불화”는 저자인 김두식 선생이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군법무관과 검사라는 법조인 양성시스템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탈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 법조계와 법체계, 우리 사회에 대해 어째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는지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서장은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후 다뤄질 다소 딱딱해지기 쉬운 법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 모색의 전 과정을 친근하게 접근해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1장 정답은 없다’에서 김두식 선생은 우리에게 “법은 절대적인 규범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문제의식은 ‘2장 국가란 이름의 괴물’로 이어지며 다시 “국가는 언제나 선인가?”, “괴물의 시대는 갔는가?”와 같은 질문에서 반복된다. 이는 그동안 법은 존재했으나 국민을 위해 보호하는 법치가 아닌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권위주의 정부의 합법성을 가장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법,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가 아닌 국민 위에 군림하는 독재 정부의 국가안보를 빙자한 국가주의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질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법도, 국가와 마찬가지로 절대선,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며 각기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칙이자 상식이지만 그간 국가주의, 권위주의의 무게에 짓눌려온 우리들의 상식을 복원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3장 법률가의 탄생, 4장 똥개 법률가의 시대, 5장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부분은 이 책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는 이유는 다루고 있는 내용이 마치 조선시대 민초들에게 지방 수령의 전횡보다 그 권위에 빌붙어 가렴주구(苛斂誅求)하는 아전의 착취가 더 밀접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법률가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시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우리 사회의 고시 열풍은 과연 대단한 것이다. 요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수의 서울대생들이 전공 불문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대는 물론 전국의 대학들에서 기초학문 연구가 사라진 것은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고시에 청춘을 건 사람들은 비단 학생뿐만이 아니라 청년 실업자,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그 열기가 뜨겁다.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일개 자격증 시험에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투자하는 사회를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현재의 고시제도는 결국 조선시대 과거(科擧)제도와 실시 방식이나 그 결과 발생하는 현상이 똑같다는데 그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법시험 합격’은 곧바로 ‘신분의 수직상승’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과거를 통해 신분제 사회를 온존시키는 방편으로 삼고, 지배 엘리트들의 권력기반을 공고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삼은 것처럼 오늘날 사법시험은 특권 지배 엘리트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그들만의 대한민국’을 형성하는 수단이 되었다. 김두식 선생은 우리에게 새로운 법조문화가 시작되는 분기점으로 1997년과 1998년의 법조비리 사태를 꼽는다.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난마처럼 얽혀있던 법조비리가 하필이면 1997, 98년 무렵에야 터져 나오게 되었을까? 

이것은 정권의 정통성과 관련이 있다. 5.16군사쿠데타, 유신독재, 12.12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은 법조계를 채찍과 당근을 통해 길들여왔고, 법조계는 정경유착이나 권언유착처럼 권법유착 관계를 유지해왔다. 우리는 오랫동안 개혁이란 말을 들어왔지만, 개혁은 여러 곳에서 좌절되는 광경을 보아야 했다. 개혁이 이토록 어려운 까닭은 ‘조직의 논리와 조직의 쓴 맛’때문이다. 저자 자신이 사법고시를 보고, 사법연수원을 거친 경험을 살려 한 명의 법률가가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 ‘3장 법률가의 탄생’은 처음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서” 법조인이 되길 꿈꾼 한 젊은이가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겠다고 생각만 한 사람. 여기 잠들다”(124쪽) 묘비명밖에 남길 수 없게 특권 의식에 길들여지는가를 조목조목 따진다. 이렇게 길들여진 이들은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국가의 충복이 된다. 

국가의 범죄는 절대 권력을 지닌 소수의 독재자들이 야욕과 그들에게 복종하는 다수 봉사자들의 협력에 의해 현실화됩니다. 몇 명의 정신 나간 사람들에 의해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본문 99쪽>

서울 사는 특별시민들은 덜 심각하게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지방사는 사람들은 소위 지역사회란 좁은 울타리를 실감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야 워낙 땅덩이 자체가 좁은 곳이니까 하며 방심했다간 어느 순간 지역사회의 텃세에 희생양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권력이라고 하면 국가권력같이 거대 권력만을 연상하기 쉽지만 개미에겐 어린이의 장난도 생명의 위협이 되는 것을 떠올려 보면 작은 권력도 거대권력 못지않게 잔인하며, 비엘리트적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잔인하기도 하다. 지역사회의 숨통을 죄는 것은 휴먼 네트워크, 소위 인맥에 의한다. 지연은 당연하고, 학연에, 혈연에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마치 인터넷 링크 따라 조금만 가보면 사방 천지에 아는 이투성이인 것과 같다.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조금 있으면 좁은 지역 판에 환하게 전해진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고, 굳이 “헌법의 풍경”에서 김두식 교수가 전관예우나 사법고시 선후배 관계 등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지라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국회에서도 낮에는 서로 잡아먹을 듯이 다투는 여야 정치인들조차 밤에는 형님, 아우님, 선배님, 후배님 해가며 그들만의 네트워크로 든든하게 엮여있다. ‘그들만의 엘리트 공동체’는 공식적인 관계보다 더 끈끈한 힘을 발휘한다. 아니, 그 힘이야말로 실제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교수는 제자의 취업을 위해 학점에 온정주의를 베풀고, 교사는 제자의 대학입학을 돕기 위해 성적에, 시험에 온정을 베푼다. 한 두 번 술 자리에서 만난 사이도 몇 순배 술잔이 돌아가고 나면 유사가족관계를 맺으려 한다.

가족적인 사회는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법조계조차 온정주의, 예외주의, 특별주의의 덫으로 법조인들을 빠뜨린다. 나는 얼마 전 읽은 책에서 MBC 아나운서 손석희 씨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는 방송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만남은 갖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개혁되기 위해서 우리는 좀더 고독해져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저자는 우리 헌법이, 우리 법조계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특권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법률가들이 특별한 시험제도가 아닌 로스쿨에 의해 배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과연 만들어진 적은 있는가?

-‘국가 만들기(state building)’에 있어 헌법은 곧 국가다.

‘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헌법 정신, 7장 말하지 않을 권리, 그 위대한 방패, 8장 잃어버린 헌법,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앞 부분과 달리 헌법의 기본 정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민주주의를 법에 의한 통치 즉, 법치주의라고 규정한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반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말을 바꿔 말하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공화국이란 뜻(헌법 제1조 2항)이다. 그러나 이 말은 오랫동안 그저 말뿐이었다. 좀더 엄밀하게 말해 우리 헌법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건국사와 같다. 

우리는 신생 이라크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오랫동안
"법보다 주먹" 앞서는 독재 시대를 살아왔던 이라크 인들에게 미국은 서구식 민주주의 헌법을 도입(제헌의회구성을 위한)하기 위한 총선을 내년 1월 중에 실시하려고 한다. 그것은 새로운 헌법은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라크인들은 어째서 이에 저항하고 있을까? 이라크인들이 어째서 자유와 평등,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공화국의 수립에 저항하고 있는가 의문을 품고 있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과 헌법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일본의 강압에 의해 식민지가 된 조선의 해방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왔다. 어떤 이들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 치하에서 자주 독립을 위한 준비에 소홀했고, 국제 정세에 둔감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실은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이미 전국인민대표자회의가 열리고, 민주주의적 정부를 즉시 수립할 것과 몇 가지 사안을 의결했다. 주권재민과 국호를 조선민주공화국이라 할 것,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근로인민의 이익을 중심으로 전민족적 행복을 위한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자는 내용이었다. 몽양 여운형과 우사 김규식 선생 같은 이들은 신탁통치를 받아들이고, 이 과정을 통해 한반도에 좌우정치세력이 합작하여 통일 민족 국가 수립을 이룩하도록 힘썼다. 그러나 결과는 각 정파, 정치 세력이 각각의 이해관계로 나뉘어 결국 남북한은 분단국가로 현재에 이른다.

비록 해방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으나 국가수립만큼은 주체적으로(헌법 제정을) 이룩하고 싶은 열망  만큼은 근대화된 것이었다. 그러나 미 군정은 이런 모든 시도를 단속하고, 통제하며 좌우합작을 방해하고, 이간하는 공작을 폈다. 이 과정에서 몽양을 비롯한 좌우합작세력은 좌우 양극단을 아우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정치세력이었으나 미소 양대 냉전세력과 이를 추종하는 각 정파의 이해관계 속에서 몽양 여운형 등의 암살과 더불어 다시는 봉합될 수 없는 길을 향해 나아갔다. 분할하여 통치하라는 제국의 세계 지배 원칙은 이 때에도 그대로 관철되었다. 미국은 패전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되 간접적인 통치방식을 취한다. 전직이냐, 현직이냐는 구분을 제외하곤 미 군정청의 하지 중장과 이라크임시행정처 장관, 제이 가너, 폴 브레머는 사실상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인 셈이다. 

김구를 비롯한 임정 세력은 이승만과 달리 미군정의 헌정구상(단독정부 수립)을 이해하지 못했고, 반대하였으므로 제거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들은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한 뒤의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라크에서 시아파 최고 지도자급에 속하는 성직자들이 희생당하고 있는데, 미국은 이라크를 점령한 뒤 친이란적인 시아파 지도자의 출현을 염려해 왔다. 1947년부터 미 군정청 내부에 헌법기초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헌법제정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 과정에 좌파, 좌우합작파를 비롯해 미국에 협조적이지 않았던 정치세력이 배제되었음은 물론 남한만의 단독 총선에 반대하는 운동은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초대 대한민국 헌법을 만든 이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민주주의를 자각한 이들에 의한 것이 아닌 일제에 친화적인 관료, 지주, 법관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정치세력에 의해 미 군정의 지도 감독 아래 만들어진 것이다.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남한만의 총선거에서 우리들 역시 많은 피를 흘리며 저항했었다. 그렇다면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이해되지 않는가?

사실 김두식 선생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 -
6, 7, 8장의 - 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들, 우리 헌법의 태생에 얽힌 부분을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당시 제헌의회에서 수립한 우리 헌법은 보통선거와 같이 당시 선진국 일부에서도 미처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선진적인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민족의 의지로,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의 열망을 담아 만들어내 지 못한 헌법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수립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처럼 오랜 시간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권리 위에서 잠든, 아니 그 권리를 되찾기 위한 피 흘림의 역사는 계속 되었고, 우리는 지난 해 작지만 우리의 권리, 우리의 헌법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두식 선생은 우리에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싯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라고. 시민사회의 감시 없는 헌법은 독일 바이마르 헌법처럼 히틀러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Book+ing 책과 만나다 -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지음 / 그린비(2002)


book+ing 책과 만나다를 비롯해 올해는 ‘책에 관한 책' 혹은 '책을 소개하고 있는 책' 10여 권을 집중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올해는 인터뷰를 엮은 책도 꽤 많이 나왔는데, 『book+ing 책과 만나다』 역시 어떤 의미에선 책을 주인공으로 한 인터뷰를 엮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가끔 남을 인터뷰한 책들을 읽다보면(직업상의 이유로 나 역시 종종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자리에 따라 나설 기회가 있지만) 인터뷰 내용의 질적인 문제를 떠나 천편일률적이란 생각이 든다.

한 인물을 각기 다른 사람이 인터뷰할 때도 그렇고, 각기 다른 인물을 한 사람이 인터뷰할 때도 그렇고 어째서 인터뷰 글들은 하나 같이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는 걸까.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내가 생각하건데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보다 덜 유명한, 그래서 명성자본이란 측면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보다, 인터뷰 전에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 하더라도 그 방면에 비전문가이거나 문외한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우리들이 제 아무리 스승보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식견에서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그 무식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드는 학생의 무모한 용기와 치기를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공부란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개의 인터뷰 혹은 인터뷰로 엮은 글들은 뒷부분에 가서 "아, 좋은 게 좋은 거죠. 하하, 앞으로도 열심히 좋은 일 많이 해주시길"이라며 마무리 된다. 인터뷰어로 나선 이가 인터뷰이에게 잘 보이는 방식(일종의 면접)으로 마무리되는 인터뷰가 재미있을 리 없다. 그래서 공격적인 인터뷰를 찾아보기란 공격적인 서평 찾아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게 이 책과 무슨 상관인가? 그건 이 책 역시 그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날개에 적힌 필자 소개는 우습게도 개인이 아닌 집단을 필자의 위치에 놓고 있다. 물론 책 날개 하단엔 이 책의 작업에 참여한 고미숙, 고병권, 고봉준, 권보드래 등을 비롯한 필자 18명의 명단을 나열해두고 있지만, 이들 필자들의 프로필을 확인하고 싶다면 모모 사이트에 접속해보라는 설명이 달랑 놓여 있을 뿐이다.

물론 고미숙, 권보드래 등은 책줄이나 읽는다는 사람들 가운데 알만한 이들은 알만큼 유명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책의 저자는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다. 이 집단은 아예 사람 행세를 하고 싶은지 생년월일, 출생지, 출생에 얽힌 사연(일종의 태몽이라고 해야 하나?), 화두, 꿈꾸는 것, 주로 하는 일, 좋아하는 일 등을 소개한다.

참고로 좀더 자세하게 소개하면 "화두: 아는 것은 즐겁다. 즐겁지 않으면 지식이 아니다. 꿈꾸는 것 : 자신의 신체를 극한적으로 실험하는 구도로서의 지식과 저잣거리의 아우성이 끊임없이 접속하는 꼬뮨, 주로 하는 일 : 공부, 세미나, 글쓰기, 강의하기 - 듣기, 제도 밖 교육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지식과 삶을 나누고 있다. 좋아하는 일 : 학력, 성별, 전공, 나이에 상관없이 맞짱 뜨고 엉겨 붙기" 란다. 자기소개만 놓고 보면 적당한 치기와 그에 상응하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책머리에' 쓴 글을 보자.

만약 누군가가 '너희가 사랑하는 책들의 선별 기준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500년 전 한 철학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발분하지 않았는데 저술을 하는 것은 마치 춥지도 않은데 떠는 것과 같고 병도 없는데 신음하는 것과 같다." 이성의 힘으로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욕망으로, 토해내고 싶지만 토해낼 수 없을 만큼 켜켜이 쌓인 분노로, 바로 지금 당신과 더불어 눈물과 웃음의 축제를 벌이고자, 우리는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만약 윗글 그대로의 내용이라면 이들이 낸 이 책은 발분하여 쓴 책, 멈출 수 없는 분노로 토해낸, 이 책을 읽는 나와 더불어 눈물과 웃음의 축제를 벌이기 위해 써낸 책이란 말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신영복 선생의 책 강의의 겸손한 서문이 떠올랐다. 자신만만한 것도 좋다. 자신들이 한 말에 책임을 질 만큼 당돌한 "학력, 성별, 전공, 나이에 상관 없이 맞짱 뜨고 엉겨 붙기"라면, 그렇게 자신들이 대면한 세상의 책, 저자들과의 당당한 겨룸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책의 본문을 읽는 내내 나는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의 화두와 주로 하는 일이 떠올랐다.

"아는 것은 즐겁다. 즐겁지 않으면 지식이 아니다. 주로 하는 일 : 공부."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을 맴도는 말이 있었는데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다. 그렇다고 공부가 즐거운 이들이 부럽다는 말은 아니다. 어쩐지 '책머리에'에 그토록 거창하게 써 논 글의 느낌과 발분이 본문을 넘기면서 점차 시드는 거시기처럼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아서 말이다.
책이 주인공인 책이다 보니 남들에게 권하기 뭐한 책, 자신이 읽었을 때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한 책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란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내용이 좀 빈약하다. 대략 90권 가량의 책을 다루고 있는데, 판권 뒤의 백지까지 포함해서 368쪽이다. 이를 다시 90권으로 나눠보면 책 한 권당 4쪽씩 할애된 꼴이다.

새로운 장이 시작될 때마다 중간에 속표지 한 장씩, 새로운 글이 시작될 때마다 여백을 반쪽씩 할애하고, 본문 중간에 작가 사진 혹은 책과 관련된 도판을 삽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4장. 한 시대의 철책을 뛰어넘은 광인과의 만남"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장의 첫번째 책인 "디디에 에리봉"의 책 "미셸 푸코"를 이야기하고 있는 글 "저기 푸코가 있다"란 글은 239쪽에서 시작하는데, 제목 나오고 3분지 1가량은 여백이고, 글자로 가득찬 부분은 240쪽 하나, 241쪽은 푸코가 앞니를 드러내고 웃는 사진 한 장과 "푸코는 늘 전투의 먼지나 술렁임을 환기하고 있습니다. 사유 자체가 그에게는 하나의 전쟁 기계인 것처럼 보입니다." - 1986년 클레르 파르네와의 대담에서 들뢰즈가 한 말로 뚝딱 한 페이지를 해치워버리고 말았다.

이래서야 "한 시대의 철책을 뛰어넘은 광인과의 만남"은 방금 지나간 것이 뒤통수인지 앞통수인지 알아낼 재간이 없다. 전부하자면 3쪽이지만 실제론 이 글의 원고 매수는 얼핏 짐작으로 보아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6매 가량 되는 글이다.
참고로 "디디에 에리봉"의 책 "미셸 푸코"는 국내에선 "시각과언어"란 출판사에서 상하 분권으로 출간되었으며 상권이 352쪽, 하권이 316쪽의 책이다. 전부 668쪽의 책을 200자 원고지 6매로 압축해 리뷰할 수 있는 능력은 나로서는 매우 부럽다. 이 책의 글 면면에 무슨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지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권의 책에 너무 많은 책과 저자를 담아내려는 욕심이 이 책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사무라이』 - 니토베 이나조 지음 | 양경미 옮김 |  생각의나무(2004)


왜구 혹은 사무라이

"사무라이", 본래 사무라이는 말은 귀족출신의 무사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후대에 이르러 12세기부터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일본정치를 지배한 무사계급에 속한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 이후 사무라이 문화는 왕실문화와는 일정한 차이를 지닌 그들만의 절도를 지닌 문화로 형성되었는데, 무로마치 시대부터는 선불교의 영향을 받아 다도 혹은 꽃꽂이와 같은 일본 고유의 예술을 탄생시키도 한다. 일본하면 저절로 벚꽃과 사무라이를 연상하게 되는 건, 단지 일본인들 스스로 "꽃 중의 꽃은 벚꽃이고, 사람 중의 사람은 사무라이"라고 말하기 때문은 아니다. 조선 시대 이래 "선비" 가 우리 문화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처럼 일본의 문화와 사무라이의 관계 역시 그런 존재다 되어 있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일본과 우리의 오랜 관계를 반드시 떠올릴 필요는 없다. 도리어 그런 선입견이 "사무라이 - 무사도를 통해 본 일본 정신의 뿌리와 그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미 존재하는 양국 관계, 역사를 배제하는 것 또한 니토베 이나조의 "사무라이"를 이해하는데 장애가 된다. 이렇듯 "사무라이"란 존재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일본 문화의 한 측면을 이해하는 일은 우리가 영국의 젠틀맨십, 서구 중세의 기사도 등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복잡한 것이다. 굳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양국의 관계를 살피지 않더라도, 그간 우리에게 일본의 문화는 직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음에도 우리에게 일본은 낯선 문화의 나라이자, 백안시하지 않을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인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일본의 무사는 "사무라이" 이전에 먼저 "왜구"로 다가온다. 고려말 이성계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남해안을 약탈하기 위해 침공한 일본 사무라이들과 전쟁에서 승전하면서 였고, 고려 최무선이 명성을 얻은 것 역시 일본의 함선들을 해상에서 격멸할 수 있는 화포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조선에 이르면 우리는 민족사 최대의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될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 사무라이들의 전투력과 무자비한 약탈과 학살을 연상하게 된다. 그에 비해 서구에서 "사무라이"는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도 살필 수 있는 것처럼 서구에서는 이미 상실해버린 정신, 영국의 젠틀맨, 중세의 기사와 흡사한 존재 혹은 그 이상의 신비로운 자기 절제와 희생, 엄격한 예의범절, 명예를 중시하는 정신 세계를 갖춘 사회 지도 계급으로 비취진다. 그런 인식에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일본의 '부쉬도(무사도)'에 대해 혐오를 보내면서 동시에 일본에 대한 서구의 이런 인식을 부러워한다.



니토베 이나조, 다이쇼 데모크라시

"사무라이 - 무사도를 통해 본 일본 정신의 뿌리와 그 정체성"에서는 저자 "니토베 이나조"에 대한 설명이 너무 간소하게 기술되어 있어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니토베 이나조의 초상이 과거 일본의 5,000엔 권 지폐에 사용되었다는 건 그가 "후쿠자와 유키치" 못지 않게 중요 인물이란 걸 의미한다. 그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 묻고 싶은 건 일본의 지폐에 사용된 위인을 비롯해 다른 나라의 지폐에는 생 떽쥐페리(프랑스)를 비롯해 근현대의 인물이 사용되는 반면에 우리 지폐에는 어째서 근현대 인물이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예를 들어 이승만, 장면, 박정희를 지폐에 초상을 삽입해 사용한다면? 반대로 김구, 여운형, 조봉암을 지폐에 넣어 사용한다면? 문화계 인물로 서정주, 김동리 등을 사용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이들은 분명 우리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지폐에 넣어 사용한다면 "김구" 정도를 제외하고는 십중팔구 사회적 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 근현대사에 굴절이 많았던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일본 지폐에 "도조 히데키"의 초상을 넣거나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초상을 넣는다면 필경 주변 국가들은 물론 일본 국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빚어질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 니토베 이나조의 초상이 지폐에 사용가능한 것은 이들이 그런 논란의 여지가 적은 인물이거나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사망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 "사무라이 - 무사도를 통해 본 일본 정신의 뿌리와 그 정체성" 역시 태평양 전쟁 이전에 저술된 것이다. 그렇다면 니토베 이나조를 살펴보자. 그는 1862년 8월 3일 일본 모리오카번에서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1933년 10월 15일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사망했다. 그가 죽던 1933년 세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히틀러가 독일 수상에 취임(이때만해도 히틀러는 처칠, 루스벨트 등이 모두 칭찬하는 정치지도자였다)했고, 미국에서는 뉴딜 정책이, 일제 식민치하였던 조선에서는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다.

 

이 책의 저자 "니토베 이나조"는 그런 시기에 세상을 등졌다. 그가 죽고 4년만인 1937년 일본은 오랜 계산 끝에 독일, 이탈리아 등과 함께 방공협정을 체결하며 소위 추축국 동맹의 일원이 되었다. 그 다음해인 1938년 조선에선 조선어 교육이 폐지되고, 신사참배 거부운동이 확산되었다. 이해 감옥에선 안토니오 그람시가 사망하고,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완성한다. 니토베 이나조는 도쿄 영어학교를 거쳐 16세 때 기독교도가 되고, 이때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신학자이자 무교회주의, 평화주의자였던 우치무라 간조를 만나 돈독한 관계를 맺는다. 그는 1884년에서 1891년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삿포로 농학교에서 경제학 등을 가르친다. 병으로 교직을 사임한 뒤 요양을 겸한 유럽과 미국 여행 과정(1898-1901)에서 이 책 "사무라이 - 무사도를 통해 본 일본 정신의 뿌리와 그 정체성"을 저술한다.

 

니토베 이나조가 살았던 시대는 비록 러일전쟁, 조선강점 등 일본의 팽창이 가속화되던 시기이긴 했으나 소위 "다이쇼 데모크라시"라 하여 일본이 본격적인 군국주의, 제국주의 길로 들어서기 전 잠시나마 사상의 자유를 누리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이런 시기에 타이완 총독부를 거쳐(이 점 역시 니토베 이나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타이완은 조선과 달리 일본의 점령과 지배를 근대화의 한 과정으로 긍정하는 편인데, 그것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한 뒤 대륙에서 건너 온 국민당 지배를 사실상 식민지배보다 더욱 가혹한 것으로 느낀 탓이다. 그런 타이완의 분위기만을 경험한 니토베 이나조에게 사무라이는 군국주의의 상징이 될 수 없었다) 교토제대 법학부 교수, 도쿄제대의 전임교수가 되면서 최초로 식민정책 강좌를 담당한다.

 

1911년엔 최초의 미일간 교환교수로 미국의 6개 대학에서 강의를 맡았고, 1920년에서 26년까지 국제연맹의 사무차장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했다. 귀국 후 그는 제국학사원 회원, 귀족원 의원 등으로 활동하며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1933년 캐나다에서 개최된 태평양회의의 일본 대표부 위원장으로 참가했다가 급작스런 발병으로 그곳에서 숨진다. 그는 학자이자 교육자, 국제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이었는데, 그의 신념은 스스로 밝히고 있는 이 책의 저술 목적에도 드러나듯 "현대 일본의 보편적 사상이나 습관" 등을 서구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이해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일본의 정신, 동양의 문화와 정신을 서양 문명의 일방적인 수입이 아닌 융화와 교류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었다.

 

사무라이 - 일본의 꽃, 그러나....

"사무라이 - 무사도를 통해 본 일본 정신의 뿌리와 그 정체성"을 통해 니토베 이나조는 열렬한 어조로 서구인들에게 일본의 무사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 뻔한 오리엔탈리즘임을 알면서도 톰 크루즈의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가 묘사하고 있는 일본의 사무라이들, 그들이 경험한 서구 문명과 일본 전통 사이에서의 갈등에 대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일부 이입(그들에게서 이미지만큼은 동학농민군이 연상) 되었던 것처럼 니토베 이나조의 이런 주장들이 전혀 일리가 없거나 궤변은 아니다. 우리의 선비 정신이 소중한 것이라면, 일본의 무사 정신 역시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니토베 이나조의 저술은 때로 매우 놀랍다. 이 놀라움에는 1898년에서 1901년이란 시기에 일본의 지식인들이 도달한 서구문명, 교양에 대한 이해의 수준에서 비롯된다.

 

"나는 어떠한 전제정치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제정치와 봉건정치를 동일시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왕은 국가의 가장 큰 심부름꾼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에 대해 한 법학자가 "이것은 자유주의 발달과정에 있어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소리이다"라고 평한 건 적절한 해석이다. 그런데 우연히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 도호쿠 지역 요네자와의 번주였던 우에스기 요잔도 이와 흡사하게 "국가 인민을 위한 군주는 있어도 군주를 위한 국가 인민은 없다"라고 하였으니, 우리는 그의 말로부터 봉건제가 완전히 무단 정치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문 50쪽>

 

이 단락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는 서구의 계몽군주인 프리드리히 대왕을 끌어내고 뒤이어 일본의 우에스기 요잔을 끌어내 서양과 동양의 정신을 서로 다른 것이 아닌 흡사한 무엇으로 만들어간다. 동시에 그는 전제정치에 대한 부정을 봉건정치에 대한 나름의 긍정을 끌어낸다. 이것은 니토베 이나조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전제정치를, 그것도 "어떠한 전제정치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충격적일 수 있는 발언이다. 그가 이렇게 발언할 수 있는 배경에도 역시 '다이쇼 데모크라시'란 시대 배경이 있다.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라고 불리우는 시기의 일본은 메이지 시대의 숨가쁜 부국강병책(실상 일본에서 메이지 천황 시기는 서구 열강들과 체결한 불평등조약을 해체하고 일본이 서구에 대해서도 평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성장했던 시기이다. 이 당시 일본은 '극동의 헌병'이라고 불렸다.)에 의해 사회적 안정을 찾고, 자본주의도 어느 정도 정착하여 시민계급이 대두하기 시작한다.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짧은 시기 동안 일본의 정치가와 학자들, 시민 계급은 천황제와 민주주의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를 합리적으로 규정하고 조화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현인신(現人神)이라는 천황제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지만 군국주의로 나가는 일본으로서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이에 제동을 걸만한 시민계급도 존재하지 않았다.

 

앞서의 인용이 니토베 이나조가 서구와 일본의 보편적인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한 사례였다면, 다음과 같은 부분은 그가 강조하고 싶어했던 일본만의 특수성, 서구인들이 이해해주기 바라는 일본의 역사에 대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고 강하게 뿌리 내리고 있는 무사도의 영향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무의식적, 또는 암묵적 영향이다. 일본인의 심성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그 관념에 호소하면 이유야 어쨌든 즉시 반응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과 동일한 외국의 도덕관념을 새로운 번역어로 표현할 경우와 옛 무사도의 용어를 끌어들여 표현할 경우, 효과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신앙의 길에서 멀리 벗어난 기독교인이 있었다. 목사의 그 어떤 충고도 그를 타락의 길에서 구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일찍이 주군에게 맹세했던 성실, 즉 충의에 호소하자 그는 신앙에 복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충의'라는 그 한 마디가 미적지근하고 애매한 상태에 처해있던 그의 고귀한 감정을 부활시킨 것이다. 어느 대학에서 한 교수에 대한 불만 때문에 한 무리의 과격한 청년들이 오래도록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총장의 간단한 두 가지 질문을 듣고 그들은 즉시 해산을 결정했다. 총장의 질문은 이러했다. "제군들이 비판하는 그 교수는 과연 가치있는 사람인가? 만일 그렇다면 제군들은 그를 존경하고 학교에 머무르게 해야 하네. 아니면 그는 나약한 사람인가? 만일 그렇다면 쓰러져 있는 사람을 깔아 뭉개는 건 남자다운 일이라 할 수 없지 않는가?" 그 교수의 부족한 학식이 소동의 발단이긴 했지만 그것은 총장이 제시한 도덕적인 문제에 비하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처럼 무사도에 의해 배양된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일본은 위대한 도덕적 혁신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문 175 - 176쪽>

 

니토베 이나조의 이런 인식에 선뜻 동의할 수 있을까? 그는 과거 무사였다가 기독교도가 된 한 인물이 목사의 설득에는 별로 개심의 조짐이 없다고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과거 주군과의 충의에 변화하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니토베 이나조는 이런 사례를 보고 반대로 제도와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근대화된 일본, 일본의 시민이 실제로 정신 깊은 곳은 여전히 과거 봉건 국가의 그런 정신세계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로 반문해 보았어야 할 일이다. 그는 다음의 사례로 일본의 어느 대학에서 빚어진 일을 들고 있다. 실력 없는 한 교수에 대한 총장의 발언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왜곡한다는 점에서 결국 궤변에 불과하다. 문제의 발단과 근본 원인은 실력없는 교수, 즉 자격 없는 자가 지위를 맡아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총장은 그가 나약한 사람, 약자라면 보호해주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학생들에게 본질을 왜곡시켜 버렸다. 더욱 가관인 것은 학생들이 그 총장의 말에 따라 사태를 종결짓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실제 역사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것들
- 풍부한 교양과 지식,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비판 정신이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극우파들은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선을 식민지화하는데 성공하기는 했으나 경제 불황과 불평등의 심화는 일본 사회 안에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극우세력은 "국책에 위배되는 외래 사상"을 배격한다는 명분으로 좌파에 대해 린치를 가했다. 1934년 육군대신 아라키는 수상 사이토 마코토에게 "국책을 해치는 생각을 금하라. 파괴적 단체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라. 국민 총동원을 위한 총단결을 한층 더 강화하라"는 건의를 했다. 그 이후 일본은 모든 '비일본적인'인 것들을 탄압했고, 사이토 수상은 비상시국이라는 명목 아래 국민의 자유를 탄압했다. 이듬해 일본 국회는 "천황과 국가는 일심동체이다. 황금의 꽃병처럼 완전무결한 이 국체(國體)는 3,000년의 빛나는 전통을 가진 것이다"라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이런 분위기 속에 1936년 2월 26일. 과격파 육군 장교와 그들을 따르는 1,400명의 병사들은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들은 도쿄를 점거하고, 재무대신 다카하시 고레키요를 사살하고, 내대신 사이토 마코토에게 47발의 총탄을 난사해 죽인다. 같은 육군 안에서도 온건파에 속했던 장군 와타나베 조타로를 찔러 죽인다. 이들은 곧이어 발표된 포고문을 통해 "우리 나라는 러시아, 중국, 영국, 미국 등과의 전쟁에 직전해 있다"고 선언한다. 반란군은 4일 동안 도쿄 시내를 점거하고 있었다. 천황은 이들 쿠데타군에게 가시 병영으로 돌아갈 것을 명한다. 이후 반란군들은 형식적인 재판 과정을 거쳐 거의 대부분이 군대로 복귀한다.

 

니토베 이나조의 "사무라이"는 일본의 문화, 일본의 정신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존재 중 하나인 "사무라이"를 통해 일본 문화의 기저가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시켜 주는 좋은 책이다. 그는 동서양의 풍부한 사례들을 가다듬고, 밝혀 일본 정신을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했다. 그의 책에 서술하고 있는 것들을 거짓이나 곡학아세한 것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아직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니토베 이나조의 지식인됨을 비판하는데 별다른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와 같은 동향인 모리오카 출신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9월 밤의 불평"이란 시를 통해 "세계 지도 위 이웃의 조선 나라/ 검디 검도록/ 먹칠하여 가면서 가을 바람 듣는다"라고 노래하며 조선 강점을 비판한 것, 그와 돈독한 신의를 지녔던 우치무라 간조가 이에 대해 "일본은 영토를 넓힘으로써 영혼을 병들게 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해야 했다.

 

니토베 이나조가 그토록 풍부한 지식과 교양을 통해 밝히고 싶어했던 일본의 정신 "사무라이"는 이후 "사무라이 솔져"가 되어 동아시아 전역을 그들의 군홧발 아래 두고, 남경대학살과 같은 민간인 학살, 군위안부, 포로에 대한 잔학 행위 등을 벌인다. 니토베 이나조가 일본인으로 일본의 정신을 서구에 알리고, 내외에 이를 주장하고 싶어한 마음이야 우리도 충심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그는 지식인으로서 이런 정신이 지닌 위험성도 함께 알렸어야 한다. 그렇기에 지식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양이나 지식 이전에 바로 비판 정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 이 책은 현재 생각의 나무에서 일본의 무사도란 제목으로 재출간되어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벌거벗은 여자 - 데스몬드 모리스 |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2004)


영국 최초의 미술학과 교수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은 29세에 결혼했다. 그와 그의 아내는 당시 관습에 따라 상당 기간의 연애 기간을 거쳐(약혼을 포함해서) 결혼한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러스킨은 미술에 상당히 조예가 깊어 고대의 대리석 조각과 회화 등을 통해 여성의 신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성의 벗은 몸에 대해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심미적 관점에서 여성의 육체를 즐길 줄 알았다. 러스킨의 아내는 결혼 얼마 뒤 남편과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이유는 남편인 러스킨이 섹스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을 뿐더러 그 자신과 관계를 갖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관계만 갖지 않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멀리 하려 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결국 러스킨의 아내는 신체검사를 받아 자신이 아직 처녀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결혼을 무효로 만들었다.

>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 런던의 부유한 포도주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캘빈주의자인 모친의 엄격하고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부친을 따라 유럽 여러 곳을 여행하여 미술과 문학에 대한 취미를 길렀고 그림을 배웠다. 부친의 넓은 문학적 취미와 낭만파 시인의 작품, 모친의 교육에서 성서를 접하면서 그의 문학적 경향이 굳어져갔다. 처음에는 목사가 되려고 하였으나, 옥스퍼드대학 재학 중에 이 뜻을 버리고, 졸업한 이듬해인 1843년 낭만파의 풍경화가인 J.터너를 변호하기 위하여 쓴 《근대 화가론》(5권, 1843∼1860)의 제1권을 익명으로 내어 예술미의 순수감상을 주장하고 '예술의 기초는 민족 및 개인의 성실성과 도의에 있다'는 자신의 미술원리를 구축해 나갔다.

러스킨은 어째서 아내와 관계를 갖지 않았을까? 사실, 러스킨의 일화는 널리 알려진 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아내의 사타구니에 난 털(음모)때문이었다. 고대의 대리석 조각상을 통해 여성의 몸을 심미적으로 관찰해온 러스킨이었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으로는 상류층 남녀는 혼전관계를 맺지 않았고, 그 자신은 여성과의 섹스에 대해 완전한 무지에 가까왔다. 그로서는 사랑스런 아내의 몸, 가장 아름다워야 할 곳에 남자처럼 숭숭 솟아오른 음모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결국 러스킨은 이런 사실을 아내에게 고백했고 이혼당했다.


<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
영국 체셔 테어스베리에서 성공회 사제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즈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다. 럭비학교에서 1951년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 진학하여 수학, 신학, 문학을 공부하였으며, 훗날 모교의 수학 교수를 지냈다. 그는 성직자의 자격을 얻었음에도 내성적인 성격과 말더듬이 때문에 평생 설교단에 서지 않았다. 그의 성격은 괴팍했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엄격한 규칙으로 정한 일상을 고집스럽게 반복했으며 이를 일기에 꼼꼼하게 남겼다. 모든 일상을 기록하여 편지로 주고받았는데 약 9만 9천통의 편지를 보관하였다. 그는 글을 쓰면서 루이스 캐럴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우리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루이스 캐럴(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은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세 명의 어린 소녀들을 초대하여 한여름의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그 중 한 명인 '앨리스 리델'은 일곱 살이었다. 청년 도지슨은 옥스퍼드의 수학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도지슨이 어린 앨리스에게 유아성학대의 범죄를 저질렀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성을 극도로 혐오하던 사람에 속했으므로... 그는 여성에게 키스 이외에는 그 어떤 성적인 접촉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가 키스했던 여성은 대체로 열두 살이었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어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도지슨은 사춘기 이전의 나이에 있는 어린 소녀들을 편집적으로 사랑했다. 도지슨에게 찾아온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도지슨은 상급자의 딸인 앨리스 리델을 사랑했다. 그는 앨리스가 다섯 살에서 열한 살때까지는 늘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이웃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도지슨은 그 소녀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12살 밖에 안 된 어린 소녀인 앨리스 리델에게 청혼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고, 일설에는 앨리스의 어머니가 도지슨이 앨리스에게 보낸 모든 편지를 불태우고, 앨리스의 일기장에서도 도지슨과 관련된 모든 페이지를 찾아 찢어냈다고 한다. 이들의 관계에서 영감을 얻어 나보코프가 소설
"롤리타" 를 집필했다는 이야기 역시 이들의 이야기만큼 유명하다. 이것은 여성의 성기 일부를 가리고 있는 음모가 남성들에게 어떤 인상과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간략한 일화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스킨과 같은 엄숙한 금욕주의자(?)에게 여성의 음모가 미친 영향과 거의 같은 이유로 루이스 캐럴에겐 여성의 음모가 영향을 미쳤다.


여성 자신도 자신의 신체에서 2차 성징의 하나로 자라나는 음모에 대해 대부분 혐오의 감정을 갖는다고 한다. 물론, 남성인 나는 잘 알 수 없으나 나와 애 주변의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남성 성기 주변에서 음모가 자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와 흡사한 혐오와 자부심이 함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성기 주변에 자라나는 음모는 음란한 느낌과 함께 사자의 갈기와 같이 힘과 성장을 의미하는 자부심을 품게 해준다

사춘기에 들어선 영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 진입 후 소년들과 달리 소녀들은 거미를 싫어하는 비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음모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14세 쯤에는 이 비율이 더욱 증가해 거미를 싫어하는 소녀의 비율이 소년의 두 배로 껑충 뛴다.

언뜻 보기에 위의 연구 결과가 음모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의아해 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왜 그렇게 거미를 싫어하느냐는 질문에 소녀들이 한결같이 거미가 '역겹고 털로 뒤덮인'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점이다.  <"19장 _ 여성의 음모" 중 333쪽>

어찌되었든 독실한 종교인과 진보적 자유주의자 모두 자연 그대로의 여성 음모가 매력적이라 생각한 것처럼, 음모 제거를 찬성하는 부류에도 금욕주의자와 쾌락주의자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이 두 사람의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여성의 신체에 대한 남성들의 그릇된(?) 혹은 본능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즉, 여성의 몸은 아무런 이유없이 오해받고 있으며, 여성의 음모가 생리적으로는 그저 성장의 표징임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이유는 의견이 제각각이긴 하지만) 남성들은 때로 각자의 성적 취향에 따라 여성의 음부를 제멋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신체는 오해받고 있다는 것이 데즈몬드 모리스가 이 책 "벌거벗은 여자"를 집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여자 몸에 대한 연구"이다. 원래의 책에서도 부제가 그리 붙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 책을 읽다보면 부제가 여러 이유로 적당하단 생각을 하게 된다. 첫째는 앞서 러스킨과 도지슨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우리가 여성의 몸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연구가 필요하단 것이고, 둘째는 저 부제가 아무런 꾸밈없이 이 책의 직선적이고, 어느 부분에서는 고지식해보이기 까지 하는 서술 방법에 합당하다는 것이다(데즈몬드 모리스의 이전 책들 가령 "털없는 원숭이"나 "피플 워칭" 과 같은 책들, 특히나 "털없는 원숭이"는 영국식 블랙유머가 적당히 가미된 산문 문체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 책 "벌거벗은 여자"는 상대적으로 건조해 보인다).

이 책 "벌거벗은 여자"는 모두 23장의 부분으로 나뉘어 여성의 신체를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다. 제1장 '진화'로부터 시작해서 제23장 '여자의 발'에 이르기 까지 저자 데즈몬드 모리스는 여성의 신체를 그 특유의 시선으로 샅샅이 훑어간다. 이때 데즈몬드 모리스 특유의 시선은 여러모로 편리하다. 이전의 연구서에서도 그러했듯 그는 인간을 인간이기 이전에 지구상에서 진화해 살아남은 독특한 영장류의 일종으로 연구한 것처럼, 여성을 그런 영장류의 암컷으로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편리하게 보이는 이유는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물신화한다는 식의 여성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변명할 여지가 생기는 측면 때문이다. 나쁜 의미로 보자면 이 책이 여자의 몸은 보여줄지 몰라도, 여성의 몸을 보여주지는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종종 과학이란 말로 혹은 객관화한다는 뜻에서 자신은 어떤 주의나 주장으로부터 상대적인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이 객관적인 사실을 보여준다고 해서 이 책이 정치적으로도 올바르다고 할 수 없는 측면을 우리는 알아두어야 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여성의 신체를 해부학적인 방식으로 시작해서 사회적인 방식, 문화인류학적 방식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연구하고 있다. 데즈몬드 모리스와 이 책의 저자들이 구태여 '여성'이란 표현을 피하고, '여자'라고 표기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특별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제14장 '여자의 가슴' 편이었다. 프랑스의 마지막 국왕 루이 16세의 악명높은 비운의 황후 마리 앙트와네트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한다면
(앞서 루이스 캐럴과 지금의 이 일화는 이 책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의 유방이 현재까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마리 앙트와네트의 유방이 아니라 그녀의 유방에 석고를 대고 본을 떠서 만든 황금잔이 전시되고 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18세기 유럽을 뜨겁게 달궜던 것은 계몽주의 철학이었다. 그 중에서도 루소의 영향력은 참으로 막강했는데, 당시 귀족 출신의 부인이라면 누구도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직접 젖을 먹여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루소의 "에밀"을 통해 수유는 비로소 귀족사회에서도 수용될 수 있었고, 이 논리를 확장시켜 국가의 아버지, 어머니로 자부한 마리 앙트와네트는 자신의 유방을 본떠 만든 도자기 잔에 우유를 담아 따라주는 행사를 치뤘다. 이런 국가적 의례를 통해 마리 앙트와네트의 유방은 루이16세의 유방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유방, 프랑스 국민의 유방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종종 여성의 유방 혹은 수유 행위는 국가적 관심사가 되곤 한다. 그것은 데즈몬드 모리스가 여성의 신체를 아무리 여자의 신체로 혹은 영장류 중 인간의 암컷으로 객관화시키려 할지라도 사회적인 시각에서 여성의 몸은 단순히 한 개인의 신체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관리해야 할 신체, 어머니의 신체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신체는 종종 이중의 처벌 속에 놓인다. 단적인 사례가 여성의 수유행위이다. 수유행위는 국가 단위에서 미래 국민들의 보건과 건강을 위해 권장되는 사안이면서 사회적으로 엄격한 금기였다. 1975년 미국 여성 세 명이 마이애미의 한 공원에서 가슴을 내놓고 젖을 먹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죄목은 '부적절한 노출'이었다. 여성의 수유행위는 국가적으로 권장되는 일이면서 동시에 처벌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후 이런 체포관행에 대한 반대가 늘어나면서 오늘날 대부분의 북미지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행해지는 모유 수유가 합법으로 인정받는다. 

데스몬드 모리스의 책들은 분명 우리에게 여성의 신체 혹은 우리들 지구상에 살고 있는 특이한 영장류인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사실은 에드워드 윌슨의 시각을 계승한 듯 보이는). 데스몬드 모리스가 저자 서문에서 "이 책을 쓰면서 여자 몸의 복잡한 원리와 신비를 모두 깨달을 수 있었다"고 자신있게 밝히고 있는 대로 여자 몸에 대한 복잡한 원리와 신비를 모두 깨달았던 것은 아니다. 그것을 최소한 '여자'라고 국한시키더라도 나는 저자의 이런 자신만만함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저자가 인간을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해서 지상을 지배하는 강자로서의 영장류로 인간을 파악하여 보여주는 시선은 분명 새롭고,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들 자신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해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people이면서 동시에 Human이고, sex로서의 여성이 있으면, gender로서의 여성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의미에서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온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저자의 말대로 여자의 모든 것은 아니며, 더더군다나 여성의 모든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여성의 음모가, 여성의 유방이 한 가지 의미망으로 포착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책  -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ㅣ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3
크리스티아네 취른트 지음, 조우호 옮김 / 들녘(코기토) / 2003년 10월

 

"책이 책을 말하다" 책에 관한 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책에 관한 책들을 분류해보자면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책에 대한 책들이란 대개 책을 만드는 것에 대한 책, 책을 둘러싸고 있는 저자들에 대한 책, 아니면 책 그 자체에 대한 책을 말할 것이다. 책이란 게 대관절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대하는가? 아마 책은 세상 그 자체일 것이다. 누구나 인생은 한 번 만 산다. 천 번을 다시 태어나는 고양이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전의 기억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만큼 그 고양이도 단 한 번의 일생을 사는 것과 진배없다. 만년을 사는 흡혈귀라도 그 기억이 이어지는 동안만 살아있는 것이다. 어떤 인간도 세계 안에 있다. 하이데거는 그것을 "세계-내-존재(In der welt sein)"라고 말한다.

 

어떤 인간도 그가 경험하고 익히고 배운 세상 속에 존재한다. 종종 나는 왜 누구의 자식으로, 나는 왜 이 나라에, 나는 왜 이 시간에 태어났는가를 후회한다. 그러나 위의 반문들은 의미가 없다. 지금 이대로의 나는 지금 이대로의 시공간 속에서만 '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시공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그 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란 천재 역시 르네상스의 그 시기에서만 의미를 얻으며, 단테도 그 시공간 속에서만 의미를 얻는다는 걸 뜻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이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한 생명 개체로서 단테의 시간, 다빈치의 시간은 오래전에 끝났으나 그들이 남겨 논 유산은 책이라는 물건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불멸을 얻는다는 의미는 어쩌면 그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곧 누군가가 속해있는 세상의 끝이면서 동시에 다른 세상으로 초월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출판사에서 기획한 것인지, 아니면 이 책의 편집부에서 내보낸 보도자료를 따른 것인지 이 책의 소개글에 의하면 이 "책-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은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인문학 서적으론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책 "교양"의 두 번째 권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데, "교양"의 저자인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이 책의 '추천의 말'을 썼고,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티아네 취른트"가 저자의 글에서 다시 "디트리히 슈바니츠"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한 것으로 보아서 진위 여부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책이 "교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을 읽고 독후감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때 무슨 까닭에서인지 - 아마도 그가 말하는 교양이란 것이 철저히 서양적인 의미에서의 교양이었던 탓에 - 점수를 매우 박하게 주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다시 읽고 평점을 매긴다고 생각하면 너무 박했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교양"에 점수를 박하게 준 것에 대해서는 별로 후회가 없고, 이 책 "책 -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에 대해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것과 상관없이 말이다. 두 책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길래 나는 앞서의 책에는 박한 점수를 주고, 이 책에는 후한 점수를 주려는 걸까?

 

이 책의 저자 크리스티아네 취른트는 1965년생으로 독일에서 영문학, 예술사, 독문학을 공부한 인물이다. 일단 영문학과 독문학을 공부하고, 거기에 예술사를 전공했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만약 이 책이 서양의 독서(교양)에 대한 체계를 잡기 위한 것이라면 일단 저자의 예술사 전공은 점수를 얻을 법한 대목이다. 게다가 이 책의 부제가 일견 교만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이란 표현 역시 나로서는 점수를 깍고 싶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점수를 깍기는 커녕 수긍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부제가 지닌 역설을 긍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란 곧 "책"을 수식하는 말이 된다. 이 책은 세상을 양적으로 알려주려고 덤비는 책이 아니며, 이 책의 저자는 당연하게도 자신이 지은 책 한 권을 가지고 세상을 다 알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나 겸손하게 써내려간다. 책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디딤돌이고, 그런 디딤돌 중에서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 될 법한 책들이 있는 법이다.

 

취른트는 "세계, 사랑, 정치, 성, 경제, 여성, 문명, 정신, 셰익스피어, 현대, 통속소설, 컬트문학, 유토피아 : 사이버 세계, 학교 고전, 아동도서" 등 모두 14개의 항목으로 책들을 소개한다. 이 14개의 항목은 백과사전식의 구분법도 아니고, 도서관식 구분법도 아닌, 취른트만의 구분법이다. 이 14개의 항목 중에서 셰익스피어가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게다가 저자 소개에 따르면 취른트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이미 한 권의 책을 쓴 적이 있다. 즉,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책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개에 그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다른 저자라면 하나로 묶었을 법한 성과 여성이 각기 다른 별도의 장에서 다뤄지고, 학교 고전과 아동도서가 우리가(사람이라면) 읽어야 할 모든 것 안에 포함된다. 이 책은 지극히 사적인 책 읽기에 대한 책이며, 동시에 매우 문학적으로 쓰인 책이다.

 

취른트의 이 책은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책 "교양"과 달리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여러 권의 책을 다루면서 쉽게 빠지게 되는 유혹 -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해보고자 하는 - 으로부터 자유롭게 쓰였다. 이 책을 읽으며 하나의 체계를 상상하기 쉽지만 이 책은 그런 류의 것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사적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이 책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읽어나갔는지 함께 따라가볼 수 있는 경험을 준다. 이 책은 보편적인 고전을 다루고 있으나 그것을 분석하여 우리 앞에 제시하는 방식은 취른트만의 것이 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에 내가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다.

 

취른트가 "사랑"편에 다루고 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자. 저자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서두를 시작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실제로 사랑했을까?"라는 첫 문장 이후 취른트는 수백년 동안 서양의 시인과 예술가, 작곡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이 이야기가 어째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쉽사리 이해되기 어려운지 설명해준다. "사람들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여기서 묘사된 격정과 사랑에 대한 관념이 오늘날 우리들이 이해하는 사랑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고통이고 포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은 죽음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이 두 사람은 구태여 정절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동안에도 정절을 스스로 유지하는 것이다. 왜 이 두 사람은 숲에서 사는 동안 구태여 남편의 검을 그들의 침대 사이에 두고 고통 속에 번민하면서도 정절을 유지한 것일까?

 

취른트는 그 이유에 대해 이들의 사랑은 고통이며, 그 사랑은 수동적으로 참는 행위로 죽음과 흡사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죽음도 고통이고, 수동적으로 찾아오는 행위란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이 찾아오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사랑의 미약은 그것이 운명적인 힘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의 미약을 먹듯, 불시에 찾아드는 사랑을 거부할 수 없다. 사랑이란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경험하는 어떤 것이다. 스스로는 책임질 수 없는.... 취른트의 책에 대한 글들이 대부분 그렇다. 이렇게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든다. 취른트는 이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타이타닉"을 통해 다시 읽어낸다. 그것은 고전이 어떻게 현재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책에 관한 책이면서 책에 관한 책이 아니다. 책이 곧 세상이란 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책보다는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종종 책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주눅들게 된다. 어떤 책들은 - 서구의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 우리나라에 미처 번역되지 않은 책이거나 번역된 책이라 할지라도 막상 읽으려고 하다보면 책 자체의 묵직함에 질려버리거나 이것도 오늘날 무슨 소용이 있을까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취른트가 소개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일부도 예외없이 그런 한계 속에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책들을 미처 읽지 못했다고 해서 이 책을 읽는데 어렵거나 조바심 칠만한 내용은 거의 없다. 이 책은 그런 책들을 설사 읽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읽어내는데 거의 전혀라고 할 만큼 지장을 주지 않게 쓰여졌기 때문이다.

 

책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책들을 읽어보았으나 이 책만큼 훌륭하게 그 임무를 다한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풍부한 사례들과 전문적이기 때문에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식견, 그리고 그것을 잘 엮어낼 수 있는 문장, 다방면으로 넓은 이야기들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깊이를 잃지 않는 전문성 등을 이 책은 고르게 갖추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대해서 만큼은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고전들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으나 아낌없이 별 다섯을 줄 수 있다. 어느 한 인간이 평생을 두고 읽어낸 세상에 대해 자신만의 시각을 곁들여 이렇게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나는 아낌없는 경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이 언급하고 있는 책 제목에 미리 주눅만 들지 않는다면 서양 문화와 교양에 대한 대단히 훌륭한 에세이들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1~5  |  최성일 | 출판사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이 책의 저자 최성일 씨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출판평론가이다. 몇 사람 안되니까 그 희소성만으로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무엇보다 그의 고집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이다. 클래식음악 애호가들의 수준이 높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때로 어느 음반의 어느 연주가 보다 수준이 높고 진정한 명반인가를 가리기 위해 수일 밤낮에 걸쳐 토론 벌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주도(酒道)에 층위가 있는 것처럼 애호가에도 층위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독서에 그런 층위를 부여하는 것은 때로 우스운 일이다. 그 까닭은 독서라는 것 자체가 감성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이성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고, 그 대상 범위가 음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넓기 때문이다.

그가 1967년생이니까 나보다 불과 3살이 많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출판평론가 최성일 씨와 두어 차례 실제 만남을 가진 적이 있고, 비교적 단순하지만 서로의 입장이 뒤바뀐 관계를 맺은 적도 있다. 처음 그와 관계를 맺게 된 것은 내가 몸담고 있는 잡지의 청탁자와 필자의 관계였다. 그리고 두번째 만남에서는 그가 청탁자이고 내가 필자의 역할을 했다. 그 무렵 그는 <출판저널>의 기자로 일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다음번엔 내가 몸담은 잡지의 고정 필자로 그를 선정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에 대한 객관적인 독후감을 쓰기 어려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최소한 이번의 경우엔 그런 서평을 쓰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는 남들보다 다소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다. 그런 이유로 대학에선 동기들에게 형이나 오빠로 불리우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가끔 동기들에게 어떤 시인의 시집부터 읽는 것이 좋겠는가 하는 조언을 구하는 일을 겪곤 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대학 시절의 용돈이란 빤한 것이고, 내가 다니던 학과는 타학과에 비해 많은 독서를 필요로 했다. 그러니 한정된 금액으로 헤매지 않고 좋은 시인, 혹은 좋은 작가의 좋은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이야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들에게 늘 야박하게 굴었다. 책이란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 가장 좋다는 다소 우둔하기 까지 한 독서관을 가진 탓도 있었을 것이고, 그들이 저 인간은 나보다 독서 체험이 풍부할 거야란 선입견이 작용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의 내가 그네들에게 뭔가를 추천해도 좋을 만큼 더 많은 독서를 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힘들여 얻어낸 얄팍한 경험이나마 그네들에게 손쉽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지금이나 그때나 그런 점에 있어서는 그런 계산 속 때문은 아니라고 자부하고 싶지만). 어쨌든 그런 것을 물어온 친구들에게 나는 별로 도움이 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많이 헤매라, 그러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만 되풀이 해주었을 뿐 나는 손쉽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 무렵 알게 된 나와 세 살차이의 동기는 "내가 형 나이가 되면 형보다 더 많은 책을 읽어서 형의 야코를 죽여 줄 거야."라고 말했다. 그 친구에게 다시 메일을 받은 것이 몇 해전의 일이다. "지금 나는 그 때 형의 나이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형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해와서 혼자 웃은 적이 있다.

책을 읽는 독서 체험이란 결국 공유할 수 없는 체험이다.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일이란 얼마나 손쉬운가? 우리들은 실제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미 영화에 대한 수많은 정보들에 노출된다. 그런 까닭에 막상 영화를 보기도 전부터 영화에 대해 질려버리곤 한다. 하지만 독서란 그와 같을 수 없는 체험이다. 일단 독후감을 읽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영화 읽기 보다 훨씬 섬세한 문자의 결을 헤짚게 되고, 자기만의 문장을 찾아내고 그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후감은 단순히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줄거리를 말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읽기에 따라 독후감 만큼 지루한 일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독서란 피라밋을 쌓는 일에 비견될 만하다. 가령 프로이트를 읽지 않고서는 제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할지라도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이해할 수 없다. 카를 마르크스를 읽지 않고서는 안토니오 그람시와 로자 룩셈부르크의 저서가 온전히 이해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 이들을 읽지 않고서 문학 작품을 접하는 것 역시 허전한 짓일 뿐이다. 그것은 구약성서를 읽지 않은 채 유태인을 이해하겠다고 덤비는 것과 같다.
 
지금은 입시 제도가 많이 변해서 과거 우리가 학창시절에 줄줄이 외워대던 시인과 작가의 작품과는 다른 작품들이 교과서에 실려 있고, 보다 폭 넓은 독서체험을 요구하는 시험문제들이 출제된다. 가끔 나이어린 사촌동생들의 문학교과서와 참고서를 들춰보다가 나는 김수영과 김지하, 정희성 시인의 이름을 발견하곤 혼자 웃는다. 한동안 우리들은 그들의 시집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상이 불온한 인물로 오해받곤 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경험은 종종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유명 여가수에 의해 쇼프로그램에서 불리워지는 것만큼 이질적인 체험이다. 어쨌든 이런 변화에 발맟추기 위해 참고서 회사들은 어린 학생들의 부족한 독서체험을 보충하는 다양한 출판물들을 상업적으로 출판하고 있다. 대학 시절의 나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문의해왔던 그네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책들이 지금은 쎄고 널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류의 읽기 쉽게 간추려 논
"고교생이 읽어야 할 101개의 국내 단편 명작"이나 "사상" 시리즈와 같은 책들을 좋아하지 않으며, 당연하게도 그런 류의 책들이 실제 독서 체험을 통해 얻어져야 할 당연한 경험들을 가로챈다고 생각한다. 가령,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고전 소설들을 원고지 50매 내외로 간추린 다이제스트를 읽는다면 이건 명작 고전을 읽는 훌륭한 독서체험이 아니다. 그건 독서체험을 빙자한 날치기 범죄 행위를 먼저 배우는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이 경험이 도움이 되어 훗날 명작 고전을 읽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겠으나 대개의 경우엔 다이제스트를 읽은 뒤 골치아픈 고전의 엑기스를 다 체험한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그것은 번역물인 책의 경우 완역인가 아닌가? 일어중역인가 아닌가? 와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실례로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여행기>는 누구나 다 읽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이 책이 국내에 완역된 것은 지난 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이전에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이 책이 거인국과 소인국 이야기밖에 없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최성일 씨의 이 책 역시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 해외 사상가 70명과의 즐거운 만남> 역시 그런 류의 손쉬운 다이제스트 북으로 짐작하기 쉽다. 물론 이 책도 그런 혐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그런 류의 책들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유는 이 책이 선정한 70명의 사상가들에 공감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그 자체로서 이들 사상가의 입장과 이론을 정리하는데 주안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종의 가이드 북이고, 지도책이다. 물론 이 책에서도 70명의 사상가들의 생애와 그들의 입장, 이론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주된 목적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관심 가질 수 있는 사상가들의 저서 중에 국내 번역 출판된 것이 무엇이 있으며 그들 책 중에서 어떤 책을 고르는 것이 자신이 그 사상가에 근접해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인가를 소개하는데 주목적이 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버틀란드 러셀로부터 미셸 트루니에를 망라한다. 물론 이들 사상가들과 관련된 책을 모두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관심이 가는 사람에 대해 보다 치밀한 독서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더할 나위없이 좋은 조언자이자 충고거리가 된다. 이 책은 다루고 있는 인물들, 사상가들의 글만큼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충분한 독서 체험을 하지 않은 이들에겐 이 책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 최성일은 머리말과 후기를 통해 글을 보다 쉽게 써달라는 충고를 무시한 까닭에 대해 말한다. 쉽게 가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란 그의 독서관이 관철된 것에 대해 나는 순수한 독자의 입장에서 매우 미덥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 에릭 홉스봄 지음/ 강주헌 옮김/ 끌리오(2000)

Photograph: Eamonn McCabe

"에릭 홉스 봄"
은 현존하는 가장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다. "학문에는 국적이 없으나 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는 말처럼 때로 학자의 국적 못지 않게 지식인에 대한 이념적 구분, 좌파냐, 우파냐로 구분되는 것은 일정한 지적 편향성을 지녔다는 말과 동등하게 대접되고는 한다. 가령, 사무엘 헌팅턴, 후란시스 후쿠야마, 기 소르망과 같이 그들이 속해 있는 집단 혹은 이념적 편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경우 - 이들은 <조선일보>가 특히 사랑하고 석학(?)으로 대접하는 해외 지식인들 - 가 있다. 때에 따라 이런 지식인들은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지닌 집단(가령 "네오콘"이 자본을 대고 있는)의 연구소에 소속되거나 그들의 브레인, 이데올로그 역할을 한다. 과거 미국사회를 가리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고 했는데 현재는 이보다 더욱 나아가 군정산학복합체 (MAGIC : Military-Academic-Governmental-Industrial Complex)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때때로 그들의 이름은 세계적 석학, 문명비평가라는 허울로 우리 사회의 수구보수매체에 학문적 근거로서 주장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에릭 홉스 봄을 우리 세기의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물론 그렇게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에릭 홉스 봄을 그렇게만 규정짓는 것은 일정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에게 정치적, 이념적 좌,우를 묻기 이전에 그의 인간 됨됨이, 지식인됨의 인격을 먼저 평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는 1917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1933년 영국으로 이주한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빈과 베를린, 런던, 케임브리지에서 연구했다. 이후 런던의 버크벡 칼리지에서 정년퇴임할 때까지 교수로 강의했다. 그는 또한 평생에 걸쳐 공산당원으로 남았다. 우리나라에 그의 저서가 처음 소개된 것은 지난 1976년 한길사를 통해 <의적의 사회사>가 출판된 것이었다. 유신 시대의 출판이란 맑스, 사회주의, 혹은 사회학적인 용어들이 제목에 사용되기만 해도 엄격한 검열의 대상이 되어 금서가 되던 시대였다. 그런 시기에 그 자신이 공산당원인 학자의 저서가 버젓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그 이면엔 여러 사정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에릭 홉스 봄 자신이 학문적으로는 특별한 정치적 이념에 좌우되지 않고, 그 자신의 학자적 양심에 의거한 연구를 했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그는 좌파의 기본적인 원칙들, '시장경제'와 이윤에 의해 좌우되는 체제에 반대하지만, 동시에 민중, 노동자계급의 약점도 날카롭게 비판해 마지 않는다. 그는 1962년에 앞으로 그의 기념비적 저술로 남게 될 근현대 4부작의 첫째 권인 <혁명의 시대(The Age of Revolution)>를 출판하고, 이후 1975년 <자본의 시대(The Age of Capital>, <제국의 시대(The Age oj Empire)>(1987)를 출판하여 근대시리즈 3부작을 완성했다. 속칭, 세계사 3부작이라 불리우는 이 시리즈의 속편격인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를 출판한 것이 1994년 그의 나이 일흔 일곱 살 때의 일이다. 그는 다방면에 걸친 학문적 열정과 관심을 그의 저술에 담아내었고, 이는 때로 뉴올리언즈를 기반으로 한 재즈로부터 영화에 이르는 인문학의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나는 그에게서 종종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영화에서 스페인시민전쟁에 참전했던 영국의용군 병사들은 노인이 된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에 대한 정절을 지킨다. 

이 책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는 그런 에릭 홉스 봄이 이탈리아의 신문 <라 레플리카>의 런던 특파원 안토니오 폴리토와 나눈 대담을 묶은 책이다. 국내에서 출판된 책 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최근 그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 책이며, 그의 저술이 아니라 직접 그가 한 대화들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에릭 홉스 봄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일독을 권유할 만하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에릭 홉스 봄이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이나, 그에 대해 평소 관심있지만 개인이 신문기자와 나눈 그렇고 그런 대담에서 뭐 그리 얻을 게 있을까 의심하는 이들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바로 에릭 홉스 봄이기 때문이며, 이 책에는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새로운 세기에 대한 세계적 석학의 고민과 분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대담을 엮은 이 책은 주제에 따라 지난 세기에 발생했지만 미래에도 여전히 영향을 줄 수 있는 여섯 가지 주제로 구분된다.  그것은
"전쟁과 평화, 서양 제국의 몰락, 지구촌, 좌파에게 남은 것, 호모 글로발리자투스, 1990년 10월 12일" 등인데,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많은 곳에 밑줄을 치게 되고 공감하게 되는 일이 잦아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과거를 되짚고, 새로운 세기에 등장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 분석한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들을 던져주어 가까운 미래를 전망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를 만남으로써 새로운 세기에 대한 보다 거시적이고, 구체적인 전망에 따른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끝까지 공산당원으로 남은 이유를 묻는 이탈리아 기자에게 홉스 봄은 이렇게 말한다.

"대의(大義)를 향한 충성심, 그리고 그런 대의를 위해서 희생했던 사람들을 향한 정절(貞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성은 환상이다 | 기시다 슈 지음 | 박규태 옮김 |  이학사 |  2000


성은 일상의 이면에서 표면으로 떠올랐고, 말초적인 성(sex)으로부터 학문적인 접근 방식의 성에 이르기 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담론들이 있다. 그럼에도 성담론은 여전히 일반인의 접근을 가로막는 형태(말초적인 차원부터 고급한 차원까지)로 왜곡되어 있다. 가령, 성의 매매춘 문제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그것이 남근주의 사회, 자본주의 체제, 가부장적 질서 속에 여성에게 강제된 것이라고 항변한다. 맞는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도 반론들은 늘상 존재해 왔다. 

여성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매매춘에 임하는 경우는 어찌 보아야 하는가? 경제적 궁핍의 정도, 사회적 지위, 문화적인 레벨과 상관없이 자발적인 매매춘에 임하는, 점차 교묘해지는 탓에 매매춘으로 비추지 않는 여성의 상황을 페미니즘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답할 것이 없을리 없다. 그런데 어쩐지 가부장적 질서, 자본주의 체제, 남근주의 사회의 주장 보다 힘없이 들린다. 일반 대중들이 그 의견에 쉽사리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단지 무지한 탓만은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논쟁적이며, 심리학과 페미니즘 사이에 감정적이 아닌 학문적으로 뒷받침되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물론 이책에서도 매매춘은 지탄의 대상이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 금욕적이거나, 성차별적이거나, 혹은 자유분방한 성 관념을 체득하게 되는 것일까? 라는 질문, 인류(여성)에게 있어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라는 매매춘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일까, 아니면 여성의 본능 중 하나일까? 와 같은 질문에 대해 이제껏 답해준 책은 그리 흔치 않았다.

이 책은 이렇듯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같이 얽히고 섥힌 성 담론에 대해 그야말로 일반인의 수준의 궁금증을 품고 성에 대해 접근하고 있는 책이다. 앞서 매독의 이야기처럼 근대의 발명품들 - 사랑, 연애, 결혼의 신화 - 에 대해 기시다 슈는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질문은 평범하고 일반적이지만 답변은 평범하고 상식적이면서도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성 담론의 여러 측면에서 공세적 입장에 있는 페미니즘을 먼저 접한 이들에게 기시다 슈의 견해는 일견 남근주의적인 환상을 북돋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성의 입장을 십분 고려한다 할지라도 남성의 성의식에 대해 이제껏 '기시다 슈'만큼 정직하게 답한 학자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 '성은 환상이다'는 다른 말로 하자면 '성은 현실이다'가 될 수 있다.

그는 일반인들이 가질 만한 평범한 의문들로부터 출발해서 성의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우리의 본능에서 이성적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 자칫 방만해지고 논점을 벗어날 수 있는 대목에서도 그는 일관된 입장에서 이 논의들을 끌어나가고 있다. 기시다 슈의 주장이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지만 섣부르게 반박하기 어려운 까닭도 거기에 있다. 만약 이 책을 반박하고자 한다면 감정적인 비평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영역에서 접근하여 반박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의미에서 기시다 슈는 어떤 페미니즘적인 입장보다도 단호하게 성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성은 환상이다'라고 말하면서 성이 무의미하다거나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 시대의 전세계적 도래가 불러온 변화가 성의 본질을 왜곡하고, 훼손하고 있음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을 가한다.

이 책은 혼란스러운 기존 성담론과 통념들에 대해 프로이트 학파의 심리학자 기시다 슈가 응수하는 성의있는 답변이다. 그는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성욕의 기원, 남녀 관계의 양상, 성차별, 강간, 매춘 등의 지독히도 인간적인(인간에게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침팬지 세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는 보고가 있긴 했지만) 현상들을 밝혀나가고 있다. 일례로 강간은 인간의 본성이라기 보다는 사회의 성격과 문화가 규정한다는 것이나, 남성의 성욕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 참을 수 없다는 통념이 거짓이라는 그의 질타는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들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Happy Sex - 정치적으로 올바른 섹스 스토리 / 김이윤 / 이프 / 2000년

"여자가 기저귀차고 강단에 올라가? 안돼!"

어제 뉴스를 보니 총신대학교의 채플 시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쪽 총회장인 임태득 목사(대구 대명교회 당회장)가 최근 “우리 교단에서 여성이 목사 안수를 받는다는 것은 턱도 없다”며 상식이하의 여성 비하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임 목사는 지난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총신대학교 채플시간 설교에서 “대한민국 어느 교단이든지 여자 목사, 여자 장로 만들어도, 우리 교단은 안 돼. 그게 보수고, 그게 성경적이고, 그게 신학에 맞는 거야”라며 “여자들이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가? 안 돼!”라고 말했다는데, 예장 합동 교단은 국내에 신자가 2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거대 교단이다.


책 이야기를 하면서 갑자기 가십성 기사 이야기를 왜 들먹이는가하면 이 책의 저자인 김이윤 선생이 현직 목사 신분이라는 것과  이 책 "Happy Sex"가 성서(Holy Bible)상에 등장하는 여러 성(sex)적인 이야기들과 현재 고착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성적인 역할(gender) 혹은 성(sex)차별적인 요소 - 바탕에 기독교적인 윤리관이 근저에 깔려 있음을 - 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Happy Sex"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기란 다소 난감하다. 판갈이를 하면서 현재는 표지가 핑크빛에서 녹색톤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겉표지에 큼지막하게 책명이 적혀 있으니 그냥 들고 타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가기가 다소 난감해 보인다. 제목만 놓고 보면 책 속에 온갖 기기묘묘한 체위들과 방중술이 소개되어 있을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솔직히 그런 책도 재미있기는 하다. 은근히 즐기는 편? 흐흐) 그런데 책 내용은 그보다는 훨씬 더 건전하다. 물론 앞서 말한 총신대 채플 시간에 '기저귀 찬 여자들이 목사 안수 받는 것은 성서적으로 그르다'고 판단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마귀들린 이단자들이나 할 수 있는 말로 비칠 수도 있겠다.

이 책의 필자 김이윤은 목사 신분으로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논리들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기독교의 보수종단들에 대한 인식을 공격하면서도 그 모든 바탕에 기독교적인 윤리관(?)이 근저에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 근본주의(보수주의)에 대한 공격에는 매우 유효하게 보이지만, 타종교를 들먹이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당연하게도' 서구적인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기존의 고루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충격일 테지만, 어떤 부분은 뭐 당연한 얘기를 하는 정도이기도 하다. 그의 주장을 거칠게 압축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기존의 종교(특히, 개신교)는 대중(혹은 평신도들)에게 성에 대한 인식에 있어 부정적인, 혹은 심각한 왜곡을 가하고 있다. 그런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남존여비의 인식을 강요하게 되었으며, 정신에 비해 몸을 악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종교적 구원, 즉 정신해방은 결국 몸의 해방에 이른 남녀간 서로에 대한 영혼과 육체의 결정권을 자신들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의 성을 소유하려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야 지독히 맞는 말 아니겠는가? 그의 주장이 건전하고 상식적이라는 것은 그의 생각이 가치전복적이라거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체제내적인 혹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적인 모순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돌을 던지지 말자! 목사님이 아닌가.

나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제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섹스 스토리"라고 했을 때 '올바른 섹스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한 장벽에 대해서 필자는 적시하고 있고, 그 부분들에 대해 매우 효과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6장의 구분 속에 진행된다. 첫번째는 우리 사회가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흔히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 지적하고, 둘째 장에서는 결혼 제도, 셋째 장에서는 성직자들 - 종교에 관련한 서비스업종 종사자들의 성의식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넷째 장에 이르러서는 성서 상의 여러 성애 사건들에 대해 다루면서 어떻게 가부장제적 질서 속에 성서의 말씀들을 변형시키고, 그것을 그 자체의 말씀으로 가부장제적 질서를 강제하는 기능과 권위를, 성서를 통해 부여받게 되었는지를 밝힌다. 그리고 다섯 째 장에 이르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다시 여섯째 장에 이르면서 본인이 생각하는 최종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일견 당연한 말이지만 이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은 '성서 속에 나타난 인간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다루고 있는 넷째 장이고, 가장 재미없어지는 부분은 매우 상식적일 수 있고, 어느 경우에는 그것 또한 편견으로 보이는 다섯째 장이다. 그리고 여섯째 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안은 이제는 상식일 수도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재미가 적다. 게다가 이 책은 군데군데 틀려서는 안 될 부분들에 대해 필자의 실수인지, 도서출판 '이프' 측의 실수인지 모를 오식들이 보이고, 필자의 육성이 거칠게 묻어나는 몇몇 문장들이 보인다. 물론 이 책의 가장 큰 문제 혹은 부족한 점은 이 모든 문제들 - 성차별을 비롯한 성과 관련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 을 종교적 혹은 관념적인 문제로 치환하고 있는데 있다. 정치경제학적인 문제들은 이 책에서 등한히 되고 있거나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한 저자가 세상의 어떤 현상에 드러나는 혹은 배후에 숨겨져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척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망명지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토론들을 한 적이 있다. 이 책에는 그 때 논의 되었던 논쟁거리들의 상당수를 잘 정리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제목 때문에 주저되시는 분이라면 당신의 편견 때문에라도 더욱더 추천하고 싶다. 꼭 구해서 읽어보시길 바란다.

<2003-11-19>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TAG Happy Sex
이전버튼 1 2 3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