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 게롤트 돔머무트 구드리히 지음 | 안성찬 옮김 | 해냄(2001)


해냄에서 출간하고 있는 "클라시커50" 시리즈 중 현재까지 출간된 전권을 구입했다. 알게모르게 이런 류의 책들은 재미있다. 책을 만들 때 주요 독자층에 대한 계산은 실내 수영장에서 물 밑으로 깊이 잠수하여 떠오르지 않고, 중간 지점에 머무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적당한 무게 추를 몸에 달지 않고는 부력의 저항에 못이겨 계속 떠오르게 된다. 해냄의 클라시커50 시리즈가 앞으로 얼마나 진행될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내 관심이 지속되는 한 아마 계속 구입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이유는 이 시리즈가 내 수준에서 보았을 땐 적당한 심도로 잡학에 대한 내 관심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처음 "클라시커"란 말을 접했을 때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별로 호기심도 가지 않은 탓에 그저 이 시리즈를 원래 기획한 독일의 출판사 이름 정도 되려나 했더니 "klassiker"란 최고의 예술가, 대가, 명작 등을 뜻하는 독일어라고 누군가 친절히 알려주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내가 쓰는 글은 이 책에 대한 서평은 아니다. 어차피 늘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이 책이 적정한 돈값만 해준다면 그리고 이 한 권의 책에서 50명의 영화감독 이름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한 개별적인 책, 작가론이 있어 준다면 사서 읽어주면 그만 일 것이다. 만약 "리처드 리콕"이란 영화감독에 대해 다루고 있는 다른 책이 있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에겐 더할 수 없는 고마움이란 거다. 어차피 우리나라에선 필요충분할 만큼 많은 책들이 번역 출판되고 있지 못하므로 외국어에 능통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에겐 이런 시리즈만으로 감지덕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런 시리즈에 불만이 없을 순 없다. 한 권의 책으로 묶여도 시원치 않을 세계적인 감독들, 사진가들, 회화, 철학가들을 한 권으로 묶어서 수박 겉?기로 맛만 보여준다는 점이 그런 불만일 거다. 그런데 그건 대개의 리뷰란 것이 빠져나갈 수 없는 고민이다. 문제는 그 짧은 글에서 얼마나 많은 요점들을 응축해 설명하면서도 대중적인 이해와 난이도의 미로를 헤쳐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이 책이 나름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잡학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클라시커 50 시리즈 가운데 커플, 디자인, 재판, 발명 같은 시리즈를 읽는 건 충분히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어차피 특별히 전문적인 서적을 구해 읽지 않는 한 이런 방면에 대해 이만한 심도를 유지하는 책을 읽기도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특별히 이 시리즈 가운데 유익했던 것은 "신화" 편이었는데 신화와 관련해 에피소드를 묶어낸 책들 대개가 에피소드와 더불어 개인의 해석을 덧붙인 형태이므로 클라시커 시리즈보다 나을 게 없는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게롤트 돔머무트 구드리히)는 그렇게 같은 한계 상황에선 좀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초심자부터 신화에 대해 어느 정도를 이해를 갖고 있는 이들까지 아주 읽을 만하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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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 - 사사키 다케시 지음 | 윤철규 옮김 | 이다미디어(2004)

세상에 제 아무리 좋은 책이 널렸다 하더라도 그 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인쇄된 종이에 불과하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도서관으로 대피한 청년들이 얼어죽지 않기 위해 벽난로 불쏘시개로 쓰는 것도 책이다. 그 도서관의 사서 역시 살아남기 위해 책을 불태운다. 이 때의 책이란 아무리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사서는 한 권의 책만큼 자신의 품에 꼭 품은 채 내놓지 않는다. 쿠텐베르크가 인쇄한 고인쇄물인 "성서"였다. 이 책이 "성서"라 불태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류의 문명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할지라도 세상에 인류의 흔적으로 남기고 싶은 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초등학교 4학년의 손에 잡힌 "에밀"을 나는 몇날 며칠에 걸쳐 다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 책이 잘 이해되어서 읽은 것은 아니다. 다만, "에밀"의 첫 구절이 내 가슴에 찌르르 와 닿았던 탓에 그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나중에 가서 어떻게 결말을 맺을까? 그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에밀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조물주의 손을 떠날 때에는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넘어오면 모든 것이 악해진다."

 

어린 나이에 읽은 "에밀"을 과연 잘 이해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후로도 틈틈이 "에밀"을 읽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에밀"을 잘 이해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지 못한다. 다만 "에밀"이란 책의 말미에 소개된 "장 자끄 루소"의 생애가 날 또다시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런 근대의 탁월한 교육철학책을 쓴 장 자끄 루소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태어나는 족족 고아원으로 보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은가. 책과 책의 저자가 위인전과 위인 만큼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 계기였다.

 

나중에 대학에 간 어느날 우리를 가르치던 교수는 자신의 강의 시간에 강독한 소설 작품들 가운데 "앞으로 100년 뒤에도 여전히 읽히게 될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작품 하나를 선정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정리해서 리포트로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앞으로 100년 뒤에도 여전히 읽게 될 작품을 선정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선정하라니... 끔찍한 과제였다. 우리 근대문학의 역사를 이인직의 "혈의누"로 잡아도 2006년이 되어야 비로소 100년인데, 그로부터 100년 뒤에도 여전히 읽게 될 소설을 자신이 진행한 강의 시간에 강독한 10편 가량 되는 소설들 가운데 골라 보라니 끔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덕분에 나는 고전이란 무엇인지, 명작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고전이란 시간이란 숫돌에 연마하여도 그 빛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빛나는 것들을 의미한다.

 

김명수 시인의 시 "하급반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 대목처럼 "아니다 아니다!"하고 읽으니 /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도 하나도 흐트리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읽기여"를 하며, "참새 짹짹, 병아리 삐약삐약"을 외우듯 한국 최초의 개인 시집은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라고 외우지만 정작 "해파리의 노래"란 시집이 오늘날 고전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시집을 처음 손에 넣은 것이 불과 일주일 정도 전이란 사실을 구태여 상기해보지 않더라도 이 시집이 오늘날 김소월이나 윤동주가 누리는 것과 같은 영예를 누린다고 할 수는 없다(열린책들 초간본시리즈). 이 시집은 어떤 의미에선 고전이라기 보다는 문학연구자들에게 필요한 연구자료에 가깝다. 고전은 그와 같은 의미에서 단지 오래된 책이란 의미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고전이란 무엇인가? 어째서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이라는 거창하기 짝이 없는 제목이 붙게 만드는 것일까?  '고전(古典, classics)'과 함께 책을 의미하는 몇 가지 명칭들을 이야기해보자. 우선, 정전(正典(canon)이란 말이 있고, 실라버스(syllabus)가 있고 텍스트(text)란 말이 있다. 앞의 것일수록 범위가 좁아진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텍스트란 것이 말 그대로 '해석(규정)되기 이전의 원본'을 의미한다면, 실라버스는 이런 텍스트들 가운데 특별한 목적과 제도로서 선별된 텍스트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보다 쉽게 이해를 돕는다면 대학에서 어떤 강의 교재로 채택한 도서 목록이 있다면 그것은 그 강의의 실라버스라 할 수 있다. 정전(cannon)이라 하는 것은 갈대나 장대를 의미하는 고대 희랍어 kannon에서 유래된 말로 후에 '규칙' 혹은 '법'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말은 보다 발전하게 되어 다른 텍스트들보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어떤 텍스트들을 규정하는 말이 된다. 가령,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성서와 이를 해석한 신학 서적들이,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꾸란이, 우리와 같은 유교문화권에서는 "사서 오경" 과 같은 책들이 정전이 될 수 있다. 정전이란 한 문화권이 위대하다고 동의하고 있는 혹은 간주하고 있는 작품들의 총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전(classics)와 흡사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고전이란 말은 보다 확실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사용되는 말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정전이란 말은 보다 객관적인 용어로 쓰인다는 것이다.

 

만약 한 개인에게 내 인생의 의미있는 책 100권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개인에게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정전이 될 수 있다. 그런 개개인이 100명이 모이고, 1,000명이 모이고, 다시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면서 서로의 정전이 겹치고 스며들면서 구성되는 것이 바로 그 사회의 정전이 되고, 세월과 함께 숙성되어 인정받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그러나 어떤 고전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들로 손꼽히는 이들치고, 그 백성들에게 가혹한 희생을 강요하지 않은 왕이 없는 법처럼 종종 이집트의 피라밋처럼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곤 한다. 즉, 존경받아 마땅한 고전들은 종종 교양(敎養)이란 이름으로 - 그것이 culture이든, bildung이든 상관없이 -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인간도 그 시대와 괴리된 채 살아갈 수 없기에 우리는 교양이란 이름으로 그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교육받곤 한다. 교양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시대의 상식을 얼마나 잘 꿰차고 있는가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상식(common sense)이란 정상과 비정상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또다른 정전이기도 하다.

 

이 말은 상식이 바뀌면 고전이나 정전의 지위도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마도 푸코가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고전이란 지배계급의 경전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상식을 장악함으로써 고전을 취사선택한다. 여기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이란 책이 있다. "절대지식"이다. 그것도 "교양으로 읽어야 할~" 이런 류의 책을 대할 때마다 주눅들기 십상이다. 읽었다고 해서 내것일리 없는... 비록 세상은 바꾸었을지 모르나 나 자신은 바꿀 수 없는... 그러므로 절대란 절대로 그렇지 아니하다란 뜻일 수도 있다. 절대로, 절대로란 말로 이루어진 사랑의 맹세를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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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에 읽는 프로이트 - 루스 베리 | 이근영 옮김 | 중앙M&B(2003)


남들 앞에서 잘난 척 주워섬기기 위해 굳이 이런 류의 책을 볼 필요는 없다. 나의 경험상 적당히 어려운 말 한 두 마디를 하고 난 뒤,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면 분명 대화 상대는 당신이 실제로 알고 있는 것 이상을 알고 있으리라 믿어줄 테니까 말이다.  "30분에 읽는 ~" 시리즈 전편을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돈이 썩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편하게 정리된 요약본을 읽는 유익함이란 것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는 편이 낯선 길을 헤매는 것보다 확실히 나은 선택이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본다는 건 꼬시고 싶은 여자 친구를 태우고 드라이브 나갔다가 모르는 길 앞에서 자신있게 아는 척 하다가 땀 삐질삐질 흘리며 개망신 당하는 것보다 모르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네비게이션을 이용하던지 아니면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는 편이 더 낫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프로이트"에 대해 알게 된다고 해서 인생에 특별한 보탬을 받을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자신이 어렸을 적에 억압된 성적('쩍'이다 '적'이 아니고) 본능에 의해 고정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는 주장을 알게 되고, 알고 보니 억압된 성적 본능이 자기 어머니를 애인으로 삼고 싶고, 아버지를 연적으로 심각하게 고려한 결과라는 식의 주장을 알게 된다고 억압된 성적 본능에 대한 치료가 한순간에 이뤄질리도 없다(실제로도 프로이트에겐 이런 류의 비판이 자주 나온다). 앞서 나는 이 시리즈를 계속 볼까 궁리 중이라고 말했는데, 현재까지 이 시리즈 가운데 모두 4권을 읽었고, 3권이 더 대기 중이다. 노암 촘스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읽었고, 시몬느 드 보봐르, 다윈, 칼 구스타프 융이 대기 중인 책들이다.

 

이 가운데 노암 촘스키는 꽝이었고, 카를 마르크스는 최고였고, 지금 말하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저 그랬다. 니체는 마르크스보다는 별로였지만 프로이트보단 좋았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촘스키를 제외하곤 내가 사전지식을 좀더 갖고 있거나 개인적으로 좀더 친숙하게 여기는 정도에 비례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나는 마르크스랑 가장 친하고, 그 다음에 니체, 그리고 프로이트, 그 친구하고는 사이가 별로 안 좋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나는 예수, 석가모니, 공자, 마호메트 같은 종교적 인물들을 제외하고,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찰스 다윈을 꼽는다. 이들이 왜 중요한가를 논증하는 자리가 아니므로 프로이트에 대해서만 조금 이야기를 해보면, 프로이트가 주장한 정신분석이란 무엇인지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에 의해 창시된 정신분석은 마치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일관된 원칙(CVID, 완전하고, 증명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핵 해체)처럼 우리의 인간 이해를 되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다만, 거기엔 CVID의 두 가지 원칙이 빠질 수밖에 없다. "완전하고 증명가능하며..." 완전하고 증명가능한 정신분석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바로 이 부분때문에 프로이트 자신도 고민했고, 그런 고민의 흔적, 프로이트 스스로가 학문적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정신분석" "학(學)"를 배제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프로이트의 덕분으로 무의식 속의 내(과거)가 나를 지배하며, 무의식 속의 정체성은 내 의식에 비친 모습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 등 이제는 너무나 일반화되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생각들을 접하게 된다. “무의식, 억압, 리비도” 등의 중심개념이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 이해의 전제 조건이 되도록 한 것은 프로이트 이후의 일이다.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의 의사 J.브로이어의 연구 - 심한 히스테리에 걸린 한 소녀에게 최면술을 걸어 병을 일으키게 된 시기의 사건에 대해 얘기를 시켰는데, 그것으로 소녀의 병이 완쾌되었다. - 즉, 마음속 깊이 억눌려 환자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가 병이 되는 원인임을 알아낸다. 그는 마음이 신체적 변화(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히스테리 증상은 의식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마음의 갈등이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육체적인 증세로 변형되어 일어나는 정신적 에너지로 생기는 병임을 알아내었다. 따라서 히스테리를 고치려면 무의식 속에 눌려 있던 감정을 정상적 통로를 통해서 의식계(意識界)로 방출(catharsis)하면 된다는 이론을 세우게 된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의 원인이 성적(性的)인 억압에 있다고 보았고, 이는 유아기 때부터 있는 것이라고 주장해 많은 논란에 휩싸이고, 지금까지도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일종의 결정론적인 단계까지 나아간다. 프로이트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들은 이외에도 그가 핍박과 천대를 오래 받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의 학설은 유대인에게 특히 강한 것을 침소봉대했다거나, 인간의 정신과 행동에 대해 성을 너무 강조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정신분석학회 초기의 수제자들이자 열렬한 신봉자였던 아들러, 융 등에 대해 그는 가부장적인 권위로 일관했다. 결국 이들은 인간을 움직이는 법은 성 에너지가 아니라 ‘권력을 향한 의지’ 또는 성이 아닌 힘을 상정(想定)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정신분석을 수립하며 프로이트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20세기를 떠들썩하게 만든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어쩌면 프로이트 자신만의 콤플렉스가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프로이트 자신은 정신분석을 심리학과 생물학에 뿌리를 둔 과학으로 신봉했으나 정신분석이 과학으로 성립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반드시 프로이트에 의존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문학과 예술, 나아가 문화현상, 사회현상에 대한 탐구를 꿈꾸는 이에게 있어 누구도 프로이트의 사상을 피해갈 수는 없다. 물론 프로이트의 이론과 상관없이 이 책 "30분에 읽는 프로이트"가 유용한가? 좋은 책인가? 에 대한 의문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정가는 5,500원이고, 알라딘에서 10% 할인해주니 4,950원 게다가 무료 배송에 다시 8%의 마일리지가 붙어 400원이 쌓인다.

 

만약에 당신이 프로이트에 대해 어떤 책을 읽는 것이 좋을까 상의하기 위해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그럴 친구가 있다면 말이지. ^^;;;), 함께 만나 서점을 돌아보고 테이크 아웃 커피전문점에 들러 친구에게 커피 한 잔을 사준다고 치자. 어떤 것이 더 적은 가격에 큰 효용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불문가지다. "30분에 읽는~" 시리즈가 괜찮은 점은 또 있다. 열린 책들에서 프로이트 전집 전 15권 세트가 나오고 있다. 물론, 프로이트를 잘 알고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게다가 돈도 많다면 "30분에 읽는~" 시리즈 같은 건 쳐다볼 필요도 없다(과연 그럴까? 흐흐). 어쨌든 이런 전집을 읽기 전에 워밍업 단계로 읽어도 좋고, 나처럼 프로이트 전집을 읽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중요 저작 몇 권은 읽어둬야겠다 싶은 사람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선택일 듯 싶다. 참고로 현재 나는 프로이트 전집 가운데 "꿈의 해석, 정신분석강의, 정신분석학 개요" 3권을 구입했다. 앞으로 한 두 권 정도 더 구입해 읽을 생각이지만 프로이트 저작을 직접 읽는 일을 더 할지는 미지수다.

 

결론삼아 한 말씀 드리자면, 당연하게도 이 한 권으로 프로이트를 다 알 수 없다(그건 프로이트가 너무나 대단하고 위대한 사상가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프로이트 자신이 주장하듯 한 인간을 온전히 우리가 알 수 있을까? 무얼하든 어차피 한계는 있다). 하지만, 이 한 권으로 출발하는 건 꽤 괜찮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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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에 읽는 마르크스 - 질 핸즈 | 이근영 옮김 | 중앙M&B(2003)


이런 류의 책들을 접할 때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엔 기대해도 괜찮다. 사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맞지 않는다. "30분에 읽는 마르크스"라니 그게 가능하다면 누가 골머리를 앓겠나. 비록 이 시리즈가 150쪽 내외의 짤막한 반토막짜리 책일지라도 30분에 읽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필경 과장광고에 속하리라. 그보다는 이 책의 영어 원제명인 "Marx : A Beginner's Guide(마르크스: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가 적합하다. 30분만에 읽는 건 불가능하지만 2-3시간 투자하면 간략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마르크스에 대한 기초 지식을 쌓을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므로 자꾸 말하면 입 아픈 이야기이긴 한데, 이런 책의 성패는 짧은 분량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우겨넣었는가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책 한 권으로 모든 것을 끝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리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라 해도 세상의 모든 사상가들을 죄다 깊이있게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충고대로 그런 공부를 할 사람은 이런 책을 읽은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게다가 이 책은 다음에 뭘 읽으면 좋을지도 충실히 알려준다.

 

자, 다시 핵심으로 돌아와서 문제는 이 책의 저자가 칼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가 주장한 정치경제학의 이론들 가운데 핵심 개념들을 얼마나 잘 요약했는가, 그리고 충실하게 정리했는가가 관건이다. 그 부분에 한해서 나는 별 다섯을 주고 싶다. 게다가 이 책을 번역한 이근영의 "옮긴이의 글"도 아주 매력적이며, 이 책이 지닌 미덕에 그럴 듯하게 핵심을 잘 지적하고 있다.

 

20세기 역사는 마르크스의 유산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마르크스가 죽은지 1백년도 안 되어 세계인구의 반은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우는 국가들의 깃발 아래 살았었다. 최근의 우리 민족사도 마르크스주의와의 관련성 밖에서는 설명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예수 그리스도 이후 세계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꼽는데 별 주저함이 없을 정도로 그의 영향은 깊고 그 폭도 넓다. 그리고 그 영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본문 6쪽> 중에서

 

윗 부분이 요약본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칼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칼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그가 골치아픈 철학자이자 숫자라면 머리에 쥐가 날 경제학자를 겸하고 있다는 사실, 게다가 독일 낭만주의의 교양에, 헤겔 철학의 계승자란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읽어내기 난망한 사상가다. 그럼에도 이 짧은 책은 그에 대해 완전한 이해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대한 이해의 첫 단계를 그럴듯하게 해치운다. 옮긴이는 "옮긴이의 말" 끝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을 살짝 드러낸다.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중 한 사람인 칼리니코스는 "마르크스 사상의 진리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지적 개입으로만 만족해서는 안된다. 단지 세계를 관찰할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그러했듯이 자신을 노동자계급의 삶과 투쟁 속에서 혁명 정당 건설이라는 실천적 과제 속으로 던져 넣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를 이해하고 마르크스를 읽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본문 9쪽>

 

이 책은 가이드북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에 매우 충실하게 짜여져 있는데, 이는 이 책의 저자 "질 핸즈"가 현재 성인교육전문가로 활동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성인교육이라 하면 먼저 성인방송, 성인전용콘텐츠를 떠올릴지 모르겠으나 영국의 학문적 전통 아래에서 성인교육이라 함은 문화주의 문화연구 그룹의 주요 구성원들이 성인교육전문가로 먼저 활동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칼 마르크스를 이해하기 위한 첫번째 코드로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삶을 살핀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에 대해 처음 생각해낸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공산주의에 대한 실제적이고 과학적인 사상을 개발했고, 이에 대해 책을 쓰고, 널리 알기 위해 애쓴 실천가였다.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당시 프로이센에 속했던 라인주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무렵 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 정서가 매우 강했다.(오스트리아에서는 심지어 유대인은 장남만 정식으로 혼인할 수 있는 악명높은 반유대인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당시 태어난 많은 유대인들이 본의아니게 정식 혼인 관계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생아가 되고 말았다.)

 

산업화와 근대화가 추진되면서 거대한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전통적인 농업과 수공업에서 도시 산업 노동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농촌 지역 역시 실업률이 점차 높아졌고, 공동경작지를 빼앗고, 오랫동안 가난한 농부들에게 속해 있던 방목권 역시 박탈당했다. 결국 농촌 지역의 빈곤은 이들이 도시 지역의 값싼 노동력으로 흡수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어떤 조건을 감수하고서라도 일자리를 얻어야만 했으므로 보건 시설이 전혀 없는 빈민가에서 살아야 했고, 안전장치도 없는 기계를 다뤄야 했다. 미성년자는 물론 아동들까지 노동에 나서야 했던 탓에 당시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19세에 불과했다. 마르크스는 그런 시기에 대학에서 헤겔 법철학을 전공했고, 급진적인 사상을 제시한다. 그런 탓에 대학 교수가 되지 못하고, 프랑스, 벨기에, 프로이센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결국 마르크스는 1849년 런던으로 이주한다. 그는 예니와의 사이에 7명의 아이를 두었지만 이들 가운데 3명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30분에 읽는 마르크스"는 이렇듯 마르크스의 생애와 그의 사상, 이론의 주요 쟁점 및 마르크스가 지닌 의미의 현재성을 한 권의 책에 아우른다는 벅찬 주제에 감히 도전한다. 그리고 아쉬움이 없을리 없지만,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

 

예를 들어 3장에서는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끼친 사상가들을 살펴보고 있다. 마르크스 이전의 유물론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신이 존재하는가? 신의 존재를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당시의 주된 과학적 발전이 주로 수학과 역학 분야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를 불변의 과학적 법칙을 따르는 고정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런 철학의 영향을 받아 당시 사람들에게 사회 속의 위치 역시 불변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들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들의 개념 가운데 상당수를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켰다. 그 가운데 특히 마르크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사람은 헤겔이었다.

 

헤겔은 인류문명이 지적, 윤리적 진보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그가 주장한 진보는 신성한 어떤 존재의 개입이 아닌 인간성에 내재된 합리적 정신(헤겔의 용어를 빌자면 "세계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세상의 모든 진보(발전과 변화)는 변증법적인 긴장에 의한다고 보았는데, 서로 다른 두 개의 운동(관념)이 벌이는 갈등의 결과란 것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적 개념을 차용해 관념이 물질적인 경제활동으로부터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인간이 살고 일하는 환경이 인간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기엔 헤겔의 주장이나, 마르크스의 주장은 어찌보면 매우 상식적인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당시로선 매우 놀랄 만한 급진적 사유였다. 세상(사회)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니... 귀족과 부르주아들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은 "신"이나 "정신"이 아니라 "돈"이라고 주장한다. '돈은 인간 노동과 삶을 소외시키는 정수이며, 인간이 돈을 숭배하면 할수록 돈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고 말한다. 마르크스가 이런 생각을 기초로 어떻게 물질 세계가 정신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한 것이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 이다.


 

노동은 부자들을 위해서는 멋진 것을 만들어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불행만을 만들어낸다. - K. 마르크스 『경제학-철학초고』

 

마르크스가 파악한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은 돈, 자본, 상품에 대한 물신 숭배이다. 1) 돈에 대한 물신 숭배는 노동자들을 속이는 환상으로, 노동자들은 돈이 노동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여 자신들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게 된다. 2) 자본에 대한 물신 숭배는 자본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으로, 그것을 만들어낸 노동에게는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다는 믿음을 말한다. 3) 상품에 대한 물신 숭배는 어떤 상품이 교환가치와는 관계없이 본질적으로 다른 상품 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참조하시라).

 

인간 ‘소외’의 개념은 헤겔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이 주장하는 소외란 인간이 ‘세계정신’의 일부가 되고자 하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보았다. 헤겔에게 있어 소외란 거의 종교적 개념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마르크스는 이를 경제적 개념으로 규정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드는 상품으로부터 이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상품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산물을 ‘자신들 외부에 있는 낯선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공장시스템에 의해서 소외되고 비인간화된다. 공장시스템은 노동자들의 노동으로부터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방법이고, 시스템은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대해 노동자들의 주체성을 빼앗아간다.

 

소외는 자본가들의 착취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나 노동자들은 자신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감추어진 자본주의 시스템 탓에 자신들이 생산한 잉여가치의 권리를 자본가들이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거나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과 연결됨).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소비자들에게도 자기 스스로를 노예로 만드는 욕망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속인다고 보았다.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상품은 결국 노동자들도 노예로 만든다. 상품을 살 수 있는 돈을 얻기 위해 노동을 하는 악순환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품에 대한 물신숭배는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만든다. 사유재산제도 하에서 인간은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만 그 물건이 가치가 있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사유재산, 임금노동, 잉여가치 그리고 시장의 힘 등은 사회의 구성원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들이나 그것은 너무나 교묘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조차도 소외되지만 최소한 그들은 “소외 속에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물론 마르크스가 현재에도 여전히 유용한가?를 묻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태반은 마르크스를 전혀 읽지 않은 이들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를 읽는다면 여전히 유용한가 묻기 보다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먼저 하게 될 테니까. "마르크스는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바꿈으로써 사회자체도 바뀔 수 있으며 인간의 본성도 바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세기의 역사가 보여주듯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생각했던 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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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2006)


"에리히 프롬(Erich Fromm)""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은 성행위를 위한 69가지 체위를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간혹, 책 제목만으로 그런 오해 내지는 사랑에 대한 방법론적인 기술(skill)로 착각할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한때 에리히 프롬은 국내에서 나름대로 주목받는 위치를 차지한 사회사상가였으나 최근의 조류는 그를 한물간 혹은 예전의 중요도에 비해 명성이 많이 하락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여전히 중요한 데도 불구하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일원으로 에리히 프롬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이론에 프로이트를 접목시키고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2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설립된 사회과학연구소와 관련을 맺고 일했던 일련의 학자들을 지칭한다. 이들 연구 활동의 배경이 된 1920-1940년대 유럽사회는 파시즘의 급격한 대두와 서구 사회주의의 몰락을 경험하고 있었다. 당시 동구와 서구 양쪽에서 모두 비이성적인 전체주의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적 자유민주주의나 노동운동 모두 이런 비이성적 세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지식인들은 노동자 계급에 대해 깊은 절망감을 느꼈고, 원자화된 대중사회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에 이르게 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특히 주목했던 것은 시장기능 침투에 의한 물화 혹은 사물화(reification) 현상이었다. 사물화란 인간들 사이의 질적인 관계가 상품사이의 양적인 관계로 바뀌는 현상을 지칭한다. 인간의 노동과 피와 땀의 가치가 일정한 화폐의 양으로 측정되는 교환가치로 표현된다. 사물화는 본질적으로 같을 수 없는 것을 같은 것(교환가치로 환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비등가적인 것을 등가화 한다. 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물화 현상은 단순히 상품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 된다.(ex. 비인격화(非人格化, impersonalization -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자가 노동력을 상품으로 취급당한다고 할 때의 인간의 사물화, 막스 베버가 관료제에 있어서 특징적으로 인정한 대상적 관계, 또는 그와 같은 관계를 강요당하는 관료 등의 비인격화를 이르는 말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그의 책 "소유냐 존재냐"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될만한 책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자면 사랑이란 '인간 상호간의 일치와 타인과의 융합'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성장에 적극적으로 관계하는 일'이며, '어떤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세계와의 관계를 결정짓는 태도이자 성격의 방향'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받기만 하는 것도 주기만 하는 것도 아니며, 자기 자신과 타인, 가족,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기 자신, 그가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하면 생명을 준다. 이 말은 반드시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준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의 모든 표현과 현시를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그는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의 생동감을 고양함으로써 타인의 생동감을 고양시킨다. 그는 받기 위해서 주는 것이 아니다.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대가 없이, 대가에 대한 기대 없이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긴다는 것이고, 우리의 사랑이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사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희망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프롬은『사랑의 기술』에서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안달을 하는 자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 가난해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이다."라고 말하는 것, 사랑의 본질 가운데 하나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남을 사랑하는 자, 그는 자기 자신을 남에게 줄 수 있는 자로서 자신을 경험한다. "오직 생존에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을 빼앗긴 자만이 뭔가 주는 행위를 즐기지 못할 것이다." 이 말 뜻 그대로라고 했을 때 마음이 너무나 가난한 자는 뭔가 주는 행위를 즐길 수 없으며 물적인 조건이 생존에도 허덕일 만큼 척박한 이도 남을 사랑할 수 없다.

 

프롬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이 아닌 '낭만적 사랑' 이란 사회의 특징과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한 '불완전한' 관념임을 폭로한다. 근대 자본주의는 결국 사람들에게 자신의 '교환가치'를 증대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고, 이에 지친 사람들은 이런 억압에 대한 하나의 탈출구로서 별다른 기술과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편안한-그래서 이기적인- 사랑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사랑은 결국 '불모의 사랑'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지속불가능하며, 사랑의 대상뿐만 아니라 진정한 자기애에도 기여하지 못하는 비생산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낭만적 사랑은 ‘로맨스의 이데올로기(ideology of romance)’로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로맨스의 이데올로기란 사랑을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사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키워드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데 이 책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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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 사용설명서 1
스티븐 아노트 지음, 이민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7월

 

큭큭... 책을 받아들고 나는 두 번 웃었다. 한 번은 책 보내준 이의 꾸밈없이 순수한 감정이 읽혔기 때문이고, 다음 한 번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였다. 잠깐 출판사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 직업상의 이유로 그리고 책 읽는 경험이 축적되다보면 알게모르게 그 책을 만들어내는 곳과 사람들에 대해 '감정(feeling)'이란 것이 생긴다.  최근에 칼 G. 융에 대한 간략한 개설서를 읽었으니 그를 잠시 호명하여 이야기해보자. 융에 의하면 감정이란 '사고(thinking)'와 마찬가지로 내부의 정신적 과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감각이나 직관과 달리 이성적인 기능으로 분류된다. 내가 융을 프로이트보다 좋아하는 이유다. 그는 감정이 이성적인 기능이란 사실을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융에 의하면 우리는 감정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해 준다. 그가 말하는 감정이란 사물을 가치 순서대로 나열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성적인 기능이고, 그러므로 감정형(감정적이 아니고)의 사람은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에게 중요한 부분은 인간 관계라고 말한다. 독자와 출판사의 관계를 집단 대 개인의 관계로 단순히 환원시키지 않는다면 출판사 역시 하나의 이미지를 갖는다. 일종의 페르소나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뿌리와 이파리"란 출판사는 내게 몇 개의 이미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첫째는 미안한 마음이다. 강상중 선생의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를 서평하기로 해서 출판사로부터 공짜로 책을 받아 챙겨놓고, 적당한 서평자를 물색하지 못하는 바람에 책만 공짜로 얻어본 꼴이 된 것이다. 이럴 때 그쪽 편집부 직원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대개의 출판사들은 영세하기 때문에 몇몇 메이저 출판사를 제외하곤 신문 지면을 얻어 광고 한 번 한다는 게 사운을 건 일이 되곤 한다. 그도 아니면 신문사 문화부 기자들에게 보도 자료 보내놓고, 이들의 기사 한 줄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나도 해봐서 안다. 물론 그 기자들도 나름대로 양심에 따라 기사를 쓰지만 인간의 양심이란 얼마나 얄팍한가 말이다. 내가 속해있는 잡지에 서평이 실린다고 판매에 끼치는 영향이야 미미하기 짝이 없겠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약속을 못 지키게 된 건 정말 미안한 일이다.

 

둘째는 고마운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고고학자 이선복 선생의 팬이다. 예전에 가서원이란 출판사, 실은 그보다 좀더 오래전 "사회평론 길"에 연재될 때부터 이 분의 글은 나에게 고고학이란 미답의 학문에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책이 절판되었다가 다시 뿌리와 이파리를 통해 재출간(이선복 교수의 고고학이야기)되었다. 혹시 핵 물리학자 폰 노이만의 "죄수의 딜레마"라는 책을 아는 분들은 게임이론이란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 게임이론으로 인간본성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본다는 최정규 선생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란 책이 있다. 이 책 역시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나는 이 책의 초판 1쇄와 2쇄를 모두 갖게 되었다. 대개의 출판사들은 1쇄와 2쇄는 재인쇄를 했다뿐이지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 출판사는 1쇄에서 잘못된 부분들은 대폭 수정해서 새로 책을 만들었다. 실질적으로는 재판인 셈이다. 그런 비용을 감수하고 책을 다시 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이상에서 언급된 책들은 차차 시간 되는 대로 서평으로 올려보도록 하겠다.)


자,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에 대한 칭찬은 이쯤에서 접도록 하자. 다만, 책의 만듦새에 대한 점에서 신뢰를 보낼 만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내나름의 원칙은 원고료를 받아 서평을 쓴 책에 대해서는 알라딘 서재에 리뷰를 올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공짜로 받은 책에 대해서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언급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이걸 흔히 말하듯 뽐뿌질로 생각하고 읽겠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책의 첫페이지를 펼치니 "스티브 아노트"란 이 책의 작자가 얼마나 요설스러운지 읽는 내내 즐거웠다. 아마도 지금 내 글이 이렇듯 막 나가는 까닭도 그의 책을 읽은 후유증이리라. 까놓고 보면 우리네 몸이란 얼마나 거기서 거기란 말인가. 가끔 우리는 단순하게 반응하는 이들을 가리켜 "단세포"라고 말한다. 성서에도 나오지만 태초에 섹스는 없었다. 섹스는 없고, 오로지 말씀만 있던 시절이 아마 "단세포"의 전성기였으리라. 자기를 복제하여 번식하는, 사랑에 주린 외로운 단세포 유기체가 존재했다. 자기 세포를 분열하여 후손세포를 생산하면, 그 후손이 다시 자라나 자기 몸을 분열하는, 그런 고독한 과정... 순전히 성서적인 맥락에 보자면 스티브 아노트는 이브에게 정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고, 그에게 이런 책을 쓰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정말 감사해야 할 이유는 우리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었으니 더더욱 감사해야 하겠지.

 

이 책의 원제 "Sex : A User's Guide" "섹스 - 사용설명서"는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다. "유저스 가이드"란 말은 분명 사용설명서란 뜻이지만, 사용설명서를 뜻하는 다른 말 "매뉴얼(manual)"과는 약간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매뉴얼은 말 그대로 이용하는 방법에 한정된 것이지만 가이드는 안내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은 사용설명서이기 보다는 사용안내서가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괜한 시비다. "섹스-사용설명서"를 읽기 위해선 넥타이나 코르셋을 착용해선 안된다. 그랬다간 금새라도 셔츠 속에 땀이 찰 테고, 코르셋을 했다면 웃다가 숨이 막힐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접근하시면 되겠다.

 

번역작가도 그에 대해 충분히 감안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주요 부분에 붙은 제목들이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3장의 제목은 "자, 즐겨~봅시다! - 섹스를 위한 옷차림", 4장은 "어디 보여줘봐 - 그 소중한 곳의 안과 밖" 그리고 마지막 19장 "FUCK - 영어 음란어 소사전" 까지 시종일관까지는 아니어도 군데군데 장난스러운 부분이 많이 있다. 물론 마지막 19장 부분의 영어음란어 소사전은 국내의 음란 사이트로 만족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선 검색어로 활용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미성년자들은 이 책을 읽지 말지어다. 그런다고 안 읽겠냐만...

 

그렇더라도 몇몇 부분에선 내나름의 금기들, 혹은 심기를 건드리는 것들이 있었다. 우선 5장의 소제목과 6장 소제목 사이의 문제다. 5장의 제목에서 "남성의 상실"에 해당하는 것으로 "거세"를 들고 이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환관(내시)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6장에서 "여성의 상실"에 해당하는 것으로 "처녀성"을 들고 있다. 물론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처녀성이 재산의 한 가치로 평가받아왔다는 점에서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거세와 처녀성의 상실은 현재의 성정치적 관점에서 보자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물론 내용상에서 이 책과 저자가 의도한 바가 그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그것이 이 책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한계라고 할 수는 있겠다. "사용설명서" 시리즈는 현재 모두 3권이 나와 있는데, 앞으로 나올 "마약" "섹스"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왜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소위 정치적 진보를 말하는 이들이 보수와 한 몸이 되는가? 물론 그래서 페미니즘이 존재하는 것이긴 하지만)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현실을 생각할 때, 스티븐 아노트의 요설은 때때로 듣기 거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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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우기 - 김진석 | 나남출판(2003)


지식인은 무엇인가? 지식인은 누구인가?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를 묻는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있다. 이때 우리가 잊고 있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사람들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물을 뿐 어째서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제갈량과 정약용이 살던 시대의 지식인들에게도 '현실 참여'와 '안빈낙도' 사이의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의 지식인들과 달리 이 시절의 지식인들이 말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엔 마르크스가 말하는 그런 류의 "소외 현상"은 없었다. 188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사이 서구 사회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사상 유례없는 대변동의 시대를 경험했다. 정치적으론 프랑스 대혁명 이래 꾸준히 지속되어온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정치 혁명이 나름의 결실을 맺으며 보통선거가 실시되었고, 선거권의 제한이란 사회 위계질서의 마지막 정치(형식)적 보루가 해체되었다.

 

보통선거 이전의 정치란 교양인들(소위 지식인들)의 몫이었다. 이제 지식인들이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대중이란 필터를 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식인들은 이제  과거 노동자들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듯, 그들의 지식으로부터 소외된다. 그렇기에 지식인의 위기가 논의되기 시작한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은 항상 구체적 사실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해서 그는 항상 구체적 해답을 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지식인에게 사회가 부여한 책무이자 동시에 지식인 스스로가 자신에게 내린 책무이다. 지식인이 맞닥뜨리는 구체적 사실이란 현실이자, 구체적 보편으로서의 사건이다. 지식인들 앞엔 매일매일 해석과 분석을 요구하고 있는 새로운 사건들이 터져나온다.

 

오늘날 파시즘은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이기 보다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감이 있다. 그러나 로버트 O. 팩스턴의 말처럼 "환호하는 군중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버리면 파시즘의 출현이 "한나라의 결함있는 역사가 파시즘을 탄생시켰다는 겸손한 듯 오만한 믿음"을 품게 만든다. 팩스턴은 이런 손쉬운 믿음이 "쉽게 파시즘을 방관하는 국가들의 알리바이로 바뀔 수 있다. 즉, 자기네 나라는 그런 일이 발생할 리가 없다"고 믿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즉, 파시즘은 단순히 민족적 증오를 부추기는 능력이 있는 파시즘 지도자의 카리스마 탓만도, 문제 있는 역사의 결과만도 아니란 것이다. 대중의 동의없이 파시즘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철학자 김진석의 책 "폭력과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우기"는 우리에게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다. 그의 글은 때로 단호하게, 때로 솔직하게, 때로 부드러운 어조를 구사하면서 마치 '패스트리(pastry)'처럼 여러 겹으로 겹친 이론과 현실의 자장 사이를 "포정의 칼"처럼 움직여 나간다. 머리말에서 김진석은 "파시즘이나 극우 세력처럼 거대하고 명백한 악이 있는 듯 하지만, 문화권력의 경우처럼 문화에 관한 세심한 구별이 요구되는 폭력"도 있다고 말한다.

 

"폭력과 파시즘을 비판하는 일에는 이상한 맹점이 있다. 이것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열성이 지나친 나머지, 알게 모르게 모든 폭력을 파시즘과 동일하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모든 폭력적 경향이나 제도들이 그 자체로 악이며 따라서 아예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주장은 거기서 불과 한 걸음 거리에 있다. 도덕적 근본주의.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일상생활의 관습과 제도 속에 조금이라도 폭력의 기미가 있으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여기 또 파시즘이 있다!'라고 호들갑을 떨며 소리치는 지식인들이 있는가 하면, 종교적 평화주의에 근거하여 보통 세속인들이 실행하는 다소 복잡한 모양의 행위와 실천에 모두 폭력의 낙인을 찍는 지식인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혹은 종교적 근본주의가 그 이념에서 현실적 폭력을 반대하기에 실제로도 폭력과 뚝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만에!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이런 근본주의도 폭력적 성향을 띤다. 폭력이 전혀 없는 상태를 가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별 탈이 없는 이상주의 같지만, 어떤 폭력적 실천이든 파시즘이라고 비난하고 추방하려고 하는 즉시 그것도 또한 그것에 고유한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그 폭력은 아주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를 테면 사제적 권력의 전통."

 

지식인 김진석은 이렇듯 자청하여 "여러 차원에서 폭력과도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운다." 스스로 싸우기를 자청하여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문제의 여러 결들을 짚어간다. 그 와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그의 고백대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다.

 

"폭력뿐 아니라 근본주의는 어떤 차원에서는 그저 분석하거나 서술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폭력과 근본주의가 드러나는 방식에 대해 글을 쓰면서, 나는 싸우는 방식을 자청했다. ...<중략>... 힘든 이유는 그렇게 글과 담론을 통해 양쪽으로 싸워도, 결국은 현실의 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바닥에서 기기 때문이다. 폭력과 근본주의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현실의 바닥에서 기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철학적 글쓰기는 "사회와 정치의 바닥, 밑바닥으로 내려와서 기어야 했다. 특별한 혹은 뛰어난 개인들의 정신적 성취를 목표로 삼는 대신, 세속적 삶을 사는 보통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력의 존재를 성찰해야 했다."고 고백한다. 어떤 이는 우리 사회는 행동이 과소하고 말과 글이 과대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분명 우리 사회의 말과 실천의 비율에선 압도적으로 실천이 과소하나, 절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엔 이 둘 모두 절대적으로 과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김진석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 책은 그가 계간 "사회비평"의 편집주간을 맡아 보면서 그간 우리 사회의 "폭력과 근본주의" 문제에 대해 그가 그때그때 발언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책의 연원이 그런 탓에 읽는 중간중간에 다소 겹치는 부분도 보이지만, 그의 비판이 보여주는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이 책은 전체 4부 - "제1부 안티조선에서부터, 제2부 통제권력에 시달리는 자율, 제3부 위험한 근본주의에 빠진 파시즘론, 제4부 개혁을 위한 철학" - 로 구성되어 있다. 안티조선 문제에서는 강준만 중심의 안티조선 운동이 지닌 선명성에 비해 대중들의 내면화된 지배논리가 강조되는 차원에서는 어떤 대응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지,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응 차원의 빈곤함을 지적한다. 김진석은 과연 안티조선운동은 우리 사회의 여러 운동 가운데 배타적 우선권을 부여받아야 할 만큼 시급하고 긴급한 문제인가를 반문한다. 극우경향에서는 조선일보가 제일이겠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다른 유사한 악덕이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안티조선운동이 비판의 주도권을 주장하거나 선명성을 주장하는데 몰두한 나머지 대오의 단일화만을 강조해 냉정하고 섬세한 비판의 가능성, 즉 유연성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있다.

 

무엇보다 김진석의 비판이 가장 날카롭게 겨냥하고 있는 대상은 3부 "위험한 근본주의에 빠진 '일상적 파시즘론'과 비폭력주의 - 임지현과 문부식, 그리고 박노자"에 대한 것이다. 김진석은 근대적 국가권력과 제도 전체를 '악'(때로는 절대악)으로 간주하여, 이에 대한 전면적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는 임지현, 문부식, (박노자) 등의 '우리안의 파시즘' 논의가 지닌 맹점, 사회내의 모든 권력(혹은 권위)를 파시즘과 맹목적으로 동일화하면서 현실적으로 도저히 도달할 수 없어 보이는  '유토피아'적 상태를 상정하는 것 자체를 또 다른 폭력이라며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박노자를 괄호 안에 집어 넣은 것은 임지현, 문부식과 조금 다르게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박노자에 대한 비판 역시 동일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 '일상적 파시즘'이라는 문제들이 민중을 과도하게 메시아적 변혁의 주체로 삼는 민중주의에 대해 나름대로 성찰한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략>... 이런 내면적 성찰을 실행하지 않으면서도 타자의 폭력에 대해서만 저항하는 태도가 일면적이라는 점도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다. 또 지식인이라면 어렴풋이 알려진 사실이더라도 새로운 개념을 빌려 설명하려는 욕구와 의무가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만, 임지현과 <당대비평>은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이론적 틀의 소유권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그 개념 자체가 공허해질 정도로 그것을 총체화시켰을 뿐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이중적 결과를 낳은 듯 하다."

 

민중을 변혁의 주체라고만 보는 민중주의가 형이상학적 오류에 빠졌다면, 거꾸로 임지현의 비판, 민중이 무조건 억압되어 있기에 전면적으로 해방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이에 못지 않게 형이상학적이며 관료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권력을 추방해야 할 것처럼 주장하면서도 어떤 저항이 조금이라도 권력을 행사하면 서슴없이 끝내는 저항운동 자체가 권력의 코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을 가하는 파시즘의 낙인을 찍을 준비를 한다. '일상적 파시즘'의 주장이 위험한 것은 그 논리 내부에 있다. 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저항도 어디에나 편재해 있는 미시 권력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기에 모든 저항이 권력과 파시즘 코드를 이미 내장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면, 저항 그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박노자는 "폭력과 절대로 어떤 형태로든 인연(악연)을 맺지 않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고 하는데, 그런 각오는 한 개인에게는 내면적 성찰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역사적 차원에서는 그러한 기원을 가진 사람도 좀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사회화되고 제도화된 폭력은 군대나 궈투를 즐기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경쟁적 교육환경 속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행위조차 얼마든지 폭력적일 수 있다. 개인적 성실함은 암묵적으로 폭력적 구조를 용인하거나 추인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배타적으로 상징적 권력과 상징자본을 취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소련 체제에서 대학생은 병역을 면제받았기에, 그도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폭력적 사회에서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도 특권적 집단에 속해야 한다는 평범하고도 무서운 진리가 확인되는 것이 아닐까."

 

김진석은 "박노자가 이처럼 '절대로 비폭력적인 양심'에 지나치게 호소할 때, 효과적 정치 경제적 관점이 많은 경우 근본주의"로 뒤덮히게 된다고 비판한다. '일상적 파시즘론'이 대중의 마음에 온통 파시즘의 낙인을 찍어놓고 권력과 국가로부터의 전면적 해방을 외치는 것은 공허하다. 극우적 민족주의, 정치경제적 파시즘과 싸우는 실천적 차원에서 박노자의 양심을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의 차원으로 변환될 때 일상적 파시즘은 근본주의의 공허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진석이 폭력과 싸우며 동시에 폭력의 완전한 제거를 주장(혹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하는 근본주의와도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핏 우리가 오래전부터 혐오해 마지 않던 양비론과 닮아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김진석의 좌충우돌을 양비론과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앞서 김진석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비판은 "현실의 바닥에서 기기" 때문이다. 또 그의 말대로 우리는 "폭력과 근본주의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현실의 바닥에서" 기어갈 수 밖에 없다. 현실을 거세한 이론의 공허함으로 무장했을 때, 비록 미끈해 보이는 논리를 따르는 개인의 양심은 흡족할지 몰라도 그것은 더러운 땅을 여의고는 누구도 깨끗한 땅을 밟을 수 없다는, 땅에 넘어진 자 그 흙을 짚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다는 가르침을 거스르는 일이다. 물론, 나는 김진석이 긋고 있는 전선의 동일한 위치에 서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긋고 있는 전선에 동의할 수는 있다. 그것이 내가 그의 이 책을 읽고 내렸던 결론이다. 현실의 바닥을 기고 있기에 우리는 현재 동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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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비인간화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미진사(1988)


"나는 단순히 난파자(難破者)의 사상을 믿는다. 나는 난파한 극적인 밑바닥에서 태어난 사상을 믿는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15~16년 전의 나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어떤 인간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대중의 반역"이라는 중요한 고전을 토해낸 스페인 출신의 학자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고, 당시엔 민중의 개념(정치적으로는 평등을 좀더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하는)이 머리 속에 제법 확고하게 들어있었으므로 가세트의 이 책들도 그와 관련된 무슨 책들이 아닐까 싶어 구입한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코미디에 가까운 구입동기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표적인 반대중주의, 반민중주의의 기수격인 사람으로 엘리트주의 문화이론가다. 그런 사람의 책을 그저 민중예술론을 펼친 사람이려니(그것도 제목만 보고서) 하고 구입했으니 말이다. 멋지지 않은가? "예술의 비인간화"라니 ... "대중의 반역"을 구입할 무렵에야 그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서 나는 묘한 매력을 느꼈다.

 

어쨌든 이 책이 아직 절판되지 않고, 여전히 나오고, 게다가 대학 교재로 쓰이고 있는 걸 보니 반갑다고 해야할지 우울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으나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의 상당 부분은 현재까지 유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역자 서문에도 밝혀져 있듯 이 책은 원래부터 단일한 기원을 가지고 있는 책이 아니다. "예술에 있어서의 관점(points of view)에 대하여", "예술의 비인간화", "소설 노우트" 라는 각각 다른 세 편의 예술 에세이를 하나로 엮은 "The Dehumanization of Art and Other Writings on Atrs and Culture"를 저본으로 삼아 우리 말로 옮긴 책이다. 이 책에는 그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개념들 - "대중의 반역"이나 "원근법주의", "예술의 비통속성" 등 오늘의 관점으로 보아도 유의미한 여러 개념들이 잘 소개되고 있다. 내가 가진 재주로 그걸 좀더 알기 쉽게 풀어낼 능력이 없으므로 대신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삶과 그의 학문 사이엔 커다란 괴리가 존재한다고 여겨왔는데, 그 이유는 그가 학문적으로 주장한 바와 삶의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국내 학자들의 경우와는 그 괴리가 정반대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가세트는 188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생하여 마드리드 대학을 나와, 독일의 라이프찌히, 베를린, 마르부르크 등 독일의 주요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독일 형이상학과 훗설의 현상학 등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스페인으로 귀국하여 마드리드 대학에서 형이상학 교수로 취임하여 철학, 문학에 관한 수종의 잡지를 편집하면서 현대 스페인의 중요한 작가들을 서구 문단(당시만 하더라도 피레네 산맥 이남 지역은 유럽이 아니란 식의 관념이  살아있던 시절이다)에 소개했다.

 

이 부분까지 그의 학문적 지향점과 삶의 내력이 크게 달라진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스페인시민전쟁 시기를 살았던 학자라는 점이다. 스페인시민전쟁이 발발하자 가세트는 인민전선의 공화국 정부를 지지하다가 결국 국외로 되하여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인민전선 정부가 붕괴시키고 들어선 프랑코 정부는 가세트를 스페인 국가공인 철학자로 추대하고자 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1945년 귀국할 때까지 남미에서 망명생활을 보낸다. 귀국한 뒤에도 그가 프랑코 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듣지 못했는데, 그는 귀국 후에도 독일 등 유럽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강연 활동을 펼치는 등 스페인을 떠나서 생활하는 기간이 많았고, 1955년 세상을 떠난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사상은 대중사회에 반하는 엘리트주의 문화론으로 비판받는다. 가세트는 "대중"이라는 무자격자의 정치적인 지배를 맹렬히 반대해왔는데,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열광은 물론 미국의 실증주의(전문기술주의) 풍조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인물이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F. 니체의 엘리트주의와 오르테가의 엘리트주의는 종종 동일한 것으로 평가되어 동시에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이 둘 사이엔 차이가 있다. 가세트의 입장 "다수를 차지하는 열등한 자가 보다 우수한 자에게 반역하고 있다""대중의 반역"에서 그가 염려한 것은 무자격자인 "대중의 지배" 이긴 했으나 이때 그가 말하는 대중이란 단순히 "노동자,농민 계급"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형이상학자이란 사실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신의 문제이지, 계급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오르테가 이 가세트에게 있어 문화적 엘리트란 것은 정치적 엘리트이기 보다는 문화적으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그로 인해 철저한 고독에 처하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그런 귀족성을 의미한다.

 

나는 스페인의 뜨거움, 열정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 "돈키호테" "오르테가 이 가세트"와 같은 허구적인(?),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현실적인 역사 인물이 출현할 수 있는 토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생각해야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사상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과는 그닥 관련이 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그는 1929년 마드리드 대학 학생 연맹이 지도한 반독재 학생 운동에 동참하여 대학 당국에 사표를 제출하고 반년간이나 강의를 거부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 학생 연맹의 요청에 따라 "대학의 사명"이란 주제로 강연도 하고, 대학이 황태자의 어용을 위한 울타리가 되어선 안 되며 생의 긴박과 정열의 한 가운데에서 열광에 대해서는 냉정을, 경박과 불손한 우열에 대해서는 정신의 진지한 예리함을 유지하여 자신을 변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말해 그의 사상은 정신적 고귀함을 추구하도록 대중을 일깨우는 것에 있었지, 전제왕정이나 귀족정치를 지지하는데 있지 않았다. "나는 단순히 난파자의 사상을 믿는다. 나는 난파한 극적인 밑바닥에서 태어난 사상을 믿는다." 어떤 맥락에서 읽노라면 오르테가 이 가세트야말로 진정한 아나키스트가 아니냔 생각이 들 만큼(물론 이런 고루한 엘리트주의자가 아나키스트일 수는 없겠지만) 그의 사상은 철두철미하게 고립되어 지고(至高)의 미와 덕을 추구했다. 그의 이론이나 사상이 무엇이었든 간에 나에게 그의 삶이 준 감명은 어느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엘리트주의)을 극한으로 추구한 결과, 독재정권으로부터 망명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그 형이상학적 귀족정신의 일단과 그 신념을 추구하는 양심이다.

 

그러니 그의 이론에 전반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어도, 그란 한 인간에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그 반대로 걸어간 수없이 많은 사례들을 살펴보면 더욱더 그렇다. 그의 학문적 주장과 사상에 동의할 수 있는가 없는가와는 별개로 그의 학문과 삶의 내력을 비교하면 진정으로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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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의 탄생』 - 자크 르 고프 | 최애리 옮김 | 문학과지성사(2000)


"자크 르 고프"는 아날학파의 대표적인 중세사학자이다. 페르낭 브로델 등을 아날학파 1세대라 한다면 자크 르고프는 망탈리테의 역사, 아날학파 제3세대로 물질적 구조와 더불어 기독교라는 정신적 구조 속을 살아가는 중세인들의 심성을 함께 그려내려 한 인물이었다. 이 책 "연옥의 탄생"은 중세 기독교 사회에 출현하여 16세기 종교 개혁의 가장 격렬한 논쟁거리였던 '연옥(purgatorium)'이란 개념을 통해 중세 사회와 중세인들의 심성을 살피고 있다. 자크 르 고프는 연옥의 개념 발생으로부터 이후 중세인의 망탈리테 속에서 이 개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피기 위해 먼저 다른 문명권을 포함한 "저승의 지리학"을 펼쳐 보인다. 연옥 신앙의 출현과 수세기에 걸친 형성과정은 기독교적 상상 세계의 시공간적 구조를 크게 변모시킨다. 사회가 온통 종교로 침윤되어 있던 중세 사회에서 저승의 지리 변화는 지리 대탐험 시대의 신대륙 발견에 비견할 만한 일이었다. 저승의 지리가 변한다는 것은 곧 중세인들의 우주관, 삶이 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연옥은 무엇인가? 자크 르 고프는 연옥에 대한 설명을 위해 연옥 이전의 여러 문명권에서 상상했던(이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틀린 말이다. 고대인들이나 중세인들은 저승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 아니라 실재한다고 확신했으므로 이는 상상의 차원이 아니라 실재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저승의 여러 모습들을 두루 살핀다. 유대인들의 저승은 "스올(우리 성서에는 대개 '음부'라고 번역되어 있음)"이라 해서 다른 문화권, 예를 들어 로마인들의 "하데스(지옥)와 엘리시온(천국)"이라는 이원적 저승이 아닌 그저 "저승(일원적 차원)"이었다. 기독교는 그런 점에서 본래의 뿌리인 유대교적인 스올이 아니라 하데스와 엘리시온을 계승하여 죽은 자들이 가게 될 좋은 공간과 나쁜 공간으로 구분한다.

 

12세기 말까지 연옥이라는 말은 명사로 존재하지 않았고, 언어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앞서 말한 실재의 개념으로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세에서 연옥은 갑자기 출현한 새로운 발명품일까?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에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저승을 찾아가는 아이네아스의 행보가 기록되어 있다. 아이네아스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저승 지리에 밝은 키빌레를 길앞잡이로 세워 저승의 문지기 케르베로스, 뱃사공 카론을 거쳐 드디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네아스의 아버지는 엘리시온과 하데스 그리고 인도인들의 이야기를 한다. 고대 인도에서, 베다 시대 말에 최초의 우파니샤드들이 나타났을 무렵(B.C.6세기), 죽은 자들에게는 세 갈래 길이 주어졌다. 하나는 불을 통과해 영원한 삶이 기다리는 브라만의 세계(천국, 로마신화의 엘리시온, 게르만신화의 발할라), 다른 하나는 연기를 통과해 다시 윤회 전생하는 세계, 끝으로 다른 하나는 윤회적 징벌로 곤충이나 짐승으로 태어나는 지옥이었다. 연옥은 이런 개념들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발명된 것이 아니었다.

 


▶ 폴 구스타프 도레 (Paul Gustave Dore, 1832-1883)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삽화가. <신곡(Divina Commedia)>(지옥편, 1861), <돈키호테(Don Quixote)>(1862), <성서>(1866), <천로역정(The Pilgrim's Process)>의 삽화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그는 큰 판형의 삽화를 유럽에서 유행시켰다. 그의 작품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소박하여 어린아이 같은 특징이 있었고, 기괴하면서도 환상적인 묘사가 돋보였다.


우리가 기독교하면 떠올리는 "최후의 심판" 역시 기독교의 발명품이 아니다. 죽음 이후 죽은 자를 기다리는 "심판"의 발명자는 이집트인들이었다. 유대인들이 상상했던 일원적 저승 스올은 죽음 이후 당도하는 곳으로 두려운 곳이긴 했지만 우리가 상상하기 쉬운 고문의 장소로서의 지옥은 아니었다. 스올에서 받게 되는 형벌이란 구더기가 끓는 침상, 갈증, 그리고 불 정도였다. 자크 르 고프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야훼(여호와)는 산 자들의 하느님이기에 스올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야훼가 스올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야훼는 스올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때 이르게 죽은 자를 거기에서 꺼내주거나 일단 스올로 내려간 자를 용서하거나 거기에서 머무르는 기간을 단축시키려는 의도를 보인 적은 결코 없다고 말한다.

 

초기 기독교의 저승은 로마 신화의 저승처럼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되는 이원적인 세계였다. 일단, 죽어 저승에 간 사람은 살아 생전에 죄값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 수용되는(최후 심판에 앞선) 1차 심판을 받는다. 연옥의 존재는 죽은 자들의 심판이라는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 연옥의 존재는 심판이란 세상의 종말에 다가올 최후의 심판 이전까지 죽은 자들을 수용할 저승의 개념 속에서 만들어진다.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대기소로서의 저승이었기에 중세인들은 심판 중간에 다양한 요인들에 따라 형벌의 완화 내지 단축이란 복잡한 과정들을 둔다. 마치 현대의 재판과 심리 절차, 이후 수감 형태가 그러하듯 말이다. 중세의 연옥은 그런 과정을 거쳐 근본적으로는 사면가능한 죄들을 정화하는 장소로 나탄다. 천국에 갈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지옥에 보내기도 어중간한 죄인들은 일정 기간 동안(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연옥에 수용되어 가혹한 징벌을 통해 죄를 사면받을 수 있다. 즉, 최후의 심판 이전까지 선고 유예를 경험하는 곳이다.

 

중세인들은 성직자건 일반 대중이건 아는 것은 오직 성서뿐이었으므로, 그들에게 성서는 필요 충분한 권위였으므로 연옥 또한 성서적 권위 없이는 존립할 수 없었다. 자크 르 고프는 종교 개혁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연옥" - 성서에는 연옥이란 말이 직접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 다만, 연옥의 개념을 연상할 수 있을 법한 성서적 근거들을 찾아보고, 연옥의 탄생이 중세인들의 망탈리테에 끼친 영향들을 추적한다. 연옥의 출현은 특히 교회가 현세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 시공간인 저승까지도 장악하는 계기가 된다. 앞서 게르트 미슐러의 "자살의 문화사"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교회는 자살, 즉 죽음을 통제함으로써 모든 인간을 손아귀에 틀어쥐었다. 기독교 교회는 신도들에게 이승이 사후에 축복받는 곳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라 가르쳤으며 이 놀라운 가르침은 초기 기독교 전파 당시 로마 제국의 권력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순교를 열렬히 선망하는 기독교도들의 믿음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세 기독교 사회로 넘어와 교회는 고통스러운 이승을 빨리 떠나고 싶어하는 신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천국행 티켓을 끊지 못하도록 자살을 엄격하게 금지했고, 자실을 금지하는 대신 고해성사를 도입한다. 교회는 죽음 이후 최후의 심판까지 이승에서 신자와 교회의 기도로 그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연옥을 탄생시킴으로써 신이 독점하고 있는 저승 세계에 일정한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교회는 연옥을 차지함으로써 저승에 대한 권리를 신과 나눠가지게 된다. 교회는 자살을 통제하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통제함으로써 죽은 자들이 죽어서도 교회의 품으로부터 벗어나 편히 잠들거나 헤매고 다니지 못하게 했다. 그것은 교회의 경제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신자들은 사후 자신이 천국으로 직행할 것이라 믿지 못했기에 일말의 가능성을 위해 사후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여 연옥에 머물지도 모를 영혼 구제 사업을 위해 써주길 희망했다. 때로는 교회 당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도 했으며, 미사 이후에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한 연보 접시"를 돌려 "연옥 구제"라는 특별 계정에 배당했다.

 

자크 르 고프는 비록 중세 시대 연옥의 이미지가 천국보다는 지옥에 가까운 것들이었으나 연옥의 존재 자체는 천국을 향한 낙관적인 전망과 열망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꿈 속에 연옥의 존재는 그 섬세함과 공정성, 정확성과 합리성으로 늘 희망의 자리에 존재해왔다. 이제 현대에 있어 연옥의 망실은, 죽음이란 무산된 지평이며 "사람들을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문제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자크 르 고프에게 연옥은 그저 천국과 지옥의 중간 지대, 어디쯤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늘 함께 하고 있는 죽음의 자리를 현실 속에서 적절하게 자리잡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중세 연옥의 출현은 단지 교회의 권력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중세인의 망탈리테 속에서 그런 합리적인 요소들, 낙관의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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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에도의 패스트푸드 : 죠닌의 식탁, 쇼군의 식탁』 - 오쿠보 히로코 |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2004)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도쿄이야기』를 읽고, 나는 묘한 질투심에 사로잡혔었다.  1921년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태어나 컬럼비아·하버드·도쿄 대학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한 벽안의 외국인이 빠져든 '미시마 유키오, 다니자키 준이치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TV에는 종종 한국에 빠져든 외국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직까지 우리 문화의 진수랄까, 내면을 깊숙이 이해하고 그에 대해 책을 쓴 외국 학자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라면 질투심이라고 하기엔 미약한지도 모르겠다. 서양사가 미시사까지 속속들이 이를 수 있는 바탕엔 작은 도시 시청 지하실의 문서고에 저장된 중세 서민의 출생신고 서류뭉치를 비롯한 시의 장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외국의 침탈이나 식민지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본이기에 문화의 단절을 경험하지 않은 일본이기에 외국인인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도쿄이야기』 같은 책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질투심이란 어쩌면 그런 류의 것이리라.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면 조선이란 확신에 찬 도학자들의 국가는 양대 왜란(임진, 정유년)과 양대 호란(정묘, 병자년)을 겪으며 국가의 중추가 부러지는 최악의 국가 위기 상황을 맞이한 뒤 결국 이를 회복하지 못하고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근대의 경험이 주체적인 것이 되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분명히 이렇듯 국운융성기가 아닌 국운쇠퇴기에 들이닥친 외부적 요인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가적 에너지와 능력이 쇠퇴한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어찌되었든 기록을 중시했던 조선시대의 자료들조차 양대 전란을 겪으며 미처 회복하기도 전에 다시 국가를 빼앗기는 사태가 빚어지고 우리 역사는 커다란 굴절을 겪게 된다. 조선시대의 양대 전란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과도기에 각각 조선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라 할 수 있지만, 한국전쟁은 이데올로기적인 관점말고 단순히 정치역학적인 관계로만 보았을 때는 한반도를 전장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격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은 그나마 보존되던 우리 사료를 또 한 차례 불살라버리고 만다.


 덴푸라(天ぷら) 같이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 역시 에도시대 죠닌들의 주요 간식 거리가 발전한 것이다.

일본단기대학 생활과학과 교수인 '오쿠보 히로코' 『에도의 패스트푸드- 죠닌의 식탁, 쇼군의 식탁』은 에도 시대(도쿠카와 시대, 1603-1867)의 일본 '에도(도쿄)'를 풍미한 음식들 덴푸라(天ぷら), 스시(すし), 소바(蕎麦) 등을 바탕으로 당시 일본의 생활사를 짚어보이고 있는 책이다. 부제격인 죠닌의 식탁, 쇼군의 식탁에서 알 수 있듯 상하귀천의 음식 문화를 일본인 특유의 섬세한 시각으로 들여다 본다. 마치 우리가 에도의 번화가 뒷골목 포장마차에 앉아 소바 그릇을 놓고, 덴푸라를 먹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에도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정이대장군(세이이다이쇼군, 征夷大將軍)에 임명되어 도쿠가와 막부(幕府)를 개설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장장 260여년간 지속된 에도 시대는 막부 성립 이후 100년간을 전기, 18세기 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를 중기, 그 이후 막부의 멸망에 이르는 과정을 후기로 본다.


오늘날 중국의 전통 복장이나 풍속 중 상당수가 만주족이 세운 나라인 청(淸)의 것인 것처럼, 우리에게 조선은 아주 먼 과거 우리 민족이 세운 여러 나라들 중 하나가 아니라 지금도 단절과 굴절, 변화와 지속을 거듭하며 이어지는 나라이다. 에도시대를 주목해보아야 할 이유는 우리에게 조선이 식민지시기를 거치며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는 것처럼 일본에게 있어 에도 시대는 역시 그들이 현재 탈아입구하여 서구화된 바탕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일본적인 것들의 원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구 백만에 이르렀던 거대도시 에도(江戶)는 쇄국이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260여년간 지속된 막부체제가 빚어낸 일본 문화가 있다. 비록 쇄국이라고는 하지만, 중국, 조선은 물론 네덜란드 등의 나라들과 교류를 계속하며 이 시기 일본은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갔다.

 

『에도의 패스트푸드』는 단순히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음식이란 사람이 먹는 것이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에도 시대 죠닌들의 생활사라고도 할 수 있다. 에도 시대의 패스트푸드들이 등장한 까닭을 보자. 그것은 워낙 에도 시대의 죠닌들이 바쁘게 살았고, 또 인구 백만의 대도시답게 흥성했기 때문이다. "에도의 패스트푸드"는 '제1장 에도 패스트푸드의 활약상'을 통해 에도 특유의 음식문화가 사회의 변천과 어떻게 결부되어 발전해가는지를 덴푸라, 스스, 소바 등의 역사를 따라가며 추적한다.



일본에서 소바를 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한것은 덴쇼(1573-1592)시대 조선에서 건너온 승려 원진이 일본 도다이지에 전파해준 이후부터라고 한다. 에도 시대 일본에선 엄청난 소바 열풍이 불어 승려들이 소바를보고자 월담하는 사태까지 생겨 일본 불교 사찰 중엔 지금까지 소바를 금지시킨 곳도 있다고 한다.  


'제2장 에도의 맛 탄생'에선 에도(일본) 음식하면 떠올리게 되는 특유의 단맛과 짠맛, 일본 과자류하면 달콤짭짜름한 특유의 맛이 생각나는데 이것은 에도 특유의 미각이기도 하다. '제3장 쇼군의 식탁, 죠닌의 식탁'에는 밥상에서 일어나는 봉건제하 계급간의 차별과 차이를 엿볼 수 있고, '제4장 에도의 식도락 붐'에서는 일본의 국물 맛내기의 대명사인 '가츠오부시'와 '화과자'의 세계를 다룬다.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는 한자어인 요리(料理)는 사실 일본식 한자어이다. '제5장 에도 최고의 요리집, 야오젠' 일본 외식 산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야오젠의 출현은 비록 신분제의 속박은 남아있지만 신분과  상관없이 돈만 있으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한정식' 혹은 '궁중요리'는 대표적인 한국식 정찬으로 생각되는 것처럼 일본의 정찬으로 평가받는 것은 가이세키 요리이다. '제6장 일본 요리의 완성'은 이런 가이세키 요리의 탄생과 처음엔 귀족들의 향응을 위한 이 요리가 어떻게 서민대중에게까지 널리 퍼지게 되는 지를 보여준다. 중국요리에 영향을 받은 일본 요리와 남만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의 영향을 받은 요리 등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다. 

 

오쿠보 히로코는 이런 에도 시대의 문화 가운데 특히 '패스트푸드'라고 할 수 있는 죠닌(町人)의 식문화(食文化)에 주목하고, 이것을 에도시대 중기 이후 일본의 중요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는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면밀하게 분석한다고 해서 이 책이 학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음식 이야기인 만큼 흥미를 유발하고, 미각(味覺)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적절히 끼워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쇼군(將軍)은 익히 들어 알겠는데, 죠닌은 무엇인가? 그것을 이해하면서 읽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일본은 전후 부흥 과정을 거치며 서구인들에게 "경제동물"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할만큼 장사수완과 그들만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이 밑바탕엔 에도시대 형성된 그들의 장인정신과 상인정신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잘 알려진 '스시'의 유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설이 분분하다. 본래부터 일본에 존재했다는 설부터 동남아시아 전파설, 11세기 중국 송대에 유행했던 초밥이 한반도를 타고 일본으로 전파되었다는 설 등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 기존에 일본에 있었거나 외래에서 전래되었거나 우리는 맛있게 먹으면 될 일이긴 하다. ^^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은 에도 시대 이전 100여년간의 내전, 즉 전국시대를 경험했다. 이를 평정한 것이 오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나가가 암살되고 난 뒤 그의 유업을 이어받아 완성한 것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이고, 다시 이를 계승하여 봉건제를 기반으로 평화를 지속시킨 것이 도쿠카와 이에야스이다. 전국시대는 거듭되는 전란으로 사회가 불안정하여 상공업이 정착되기 어려웠다. 문화와 상공업은 주로 전쟁과 관련된 것이거나 전쟁과 무관한 평화를 지속한 천황가의 궁중문화만이었다. 전란을 수습하고 에도에 막부를 설치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봉건지배체제를 단단히 하기 위해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실시하고, 신분간 이동 및 직업을 차별하도록 했다. 지배계급인 쇼군과 다이묘(大名)는 그들의 본거지인 성(城) 밑에 죠카마치
(성하정, 城下町)을 두어, 마치 거대 사찰 밑에 사하촌이 형성되는 것처럼 다이묘를 정점으로 이들을 호위하는 무사계층의 거주지를 조성한다.

 

지배계급인 무사계층은 조선 시대의 양반처럼 농사, 제조, 상업에 직접 종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죠카마치 인근에 상인과 공인을 집단으로 거주시켜 자신들의 생활에 편의를 돕도록 했다. 이들이 바로 죠닌(町人)이었다. 지배계급은 죠닌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제공받았고, 이들을 보호 육성함으로써 필요한 재화를 얻기도 했다. 봉건신분상으로 가장 최하층에 속했지만 실제로는 농민이 최하층이었다. 농민은 그야말로 굶어죽기도 어려울 만큼의 식량만을 제공받았다. 이런 사회 환경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죠닌을 중심으로 한 상공업문화가 오늘날 에도 문화, 즉 일본문화의 중추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을 열광시켜 금값으로 대접받던 청화백자나 조선도예의 맥이 끊긴 데 반해 일본의 일생일업(一生一業)에 바탕한 대를 이은 가업 정신은 죠닌들에 의해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도(刀)의 명인으로 손꼽히는 가네코는 25대, 700년을 이어오고, 포목전으로 시작한 미츠이 등은 이후 금융업에 손을 대는 등 사업영역을 확대하여 라면에서 인공위성까지 생산하는 일본 최고의 종합상사가 되었다.

 

이 책의 뒤에는 저자가 참고한 여러 문헌들이 나오고 있는데, 걔중에는 1638년의 것들도 있었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에게도 이런 자료들이 풍족하다면 풍족할지도 모르겠으나 공부가 부족한 나로서는 그런 자료들을 찾는 것은 물론 우리 문화의 여러 단층들을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관찰한 책들이 하루빨리 나와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독서였다.


* 참고로 이런 나의 아쉬움은 책과는 상관없는 것이고, 책의 만듦새는 나무랄 것 없이 좋았고, 번역에도 공이 많이 들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다만 한 가지 남는 아쉬움은 비록 가까운 일본이고, 이것저것 일식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는 있다손 치더라도 도판이 일본 판화만으로 한정되어 있어, 소개되고 있는 요리들을 눈으로 직접 보는 즐거움이 적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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