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년 소녀의 사계가(四季歌)

- 고은





네 작은 무덤가에 가서 보았네
가장 가까운 아지랑이에
낯선 내 살의 아지랑이가 떨었네
겨우내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로 보이는 그 마을의 슬픔
버들옷 뿌리 기르는 시내가 흐르네
어느 날의 봄 비오는 괴롬을 마감하려고
내 봄은 어린 풀밭가에 돌아왔는지
봄에는 네 무덤조차도 새로 있었네
그렇지만 나는 무언가 좀 기다리다 가네



여름


네 어릴 때 가서 살아도 아직 그대로인
한 달의 서해 선유도(仙遊島)에 건너가고 싶으나
네가 밟은 바닷가의 단조한 고동소리
네 소라껍질 모아 담으면
얼마나 기나긴 세월이 그 안에서 나올까
나는 누구의 권유에도 지지 않고 섬을 그리워하네
언제나 여름은 어제보다 오늘이고
첫사랑과 슬픔에게 바다는 더 푸르네
옛날의 옷 입은 천사의 외로움을
이제 아주 잊고 건너가지 않겠네 건너가지 않겠네



가을


내가 내리고 떠난 시골 역마다
기침 속의 코스모스가 퍼부어 피어 있고
네 눈시울이 하늘 속에서 떨어졌네
밤 깊으면 별들은 새끼를 치네
네 죽음을 쌓은 비인 식탁 위에서
나는 우연한 짧은 편지를 받았네
편지는 하나의 죽음, 하나의 삶
나뭇잎이 스스로 자기보다는 바람에 져야
가을 풀밭 벌레는 화려하게 죽고
이토록 네 지문(指紋) 같은 목소리의 잎이 지고 있네



겨울


너의 뼈가 누운 겨울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한 번만이라도 네 무덤가에 돌아가서
세상을 떠올리면서 변한 연필도막으로 쓰고
더 쓸 것이 없어서 눈물이 흐르네
아득한 네 어린 입술에 눈송이가 붙어 녹았네
어이할 수 없이 모든 것은 神이었고
겨울은 부디 가지 말아야 했고 나는 가야 했네
아무리 잘 견디었던 어릴 때의 추위도
눈이 오면 너에게 대해서 너만한 것이 되어
이제는 네 죽음에서나 나는 잠들어야 하겠네

*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젊은 날의 고은은 데카당스(decadence)했다. 우리 말로 '쇠미(衰微) ·퇴폐 ·조락(凋落)'을 의미하긴 하지만 이 단어를 우리 말로 옮기면 본래 말이 지니고 있는 뉘앙스가 어딘가 단단해지고, 우아해지는 느낌이다. 뭐랄까? 데카당스를 음식에 비유하자면 중화요리집에서 볶음밥에 곁들여 나오는 계란탕의 느낌이다. 약간의 부추와 맑은 국물에 '힘아리'없게 풀어져 있는 희뿌연 계란 국물말이다.

문학에서 데카당스란 로마제국 말기 문예의 병적인 특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하는데, 19세기 말 보들레르와 베를렌느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상징파 시인들이 스스로를 '퇴폐파'라 자칭하면서 이후 그들의 예술적 경향을 일컬어 데카당스라고 평하기 시작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데카당스란 말에는 퇴폐, 쇠락이라고 번역되지만 한 편으론 자기 연민과 파괴의 정서가 엿보인다.

계란탕은 메인 요리가 될 수 없고, 볶음밥에 곁들여진 서브 메뉴에 불과하지만 계란탕 없이 먹는 볶음밥에 목이 매는 것처럼 데카당스는 엄격하게 말해 문학사조로 자립하지는 못했지만 시대를 번갈아 가며 아니, 어느 시대에나 데카당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시인 한둘은 반드시 존재해왔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데카당스의 시인들, 그 시인들은 대개가 '천재(?)'였고 반드시 천재여야만 했다. 혹은 시인이라면 반드시 천재여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었다. 데카당스 자체가 시의 본질이 될 수는 없지만 시 혹은 시인이 지녀야 할 어떤 멋과 맛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으리라. 그런 맥락에서 나는 늘 (데카당스한)시인이 너무 오래 살면 추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데카당스가 멋있기 위해서는 우선 젊어야 하기 때문이다.

데카당스란 무엇보다 전통, 질서, 고전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데카당스의 시에서 비춰지는 이 탈출의 모습은 때때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데카당스는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일종의 위악, 의도적으로 아름다움을 공격하는 느낌을 풍긴다. 그 까닭은 이 같은 탈출을 시도했던 이들이 대체로 사회적으로 아쉬울 것이 별로 없는 부르주아 계급의 시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실을 부정하기엔 너무 나약한 풍토에서 자라난 이들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현실부정은 겉으론 파괴적으로 보이지만 그 실천은 개인적이고, 이벤트의 일종으로 보이기 쉬웠다.

현실이란 알을 깨자마자 뜨거운 물로 뛰어든 계란처럼 데카당스는 출현하자마자 곧장 힘아리 없이 굳어져 버렸다. 고은이 썼던 젊은 날의 시편들이 너무나 아름답지만 한 편으론 아쉬운 까닭은 그의 성장 혹은 노숙과 함께 그의 시세계 역시 계속해서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계속해서 데카당스한 시인으로 머무르길 바랐다면 그의 생(生)도 그와 함께 일찍 종결되길 바랐어야 했다. 그러나 시인은 계속해서 나이를 먹었고, 나이를 먹는 만큼 그의 시도 함께 성숙해갔다.

아득한 네 어린 입술에 눈송이가 붙어 녹았네
어이할 수 없이 모든 것은 神이었고
겨울은 부디 가지 말아야 했고 나는 가야 했네

시인에게 사계는 계속해서 다가왔고, 시인은 계속 가야만 했을 것이다. 이 시에서 나는 고은의 사계(四季)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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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전집』 - 백석 | 김재용엮음 | 실천문학사(2003)


백석전집 혹은 "백석"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 해보자고 마음 먹은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도 어렵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제비손이손이하고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서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못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홍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여우난골족(族)' 중에서>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 중 뒷부분만 발췌해봤다. 과연 저 시를 읽으며 중간에 사전 혹은 다른 해설 없이 읽는 것이 쉬운 일일까? '엄매'는 엄마일 테고, '아르간'은 '아랫간'일 테지만, '조아질'이라니 이건 무슨 말일까?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 이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 지금 30대 이상인 사람들은 백석이란 이름을 교육 과정을 통해서는 한 번도 접해볼 수 없었다. 그런 시인이 어디 백석뿐이랴. 우리는 김기림(金起林), 박팔양(朴八陽) 등 소위 월북작가로 분류되었던 이들의 시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백석을 비롯한 이들이 해금되어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의 일이었다. 시인 고은(高銀)은 백석의 시를 “근대 시사(詩史)에서 가장 빛나는 시 중의 하나”라고 평했다. 고은뿐만 아니라 시인 신경림은 "내가 우리 시에서 단 하나만 꼽으라 해도 서슴지 않고 꼽는 시인이 백석이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백석의 시 '남신의 주류동박시봉방'은 한국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 중의 하나다"라고 말하며 그의 시가 지닌 아름다움에 아낌없는 헌사를 바치기도 했다.


 ▶ 아오야마(靑山) 학원 3년 무렵의 백석

그런 시인이 오랫동안 묶여 있었으니 우리 문학사에 드리워진 냉전과 분단의 그림자는 한반도의 허리만 두동강낸 것이 아니었다. 백석은 191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했다. 그의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한 뒤 그는 도쿄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 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가 필명으로 백석(白石)을 사용한 것은 일본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새로운 문물과 문화를 익혔고, 1935년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뒤 그의 별명은 '모던보이'였다. 그의 시가 한없는 토속성에 기대어 있는 것과 상관없이 그의 잘생긴 외모와 풍기는 멋으로 인해 지어진 별명이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백석의 고향 정주는 눈이 많은 곳이었다. 그가 수원 백씨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시에서 백색의 이미지는 고향 정주의 휘날리는 눈발과 함께 백석의 시세계의 주된 심상 중 하나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그에게 내리는 눈은 그냥 내리는 눈이 아니라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기에 내리는 눈이다. 나타샤, 자야(子夜)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김영한은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원래 가난한 집안 출신은 아니었으나 어머니가 친척에게 속아 가산을 탕진하고, 거리에 나앉게 되어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된 여인이었다. 자야의 기명은 진향(眞香). 당시 기생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기생과는 다른 의미에서 신여성이었다.



 

김영한은 당시 함흥 영생여고 교사들의 회식 장소에 나갔다가 우연히 백석을 접하게 된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내 사랑 백석’에서>라고 말했다 한다. 김영한에게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준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子夜吳歌

李白

長安一片月 장안의 한조각 밝은 달 밤에
萬戶擣衣聲 집집마다 다듬이 소리 들려오고
秋風吹不盡 가을바람 소리 그치지 않으니
總是玉關情 이 모두 옥관을 향한 정이리라
何日平胡虜 어느 날에야 오랑캐 평정하고
良人罷遠征 원정 마치고 우리 낭군 돌아올까

 

이 시는 서역 원정을 나선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의 정조를 그린 시이다. 김영한에게 자야라는 호를 지어준 탓일까. 백석과 자야는 이렇듯 평생을 서로 연모하며 지내야 할 운명이었다. 자야가 서울로 돌아온 뒤 백석은 학교를 그만두고, 백석을 따라 서울 청진동으로 올라와 두 사람은 혼례도 없이 살림을 차린다. 이상과 금홍이가 이 시절 그러했던 것처럼... 백석은 자야를 통해 많은 시적 영감을 얻는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느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는 것만 같구려
<'바다' 중에서>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백석의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떼어내기 위해 강제로 결혼을 시킨다. 부모의 강요에 못이겨 결혼하였으나 자야를 잊지 못한 백석은 다시 자야에게 도망질쳐 온다. 동경 유학생 백석과 자야는 그렇게 뜨거운 사랑을 불태웠으나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백석은 자야에게 함께 만주로 도망쳐 살자고 했으나 자야는 이를 거절했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자야, 아니 나타샤는 끝끝내 오지 않았다. 자야는 자신 때문에 한 명의 훌륭한 시인, 아니 자신의 연인이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1939년 백석은 '100편의 시를 담고서'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하고, 홀로 만주 신경으로 떠난다. 두 사람은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만주에서 잠시 세관 업무를 하기도 했으나 해방 이후엔 고향 정주로 돌아와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을 발표한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중에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은 그가 분단 이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백석에게 '월북 작가'란 딱지를 붙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남의 정지용, 북의 백석'이라고 하듯 백석은 한 번도 월북한 적이 없었다. 그의 고향이 평북 정주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월북'한 것이 아니라 '월남'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그에게 고향이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쉽게 결론지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어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寞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 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故鄕' 전문>

 

백석의 시에서는 평안북도의 토속 방언들이 생생하게 묻어나고 있다. 해방 이후까지 박인환이 모더니즘의 독소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동안, 김수영이 모더니즘을 '근대를 향한 모험'으로 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라 할 수 있는 1930년대 백석은 '근대'라 할 수 있는 '모더니즘'과 '전근대'라 할 수 있는 '민족'을 결합해냈다.



  1980년대 중반 백석이 70대 중반일 무렵 촬영한 가족사진. 백석 옆이 부인 이윤희씨, 뒤는 둘째아들(중축 씨)과 막내딸.

오랫동안 금기였던 시인이었기 때문일까? 1987년의 해금 이후 이동순의 "백석 시전집"을 비롯해 내가 알고 있기로만 "백석 시전집"은 네 차례에 걸쳐 만들어졌다. 평생을 살며 시를 쓰지만 전집은 커녕 한 권의 시집을 묶기도 쉽지 않은데 비해 어쩌면 그는 호사를 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백석의 시전집은 아직도 미완성일 게다. 이동순의 백석시전집에는 그가 북에 남아 있는 동안 쓴 시들은 누락되어 있고, 북한문학연구가 김재용(원광대 교수)의 이 전집은 백석이 북에 머무는 동안 쓴 동화를 비롯해 여러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제1부에서는 8.15이전에 발표된 그의 첫시집 "사슴"에 수록된 작품을 비롯해서 이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들과 수필, 소설 등을 담고, 제2부에서는 8.15 이후 즉, 그가 북한에 머무는 동안 발표한 작품들을(여기에는 국내에도 동화로 출판된 바 있는 백석의 동화시 '집게네 네 형제'가 포함되어 있다)을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전부일까. 사실 김재용 교수의 "백석 전집"은 가치있는 책이긴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앞서 '여우난골족'에서도 이야기했듯 오늘날 우리에게 백석이 살던 시기의 평북 방언이 생생하게 전달되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시어들에 대해서는 편집자주 처리를 해서라도 원뜻을 밝혀주었어야 한다. 다음 개정증보판에서는 이런 점들과 다른 미비점이 좀더 보충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동안 백석은 1961년 '돌아온 사람' 등 3편을 "조선문학" 지에 발표한 뒤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왔고, 1963년 52세를 일기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었다. 지난 1999년 세상을 등진 자야 김영한은 매년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 하루 동안은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실제 백석은 1995년 1월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해에는 자야 김영한이 "내 사랑 백석"을 '문학동네'에서 발간하기도 했다. 김영한은 1997년 창작과비평사에 2억원을 재원을 출연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토록했다. 시집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백석문학상은 1999년부터 수상되기 시작했다. 자야는 이 상이 처음 시행되던 1999년 11월 백석이 있는 세상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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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낙서*

- 고은

여름방학 초등학교 교실들 조용하다

한 교실에는
7음계 '파'음이
죽은 풍금이 있다
그 교실에는
42년 전에 걸어놓은 태극기 액자가 있다
또 그 교실에는
그 시절
대담한 낙서가 남아있다

김옥자의 유방이 제일 크다



출처 : 고은, 『순간의 꽃』, 문학동네(2007)


* 본래 이 시엔 제목이 없지만 전체 구성으로 보아 내 임의대로 '대담한 낙서'란 제목을 붙여 보았다.


**


일본에는 “한 줄도 길다”는 짧은 정형시의 대명사 ‘하이쿠'가 있다. 시(詩)도 유행을 타는 지 요즘 나오는 시들 가운데는 수사학적인 기교로 충만한 긴 시편들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런 시들은 문학적 성취와 별개로 일단 정이 가지 않는다. 말씀언(言)에 절사(寺)가 붙어 시(詩)라 부르는 데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런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복어 회 같은 시를 좋아한다. 얇게 회를 떠서 회가 놓인 접시의 문양이 보일 정도의 투명함과 복어 특유의 질깃한 식감(食感)으로 인해 오래 씹어 그 향과 맛이 입에 남는 시를 좋아하는 편이다. 복어 회를 즐기는 미식가들 중에는 얇게 포 뜬 복어 회에 맹독으로 가득한 복어 알 하나를 얹어 함께 맛을 보는 이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것이 시적(詩的)인 일, 시를 완상(玩賞)하는 법 중 하나라 생각한다(참고로 가장 맹독을 자랑하는 황복 한 마리엔 300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을 품고 있다).


다작의 대명사인 고은 선생이 작품 활동을 시작한지 어느덧 50년을 맞이했다. 시작(詩作)의 먼 길 만큼이나 다양한 작품 세계를 보여 온 원로 시인이지만 나에겐 당신이 쓰고 발표한 시들 가운데 알알이 맛좋은 시들로 가득한 시집으로 첫 손에 꼽을 것은 단연 『순간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김옥자의 유방이 제일 크다”는 파격(破格)을 선보이는 이 시는 이 시집에서도 단연 백미에 속한다. 그러나 의뭉으로 뭉쳐져 그것이 더욱 사랑스러운 이 시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구절은 “한 교실에는/ 7음계 '파'음이/ 죽은 풍금이 있다”는 묘사다.


지난 추석 무렵 배달되어 온 <시사인>합병호(52.53호), 문정우 편집국장의 글에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시인 이문재 선생의 시창작 수업 이야기가 나온다. 이문재 시인은 수업 중에 언제나 이런 이야기, “첫째, 오늘 난생처음 본 것은 무엇인가. 둘째, 늘 보아오던 것 중 오늘 새롭게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다. 고은 선생의 시선에 걸려든 “7음계 ‘파’음이 죽은 풍금”이란 시인 이문재 선생이 시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 가르치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시인은 우리가 늘 보아오던 '죽은 풍금'을 마치 난생처음 본 것처럼 새롭게 보도록 섬세한 관찰력으로 이끈 뒤에 달려오는 파격 앞으로 우리들을 몰아세운다.


시에도 독(毒)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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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9 09:02
하루

- 고 은


저물어 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하루가 저물어
떠나간 사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오 하잘것없는 이별이 구원일 줄이야

저녁 어둑밭 자욱한데
떠나갔던 사람
이미 왔고
이제부터 신이 오리라
저벅저벅 발소리 없이

신이란 그 모습도 소리도 없어서 아름답구나

*

아침 출근길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별한 뒤엔 사람이 달라진다.
보이지 않던 것들, 보이지 않던 소리들,
보이지 않던 사람들, 보이지 않던 감정들이
죄다 안아달라고 달려든다.

늙어서 더이상 이별할 것이 제 목숨 밖에 없는 사람도
이별을 구원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삶에서 이별은 불가피(不可避)한 것이다.
불가피하다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뜻이지만
이 말의 의미가 강렬하면 할수록
가능한 한 피하고 싶다는 그 마음은 또 얼마나 강렬한 것인가.

발소리도 없이 다가오는 신은 어쩌면 세월의 풍상이다.
이별할 시간이 다가오면 문득 세상은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던
모든 것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존재하던 것의 갑작스런 부재는 낯설다.
우리는 모두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는다.
아무도 죽음을 두 번 경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죽음은 낯설다.
그러나 우리는 이별을 통해서 죽음을 미리 체험한다.
기억에도 없다면 부재하는 존재이건만
우리는 사소한 이별의 경험으로 죽음을 알게 된다.

이별은 더이상 만날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의미다.
이별 뒤에 열린 새로운 세상 앞에서
부재하는 이를 기억하는 것은 다행한 일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미리부터 조상하는 일인가.



오 하잘것없는 이별이 구원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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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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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것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한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


가끔 기형도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이들의 대책없는 애정에 놀라고... 돌아서서 그를 질투한다. 늙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시인이란 얼마나 시인답지 않은가! 기형도가 멈춰서는 정거장이란 늘 어두운 황혼이 깔려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죽음을 피해 바그다드로 달아난 이슬람 상인의 일화처럼 결국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천천히 죽어간다. 망각은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길이 아니며 망각없는 고통은 끝끝내 한 가지 길을 일러주지 않는다. 길은 무수한 갈래로 가지를 치고 나는 매순간 그 길의 한 가운데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아, 누추한 육체 속에 머물다 가는 영혼이여! 그대의 영혼은 또 얼마나 황량하냐? 그렇게 묻기 전에 이미 모든 길들은 흔들리며 내 앞으로 스쳐간다. 아니 그 길들은 시내와 같이, 시간과 같이 흘러왔다가 흘러간다. 흘러오는 것을 지켜본 뒤에 내게 남은 것은 늙었다는 자각이다.

시인 고은은 어려서 이미 늙어버렸다고 말한다. 태어나자마자 늙어버린 시인은 그래서 추레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미 누추한 육체를 자각하기도 전에 그대의 영혼은 꽃씨 한 번 시원하게 날려보지 못한 채 시들어버렸다. 시든 세상의 시인이란 그래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남들보다 먼저 늙고 그들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그의 시체를 밟고, 뜯어 먹으며 다가오는 즐거운 죽음을 기다린다.

그대, 천천히 죽어가는 즐거움을 맛보는 순간이 어때? 견딜 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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