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덕으로써 정치하는 것을 북극성에 비유하자면 북극성은 그곳에 그대로 있지만 뭇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다.”




『논어(論語)』 제2편 「위정(爲政)」은 공자의 말씀 “爲政以德”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1편 「학이(學而)」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위정」편이 되었다. 다만 「위정」편에서 조금 특이한 부분은 『논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仁)’이란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학이」편의 처음이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학이」의 내용이 모두 배움에 대한 것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은 것처럼 「위정」편 역시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정치에 대한 가르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신(北辰)’이란 말은 대개 ‘북극성’을 지칭한다고들 하는데, 북극성이 아니라 천구(天球)상의 실제 북극점을 가리키는 말이란 주장도 있다. 북극성(北極星, Polaris)은 천구북극에서 불과 1° 정도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천구북극과 매우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는데다 안시등급 2.5등의 비교적 밝은 별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항해자나 나그네의 방위의 기준이 되었다. 공자는 “居其所(그곳에 그대로 있다)”며 북극성이 정지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 북극성은  천구북극을 중심으로 작은 반지름으로 일주운동을 하고 있다. 다만, 그 회전반경이 매우 작아서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북신이 북극성을 의미하든 천구상의 실제 북극점을 지칭하는 것이든 그 자체에 주목하기 보다는 공자의 말에 숨겨진 본뜻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북신’에 대비되는 말이 ‘중성(衆星)’인데, 북신이 봉건제 국가 아래에서 최고 위정자, 다시 말해 천자(天子)를 뜻한다면 중성은 백성과 신하를 의미한다. ‘덕으로써 정치하는 것을 북극성에 비유’했고, 북신과 중성의 관계는 위정자와 백성의 관계를 뜻하는 것이므로, ‘공(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달라진다. 공(共)의 쓰임새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첫 번째 의미는 ‘함께 하다’이고, 두 번째 의미는 ‘공손하다’, ‘바치다’, 세 번째 의미는 ‘향하다’, ‘맞아들이다’이다.

첫 번째 의미로 해석하면 “뭇별들이 북극성과 함께 하는 것과 같다”로 볼 수 있고, 두 번째 의미로 해석하면 “뭇별들이 북극성을 향해 공손히 받드는 것과 같다”로 볼 수 있으며 세 번째 의미로 해석하면 “뭇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다”로 볼 수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의미에 무게를 두고 싶지만, 공자가 “君君臣臣父父子子”(「안연」.11)라 하여 임금은 임금대로 신하는 신하대로 자기 본분을 다할 것을 강조한 사람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논어』를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 해석하는 것 같아서 피하게 된다.

두 번째 의미는 ‘공(共)’을 ‘공(拱)’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군주를 향해 백성들이 공손하게 인사한다는 의미가 된다. 첫 번째 의미가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수평적인 것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면 두 번째 의미는 지나치게 백성을 낮추는 것 같다. 후대에 가서 공자를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는 맹자(孟子)와 순자(荀子) 모두 군주에 대해 경계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공자가 봉건적 질서를 옹호했다고는 해도 절대시한 것으로 보는 것 역시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공자를 계승했으나 한 편으론 공자의 이단아(異端兒)였던 순자는 “임금은 배이며,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또한 물은 배를 엎어버리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孔子家語』, 「왕제(王制)」편)라 했고, 정통계승자라 할 수 있는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벼운 것이다. 이 때문에 일반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천자가 되고, 천자에게 신임을 얻어야 제후가 되고, 제후에게 신임을 얻어야 대부가 된다. 제후가 국가를 위태롭게 하면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是故 得乎丘民而爲天子 得乎天子爲諸侯 得乎諸侯爲大夫. 諸侯危社稷則變置)”(『맹자』, 盡心章上句, 14장)라고 했다. 그 역시도 “군주가 대과가 있으면 간하고, 반복하여도 듣지 않으면 군주의 자리를 바꾸어 버린다(君有大過則諫 反覆之而不聽 則易位).” <『맹자』, 萬章章句下>고 해서 명나라 태조는 『맹자』의 이 구절을 문제 삼아 맹자의 위패를 공자 사당에서 축출하기도 했다.

“뭇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다”는 세 번째 의미로 해석한 까닭은 공자가 어느 극단을 취하는 것을 경계하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소 중립적이고 밋밋해 보이는 해석일지라도 본뜻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어떤 이들은 북신(북극성)은 “그곳에 그대로 있지만(居其所)”에 주목하여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덕치(德治)란 노자의 무위정치(無爲政治)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그 근거로 「위정」편 3장에 나오는 “법제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형벌만 면하면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그러나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될 것이다(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를 들기도 한다. 또 「위령공」 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천하를 잘 다스린 사람은 순임금일 것이다. 그 분이 무엇을 하셨으리오.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남쪽을 향해 앉아 계셨을 따름이다(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라고 한 것 역시 공자가 무위의 정치를 주장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노장(老莊)에 대해 잘 알지 못하므로 말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도가에서 이르는 무위(無爲)조차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자(莊子)』의 「잡편 경상초(雜篇 庚桑楚)」에는 이런 말이 있다.

“正則靜, 靜則明, 明則虛, 虛則無爲而無不爲也.”

이 말은 “마음을 바르게 하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모든 것이 명확해지며, 모든 것이 명확해지면 마음을 비운 상태가 되고, 마음을 비우면 억지로 하지 않더라도 하지 않는 일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간혹 장자의 ‘무위(無爲)’를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윗글에서도 알 수 있듯 장자의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장자가 말하는 무위는 첫째 스스로 바른 마음을 품도록 노력하고, 둘째 바른 마음만이 아닌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구하며, 셋째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혹은 다른 뜻을 품고 나서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억지로 바른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하는 일마다 모두 바른 행위가 될 것이란 말이기 때문이다.

‘무위(無爲)’의 상대적인 말은 ‘작위(作爲), 인위(人爲)’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위’를 우리말로 옮길 때 본뜻을 가장 잘 살리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말이 될 듯싶다. ‘무위’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하늘이 부여한(天賦) 마음(心)에 따라 할 것은 다 하는데도 그것이 자연적이고, 하늘의 뜻(天理)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離婁章句下」편에는 “좌우 어느 쪽에서 선택하여 쓰더라도 그 근본과 만나게 된다(取之左右, 逢基源).”고 했는데 그것이 공자의 덕치(德治)이든 노자의 무위의 정치(無爲之治)이든 인간을 사랑하고 바른 정치를 펴라는 가르침이라는 점에선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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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대학.중용 강설 - 이기동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2006)


『소학(小學)』과 『대학(大學)』 그리고 독서정한(讀書定限)

  올해의 목표이자 내 나름대로 설정한 고전 독서의 첫 단추를 『대학(大學)』 공부로 시작하기로 결심했었다. 2008년 한 해의 결심이자 내 삶의 한 결절(結節)을 이루는 지점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유교문화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의 강설(講說)로 이루어진 『대학 ․ 중용 강설』은 유교 경전과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풀이한 강설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이다.


  이 시리즈가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논어(論語)』보다 앞서 『대학』을 첫 권으로 한 까닭은 실제로 조선시대에도 유교경전을 공부하는 기초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소학(小學)』을 떼고, 본격적인 공부로 넘어가는 첫 단계로는 『대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선비됨을 가르치는 교육의 첫 걸음은 물론 태교(胎敎)부터 시작되었지만 아이가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우선 『천자문(千字文)』을 통해 한자를 배우고, 그 후에 『소학』과 『동몽선습』 등을 배우고 익혀 몸에 배도록 하였다. 서당이나 향교, 서원에 이르는 과정에서 『명심보감』, 『사서삼경』, 『사기』, 『자치통감』, 『당송문』, 『고문진보』 등으로 점차 경전에서 사서와 문학 작품에 이르는 폭 넓은 교육과정이 진행되었고,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강설의 수준이 높아져 가는 것이 일반적인 학습 방법이었다.

  『대학』과 대비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소학』은 송대(宋代)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가 제자 유자징(劉子澄)에게 시켜 당대에 유행하던 도교와 불교를 대신하여 유교가 사회의 기본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소년기부터 유학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유학의 기본을 정리해 편찬한 책이다. 『소학』은 내편 4권과 외편 2권으로 모두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편은 태교부터 시작하여 교육의 과정과 목표, 자세 등을 밝히는 입교(立敎), 인간이 지켜야 하는 오륜을 설명하는 명륜(明倫), 학문하는 사람의 몸가짐과 마음자세, 옷차림과 식사예절 등 몸과 언행을 공경히 다스리는 경신(敬身), 본받을 만한 옛 성현의 사적을 기록한 계고(稽古) 등 모두 4권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편에서는 유교사회의 도덕규범과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자세 등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사항들만을 뽑아서 정리하였다. 외편에서는 한나라 이후 송나라까지 옛 성현들의 교훈을 인용하여 기록한 가언(嘉言), 선인들의 착하고 올바른 행실만을 모아 정리한 선행(善行)의 2개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소년들이 처신해야 할 행동거지와 기본 도리를 밝혀 놓았다. 책의 구성은 내편 4권과 외편 2권으로 모두 6권이다.

  이 시대의 학습(學習)이란 말 그대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었으므로 책의 모든 구절은 암기(暗記)하였고, 암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뜻이 통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공부란 독서를 의미했고, 독서라는 것은 모름지기 숙독하여 암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했다.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는 “책이란 모름지기 숙독(熟讀)해야 한다. 이른바 책이란 물건은 한가지다. 그러나 열 번 읽었을 때는 한 번 읽었을 때와는 정말 다르고, 백 번 읽었을 때는 열 번 읽었을 때와는 또 전혀 다른 법”이라고 해서 책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경지에 이르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주희(朱熹)의 가르침을 받들었던 조선의 선비들은 두루 여러 방면의 책을 읽되 대강이라도 읽어둔다는 뜻의 섭렵(涉獵) 보다는 한 가지라도 깊이 있게 파고든다는 숙독을 독서 중 으뜸의 방법이라 여겼다. 이 시대의 독서가들은 ‘독서정한(讀書定限)’이라 하여 자신이 스스로 정한 기한 내에 어떤 책을, 어떤 순서로, 몇 번이나 읽을 것인지 계획을 짜서 실천에 옮겼다. 서산(書算) 또는 서수(書數)라 하여 자신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헤아리는 생활 용품을 만들어 책 사이에 끼어놓고는 했다.

사서(四書)와 『대학(大學)』
  흔히 사서삼경(四書三經)이니 사서오경(四書五經)이라고들 하는데, 사서란 유학에서 확정한 네 권의 주요 경전인 『대학』, 『논어』,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과 ‘중용’을 합쳐서 ‘학용(學庸)’이라 하고, ‘논어’와 ‘맹자’를 합쳐 흔히 ‘논맹(論孟)’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 사상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공자와 맹자의 지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논어』, 『맹자』는 처음부터 단행본으로 전해져왔지만 사서오경 중 하나인 『대학』은 처음부터 단행본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은 중국에서 유교가 국교로 채택된 한 대(漢代)에 이미 오경이 기본 경전 중 하나로 전해져 올 만큼 중요한 경전 중 하나였다. 『대학』은 본래 49편으로 구성된 『예기(禮記)』 중 제42편에 해당하고, 『중용』은 제31편에 속해 있었는데, 주자가 송대에 번성하던 불교와 도교에 맞서 유학의 새로운 체계(性理學)을 집대성하면서 『예기(禮記)』에서 『중용』과 『대학』의 두 편을 독립시켜 사서(四書) 중심 체제를 확립했다.

  『대학』의 저자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전통적으로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송나라에서 급(伋:子思)이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한나라 때 학자인 가규(賈逵)도 공급(孔伋)이 송에서 『대학』을 경전으로 삼고, 『중용』을 위(緯)로 삼아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대학』은 경(經) 1장과 전(傳)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자는 ‘경’은 공자(孔子)의 사상을 제자 증자(曾子)가 기술한 것이고, ‘전’은 증자의 생각을 그의 문인이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

  주자는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 『춘추(春秋)』라는 전통적인 오경 체제를 벗어나 사서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주석과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 작업을 했다. 이것은 당시 유행하던 불교와 도교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항하여 새로운 유교체계로서의 성리학을 세우는 작업이기도 했다. 사서가 체계를 갖춤에 따라 성리학은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과거 시험에 사서가 주요한 과목이 되면서 사서의 권위는 오경을 앞지르게 된다.

어째서 『대학』을 가장 먼저 읽는가?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순서로 사서를 읽었던 까닭은 주희의 가르침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학』이 학문에 임하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 목적은 무엇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학』의 핵심 내용은 삼강령 팔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강령은 모든 이론의 으뜸이 되는 큰 줄거리라는 뜻을 지니며,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 이에 해당한다. 팔조목은 격물(格物) ․ 치지(致知) ․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를 말한다.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하니라.
큰 가르침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과 하나 되는 것에 있으며, 지극히 선한 상태에 머무르는 것에 있다. <『대학』, 經一章>


  이기동 선생은 강설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가”를 먼저 묻고, 그 목적은 의식주를 마련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일 것이라 말한다. 우리의 육체는 물질이며 다른 물질을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제한된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서로 투쟁하는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육체를 위해 추구해온 모든 것은 육체가 없어진 순간 그 가치와 의미가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이며 살아오면서 추구해온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괴로움과 고달픔을 참고 견디며 노력해온 공부의 대가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일생을 예견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살며,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보라는 것이다.

  주자는 사서 중에서도 특히 『대학』을 중시했는데,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유교적 이상,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덕을 쌓는 길로 들어가는 첫 관문에서 각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길 원했다. 질문을 통해 학문하는 이유와 뜻에 대해 묻고 답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남보다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선하고 밝은 덕성을 훌륭히 연마하고, 부단한 연마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라는 밝은 덕을 더욱 밝게 하고, 이를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대학』을 통해 ‘가서 머물러야 할 목적지를 알고(知止而后, 有定)’, 뜻을 정립한 연후에 『논어』를 배워 근본을 세우고, 『맹자』를 읽어 사리를 분별하는 법을 배우고, 『중용』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깨우친다는 것이 주자의 가르침이었다.

두 명의 대가(大家)를 앞세워 읽은 『대학(大學)』
  이기동 선생의 『대학․중용강설』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만 실제로는 『대학』만 읽었을 뿐 『중용』은 아직 손도 대지 않았으므로 지금 쓰는 글은 이 책에 대해서는 반쪽짜리일 뿐이다. 언젠가 『중용』까지 읽게 된다면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겠지만 이기동 선생의 강설을 읽었던 내 나름의 방식을 일부나마 우선 소개해본다. 이기동 선생의 강설은 한자의 독음은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한자의 해석 순서를 번호를 매겨 소개하고 있으므로 순서에 맞춰 해석해보는 것이 좋았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모로하시 데쓰지의 『중국고전명언사전』 중 『대학』 부분을 펼쳐놓고, 모로하시 데쓰지가 중요하게 언급해 놓은 부분을 함께 읽었다. 한 권의 텍스트를 놓고 두 분의 대가(大家)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셈이다.

  이기동 선생의 강설이 풍부하고 감동적이었지만 핵심적인 지점을 체크해가며 읽기에는 모로하시 데쓰지의 명언사전 역시 상당한 도움이 되었고, 두 분이 약간씩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을 확인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대학』이 학문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대부분은 또한 매우 정치적인 서술이기도 하다.

유가적 관념에 따르면 현실은 도리를 실현하는 장소이다. 정치는 바로 그 도리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행위이다. 하늘과 땅은 사람을 비롯해 모든 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만물을 낳기만 했을 뿐,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만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연을 다듬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하늘과 땅의 만물창조가 의미를 갖게 된다. 문화를 창조하는 이런 행위가 정치이고, 정치가 바로 도를 실현하는 행위이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본문 22쪽>


  김태완 선생이 엮은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에도 잘 드러나 있는 것처럼 유교적 지배질서가 통치했던 조선시대의 문화, 정치란 그 자체로 도리(道理)를 밝히고 도리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이유로 『대학』은 통치, 다시 말해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책이기도 하다. 이기동 선생의 강설은 그간 신문 칼럼이나 단순한 고사성어, 명언록 따위에 간략하게 소개된 고전의 일부가 아닌 그 안에 담긴 깊은 뜻까지 풀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중 일부만 맛보기로 소개해본다.

湯之盤銘에 曰苟日新하고, 日日新하고 又日新하라 하고, 康誥에 曰作新民이라 하며, 詩曰"周雖舊邦이나 其命維新이라 하니, 是故로 君子는 無所不用其極이니라.
탕임금의 세숫대야에 새겨진 명문(銘文)에는 “진실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날로날로 새롭게 하며 또 날로 새롭게 하라”고 하였고, 『서경』의 강고편에서는 “백성을 진작시켜 새롭게 한다”고 하였고, 『시경』에서는 “주(周)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통치이념과 기상이 계속 새롭다”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군자는 그 최선의 방법을 쓰지 아니하는 것이 없다. <『대학』, 傳二章>


  많은 이들이 “日新하고, 日日新하고 又日新하라”에 주목하여 날로 새롭게 한다는 사전적인 의미에만 집착하지만 이 말의 진정한 뜻은 “親民[친민]”에 있다는 것이 이기동 선생의 풀이다.

발전 과정이 투쟁과 혼란의 과정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지도력을 가진 사람, 즉 백성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백성의 진정한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이론을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통치 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지배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피지배자의 현실을 관찰하는 정치지도자들은 이미 백성들의 처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완전히 남과 하나가 된 상태, 즉 친민(親民)의 상태가 되어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남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지도자만이 백성들에게 필요한 참신한 이론을 끊임없이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 볼 때 “진실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날로날로 새롭게 하며 또 날로 새롭게 한다”는 말이 친민의 설명이 됨을 알 수 있다.
신민(新民), 즉 새로운 사람이란 새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이론을 제공하거나 그 이론을 추종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의 수는 처음에는 소수였다가 차츰 많아지게 되고 결국 전부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이 소수의 신민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이를 진작시킴으로써 순조로운 발전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록 오래된 나라라 할지라도 그 나라의 통치이념은 계속 참신하고 계속 생동감이 넘칠 것이다.
그러므로 명명덕이 되고 친민이 된 상태에 있는 군자는 그 택하여야 할 최선의 방법, 즉 날로날로 새로운 방법을 택하여 쓰게 되는 것이다.<본문 41~42쪽>


읽노라면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라 밑줄 긋고, 다시 읽게 되는 것이 『고전(古典)』이 지닌 진정한 힘이란 생각이 든다. 현대화되고, 민주화된 사회라지만 시정잡배(市井雜輩)만도 못한 정치인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시대에 그들에게 『대학』을 달달 외우도록 하는 시험을 치른다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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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길 “좋으나 가난하여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하길 “시에 이르길 ‘깎고 다듬은 듯 쪼고 간 듯이 한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군요.” 공자께서 말씀하길 “사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가는 것을 말하니 오는 것을 아는구나.”





「학이」 10장에서 공자의 제자들 중 자공과 자로(子路, BC 543~BC 480)가 없었다면 『논어』가 지금처럼 생생한 재미를 선사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이야기했었다. 자공(子貢)은 공자의 물질적인 스폰서로서 공자의 보디가드 역할을 했던 자로(子路)와 함께 『논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인물 중 하나이다. 성인이기 전에 먼저 교사(敎師)였던 공자를 잘 드러내는 말은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맹자(孟子)가 말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이다.



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의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군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를 통일하여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



맹자는 세 가지 즐거움을 이야기하면서 왕이 되는 것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을 앞뒤로 두 차례나 강조하고 있다. 사실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은 단순히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나마 주 왕실에 대한 겉 치례 예의라도 갖추려 했던 춘추(春秋)시대에 비해 날 것 그대로의 패권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전국(戰國)시대의 인물이었던 맹자는 패도(覇道)를 추구하는 군왕에게 먼저 사람이 되라고 질책하기 위해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 것이다.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중 첫 번째는 하늘이 내려 준 즐거움으로 부모의 생존은 자식이 원한다고 하여 영원한 것이 아니므로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써 즐겁다는 말이다. 두 번째 즐거움은 하늘과 땅에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강조한 것으로, 스스로의 인격 수양을 통해서만 가능한 즐거움이다. 세 번째 즐거움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즐거움으로, 즐거움을 혼자만 영위할 것이 아니라 남과 공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앞의 두 가지 즐거움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마지막 세 번째 즐거움은 타인과 나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즐거움이자 의지가 필요한 일이란 점에서 대승(大乘)적인 즐거움이다.



자공은 중국 최초의 재벌이었다는 평을 받을 만큼 이재에 능했고, 공자의 유세가 가능했던 까닭도 자공의 경제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후세의 평가가 있을 만큼 공자가 학파를 형성하고 오늘날의 명성을 얻는데 크게 기여한 제자였다. 또한 자공은 말하기를 즐겨하고, 스승인 공자에게 따져 묻기를 즐기되 늘 공손함을 잃지 않았다.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던 속내는 자신이 이처럼 기여한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드러내 자랑하지 않으며 스승을 모시는 것에 있어서도 늘 겸손하였던 바를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공의 “貧而無諂 富而無驕(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다)”라는 말은 빈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높이 생각해줄 일이긴 하나 결국 빈부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공자는 향원(鄕愿)을 싫어했다. 선을 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 보았던 공자는 자공에게 그것도 괜찮은 일이긴 하지만 아예 빈부에 얽매임 없이 사는 즐거움이라는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貧而樂 富而好禮(가난하여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한다)”라고 답한다.



공자는 『논어(論語)』 「옹야(雍也)」편(18장)에서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의 경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는데 이 때의 호(好)와 앞의 낙(樂)은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떼어낼 수 없는 사랑(合一)의 경지를 의미한다. 공자는 자공에게 그 정도 경지에 도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고 있다. 그러자 자공은 곧바로 스승의 말을 알아듣고 “시에 이르길 ‘깎고 다듬은 듯 쪼고 간 듯이 한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군요.”라며 시의 비유를 들어 답한다.



자공이 인용한 구절은 『시경』 위풍(衛風) 기욱(淇奧)의 첫 장에 나오는 것으로 주나라가 동천(東遷)할 때 공을 세운 위나라 무공(武公)을 찬미한 시다.



瞻彼淇奧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咺兮 有匪君子 終不可諼兮



기수의 물굽이 바라보니 푸르른 대나무 우거졌도다

우리 님은 구슬을 깍아 다듬은 듯 쪼고 간 듯이 위엄있고 너그럽도다

빛나고 의젓하며 아름다운 우리 님을 끝내 잊지 못하겠네




“如切如磋 如琢如磨(자르고 다듬어 쪼고 간다)”라는 구절에서 여(如)자를 뺀 것이 “절차탁마(切磋琢磨)”다. 『대학』에도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자르듯하고 쓸 듯함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요, 쪼듯하고 갈 듯함은 스스로 닦는 일이다)”라고 하여 절차(切磋)는 학문을 뜻하고, 탁마(琢磨)는 수양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공자는 자신의 뜻을 헤아리고 더 나아가 시(詩)를 인용하여 답을 하는 자공이 대견했을 것이다. 하여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사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가는 것을 말하니 오는 것을 아는구나).”라고 칭찬한다. 그것이 공자의 즐거움(君子三樂)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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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孟子曰  楊子는 取爲我하니 拔一毛而利天下라도 不爲也하니라. 墨子는 兼愛하니 摩頂放踵이라도 利天下인댄 爲之하니라 子莫은 執中하니 執中이 爲近之나 執中無權이 猶執一也니라 所惡執一者는 爲其賊道也니 擧一而廢百也니라.- 『맹자(孟子)』, 진심(盡心)편, 제26장

맹자가 이르기를 “양자는 오로지 나를 위한다는 설을 주장하니 한 오라기의 털을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하더라도 하지 않았다. 묵자는 겸애하였으니 이마를 갈아 발뒤꿈치에 이르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하였다. 자막은 중간을 붙들었으니, 중간을 취하는 것이 바른 길(진리)에 가까운 것이긴 하지만, 중간만을 붙들고 저울질함이 없으면 오히려 한 가지만 고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가 한 가지만 고집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바른 길을 해치기 때문이니, 한 가지를 붙들고서 백 가지를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 신영복 선생은 맹자 진심편에 나오는 “執中無權”이란 말의 뜻을 “저울 추를 권(權)이라 합니다. 권은 권력이 아니라 균형입니다. 가운데를 잡으면 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해석했는데, 불민(不敏)한 탓인지 신영복 선생이 하신 말씀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더군요. 신영복 선생의 말씀은 “執中無權”을 직역하여 ‘가운데를 잡으면 무게 추가 필요 없다’는 뜻인 듯싶은데, 달리 보면 말 그대로 ‘가운데를 잡으면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되니까요. 그렇게 이해한다면 신영복 선생은 맹자가 미워해야 한다고 말한 노나라의 현인이었던 ‘자막’이 되는 셈입니다(음, 설마 신영복 선생이 그런 뜻으로 한 말씀은 아닌 듯 한데, "처음처럼"에서 나온 말로 알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좀더 자세한 부연을 찾을 수가 없네요).

맹자의 핵심 주장 중 하나가 ‘중용(中庸)’인데 ‘執中無權’의 이야기는 그런 맹자의 주장 중 핵심인 중용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맹자는 노나라의 현인이었던 자막이 양자의 이기주의와 묵자의 겸애주의라는 양 극단론을 피하고 중도를 주장(執中)한 것은 겉으로 보았을 때는 바른 길(中庸之道)을 취한 것으로 보이지만, 양측 주장을 저울질(權)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무조건 가운데를 취하는 것은 바른 중용의 길이 아닌데도 바른 길인 것처럼 보이는 ‘사이비(似而非)’라 특히 더 위험하고, 도리어 인의를 해치는 것이란 뜻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중용이란 그저 양 극단 사이에서 가운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양 극단의 뜻을 두루 헤아려 옳고 그름을 살핀 연후에 가능하다는 말인 것이죠. 요즘 같은 시대, 중용을 취한다는 건 참 어려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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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공자께서 말씀하길 “제자들은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도록 하라. 행실을 삼가하고 믿음이 있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 하라. 이를 행하고서 남은 힘이 있으면 글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살다보니 느끼게 되고, 알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일류대학 나왔다고 해서 삶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행복한 것도 아니며, 지혜가 생기는 것도 아니더라는 사실이었다. 만 권의 책을 읽어도 때때로 허망하며, 세상에 대해 한 가지를 알게 되면 열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많이 알아갈수록 고독했다. 사실 이것은 공자의 삶이기도 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고 하였지만 공자는 생전에 예수가 나사렛마을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것처럼 세상의 인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공자만큼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상가는 없었다. 그러나 공자는 제자들에게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가르쳤다.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다한 뒤에, 다시 말해 덕행(德行)을 실천한 뒤에도 여력이 있거든 글을 공부하라(行有餘力 則以學文)고 가르쳤다. 공자가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朝問道, 夕死可矣)”고 한 말은 진심이었다. 그에게 있어 공부란 세속적인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이 되는 공부였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살아가지 못할 바에야 그 삶이 어찌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공자는 그렇게 가르쳤다. 공자는 공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다. 공부를 한 자로서의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 - 들어와서는 효를 실천하고, 나가서는 공손하도록 처신하며, 행실을 삼가고 믿음이 있게 하라 - 배움의 진정한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 애중(愛重)하고 친인(親仁)하는 것 - 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청소년 중 84%가 대학교육을 받는 시대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육은 부모 세대가 성취한 계급적 성취의 조락(凋落)에 대한 공포, 자식 세대에서는 쓰레기가 되는 삶에 대한 공포를 가속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교육은 당신의 삶이 어째서 보잘 것 없는가에 대한 피난처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 이유는 당신의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당신의 아버지가 부자가 아니며, 당신의 어머니가 적극적인 뒷바라지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당신은 일류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신의 삶은 쓰레기가 되고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 교육이 위기인 진정한 이유는 글로벌스탠더드에 맞는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나머지를 쓰레기가 되도록 하는 교육, 그에 대한 적당한 핑계가 바로 교육이 되도록 하는 것이 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이다. 비록 세속적인 의미에서 부유하지 못해도, 출세하지 못하였더라도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본령(本領)일 것이다.

배우는 학생을 일컬어 제자(弟子)라 한다. 이 말의 본래 뜻은 자신의 아우와 자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내 아우, 내 자식의 삶을 쓰레기처럼 여기도록 하고 싶은 스승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라 인정해버린다면 우리는 지금의 이 상황을 영원히 극복할 수 없다. 맹자는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놓쳐버린 자기 마음을 다시 찾는 것일 뿐이다.(學文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고자 상)”라고 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할 수는 있어도 마음까지 궁핍하게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이 교육이 지닌 진정한 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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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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