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

'君子不器'라 했다. 나는 <그릇1>이 오세영 시인의 시론을 보여주는 시라 평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절제와 균형은 그의 시세계를 이루는 대위법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는 언제나 중심이 도사리고 있다. 표현은 중심에서 어긋나지 않으므로 파격적인 표현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엔 언제나 힘이 있다. 까닭은 오세영의 시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중심이 아니라 '부드럽고 유연한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君子不器하므로 그의 시는 절제와 균형의 대위법으로 구성되면서도 부드러운 중심을 지닌 팽이처럼 힘차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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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 최규석 | 이미지프레임(길찾기) | 2004



테르미도르와 순정만화

"김혜린!"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왜 저자도 아닌 "김혜린"인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현대적인 만화의 등장을 사람들은 1909년 6월 2일에 창간된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영의 한칸 만화를 꼽는다. 그로부터 한동안 한국엔 만화가 없었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여유자적(?)하게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아니, 그것을 출판할 수 있는 여력이 되었을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어째서 만화가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 기간의 우리 민족의 모든 예술이 굴절되었듯 만화 역시 굴절 혹은 단절의 길을 걸어야 했다.

우리 만화가 다시 일선에 등장하게 된 것은 해방 이후 "라이파이"의 작가 김용환 선생이 한국 최초의 만화 전문 잡지《만화행진》을 1948년에 발행하면서부터였다. 만약 이것을 기점으로 한다면 한국 만화는 56년 만에 현재의 위치까지 성장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분이 그러하듯 비약 혹은 도약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만화만큼 남녀간의 취향 분화가 확실한 장르도 드물다. 특히나 일본 만화의 짙은 그늘 속에 있는 한국 만화의 대중적 취향을 고려할 때 이런 남녀간의 취향 분화는 사실 전세계적인 것이라기 보다 한국적 혹은 일본적 상황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한국 사회에서 만화는 그 시대적 한계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해본다면 놀라울 만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내가 "길찾기"라는 출판사에 대해 처음 머리 속에 각인할 수 있었던 것은 김혜린의 "테르미도르"가 이곳에 복간되었다는 기사를 통한 것이었다. 그런 뒤에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 중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라크전과 관련해 먼저 인터넷상으로 주목받았던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다시 "길찾기"를 통해 발간되었다는 것이다.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는 프랑스 대혁명을 역사적 배경으로 차용한 작품으로 우리 만화사에 기록되어야 할 작품 목록에 분명히 올라가야 할 작품이다. 작품 자체의 질도 질이거니와 이 작품이 처음 수록된 "르네상스"라는 잡지의 역사적 의미 역시 중요하다. 왜냐하면 1988년 우리나라 최초의 순정만화 전문지로서 처음 등장한 잡지 창간호부터 수록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김혜린은 당시 김진(바람의 나라) 등과 더불어 그간 순정 만화의 영역을 대하 서사 장르까지 확장시켰다.


한국 만화가 가야하는 머나먼 길

1958년 무렵 미국의 원조 경제에서 갓 벗어나기 시작한 한국사회의 경제 사정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만화는 출판 유통망을 떠나 대본소 체제에 진입하게 된다. 만화는 사 보는 것이 아니라 빌려보는 전형적인 출판물이 된다. 이것은 대본소용 만화, 무협지를 탄생시켜 만화의 예술성을 극도로 억압하게 된다. 만화의 생명은 대본소의 순환 구조와 맞물리게 되어 점점 짧아지게 되고, 만화 작가들은 작가가 아니라 만화공장의 공장장이 된다. 그들은 대본소에 착취당하면서 동시에 그 밑의 문하생이라 불리는 하도급을 둔 착취자가 되었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에 연이어 군사쿠테타로 들어선 1961년 박정희 독재정권은 만화에 대한 사전 검열을 시작한다. 가뜩이나 열악한 한국 만화계를 더욱 짓눌러 온 것은 군사독재정권이 그들 스스로의 정당성 없는 권력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사회에 대해 벌이는 치졸한 도덕극이 지닌 과장된 무게였다. 이런 상황에서 만화는 결코 예술이 될 수 없었고, 어린애들이나 보는 유치한 것이었다.


만화가 대본소 시스템에서 다시 서점으로 돌아오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민주화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것은 주목해보아야 할 상황이다. 대중가요가 사전 검열 철폐를 위해 투쟁한 것처럼 만화 역시 대본소 독점체제를 깨뜨리기 위해 많은 만화가들이 싸웠다. 거기에 가장 강력한 힘을 보태준 이들은 역시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들이었고, 그렇게 만화를 사랑하고 고민한 세대가 바로 "공룡둘리에 대한 오마주"를 그린 "최규석" 세대다. 물론 얼마전 이현세 파동 등으로 드러나듯 아직도 우리 만화가 이런 사회적 금기와 편견을 벗어나 가야할 길은 멀고 험난하다. 동시에 만화에 대한 가장 든든한 지지층이자 동시에 어려서는 대본소 만화 보기에 익숙했고, 어느 정도 자라서는 도서 대여점에서 만화를 빌려보던, 그리고 자라서는 디지털 스캐닝을 통한 인터넷상의 만화 보기에 익숙한 독자들이 얼마나 만화를 직접 소장하고 보려드는가? 혹은 보게 만드는가하는 문제가 놓여있다. 그것은 만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거의 모든 예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오마주 - 짧지만 위대한 전통에 대한 경배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처음 접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던 최규석의 이 단편 만화를 보고 놀라운 재능을 지닌 신예작가의 등장에 대해 찬사를 보냈고, 아동물의 전형적인 캐릭터성을 지녔던 둘리란 존재의 확장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만화를 보고 나도 역시 그런 점에서 대단히 놀랐고, 여러 면에서 기뻤다. 우선 우리 사회에 드디어 오마주를 바칠 만한 전통 혹은 사회 전반에 두루 알려진 문화적 코드가 생겨났다는 점에서 기뻤고, 패러디물인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 대해 이 캐릭터의 원저작권자인 작가 김수정 선생의 반응이 또한 기뻤다. 김수정 선생이 "둘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은 만화의 다양성을 감안할 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반가워했다는 기사를 읽고, 나는 다시금 그의 작가성을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오마주와 패러디는 사실 기법상으로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두 가지 모두 "베낀다"는 행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끊임없이 알프레드 히치콕을 베낀다. 퀜틴 타란티노는 오우삼을 베낀다. 그들은 각기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 예술가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기 위해 베낀다. 오마주가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라면 패러디는 풍자를 위해 베낀다. 선배된 입장에서 후배의 오마주란 것은 말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패러디든, 오마주든 본래 자신이 만들어냈던 작품의 아우라에 변형을 가하는 행위이며 후배로서는 오마주라 하더라도 선배 입장에선 욕보이는 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 그 비근한 예로 "서태지"를 패러디한 음치 가수의 음반과 비디오물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는 언제라도 오마주의 대상이자 동시에 패러디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며 그것이 설령 기분 나쁜 일이라 할지라도 참아줄 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본인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되는 바로 예술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오마주가 되었든, 패러디가 되었든 표절이 아니라면 그 자체로 그 대상이 된 예술가 혹은 작품이 이미 사회전반적으로 통용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오마주는 논외로 하더라도, 패러디의 기본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상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김수정은 일종의 아동물로 구분되는 "둘리"를 통해 대중적인 만화작가로 널리 알려졌으면서 동시에 둘리 캐릭터를 통해 독자(한국)적인 애니메이션 창작과 캐릭터 산업 분야를 개척한 이 분야의 독보적인 작가이자 중요한 장인이다. 그에 대해 후배 작가가 보내는 오마주는 짧지만 위대한 우리 만화계의 전통에 대한 경배이기도 하다. 그것을 넉넉하게 받아들인 김수정 선생의 자세를 보면 역시 경배를 보낼 만하다.






최규석 - 슬픈 먹이사슬의 뫼비우스

많은 이들이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처음 구입하게 된 동기가 이 단편 만화의 뒷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고길동의 무덤을 베고 누운 둘리가 공룡화된 모습으로 표현된 이 만화의 엔딩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감동적이었던 만큼 후속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집엔 그 뒷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작가 최규석의 여러 단편들을 모아놓은 단편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아쉬워할 것은 없다. 나머지 단편들 역시 놓치면 아쉬울 만큼 뛰어난 수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문화계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문제 중 하나는 젊은 작가들의 조로현상이다. 지난 1990년대 이후 한국 문화계를 대표한 장르가 된 영화 부문은 복합상영관과 대자본의 결합으로 영화 장르의 급격한 산업화와 장르화 속에서 젊은 작가들의 창의력이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고, 오랫동안 한국 예술계의 정점에 서 있던 문학은 그 활력을 잃고 있다. 젊은 작가들은 손쉽게 타협하거나 아예 대결할 의지 자체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만화계 역시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시점에서 최규석의 단편 만화들은 비록 때로는 너무 안이하게 해피엔딩으로 종결짓거나 거친 안목을 정제하지 못한 체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젊은 작가의 당연한 권리인 "창조"와 "도전", "비판"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80년대적 향수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서 익히 드러낸 바 있는 솜씨, 교묘한 비틀기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정신은 2002년 동아/엘지 국제만화전의 극화부문 당선작인 <콜라맨>에서 손쉽게 해피엔딩적인 결말로 다가섰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여전히 날카롭게 살아 있고, 그의 데뷔작인 <솔잎>에서는 아직 그만의 그림체가 완성되기 이전의 박흥용과 오세영의 그림체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솔잎>에는 이미 작가가 앞으로 걸어가고 싶은 작품 세계가 어떤 것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맹아들이 숨겨져 있다. 그는 반전을 즐기는 작가이자 동시에 세상에 대해 진지한 말걸기를 시도하고 싶어한다. 이런 류의 작품에는 우리가 만화에 대해 그간 지녀왔던 적지않은 편견들, 가령 순정만화 vs 활극만화의 구도나 예술만화 vs 대중만화의 경계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깨우쳐 준다. 결국, 예술은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다. 그것을 창출해 내는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얼마나 철저하게 하였는가? 그의 장인적 기술과 예술가적 재능이 이것을 얼마나 뒷받침해주고 있는가 하는 차이일 뿐이다.


최규석은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풍자정신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근래 어느 장르의 예술가들도 지니지 못한 최규석만의 뛰어난 장점이다. 그는 자본주의라는 슬픈 먹이사슬에서는 그 어떤 존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과거에서 미래로 타임워프한 공룡, 아이들에게는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 원하는 소원이라면 무엇이든 이루어줄 수 있었던 히어로 둘리조차도 나이 40에 이르러 "주민증"도 없는, 외국인 노동자처럼 이 땅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그림체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원숙해지고 그만의 것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거친 러프 스케치 풍의 연필 데생으로 음영을 주는 그의 그림체도 매력적이지만, 역시 그만의 다양한 실험을 할 것이란 사실을 믿는다. 그의 드라마투르기 역시 지금의 간결하고 힘 있는 구조란 장점을 살리면서 점차 복잡해지고 더욱 많은 사연들을 담아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앞으로 매우 중요해질 한 작가의 초반부를 함께 하고 있다. 그 사실이 앞으로 더욱 기뻐할 수 있는 일이 되길 바랄 뿐이다.




 * 나의 걱정에 아랑곳없이 아니 사실은 이 리뷰를 쓴 것이 이미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최규석은 나의 염려를 한낱 기우로 만들어버린 채 무럭무럭(?) 훌륭한 작가로 자리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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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鳶)

- 오세영

위로 위로 오르고자 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
바람을 타야 한다.
그러나 새처럼, 벌처럼, 나비처럼 지상으로
돌아오길 원치 않는다면
항상
끈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
양력(揚力)과 인력(引力)이 주는 긴장과 화해
그 끈을 끊고
위로 위로 바람을 타고 오른 것들의 행방을
나는 모른다.
다만 볼 수 있었던 것,
갈기갈기 찢겨져 마른 나뭇가지에 걸린
연, 혹은 지상에 나뒹구는 풍선의 파편들,
확실한 정체는 모르지만
이름들은 많았다
마파람, 샛바람, 하늬 바람, 된 바람, 회오리, 용오름……

이름이 많은 것들을 믿지 마라.
바람난 남자와 바람난 여자가 바람을 타고
아슬아슬
허공에 짓던 집의 실체를 나 오늘
추락한 연에서 본다

출처 : 『학산문학』, 2008년 가을호(통권 61호)

*


오세영 선생의 시(詩)는 겉보기엔 늘 평범(平凡)하다. 어려운 시어(詩語) 선택이나 꼬여있는 비유가 없으므로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 속에는 늘 범접하기 어려운 비범(非凡)함이 숨겨져 있다. ‘연’이라는 누구나 볼 수 있었고, 어린 시절 경험해보았을 지극히 평범한 대상에서 끌어내는 성찰의 힘이다.


시가 늘 계몽의 서사나 교훈을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인이 평범한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가운데 얻어낸 성찰은 선사의 죽비처럼 날카롭게 정수리를 겨냥한다. 선생의 시 <연>의 깨달음을 한 마디로 응축한 말이 있다면 아마도 “滿而不溢”일 것이다.

居上不驕 高而不危(거상불교 고이불위)
윗자리에 있으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높은 자리라도 위태롭지 않다.
制節謹度 滿而不溢(제절근도 만이불일)
스스로 절제하고 삼가하여 도를 넘지 않는다면
高而不危 所以長守貴也(고이불위 소이장수귀야)
높은 지위라도 위태롭지 않고 비로소 오래도록 존귀함을 유지하게 된다.
滿而不溢 所以長守富也(만이불일 소이장수부야)
채우되 넘치지 않도록 한다면 오래도록 부를 지켜나갈 수 있다.
富貴不離其身 然後(부귀불리기신 연후)
스스로를 귀하고 부유하게 만든 뒤에라야
能保其社稷 而和其民人(능보기사직 이화기민인)
능히 사직을 보전하고 만백성을 평안케 할 수 있는 것이다.
『효경(孝經)』, 제후(諸侯)편

“채우되 넘치지 않도록 한다”는 “滿而不溢”의 정신은 유교의 가르침에서 매우 중하게 여기는 것이라 주희가 그의 제자들과 편찬한 어린이 교육용 도서인 『소학(小學)』 내편(內篇) 명륜 장에도 실려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도 간다”는 속담처럼 어린 시절의 깨달음이 평생을 간다고 했는데 그 시절 유아교육을 받았을 숱한 유학자들도 결국 이 가르침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여 자신의 삶을 망친 것을 보면 “채우되 넘치지 않는다”는 자기 절제와 중용의 미덕은 그만큼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공자(孔子)조차 “吾未見好德 如好色者也(내가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는 것 같이 하는 자를 보지 못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추락한 연의 잔해를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위로 위로 오르고자 한 가닥 남은 줄마저 끊어내려 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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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 네 번째 편지
- 오세영의 시 <나를 지우고>를 읽으며 든 생각들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선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이상하게도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착 가라앉아 버립니다.
마치 내 안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반성문을 쓰고 있는 듯이...


늙은이에게 젊은이는 더이상 아무 것도 배우려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나이 먹은 교수는 그저 나이 먹은 교수일 뿐 그가 평생을 쌓아온 학문적 업적 같은 것은 쇠락해버린 초가에 덩그마니 얹힌 박 같이 허울만 좋은 이름일 뿐 특별한 권위는 바랄 것도 없고, 존경은 더할 말이 없는 시대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경쟁력이 으뜸인 시대에 고려장 지낼 날이 멀지 않다는 증빙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너희들도 언젠가 늙을 것이란 말은 충고도, 선언도 아닌 악담인 게지요.



내가 아직 '문학은 나의 힘'이라 외치며 술잔을 높이 들던 시절, 아직 고왔고 아름다운 시인이자 나의 은사에게
"시인은 늙기 전에 죽어야 합니다."라며 호기롭게 떠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시인이었던 은사는 여전히 살아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머리가 많이 새었지만 여전히 멋있을 겁니다. 1942년생인 시인 오세영의 시를 읽습니다. 당신의 이 시를 읽노라니 문득 『장자(莊子)』 「달생(達生)」에 나오는 ‘목계지덕(木鸂之德)’의 고사가 떠오릅니다. 다들 잘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중국의 어느 왕이 투계를 몹시 좋아하여 기성자란 사람에게 최고의 싸움닭을 구해 최고의 투계로 만들도록 합니다. 기성자란 인물은 당시 최고의 투계 사육사였는데, 왕이 맡긴지 십일이 지나 기성자에게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라며 묻습니다. 기성자는 단호히 대답하길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라 했습니다.


다시 십일이 지나 왕이 또 기성자를 불러 물었습니다. 그러자 기성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도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라 했습니다. 왕은 다시 십일이 지나 기성자에게 묻습니다. 기성자는 역시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 그 눈초리를 버려야 합니다.”라 답합니다. 다시 십일이 지나 왕이 또 묻자, 기성자는 그제야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았습니다. 나무와 같은 목계가 되었습니다. 어느 닭이라도 이 모습만 봐도 도망갈 것입니다.”라고 답했다는 고사입니다.


얼마 전 케이블 TV에서 해주는 영화 <미션>을 다시 보았습니다. 오래전 문망의 영화 코너에 글을 올린 적도 있었던 영화입니다. 그 사이 내가 늙어 유순해진 것인지 어렸을 적엔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 신부보다 로드리고(로버트 드니로) 신부가 더 좋고, 더 잘 이해되었었는데 이번엔 가브리엘 신부의 마음도 알 것 같더이다. 누군가에 대해 잘 알기 위해선 그 사람이 있는 곳보다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 사람에 대해 들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운명이란 것도 때로는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곳보다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이루어질 때가 더 많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듯합니다.



시인 오세영은 늙었고, 나는 아직 젊습니다. 그 말은 내가 더 진보적이란 말이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배울 것이 더 많다는 뜻이란 걸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이란 걸 알 것 같습니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란 구절에서 나는 나무가 홀로 나무일 때는 결코 숲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자신의 존재를 지울 때만 비로소 숲을 이룰 수 있다는 걸 배웁니다.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라는 당신의 가르침을 전부 알 수는 없겠으나 내 나름으로 살아가며 더 깨우칠 일이겠지요.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고서야 어찌 밀밭을 이룰 수 있을까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로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이 또한 이와 흡사하겠지요. 말 그대로 해석하면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숨어 있다는 뜻이지만 이때의 진(塵)이란 속세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겸손하란 뜻도 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자신이 지닌 능력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이를 내세우지 말고, 세상의 속된 사람들에게 눈높이 맞추란 뜻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말은 오늘날 고립되어 가는, 위기에 처한 진보, 좌파를 자임하는 (저 같은)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구절이란 생각이 듭니다. 리저호우(李澤厚)는 『고별혁명(告別革命)』이란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개량으로 혁명을 대체한다」는 글을 썼습니다.


지난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나 ‘개량주의자’란 지적을 마음 한 구석에선 치욕처럼 느낍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제 개량주의자였음을 자백하는 고해성사를 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혁명가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그와 같은 현실이 슬픈 사람입니다. 리저호우는
“1895년, 갑오해전에 패배한 이후로 중국은 줄곧 ‘혁명의 길’과 ‘개량의 길’ 사이의 논쟁에 휘말려 있었다. 전자는 ‘돌변突變’ 즉, 계급투쟁이라는 극단적인 방식(폭력수단)으로 국가기구를 전복시켜 역사의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점변漸變’ 즉, 계급협력의 비폭력 수단으로 국가적, 사회적 자아의 경신을 추구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와 진보를 단순히 민주노동당이나 참여연대, 민주노총 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이 그나마 가장 대표적인 집단인 건 사실이겠지요. 이들 중 누구도 ‘혁명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류 좌파(진보)는 모두 개량주의자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이들 중 누구도 솔직하게 개량주의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그 사실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여기기에 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미 수차례 말했는데 저만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것이 어찌되었든 우리나라의 좌파들, 진보들은 아직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선 개량주의에 대한 혐오와 혁명에 대한 동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듯 보입니다. 이건 남의 이야기라 하기 좋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저 자신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 끝에 나온 말입니다. 그것이 ‘돌변’이든, ‘점변’이든 추구하는 바를 리저호우의 말에서 빌리면 결국 국가적, 사회적 자아의 경신에 있습니다. 대체로 국가적 자아의 경신에 실패하는 경우, 국가와 지배계급이 택하는 손쉬운 해결책은 역사 이래 전쟁이었던 경우가 많았고, 피지배계급이 택하는 해결책은 폭동이나 혁명이었습니다. 전쟁은 자본가들의 혁명, 우파들의 혁명인 셈이지요. 역사가 한 개인이나 집단의 공과를 심판한다는 믿음을 버리고 났을 때, 역사는 그저 냉정하고 잔인한 기술(記述) 방식의 하나일 뿐입니다.



저는 중국식 유물론의 효시를 관자(管子)로 봅니다. 그는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였고, 후세 제갈량이 닮고 싶다고 말했던 관중(管仲:?~BC 645)입니다. 관중하면 우선 “관포지교(管鮑之交)”만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관중은 제나라 민중들이 영웅처럼 떠받들던 재상이기도 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통해 마치 일종의 제왕론을 펼친 사람으로만 오해되는 것처럼, 관중 역시 그와 흡사한 사람으로 오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는 『관자(管子)』 「목민편(牧民篇)」에 이르길
“광에 먹을 것이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榮辱)을 안다(倉凜實則 知禮節, 衣食足則 知榮辱)”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유물론의 본질을 지극히 천한 것으로 끌어내린다는 오해를 감수하고라도 말하자면, 결국 유물론은 인간이 정신만으로 살 수 없다는 현실주의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한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예수의 말에 반대하는 주의, 주장은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에 가깝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은 빵만으론 살 수 없지만 빵 없이는 살 수 없다’가 우선인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급진은 명분이 아니라 개량주의자들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일은 아닐런지요. 아니, 명분만 내세운 채 거짓희망을 주느니 차라리 보다 철두철미한 개량의 길로 가는 것이 도리어 급진의 길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비판의 말만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개량의 길로 질질 끌려갈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앞서 성찰하고, 개량하고, 개혁하고, 보수하여 실현가능한 희망, 급진을 실천해내는 것이 좀더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까 고민하게 됩니다.


1987년 이후 20년이 흘렀고, 1997년 이후 10년이 흐르고 있습니다. 프란츠 파농은
“민중에 대한 아첨을 경계하라”고 말했는데, 오늘 이 땅의 지식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여전히 민중에 대해 아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1980년대를 휘감았던 민중주의는 역사와 민중을 지혜로운 심판자, 추상적인 진리로 추어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 때 말하는 민중이란 언제나 결국 각성한 민중으로서의 소수자였을 뿐임을 이제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절차적 민주화라고 현재의 민주주의를 폄하하지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입니다. 지금 돌변의 방식을 택하자고 외치는 진보도, 좌파도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좌파는 여전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개량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으며, 도리어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 더 많은 존경이 돌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 민주노총에 등을 돌리고 있을까를, 아니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어째서 민중들이 자신의 계급을 배신하는가, 지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와 체제, 교육, 언론 등 수많은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것이 모두 타당하다는 사실은 아마 아는 이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좀더 솔직하게 고백할 때입니다. 1980년대의 분열을 오늘까지도 그대로 끌고 왔으며, 우리들의 현실을 비판하는 일에 능숙한 반면, 현실적인 대안이나 희망을 제시하는데 있어서는 그간 얼마나 서툰 존재들이었는지 말입니다. 거기에 더해 과거 전대협 의장을 비롯한 학생운동권 중 상당수가 결국 아무런 명분도 없이 현실정치에 투항해버렸고, 민주노총은 도덕성에 상처를 받았으며, 시민단체들은 정권교체 이후 하나둘씩 체제내화 되는 과정에 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민중에게 아무런 희망도, 비전도 주지 못한 채, 과거와 같은 방식의 운동, 명분이 옳으니까, 정치적으로 올바른 싸움이기 때문에 혹은 우리가 언제는 언론의 지지를 받고 싸운 적이 있냐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교만이고, 자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지우고 나무, 숲, 산이 되는 희생, 싸우지 않고 이기는 나무 닭의 덕,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는 대신 자신을 낮춰 세상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겸손, 관자의 실용주의, 태산과 같은 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미FTA 타결 이후 평소 조용하기가 산과 같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허세욱 선생이 분신을 하고, 예천에서는 농민 한 분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마을 사람들에게 공기총을 쏘았습니다. 사는 건 앞으로도 힘이 들겠지요. 하긴 우리 네 사는 세상이 한 번이라도 살기 좋았던 적은 없습니다.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 아니면 모레가 더 좋은 세상 만들어보자고 다들 고생하시는 거 압니다. 다만 마르크스주의는 고정된 말씀에 얽매이는 종교가 아니라 언제나 변화하는 세상에 가장 적절하게 대응해온 철학이기도 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예전에 제가 썼던 글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 지루한 고해성사를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독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데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방어할 힘도 없는 가엾은 사람을 뭉개버리는 인간들은 누구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선량하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그저 단순하게 선량하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아우른다. 이것은 어떤 지성보다도, 옳다고 주장하는 우쭐함보다도 더 우월한 것이다.” 사회주의는 양심의 기억이자, 동시에 패배의 기억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회주의는 우리들의 양심이 늘 손쉽게 욕망에 굴복할 수도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건 어제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불행히 미래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비록 우리의 희망이 저 멀리, 지금은 비록 그 길이 보이지 않으며 우리가 향하는 길 양 편으로 무수한 무덤들이 실패를 증명하지만, 그 길이 우리의 양심이 손가락질하는 방향인 이상 그리로 갈 수밖에 없겠지요. 그 길 위에서 외로운 한 명의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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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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