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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황지우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지금보다 어렸을 때... 이 시를 읽으며 나는 황순원의 단편 어느맨가에 나오는 겉늙어버린 동리 형처럼 끼룩끼룩대며 웃었다. 이상하게 세상을 다 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생리적 연령이 어리거나 .. 더보기
황지우 -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비 그친 새벽 산에서 - 황지우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창 꽃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이제는 그대를 잊으려 하지도 않으리 산을 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온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희망의 한 가운데에는 텅 비어 있었다 * 비가 그친 새벽 산에 머물러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산의 등허리에서 무럭무럭 피어올라가는 하얀 김... 산 중턱엔 하얀 구름이 드리워져 있고, 산 아래로 내려온 나는 방금 전 선계에서 유배된 불쌍한 중생이다. 산이 하늘에 두고 온 섬이라면 나는 수중의 고혼이 된 셈이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이 참 멋지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희망의 한 가운데에는 텅 비어 있었다 어쩌.. 더보기
황지우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설레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 더보기
왕가위 - 중경삼림(重慶森林) 중경삼림(重慶森林) - 감독 : 왕가위 출연 : 임청하, 양조위, 왕정문, 금성무 등 '해가 뜨면 사랑이 끝난다'라는 노래가 있다. 내 심정이 지금 그렇다 어떻게 메이를 잊지? 난 혼자 약속을 했다 바에 제일 처음으로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했다. 란 잡지가 정확하게 언제 창간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에 내가 몰입하게 된 것은 실연과 함께였다. 7년을 사귀던 여자와 헤어졌을 때 나는 미친듯이 영화를 보았다. 엔 이런 대사가 있다. "실연당한 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참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땀이 흐른다. 수분이 다 빠져 나가버리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거라 믿기 때문이다." 연애를 해 본 사람들은 안다. 실연당했을 때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다. 그래.. 더보기
황지우 -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고향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고향 - 황지우 고향이 망명지가 된 사람은 폐인이다. 출항했던 곳에서 녹슬고 있는 폐선처럼 옛집은 제자리에서 나이와 함께 커져가는 흉터; 아직도 딱지가 떨어지는 그 집 뒤편에 1950년대 후미끼리 목재소 나무 켜는 소리 들리고, 혹은 눈 내리는 날,차단기가 내려오는 건널목 타종 소리 들린다. 김 나는 국밥집 옆을 지금도 기차가 지나가고. 나중에는 지겨워져서 빨리 죽어주길 바랐던 아버지가 파자마 바람으로 누워 계신 그 옛집, 기침을 콜록콜록, 참으면서 기울어져 있다. 병들어 집으로 돌아온 자도 폐인이지만 배를 움켜쥐고 쾡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신 아버지, 삶이 이토록 쓰구나, 너무 일찍 알게 한 1950년대; 새벽 汽笛에 말똥말똥한 눈으로 깨어 공복감을 키우던 그 축축한 옛집에서 영원한 .. 더보기
황지우 - 길 길 - 황지우 (黃芝雨)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돌아다녀보면 朝鮮八道, 모든 명당은 초소다 한려수도, 내항선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세상에, 할 고민 없어 괴로워하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덫이었구나 █ 나는 문학을 오랫동안 벗삼아 살아왔다고 감히 자평하고 싶은 인간 중 하나이지만, 여적 외우는 시가 없다. 물론 정현종 시인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나는 그 섬에 가고 싶다" 정도는 염치불구하고 빼놓아야하지만, 대학 다닐 때 어느 문학평론가가 강의하는 강의에서 자신이 외울 수 있는 시 한 편을 암기해서 적어내는 쪽지 시험이 있었다. 미리 예정된 시험이었으므로 나는 한.. 더보기
황지우 - 聖 찰리 채플린 聖 찰리 채플린 - 황지우 영화 끝 장면에서 우리의 ‘무죄한 희생자’, 찰리 채플린이 길가에서 신발끈을 다시 묶으면서, 그리고 특유의 슬픈 얼굴로 씩 웃으면서 애인에게 “그렇지만 죽는다고는 말하지마!”하고 말할 때 나는 또 소갈머리 없이 울었지 내 거지 근성 때문인지도 몰라; 나는 너의 그 말 한마디에 굶주려 있었단 말야: “너, 요즘 뭐 먹고 사냐?”고 물어 주는 거 * 누군가 작은 관심만 가져주어도 온 신경이 다 곤두서는 것은 알량한 자존심이 마음 속까지 치장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누군가를 속일 수는 있어도 나를 속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너무 악한 까닭입니다. 눈이 맑고 순수한 사람을 보면 마음은 편해지지만 그 뒤켠에 두려움이 드는 까닭은 그대의 눈동자가 거울같아서 일겁니다. "너, 요즘 뭐 먹고 .. 더보기
황지우 - 늙어가는 아내에게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