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은 책을 내는 자신을 일컬어 '위조지폐범'이라고 말했다. 8,900원 하는 책 한 권을 내면 인세 10%를 받으니 자신은 890원짜리 지폐를 발행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읽고 보니 맞는 말이라 피식 웃었다. 한국은행이 지불을 보증한 한국은행권의 액면 가치로 환산되긴 하지만 그는 분명히 책 한 권당 890원어치의 가치, 화폐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창출해내는 위조지폐범이다.  

얼마전 누군가 나에게 '왜 시를 읽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저 '글쎄'라고 답했지만 오늘 최영미 시인의 신작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시에 포스트잇을 가만히 붙여 나가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강태공이 곧은 바늘로 세월을 낚듯 그렇게 시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어부처럼 앉아 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기 전에도 나는 세상에 온통 절망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MB가 노무현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노무현이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한다고 했을 때 사진 속 이라크 소녀를 보며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다.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크게 울었기 때문에 내 눈물의 의미가 대관절 무엇을 뜻하는지 내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큰 울음이었다. 그렇게라도 울지 않고서는 내 마음이, 내 양심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기 때문이리라.  

며칠 전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이야기하며 남을 위해 많이 울라고 충고해준 적이 있다. 남을 위해 우는 눈물이 사실은 자기를 구원해주는 눈물이라고 말이다. 그것이 비록 악어의 눈물 같은 것일지라도... 울지 않고 잘 참아내는 잘난 인간보다 우는 인간이 차라리 덜 비루하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지난 해 촛불시위 때 거리에 나설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간혹 듣던 이야기다. 지금은 정권 초반이라 촛불을 들어도 안 될 거라는 식의 비판, 촛불을 들고 그저 거리를 배회한다고 해서 세상이 어떻게 되진 않을 거라는 답답함. 

왜 시를 읽느냐? 그건 지난 촛불시위에 나갈 때 사람들에게 해준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에서다. 시를 읽는 시간에 내가 다른 어떤 일을 한다면 그보다 더 세월을 잘 보낼 수 있겠냐고?  "시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이라던 김지하의 시에 대한 정의에 내가 감복한 이유다. 시의 바다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낚는 시간이 남들 보기엔 한가롭고, 무료하게 보일지 몰라도 나는 나 나름대로 어둠을 어둠이라 말하면서 내 안의 어둠을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이라지 않는가...  

어쩌면 나는 그 안에서 한국은행이 발행한 가치 이외의 다른 가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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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