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멘터리 '킹메이커'의 2부 제목은 '중도층은 중간에 있지 않다'였다. 좌와 우는 물론, 스스로를 중도로 분류하는 유권자들조차 사안별로 자신의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사안에 따라 좌와 우를 넘나드는 선택을 하지만 통계의 착시효과로 인해 중간층으로 비쳐질 뿐이라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자신도 '리버럴'에 속하며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진영논리를 윤리와 혼돈하지 말라며 비판하는 태도 역시 그들이 비판하는 계몽적인 태도와 양비론의 다양한 변주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흔히 진보진영의 계몽적인 태도, 물론 일부 야권 성향의 유권자들이 대중을 가르치려 하는(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50-60세대를 저주하는 듯한) 태도에 대해선 못마땅하지만 대중은 이를 싸잡아 비난하는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충분히 익숙하며 피곤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속물들 못지 않게 '검은 가면을 쓴 흰 피부'들도 혐오스러운 까닭은 발언의 온도차는 있을지라도 "피지배자들의 언어를 말살하고 자신들의 언어를 강압적으로 이식"하며 피지배자들의 타당한 분노(근원적 정체성)를 스스로 의심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등에 업고 자신과 동일한 입장(스탠스)를 취하지 않는 지식인들을 공격하는 사이비 지성의 창궐도 혐오스럽지만, 성찰을 가장해 대중의 분노를 기껏해야 진영논리와 윤리의식의 잘난 척으로 비하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모습에서도 나는 성찰의 코스춤에 그칠 뿐 대중에게 스스로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스스로의 언어를 갖도록 하는 방식이 아니란 점에서 지양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절반은 박근혜 당선인에게 또 절반은 그를 반대하는 표를 던졌다. 승자에게는 축하를 보낼 일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패자에게 돌을 던지는 일은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옳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옳은 주장을 펴는 후보가 승자가 되는 것이 정치라면 정치는 언제나 논리학자들이 전담했을 테지만 정치는 논리보다 심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슬퍼하는 이들을 충분히 슬퍼하게, 분노하는 이들을 충분히 분노하게 할 일이다. 위로와 위안은 그 뒤의 일이며 그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성찰과 대안 모색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남보다 한 발 앞서 이성을 찾고 향후 정치를 모색하고 분석하는 것이 또한 지식인의 몫이겠으나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회초리를 드는 당신의 말에 깨우침을 얻을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나.


진창에 넘어진 자는 스스로의 손으로 진창을 짚고 일어나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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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