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중용 강설 - 이기동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2006)


『소학(小學)』과 『대학(大學)』 그리고 독서정한(讀書定限)

  올해의 목표이자 내 나름대로 설정한 고전 독서의 첫 단추를 『대학(大學)』 공부로 시작하기로 결심했었다. 2008년 한 해의 결심이자 내 삶의 한 결절(結節)을 이루는 지점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유교문화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의 강설(講說)로 이루어진 『대학 ․ 중용 강설』은 유교 경전과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풀이한 강설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이다.


  이 시리즈가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논어(論語)』보다 앞서 『대학』을 첫 권으로 한 까닭은 실제로 조선시대에도 유교경전을 공부하는 기초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소학(小學)』을 떼고, 본격적인 공부로 넘어가는 첫 단계로는 『대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선비됨을 가르치는 교육의 첫 걸음은 물론 태교(胎敎)부터 시작되었지만 아이가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우선 『천자문(千字文)』을 통해 한자를 배우고, 그 후에 『소학』과 『동몽선습』 등을 배우고 익혀 몸에 배도록 하였다. 서당이나 향교, 서원에 이르는 과정에서 『명심보감』, 『사서삼경』, 『사기』, 『자치통감』, 『당송문』, 『고문진보』 등으로 점차 경전에서 사서와 문학 작품에 이르는 폭 넓은 교육과정이 진행되었고,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강설의 수준이 높아져 가는 것이 일반적인 학습 방법이었다.

  『대학』과 대비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소학』은 송대(宋代)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가 제자 유자징(劉子澄)에게 시켜 당대에 유행하던 도교와 불교를 대신하여 유교가 사회의 기본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소년기부터 유학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유학의 기본을 정리해 편찬한 책이다. 『소학』은 내편 4권과 외편 2권으로 모두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편은 태교부터 시작하여 교육의 과정과 목표, 자세 등을 밝히는 입교(立敎), 인간이 지켜야 하는 오륜을 설명하는 명륜(明倫), 학문하는 사람의 몸가짐과 마음자세, 옷차림과 식사예절 등 몸과 언행을 공경히 다스리는 경신(敬身), 본받을 만한 옛 성현의 사적을 기록한 계고(稽古) 등 모두 4권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편에서는 유교사회의 도덕규범과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자세 등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사항들만을 뽑아서 정리하였다. 외편에서는 한나라 이후 송나라까지 옛 성현들의 교훈을 인용하여 기록한 가언(嘉言), 선인들의 착하고 올바른 행실만을 모아 정리한 선행(善行)의 2개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소년들이 처신해야 할 행동거지와 기본 도리를 밝혀 놓았다. 책의 구성은 내편 4권과 외편 2권으로 모두 6권이다.

  이 시대의 학습(學習)이란 말 그대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었으므로 책의 모든 구절은 암기(暗記)하였고, 암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뜻이 통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공부란 독서를 의미했고, 독서라는 것은 모름지기 숙독하여 암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했다.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는 “책이란 모름지기 숙독(熟讀)해야 한다. 이른바 책이란 물건은 한가지다. 그러나 열 번 읽었을 때는 한 번 읽었을 때와는 정말 다르고, 백 번 읽었을 때는 열 번 읽었을 때와는 또 전혀 다른 법”이라고 해서 책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경지에 이르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주희(朱熹)의 가르침을 받들었던 조선의 선비들은 두루 여러 방면의 책을 읽되 대강이라도 읽어둔다는 뜻의 섭렵(涉獵) 보다는 한 가지라도 깊이 있게 파고든다는 숙독을 독서 중 으뜸의 방법이라 여겼다. 이 시대의 독서가들은 ‘독서정한(讀書定限)’이라 하여 자신이 스스로 정한 기한 내에 어떤 책을, 어떤 순서로, 몇 번이나 읽을 것인지 계획을 짜서 실천에 옮겼다. 서산(書算) 또는 서수(書數)라 하여 자신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헤아리는 생활 용품을 만들어 책 사이에 끼어놓고는 했다.

사서(四書)와 『대학(大學)』
  흔히 사서삼경(四書三經)이니 사서오경(四書五經)이라고들 하는데, 사서란 유학에서 확정한 네 권의 주요 경전인 『대학』, 『논어』,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과 ‘중용’을 합쳐서 ‘학용(學庸)’이라 하고, ‘논어’와 ‘맹자’를 합쳐 흔히 ‘논맹(論孟)’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 사상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공자와 맹자의 지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논어』, 『맹자』는 처음부터 단행본으로 전해져왔지만 사서오경 중 하나인 『대학』은 처음부터 단행본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은 중국에서 유교가 국교로 채택된 한 대(漢代)에 이미 오경이 기본 경전 중 하나로 전해져 올 만큼 중요한 경전 중 하나였다. 『대학』은 본래 49편으로 구성된 『예기(禮記)』 중 제42편에 해당하고, 『중용』은 제31편에 속해 있었는데, 주자가 송대에 번성하던 불교와 도교에 맞서 유학의 새로운 체계(性理學)을 집대성하면서 『예기(禮記)』에서 『중용』과 『대학』의 두 편을 독립시켜 사서(四書) 중심 체제를 확립했다.

  『대학』의 저자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전통적으로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송나라에서 급(伋:子思)이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한나라 때 학자인 가규(賈逵)도 공급(孔伋)이 송에서 『대학』을 경전으로 삼고, 『중용』을 위(緯)로 삼아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대학』은 경(經) 1장과 전(傳)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자는 ‘경’은 공자(孔子)의 사상을 제자 증자(曾子)가 기술한 것이고, ‘전’은 증자의 생각을 그의 문인이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

  주자는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 『춘추(春秋)』라는 전통적인 오경 체제를 벗어나 사서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주석과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 작업을 했다. 이것은 당시 유행하던 불교와 도교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항하여 새로운 유교체계로서의 성리학을 세우는 작업이기도 했다. 사서가 체계를 갖춤에 따라 성리학은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과거 시험에 사서가 주요한 과목이 되면서 사서의 권위는 오경을 앞지르게 된다.

어째서 『대학』을 가장 먼저 읽는가?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순서로 사서를 읽었던 까닭은 주희의 가르침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학』이 학문에 임하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 목적은 무엇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학』의 핵심 내용은 삼강령 팔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강령은 모든 이론의 으뜸이 되는 큰 줄거리라는 뜻을 지니며,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 이에 해당한다. 팔조목은 격물(格物) ․ 치지(致知) ․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를 말한다.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하니라.
큰 가르침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과 하나 되는 것에 있으며, 지극히 선한 상태에 머무르는 것에 있다. <『대학』, 經一章>


  이기동 선생은 강설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가”를 먼저 묻고, 그 목적은 의식주를 마련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일 것이라 말한다. 우리의 육체는 물질이며 다른 물질을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제한된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서로 투쟁하는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육체를 위해 추구해온 모든 것은 육체가 없어진 순간 그 가치와 의미가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이며 살아오면서 추구해온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괴로움과 고달픔을 참고 견디며 노력해온 공부의 대가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일생을 예견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살며,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보라는 것이다.

  주자는 사서 중에서도 특히 『대학』을 중시했는데,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유교적 이상,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덕을 쌓는 길로 들어가는 첫 관문에서 각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길 원했다. 질문을 통해 학문하는 이유와 뜻에 대해 묻고 답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남보다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선하고 밝은 덕성을 훌륭히 연마하고, 부단한 연마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라는 밝은 덕을 더욱 밝게 하고, 이를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대학』을 통해 ‘가서 머물러야 할 목적지를 알고(知止而后, 有定)’, 뜻을 정립한 연후에 『논어』를 배워 근본을 세우고, 『맹자』를 읽어 사리를 분별하는 법을 배우고, 『중용』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깨우친다는 것이 주자의 가르침이었다.

두 명의 대가(大家)를 앞세워 읽은 『대학(大學)』
  이기동 선생의 『대학․중용강설』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만 실제로는 『대학』만 읽었을 뿐 『중용』은 아직 손도 대지 않았으므로 지금 쓰는 글은 이 책에 대해서는 반쪽짜리일 뿐이다. 언젠가 『중용』까지 읽게 된다면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겠지만 이기동 선생의 강설을 읽었던 내 나름의 방식을 일부나마 우선 소개해본다. 이기동 선생의 강설은 한자의 독음은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한자의 해석 순서를 번호를 매겨 소개하고 있으므로 순서에 맞춰 해석해보는 것이 좋았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모로하시 데쓰지의 『중국고전명언사전』 중 『대학』 부분을 펼쳐놓고, 모로하시 데쓰지가 중요하게 언급해 놓은 부분을 함께 읽었다. 한 권의 텍스트를 놓고 두 분의 대가(大家)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셈이다.

  이기동 선생의 강설이 풍부하고 감동적이었지만 핵심적인 지점을 체크해가며 읽기에는 모로하시 데쓰지의 명언사전 역시 상당한 도움이 되었고, 두 분이 약간씩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을 확인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대학』이 학문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대부분은 또한 매우 정치적인 서술이기도 하다.

유가적 관념에 따르면 현실은 도리를 실현하는 장소이다. 정치는 바로 그 도리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행위이다. 하늘과 땅은 사람을 비롯해 모든 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만물을 낳기만 했을 뿐,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만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연을 다듬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하늘과 땅의 만물창조가 의미를 갖게 된다. 문화를 창조하는 이런 행위가 정치이고, 정치가 바로 도를 실현하는 행위이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본문 22쪽>


  김태완 선생이 엮은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에도 잘 드러나 있는 것처럼 유교적 지배질서가 통치했던 조선시대의 문화, 정치란 그 자체로 도리(道理)를 밝히고 도리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이유로 『대학』은 통치, 다시 말해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책이기도 하다. 이기동 선생의 강설은 그간 신문 칼럼이나 단순한 고사성어, 명언록 따위에 간략하게 소개된 고전의 일부가 아닌 그 안에 담긴 깊은 뜻까지 풀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중 일부만 맛보기로 소개해본다.

湯之盤銘에 曰苟日新하고, 日日新하고 又日新하라 하고, 康誥에 曰作新民이라 하며, 詩曰"周雖舊邦이나 其命維新이라 하니, 是故로 君子는 無所不用其極이니라.
탕임금의 세숫대야에 새겨진 명문(銘文)에는 “진실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날로날로 새롭게 하며 또 날로 새롭게 하라”고 하였고, 『서경』의 강고편에서는 “백성을 진작시켜 새롭게 한다”고 하였고, 『시경』에서는 “주(周)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통치이념과 기상이 계속 새롭다”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군자는 그 최선의 방법을 쓰지 아니하는 것이 없다. <『대학』, 傳二章>


  많은 이들이 “日新하고, 日日新하고 又日新하라”에 주목하여 날로 새롭게 한다는 사전적인 의미에만 집착하지만 이 말의 진정한 뜻은 “親民[친민]”에 있다는 것이 이기동 선생의 풀이다.

발전 과정이 투쟁과 혼란의 과정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지도력을 가진 사람, 즉 백성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백성의 진정한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이론을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통치 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지배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피지배자의 현실을 관찰하는 정치지도자들은 이미 백성들의 처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완전히 남과 하나가 된 상태, 즉 친민(親民)의 상태가 되어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남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지도자만이 백성들에게 필요한 참신한 이론을 끊임없이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 볼 때 “진실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날로날로 새롭게 하며 또 날로 새롭게 한다”는 말이 친민의 설명이 됨을 알 수 있다.
신민(新民), 즉 새로운 사람이란 새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이론을 제공하거나 그 이론을 추종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의 수는 처음에는 소수였다가 차츰 많아지게 되고 결국 전부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이 소수의 신민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이를 진작시킴으로써 순조로운 발전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록 오래된 나라라 할지라도 그 나라의 통치이념은 계속 참신하고 계속 생동감이 넘칠 것이다.
그러므로 명명덕이 되고 친민이 된 상태에 있는 군자는 그 택하여야 할 최선의 방법, 즉 날로날로 새로운 방법을 택하여 쓰게 되는 것이다.<본문 41~42쪽>


읽노라면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라 밑줄 긋고, 다시 읽게 되는 것이 『고전(古典)』이 지닌 진정한 힘이란 생각이 든다. 현대화되고, 민주화된 사회라지만 시정잡배(市井雜輩)만도 못한 정치인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시대에 그들에게 『대학』을 달달 외우도록 하는 시험을 치른다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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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자발적 복종(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 박설호 옮김 | 울력(2004)


“여기서 나는 다만 하나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려고 한다. 과연 어째서 그렇게 많은 마을과 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독재자의 전제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부여한 그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민들이 그를 참고 견디는 만큼, 독재자는 그들에게 동일한 정도의 해악을 저지른다. 따라서 인민들이 모든 해악을 감수하지 않고, 무조건 참고 견디는 태도를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독재자는 인민들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인민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이다. 실제로 인민들은 폭정을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이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태도는 정말로 기이하지 않는가? 수백만의 사람들은 비참한 노예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는 어떤 막강한 권력에 의해서 강요당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인민들은 결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권력을 휘두르는 절대자의 명성에 홀리거나 그의 마법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독재자는 홀몸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특권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신비로운 특성을 도외시하면 그는 비인간적이고 잔혹하지 않는가?” -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박설호 옮김, 『자발적 복종』, 울력, 2004. 14-15쪽.

1987년을 거리에서 보낸 어린 시절, 그것이 나만의 경험일리 없으리라 믿으면서 입을 열어본다. 내가 처음 광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시초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궁금하게 여겼던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광주는 세상에 대한 내 호기심의 첫걸음마였다. 1980년 5월의 어느 날,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한양대학교 병원에  입원해 있는 담임 선생님의 병문안을 위해 몇몇 급우들과 버스에 올랐다. 아이들과 우왕좌왕하며 버스에서 내릴 정거장을 기웃거리며 창 밖을 내다보다 드디어 다리 건너 저 멀리 우리가 가야할 대학병원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우르르 버스에서 내려 병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내가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대학병원 입구에는 군용 장갑차와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기관총에 손을 얹은 채 날카로운 시선으로 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민방위 훈련 사이렌이 울린 것도 아니고, 간첩이, 미그기가 귀순한 것도 아니었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나른할 만큼 평온한 일상이었고, 거리엔 버스와 자동차들이 유유히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병원 건물 앞에서 내가 마주 본 군인들은 무서웠다. 국군의 날 TV에서 방영해주던 군인들의 퍼레이드 광경이 아니었고, 휴전선 155마일을 지키는 국군 형님에게 보내던 위문편지로 상상하던 그들이 아니었다. 형용사 살풍경(殺風景)하다의 그런 살풍경까지는 아니어도 호들갑스레 짖고 까불며 뛰어가던 우리들을 나지막하게 만들 정도의 느낌은 철없는 우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광주의 첫 기억은 MBC나 KBS, <조선일보>의 광주 폭도 뉴스가 아니라 대학병원 건물 입구에 진주해온 계엄군들이었다.

광주에 대한 호기심을 풀 수 있는 기회는 그로부터 몇 년 뒤 내가 중학생이 되고, 그 무렵 열심히 다녔던 천주교회에서 영화 <미션(Mission)> 상영을 빙자해 일본 NHK와 독일 ZDF의 광주 다큐멘터리 비디오 상영회에 참가하면서부터였다. 원래 어른들만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주위가 컴컴해진 것을 기회로 몰래 비집고 들어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충격이었다. 광주가 진압당한 뒤 도청을 청소하는 계엄군이 양동이 물을 계단으로 퍼붓자 시뻘건 핏물이 계단을 타고 흘러내려왔고, 죽은 시민군 병사의 양 다리를 거꾸로 잡고 계단으로 질질 끌고 내려올 때 시민 전사의 뒷머리가 계단을 찧으며 딸려 내려오는 광경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가슴 저 밑에서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게 했다.

천주교회에서 상영한 광주 다큐멘터리 비디오가 내게는 이른바 ‘의식화’의 첫 걸음이었다. 어려서 살던 동네 인근에는 특수전사령부(특전사)가 위치해 있었다. 같은 반 급우의 아버지들 가운데는 특전사 하사관들도 꽤 많았는데, 사령부 옆 군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들 집에 놀러갔다가 우연치 않게 친구 아버지들과 마주치게 될 때도 간혹 있었다. 그 비디오를 보고 난 뒤엔 구릿빛 얼굴에 검정 베레모를 쓰고 들어서는 친구 아버지를 맞닥뜨리는 일은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 아버지를 만나는 일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시일이 좀더 흐른 뒤에야 친구의 아버지들 가운데 몇몇은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이 마음의 울렁증이 슬픔으로 바뀌게 되었다.

‘광주사태’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바뀌는 것은 단순히 용어와 명칭의 변경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관의 변경을 요구했다. 어느 방송, 어느 신문, 어느 선생님도 우리에게 광주의 제대로 된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던 시대, 나 홀로, 아니 드물게 만나는 몇몇 친구들만이 진실을 알고 있었고, 그들과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소년 특유의 호기심과 친밀함 - 세상의 비밀을 공유하는 의식 - 을 나눌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들이 가진 그릇된 낙관의 시초였을 것이다. 우리는 남들도 우리와 같을 것이라고 손쉽게 단정지었다. 세상이 진실을 은폐하고 있기에 지금의 악이 드러내놓고 선을 가장하여 우리를 통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손쉽게 낙관했다. 진실이 모두에게 알려지면 흡혈귀가 밝은 햇빛을 견딜 수 없는 것처럼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포와 억압의 존재들 역시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 같은 낙관을 더욱 강화해준 것은 6월 항쟁이었다. 6월 항쟁을 경험한 뒤, 집권세력의 항복 선언이라며 ‘6.29선언’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한 예측을 지나치게 축소했다. 그렇게 87년 12월 대선이 치러졌다. 재야 운동의 원로들은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했고, 두 야당 후보들은 끝끝내 후보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잠시 열렸던 하늘은 순식간에 봉합되고 말았다. 우리는 길 위에서 길을 잃었다. 진실은 여전히 대중에게 은폐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그 뒤 20년 세월이 흐른 뒤 나는 ‘자발적 복종’을 뼈에 사무치는 느낌으로 읽었다. 조세희 선생은 1987년 12월 대선의 그 날을 ‘악이 드러내놓고 선을 가장하고, 선이 악에게 패배한 날’로 불렀다.  20년 전 명동성당 시위를 마무리 짓는 비참한 현장에서 나는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진실을 깨우치게 된다고 해서 누구나 자신의 삶과 안위를 떨치고 일어나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아니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세상은 보이는 것과 다른 이면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게 직접적인 해가 되거나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닐 때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이 싸움은 내가 평생을 전력투구한다 할지라도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르는 목표를 향한 투쟁이 될 것이란 깨우침이었다. 진보란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진보란 당대의 현실을 고민하고,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말한다. 그러므로 진보는 언제나 현실을 토대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라 보에티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하게 노예로 만드는 유혹”이라고 말한다.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도리어 겁날 것이 없다. 눈에 띄는 억압은 그만큼 명백하기 때문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유혹이다. 『자발적 복종』은 라 보에티가 20년 전의 내 나이 때 쓴 얄팍한 에세이다. 라 보에티 이후 스피노자, 마르크스와 그람시, 알튀세르, 푸코가 라 보에티의 뒤를 이어 어째서 “인민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이다. 실제로 인민들은 폭정을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이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기게 되는지 밝혀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몽테뉴는 1563년 라 보에티(La Boetie)가 사망한 후로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몽테뉴는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을 그의 저서가 아니라고 여러 차례 부인했고, 다른 판본의 존재를 시사하기도 했다. 라 보에티가 급진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종교적 불관용의 시대를 살았던 몽테뉴의 입장에서 라 보에티의 입장이 또 다른 교조주의와 불관용으로 흐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염려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영화 <매트릭스(Matrix)>에서 배신자 ‘사이퍼(Cypher)’는 매트릭스가 하이퍼 리얼리티 공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미 깨우친 존재였다. 그럼에도 그는 동료들을 모두 살해한 뒤 매트릭스로 복귀하길 희망했다. 이제 낡아버린 진실은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다. 은밀한 독재자가 드러내놓고 우리를 핍박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기꺼이 영혼을 바쳐 속아줄 용의도, 각오도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튀세르는 "나는 지성의 회의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그람시가 인용한 소렐의 말에 결코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역사에서 의지주의를 믿지 않는다. 그 대신 나는 지성의 명철함을 믿으며, 또 지성에 대한 대중운동들의 우위를 믿는다. 이러한 우위 덕분에 지성은 대중운동들과 함께하며, 나아가 무엇보다도 대중운동들이 지나간 과오들을 다시 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대중운동들이 역사의 진행방향을 바꾸는 것을 지성이 돕는다는 약간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점에서 그렇고 또 이 점에서 그럴 뿐이다."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약간의 희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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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사전』 - M.그랜트 | 김진욱 옮김 | 범우사


“로고스와 뮈토스는 말의 양면이며, 양자 다같이 정신생활의 기본적 기능이다. 논증으로서의 로고스는 올바르고 논리에 닿을 경우는 진실이지만 뭔가 속임수가 있을 경우는 허위가 된다. 그러나 뮈토스는 오로지 뮈토스 외에 아무 목적도 없다.” - 피에르 그리말

 


▶ 그리스로마신화의 계보도

사실 신화가 우리에게 중요한 무엇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소한 우리 국내의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극히 최근 십여년의 일이다. 80년대말 90년대 초엽까지 우리는 민주화 문제에 전념하고 있던 상황인지라 신화 이야기는 어딘가 멀고 먼 나라의 이야기쯤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고, 그저 교양의 일부를 이루기 위해 읽어두어야 할 무엇으로 간주되었다. 내가 정확히 그 문맥을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신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역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고(이 말은 근대 이성의 시대가 저문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차원에서 신화가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지고 있는 탓이다.

 

요 얼마동안 깜짝 독서로 신화 관련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읽었는데, 국내 신화 관련 서적들을 모두 통달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이윤기 선생에 대한 불만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럼에도 신화에 관한 책(혹은 기획)은 앞으로 무궁무진하겠단 생각이다. 실제로도 최근 십여년 동안 신화에 대한 출판 종수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화 읽기는 대중의 트렌드에 그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출판종수는 많지만 적절히 커리큘럼화된 신화 읽기의 틀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신화가 문화적으로 재조명 받게 된데에는 인류학과 언어학의 깊은 영향을 받은 구조주의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사회를 방문한 초기 인류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사회가 동물, 사람, 식물 그리고 각종 사물들을 분류하는 정교한 체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랑그와 빠롤"이 사회학자 뒤르켐이 간파한 사회문화적 생활 속에 구조화될 수 있는 광범위한 틀로써 "집단적 표상"과 결합하면서 구조주의의 근간을 이루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사회의 신화는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해결되지 않는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이야기'를 의미한다고 했다. 신화가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체제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 체제 혹은 이야기체를 우리는 내러티브(narrtive)라 부른다.

 

신화를 분석하는 이들은 신화의 내러티브(서사)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신화가 담고 있는 의미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 한다. 롤랑 바르트는 소쉬르의 기표/기의가 합쳐져 의미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1차적 의미화 과정으로 보고 이를 '외연'이라 불렀다. '외연'이 표상하는 것, 예로 들어 미모의 여배우 '***'라 했을 때, 이 배우의 이름을 듣거나 보면서 '참 예쁘다. 얼굴에 품위가 있어 보인다. 얼마전 재벌 2세와 이혼했다. 나이가 제법 들었는데도 여전히 젊어 보인다' 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그것을 의미의 2차화를 '내포'라 한다. 이를 CF 광고나 영화와 같이 나름의 내러티브 구조를 갖춘 분야에 적용시켜서 그 모델이 권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도록 권하는 것을 의미의 3차화 과정, 즉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믿음이나 가치, 태도 등을 '신화'라 불렀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신화를 읽고 분석함으로써 우리 안에 오랜 세월 깃들어 있던 인간의 본성과 아직 문명이 썩트기 전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

 

흐흐, 하지만 뭐 우리야 이런 머리 복잡한 내용까지 알 필요는 없으리라. 범우사는 내 개인적으로 인연이 좀 있다. 중고생 시절 범우사의 독서회원으로 가입해서 인문학 분야의 염가 문고판 시리즈인 사루비아 문고를 비롯한 꽤 여러 종의 책들을 우편주문으로 받아보곤 했다. 특히 인문학 분야의 저서들 가운데 꼭 범우사 것이 결정판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범우사가 앞서 출판했다고 할 수 있는 고전들은 꽤 여러 종된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도 범우사 고전선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나 역시 가지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뒤에 일종의 해설로 글을 쓴 사람이 프랑스의 신화학자 "피에르 그리말"이었다. 그런 범우사에서 M. 그랜트, J.헤이즐 공저의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을 펴냈다. 이 역시 당시로서는 꽤 발빠르게 펴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양장본에 금박지에 인쇄한 겉표지를 씌운 매우 고급스러운 장정의 책이었는데, 사전이란 특색에 걸맞도록 동아대백과 전집류에 있을 법한 튼튼한 박스 포장을 별도로 만든 책이었다. 지금의 거의 4만원에 가깝지만 처음 나왔을 때만해도 정가가 3만원이었다. 

 

그런데 열린책들에서 "피에르 그리말"의 "그리스로마신화사전"을 펴냈다. 어느 사전이 더 좋은 지 말하긴 현재 내 입장에선 다소 곤란하다. 열린책들의 "그리스로마신화사전"은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전 같으면 최신판이 당연히 더 좋은 것이겠지만, 이 사전은 이미 오래전에 소멸되어버린 신들에 대한 사전이므로, 최신판이라고 해서 갑자기 출현한 새로운 신의 명단이 들어있을리도 없다. 이럴 경우엔 어느 사전의 표제어가 더 많은가, 설명은 얼마나 충실하게 해두었는가? 그리스.로마신화의 수많은 이설들, 동명이인들은 어떻게 분류해놓았는가가 관건이다. 일단 내가 읽은 범우사판 "그리스로마신화" 사전은 나름대로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당시엔 사전치고 지질이 좀 떨어진단 생각을 했는데, 최신판에선 얼마나 개선했는지 모르겠다. "열린책들"의 "그리스로마신화사전"도 찾아보기만 106페이지에 이른다고 자랑하니 무엇을 보든 상관없겠다.

 

다만, 내가 재미있는 건, 범우사판 "피에르 그리말"의 해설을 나름대로 잘 읽었다는 거다. 어쨌든 피에르 그리말을 먼저 안 건 범우사일 텐데, 그의 책은 "열린책들"에서 나왔다는 게 나의 작은 독서 취미로는 상당히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아참, 신화사전을 한 권쯤 가지고 있는 게 신화 책을 읽어 나가기 위해 반드시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필요하단 말씀을 드렸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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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 김태완 | 소나무(2004)


연휴가 시작되기 전 잠시 짬이 나기에 헌책방에 들렀다가 몇 권의 책을 주워 담았는데, 그 중 하나가 김태완이 엮은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책 읽기에도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가장 즐거운 책 읽기는 마땅한 용처가 없는 독서다. 의무감에 쫓기지 않는 책 읽기야 말로 책 읽는 즐거움의 백미인 셈이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를 소파에 누웠다 바로 앉기를 반복하며 반나절 만에 다 읽었다. 연휴 끝에 다시 회사에 출근하였다가 우연치 않게 2004년 9월호 『한국논단』 창간15주년 기념호가 눈에 띄어 살펴보다가 책등에 「역사에서 배우자. 천도(遷都)하면 나라가 멸망했다」라고 쓰여 있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가 쓰인 목적도, 역시 “역사에서 배우자”일 텐데 『한국논단』에서 말하는 「천도하면 나라가 멸망했다」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지가 궁금해졌다. 내용인 즉 신라는 계림(경주)을 수도로 한 이래 한 번도 천도를 하지 않아 삼국을 통일했고, 고구려는 졸본부여에서 국내성으로 다시 평양으로 천도한 탓에 멸망했다. 백제 역시 위례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천도했다가 다시 사비(부여)로 천도하면서 멸망했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 『한국논단』에서 겨냥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발간 무렵의 행정수도 이전 문제였으리라. “천도하면 나라가 멸망했다”는 말인 즉 옳은 말이다. 이 글에서 다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고조선 역시 천도한 뒤에 멸망했다. 그것이 한반도의 역사에 드러난 사실(fact)이긴 하다.

 

그것이 사실(fact)이긴 하지만 과연 진실(truth)일까? 소박하게 생각해서 한 집안이 어딘가로 이사할 때의 번거로움이나 비용, 그에 따라 불편할지도 모를 가족 구성원의 심사(예를 들어 스스로를 어느 날 갑자기 전학가야 하는 아이라고 생각해보자)를 생각해보면 국가의 수도를 옮기는 것은 당연히 그보다 더한 번거로움과 비용, 이해의 격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사를 다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투자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더 이상 그 집에서 살기 어려운 여러 조건들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조선, 고구려, 백제는 왜 천도를 했으며, 고려는 왜 평양으로의 천도를, 정조는 수원 화성으로의 천도를 꿈꿨던 것일까? 그 이유는 외침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발적인 천도의 핵심은 언제나 수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귀족 계급(기득권 계층)의 보수화된 권력을 약화시키고 체제를 혁신하여 국가기강을 바로잡으려는 의도였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고조선, 고구려, 백제가 천도로 인해 망한 것이 아니라 천도로 인해 거대제국 한나라와 수. 당의 침략을 그나마 견뎌내고, 고구려에서 이주해온 열악한 권력 토대를 지방 토호로부터 그나마 지켜낼 수 있었다. 고려가 평양 천도를 꿈꿨던 까닭 역시 개성을 중심으로 한 귀족 세력을 억누르고 국가를 쇄신하려는 목적이었고, 정조 대왕이 수원 화성으로 천도하고자 했던 이유도 거대해진 신권을 억누르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고려가 평양 천도에 실패한 결과가 무인정권의 출현이었고, 정조의 수원 천도가 실패한 결과가 세도정치의 발호를 막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진실(truth)이다. “역사에서 배우자”는 의도의 순수함은 인정하더라도 질문의 전제나 방향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사실이 꼭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천도 문제에서 살필 수 있듯 각각의 시대는 당대가 짊어진 시대적 소명과 한계,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는 조선시대 최고 통치자가 짊어졌던 고민들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책문(策文)은 말 그대로 당대의 고민에 대해 최고통치자가 이제 막 출사표를 던진 젊은 도학자에게 직접 그 정책 대안을 묻는 것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를 묻는 광해군의 책문에 대해 임숙영은 “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라는 내용으로 답하여 왕의 진노를 사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대학에서 학문을 위한 학문을 추구하며, 현실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는(둘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지식인들과 달리 현실 참여 그 자체를 목적으로 공부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자신이 배운 학문을 실천하는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완은 「책문을 읽기 위해」란 저자 서문에서 현실과 문화 그리고 정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유가적 관념에 따르면 현실은 도리를 실현하는 장소이다. 정치는 바로 그 도리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행위이다. 하늘과 땅은 사람을 비롯해 모든 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만물을 낳기만 했을 뿐,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만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연을 다듬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하늘과 땅의 만물창조가 의미를 갖게 된다. 문화를 창조하는 이런 행위가 정치이고, 정치가 바로 도를 실현하는 행위이다. <본문 22쪽>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책문’.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에는 세종 임금과 강희맹의 “인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라는 책문과 성삼문, 신숙주, 이석형의 책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중종과 명종, 선조와 광해군 시대의 책문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아마도 엮은이 자신이 느끼기에도 이 시기가 우리 당대의 현실에 빗대어 느껴볼 대목이 많다고 생각한 듯싶다. 광해군의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위기를 구제하려면”과 같은 책문에서 우리는 개혁군주 광해군이 갈급하게 느꼈던 당대의 현안들을 엿볼 수 있고,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와 같은 책문에서 정통 계승자가 아닌 그의 처지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이외에도 도학 정치를 꿈꿨으나 결국 보수화로 회귀하고 만 중종의 “술의 폐해를 논하라”, “그대가 공자라면 어떻게 정치를 하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란”과 같은 중종의 책문에서 우리는 개혁정치가 좌절되어 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왕들의 책문이 당대의 현실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면 이에 답하는 젊은 도학자들의 답변은 대부분 “역사에서 배우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숨을 걸고 패기 있게 답한 이들도, 왕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의중을 고스란히 전한 이들도 대개는 요순시대와 삼대의 역사를 기록한 『서경(書經)』을 비롯해 『춘추』 등을 인용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역사와 시문을 인용해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새로운 정책과 대안을 왕에게 진언했다. 그러나 한 사회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성원들 사이에 비전의 공유가 필요하다.

 

비전이란 미래를 상상하는 힘과 그와 같은 미래를 만들어야하는 타당성, 그리고 실천력이 요구된다. 공동체 구성원간 사이의 비전이 공유되지 못할 때, 정치가들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때, 공동체는 같은 침상 위에서 다른 꿈을 꾸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한국논단』이 가르치고 싶어하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같은 역사를 공유하더라도 결국 만날 수 없는 다른 해석자가 되고 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과연 오늘의 위정자는 시대의 물음에 답하고 있는가? 아니, 역사에서 배우려는 시도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있는지 반문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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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변증법 - 테오도르 아도르노 지음 | 김유동 옮김 | 문학과지성사(2001)


『계몽의 변증법』은 인간을 계몽되지 못한 신화적 세계에서 빠져나오도록 한 ‘이성(理性)의 힘이 왜 오늘날 도리어 야만상태로 인류를 몰아가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정리한 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M.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은 어렵다는 평을 듣기는 하지만, 한 때 유행했던 포스트모던한 난해함과는 다른 성격의 어려움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읽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첫째는 T. W. 아도르노를 다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과 싸워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문장 하나를 읽은 뒤 요구되는 사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어려움은 첨단 유행을 따지는 우리 사회의 빈약한 지적 풍토(트렌드)와 싸우고, 두 번째는 한 차례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를 차분하게 띄엄띄엄 되새김질하는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전으로 인정받는 대개의 책들이 그러하듯 『계몽의 변증법』 역시 폭넓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으며, 읽기에 따라 사전지식이 요구되는 부분도 있다. 내 나름대로의 독서체험에 따르면 신화학에 대한 공부가 사전에 어느 정도 있다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이 쓰이게 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종종 잊기 쉬운 『계몽의 변증법』 읽기의 한 방법이다. 오늘날 아도르노의 생각 혹은 아도르노에 대한 생각이란 점에서 후학들의 평가는 상이한 편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 2년간 이 책을 세 차례에 걸쳐 다시 읽어야 하는 경험을 했다. 한 번은 신화학적인 입장에서, 다른 한 번은 문화연구(cultural study)적 입장에서, 다시 한 번은 문화경제(cultural economy)적 입장에서(이 책의 2장에 수록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문화산업에 대한 견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읽었다.

 

아도르노에 대한 평가의 변화 역시 우리 사회의 빈약한 지적 풍토를 반영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이는 이제 시대의 조류로부터 멀어졌다고 말하는가 하면, 그 반대로 그의 중요성을 더 높이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확실한 건 이렇든 저렇든 그는 여전히 중요한 이론가이며 특히 문화를 학문적 틀 속에서 사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결절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1947년에 쓰인 이 저작이 현재까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이다.

 

『계몽의 변증법』, 이 한 권의 책을 두고도 후대의 학자들 - 노명우, 『계몽의 변증법을 넘어서 - 아도르노와 쇤베르크』(문학과지성사, 2002년), 권용선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그린비, 2003년), 이순예 『아도르노와 자본주의적 우울 - 계몽의 변증법에서 미학이론까지 아도르노 새롭게 읽기』(풀빛, 2005년) 등 - 은 계속해서 새로운 연구서들을 펴내고 있으리라. 흔히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나치에 의한 지배를 가능하게 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고민한 끝에 펴낸 책이라고들 하는데, 그것이 옳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책의 의미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중요하게 지적하는 부분 중 상당수는 그들이 미국 망명 생활 중 경험한, 자본주의 체제 하의 대중과 문화산업에 의한 대중문화에 기인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을 나치즘 못지않게 위험한 대중선동, 세뇌 장치로 인식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1920~1940년대 러시아 혁명 이후 출현한 소련의 스탈린과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스페인의 프랑코 등 비이성적인 전체주의 세력이 유럽 전역을 장악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념적 좌우를 막론한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전체주의 세력에 의해 장악되었고, 부르주아적 자유주의나 좌파적 노동운동은 비이성적 세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상황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노동자계급(대중)에 대한 깊은 절망감을 느끼게 하였고, 원자화된 대중사회는 결국 전체주의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대중문화라는 용어는 마치 대중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문화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위험 때문에, 그것을 대신하는 용어로 문화산업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이들의 문화 연구는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초반에 걸쳐 주로 이루어졌는데 오락산업의 융성, 매스미디어의 급속한 발전, 전체주의 정권에 의한 문화조작, 미국에서의 영화산업과 음반 산업의 급속한 발전 등이 당시 문화적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스어로 포만, 교만, 멸망을 의미하는 말로 코로스(kopos), 휘브리스(hybris), 아데(ate)란 말이 있다. 이 세 낱말의 사전적 의미는 코로스는 ‘죄가 많다', 휘브리스는 ’난폭하다', 아데는 ‘파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지나치게 욕망을 추구할 때 저지르게 되는 죄가 휘브리스, 즉 ‘오만'의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신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휘브리스를 범하는 자는 항상 가혹한 벌을 받고,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게 된다. 개별 인간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인식하기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자신에 대해 완전히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이 본질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주체(主體)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휘브리스(hybris)인지도 모른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자유 의지에 의해 움직였지만 결국은 신들이 정한 운명에 따른 결과가 되어 버렸다. 성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인간이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른다고 지나치게 자신하고 있을 때, 신들이 애써 경고한 메시지를 거부할 때, 신들에 의한 운명은 역습을 가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만물의 근원은 신(神)에 의한 것이며, 신들이 만물의 내재적 원인”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애니미즘이 사물을 정령화 했다면 산업주의는 영혼을 물화한다”고 말한다. “진보적 사유라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계몽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계몽의 목표를 추구해왔다. 노아의 홍수라는 자연 혹은 신의 징벌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인간은 바벨탑을 세우려 했고,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죽음의 신 타르타로스를 쇠사슬로 묶었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혜택을 망각하고, 끊임없이 숲을 개간하고, 자연으로부터 얻은 사랑(자원과 기술)을 망각하고 욕보였다. 지식의 목표는 ‘방법’,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고 좀 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법으로 변질되었다.

 

신성이 깃든 자연으로부터 우리는 아주 멀리, 아주 높이 날아올랐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지혜를 얻고, 무리를 지어 기술을 전수했으나 이것은 자연과 더불어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사회를 일구고, 자연을 배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계몽의 합리성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인간의 공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고,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부정하는 탈신화화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어쩌면 계몽의 제물이 된 신화도 이미 계몽의 산물이었다. 신화는 모든 가르침의 출발이었기 때문이다. 신화적 상상력에 반대하는 계몽의 원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가 되었고, 하늘 아래 더 이상 아무 것도 새로울 것이 없었던 인간은 자신들의 이성을 통해 이미 세상의 모든 진리를 깨우쳤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견했으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신화가 죽은 것을 산 것과 동일시한다면 계몽은 산 것을 죽은 것과 동일화한다.(신화의 세계, 자연, 사물을 생명을 지닌 대상으로 취급한다면 계몽은 자연을 죽은 것으로 취급하여 이용과 정복의 대상으로 대한다.) 나는 아도르노의 이런 문제의식이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entropy)』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지리와의 합일을 도모하여 여기서 얻는 만족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적인 해방감을 체험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400여 년 전 베이컨과 데카르트, 뉴턴에 의해 구축된 ‘객관적 지식이 있으면 인간은 자연계를 지배할 수 있다.’세계관(패러다임)을 통해 산업혁명이 가능했고, 끊임없는 성장과  한계 없는 진보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리프킨은 문명비판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할 것을 제의한다.

 

“세상은 갈수록 혼돈의 와중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떤 일도 제대로 되어가는 게 없어서 여기저기서 끝없는 수선과 짜깁기의 연속이다.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사건이 터진다.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를 몰아 붙여 탓해 보아도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기만 한다. 정치권의 리더나 누구 대단한 사상가라 할지라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붕괴로 몰고 가는 냉혹한 기운이 세계를 잠식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세계관에 대해 냉철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세상을 병들게 하고 그 속의 모든 것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바로 우리들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아도르노가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가한 이성에 대한 비판은, 신화에 대한 계몽이 그 자체로 신화가 되어버린 상황(파시즘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계몽에 대한 재계몽의 기획으로서의 비판(이론)이다. 비록 그가 제시한 사유 방식은 어둡기 그지없으나 우리가 그 길을 외면하는 것은 빛(enlightenment)을 보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아도르노,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사용하기 시작한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는 앞서 말했듯 대중문화의 생산 과정을 지칭하는 말로서 사용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이전 세대의 연구자들은 문화를, 산업과는 별개의 혹은 산업과는 완전히 대립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산업이란 용어를 이해하는 것은 고도의 도구적 합리성과 관료제화한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된 물질적 기반을 그들 나름대로 분석하고, 이해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물질화할 수 없는 것까지 시장 기능에 의해 사물화(reification)한다. 사용가치(소비자가 상품에서 얻는 효율성)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을 변형하고, 왜곡시키는 데 기여한다. 당시 출현하기 시작한 라디오와 인쇄매체 등의 매스 미디어와 광고의 결합은 새로운 자본주의적 생태(lifestyle)을 만들어냈고, 결국 자본주의 초기에 인간에게 주어졌던 자율성과 주체성은 상실되어 버렸거나 자본주의적(에 적합한) 주체성으로 변질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주장하는 문화산업에 의해 생산된 문화의 상품화, 예술이 대량 상품화됨으로써 예술의 탈예술화, 즉 예술만의 고유한 자율성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주장은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대중의 반역』이나 『예술의 비인간화』 등에서 주장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하의 문화산업은 ‘교환될 수 있는’ 상품으로서, 예술의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완전히 대체해 버렸다. 문화산업은 자본주의의 경제논리에 따라 항상 동일한 것을 대량으로 제공한다. 그것은 계획, 통제되고, 예견 가능하며 계산 가능한 상품들만을 생산한다.

 

두 사람은 결국 예술이 문화산업의 메커니즘에 구속당함으로써 관리되는 사회의 총체적인 물화에 빠져든다고 보았다. 문화산업의 메커니즘 속에서 대량생산된 작품 아닌 열등한 상품들은 이전의 고유한 진정성을 지닌 예술 작품들을 모방함(이 과정에서 대량생산에 적합하도록 규격화)으로써 사회적 위계질서에 대한 복종을 조장하고, 이를 은폐한다(부자도, 빈민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다). 문화산업은 대중들을 사회의 총체성 안으로 끌어들이도록 기만하는 술책이며, 사회적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만들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도록 길들인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상이 현대의 대중문화가 지닌 도구적 합리성을 비판하면서 그것이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자본주의의 허위의식을 주입하여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지배 체제를 정당화하고 재생산하게 만든다고 본 비판엔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비판이론과 자율예술은 대중의 보편적 정서를 담아내지 못하고, 이들을 결집시킬 수도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논리는 반대중적 엘리트주의란 비판을 받게 된다. 이들이 바라보는 대중은 근본적으로 조작의 대상일 뿐이지 혁명을 추동할 수 있는 동력을 갖지 못한 자들이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를 살다가 불운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발터 벤야민에게서 아도르노를 비롯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와는 완전히 다른 견해를 발견하게 된다. 벤야민은 아도르노가 주목했던 문화산업에 의해 대량 생산된 복제품에 의해 상실된 진정성(authenticity), 아우라(aura)의 상실이 도리어 문화적 민주주의를 부추기는 기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과연 문화산업을 통해 생산된 산출물에는 진정성이 존재하지 않는가? 우리가 예술작품으로부터 느낀다고 하는 진정성 역시 과거로부터 주어진 것(교육받은 것)이 아닌가? 대중문화에는 자율적인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가? 실제로 도시화와 대중문화로 인해 도시의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의 지배질서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계급의 문화가 창조되지 않았는가(E.P.톰슨)?

 

대중은 단순히 문화적 조작의 대상이 아니며 그들 나름의 문화적 해독능력을 갖추고 있고, 우리들의 해독능력 역시 증가하고 있다. 즉, 창과 방패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는 아직까지는 아도르노의 비관과 벤야민의 낙관 사이를 오가며 의지의 낙관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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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 을유문화사(2002)

벌핀치, 오비디우스의 『그리스로마신화』를 보노라면 천지창조, 신과 영웅이야기 그리고 트로이 전쟁의 세 가지 구분으로 나뉨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인도의 『바가바드 기타』를 읽어볼 생각으로 세 권의 『바가바드 기타』 관련서적을 구입했다. 함석헌 선생이 옮긴 『바가바드 기타』(한길그레이트북스 18권)와 간디의 해설로 된 기타를 이현주가 옮기고 당대에서 펴낸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간디가 해설한 바가바드 기타』 그리고 비노바 바베가 짓고, 김문호가 옮겨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천상의 노래』가 그것이다. 내 생각엔 이 정도면 ‘인도 정신의 꽃’이라는 『바가바드 기타』를 읽기 위한 준비 작업이 나름대로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좀 수월하게 읽을 생각으로 비노바 바베의 『천상의 노래』를 펼쳐들었는데, 웬걸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뭐든 순서가 있는 법인데 마음만 급해가지고 기지도 못하는 놈이 뛸 생각부터 한 거였다. 제대로 읽자면 함석헌 선생이 옮긴 『바가바드 기타』를 읽고, 그런 뒤에 간디와 비노바 바베를 비교해가며 읽는 것이 정석일 게다. 그런데 인도인이 아닌 내가 『바가바드 기타』를 더 잘 읽으려면 『우파니샤드』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걸 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파니샤드』란 건 또 대관절 뭔가? 이건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에 속하는 것으로 베다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적 제식 문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우파니샤드』를 잘 읽으려면 또한 『리그 베다』도 읽어두는 편이 좋은 거다.


아마도 근대 초기에 처음 『그리스로마신화』를 접한 사람들의 심경이 지금의 나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흔히 서구 정신세계의 깊은 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정신 두 가지를 일컬어 그리스로마신화로부터 기원한 헬레니즘과 유대교 전통에서 출발한 헤브라이즘을 꼽는데, 지금이야 서구식 사고가 동양적 사고를 밀어내고 교육부터 시작해서 실생활의 전반부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들 이야기를 받아들이는데 별 어려움이 없지만, 근대 초반기만 하더라도 그리스로마 신화와 기독교 정신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고 이해는 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머리로만 이해되는 것이지 속속들이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인도인이 아닌 한 베다와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를 읽기조차 힘든 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이를 역으로 보면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삼국유사』는 참 읽기 힘든 책이다.


어떤 이는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삼국유사』? 그렇게 간단하고 읽기 쉬운 책이 뭐가 어렵단 말인가 하며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리들은 누구라도 사찰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 특별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사찰에 놓인 불상이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다. 제 아무리 기독교 모태신앙을 가지고 태어난 이라도 자기도 모르게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문화이므로 그런 것들이 익숙한 탓이고, 그것이 비록 기복신앙이란 비난은 듣더라도 한국 기독교 내부엔 이미 충분할 만큼 샤머니즘적인 기복신앙으로 가득하다. 과거에 한국인들이 마을 뒷산의 작은 암자나 바위에 치성을 드리기 위해 새벽녘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치성 드리러 가는 것처럼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은 100일 치성이 변화된 100일 새벽기도를 다닌다.


그 기도의 내용이 자신의 영혼을 구제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위, 가족의 평안과 세속적 출세를 은연중에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기독교가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샤머니즘이 기독교 내부로 들어가 틀 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수천수만 년을 이어 내려온 그 깊은 정신세계가 단시일 내에 없어지지 않는다는 건, 외래 종교인 불교가 수천 년의 세월을 거쳐 토속신앙인 칠성당과 산신당을 사찰 구조 내부로 받아들인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요소들이 삼국유사로 표상되는 한 권의 책에 전부 담겨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현존하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가장 기본적인 책이 이것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것으로 유명한 군위군 고로면 인각사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고대 서적으로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일찍이 육당 최남선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여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의미는 반감되지 않을 것이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1206∼89)이 신라와 고구려, 백제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두루 모아서 지은 책으로 오랜 기간 여러 전란을 겪으며 민족의 문화유산이 망실되는 가운데 다른 문헌들의 내용을 유추해 살펴볼 수 있는 근거로 남은 유일한 서책이기도 하다.


또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들에 의해 이루어진 정사(正史)에 해당한다면,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쓰인 야사(野史)의 성격을 띄고 있다. 비록 책의 구성이나 문체적인 특성은 『삼국사기』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고조선과 단군 신화, 향찰로 표기된 신라 향가 등을 담고 있어 우리 고대 문학사는 물론 우리 민족의 개국과 관련한 민족적 연원을 따라가는데도 매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을유문화사판 『삼국유사』는 일연의 『삼국유사』를 건양대 중문과 교수인 김원중이 우리가 요새 읽을 수 있는 말로 옮긴 것이다. ‘왕력(王曆)’ 연표를 부록으로 뒤로 빼고, 『삼국유사』의 전내용을 600여 쪽이 넘는 분량으로 축약 없이 담아내고 있다. 그 외 나머지 구성은 일연의 『삼국유사』와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기이 제1, 기이 제2, 흥법 제3, 탑상 제4, 의해 제5, 신주 제6, 감통 제7, 피은 제8, 효선 제9>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기이 제1에서는 우리 민족의 개국신화인 '단군신화'가 수록되어있고, 우리 민족의 구성 및 삼국의 개국신화가 수록되어 있다. 또 얼마 전 일본의 아키히토 천황이 "천황가는 본시 백제계로서, 한반도를 통해 도래한 집안이다."란 말의 근거 신화가 되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도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다.


<기이 제1과 2>에는 삼국 시대의 여러 일화들을 중심으로 담고 있는데, 이 내용들이 가히 우리 민족의 신화라고 할 만한 내용들이다. 에게게, 이게 무슨 신화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지 몰라 한 마디 쐐기를 박아두자면, 그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신화의 ‘트로이 전쟁’ 이후 편을 유심히 살피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네들이 신화라고 내세우는 것들도 사실 우리 것과 별반 다르지도 않다. 단적인 예로 트로이 전쟁엔 올림푸스의 신들도 두 패로 갈려 각기 다른 영웅들을 돌보아준다. 물론 운명이 다하면 신도 도울 수는 없었다. 그런 까닭에 헥토르는 아켈레우스에게 패하여 숨지고 만다. 이를 『삼국유사』에서 찾아보면
“각간 김서현의 아들인 김유신은 나이 18세에 국선이 되는데, 그의 낭도에 백석이란 자가 있었다. 백석은 김유신이 장차 백제를 멸하고, 고구려를 정벌할 자임을 알고, 김유신에게 고구려를 관찰하러 가보자고  꼬드겨 고구려로 데려간 뒤 그를 해할 심산이었다. 이때 김유신 앞에 세 명의 여인이 나타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밤이 되었는데 백석을 따로 떼어놓고, 김유신만 숲으로 데려가 백석이 사실은 고구려의 밀정임을 알려준다. 잠시 후에 살펴보니 이 세 여인은 신라의 수호신들인 내림, 혈레, 골화였다.”고 서술된다.


이외에도 미추왕과 죽엽군, 만파식적, 처용 이야기 등을 어찌 그리스로마신화보다 떨어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마치 고흐의 그림은 높이 치면서도 김홍도의 그림은 그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우둔한 후손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유사』는 구 신라 지역의 승려가 저술한 내용이다 보니 한반도 전체에 있어서 중요한 지역이었을 북반부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략하게 정리되어 버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거기에 승려란 신분 탓인지 불교적인 이야기와 사상이 깊이 배어있는 측면도 있다. 게다가 간혹 잘못 전해진 이야기들을 그대로 모아서 수록한 것도 눈에 뜨인다. 그럼에도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서사시로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사상, 생활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삼국유사』의 가치는 『삼국사기』가 유교적 합리주의로 재단하여 수록치 아니한 우리 고대 기록의 원형들을 담아 후세에 전해주었다는 의미에서 『삼국사기』 이상의 가치를 지닌 민족의 보물단지라 할 수 있다.


물론, 조만간에 인도의 『바가바드 기타』에도 도전해보겠지만, 그런저런 사전 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서사시 『삼국유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은 또한 뿌듯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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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 이경덕 옮김 | 까치글방(2000)

어떤 학자들의 이름은, 그리고 어떤 학자의 어떤 책들은 다른 이의 책을 읽다가 숱하게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맑스의 원전(독어책을 말하는 건 아님)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딘가에서는 맑스가 이런 얘기를 했다더라. 발터 벤야민의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이란 짤막한 논문을 읽지 않았어도 벤야민이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프레이저 역시 그렇게 정작 그의 저작보다는 인용된 문구를 통해 더 많이, 더 자주 만나게 되는 학자다. 종종 고전이나 명저를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의 막막함 속엔 그런 알맹이만 쏙쏙 빼먹고 싶다는, 직행하고 싶다는, 나는 앞서고 싶고,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갈망이 숨어 있다. 

모든 질문 가운데 가장 어려운 질문은 예를 들면 이런 류의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첫학기, 개강 때 교수의 간단한 설명이 끝난 뒤 의례적으로 갖는 질문 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예를 들어 철학 시간이라고 하자.
"교수님! 철학이 뭡니까?" 라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쉽게 말로 해서 정의되고, 알 수 있는 내용이라면 그 교수가 무엇때문에 머리가 반백이 되도록 철학이란 화두를 붙잡고 있겠는가? 가장 쉬운 질문인 듯 싶으면서도 그것이 가장 어려운 질문을 그 학생은 겁도 없이 던진 거다. 대개 이런 질문이 터져나온 강의실 분위기는 요샛말로 싸해진다. 

나는 한 인간의 사유가 발전해가는 건 도표의 곡선이 보여주듯 그렇게 우아한 상승 형태를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피라밋을 바라볼 때 형태가 마치 사선을 그리며 올라가듯 보이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계단 형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인간의 사유가 발전하는 것이 맞다면, 그리고 그것을 가까이 바라보면 필경 계단을 놓고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듯 하는 것이지 절대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상승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독서란 것도 무수한 갈림길과 사잇길을 통한 실패의 미덕이지, 중요한 몇 권의 저서를 통해 알고자 하는 것이 저절로 체득되는 경로를 통하지 않는다. 많이 실패한 자만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 자신이 몸소 체험하지 않는 한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건, 이 세계만의 미덕은 아닐지라도 이 세계의 확실한 율법이다.



제임스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는 피해갈 수 없는 입구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출신인 프레이저는 리버풀 대학에서 한 학기동안 사회인류학을 가르친 것을 제외하곤 평생 케임브리지에서 살았다. 그는 E. 타일러, W. 스미스의 영향으로 인해 비교종교학에 관심을 가지고 1890년에서 1915년 사이에 13권에 이르는 "황금가지"를 저술한다. "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The Illustrated Golden Bough)"의 서론에서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는 프레이저의 유년기에 대해 "아버지는 매일 성서의 한 구절을 가족에게 읽어주었지만...<중략>... 이 어릴 때의 체험은 평생 종교심에 대해서 존경의 마음을 잊지는 않았지만...<중략>...틀림없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가 그의 왕성한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레이저는 인간과 같이 분노하고, 질투하고, 원한을 품고, 싸우는 신화에 감춰진 인간을 닮은 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들은 인간과 닮았으나 결코 인간은 아닌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품는 의도와 삶은 "
논리적이지 않으며 연관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프레이저는 그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는다. 그 시작이 바로 "황금가지"였다. 황금가지는 이탈리아의 작은 숲에서 시작된다. 디아나(아르테미스)를 모시는 성스러운 숲 가운데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나무 주위에는 핏발선 눈으로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손에는 누군가를 죽인 칼이 쥐어져 있다. 

그는 디아나 여신을 섬기며 나무를 보호하는 운명을 가진 사제였다. 사제의 지위를 갖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이전의 사제를 살해하고, 대신 사제가 되는 길뿐이다. 그 역시 후계자에 의해 살해될 것이다. 그 나무는 참(떡갈)나무로 황금가지는 추측컨데 그 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였을 것이라 한다
.(황금가지는 오비디우스의 시의 한 행에 붙어 있는 이야기라 하는데, 별로 주목하는 사람도 없는 이야기였다.) 프레이저는 "살해되는 신"이라는 테마를 위해 "황금가지"를 골랐고, 이를 연구하기 위해 전세계적인(심지어 우리나라의 사례까지도 포함해서) 사례들을 수집해들였다. 신이 백성을 위해 죽는다. 그것을 모방하여 죽음과 부활을 흉내내는 것이 토템이고, 제의다. 따지고보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토템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다소 불경하게 들릴지라도) 구세주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삼일만에 부활하여 그후로 신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약속(New Testament)가 맺어진다. 미사(mass)의 성찬 의식은 이 약속을 반복적으로 회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셉 니덤의 책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 그렇듯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는 모두 13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다. 그런 까닭에 일반인이 이 책에 접근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 모두를 한 권으로 축약한 두 개의 판본이 있는데 하나는 1922년의 맥밀런판이고, 다른 하나는 1994년의 옥스퍼드판이다. 옥스퍼드판은 지난 2003년 한겨레신문사에서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 A Study in Magic and Religion)" 란 제명으로 번역 출간했다. "그림으로 보는 황금 가지"는 영국의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가 세이빈 맥코맥(Sabine McCormack)과 함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170여 장의 도판을 곁들여 정리한 것이다(책 중간에 16쪽의 컬러도판을 수록하고, 본문에도 여러 도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일반인이 읽기엔 가장 무리가 없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는 브라질 원주민들과 직접 생활하면서 지은 책이지만,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현장 연구를 통해 보완되지 않은 그래서 "안락의자의 인류학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어떤 점에서 제국 전성기 말엽의 영국제국이므로 가능했던 일이다. 참고로 칼 맑스가 "자본론"을 처음 펴낸 것은 1867년의 일이다. 두 사람 모두 대영제국 도서관의 덕을 보았다 할 수 있다). 그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네미의 디아나 신전으로부터 시작해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관해 축적된 문헌과 여행기, 지인들의 견문을 통해 "황금가지"라는 대저술을 남긴다. 그러나 프레이저의 연구는 무수한 비판 속에서 아니, 그런 비판들과 함께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이 분야의 살아있는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연구는 전세계의 민간에 퍼져있는 전설, 신화, 민담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연구에 이용함으로써 인간의 보편적인 사고, 생존 방식을 전해준다. 제임스 프레이저의 비교인류학적인 연구는 칼 구스타프 융의
"집단 무의식"과 결부되면서 20세기 문학연구, 신화연구, 문화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제임스 프레이저는 "황금가지"를 통해 인간의 역사는 마(주)술의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종교의 시대로, 그리고 다시 과학의 시대로 발전해갔다고 말한다. 모든 과학자의 원형은 사실 주술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예술가들 역시.... 훌륭한 예술 작품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면 명저란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명저는 더 많은 오솔길을 일러주고, 독자로 하여금 더 많은 자극을 통해 미로의 입구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호기심에 못이겨 뛰어들게 만드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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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신영복 선생을 만나뵐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처음은 인천에서 '더불어 숲' 모임에서 당신이 강연하실 때, 다음 두 번은 학교에서 뵈었다. 이재정 당시 성공회대 총장을 인터뷰하는 자리에 신영복 선생이 동석해주셨고, 다음 번엔 당신 자신이 인터뷰의 대상이 되어서 당신의 연구실에서 뵈었다. 이 때 인터뷰 끝내고 함께 학교 식당에서 국수를 먹었고, 식사 후엔 직접 구내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셔서 성공회대 새천년관의 명물인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녹여 먹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뵌 것이 부천 '더불어 숲' 모임에서 강연하시는 자리에서였다. 그러니까 이 책 "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를 출간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강연 끝나고 간단하게 저자 사인회가 있었는데, 난 그날 선생의 강연을 듣고자 간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만날 사람이 있어서 우연히 갔다가 저자 사인이 든 책까지 하나 얻어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 스스로 앞장서 저자의 사인이 든 책을 얻고자 해본 적이 거의 없음에도 기회가 닿아 저자의 사인이 든 책을 얻게 되는 경험이 몇 차례 있었는데, 이번엔 줄을 서서 기다리는 묘한 경험을 해보았다. 첼리스트 안너 빌스마와 펑크그룹 삐삐밴드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던 경험까지 포함하면 이번이 세 번째다. 신영복 선생은 처음 뵈올 때나 이후 서너 차례를 뵐 때나 늘 여일(如一)하시다. 다들 잘 알겠지만 한자든 영어든 계집 혹은 계집녀가 들어가서 좋은 뜻을 가진 단어가 거의 없는데, 유독 '같을여, 말이을여(如)' 만큼은 '한결같다, 꾸준하다' 라 해서 비교적 좋은 뜻이 된다. 이 말이 '계집녀+입구'인데 한결같다란 뜻을 얻은 건 그만큼 여자들이 지조가 있다는 뜻인가? 지금껏 살아온 나만의 경험에 의하면 최소한 한결같다는 점에선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나은 편이었다. 다시 신영복 선생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몇 년의 시간차를 두고 뵙는 동안 변함없고, 일관된 면모를 관철하는 어른 뵙기가 참 어려운데 당신은 애초의 모습 그대로인 걸 보며 새삼 연륜이란 켜켜이 쌓인 경험이란 걸 후학에게 느끼게 한다.

결론을 미리 당겨 이야기한다면 "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는 우리 시대의 필독서라는 표현으론 말할 수 없다. '필독서'란 말에는 어쩐지 필요에 의해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징검다리 정도의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애독서', 여행가는 배낭 속에 넣어두고 어딜 가나 펼쳐볼만한 책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30년간 남의 고기를 먹어왔지만 나는 고기 맛을 잘 모른다. 무엇을 먹든 급하게 먹는 버릇 탓에 음식 맛을 잘 아는, 음미하며 맛을 보는 미식가들의 미각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책을 펼쳐든 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한 번 읽어봐서는 뭐라 말하기 어렵겠다. 마치 오래 씹을 수록 여러 맛이 나고, 깊은 맛이 배어나는 그런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 자신은 서문에서 "남이 써놓은 책을 말만 바꾸어 내어놓는 데에도 참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쪼록 그분들의 연학(硏學)에 진경(進境)이 월등하시길 빌면서 남은 잉크를 말린다."라며 38년 전에 출간했던 번역서의 역자 후기를 대신 옮겨 놓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때나 지금이나 참 겸손한 분이다.

"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는 그동안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강독이란 강좌명으로 진행되어 왔던 강의를 정리하여 묶은 책이다. 성공회대학교는 한신대학교와 더불어 최근 우리 사학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풍을 지닌 대학으로  알려져 왔다. 지난 권위주의 독재 시절 이에 저항하다 감옥살이한 지식인들이 주로 교수가 된 대학, 교수들의 수형 기간을 전부 합치면 200년 가량 된다는 풍설의 성공회대학교, 일반 대학에서라면 교수에 임용되기 어려울 법한  문제적 지식인들이 모여 교수로 재직하는 대학이 성공회대학교이다. 이 대학의 진보적 학풍의 중심엔 멘토(mentor)로서 신영복 선생이 계신다. 멘토(mentor)란 상대에게 동기(motivate)를 부여하여 그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존재를 말한다. 단순히 동기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훌륭한 정신적 스승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 멘토(mentor)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오딧세우스보다 연장자였던 친구 멘토르에서 유래된 말이다.  오딧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어쩔 수 없이 참가하게 되자 친구 멘토르에게 집안 일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부탁한다. 오딧세우스가 20여년 동안 지중해를 떠돌자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데 아테나 여신은 멘토르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에게 조언을 해준다. 이후 멘토르는 충실하고 현명한 조언자이자 정신적 스승, 지향할 바를 제시해주는 역할 모델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좋은 책은 제목에서 책 안의 내용이 어떤 것일지 이미 많은 걸을 예시해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역시 많은 걸 미리 예시해주고 있다. "나의 동양고전 독법"은 남도 아니고, 권위있는 전문가의 그것도 아닌 나의 동양고전이고, 나의 독법을 의미하며, 그것을 강의하였으며 신영복 선생 자신도 밝히고 있듯 당연히 반론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고전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은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론과 강의를 마치며를 제외하곤 각각 하나의 장에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를 배치해두고 있다. 예전에 신영복 선생은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 觀察보다는 愛情이, 애정보다는 實踐이, 실천보다는 立場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하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형태이다. 사상은 선택이며 역사는 현대사이며 역사이해는 역사가에 대한 이해이다. ...<중략>... 사람의 눈은 발에 달려 있다. 그 처지가 그 認識을 결정하는 법이다. 객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은 관객의 역어" 라고 말한 바 있다.

얼핏 보더라도 '입장(立場)' 이란 말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주목해보아야 할 글귀는 "사람의 눈은 발에 달려 있다"란 말인데, 이 말은 입장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즉,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땅, 자리가 입장이며 객관적이란 말은 내가 어느 위치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지칭한다는 뜻이 된다. 예전에 대선이 한창이던 무렵 홍세화 선생은 민주노동당 당원이란 신분이 기자로서 문제가 되자 "한겨레에도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 란 글을 통해 '당파성'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기자가 지켜야할 객관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팩트 뿐이며 이에 대한 시각과 분석에 차이가 있다. 기자의 정치-사회적 의식과 가치관, 세계관은 그가 당원이든 아니든 기사 작성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자의 당파성에 합리성이나 균형 감각이 담겨있는가 없는가에 있다. 그리고 기자의 당파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은 드러내지 않는 것보다 객관적 검증의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홍세화 선생은 지난 대선 당시 TV토론 자리에서 정치적 입장(당파성)이란 삶의 조건과 계급을 의미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신영복의 '입장'은 홍세화의 '당파성'이란 말과 통한다. 신영복 선생은 "강의"를 비전공자가 비전공자를 위해 고전 강독 강의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사실 지나치게 겸손한 부분이다. 많은 전문가들, 전공자들이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그 자신이 서론에서 밝히고 있듯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고 고전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예시한 문안도 그런 문제의식에 따라 선정" 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강의"는 전체적으로 신영복 선생의 입장과 그에 따른 문제의식이 고전을 선정하고, 그 안에서 예시하고 있는 문안을 통해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유석재 기자는 기사를 통해 신영복 선생의 이 책에 대해 "인간과 역사에 대한 사랑을 깊이 깔고 있는 그의 글은 준엄한 동시에 따뜻한 ‘체온’을 지니고 있다. 그 체온은 자신의 이론과 사상이 세상을 걸어가는 ‘실천’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천’을 밝히려는 부분이 때론 약간의 고집스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논어’의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배우고 때때로 익힌다)’에서 ‘습(習)’을 실천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의 ‘사(思)’까지도 실천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당혹스럽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사이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무시하고 새로이 등장한 지식인 계층인 사(士)를 피지배계급으로 설정, 유가(儒家)를 ‘제3의 계급 사상’으로 본 부분은 지나친 도식화라는 이론의 여지를 남긴다"고 쓰고 있다. 당혹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강의"는 단순한 고전 강독이 아니라 이것을 현재의 관점, 신영복 선생의 문제 의식이 녹아든 그만의 독법이자 해석이란 사실 때문에 말이다. 문제는 그런 해석을 독자가 어떻게 납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럴 때 "거두절미, 침소봉대" 식의 문법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신영복 선생은 모 신문처럼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당신의 주장이란 것이지 절대적인 해석이 아니란 것을 늘 강조하기 때문이다. 즉, 신영복 선생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면 여기에 적절한 자신의 독해를 가미하며 읽을 수 있고, 위에서 지적한 부분들이 당혹스러울 지경에 이르는 대목은 최소한 내가 읽기엔 없었다.

신영복 선생의 글은 애써 꾸민 미문(美文)은 아니나 많은 이들이 즐겨하는 문장으로 소문이 나있다. 반면에 특별히 어려운 문장이 아님에도 어렵다는 소문도 있다. 이 책 전체에서 그런 지적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서론 부분과 주역을 다룬 3장이다. 서론은 "강의" 전체를 아우르며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개념을 정리하는 부분인데, 동서양 철학을 아우르는 신영복 선생의 입장이 훌륭하게 잘 드러나고 있다. 읽는 족족 밑줄을 긋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만큼 뛰어난 해석에, 머리를 조아리며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주역"편에 들어가면 분명히 쉬운 말로 풀이하고 있는 데도 워낙 "주역"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선지 주눅이 들어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앞서 입장을 강조했는데, 다시 한 번 입장을 강조할 만한 부분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모든 고전에 일정한 무게 중심을 싣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책 전체의 분량에서도 그렇고, 당신이 힘주어 다루고 있는 부분을 살피면 특히 "논어"와 "묵자"편인 것을 알 수 있다. "논어"야 워낙 고전의 지위란 측면에서도 그렇고, 당신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두 권의 책(자본론과 논어)이라고 밝히고 있는 탓이지만, "묵자"는 다소 뜻밖이자 신영복 선생다운 선택으로 당연해 보인다. 중국의 제자백가 가운데 유가의 카운터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은 누가 뭐래도 노자의 도가 사상이다. 흔히 서양문명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융합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때 헤브라이즘이 종교(기독교, 프로테스탄티즘)을 의미한다면, 헬레니즘은 과학을 의미한다. 서양 문명은 이 양자의 조화와 균형, 견제를 통해 형성되었다. 이에 비해 동양 사상은 인본주의적인 사상인 유가와 자연주의적 사상인 도가의 대립과 견제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가의 인본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반면에 도가는 이런 인본주의의 독선과 허구성을 비판하는 반체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강의"는 유가와 도가란 주류 사상을 중심으로 고전을 다루고 있지만, 소위 비주류 사상인 "묵자, 순자, 한비자"도 함께 다룬다. 순자는 맹자와 더불어 유가의 학설이란 점에서 주류에 속하고, 한비자 역시 법가 사상을 대표해 천하통일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 위상을 인정받을 수 있으나 묵가는 제자백가 2000년의 중국 사상사 속에서도 비주류 가운데 비주류였다. 그런데 신영복 선생은 '8장 묵자의 겸애와 반전평화'를 '9장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에 비해 배 가까운 분량으로 다룬다. 여기에 신영복 선생의 입장이 녹아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단 24자로 기록된 묵자이지만 오늘날 묵자, 묵가의 사상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묵가의 사상적 복권은 실로 2000년만의 일인 것이다. 묵가의 사상이 이제야 빛을 볼 수 있게 된 가장 큰 까닭은 묵자의 사상이 오랫동안 유가에 의해 "사문의 난적"으로 지탄받아 왔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묵자의 사상이 오늘날의 좌파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뒤에도 오랫동안 묵자는 묻혀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중국공산당에 의해 "묵가의 하느님 사상과 비폭력 사상 때문에 유물론과 계급투쟁의 적으로 간주"되어 부정적 평가를 받았고, 우파로부터는 "세습과 상속을 반대하는 그의 평등사상 때문에 여전히 배척"되었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이 묵자와 묵가 사상에 대해 호의적 입장을 보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맹자"와 "장자"를 빌어 와 "실천행위는 과도하였으며 절제는 지나치게 엄정하였다"며 묵가를 비판하는데, 이는 과거를 빌어 현재와 미래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현실 사회주의 내지 과거 좌파적 실천의 각박함을 함께 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신영복 선생은 고전을 역사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며 이를 과거의 고리타분한 텍스트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함께 모색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강구해야 할 오늘의 살아 숨쉬는 텍스트로 재해석해내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몇몇 부분에서 신영복 선생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중략>... 비타협적 엘리트주의와 현실 타협주의를 다같이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중략>... 제가 감옥에서 만난 선배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합니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본문 82쪽>

"진의 시기는 통일과 건국의 과정이며 한의 시기는 이를 계승하여 통일 제국을 다스려 나가는 수성의 시기라고 보아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법치와 덕치의 비교는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155쪽>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時制)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공자의 인간 이해를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인권 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관을 이유로 그를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사상가로 매도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전독법은 그 시제를 혼동하지 않음으로써 인(人)에 담론이든 민(民)에 대한 담론이든 그것을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점이 고전의 담론을 오늘의 현장으로 생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41쪽>

이상과 같은 부분들은 역사 해석이란 측면에서 시제의 관점, 현실적 조건에 따른 대응, 시대의 상황에 따른 평가 등이란 측면에서 유연한 해석을 가능케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객관은 관객의 역어란 애초의 신영복 선생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주관주의로 흐를 여지를 남겨둔다.

"내가 향원(鄕愿)을 싫어하는 것은 사이비(似而非)를 증오하기 때문이다. 자주색을 싫어하는 것은 빨강색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향원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감옥에서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나로서는 이 구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감옥을 하나의 마을로 치자면 그 마을에는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라는 기준이 물론 문제이긴 합니다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느 곳에나 다수로서의 민중은 존재하는 법이며 다수는 항상 선량하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92 - 193쪽>

이 말은 "논어" 자로 편에 나오는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공이 질문하였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을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본문 190쪽>

이때 문제가 되는 두 가지는 좋고 나쁨의 기준을 누가 어떻게 세울 것이며, 이것이 주관적이지 않음을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다수로서의 민중은 존재하는 법이며 다수는 항상 선량하다"는 것이란 점이다. 과연 다수의 민중은 항상 선량한가? 이는 신영복 선생이 자신이 "강의"를 통해 힘주어 주장하는 "학과 사를 적절히 배합하는 자세,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란 말이 지닌 힘이자 동시에 한계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수가 결코 선량하지 않았던 시대를 알고, 그런 한 시대를 살았다. 다수란 한정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두식(한동대 법대)교수는 "헌법의 풍경"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국가의 범죄는 절대 권력을 지닌 소수의 독재자들이 야욕과 그들에게 복종하는 다수 봉사자들의 협력에 의해 현실화됩니다. 몇 명의 정신 나간 사람들에 의해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헌법의 풍경, 본문 99쪽>

물론 신영복 선생이 주려고 하는 교훈마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영복 선생의 저 선량한 낙관에 나는 쉽사리 동의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극우든, 극좌든 소수의 독재자들의 야욕에 복종하는 다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독재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재 권력의 고문실에 끌려간 양심수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고문실 바깥에서 들려오던 라디오의 한가로운 시정잡담이었다고 하질 않던가. 내가 신영복 선생의 저 선량한 낙관에 동의할 수 없는 것,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위해 인(人)을 기반으로 하던, 민(民)을 기반으로 하든, 과거의 고전으로부터 시작하든, 현재로부터 시작하든 모든 것을 회의하고, 고민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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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전설 1.2
위앤커 지음, 전인초.김선자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위앤커의 "중국신화전설1.2"는 본래 대우학술총서 시절에 이미 민음사에서 한 차례 출간한 적이 있는 책이다. 그리고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 2002년 역주본으로 다시 민음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는 듯 싶다. 책을 직접 확인해본 것이 아니므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저자와 역자를 보니 내 생각이 맞을 것 같다. 민음사에서 발간하고 있는 "세계문학전집"의 상당수는 이렇게 민음사에서 이전에 단행본의 형태로 출간했던 것을 새롭게 묶은 것들이 꽤 된다. 외국에서 양장본과 페이퍼백을 구분하는 것처럼 민음사에서도 흡사한 방식으로 책을 묶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위앤커의 이 책을 나는 초판(99년2월)으로 가지고 있는데, 지금 것과는 표지 이미지부터 조금 다르다.

이 책은 두 권으로 분권되어 있는데, 1권에서 다루는 내용은 역사 이전(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의 시대의 신화를, 2권에서는 역사 이후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이는 매우 적절한 구분으로 생각된다. 우리와 같은 근대화(서구화)의 과정을 밟아오고 있는 중국인 탓에 한동안 서구에 의해 중국에는 역사만 있을 뿐 신화는 없다는 폄하도 있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중국의 신화들이 발굴되고, 이에 대한 재해석이 가해지고 있는 터라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중국의 신화는 가장 최근의 신화이기도 하다. 이 책의 1권은 중국판 창세기라 할 수 있는 개벽편, 황염편에서는 중앙상제인 황제를 중심으로 동방상제 태호, 남방상제 염제(신농), 북방상제 전욱, 서방상제 소호 등을 다룬다. 그가운데 핵심은 역시 황제와 염제의 대결, 황제와 치우의 대결이다. 3부에서는 중국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요임금과 순임금 편을 다루고, 4부 예우편에서는 열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중국 신화의 영웅인 예와 달의 미인 항아가 등장한다. 이어 5부는 이제 역사 이전에서 역사로 진입하고 있는 하와 은나라 시대의 이야기가 다뤄진다.


- 신농씨


중국신화전설 2권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에서 진에 이르는 시간대를 다루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공자와 묵자 등 제자백가는 물론 중국의 헤파이스토스라 할 수 있는 목공 노반도 등장한다. 이걸 무슨 신화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진시황 시절의 맹강녀, 간장과 막야 등의 이야기는 사실상 신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신화에도 로마 건국에 얽힌(역사와 신화가 공존하는 시대) 역사까지 아우르고 있으므로 위앤커의 이런 시도가 어긋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중국 신화가 한족의 신화인지, 아니면 주변 다른 민족의 신화와 한데 얽혀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중국의 신화는 그리스로마신화와 달리 아직까지도 연구되야할 영역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신화전설 가운데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는 부분은 제1장 세상의 시작에 등장하는 혼돈의 이야기와 2권의 묵자와 노반의 이야기이다. 남해의 천제 숙과 북해의 천제 홀은 종종 중앙의 천제 혼돈에게 놀러갔다. 혼돈은 늘 이 두 신에게 좋은 대접을 해주었는데, 어느날 숙과 홀은 어떻게 하면 혼돈의 대접에 보답할 수 있을까 궁리 끝에 혼돈에게 눈,코,귀, 입 등 일곱개 구멍을 내주기로 했다. 그러나 숙과 홀이 이레 만에 일곱 개의 구멍을 모두 뚫자 혼돈은 그만 영원한 잠 속에 빠져들고 만다. 혼돈이 영원불멸의 시간을 상징한다면 숙과 홀은 밤과 낮으로 저물고 떠오르는 시간을 상징한다. 숙과 홀이 영원불멸의 시간을 잠재움으로써 우리는 밤낮으로 저물고 지는 시간, 즉 우주와 세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과연 혼돈을 잠 재운, 숙과 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곱 개의 구멍은 어째서 혼돈을 잠들게 했는가? 혼돈이 잠든 뒤 우주와 세계가 탄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걸 궁리하노라면 밤을 새도 모자랄 판이다.

역사와 신화, 문학과 신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상보적인 위치에 놓인다. 신화는 민족의 역사를 보강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이지만, 신화 자체가 역사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엿사와 충돌한다. 문학의 뿌리는 신화이지만, 비유로서 은유를 채택한다는 점에서 환유적 이야기 구조를 지닌 신화와 충돌한다. 은유란 언어와 사유, 사물 가운데 서로 겹쳐지는 부분(유사성)을 이용해 제3의 개념(이미지너리)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문학의 중요한 기법이 되어 왔다. 반대로 신화의 세계는 환유의 세계이다. 은유가 보편적인 세계에서 은유(비유)를 통해 내용을 제한하고, 구체화한다면 환유는 하나의 상징이 그와 인접한, 연관된 보편의 세계로 확장해간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은 호수"라는 은유는 내 마음의 상태를, 호수가 지닌 잔잔함이란 유사성에 빗대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환유는 "조선총독부"란 한 마디를 통해 조선총독부가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해 간다. 이때의 조선총독부는 단순히 건물이 아니며, 일제 강점기의 역사, 일제 강점의 통치기술, 체제 등을 의미하는 말이 된다. 신화가 환유의 서사구조란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혼돈이 상징하는 걸 분석하는 방식이 바로 그렇다.)

중국신화를 읽다보면 그리스로마신화와 흡사한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건 유대의 신화라고 할 수 있는 구약의 내용과도 흡사한 부분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대홍수 신화, 인간의 창조 과정 등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정말 역사 이전의 시대에 대홍수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만큼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신화이기도 하다. 따지고보면 전세계적으로 거의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교류가 없는 지역끼리의 신화에서 나타나는 흡사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신화가 인류 보편의 이야기라는 반증이다. 혹자는 역사의 시대가 저물고, 신화의 시대가 시작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역사가 민족 혹은 국가에 한정한 주체의 이야기라면 신화가 지닌 이런 특성, 인류의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데 주목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보편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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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중국 고전 명언 사전 - 모로하시 데쓰지 지음 / 솔출판사

중국고전명언사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고전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에게 석학(碩學)이란 헌사를 바치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정확한 한자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일생일업(一生一業)이란 말이 낯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을 볼 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보다 나은 문화적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된 공로만을 기리기 위한 것은 아닐 게다. 사실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은 내가 구입한 책은 아니고, 사무실에 굴러다니길래 며칠동안 공들여 읽었던 책이다. 이 책 이전에도 동양고전들을 다이제스트한 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 책을 읽어 본 뒤 이 책에 "사전"이란 말이 들어간 것이 공연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에 조금의 관심만 있는 사람이라면(고등학교 때 다 배운다, 기억이 안 난다면 그건 수업을 열심히 안 들은 탓이겠지만) 서양의 고전 전통에 대해서 도표를 그릴 수 있다. 서양의 고전이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결합이고 어쩌고 하는 것 말이다. 헤브라이즘의 고전이라면 역시 성서를 들 수 있을 것이고, 헬레니즘의 고전들이라 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메로스, 헤로도투스 그리고 그리스 4대 비극과 같은 책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시 스토아학파와 스콜라철학, 그리고 르네상스에서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 임마누엘 칸트에서 헤겔과 포이어바흐 그리고 20세기의 메타이론이랄 수 있는 칼 맑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신좌파가 등장하기도 하고, 구조주의가 등장하기도 한다. 매우 거친 논법이긴 하지만 서양고전의 맥을 짚어보자면 대충 저와 흡사한 경로들을 밟아온다.

종종 우리 인문학자들 혹은 사회학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엄살은 아니다. 할리우드의 B급 영화들을 보다가 나는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도시 뒷골목 삼류인생을 사는 허름한 술집의 바텐더가 어느날 셰익스피어의 한 구절을 멋드러지게 암송해내는 장면을 볼 때 나는 서양 인문학의 전통 혹은 그들의 "교양(Bildung)"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쌓아올려진 것이 아니며 우리들이 서구를 따라가기만 하는 동안엔 결코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이론들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것이 적절한 사례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에 대해 우리가 동아시아 담론을 말할 때 참 맥빠진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흡사하다. 그들에게 돌아오는 답이 "동아시아? 그런 게 있었냐?"하는 투의 것이거나, "어째서 동아시아냐? 아시아에 한국과 일본만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올 때도 매일반이다.(우리들은 잘 모르지만 베트남 역시 대단한 한자문화권이며, 그들도 한시를 짓고, 삼국지를 읽는다)

중국이 거만하다는 비판을 하고 싶어서 꺼내는 말이 아니다. 최근 동북공정 문제로 인해 우리들의 비윗장이 상해 있는 것과 별개로 중국은 아시아 그 자체이거나, 최소한 그런 자부심을 주장할만한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자존심을 보상받기 위해 이 리뷰에서 적당한 이야기들을 끼워넣을 수도 있겠지만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종종 국학 내지는 우리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중국의 학자들에 비해 두 배 혹은 세 배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이 중국의 전통에 따라 공부하기 위해서 그들은 중국의 고전들만 읽으면 되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고전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reference book"의 수가 우리에겐 저들보다 더 많아야만 한다.

'모로하시 데쓰지'라는 일본 학자에게도 역시 중국의 고전은 우리 학자들이 느끼는 천애의 절벽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최고의 영예를 안겨준 "대한화사전" 집필은 물론 그 혼자 한 일은 아니다. 일본의 수많은 학자들이 "대한화사전"을 완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모로하시 데쓰지가 "대한화사전"의 집필에 착수한 것은 1929년의 일이었고, 모두 13권으로 완성된 것은 1960년의 일이었다. 무려 30년이 걸린 대역사였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은 "대한화사전"을 만들다 보니 알게 된 지식을 활용해서 만든 책일지도 모르겠다. 가령, 그리스.로마신화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서양미술사를 함께 공부하지 않을 수 없고, 그리스의 비극과 희극들을 함께 공부하지 않을 수 없듯이 이런 공부들을 하다 보니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한 책은 물론 그리스로마신화로 본 서양미술사, 그리스로마신화로 본 그리스 비극 등등의 여러 아이템들이 책으로 엮이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가 오늘날 인터넷을 사용하며 자주 쓰는 "콘텐츠(contents)"란 말, 문화적 인프라를 강화시키는 콘텐츠니 어쩌느니 하면서 사용하는 말이 지향하는 바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을 전세계가 얼마나 공유하고 있으며 흥미있어 하는가?"를 묻는 말이기도 하다. 가령, 중국의 나관중이 집필한 "삼국지"는 동양의 고전이다. 이때 고전이란 말은 일정한 존경이 묻어나는 말이다. 국제저작권법에 따르면 작가의 사후 50년간은 지적재산권을 보호받게 되어 있다. 만약 나관중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혹은 사후 50년이 경과하지 않았다면,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올라있는 "삼국지" 관련 도서 762종 중 태반은 매년 일정한 액수를 중국의 나관중 전담 에이전시에 내야 할 것이다. 물론 인류의, 한 시대의, 한 세계의 문화적 자산을 놓고 돈놀이 셈하듯 이야기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긴 하나, 현재 우리가 말하는 콘텐츠란 것의 의미가 그렇다.

순전히 산업적인 측면에서 고전에 접근했을 때, 오늘날까지 여전히 생명을 잃지 않고 있는 고전의 가치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에 실린 모로하시 데쓰지의 저자 서문은 이렇게 두툼한 책을 쓴 이의 서문 답지 않게 매우 짧다. 이 책의 페이지수가 전부 1,640쪽(거의 목침 두께이다)인 걸을 고려할 때 저자 서문은 불과 1쪽 원고매수로 계산해봐야 200자 원고지로 3장 안팎으로 보인다. 그는 이 짧은 서문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전에 실린 명언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어떤 때는 사람을 가르쳐서 인도하고, 어떤 때는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한다. 고전이 수천 년에 걸쳐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가르쳐서 인도하였고, 때로는 격려하고 위로하였다는 사실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은 책의 저자 자신이 고전을 읽으며 절절하게 느꼈던 소감일 것이다. 앞서 나는 할리우드 B급 영화의 한 토막에서도 셰익스피어가 인용되고, 볼테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영화 혹은 우리의 일상에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고전의 문구들은 인용되지 않을까?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 우리들 자신도 이미 부지불식간에 고전의 향기에 취해있기에 그것을 인용하고 말하면서도 우리 자신이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게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국의 고전들은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 좌전, 효경, 충경, 근사록, 소학, 노자, 장자, 묵자, 순자, 관자, 한비자, 손자, 오자, 회남자, 당시선"에 이른다. 낯익은 "논어, 맹자"는 물론 "충경이나 관자"의 경우엔 나로서도 이 책을 통해 처음 듣는 것들이다. 동양의 고전은 그토록 우리들에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은 사전이면서 사전이 아니다. 이 책은 그간 쏟아져 나온 여러 종류의 "책에 대한 책"들과 같이 우리 시대의 정전(正典)에 대한 선별을 통해 갈고 다듬어진 실라버스(syllabus)이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한 책이다. 아마 내가 헌사할 수 있는 최상의 헌사가 있다면 나는 이 책에 그것을 아낌없이 바치고 싶다. 모로하시 데쓰지는 이 책을 엮는데 8년이 걸렸다. 우리가 이런 책을 8년간 똑같이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8년간 꾸준히 읽는 일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8년간 읽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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