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오브 워 - 앤드류 니콜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외 출연



“전 세계적으로 5억 5천만 정 이상의 화기가 유통되고 있어. 12명 당 한명 꼴이지. 문제는, 나머지 11명을 어떻게 무장시키느냔 거야.”

영화 <로드 오브 워(Lord of War, 2005)>의 첫 장면에서 무기밀매상(Private Gunrunners) 유리 오를로프가 자조적으로 내뱉는 대사다. 그가 딛고 서 있는 아프리카의 대지에는 탄피들이 즐비하고, 007시리즈를 알리는 유명한 오프닝 장면처럼 카메라는 총구가 되어 전투의 현장들을 겨냥한다. 마침내 ‘탕’ 한 방의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카메라는 빠른 속도로 달려가 역시 AK-47소총을 들고 있는 아프리카 소년병의 머리를 관통해 버린다. 영화에선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도 소년의 머리를 과녁 삼아 관통해버린 탄환은 AK소총에서 발사된 탄환일 확률이 가장 높다.

유리 오를로프는 과거의 통계로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전 세계에는 대략 6억정의 소형화기들이 널리 퍼져 있고, 그 가운데 최소한 7,000만 정에서 1억정이 미하일 티모셰예비치 칼라시니코프가 발명한 AK-47과 그 다양한 바리에이션들이다. 최근에 나는 『인물과 사상』(2009년 8월호)이란 잡지에 <현대의 일상을 창조한 사람들>이란 시리즈를 기획연재물로 싣고 있는데, 그 첫 번째 인물로 선정한 사람이 칼라시니코프였다. 이 시리즈는 우리의 현대 일상을 지배하는 다양한 현상의 근원들을 어떤 한 인물이 만들어 낸 물건이나 시스템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나는 AK-47소총이란 가볍고, 반동이 적으며,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자동소총의 탄생이 현대의 일상에 끼친 영향과 그 배후를 함께 다루고자 했다. 영화 <로드 오브 워>는 무기밀매라는 형태로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에 널리 퍼진 불법무기 거래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나는 이 영화와 영화에 수록된 다큐멘터리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오랜 내전을 치르고 있는 한국은 베트남전 이후부터 ‘자주국방(自主國防)’이라는 슬로건 아래 무기산업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신흥공업국의 기술 수준으로는 생산이 불가능할 것이라 예측했던 M-16의 자체 생산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세계 1~2위를 다투는 고성능 자주포 K-9을 비롯해 기본훈련기 KT-1, 고등훈련기 T-50 등을 수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98년부터 최근 2007년까지 한국의 무기산업 수출총액은 28억 199만 달러로 연평균 약 2억 8천만 달러 수준이었다. 그중에서 항공 34%, 탄약 23%, 함정 15% 등을 차지하고 있다. MB정부의 출범 이전부터 방위산업을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하자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죽음의 산업이라 할 수 있는 무기 산업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나 경계는, 우리 사회의 다른 분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미의존도가 높은 군사 분야에서는 역으로 ‘자주국방’과 ‘안보’논리에 밀리고, 이제는 경제성장논리에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뉴질랜드 출신의 앤드류 니콜(Andrew Niccol) 감독은 DNA조작에 의한 미래사회의 계급차별을 다룬 영화 <가타카(Gattaca, 1997, 미국)>의 감독이자 - 이 영화에 대해서는 내 홈페이지.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http://windshoes.new21.org/film-gattaca01.htm )에서 다룬 바 있다 - <트루먼쇼>의 대본을 쓴 작가로 사회성 짙은 영화예술인(cineaste)으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영화 <로드 오브 워>는 그가 대본, 연출을 모두 맡은 영화로 유리 오를로프 역을 맡은 니콜라스 케이지와 <가타카>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은 맞춘 에단 호크가 무기밀매상 오를로프를 뒤쫓는 국가기관의 요원으로 등장해 재미를 더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거래에는 흑막이 있기 마련이지만 무기거래의 내막을 살펴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어려움의 근원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도 있지만 한눈에 살펴볼 수 없을 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니콜 감독 역시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미국 비평계로부터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을 만큼 문제작이었지만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흥행에서는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비록 유리 오를로프의 인간적 고뇌를 담은 스토리로 ‘당의정(糖衣錠) 효과’를 얻고자 했으나 <트루먼쇼>와 같은 흡인력과 재미를 동시에 갖춘 휴먼드라마를 기대한 이들은 흡혈귀 무기밀매상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한 바탕 시원한 액션 활극을 기대한 이들에게 이 영화는 너무 복잡하고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영화의 런닝 타임과 동일한 시간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고 해도 무기 밀거래의 흑막과 배경, 원인을 살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텐데 니콜 감독은 참으로 무모한 도전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은유를 통한 사회현상의 고발이라는 드라마적 재미를 일부 포기하는 대신, 다큐멘터리라면 결코 보지 않았을 사람들에게 무기거래의 진정한 배후가 누구인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인 영화가 되었고, 그것이 <로드 오브 워>가 지닌 진정한 의미이기도 하다.

1992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이후 독립국가가 된 신생 우크라이나 공화국에서 무려 4조원의 재래식 무기가 사라졌다. 이 사건은 20세기 최대의 무기 실종 사건이었지만 그 누구도 기소되거나 체포되지 않았다. 미소양국은 물론 냉전 체제 아래 있던 세계 각국에 비축된 재래식 무기는 냉전 기간 동안은 물론 실제로 전쟁이 발발한다 할지라도 모두 소모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양이었다. 냉전 해체로 필요 없는 재고가 된 재래식 무기들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구 유럽의 보관비용만 늘려가고 있는 실정이었고,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틈새로 무기밀거래가 독버섯처럼 번졌고, 국가기관 역시 암암리에 개입했다. 결국 이들 국가에서 번져나간 무기들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의 분쟁지역으로 퍼져나갔고,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전쟁이 아닌 내전 기간 동안 죽어야 했다. 원제명인 “Lord of War”는 그런 의미였다.




냉전 기간 중 유대인으로 신분을 속인 아버지 덕분에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 이민자 가족인 유리 오를로프는 우연히 목격한 러시아 마피아들간의 총격전 장면을 보면서 저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죽지만 누군가는 그 무기를 팔아 이득을 본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폭력은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유리 자신에게도 낯선 장면은 아니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거리에서 햄버거나 핫도그를 팔듯 그렇게 무기를 팔 것이라 생각하였으므로 무기를 판다는 죄책감은 마약을 판다는 죄책감보다 덜한 것이었다. 니콜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여러 무기밀매상들을 인터뷰하고, 널리 알려진 몇몇 사람의 생애를 유리 오를로프라는 가상의 인물에 녹여내기 위해 애썼다.  

덕분에 유리 오를로프는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또 한 편으론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록 남동생이지만 형제에 대한 집착은 알 파치노가 주연 했던 <스카페이스>, 훗날 에바 폰테인(브리짓 모나한)에 대해 유리가 어렸을 때부터 보인 집착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이 떠오르고, 성공의 정점에서 결국 소중한 가족을 잃는 모습은 얼핏 <아메리칸 갱스터>가 떠오른다. 독창적인 스토리인 듯 보이지만 이처럼 익숙한 장면들이 등장하는 까닭은 무기밀거래가 영화를 밀고 가는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을 형성하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그로 인한 혼선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영화적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아프리카 내전의 자금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라면 - 당신의 결혼반지와 휴대폰엔 아프리카의 피가 묻어 있다 - 앤드류 니콜 감독의 <로드 오브 워>는 실제 서아프리카 내전을 주동했던 다양한 인물들을 영화적으로 배치하면서 그들이 다이아몬드와 휴대폰의 필수적인 부품재료인 콜탄을 팔아 무엇을 구입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앞서 나는 칼라시니코프에 대해 글을 썼다고 했는데,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고기 다지는 기계 앞에서 칼라시니코프를 희생양 삼아 그가 이 모든 비극의 배후라고 고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이 기계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볼트나 너트였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무기밀거래상들 역시 그저 기계가 작동할 수 있도록 재료를 공급하거나 기계가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윤활유 정도의 기능을 할 뿐이다.



유리 오를로프는 아프리카의 독재자를 비롯해 무기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 무기를 공급하고 싶어하는 모든 정부와 친밀한 거래를 주도했고, 그 결과 어릴 적부터 흠모했던 여인과의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거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아니 실제로는 이제까지 소모된 재래식 무기 보다 좀더 무기의 화력과 수준을 높이길 희망하는 무기산업자본의 노력으로 점점 더 입지가 좁아진다.

올초에 개봉한 영화 <인터내셔널>은 어떤 면에선 <로드 오브 워>의 후속편이거나 유리 오를로프를 추적하던 요원 잭(에단 호크)의 시선으로 그려진 무기 거래의 이면을 그린 영화다. 두 영화 모두 흥행에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인터내셔널>에선 재래식 불법무기 거래에서 첨단 무기 거래로 넘어가는 새로운 무기 산업의 양상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이후 사회의 양극화는 물론 세계의 경제적 양극화 또한 극심해지고 있는 상황인데, 양극화의 가장 극심한 사례가 바로 무기 생산과 소비의 양극화다. 전 세계 무기 공급의 3분지 2는 미국과 러시아가 담당하고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는 유럽연합 국가들이 책임지고 있다. 2005년 현재 무기 생산업체의 무기 판매액은 2,680억 달러에 달하고, 이 매출액의 절반은 세계의 다국적 자본인 5개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다. 물론 이들 다국적 기업들이 생산하는 것이 무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전자레인지,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유리 오를로프는 말한다.

“최후의 순간에 지구를 상속받게 될 자들이 누군지 알아? 바로 무기상들이지.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느라 너무 바쁘거든. 살아남는 비결은? 전쟁을 하지 않는 거야, 특히 자기 자신과는 절대로….”

전 세계가 미국발 금융파생상품의 파산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 배후나 원인을 찾을 수 없으며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무기 거래의 진정한 배후는 영원히 흑막 속에 가려지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전쟁의 세기라는 20세기 동안 전쟁으로 인해 죽은 사람보다 제노사이드(민간인학살)로 죽은 사람의 수가 1억 7천만 명으로 더 많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인간의 본성인양 비춰지는 동안, 어쩌면 당신이 연말 보너스처럼 수익을 기대하며 넣은 해외펀드는 군수산업을 살찌우고, 당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양 팔을 정글도로 잘라내고 얻은 것일지 모른다. 물론 내가 쓰고 있는
삼성 휴대폰에도 아프리카 콩고산 콜탄이 필수 부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스 바이스와 클라우스 베르너의 책 『나쁜 기업』(프로메테우스, 2008)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가 광석의 판매는 콩고 반군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점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삼성 경영자는 이 불순한 거래를 비밀에 부칠 것임을 보장했다. 설령 다음과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이 광물은 다시 시장에 나오지 않을 겁니다. 바로 삼성 자체 수요로 전자업 쪽에서 가공될 겁니다.”

삼성은 원료가 의심스러운 곳에서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모른 체 한다. 우리가 이 무서운 불법무기 거래를 차단하고, 더이상 학살을 못 본 체 눈감지 않기 위해서는 오를로프의 말과 반대로 우리 자신과 전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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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공군 대전략 (Battle Of Britain)
감독 : 가이 해밀턴
출연 : 해리 앤드류즈, 마이클 케인, 트레버 하워드, 커드 저진스
제작 : 1969(영국)
 

 

서구의 몰락과 나치의 유럽 통합 계획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한 대의 허리케인 전투기가 패주하는 영국군과 프랑스 피난민들의 머리 위로 공중제비(소위 "승리의 횡전"이란 비행 포메이션)를 넘으며 멀리 사라진다. 그러자 전차에 올라탄 채 후퇴하고 있던 영국 병사 하나가 쓰디쓴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저게 어디서 사기를 쳐."  1940년 6월 5일 아침 몇 명의 독일군 장교가 프랑스의 덩케르크 해안 근처를 산보하듯 거닐었다. 그곳에 독일의 전격전에 휘말려 패전하며 간신히 프랑스에서 철수한 영국군 장비와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전사한 영국군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독일은 전유럽을 석권했고, 이제 남은 것은 영국 하나뿐이었다. 영국만 독일에 굴복한다면 유럽의 통합은 오늘날 EU에 의한 것이 아니라 1940년 6월 독일에 의해 이룩될 뻔 했다.

 

어떤 의미에서 분열과 통합을 거듭한 유럽의 역사에서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은 곧 유럽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가 만년에 나치즘에 경사되었던 까닭, 그것은 유럽이 하나의 강력한 문명권으로 재통합하여 다시 세상의 주도 문명(패권)을 이루길 소망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렇듯 유럽을 힘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로서의 제2차 세계대전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정치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여러 위험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시도되지 않았던 역사 평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의 대결로서 더 의미지어져 왔다. 그러나 이런 평가만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완전히 규명해내는데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최소한 1940년 6월까지의 독일은 분명 문제가 많은 폭력적 국가이긴 했으나 특별히 인류의 적이라 규정당할 만큼 사악한 국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독일과 나치즘을 두둔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나 서구문명에서 한 인종에 대한 잔학한 멸종 정책의 원조는 엄밀히 말하자면 나치즘이나 독일이 아니다. 그들이 소위 문명화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성취된 이후에도 혹은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이미 그들은 다른 인종을 멸종시킨 전례가 있다. 그 대부분은 게르만인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앵글로 색슨종에 의한 것이었는데,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인디언 멸종에 이르는 과정,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일어난 애보리진 멸종에 이르는 과정과 비교하자면 독일과 유럽에서 일어난 유대인 말살정책은 오히려 덜 잔인한 측면이 있다. 최소한 독일인들은 유대인들과 대화는 했으니 말이다.

 

 

파시즘이 유럽에서 발호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그보다 더 정교하게 규명해볼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의 유럽 혹은 서구(미국을 포함한)에서 파시즘(나치즘)을 바라본 시각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파시즘을 유럽문명을 수호할 하나의 중요한 정신 혁명으로 보거나, 전혀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거나 최소한 공산주의보다는 덜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런 까닭에 슈펭글러나 하이데거와 같은 역사학자와 철학자들은 나치즘을 지지했고, 독일 이외의 국가들 -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 심지어 미국에서도 나치즘을 지지하는 정당이 만들어졌다.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유대인 혐오와 함께 히틀러를 격찬했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헨리 포드뿐만이 아니었다. 윈스턴 처칠 역시 공산주의에 대한 대단한 혐오를 드러내면서 나치즘과 히틀러를 매우 유능한 인물이자 훌륭한 정치 파트너로서 격찬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나치즘이 지배하는 독일을 소련에 대한 자본주의의 유능한 방패로 인식했고, 독일이 비록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긴 했지만 그만한 지위를 누릴만한 자격과 권리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여겼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전쟁의 위험을 감지한 소련의 스탈린이 수 차례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춰를 보내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에 대해 연합전선을 만들 것을 요청했음에도 이들 국가들은 도리어 소련을 고립시켰다. 소련이 강력한 반공을 주장하는 독일과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궁지에 몰린 소련의 입장에서는 피치 못할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소련에 대한 파수견 입장보다는 좀더 쓸만하고 구미에 맞는 먹잇감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이었다.

 

 

제2의 정복왕 윌리엄을 꿈꾼 히틀러

거기에는 동시에 두 곳에서 전선을 만들지 않는다는 제1차 세계대전의 교훈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어찌되었든 독일은 서부 유럽의 패자이자, 유럽을 석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프랑스를 단번에 패퇴시키는 위용을 거두었고, 독일 공군(Luftwaffe)는 일찌기 찰스 린드버그가 말했던 것처럼 "독일의 공군력은 전유럽 제국을 합친 것보다 강력"했고, 유럽 최강을 넘어 세계 최강이었다. 영국은 우군 하나 없이(미국은 이 당시 참전하지 않고 있었다) 세계 최강의 육군국이자, 공군국인 독일을 상대로 고립된 상태에서 전쟁을 벌여야 했다.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자신의 방공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방에서 나는 전투를 지휘하겠다. 그리고 만일 침공이 시작된다면 이 의자가 내가 앉을 자리이다. 우리가 독일인들을 격퇴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내 시체를 끌어낼 때까지 나는 저 자리를 고수하겠다." 이 말은 당시 영국이 처해 있던 고립무원의 상황을 너무나 적확하게 보여준다.

 

이 무렵 독일은 영국진공계획인 "강치(시라이온)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 작전은 도버 일대의 벼랑 동쪽에 있는 램즈 게이트에서 와이트도 서쪽의 라임만까지 거리로 약 320km에 달하는 장대한 영국의 해안선에 25만명의 독일군을 상륙시키는 것이었다. 이곳은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소수의 노르만 기사들을 이끌고 영국 정복에 나설 때 상륙한 바로 그곳이었다. 독일은 영국 점령 이후 체포할 유명인사들 - 영국수상인 윈스턴 처칠을 비롯해 작가인 올더스 헉슬리, 버지니아 울프 등 - 의 리스트까지 작성해 논 상태이고, 독일공정부대원들 가운데 일부에게는 버킹검궁 강하 직후 체포할 영국왕에게 건넬 인사말까지 준비시켰다. 모든 것은 치밀한 독일인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로 착착 진행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도버 해협을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필수적인 요소들이 보장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선, 폭이 40km에 불과한 도버해협이긴 했지만 이 해협을 건너기 위해서는 제해권과 제공권이 보장되어야 했는데, 제해권을 장악하는데는 필수적으로 제공권을 장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배틀 오브 브리튼의 시작 - 제공권을 잡아라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공군들을 섬멸해야 했다. 히틀러에 이어 독일의 2인자였던 헤르만 괴링에게 이건 닭을 비트는 일보다 쉽게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스페인 시민전쟁 때부터, 폴란드 침공, 프랑스 점령에 이르는 기간 동안 무적의 전투 경험을 쌓은 강력한 공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 공군은 1선에 배치된 항공기만 4,500대에 이르렀지만, 영국은 제2선급 항공기(여기에는 수송기, 중폭격기)까지 모두 긁어모아야 고작 2,900대 공군기만 보유하고 있었다. 단지 산술적으로만 보더라도 평균 2:1의 약세에 처해 있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독일 공군의 파일럿들은 스페인 시민전쟁을 비롯한 수않은 전투에서 경험을 쌓은 에이스들인데 비해 영국 공군 파일럿들은 그런 경험이 전무한 애송이들이었고, 그나마 파일럿의 숫자는 비참할 정도로 모자라 보유하고 있는 항공기들을 공중에 모두 띄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간단히 살펴보더라도 도저히 영국은 독일의 거센 공격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만약 영국인들이 이런 비교만으로 전쟁의 승패를 가늠했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은 1940년 6월에 끝났을 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오늘날 세계의 모습은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협상을 권유한 독일의 제의를 거절했고, 그로부터 독일의 가혹한 대공습을 견뎌내는 "불의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오늘날 "Battle of Britain"이란 말은 단순히 우리 말로 번역한 "영국의 전투"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말은 1940년 6월부터 시작해서 1941년 5월 10일까지 영국 상공에서 벌어진 공군대 공군 사이의 대혈전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때를 다룬 영화이다.

 

 

자유를 수호한 영국의 찬가

미국에게 "지상최대의 작전"이 파시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진영을 사수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그들 나름의 찬가라면, 영국에게 "배틀 오브 브리튼(공군대전략)"은 그들이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유럽과 자유 진영을 사수하기 위해 악전고투한 그들만을 위한 찬가이다. 그런 까닭에 "지상최대의 작전"에서 미국과 할리우드가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제작한 영화라면, "배틀 오브 브리튼"은 영국이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제작한 영화이다. 감독은 "007시리즈"로 유명한 "가이 해밀톤(Guy Hamilton)"이 맡았고(아마도 이 영화의 제작자가 007시리즈의 제작자인 탓인지도 모르지만),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 역시 영국 출신의 쟁쟁한 주연급 배우들이 앞장서고 있다(이 영화의 서플먼트에 따르면 이 배우들은 모두 제각각 가장 적은 출연료라도 감수하면서라도 이 영화에 출연하고자 했다고 한다).

 

마이클 케인 (Michael Caine), 트레버 하워드 (Trevor Howard), 커드 저진스 (Curd Jurgens), 해리 앤드류스(Harry Andrews), 이안 맥쉐인, 케네스 모어, 나이젤 패트릭, 크리스토퍼 플러머,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랄프 리처드슨, 로버트 쇼, 패트릭 위마크, 수잔나 요크 등 모두 주연급으로 한가락씩 하는 배우들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주인공은 영국 공군 대장역을 맡았던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경이었다. 그는 이 영화에 출연할 당시 이미 암이 발병한 상태였으나 이 사실을 숨기고 출연해 "배틀 오브 브리튼"의 명장 "휴 다우딩(Hugh Dowding)" 역을 맡았다. 로렌스 올리비에 경의 연기에 대해 여러 찬사들이 있으나, 이 영화 역시 "지상최대의 작전"처럼 수많은 유명배우들이 존재감 없이 등장했다 사라지지만 그 가운데 유일하게 존재감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역시 로렌스 올리비에 경의 연기는 탁월하다는 찬사를 바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승리 요인들

이 영화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영국이 어떻게 독일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가를 살피고 있다. 그 요인들은 우선 로렌스 올리비에 경이 연기한 휴 다우딩 장군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전략에 있었다. 다우딩은 프랑스의 패배를 예견하고, 처칠에게 더이상의 영국 공군을 도버 너머로 파병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이 때 처칠은 프랑스 수상에게 더 많은 영국 공군의 파병을 약속해 논 상태였지만, 다우딩의 권유를 받아들인다. 그 덕분에 영국은 더이상의 공군력 손실없이 다가오는 전쟁을 대비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다우딩은 영국의 모든 공업력을 항공기, 그 중에서도 전투기 제작에 최우선을 두도록 했고, 독일 공군의 폭격에 도시를 내어주면서까지 자국의 공군력을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운영해 최후의 순간까지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비축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 전투는 영국 상공에서 벌어진다는 우위를 철저히 이용했다.

 

독일 공군의 주력기인 Me-109는 먼거리를 비행해 영국 상공에 이르렀을 때는 최소 10분에서 최대 20분의 시간 동안만 머물 수 있는 짧은 항속거리를 가지고 있었던데 비해 영국 공군은 레이더의 지원을 받아 독일 공군이 프랑스의 기지에서 이륙하는 순간부터 대기하였다가 그네들이 도착한 시점에 비로소 요격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에 독일 공군은 늘 시간과 연료에 쫓기며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영국 공군은 독일이 보유하지 못한 신형 무기인 레이더 기술에서 훨씬 더 앞서 있었으므로, 독일 공군은 영국 공군의 레이더 기술에 걸려 기습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영화는 "지상최대의 작전"과 마찬가지로 세미 다큐멘터리 형식을 갖추고 있다. 실제 전쟁에서 쓰였던 전투기와 폭격기들을 동원해 실제로 공중전을 방불케 하는 고도의 기동전술, 편대 비행, 전투 기술을 보이면서 촬영된 영화이다. 더군다나 그 모든 것이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실제 전투기(일부 모델)를 공중에서 폭파시키는 방식으로 촬영된 실사 영화이다. 그렇게 고증에 철저한 이 영화에서 언급하지 않는 유일한 승리의 요인은 당시 영국군은 독일군의 군사암호를 모두 해독하고 있었다는 사실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승리의 요인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영국 공군 파일럿들의 헌신적인 희생과 불굴의 정신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처칠은 "배틀 오브 브리튼"이 끝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소수의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할 때는 없었다"고 말한다. 영국인들에게 "배틀 오브 브리튼데이"는 그들이 세계를 구원한 영광스러운 날로 기억된다. 1941년 5월까지 독일이 영국에 가한 대규모 공습만 127회였고, 이 때 영국 민간인 총 6만명이 사망했으며, 8만 7천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영국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보다 더 많은 공습과 폭탄을 독일에 떨어뜨려렸고, 무차별폭격을 가해 더욱 많은 독일의 도시들을 불태웠고, 더 많은 민간인들을 희생시켰다.

 

 


그 이후 바뀌지 않는 민간인 학살 - 무차별폭격의 역사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기 승무원으로 독일 상공을 비행했다. 그는 훗날 자신이 폭격했던 지역을 여행하며 공중에서 내려다 볼 때는 다만 한 개의 점으로 보였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는 군인 신분으로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었지만 그가 떨어뜨린 폭탄이 민간인이 거주하는 도시에 떨어져 일반 시민이 사망했다는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하워드 진은 폭격 임무 참여할 당시 폭격기 날개 밑에서 터지는 고사포탄의 검은 색 구름을 제외하면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고 있다는 생각은 물론 적진을 비행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영국인들에게 "배틀 오브 브리튼"은 자유에 대한 전체주의에 대한 도전에 대한 승리의 의미를 지닐 것이고, 이것은 분명 부인할 수 없을 만큼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벌어진 이 엄청난 항공전의 승리는 그 뒤에 치뤄질 무지바한 대량공습과 무차별폭격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전쟁수행방식의 전초전이기도 했다. 이제 전쟁은 더욱 가혹해졌는가? 물론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더욱 가혹해졌는가? 그것은 전방의 군인들이 아니라 후방의 민간인들에게 더욱 가혹한 것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전선의 병사보다 후방의 민간인 사상자 수가 압도적으로 증가하게 되고, 이런 전쟁 수행 방식은 이후부터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수와 양을 능가했고, 베트남전은 다시 이를 경신한다.

 

 

* 이 DVD는 두 장의 타이틀로 구성되어 있다. 한 장은 본 영화를 다른 하나는 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몇 가지 점에서 두 번째 타이틀 역시 매우 재미있다. 하나는 당시 전쟁에 참전했던 파일럿들의 생생한 증언, 영화 제작과정의 에피소드, 그리고 당시 생존해 있던 휴 다우딩 장군과 독일의 에이스이자 나폴레옹 이후 유럽 최연소 장군이었던 아돌프 갈란드의 인터뷰가 삽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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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 맬릭 - 씬 레드 라인(The Thin Red Line) 


나는 테렌스 멜릭이 어째서 거장으로 추앙받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어쩌면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이유는 이제서야 "씬 레드 라인"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씬 레드 라인" 2편 모두 극장에서 보았다. 나중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비디오로도 몇 번 더 보았다. 물론 좋았단 뜻은 아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최소한 "씬 레드 라인"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극장에서 "씬 레드 라인"을 보았을 때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감을 잡지 못했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나는 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테렌스 멜릭은 "황무지", "천국의 나날들" 단 두 편을 촬영하고 거장으로 추앙받았다. 그리고 20년만에 만든 영화가 "씬 레드 라인"이었다. 나는 유일하게 "씬 레드 라인"만 보았으니 그가 거장으로 추앙받는 이유쯤 잘 몰라도 되겠지? 어쨌든 그런 까닭에 "씬 레드 라인""오션스 트웰브" 못지 않게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설명이 필요없는 "숀 펜", "피아노"의 에드리언 브로디, 제임스 카비젤, 벤 채플린, 조지 클루니, 존 쿠삭, 우디 해럴슨, 닉 놀테, 존 트라볼타, 존 세비지 등이 이 영화에 주연, 조연, 단역을 맡았다.

 

 

1953년 프레드 진네만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제임스 존스의 소설 "지상에서 영원으로"란 작품처럼 영화 "씬 레드 라인" 역시 제임스 존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지상에서 영원으로"가 하와이 진주만 기습 공격을 전후한 태평양 전쟁 초기의 이야기라면 "씬 레드 라인"은 전쟁 중반의 과달카날 공방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 배경으로 쓰인 과달카날은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전쟁과 인간, 인간과 자연 그리고 전쟁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는 그곳의 원주민들, 각기 다른 세가지 층위의 이야기들이 씨줄날줄로 엮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영화를 문화인류학적인 영화라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주요 인물 층위는 크게 세 부류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카비젤" - 나는 이 배우를 보고 문득 예수 역할을 맡으면 참 잘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 역을 했다 - 은 전장에서 삶과 구원의 문제를 따져 묻는다. "씬 레드 라인"은 각각의 배우들이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X맨류의 집단 히어로물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방식을 쫓지만, "씬 레드라인"처럼 각기 분리된 듯 하나로 합쳐지는 에피소드와 각각의 배우들이 독백을 늘어놓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개는 한 명의 관찰자가 끊임없이 내레이션을 하는 스타일인데 비해 "씬 레드 라인"은 단역, 조역들의 독백도 많다. 처음 얼마동안 우리는 제임스 카비젤의 목소리를 듣는다.

 

영적인 질문들에 이어 그가 만나는 숀 펜. 글쎄,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사람들을 신뢰하는 편이긴 하다. 그는 건조하고 메마른 인물이다. 전쟁 전의 그가 어떤 인물이었을지 미루어 추측하긴 어렵겠지만, 전쟁이 이 남자의 강건한 성품의 외곽을 뚫고 나오긴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숀 펜은 그의 실제 성격과 정반대의 역할을 연기했다. 어떤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냉정한 현실주의자 말이다. 제임스 카비젤은 전쟁을 피해 원주민 거주지에 숨어 있다가 미군 순시정에 잡혀 다시 과달카날 상륙작전에 동원된다. 그의 탈영을 감싸안은 건 숀 펜이었고, 숀 펜은 그에게 의무보조병 일을 시킨다.

 

 

테렌스 멜릭의 "씬 레드 라인"에서는 여러 편의 괜찮은 전쟁 영화들을 한군데서 만나는 느낌을 받는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광의 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이 그것이다. 과달카날 해안에 상륙한 직후 일본군의 맹렬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 예상했던 병사들의 기대와 정반대로 해안에서는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대신에 언덕의 고지 하나를 두고 무리한 정면 공격을 감행하는 와중에 수많은 병사들이 허망하게 죽어가는 모습에서는 "영광의 길"을,  죽어가는 일본군의 금니를 뽑아내는 미군 병사의 모습에서는 "지옥의 묵시록"을 떠올리게 된다. 언덕에서 병사들이 죽어가자 제임스 카비젤은 자원해서 기습조를 맡게 되고, 기습은 성공해 언덕 고지를 장악한다. 그런 그에게 숀 펜은 "자네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는 충고를 한다. 전쟁터에서는 자기 하나만 챙기면 될 뿐, 애써 동료들의 목숨까지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자신조차 냉정을 잃고 무모한 정면 공격을 반대했었으면서도 말이다.

 

영화는 과달카날의 원시적인 자연과 높이 자란 풀들이 시원하게 펼쳐진 언덕에 자리한 지도책에 한 개의 점으로 표시된,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는지조차 불명확한 고지 하나를 점령한 뒤 벌어지는 잔학한 총격전, 백병전을 보여준다. 마치 인디언 부락을 습격하는 기병대처럼... 그리고 한 병사의 실연을 보여준 뒤엔 원주민 커플의 자연스런 연애를 살짝 비춰준다. 문명과 야만,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씬 레드 라인. 아마 테렌스 멜릭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전쟁(소유)으로 상징되는 20세기의 문명이 아니었을까. 전투 뒤 포격으로 전신이 파묻힌 채 얼굴만 드러난 일본군 전사자의 "우리도 우리가 옳은 줄 알고 이 전쟁에 참가했다"는 독백은 그들이 일본군이라 쉽게 용서가 안된다는  우리네 민족 감정을 개워낸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그 어떤 전쟁도 명분없고, 정의롭지 않은 전쟁이 없었다는 것은 반대로 정의로운 전쟁이란 단 하나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카비젤은 수색 작전 중에 부대원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이번에도 자원해서 위험한 임무를 맡는다. 그는 결국 죽는다. 그가 죽고 병사들은 과달카날을 떠난다. 물론, 역사 속에서 과달카날은 태평양 전투 가운데 중요한 전투였지만 실제로는 미군이 생각했던 것처럼 일본군이 대규모로 공격해왔던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테렌스 멜릭은 "씬 레드 라인"을 통해 대자연 속에 결국 잠시 머물렀다 떠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문명이 인간 자신의 영혼에 남기는 깊은 상흔과 자연 속에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들을 대비시키며 적도 아군도 모두 한 줌의 흙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이제서야 이런 것들이 보이다니. 도대체 극장에선 뭘 한 건지 모르겠다. 이래서 영화 역시 책처럼 다시 읽기를 해야만 하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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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텍사스 (Paris, Texas)
감독 : 빔 벤더스
출연 : 해리 딘 스탠튼, 나스타샤 킨스키, 딘 스톡웰, 오로르 클레망
제작 : 1984 프랑스, 독일, 145분


종종 어떤 영화들은 풍설이다. 실제 영화를 본 사람보다 보지 않은 이들이 더 많은 전설을 남기고 현혹된다. "파리 텍사스" 이 영화 역시 그런 영화일까. "파리 텍사스"와 "퍼펙트 월드"는 나에겐 좀 각별한 영화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성인 주인공들보다는 그 영화의 아역들에 좀더 감정이입되기 때문이다. "파리 텍사스"에서는 트래비스(해리 딘 스탠튼)의 아들 헌터에게, "퍼펙트 월드"에서는 버치(케빈 코스트너)에게 납치된 필립에게 감정이입이 이루어진다. 이 영화들은 마치 "전원일기"에서 주워기른 막둥이 아들로 등장하는 금동이가 어느날 찾아온 어머니를 만나는 대목에서 나와 내 누이가 밥상머리에서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철철 흘리던 그때의 막막하고 대책없는 서러움을 반복적으로 경험시킨다는 점에서 거리유지에 실패하게 만드는 영화다. "파리 텍사스"는 모호한 영화다. 빔 벤더스를 누군가는 길에 대한 가장 예민한 감식가라고 묘파하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깨달음과 일탈, 환속과 일탈을 반복하고 있다. 어쨌든 결론만 말하자면 난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떠나버린 아버지 트래비스가 밉다. 


 

미국 오클라호마주와 경계를 이루는 텍사스주 북부에 실재한다는 파리 텍사스. 실재한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여겨질 만큼 가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부유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첫 장면은 가학적일 만큼 아름답다. 공중 부감 샷에서 서서히 클로즈업되면서 황량한 사막을 건너는 트래비스의 붉은 운동모자가 선명하게 각인된다. 그는 붉은 야구 모자를 쓰고 양복을 입은 채 한정없는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간신히 마을 어귀에 도착한 그는 갈증과 더위에 지쳐 물을 찾지만 막상 입안 가득 얼음을 밀어넣고는 기절하고 만다. 그의 소지품을 통해 신원을 알게 된 의사는 LA에 살고 있는 월트에게 형을 데리러 오라고 말한다. 동생 월트는 형 트래비스와 형수가 떠난 뒤 조카 헌트를 친자식처럼(이들 내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길렀다. 월트의 아내는 형의 돌연한 출현 소식에 긴장한다.


실어증에 기억마저 가물거리듯 하는 형 트래비스를 끌고 동생 월트는 국도를 따라 LA까지 머나먼 길을 귀환해야 한다. "파리 텍사스"는 마치 호메로스의 오딧세이를 역으로 비틀어 놓은 형색이다. 오딧세우스가 안드로마케와 텔레마코스를 고향 이타카에 두고 떠난 뒤 귀환하기까지 겪는 우여곡절이라면 "파리 텍사스"는 트래비스가 아내를 의심한 나머지 집에 불을 지르게 되고 가정을 잃고 아내를 찾아 머나먼 길을 방황하는 이야기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트래비스는 프쉬케가 되고, 그의 아내는 에로스가 된다. 트래비스는 의심해선 안 될 것을 의심했고, 결국 가정을 잃었다. 4년만에 다시 만난 형제는 잠시 한 가정에 머물지만 헌터는 아버지를 따르지 않는다. 동생 월트는 헌터가 아버지를 인정하도록 노력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헌터를 잃지 않을까 염려한다.


아내의 행방을 알려주면 형 트래비스가 떠날 거라고 생각한 윌트의 아내는 매달 아들의 부양비를 입금해 오는 은행을 알려주고 트래비스는 헌터를 데리고 휴스턴의 한 은행에서 무턱대고 기다린다. 그토록 그리워한 아내는 이제 환락가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이제 남편과 아내는 유리 거울 벽을 사이에 놓고 서로 마주대한다. 첫 만남에서 남편 트래비스는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결국 뛰쳐나가고 만다. 그리고 다시 찾은 유리 거울 벽에서 트래비스는 자신과 제인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준다. 그제서야 남편임을 알게 된 제인. 트래비스는 아들과 엄마를 만나게 해준 뒤 홀로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파리 텍사스"... 이 영화의 초반부에 형 트래비스는 동생 월트에게 파리 텍사스 이야기를 해준다. 그곳은 트래비스의 부모가 처음 사랑을 나눈 곳이고, 트래비스는 그곳에서 임신되어 태어났다.


나는 가끔 우리의 배꼽이 떨어지지 않고, 마치 하나의 뿌리에서 이어져 나와 꺽꽂이된 식물처럼 이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거대한 나무처럼... 탯줄로 이어진... 트래비스... 그는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그 사랑에 상처를 주었고, 절망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음에도 그 사랑을 제대로 전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의심하고, 감금하고 마치 새장 안에 가둬두는 것처럼.... 거울은 여러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자기 자신을 거울을 들여다보듯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윤동주가 자화상 속의 인물에게 그러했듯 때로는 그 가증스러움에 대한 증오로 스스로가 못 견디게 미워질 때가 있다. 나는 나를 알기에 나를 사랑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아내와 사이에 가로막힌 유리거울 벽을 마주한 트래비스가 발견한 건 아마도 못 견디게 미워진 자기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긴 여행을 한 오딧세우스가 가장 마지막에 발견한 것은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깨달음의 황량함... 사람들은 이렇게 스스로 숙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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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 (Dogfight)

감독
낸시 사보카

출연 리버 피닉스, 릴리 테일러
제작 1991 미국, 89분




낸시 사보카 감독은 뉴욕 주립대를 졸업하고, 단편 영화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나름대로 인정받는 여성 인디 감독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녀의 영화 중에서 내가 본 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 하룻밤(Dog Fifht)" 한 편에 불과하지만, 이 영화의 잔잔한 시선은 오래도록 날 사로잡았다. 낸시 사보카 감독의 시선 속에 담긴 리버 피닉스는 멋진 반항아도 아니었고, 청춘 스타가 아닌 젊은 배우, 조금은 으쓱대고 싶고, 조금은 내성적인 그런 평범한 청년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이 청춘의 아이돌이나 소녀 팬들의 히어로로서의 리버 피닉스가 아닌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그럴 듯한, 배우로서의 리버 피닉스의 모습, 친근한 리버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한 명의 배우는 못생긴 로즈 역을 맡았던 릴리 테일러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 하룻밤"부터 "애리조나 드림", "어딕션", "포룸" 등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품들을 통해 좋은 연기를 보여왔다. 혹시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는 리버 피닉스를 친구처럼 생각한다. 알고 보면 그와 나는 동갑내기다. 우습지 않은가, 평생 미소년으로 남을 그와 늙어갈 나란 사람... 흐흐. 이 작품의 배경을 한국식으로 설명하자면 "대전발 0시 50분"이란 노래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공군에 입대하는 이들은 대전에서 출발하는 0시 50분 기차를 타고 입영한다고 했다. 에디(리버 피닉스)는 군 신병 훈련소를 이제 막 나와서 베트남으로 출발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에디의 동기들은 일명 "도그 파이트"라는 게임을 벌이는데, 주변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를 파티장으로 데려오면 승자가 되어 상금을 독식하는 것이다.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 중 하나가 "못생긴 여자는 꼬시기 쉽다"라던가... 어쨌든 에디 역시 그가 원해서든 아니면 분위기에 취해서든 도그 파이트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한국식으로 치자면 이제 막 전장에 투입되기 직전에 벌이는 작취미상의 해꼬지 혹은 깽판에 해당하는 이벤트인 셈이다. 내 친구 중 한 녀석은 입영 전날 술에 취해 주차해 있던 차의 백 미러를 박살내기도 했다. 하여간 에디는 정신없이 샌프란시코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못생긴 여자를 찾았지만, 막상 그렇게 생긴 여자들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에디는 못생긴 로즈(나름대로 못생겼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 눈에 뭐가 씌인 건지 분위기 있어 보였다)를 보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영화에서 감독 낸시 사보카는 여성 감독 특유(?)의 혹은 여성의 섬세한 시선을 담아내고 있는데, 그 과정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대목은 에디를 선뜻 따라나서지 못하는 로즈의 망설임에 있다. 로즈는 첫눈에 에디에게 끌렸으나 어머니의 식당일을 도와야했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에디를 따라나서지 못한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에디를 따라나서 파티장에 가지만 우연히 이 파티가 여자의 외모를 놓고 벌이는 시합이며, 에디 역시 로즈를 못생겼다는 이유로 선택했음을 알고 큰 상처를 받는다. 로즈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에디에게 주먹으로 한 방 먹이고 파티장을 빠져나온다.

에디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로즈를 파티장으로 데려오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처음 로즈와 만날 때부터 시작된 잘못이었다. 이런 걸 일컬어 스노우볼이라고 하던가. 에디는 로즈에게 사과를 하고 싶어했고, 이로부터 두 사람의 하룻밤 사랑이 시작되었다. 다음날 아침 로즈는 에디에게 자신의 집 주소를 적어준다. 에디는 해가 뜨는 새벽의 샌프란시스코 언덕을 걸어 집결지로 향한다.(여러 편의 영화를 보았지만 정서적으로 이 날 새벽만큼 공감이 가는 새벽도 드물었다. 멋있었다는 말과는 별개로 말이다.) 에디는 전쟁터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로즈가 준 주소가 적힌 종이 쪽지를 바람에 날려 버린다. 



"내 인생의 십계명" 중(단 한 번도 10개의 계명을 모두 채워본 적은 없지만) 첫째로 꼽히는 계명은 언제나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란 말이다. 이 세상 살아가는데 유치한 일은 없다. 황석영의 단편 소설 중에 "몰개월의 새"란 것이 있다. 그 소설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파월 장병 훈련소인 특교대 근처 갈매기집엔 미자란 여자가 있다. 미자는 내일모레, 당장 떠나는 군인이라도 그가 사람 좋게 보여지면 능동적인 애정을 보였다. 사랑을 받기보다 주려는 사람은 언제나 떳떳하고 자유롭다. 미자는 <나>에게 김밥을 싸들고 면회오기도 했고, 담배 한 갑을 주기도 한다. 병사들이 떠나는 날, 몰개월의 여자들은 트럭에 조그맣고 하얀 선물을 던진다.

“나는 승선해서 손수건에 싼 것을 풀어 보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오뚜기 한 쌍이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어렸던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남지나해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서야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에서 두 연인들이 헤어지는 장면을 내가 깊은 연민을 가지고 소중히 간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자는 우리들 모두를 제것으로 간직한 것이다. 몰개월의 여자들이 달마다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살아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 표현임을 내가 눈치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에디는 그렇게 60년대 후반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머나먼 나라, 베트남에 간다. 그리고 그는 전선에 투입되고 얼마 안 있어 다리에 부상을 입고 본국으로 돌아와 제대한다. 이제 그는 전쟁을 경험한 젊으나 젊지 않은 젊은이였고, 거리엔 반전 시위의 열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 한 젊은이가 다리를 절뚝이며 해병대 팔각모를 쓰고 걸어오는 에디에게 소리친다. "살인자!" 물론 나는 베트남에게 우리가 사과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트남에 사과하는 일 못지 않게 우리는 베트남 혹은 우리가 남들 보지 않는 곳에서 종종 비웃듯 말하곤 하는 참전 용사들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위로를 건네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를 대신하여 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자원한 것이라 할 지라도 마찬가지다.
 
전쟁에 상처받고 남루해진 마음으로 돌아온 고향에서 에디는 기댈 곳이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의 상처받은 마음속에 유일하게 따뜻한 기운을 불러일으킨 것은 오직 로즈뿐이었다.  자칫 신파로 흐르기 쉬운 이 대목에서 낸시 사보카 감독은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 많은 말로 설명하는 대신, 그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여백으로 남겨두고 있다. 에디가 천신만고 끝에, 죽음의 사선을 넘어 돌아온 그 곳엔 여전히 로즈가 있었다. 그리고 로즈는 아무 말 없이 에디를 포옹해준다. 가끔 나는 "밥 먹었냐"고 물어주는 소박한 안부에 감동하곤 한다. 가끔 비루먹은 개처럼 그런 안부에 꼬랑지가 흔들리는 걸 느낄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그건 개들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이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이럴 때 최인훈의 광장은 참으로 유용한 변명을 제공해준다. “이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 수컷이면 그만이다.”란 말...

 


그래서일까?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dog fight다. 그리고 개띠 청년이자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리버 피닉스의 반항도, 청춘의 스타성으로 덧칠되지 않은 맨 얼굴의 그를 만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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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아비정전 (阿飛正傳: Days Of Being Wild)
감독 왕가위
출연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제작 1990(홍콩)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 대. 평생에 꼭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염훙잉(유가령)과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아비(장국영)'는 전신 거울 앞에서 혼자 속옷 바람으로 맘보춤을 춘다. 그리고 내뱉는 한 마디. 그게 위에 적힌 대사다. 아비,  우리는 노신(魯迅)의 소설 『아큐정전(阿Q正傳)』을 알고 있다. 신해혁명(辛亥革命)을 전후한 농촌을 배경으로, 이름 석자도 명확하지 않아 그저 '아Q'라고 불러야 하는 한 날품팔이 농민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작가는 혁명당원을 자처했으나 나중엔 도둑으로 몰려 허무하게 죽어가는 아Q의 생애와 혁명 앞에서도 끄떡없는 권력을 지닌 지주 조가(趙家)를 서로 대조함으로써 혁명의 좌절을 그리고 있다. 왕가위 감독은 '정전'이라 이름 붙인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을 통해 60년대의 홍콩 젊은이 아비의 허무한 죽음을 담아내고 있다.


아비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자신의 생모' 를 찾는 것뿐이다. 그는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바람둥이에 일자리라곤 찾아 본 적도 없는 막되먹은 청년이다. 그가 가진 재주라곤 주먹질과 여자 꼬시기 정도라고 할까? 우리나라에서는 <아비정전>이란 이름으로 개봉되었지만,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Days of Being Wild>였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막 살아 버린 날들' 정도일 것이다. 내 생각엔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내가 이 영화를 언제 처음 보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다만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일설에는 이 영화의 국내 개봉 당시 흔한 홍콩느와르물인줄 알고, 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이 실망한 나머지 극장문 유리창을 박살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 <아비정전>엔 늘 '저주받은 걸작' 이란 엄청난 칭호가 따라붙는다. 걸작이란 말에는 동의하지만 과연 저주까지 받은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후 이 영화의 진가는 알음알음하여 수많은 영화매니아들에게 '왕가위 신드롬'을 만들어 내는 기폭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나의 비디오 컬렉션에서도 보물 1등급에 속한다).
 


 
발 없는 새 - '아비'에 대한 자기 동일시
상처없는 청춘이 어디있을까? 이 말은 이미 매우 진부한 말이긴 하지만 내겐 <아비정전>을 남들보다 좀더 진하게 받아들일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 아비가 세상을 막 살아 버린 이유가 되었던 것과 똑같은 이유가 내게도 있었으니 말이다. 예술이 인간의 영혼을 정화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했을 때 내게 그런 영험한 효과를 주었던 첫 영화는 <아비정전>이었다. 인간은 척추동물이다. 그 중에서도 포유류(Mammalia). 과학사가들은 인간이 속한 종인 포유류만을 양서류나 파충류와 같이 그들의 서식지나 형태가 아니라 유난히 '젖먹이 동물'이라는 점을 강조한 사실은 당시의 여권신장 움직임에 두려움을 느낀 '카를 린네'의 의도적인 강조가 아니었는가 하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이런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 나는 내가 '젖먹이 동물'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란 사실도 인정한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어머니(Mamma)'를 그리워했다. ('기상학'에서는 'mamma'를 가리켜 '유방운(乳房雲)' 이라고 한다. 이로써 내가 유난히 여성의 '젖가슴'에 집착을 보이는 이유가 논리적으로 설명가능하게 되었다. 흐흐) 내 인생의 사념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그 육체성을 획득하지 못했던 그 존재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아비'. 덥고 지저분한 기차칸에서 허무하게 죽는 '아비'를 보면서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다른 형태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영화 속 캐릭터를 이해하는 방식은 제각각이겠지만 가장 오래된 이해방식 중 한 가지는 역시 자기동일시(Self-identification)일 것이다. 



영화 속 또 다른 나는 오후 3시쯤 무역체육관 매점에서 콜라 한 병을 사서 마신다. 그는 매점에서 일하는 수리진(장만옥)의 이름을 알고 있다. 사실 바람둥이들은 주변 여자들에게 관심이 많다. 다만 무관심한 척 할 뿐이다. 아비는 수리진에게 말한다. 꿈속에서 만나자고. 다음날 다시 나타난 아비에게 수리진은 꿈속에서 그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비는 말한다. 안 잤으니까. 꼭 만나게 될거야. 오후 4시. 그녀는 꿈을 꾼다. 다시 찾아온 아비에게 수리진은 "뭘 원하시는 거죠? 친구가 되고 싶어. 내 시계를 1분만 같이 바라봐 줄순 있겠지? 그녀는 1분동안 시계를 바라본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린 1분동안 함께 했어. 난 잊지 않을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1분을. 이 1분은 지울 수 없어. 이미 과거가 됐으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수리진의 나레이션. '그는 이 1분을 잊겠지만 난 그를 잊을 수 없었다.' 

아마 널 잊었을 껄 - 당신은 모른다. 버림받는다는 거.
아이가 어려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충격이 과연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어머니와의 이별' 혹은 '어머니의 부재' 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이별' 혹은 '부재'를 가장 고통스럽게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것이다. '나는 버림받았다'는 인식. 이런 인식을 지닌 아이가 성장하면서 세상에 적응하는 방식 혹은 세상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방식은 아마도 '증오'가 아닐까 한다. 아비는 자신의 증오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다시 그녀를 버림으로써 복수하는 길을 택했다.



아비는 수리진을 찾는다. 그는 거의 매일 그녀를 찾는다. 1분은 2분이 되고, 그들은 함께 잠자리를 한다. 수리진은 아비를 사랑하게 되지만 수리진의 사랑을 느낀 아비는 더 이상 수리진 곁에 머물고 싶지 않다. 이 부분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여러 갈래가 된다. 아비가 개망나니이므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늘 사랑이 두려운 법이다. 게다가 '아비'는 스스로 풀어야만 할 사랑의 본질적인 질문이 늘 도사리고 있었다. 버림받은 자는 늘 그것이 궁금한 법이다. 왜 날 버렸는지에 대한 굶주림. 아비가 수리진을 버린걸까? 글쎄, 궁색한 답변이 될진 모르겠지만 아비는 수리진을 버리지 않았다. 다만 떠나가는 그녀를 잡지 않았을 뿐이다. 왜 잡지 않았던 걸까? 아비는 스스로 황폐한 인간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황폐한 인간인 이유는 사랑이 머물 만한 마음의 공간을 그 자신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아비는 스스로 자유로운 새가 되길 원한 걸까? 나는 앞서 이야기한 새 이야기는 결국 자신을 치장하기 위한 멋부림 혹은 위장 정도에 머문다고 생각한다.

아비는 자신의 계모를 유혹하여 등골을 빼먹는 젊은 제비족을 흠씬 두둘겨 패준 뒤 제비족으로부터 계모의 귀고리를 되찾는다. 이를 지켜보던 루루(유가령)는 아비가 놓고 간 귀고리를 주워 가지고 있다가 곧 되돌아 온 아비에게 귀고리를 빼앗긴다. 아비는 귀고리 한 쪽을 루루에게 주면서 나머지 한 쪽을 얻으려면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루루와 아비는 그날 밤 함께 한다. 루루는 아비에게 자신의 본명을 염훙잉이라고 알려주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주지만 아비는 별무관심이다. 벽을 타고 기어 올라 온 아비의 친구(장학우)는 아비가 루루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되돌아간다. 아침이 되어 아비의 집을 나오는 루루는 계단에서 아비의 친구(장학우)를 만난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말에 루루는 춤을 추어보이며 자신은 댄서라고 한다.


아비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아비는 계모를 찾아가 자신의 친모가 있는 곳을 알려 달라고 한다. 그러나 계모는 말해주지 않는다.
"결코 니가 떠나는 게 아쉬워서 그러는 게 아냐. 지금 찾아간다고 뭐가 생겨? 아마 널 잊었을 걸." <엄마 찾아 삼만리>의 주인공 마르코가 자기 어머니를 찾아 떠날 때, 마르코는 과연 자신의 어머니가 술집의 여급으로 전락해 있을 모습을, 혹은 다방 마담으로, 사창가 포주로 변해있을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한 번이라고 상상해본 적이 있을까?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와 뒹굴고 있을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어미를 찾는 자식은 없는 법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더라도 자식이 어미를 찾을 때, 그것은 태어나면서 끊겨 버린 탯줄의 흔적을 거머쥐고, 물살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세월을 되밟아 나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 자식에게 계모가 던지는 한 마디 "아마 널 잊었을 걸". 마르코에게 아버지가 어머니는 널 잊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이 장면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어린 아비가 평생 동안 치렀을 고투가 능히 짐작되고 남는다.


사랑, 그런 걸 난 믿지 않았다 - 인생에는 오직 어긋남이 있을 뿐.
이 영화 <아비정전>은 사랑의 어긋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리진은 아비를, 장학우는 루루를, 경찰(유덕화)는 수리진을, 루루는 다시 아비를. 삼각관계도 모자라 오각관계로까지 보이는 이들의 만남은 그들을 내내 지배하는 홍콩의 어두운 배경들처럼 명암이 불분명해 보인다. 아비의 친구(장학우)는 루루에게 아비의 어린시절을 이야기 해 줌으로써 루루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만 루루는 이런 친구에게 야멸차게 면박을 주고, 빗 속에서 순찰을 돌던 경찰(유덕화)는 비를 맞고 서 있는 수리진을 발견한다. 수리진에게 말을 거는 경찰. 수리진은 다만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경찰은 아비의 집에 가서 수리진이 와 있다고 전해준다. 그녀는 자신의 짐을 찾으러 왔다고 말한다. 아비는 냉정하게 말한다. "짐을 가져다 줄테니 기다려." 수리진은 말한다. "같이 살고 싶어. 우린 안 어울려. 그리고 난 결혼따윈 안해. 결혼 안해도 좋아. 그냥 함께 있고 싶어. 당장은 내가 좋지만 평생을 좋아할 순 없을거야. 나랑 행복할 수 없어. 날 사랑한 적 있어? 난 사랑하는 여자가 많아. 한 여자에게 집착하긴 싫어." 수리진과 아비가 나누는 대화이다.



아비의 대사 중 중요한 부분은 "당장은 내가 좋지만 평생을 좋아할 순 없을거야. 나랑 행복할 수 없어." 라고 하는 부분이다. 바람둥이가 평생을 말한다. 게다가 행복할 수 없다니. 아비의 인생을 이 세상에 머물게 하는 것은 없다. 짐을 챙겨주는 아비. 루루가 신고 있던 슬리퍼가 원래 수리진 것이라면서 그것을 벗어주라고 말한다. 루루는 화를 내면서 "모든 게 남의 거라면 난 있을 필요가 없지. 갈꺼야. 가면 우린 끝이야. 모든 여자한테 이래? ...아니야. 난 그여자처럼 미련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아비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자신을 떠나게 만드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치 '나 원래 이런 사람이다. 그런데도 날 사랑할 수 있니?'라고 묻는 것 같다. 만약 아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널 사랑할 수 있다'  는 루루의 집착에 안주했다면 그는 그럭저럭 한 세월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비는 멈추지 않았다. 아비는 사랑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미에게도 버림받은 자식이 사랑이라니.

 <아비정전>의 주인공들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도무지 살아있는 캐릭터같이 여겨지질 않는다. 그나마 루루와 아비의 계모 정도만이 그나마 생생한 느낌이 든다. 그 까닭은 이 영화가 인물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나 스토리에 연연하지 않고, 이미지로 승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텅빈 전화박스와 비 내리는 거리, 야자수, 체육관 매점의 텅빈 벽에 걸린 벽시계 같이 영화는 보여줄 수 있는 걸 굳이 말로 표현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로 해야하는 것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수리진을 도와준 경찰과 수리진의 만남도 그런 식이다.




"친구가 없나요? 저는 남이라서…. 맘에 담고 있으면 미칠 것만 같아요! 모두 잊을거라 믿었는 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노력했어요. 일에 매달리고 잠들면 잊겠지 생각했어요. 그 사람을 잊고 싶은데 잊을 수 없어요. 내 자신이 미워요. 계속 그럴 순 없잖아요? 오늘만 지나면 괜찮을 거예요. 늘 그얘기군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래요! 내일도 그럴테죠? 감정은 자제가 필요해요. 그를 못 잊겠다면 당장 그에게 매달려요. 아니면 1분내로 그를 잊어요. 1분얘긴 하지 마세요! … 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군요. 그가 1분을 가리키면서 영원히 날 기억할 거라고 했어요. 그 말에 맘이 끌렸어요…. 이젠 내 스스로 시계를 보면서 1분내로 잊겠어요." 

이들의 만남은 늘 엇갈린다. 경찰은 수리진을 기다리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어머니가 죽은 뒤 선원이 되어 떠나고, 아비는 루루를 버리고 어머니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난다. 아비가 떠난 뒤 루루는 수리진을 찾아가 화풀이를 하지만 "지금 우는 건 너잖아. 난 다 잊었어" 라는 말을 듣는다. 아비의 친구는 루루를 사랑하지만 루루의 마음은 아비의 뒤만 쫓고 있다. 아비의 친구는 홧김에 루루를 때린다. 결국 아비의 친구는 아비가 넘겨준 차를 팔아 그 돈으로 루루가 필리핀까지 갈 수 있는 여비를 마련해준다. 그는 루루에게 말한다. " 뭐든 어울려야 한댔지? 차도 그에게나 어울려. 난 어울리지 않아. 그래서 차를 팔았어. 필리핀에 가고 싶으면 가. 아비를 만나면 차를 팔았다고 전해주고 만약 못 만나면... 다시 돌아와." 사랑은 손아귀 가득 쥔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남는 건 그저 어긋난 흔적 뿐.

늦게 깨달은 사랑 - 새는 이미 죽어 있었다
필리핀에 도착한 아비는 생모의 저택을 찾지만 어머니는 역시 만나주지 않는다. 그가 전해들은 이야기는 다만 "이사갔다"는 말 뿐이었다. 아비는 말한다. "난 고개를 안돌렸다. 난 단지 그녀를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인데 기회를 안주니 나도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아비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문득 그가 참 미성숙한, 편협한 인간이란 생각이 들지만 마음으론 이해가 된다. 한편 선원이 되어 필리핀에 도착한 유덕화는 길에서 술에 취한 채 거리의 여인에게 가진 돈을 전부 털린 아비를 만난다(이 장면은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슬쩍 반복된다).  이제는 선원이 된 경찰(이 영화 속에서 유덕화와 장학우는 이름이 없다. 생각하기에 따라 왕가위 감독의 교묘한 트릭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아비를 둘러싼 남자들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은 아비를 자신이 묵고 있는 여관방에 데려다 쉬게 한다. 



영화 <아비정전>은 왕가위가 끊임없이 천착해보이는 '시간과 기억'의 메타포가 반복된다. 특히 <아비정전>에서 시간과 기억은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아비가 수리진에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1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1분을, 그를 잊기 위한 1분'을 선사했지만 아비는 수리진과 함께 온 경찰(유덕화)을 기억하지 못하고, "우리 예전에 만난 적이 있나?" 라고 묻는다. 경찰 역시 "아니, 만난 적이 없었어. 그리고 난 기억력이 좋지가 못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아비와 선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이 서로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음 날 기차를 타고 떠난다던 아비는 친구를 만난다며 약속장소에 가고, 유덕화도 동행한다. 그러나 아비는 돌아갈 비자를 구하기 위해 브로커를 만나러 간 것이었다. 아비는 돈을 내놓는 대신 브로커를 칼로 찌르고 그 와중에 두 사람은 함께 도망가는 신세가 된다. 기차를 타고 가던 중 선원이 기차도착시간을 물어보기 위해 잠시 비운 사이 아비는 뒤쫒아 온 일당에게 총을 맞는다. 아비는 말한다.

죽기 직전 뭐가 보이는 지 궁금했어. 난 눈뜨고 죽을 거야. 죽을 땐 뭐가 보고 싶을까? … 발 없는 새가 태어날 때부터 바람속을 날아다니는 줄 알았는 데 그게 아니었어. 그 새는 이미 처음부터 죽어있었어. 난 사랑이 뭔지 몰랐지만 이젠 알 것 같아. 이미 때는 늦었지만….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에 뭘했지? 난 기억이 안나는 데 어느 친구가 묻더라구. 그녀가 말했군. 그녀를 아직 잊지 않았나? 난 기억해야 할 건 잊지 않아. 서로 사귀었나? 잠시동안… 배를 탄 뒤론 연락이 없어. 우리가 안건 짧은 시간동안이었어. 나중에 그녀를 만나거든 난 다 잊었다고 전해줘….

사랑은 '기억'이란 불완전한 매개를 토대로 축적되고, 완성된다. 우리가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비디오를 찍고, 사진첩을 만드는 행위 역시 사랑이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한다는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비는 수리진에게 "당장은 내가 좋지만 평생을 좋아할 순 없을거야."라고 말했고, 계모는 아비에게 친어머니는 "아마 널 잊었을 껄"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기억과 함께 끊임없이 퇴색하고 노화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기억과 함께 그냥 퇴화해가는 것일까? 어쩌면 그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1분이 아닐런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우리는 소위 '왕가위 스타일'을 알고 있다. 템포를 가늠할 수 없는 편집과 쉼없이 흔들리는 화면, 그리고 의미가 모호한 혹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보이고 있는 대사들, 그리고 동일한 주제가 무한히 변주되는 듯한 이야기를 말이다. 1980년대말에서 1990년대 벽두를 장식한 왕가위 돌풍은 말그대로 '우리들의 80년대'가 저물고, '나의 90년대'라는 새로운 시대가 밝아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상징처럼 되었다. 젊은이들은 <중경삼림>의 짝사랑이지만 결코 어둡지 않고, 끈적거리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사랑을 자신의 이야기로 간직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무협지 시대로 돌아가서도 왕가위는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아비정전>은 그런 왕가위 스타일의 확연한 출발점이 되었다는 의의와 함께 그만의 독특한 이야기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홍콩 영화들과 구분할 수 있다. <아비정전>은 다양한 인물들의 독백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런 시점의 혼란은 영화를 해독하기 다소 어렵게 만드는 대신,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는 일상적인 심리묘사에 강점을 지닌 대만 감독 차이밍량과 흡사하지만 그보다는 덜 건조하다. 왕가위의 카메라는 훨씬 더 다양한 구도로 움직이고, 심지어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바라볼 수 없는 시점들을 제공하여 때로 인물을 화면 속의 사물처럼 비춰지게 만든다.



<아비정전>의 최대 강점은 무엇보다 캐릭터의 창출에 있었다. 그는 바로 '아비'라는 인물을 통해 망가질대로 망가진 젊음의 한 군상을 드러내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아비'는 노신의 '아큐'가그렇듯이 시대를 담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만약 '아비'를 60년대의 홍콩, 그리고 90년대 중국으로 귀속될 운명이 좀더 확연해질 무렵의 홍콩으로 치환해 본다면 그 의미는 좀더 명확해진다. 중국이란 태생을 지닌 홍콩이지만 어미는 자식을 계모에게 떠넘기고 사라져 버린다. 홀로 남게 된 홍콩(아비)은 영국의 식민지로 경제적 번영을 누리지만 결국 그것은 이식된 것에 불과하다. 홍콩의 자식인 '아비'는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는 핑계로 막 살아 버리는 것이다. 결국 새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죽어있는 채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결국 자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아비를 보면서 감동받았던 이유, 일종의 자기동일시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단지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는 핑계로 막 살아 버리고 있는 모습에서였다. 정말 'Days of Being Wild'인 것이다. 비루한 삶을 견디게 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소설가 이동하는 그의 연작소설집 『장난감 도시』에서 이런 말을 한다. "빠져나갈 핑계거리를 만들고 시작하는 일은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다." 아비의 청춘은 늘 빠져나갈 핑계거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생이었다. 그러고보면 나의 어린 시절 역시 늘 그런 핑계들에 젖어 있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챙겨줄 어머니가 없었던 나는 우산을 챙겨다 주는 어머니가 있는 친구와 주먹다짐을 했고, 가을 소풍에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호들갑을 떨었다. 좀더 나이가 들어서는 시대를 핑계댔고, 모든 정치적 인간들을 혐오했으며 철마다 오르는 등록금을 저주했다. 떠나간 사랑을 저주하며 다른 여자들을 울렸고, 다가오는 강철의 시대를 연마한다고 동지들 곁을 떠났다. "태어날 때부터 죽은 새" 운운하는 아비를 보면서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건 또다른 나였으므로…. 그러나 어릴 적에나 가능한 핑계를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간직한다는 것은 아찔하다.

핑계를 무기로 아이처럼 투정부리며 살기엔, 우리 앞에 놓인 生의 길이가 너무나 길어보이기 때문이다.


아비가 죽은 뒤 아비를 찾아 필리핀에 도착한 루루는 아비가 묵었던 숙소에 방을 잡는다. 수리진은 이젠 그를 잊었는지 예전처럼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경찰이 순찰을 돌던 텅빈 거리 공중전화에 벨이 울린다. 이제는 받을 사람도 없는 …. 영화가 이렇게 끝나는가 보다 생각할 때, 갑자기 음악이 흐르며 양조위가 등장한다. 그는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며 지폐 뭉치를 세 자신의 양복 웃저고리 안에 쓸어 담는다. 마치 아비가 첫 장면에서 거울을 바라보며 머리를 빗듯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왕가위만의 영화세계는 이렇게 시작된다. 끈임없이 주체와 타아는 끊임없이 변주되고, 낯설지 않은 세계에서 낯설은 척 가장하며.... 새로운 사랑과 이별은 연주한다. 어떤 의미에서 왕가위의 작품 중 걸작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아비정전>... 나머지 영화들은이 영화에서 뻗어나온 가지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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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重慶森林)
- 감독 : 왕가위  출연 : 임청하, 양조위, 왕정문, 금성무 등


'해가 뜨면 사랑이 끝난다'라는 노래가 있다.

내 심정이 지금 그렇다
어떻게 메이를 잊지?
난 혼자 약속을 했다
바에 제일 처음으로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했다.


<키노(KINO)>란 잡지가 정확하게 언제 창간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키노>에 내가 몰입하게 된 것은 실연과 함께였다. 7년을 사귀던 여자와 헤어졌을 때 나는 미친듯이 영화를 보았다. <중경삼림>엔 이런 대사가 있다.
"실연당한 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참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땀이 흐른다. 수분이 다 빠져 나가버리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거라 믿기 때문이다." 연애를 해 본 사람들은 안다. 실연당했을 때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며 미친듯이 남아도는 시간을 소모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알포인트>란 영화로 오랫동안 꿈꿔오던 감독으로 입봉한 공수창 선생 밑에서 영화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지금 그나마 영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잡스러운 지식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 그 무렵의 남아돌았던 시간이 내게 베풀어준 혜택이라고 해두자. 마음 둘 것 없어 정붙인 것이 영화였고, 그 무렵 날 가장 아프게 했던 것들 역시 영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녀와 헤어질 무렵 가장 각광받던 시네아스트는 바로 '왕가위'였으니까.


왕가위의 영화들 '중경삼림, 동사서독, 타락천사'로 이어지는 동안 내겐 나만의 여자가 없었다. 오랫동안 한 여자를 사랑해오다가 누구의 것도 아닌 남자가 된 것이 오랜만에 찾아온 자유였는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 시간들 동안 그닥 행복하지 않았으며 자유를 느낄 만한 기분도 아니었다. 부유하는 먼지처럼 .... 세상 모든 것이 하찮았다. 페이왕(왕정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량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왕가위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건 참 재미없는 일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수없이 많은 수다들을 늘어놓았으니 말이다. 수다에 수다를 더한다는 건 재미없다. 그의 영화들은 모두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영화가 청춘남녀들에게 그토록 가슴저리게 기억되는 이유는 그들모두가 한때 기억에 기대어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실연당해본 적 없는 사람은 이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왕가위의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그들만의 나르시시즘에 젖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모두는 실연 당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어째서 자신만 슬픈 척하느냐고 묻는 것은 과도한 비판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보이는 광각렌즈의 일그러진 왜곡과 엿보는 자의 관음증이 어색하지 않다. 비틀거리고 닫힌 영혼들이 흔들리는 사각의 화면 속에서 금붕어처럼 유영한다. 세상 모든 만물에는 유통기한이 없지만, 유독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사랑에 대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동안 당신의 유통기한은 아직 연장되고 있다.


"..언제든지, 어떻게 하든지, 물건들에겐 유통기한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정어리도... 빵도... 랩마저도 기한이 있다. 세상에 유통기한이 없는 물건은 없는 것인가?"


왕가위 자신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다르다고 단언한다. 그는 고독하고 불안정하고 사랑에 버림받은 현대 도시의 젊은이들을 많이 그려왔지만 자신은 쾌활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며 선글라스 뒤에 가려진 두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린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외롭지만... 그는 "나는 외로운 사람은 아니며 단지 재미없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한다. 19살때 만나 오랫동안 연애한 여자와 7년전 결혼, 아들 하나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는 인생에서 외로웠을 때가 두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



첫 외로움의 경험은 5살때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겪은 낯선 도시의 삶이었다. 상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가 자신만을 데리고 홍콩으로 온 후 문화혁명 때문에 국경이 막혀 형과 누나와 헤어져 살았다. 광동어를 모르던 그는 낯선 홍콩에서 외로움을 느꼈으며 당시 BBC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시그널뮤직을 벗삼아 외로움을 달랠 수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다음 외로웠다고 느낀 적은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촬영할 때. 아내가 아이 때문에 미국에 가있어 혼자 호텔생활을 했다.


세계는 점점 좁아져서 모든 도시가 비슷해지고 있다. 어딜 가나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가 있고 편의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이야기라도 그건 홍콩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가던 우리들의 이야기로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기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연당한 젊은이들의 비탄이야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따지고 보면 우리네 인생살이란 건 하나도 극적이지 않다. 영화에서처럼 인생에 배경음악이 깔리는 법도 없고, 지하철 안에서 총격전을 벌일 일도 없으며, 서점에서 우연히 옛사랑과 마주치는 요행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풍문처럼 옛사랑이 딸 둘을 낳고, 남편이랑 그럭저럭 잘 살고 있으며, 올가을엔 새로 운동을 시작해볼까 궁리하며 두둑해지는 뱃살을 두 손가락으로 만져보며 늙는다. 그러므로 극적인 반전과 사건들을, 그런 삶을 기대하는 것은 얼마나 흐뭇한 상상이던가.


"우리 서로가 매일..어깨를 스치며 살아가지만, 서로를 알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언젠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가까이 스쳤던 순간에는 서로의 거리가 0.01cm밖에 안되었다. 57시간 후, 나는 이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요행히도, 요행히도 인생에 뭔가 극적인 순간이 찾아와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순간이 찾아와서 극적인 고백을 통해 사랑을 얻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들, 메마르고 척박하며 기대했던 일들조차 아니, 노력하고 공들여 오던 일조차 너무나 쉽사리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는 세상에 우리는 있다. 우리는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해가 지는 사막에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사막보다 아름답지 않고, 때로 아무리 헤매어도 발견할 수 없는 오아시스가 있을 뿐이다. 왕가위의 사각거울에 비친 영상을 보면서 한때 사랑했으나 이제 더이상 사랑받을 수 없게 된 옛 연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
중경삼림>처럼 끝이 허무한 영화가 좋다.

주인공들 모두가 격렬한 총격전 끝에 죽어버려도 좋다. 아무리 달려가도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의 이쪽 끝과 저쪽 끝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므로... 그 뒤에 어떻게 되었네? 하며 그들의 안부를, 미래를 묻지 않아도 좋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종결되었으므로... 사랑하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같은 말이다. 우리가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할 뿐... 또 혹시 아는가? 어느날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소갈머리없이 그렇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날이 오게 될지... 그래서 황지우는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라고 노래하는 것은 아닌지.... 중경삼림(重慶森林)의 어디에도 삼림(森林)은 등장하지 않는다. 거기에 등장하는 삼림이란 따지고 보면 도시의 정글에서 자라난 사람들... 우리가 스쳐가던 시골길의 어디멘가에서 무심히 스쳐가던 바로 그 나무들처럼 자라난 바로 우리들이니까.



이해한다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별개이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오늘은 파인애플을 좋아하던 사람이
내일은 다른 것을 좋아하게 될 테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
중경삼림>의 등장인물들은 계속해서 서로를 주시하지만 끝끝내 마주서지 않는, 그리하여 결코 서로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나는 당신에 대해 결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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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트 가드너(The Constant Gardener)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랄프 파인즈 외 출연 / 2006년 개봉




혹시 이 영화의 포스터나 광고용으로 제작된 홍보 필름에 속지 마시길... 나 '저스틴(랄프 파인즈)'은 평범한 영국인이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대개의 영국인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취미로 작은 정원을 가꾸길 즐겨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선 평범하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일단 나 '저스틴'은 외교관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영국의 시민들은 영국의 외교가 구 시대적이며, 제3세계의 인권이나 빈곤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른다고 비판하지만 나는 그저 내게 맡겨진 소임을 다할 뿐이다. 외교관이라 하지만 차라리 샐러리맨이란 생각으로 바라봐주면 고맙겠다. 때때로 너무나 평온하기 그지없어 도리어 진부해 보이기까지 하는 나의 삶 속에 작은 균열이 왔다. 처음엔 그저그런 아주 작은 균열에 불과했으며 나는 그 균열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어느날 대학에서 초청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젊은 아가씨가 매우 도발적으로 나서며 질문을 했다. 아마도 그녀는 나를 그저그런 '속물'이자 외교적 언사만 남발하는 인물로 보았던 모양이다. 반대로 나 역시 그녀를 세상물정에 대해선 도통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주제넘게 나서 입바른 소리나 하는 이상주의자로 생각했다. 




문제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도발적이며, 나서길 좋아하는 게다가 의협심이 넘쳐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 여인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버렸다는 것이다.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라 때때로 사생활이 문란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사랑에는 목숨을 걸 수 있는 여인이었다. 지적이고, 아름다우며 상냥한 그녀와 사랑에 빠지다니 나는 아직 그녀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나는 '테사(레이첼 와이즈)'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우리 두 사람은 결혼해서 함께 케냐 주재의 영국 대사관으로 이주했다. 다행히 그녀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매우 만족했고, 나는 대사관 업무 틈틈이 정원을 가꾸며 그녀와 평온한 시간들을 보낸다. 그 사이 그녀의 몸에는 나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행복하다. 아니, 행복했다. 테사가 아이를 유산하기 전까진...



아이를 유산하고 난 뒤 어느날부터인가 테사의 행동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인권활동가라는 흑인 의사와 어울려 다니며 다국적 제약회사 '쓰리비'가 아프리카에서 의심스러운 신약을 임상실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결혼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 대사관 파티에서도 그녀는 도발적인 말로 파티의 분위기를 망쳐놓는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죽었다. 함께 다니던 흑인 의사와 살해당했다.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는 이처럼 회상으로 시작된다.  저스틴은 아내와 흑인 의사가 살해당한 호숫가에 앉아 그녀를 처음 만나고, 그녀와 사랑에 빠졌던 시간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녀가 살해당한 뒤 그녀를 살해한 자들의 뒤를 추적하면서 겪었던 시간들을 회상한다.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카레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시티 오브 갓>으로 화려한 신고식을 마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는 진행되는 내내 너무나 아름다운 아프리카 케냐의 풍경들을 비춰준다.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검은 살갗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처한 비참한 일상이 함께 대비된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저스틴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콘스탄트 가드너', 그는 자신의 정원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성실한 영국인이었다. 오래된 영국 속담 중에 영국인에게 집과 정원은 그의 성(castle)이자 우주라는 말이 있다.


저스틴 역시 아내 '테사'가 살해당하기 전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평범하고 안락하여 때로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 즉 자신이 가꾸는 작은 정원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은 저스틴은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하지 않는 진짜 세상을 보여주게 된다. 저스틴은 아내 테사를 사랑했다. 하지만 대개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저스틴이 알고 있는 테사는 진짜 테사의 본모습이었을까? 과연 저스틴은 테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기는 했던 것일까? 저스틴이 그냥 강도단의 소행으로 종결된 수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테사의 행적을 뒤쫓게 된 까닭은 테사가 추적해서 밝히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질투가 있었다.





흑인 의사와 자주 만나는 것을 알고, 때로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했지만, 저스틴은 자신이 속좁은 남자로 아니면 테사에게 결별을 통보받을까 두려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가 죽은 뒤에야 그는 비로소 진실을 알고 싶었다. 마음속에 사랑으로 기억되는 테사를 계속해서 간직해도 괜찮은 건지 그는 알고 싶었다. 오로지 진실만이 저스틴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저스틴은 아내의 행적과 아내가 추적하여 밝혀내고자 했던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에 얽힌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실에 근접해가면 갈수록 저스틴은 테사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되고, 자신이 테사를 의심했던 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깨닫게 된다.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정원에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길 즐겼고, 한 사람은 거리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살았다. 저스틴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그저 무언가 나눠주고 베풀어 주면 그뿐이라 생각하는 평범한 인도주의자였지만 세상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테사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잘못을 바로잡길 원했다. 아마 두 사람이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했더라도 어쩌면 이 두 사람은 평생 서로의 삶과 존재의 방식을 서로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모르모트처럼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려는 다국적 제약회사에 대항하는 양심적인 여성 인권운동가의 갈등보다 더 중요한 갈등으로 양심적이고, 타인에게 해를 끼친 바 없는 평범한 시민인 남편과 아내의 갈등을 더욱 중요한 축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것들이 허용되지만 많은 것들이 금지된다. 아프리카에 한 번이라도 우편물을 보내려고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곳에 보내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책이다. 존 르카레의 이 소설도 케냐에선 '금서'다. 이 영화는 실제 케냐에서 촬영되었고, 실제로 케냐 주재 영국대사관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테사의 장례식장에서 누군가 "우리가 지금 가치있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그들의 목숨이 헐값에 팔렸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풍요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얻어진 것이다.



아내 테사가 제약회사의 사주를 받은 끄나플들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한 뒤에야 비로소 저스틴은 아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대가로 그 역시 자신들의 과오를 감추고 싶어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조직원들에 의해 아내가 살해당한 바로 그 장소에서 살해당한다. 그의 회상은 그들이 이곳에 도착하여 그를 살해하기 전까지 잠시 동안 이루어진 것이다. 선진국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희생당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은 단순히 영화적인 설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을 소유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늘 다 죽어가는 시늉을 한다. 그것이 자기 양심을 속이고 사는 데 훨씬 더 편한 태도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만약 나라면 이미 죽어버린 사랑을 이해하고, 가슴에 품기 위해 내 목숨을 걸 수 있을까? <콘스탄트 가드너>는 사회고발영화지만 동시에 절절한 사랑이야기 일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미 죽어버린 사랑을 위해 함께 죽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하랴. 함께 울어줄 사람도 없는데... 그래서 세상은 슬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집이 없어. 내 집은 그녀였으니까."



* 다국적제약회사 등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식들에 대해선 차차 좀더 심화된 리뷰를 다시 한 번 써볼 생각이라 지금은 영화에 대한 대략적인 평을 적는 것으로 가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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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박스 세트 [dts] -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사망유희 - (5disc)
이소룡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2월

 

 

동양의 맨몸은 어떻게 서양의 총탄을 넘어서려는가?

우리는 '이소룡' 세대인가? 종종 '우리'란 말에 염증이 날 때가 있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 가족, 우리 식구, 우리 학교' 마치 이 때의 '우리(we)'는 '우리(cage) 혹은 요새(fortress)'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서부 개척 시대의 백인들이 요새를 세우고, 요새 밖의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적대시하고, 배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때로 "우리"란 말은 그 자체로 폭력일 수 있다. '우리는 이소룡 세대인가?'란 말은 '우리+세대'란 구분에 의해 문화적 결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음악평론가 임진모 선생은 지난 2004년 8월 1일자 <동아일보>에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중2 때인 1973년, 이소룡(李小龍)의 사망소식이 전해졌을 때 나는 무슨 대수냐는 투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때까지 홍콩 액션배우 가운데 나의 영웅은 어디까지나 ‘외팔이 검객’ 왕우(王羽)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소룡 영화 중 국내에 가장 먼저 개봉된 ‘정무문’을 보고나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홀로 일본 도장에 쳐들어가 쌍절곤을 돌리며 무수한 상대를 단숨에 섬멸하는 격투 신, 불에 구운 고기를 온갖 인상을 쓰며 뜯어먹는 장면에 이어지는 진한 키스 신, 총을 겨눈 일본 경찰들에게 뛰어오르는 마지막 정지 장면 등 모든 것이 충격적이었다. 너무도 리얼했고 강렬했다. 영화가 아니라 진짜 싸우는 것 같았다.

시인이자 감독인 유하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를 바친다. 만약 홍콩영화식 세대 구분이 가능하다면 나는 '주윤발' 세대로 분류되어야 하고, 솔직히 "이소룡"보다는 "주윤발"이 그리고 "장국영"이 더 좋다. 그러나 홍콩영화의 전성기는 우리 세대를 끝으로 지났고, 양조위는 여전히 멋있지만 십대들의 우상은 아니다. 이념의 시대가 지난 것처럼 더이상 홍콩영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했던 세대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늙을 것이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우리가 "이소룡"을 잘 모르는 것처럼 "주윤발"을 잘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소룡의 쌍절곤을 모르는 것처럼, 주윤발의 쌍권총을 모르는 아이들로부터 소외될까?


DVD로 출시된 <이소룡 박스 세트>는 5장의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소룡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사망유희" 그리고 한 장의 이소룡 다큐멘터리이다.


1940년 11월 27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경극 배우인 이해천과 독일계 그레이스 사이에서 출생해 1973년 7월 21일 사망한다. 올해 2010년은 이소룡 탄생 70주년이다. 이소룡은 러일전쟁에서 아시아 군대가 서양 군대와 전쟁을 벌여 최초의 승리를 거둔 뒤(1905년)로부터 정확하게 66년이 흐른 뒤 아시아 출신 배우가 서양인들에게도 통하는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소룡은 아역 배우 출신으로 6살 때 "소년의 시작"이란 영화에 출연했고, 2년 뒤엔 "내아들 아천"이란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경극의 기본기를 배웠고, 훗날 많은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무술을 연마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홍콩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가 아내 린다를 만난 것도 이곳에서의 일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무술 도장을 차렸는데 이때 그의 도장에는 스티브 맥퀸, 제임스 코번을 비롯한 많은 유명인사들이 등록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당시 최고의 농구 스타였던 카림 압둘 자바, 대니 이노산토스 등도 이 때 알게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종종 미국의 TV 시리즈에 단역으로 등장했지만, 주로 조역에 그쳤다. "쿵후" 시리즈가 기획되었을 때조차 그는 중국인이란 이유로 배역을 얻을 수 없었다. 이후에도 그는 몇 편의 영화에 조역으로 출연하지만 일본인 주인공의 조수 혹은 청부살인업자로 등장해 우스꽝스럽게 죽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런 영화에 대한 갈증은 그로하여금 홍콩행을 결심하게 만든다. 당시만하더라도 임진모 선생의 회상대로 홍콩 영화계는 외팔이 검객으로 이름높았던 왕우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골든하베스트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그의 첫 작품인 "당산대형"을 촬영한다. 태국에서 저예산으로 촬영된 영화였으나 이 영화에서 그는 이전의 홍콩 액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액션(이 영화에서 선보인 그의 '삼단차기'는 당시 대단한 화제였다)을 선보이며 흥행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를 최고의 배우로 만들어 준 영화는 다음 작품인 "정무문"이었다. 이연걸이 리메이크작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화 "정무문"은 일본이 중국을 반식민지화하던 무렵의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잔인무도한 무인들과 중국의 정의로운 무인이 격투를 벌여 그들을 사실상 몰살시킨다는 내용인데, 이는 외세의 침입을 통해 꺽여버린 중국의 자존심, 나아가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크게 환영받는 소재였다. 이소룡의 쌍절곤과 그의 특이한 괴음이 처음 등장한 영화이기도 했다. 그 뒤 이소룡은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맹룡과강"을 촬영했고, 다음 작품으로 "사망유희"를 기획했다. 그러나 "사망유희"의 촬영은 지지부진해지고, 그 사이에 촬영한 영화가 바로 "용쟁호투"였다. 이때부터 이소룡의 몸은 망가지기 시작했는데, 그는 영화 촬영과 제작에 대해 많은 중압을 받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추문들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소룡은 "용쟁호투"의 후반부 작업을 진행하던 중 기절했고, 베티 덴페이(미용사, 애인?)의 집에 들러 쉬던 중 두통약을 먹고 잠들었다. 그리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이소룡의 죽음은 때이른 것이었고, 예상밖의 결과였다. 그는 종종 거리에서도 무술 고수들의 도전을 받곤 했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그는 기꺼이 도전을 받아들였고 승리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무술이 결코 영화에서만 보여지는 쇼가 아니라 실제의 무예임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는 영화에서만 강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무척 강했다는 것이 그를 아는 지인들이 말이었다. "정무문"의 엔딩 장면은 마치 "내일을 향해 쏴라"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같은 비슷한 시기의 영화들을 연상케 한다. 이소룡류의 아시아식 액션은 맨몸(동양의 전근대)의 동양인이 서구의 총구(서양의 근대)와 어떻게 대결하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아시아의 액션 배우는 한 방의 총탄에도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진실을 어떻게든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소룡은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인들에게 어떤 자부심을 심어 주었고, 법보다는 언제나 주먹이 가까왔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들에게도 역시 그와 흡사한 쾌감을 주었다.


그의 액션은 서구식 정의(正義)로 포장된 격투하곤 달랐다. 이소룡은 늘 실전같이 싸웠고, 승리하기 위해 적의 사타구니를 걷어차거나 물어뜯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비록, 그의 무술 솜씨는 신기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승리하기 위해선 언제나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우리의 70년대, 아시아의 70년대는 비록 식민지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자존심을 회복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 부족했던 시대였다. 이소룡이 상징한 것은 그런 힘은 아니었는지... 오늘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의 아버지, 삼촌 세대라 할 수 있는 기성세대들이 느끼는 억울함도 역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일단 먹고 사는 일, 생존하는 일에 급급했던 이들에게 이제와서 정의와 인권의 이름으로 심판하려든다고 그렇게 억울하게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빈부격차가 그 어느때보다 심해지던 1980년대를 관통해온, 주윤발 세대인 나는 또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 이 DVD의 화질은 홍콩영화치고는 상당히 개선된 편이지만 오래전의 영화를 복각한 한계는 있다. 서플먼트는 별도의 디스크가 보충해주는 셈이고, 나름대로 영화 해설을 보며 보는 재미는 느낄 수 있다. 이걸 사보고 나니 같은 레이블에서 출시된 "영웅본색" 시리즈도 구입하고 싶어졌다. 참, "용쟁호투"는 이 세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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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살바도르 (Salvador)
감독 : 올리버 스톤
출연 : 제임스 우즈
제작 : 1986 영국, 미국, 122분

올리버 스톤의 실질적 감독 데뷔작 <살바도르>

올리버 스톤의 감독 데뷔작은 1981년의 공포영화 <악마의 손(The Hand)>이었지만, 그를 할리우드의 이단아, 숨겨진 뇌관으로 만든 데뷔작은 <살바도르>였다. 이 영화가 중요한 것은 그가 앞으로 펼쳐나갈 작업들과 그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문제작이었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들을 조망함으로써 가장 미국적인 감독이자, 미국적이지 않은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올리버 스톤은 미국 현대사의 명암을 정공법으로 파고드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런 감독은 아니었다. 그의 데뷔작인 <악마의 손>은 컬트적인 구성이 돋보이긴 했으나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나 인정  받는 작품이었고, 그는 일찍 감독 데뷔를 했으나 이후엔 감독보다는 시나리오 작가로 더 명성을 얻었다. 그는 감독상을 받기 전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1978)>로 먼저 각본상을 받았다.


이후 브라이언 드 팔마와 <스카페이스>, 마이클 치미노와 <이어 오브 드라곤> 등을 촬영하며 전형적인 장르영화에 충실한 각본을 썼다. 이 무렵 그리고 이후에 다소 약화되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인종차별적인 묘사와 지나친 폭력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 왔고,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한 때 한국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이들에게 한국적 인권 상황을 생각하게 해 많은 인기를 얻었으나 지금은 인종적 편견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리버 스톤 자신도
“난 인종차별주의자였고 국수주의자였으며 총을 숭배했다”며 당시 자신의 문제점을 시인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새로운 감독 데뷔작(?)이 된 <살바도르>는 그런 과도기적 상황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종군 기자 리처드 보일(제임스 우즈)에 투사해내고 있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보일은 한때는 그나마 잘 나가던 카메라 기자였고, 영화 <킬링필드>의 주인공이기도 한 시드니 쉔버그와 함께 캄보디아 취재 기자로 나선 적도 있었다. 그러나 타고난 냉소와 좌충우돌하는 기질 때문에 그를 고용해주는 통신사 하나 없이 시시껄렁한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아내는 넌덜머리나는 결혼 생활을 끝장내버리고, 그는 밀린 아파트 월세에 쪼들리다 못해 통신사에 전화를 해대며 취재거리를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엘살바도르 - 바나나공화국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

결국 리처드 보일은 카메라 한 대를 달랑 들고 내전이 한창인 엘살바도르에 간다. 이 영화는 엘살바도르 내전(1980-81년) 당시의 종군 기자였던 보일의 자서전적 기록을 재구성한 영화다. DVD에는 그의 실제 회고 일부가 담겨 있지만 아쉽게도 자막이 없다. 영화 초반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주된 배경이 되는 엘살바도르는 어떤 나라인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엘살바도르는 1856년 독립하지만, 시몬 볼리바르가 꿈꾸었던 라틴아메리카 연방공화국의 꿈은 미국과 같은 새로운 강대국의 출현을 염려한 영국과 미국, 그리고 나머지 유럽 제국들의 방해, 내부적으로는 이미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던 지주계급의 반대로 무산되고 만다. 특히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의 우선권을 주장하며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종속을 강화해나간다.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약소국들을 일컬어 '
바나나공화국'이란 말로 부르는 것은 유나이티드 프루츠와 같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이 한 나라의 경제와 사회를 좌우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냉소 섞인 풍자이다. 미국과 이해를 같이하는 소수 지주계급은 부를 축적하여 전국토의 56%를 14개 문벌에서 차지할 정도로 엘살바도르의 빈부 차는 극심했다. 결국 1932년 농민을 이끌고 파라분도 마르티는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과는 농민군 3만 명의 참살로 끝나고 만다.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게릴라 집단의 명칭은 대개 그 지역 출신으로 과거 반란을 주모했던 혁명가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저항, 아니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오랜 역사적 연원을 지니는지 알 수 있다.


-> FMLN(Frente Farabundo Marti de Liberación Nacional)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 해방 전선은 1980년 8월에 4개의 게릴라가 모여 결성한 무장 혁명 조직으로 1980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우익 쿠데타세력에 맞섰던 게릴라 저항조직이다. UN의 중재로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엘살바도르 내전은 18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지난 2009년 FMLN은 항쟁 20년만에 엘살바도르 대선에서 승리하여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라틴아메리카 민중들 전체에 커다란 자극을 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쿠바가 소모사 정권을 전복시키는 혁명에 성공했고, 베트남이 거대한 코끼리인 미국의 밑창에 구멍을 내는 승리를 거두었고, 이란에서는 팔레비 정권이 강력한 비밀경찰과 미국의 지원을 물리치고,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킨다. 이런 연이은 혁명의 성공은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1970년대부터 엘살바도르 안에서도 군부독재에 대한 좌익 게릴라 조직의 저항이 시작된다. 그리고 1980년 분열되어 있던 게릴라 조직은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으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3월 로메로 대주교 암살사건으로 촉발된 엘살바도르 내전은 더욱 극렬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FMLN은 1983년에 이르러서는 엘살바도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 세력으로 거듭나지만 그 와중에 엘살바도르 군부는 '
죽음의 군단'이란 퇴역군인과 치안경찰 등 우익 민병대를 조직해 무수한 민간인들을 학살한다.




기자 정신과 보여주
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미국 언론

영화는 그런 시대 배경 속에 있으며, 그중에서도 FMLN의 결성과 로메로 주교의 암살, 새로운 람보 - 레이건의 등장이란 극적인 순간의 엘살바도르를 다룬다. 영화 속에서 제임스 우즈는 그의 연기사상 거의 최고의 연기 솜씨를 보여주는데, 그 자신이 리처드 보일이 아닐까 싶을 만큼 대단했다. 영화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의 소국 엘살바도르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지배하는가를 할리우드 영화치고는 대단하단 생각이 들만큼 잘 지적해내고 있다. 비판의 화살은 단지 정치인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한때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을 하야시킬 만큼 대담한 비판정신과 공정성으로 찬탄의 대상이 되었던 미국의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교묘하게 자본의 검열을 받는가를 살필 수 있다.


미국은 베트남전의 패배를 군사적 패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베트남전의 패배를 내부의 전쟁에서 패한 것, 언론과의 전쟁에서 패한 것, 고도의 정치전, 심리전에서 패배한 것으로 생각한다. 베트남에서의 패배를 군사적인 패배로 생각지 않는 까닭은 미국이 세계 도처의 전쟁에 참전한 이래 거듭되는 그들만의 산술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기실 이런 전통은 인디언 헤드 헌터식 산술법이란 지극히 미국적인 산술법에 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 헤드헌터들의 방식, 인디언 머리 가죽을 벗겨오면 가죽 당 얼마씩 달러를 지불하는 것 말이다. 베트남전에서 베트콩의 귀를 잘라 수집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은 전사자의 시체 수로 전투의 승리를 가늠한다. 미군 전사자보다 많은 베트콩을 죽인 전투라면 그 전투는 승리한 것이고, 이런 식의 전투에서 미국은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보일은 엘살바도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지만, 베트남전 이후 새로운 보도 정책과 검열 방식을 채택한 미국에서는 취재는 가능할지 모르나 이를 보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종군기자들의 사망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의 일이다. 이제 미군을 수행하는 종군기자들은 전쟁에서 가장 먼저 타깃이 되거나 에어컨디셔너에 의해 기온이 조절되는 안락한 브리핑 룸에서 미군 보도통제관이 전해주는 뉴스만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존재가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시청자들은 안방에서 편안하게 매번 최고의 민간인 학살 수치를 갱신하는 미군의 전투 수행 방식을 역사상 가장 깨끗하고, 과학적인 첨단 전쟁으로 인식하게 된다. 미군은 그네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줌으로써 남북전쟁 당시 브로디의 사진처럼 전쟁은 일어났지만 단 한 명의 전사자 시신도 발견할 수 없는 화면을 본다. 영화 속에서 보일은 미 대사관에서 벌어지는 파티 석상에서 이런 기자들을 한껏 조롱한다. 그러나 보일 자신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우익 지도자에게 밉보여 자신의 친구인 수녀일행이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 일을 겪는다.


엘살바도르와 광주, 1980년

나는 이 영화를 지난 1988년에 보았다. 87년의 후폭풍을 겪고, 88올림픽을 앞둔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된 상징으로 코스타가브라스(Constantin Costa-Gavras)의 영화 <Z>와 올리버 스톤의 <살바도르>를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80년 5.18 광주로부터 8년 뒤에 다시 보는 1980년 엘살바도르의 상황은 광주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저항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나는 극장의 어두운 공간에서 엘살바도르가 아니라 광주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죽은 수녀들의 시체가 어둠 속에서, 흙 속에서 발굴되어 나오는 장면을 보며, 나는 욕지기를 느꼈고, 광주 인근의 어느 이름 없는 둔덕 속에 묻혀있을 시신들이 떠올랐었다. 레이건의 등장이 전혀 다른 새로운 미국의 출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트루먼 대통령 이래 지속되어 온 미국의 대외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일이었고, 1980년의 봄은 그런 미국의 저강도전쟁이란 정책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소리 없는(?) 학살들이었다. 레이건의 등장과 함께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런 사실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전쟁이고, 학살이었으며, 단지 그 나라 독재정권이 한 짓들이었다. 미국은 베트남전 이래 직접 개입하는 방식 대신 그들의 하수인을 부리는 방식을 택했다.


리처드 보일은 엘살바도르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결혼하여 살바도르를 빠져나오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미국에 도달한 직후 국경감시대에 의해 그 여인은 다시 엘살바도르로 되돌려 보내진다. 그녀를 실고 떠나는 국경감시대 차량을 향해 보일은 외친다.
“너희들은 되돌려 보낸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모른다.”고 말이다. 이 영화 역시 올리버 스톤의 작품들에 대해 쏟아지는 일반적인(인종 편견적이라거나, 미국 비판이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미지의 미국, 인권국가, 자유로운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증대시키는데 이바지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있는 우리 영화인들 혹은 감상자들에게 되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래, 우리는 이 영화보다 조금 더 나은 영화를 만들었는가? 만들고 있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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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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