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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 -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학고재(2003) 이미지(색채를 포함한)로 말하기에 익숙한 예술가나 그것을 읽어들이는 전문적인 훈련을 쌓은 미술비평가들의 고민이 무엇일까? 회화 혹은 조각을 모두 포함한 예술 장르로서의 미술, 거기에 난해함을 더한 현대 미술의 조류를 모두 한눈에 파악하고 있는 감상자들, 일명 고급 문화 향수자들이라 해야할 일부를 제외하고 미술은 그저 막막한 대상에 불과할 것이다. 마치 보리수 밑에서 진리를 터득한 부처이지만 그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단이 없다면 과연 오늘날의 불교가 성립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고민이 예술가와 미술비평가의 고민일 것이다. 자신은 어떤 회화를 보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나 그것을 일반 감상자들 에게 전할 방법이 없다면 그 아름다움을 발견한 비평가도, 그 작품을 만든 작가 자신도 답답하지 않을까? 특.. 더보기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 마이클 매클리어, 유경찬 옮김, 을유문화사, 2002 베트남, '만(萬)일의 전쟁'이란 제목의 책이다. 잔다르크가 활약했던 전쟁을 일컬어 '100년 전쟁'이라 기억하고 중세의 붕괴를 가져온 '30년 전쟁'이 있다. 아마도 이렇듯 장구한 세월의 이름이 붙은 전쟁을 떠올리면 머릿속에 장엄한 대로망이 그려지는 이들도 있으리라. 100년 전쟁, 30년 전쟁은 그 이름에 불구하고 그 기간 동안 내내 전투를 치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또다른 30년전쟁 베트남전의 경우엔 거의 매일이라고 할 수 있는 민간인 학살과 전투가 일과처럼 벌어진 전쟁이었다. 1945년 4월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1975년 4월 30일 종전될 때까지 베트남에서는 그야말로 한 세대가 전멸하는 고통 속에서 베트남 민족의 독립과 자주, 해방을 위해 투쟁했다. 그 매일매일이 쌓인 시간이 10,000일에.. 더보기
이현배 - 흙으로 빚는 자유:옹기장이 이현배 이야기/ 이현배/ 사계절출판사(2000년) 우리말에서 "옹"이란 말은 별도로 정한 바 있는 접두사는 아니다. 그러나 "옹"이 붙는 표현들은 "옹골지다", "옹골차다"와 같은 형용사에서 볼 수 있듯 '실속이 있는 것', '내용이 충실한'과 같은 느낌과 뜻으로, "옹기옹기", "옹기종기" 등과 같은 부사에서 느낄 수 있듯 따듯한 정감이 느껴지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물론 "옹고집(壅固執)"이나 "옹졸하다(壅拙)"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도 없지는 않으나 그것 역시 악하거나 나쁜 느낌이기 보다는 민화에서 장난스럽게 표현되는 도깨비 같은 느낌이다. 이렇듯 우리 말표현에서 접두사 아닌 접두사처럼 사용되는 "옹"이란 말이 그릇으로서의 "옹기(甕器)"에서 비롯된 것인지 과 같은 "옹"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고, 학술적으로 연원을 따져물을 재.. 더보기
신영복 -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돌베개, 2004) 신영복 선생을 만나뵐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처음은 인천에서 '더불어 숲' 모임에서 당신이 강연하실 때, 다음 두 번은 학교에서 뵈었다. 이재정 당시 성공회대 총장을 인터뷰하는 자리에 신영복 선생이 동석해주셨고, 다음 번엔 당신 자신이 인터뷰의 대상이 되어서 당신의 연구실에서 뵈었다. 이 때 인터뷰 끝내고 함께 학교 식당에서 국수를 먹었고, 식사 후엔 직접 구내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셔서 성공회대 새천년관의 명물인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녹여 먹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뵌 것이 부천 '더불어 숲' 모임에서 강연하시는 자리에서였다. 그러니까 이 책 "나의 동양고전 독법 - 강의"를 출간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강연 끝나고 간단하게 저자 사인회가 있었는데, 난 그날 선생.. 더보기
마야 린(Maya Lin) - "베트남전 참전 추모비 The Wall, 1982" 전쟁을 어떻게 추모할 것인가?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인류 공동체의 커다란 숙제입니다. 우리는 동족끼리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전쟁을 기념하는 "전쟁기념관"을 용산에 건립했습니다. 죽은 이들을 기리고, 희생을 추모하는, 그것을 기념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인정하는 공동체 최상층부에 존재하는 국가차원에서 희생자의 추도와 화해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정부의 의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교보문고 옆 촛불 시위 장소의 기념비가 공권력에 의해 임의로 철거되는 사태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국가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추모를 통제하려 듭니다. 그것은 이런 희생에 대한 상징성을 국가가 독점하고 통제하려 드는 탓입니다. 마야 린(Maya Lin)의 "베트남전 참전 추모비 The.. 더보기
마지드 마지디 - 천국의 아이들(Children of Heaven) 감독 / 마지드 마지디 출연 / 알리(아미르 파로크 하쉬마인), 자라(바하레 세디키) 간혹 "세상살이가 다 비슷하다"는 말엔 인생의 고단함을 위무받고자 하는 이의 간절한 소망이 묻어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세상살이가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혹시 비디오 가게에 가서 이 비디오 테잎을 발견하고 들었다 났다 하며 그냥 골치 아픈 데 액션 영화나 한 편 때리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지 말고 이 영화를 한 번 보도록 권하고 싶다. 거기엔 아주 먼 곳에 살고 있는 알리와 자라, 오누이가 있고 나와 당신의 어린 시절이 있고, 이제는 운동화가 떨어지기 전에 쓰레기통에 버리는 부유함 속에 잊혀져 버린 우리들이 있다. 알리(아미르 파로크 하쉬마인)는 몸이 아픈 엄마의 심부름으로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 더보기
황지우 - 聖 찰리 채플린 聖 찰리 채플린 - 황지우 영화 끝 장면에서 우리의 ‘무죄한 희생자’, 찰리 채플린이 길가에서 신발끈을 다시 묶으면서, 그리고 특유의 슬픈 얼굴로 씩 웃으면서 애인에게 “그렇지만 죽는다고는 말하지마!”하고 말할 때 나는 또 소갈머리 없이 울었지 내 거지 근성 때문인지도 몰라; 나는 너의 그 말 한마디에 굶주려 있었단 말야: “너, 요즘 뭐 먹고 사냐?”고 물어 주는 거 * 누군가 작은 관심만 가져주어도 온 신경이 다 곤두서는 것은 알량한 자존심이 마음 속까지 치장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누군가를 속일 수는 있어도 나를 속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너무 악한 까닭입니다. 눈이 맑고 순수한 사람을 보면 마음은 편해지지만 그 뒤켠에 두려움이 드는 까닭은 그대의 눈동자가 거울같아서 일겁니다. "너, 요즘 뭐 먹고 .. 더보기
김남주 - 시인은 모름지기 시인은 모름지기 - 김남주 공원이나 학교나 교회 도시의 네거리 같은 데서 흔해빠진 것이 동상이다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고 나 이날이때까지 왕이라든가 순교자라든가 선비라든가 또 무슨무슨 장군이라든가 하는 것들의 수염 앞에서 칼 앞에서 책 앞에서 가던 길 멈추고 눈을 내리깐 적 없고 고개 들어 우러러본 적 없다 그들이 잘나고 못나고 해서가 아니다 내가 오만해서도 아니다 시인은 그 따위 권위 앞에서 머리를 수그린다거나 허리를 굽혀서는 안되는 것이다. 모름지기 시인이 다소곳해야 할 것은 삶인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돌아와 마을 어귀 같은 데에 늙은 상수리나무로 서 있는 주름살과 상처자국투성이의 기구한 삶 앞에서 다소곳하게 서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도둑놈의 삶일지라도 그것.. 더보기
김사인 - 지상의 방 한칸 지상의 방 한칸 - 김사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 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 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 지붕이 없는 곳에서 잠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의 절절함이 누구보다 더 가슴가득히 들어차리란 생각이 듭니다. 며칠 후면 남이 누울 .. 더보기
도종환 -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 도종환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몹시도 괴로웠다. 어깨 위에 별들이 뜨고 그 별이 다 질 때까지 마음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게만 느껴지는 날에는 내가 그에게 처음 했던 말들을 생각했다 내가 그와 끝까지 함께 하리라 마음 먹던 밤 돌아오면서 발걸음마다 심었던 맹세들을 떠올렸다 그날의 내 기도를 들어준 별들과 저녁하늘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사랑도 다 모르면서 미움을 더 아는 듯이 쏟아버린 내 마음이 어리석어 괴로웠다. * 사랑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이해는 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아픈 일일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답이 없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