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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호기심을 통해 발견한 희망, 금서(禁書) 판도라의 호기심을 통해 발견한 희망, 금서(禁書) 우리가 흔히 ‘문화’라고 부르는 일상의 공간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지배적 문화가 대중에게 널리 유포되는 장이자, 동시에 이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 병존하는 공간이다. 문화(일상)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피지배계급의 다양한 정체성, 저항력과 지배계급의 통합력 사이의 투쟁의 장(battle field)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일상문화란 이와 같이 미시적인 영역에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지배적 문화)와 대중(다중)이 매일 반복적으로 벌이는 투쟁과 타협이 서로 ‘타협적 평형(compromise equilibrium)’을 이룬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금서, 혹은 판금도서란 지배계급이 허용할 수 없는 금지된 지식 - 타협적 평형을 붕괴시킬 수도 있을 만한 파괴력.. 더보기
작전명 발키리 (Valkyrie) █ 작전명 발키리 (Valkyrie)/ 감독 브라이언 싱어/ 출연 톰 크루즈/ 제작 2008 미국, 독일 난제 - 역사성과 오락성(흥행성적) 그리고 작품성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과 사건을 영화나 드라마, 소설로 재구성하는 일은 화살 하나로 세 개의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처럼 어렵다. 역사성과 오락성(흥행성적) 그리고 작품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가? 언젠가 어느 신문 기자던가, 평론가가 영화 에서 헥토르가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썼다가 인터넷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스포일러를 유포했다고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내가 이 일을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무렵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옆 좌석의 젊은 여성 둘이 나누는 대화를 실제로 들었기 때문이다. 두.. 더보기
역정(나의 청년 시대) - 리영희 저작집 6 | 리영희 (지은이) | 한길사 | 2006 역정(나의 청년 시대) - 리영희 저작집 6 | 리영희 (지은이) | 한길사 | 2006 여기 한 사람의 인생 역정이 있다. 언론인이자 학자, 우리 시대의 양심이자, 웃어른이 남긴, 부제를 '리영희 자전적 에세이'라고 하는 책이 그것이다. 그는 이 글을 집필할 때 이미 수많은 젊은이들의 삶의 향배를 결정지은 책(전환시대의 논리 등을 비롯한 - 나 역시 그의 책들 중 가장 먼저 접한 것이기도 하다)들을 저술한 유명한 학자이자 언론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1980년 광주민중항쟁 사건의 '배후조종자' 혐의로 중정 지하 삼층에서 혹독한 시달림을 당했고, 그 자신이 도저히 더는 글을 쓸 수 없게 되리란 판단 아래 자신의 인생을 묵묵히 정리하겠다는 마음으로 - 이는 마치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뒤, 사기에 전념한 것.. 더보기
기시다 슈 - 성은 환상이다, 이학사, 2000 성은 환상이다 | 기시다 슈 지음 | 박규태 옮김 | 이학사 | 2000 성은 일상의 이면에서 표면으로 떠올랐고, 말초적인 성(sex)으로부터 학문적인 접근 방식의 성에 이르기 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담론들이 있다. 그럼에도 성담론은 여전히 일반인의 접근을 가로막는 형태(말초적인 차원부터 고급한 차원까지)로 왜곡되어 있다. 가령, 성의 매매춘 문제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그것이 남근주의 사회, 자본주의 체제, 가부장적 질서 속에 여성에게 강제된 것이라고 항변한다. 맞는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도 반론들은 늘상 존재해 왔다. 여성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매매춘에 임하는 경우는 어찌 보아야 하는가? 경제적 궁핍의 정도, 사회적 지위, 문화적인 레벨과 상관없이 자발적인 매매춘에 임하는, 점차 교묘해지는 .. 더보기
파블로 네루다 - 마음 아픈 낮 마음 아픈 낮 - 파블로 네루다 헤아릴 수 없는 수난과 잿빛 꿈을 가진 창백한 겉옷을 입는다. 틀림없는 수행원. 혼자서 살아가는 쇠의 바람, 배고픔이라는 옷을 입은 하인. 나무 밑의 시원함 속에서, 꽃들에게 자신의 건강을 전해주는 태양의 정수 속에서, 황금 같은 내 피부에 쾌락이 찾아오면, 호랑이의 발을 가진 산호 유령인 당신, 장례의 시간, 불타는 결합인 당신, 내가 사는 이 땅을 정탐한다, 약간은 떨고 있는 당신의 달빛 槍을 가지고. 그 어느 날이건 텅 빈 정오가 지나가는 창문은 날개에 풍성한 바람을 갖게 되는 법. 광풍은 옷을 부풀리고 꿈은 모자를 부풀리고, 절정에 달한 벌 한 마리 쉬지 않고 타오른다. 그런데, 그 어떤 예기치 못한 발자국이 길을 삐걱대게 할까? 음산한 역의 저 증기는, 해맑은 저.. 더보기
에르빈 롬멜 - "추신 : 리라는 외환 관리 규정에 따라서 환전하기 바라오." 에르빈 롬멜(Erwin Johannes Eugen Rommel, 1891.11.15~1944.10.14) - 추신 : 리라는 외환 관리 규정에 따라서 환전하기 바라오. 사랑하는 루! 전투가 계속해서 격렬해지고 있소. 나는 그것이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난다는 것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소. 베른트가 총통에게 보고하기 위해 떠난다오. 그래서 내가 저축해 둔 2만 5천 리라를 그 편에 동봉하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신의 손에 달려 있소. 아들과 함께 잘 살기를 바라오. 당신과 아이에게 키스를 보내오. 당신의 에르빈 추신 : 리라는 외환 관리 규정에 따라서 환전하기 바라오. * 세계 전사(戰史)를 통해 살펴볼 때 명장으로 이름을 남긴 장군이란 대체로 아군에겐 칭송의 대상이지만 적에겐 두려움의 대상이기 마련이다... 더보기
오규원 - 한 잎의 女子 한 잎의 女子 - 오규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의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 가진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 세상의 모든 시는 기본적으로 연애시이고, 연애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소위 참여냐, 비참여냐, 순수냐, 참여냐로 나.. 더보기
체자레 파베세 - 한 세대 한 세대 - 체자레 파베세 지금은 도로가 펼쳐진 초원에 소년 하나 와서 놀곤 했어. 초원에는 맨발로 즐겁게 뛰노는 개구쟁이들이 있었지. 그들과 풀밭에서 맨발이 되는 건 즐거운 일. 멀리 불빛이 켜지던 어느 날 저녁 도시에서는 총소리가 메아리쳤고, 바람결에 무서운 난리 소리가 간간이 실려 왔었어. 모두들 침묵했어. 언덕 기슭에선 바람결에 실려 온 불빛들이 점점이 흩어졌지. 밤이 깊어지자 모든 건 빛을 잃었고, 졸리움 속에 신선한 바람만이 남아 있었어. (내일 아침 소년들은 또다시 돌아다니고 아무도 난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감옥 안에는 말없는 노동자들이 있고, 누군가는 이미 죽었다. 길거리엔 핏자국들이 얼룩져 있다. 멀리 도시는 태양과 함께 잠이 깨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온다. 서로 얼굴만 바라본다.) 소년들.. 더보기
황동규 - 조그만 사랑 노래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도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참, 사랑이란..... 오나가나 애물단지다. 나이와 상관없고, 성별과 상관없고, 국적과 상관없이 사랑은 온천지에 공평하게 번진다. 바이러스처럼... 수많은 변종을 품은 채.... 사랑한다고 혼자서 열번만 되뇌인 뒤 처음 만난 사람을 쳐다보면 사랑에 빠지게 될까?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더보기
정현종 - 고통의 축제.2 고통의 축제 ․ 2 - 정현종 눈 깜박이는 별빛이여 사수좌인 이 담뱃불빛의 和唱을 보아라 구호의 어둠 속 길이 우리 암호의 가락! 하늘은 새들에게 내어주고 나는 아래로 아래로 날아오른다 쾌락은 육체를 묶고 고통은 영혼을 묶는도다 시간의 뿌리를 뽑으려다 제가 뿌리 뽑히는 아름슬픈 우리들 술은 우리의 정신의 화려한 형용사 눈동자마다 깊이 망향가 고여 있다 쾌락은 육체를 묶고 고통은 영혼을 묶는도다 무슨 힘이 우리를 살게 하냐구요? 마음의 잡동사니의 힘! 아리랑 아리랑의 청천하늘 오늘도 흐느껴 푸르르고 별도나 많은 별에 愁心내려 기죽은 영혼들 거지처럼 떠돈다 쾌락은 육체를 묶고 고통은 영혼을 묶는도다 몸보다 그림자가 더 무거워 머리 숙이고 가는 길 피에는 소금, 눈물에는 설탕을 치며 사람의 일들을 노래한다 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