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작고, 좀 더 직접적이며, 좀 더 일상적인 공공미술 프로젝트



문화정책을 비롯해 문화의 다양한 의미체계를 연구하는 문화연구자이지만 공공미술 영역은 미술 전문가들이 논해야 할 분야인 것 같아 공연히 주눅부터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공공미술이란 말 자체가 ‘Public(공공의)’과 ‘Art(미술)’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말이란 점에서 미술이 아닌 공공성에 강조점을 두고 살펴본다면 논의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미술에 대해 논의하기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공공미술에 대한 명확한 개념 설정 없이 대형건축물이나 공공장소에 으레 놓이기 마련인 환경조형물이나 거대한 미술장식품으로 혼동되어 버린 현실에 있다.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전시장과 미술관에 갇혀있던 예술작품들이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흔히 ‘미술장식법’이라 불리는 문화예술진흥법 제3장 11조 「건축물에 대한 미술장식」은 공공미술에 대한 개념을 우리 사회에 처음 도입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미술을 통한 도시환경 개선과 창작 지원이라는 애초의 취지와 달리 미술장식법에 따른 전시작품들은 작품선정과 심의 과정을 둘러싼 로비와 금품 수수 의혹 등 추문에 휩싸였고, 심지어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시각공해의 주범으로 몰리기까지 했다. 좀더 심각한 문제는 공공이 주도하고, 보다 광범위하게 설정되었어야 할 공공미술의 주체와 영역을 건축주와 일부 조각가 사이의 문제로 고착시켜버렸다는 것이다.

본래 공공미술이란 개념은 1967년 영국의 존 윌렛이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이란 책에서 소수 전문가 집단 - 아트디렉터, 화상, 큐레이터, 비평가, 수집가 - 에 의해 규정되는 미술, 다시 말해 작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일부에 의해 규정되는 예술적 향유가 마치 일반 대중의 미적 감각을 대변하는 것처럼 전유(appropriation)되는 것을 비판하여 대중의 정서가 개입하는 미술개념으로 출발했다. 일부에 의해 독점되고 과잉 표상되는 미술을 대중에게 환원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올림픽 이후 한국 사회에서 공공미술은 전통적으로 공공장소(public space)에 유명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본래 공공미술에서 상정하는 장소는 단순히 물리적 위치로서의 공공장소가 아니라 사회적 ․ 문화적 ․ 정치적 소통의 장(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공공미술의 본래 개념은 공공미술의 영역을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 작품이나 조각에 국한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창조의 주체 역시 지역공동체와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포함하는 영역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작년 연말 인천문화재단이 보여준 <인천미술은행 소장작품전>은 인천의 공공미술이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인천문화재단은 지난 2005년부터 추진해온 ‘인천미술은행 기반구축사업’의 의미를 “소장 작품의 활용은 인천의 공공장소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데 소중한 디딤돌”이라고 자평했다. 인천미술은행 사업은 시립미술관조차 없는 인천미술계의 답답한 현실 속에서 나름 의미가 있는 사업이며 인천문화재단이 향후 추진해나갈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아직 시행 초기에 있다는 점에서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인천문화재단이 생각하고 있는 공공미술의 개념이 아직도 과거의 인식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염려를 자아내기엔 충분했다.

실제로 미술평론가 민운기는 「미술은행, 그만하거나 제대로 하거나」(황해문화, 2009년 봄호)를 통해 인천미술은행 사업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 - 최근의 다양한 성과물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공모제 중심의 심의 및 선정 방법 등 - 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 내용은 앞의 글에서 이미 자세히 소개되고 있으므로 여기에선 길게 다루지 않겠다. 다만 위의 사업을 통해 노출된 인천문화재단의 공공미술 개념이 지닌 문제점에 대해선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듯하다. 첫째는 공공장소의 개념이 여전히 물리적인 장소에 국한되어 있고, 둘째는 공공장소가 예술작품의 대여만으로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발상의 소박함으로 인해 변화해가는 공공미술 개념의 추이를 뒤쫓지 못하고 있으며 셋째는 창조 혹은 전유의 주체로서 지역공동체와 관람객의 참여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중앙과 지방을 떠나 공공문화정책의 입안자들 혹은 그보다 좀더 상위의 지위를 차지하는 선출직 공무원들은 여전히 크고, 돈 많이 들어간 것이 좋다는 거대주의, 공공건물을 짓거나 전시회, 이벤트를 개최하는 전시성 업적주의, 다른 한 편으론 아카데미, 유명작가, 개인전, 수상실적 같은 권위에는 쉽게 복종하면서도 대중에 대한 공공문화서비스는 일종의 시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삶의 안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추진되어야 할 문화정책은 거대주의, 업적주의, 권위주의를 벗어나 대중을 직접 찾아가는 시민참여(public access)의 문화정책 서비스를 통해 지역문화가 지닌 건강한 일상성을 회복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고, 지역이 중앙에 종속된 매개변수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문화주체로 정립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주는 것이어야 한다. 좀 더 작고, 좀 더 직접적이며, 좀 더 일상적인 공공미술 프로젝트 말이다.

출처: 계간 <리뷰인천>, 2009년 창간호(4월 15일)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1%의 귀족을 위한 '이런 나라'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도 일본 닌텐도처럼 창의성 있는 제품을 개발할 수 없느냐?”고 말했다는데 일본의 튼튼한 문화적 인프라에 기초한 이러한 제품을 건물 짓듯 단기간 내에 만들어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애니메이션 중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 높은 인기를 누리며, 영화 <매트릭스>의 원형으로도 평가받는 작품이 <공각기동대>다. <공각기동대> 시리즈에 등장하는 ‘웃는 남자(스마일맨)’ 같은 캐릭터 설정만 살펴보더라도 깊이 있는 인문학적 토대 위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웃는 남자는 얼마 전 구속된 미네르바처럼 사이버세계 속에서 가면을 쓰고 기업의 잘못된 이윤추구와 이를 비호하는 권력에 도전했다가 정보기관에 추적당하는 인물이었다. 지난 촛불시위에서 사람들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나타난 것처럼 정보기관이 추적하면 할수록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웃는 남자를 자처하며 나타나기 때문에 검거하기가 더욱더 어려워진다. 이 작품의 웃는 남자란 캐릭터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에서 유래된 것인데, <공각기동대> 외에도 영화 <배트맨>에서 주연보다 인기 있는 악역 캐릭터인 조커의 원형이 되기도 했다.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저항하다 20여 년간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빅토르 위고의 체험이 녹아있는 『웃는 남자』의 시대 배경은 청교도 혁명이 실패로 끝난 직후인 17세기의 영국이다. 크롬웰이 죽고 공화정에서 왕정으로 돌아갔지만 제임스 2세는 과거의 교훈을 잊고 독재와 실정을 거듭했고, 빈부격차는 더욱 커졌다. 왕은 공화정의 기억을 아예 말살하기 위해 복종하지 않는 공화파 귀족들을 제거했고, 혈통까지 끊어버릴 속셈으로 어린이 매매단을 이용해 반대파의 자식들을 납치한다.



그윈플레인은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행복한 삶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두 살 때 아버지가 숙청당하고, 매매단에 납치되어 입이 귀까지 찢어지는 형벌을 받는다. 그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웃는 얼굴을 하게 되었다. 웃는 남자는 익살광대가 되어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굶주리고 고통 받는 빈민층의 삶을 바로 이웃에서 목격했고, 그 자신이 거대한 벙어리들, 민중을 위한 입이 되리라 다짐한다. 우여곡절 끝에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 다시 귀족 신분을 얻게 된 웃는 남자는 여왕이 참석한 상원 회의에서 연설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굶주린 백성들의 현실과 지배계급의 오만과 탐욕을 질타한다.


“경들께서는 세력 있고 부유하십니다.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경들은 어둠을 이용해 득을 취하십니다.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또 다른 거대한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명입니다. 여명은 정복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곧 도래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원에 모인 귀족들은 웃는 남자의 일그러지고 흉한 몰골을 비웃으며 아무도 그의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얼마 전 우리는 여당 의원들이 국회 안에서 육탄전을 벌이고, 소화기를 뿌려대며 대통령과 자신들이 입법한 법안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애쓰는 광경을 보았다. 그러나 이 법안의 수혜자들은 국민이 아니라 17세기 영국의 귀족들처럼 혈연, 학벌, 부동산을 소유한 대한민국의 1% 귀족들이다. 정부는 이들의 세금을 20조원이나 깎아주었는데 나날이 인상되는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이는 데는 5조원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런 법안, 이런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



네티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휴대전화, 메일 감청 및 감시를 합법화하는 정보보호법, 통신비밀보호법,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다원화된 여론 형성과 자유로운 언론, 사회적 약자의 여론 참여를 가로막았다. 대신 대기업과 일부 보수언론의 신문, 방송 겸영과 지상파 종합편성 보도채널 허용을 담고 있는 언론법 개정안, 금산분리라는 중요한 시장경제질서의 원칙을 허물고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가능하게 만드는 은행법 등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개정안의 수혜자는 99%의 국민이 아니라 1% 귀족들이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은 ‘이런 나라는 없다’며 공권력에 도전하는 국민들을 질타했지만 국민들은 도리어 대통령의 말을 듣고 웃었다. 이처럼 자신에 대한 고도의 안티성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대통령은 지금껏 없었으므로 국민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웃음에는 뒤끝이 있다.


출처 : <경향신문>, 2009. 3. 30.


* <경향신문>에 청탁받아 칼럼을 쓰고 있다. 필진 칼럼이라 대략 3주 내지는 4주에 한 번꼴로 돌아오는 것 같은데, 이번 칼럼은 어쩌다보니 원고 보낸 뒤 2주나 묵어 나오게 되었다. 신문사 사정이 그러하다니 어쩔 수 없었다. 기왕에 늦었으니 시의성이 떨어질 듯 하여 다시 써서 보낼까 하다가 그 사이 대통령이나 정부여당이 바뀔 것 같지도 않았고, 글 쓰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져서 그냥 내보냈다.  원고가 좀 길었던 모양이다. 원래 제목은 "웃는 남자의 '이런 나라'"로 해서 보냈는데 "1%의 귀족을 위한 '이런 나라'"가 되었고, 중간에 200자 원고지 1장 정도 분량이 깎였다. 본래 내가 썼던 원문이나마 이곳에 살려둔다.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위기와 녹색희망 


『지구화, 되돌아보기와 넘어서기』, 조명래 지음, 환경과생명, 2009





위기의 진화((鎭火)? 더 큰 위기로의 진화(進化) 

1929년 미국의 증시 폭락으로 시작된 경제대공황은 인류에게 두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 균형이 유지할 것이라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는 정부(공동체)가 경계를 정해 확실히 통제하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탐욕으로 인해 무력화되고 자기 파괴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경제대공황 같은 세계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초국가적인 대책이 아닌 개별 국가단위의 생존자구책은 도리어 위기를 고조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계는 전승국을 중심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한다는 수정자본주의(케인스주의)를 정책을 선택했고, 전 지구적 경제를 위한 새로운 규범으로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맺는다.


신자유주의는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무한한 부의 축적을 열망하는 자본의 동학은 케인스주의 국가들의 성장이 둔화되고, 개발도상국들의 국가주도 계획주의가 성장의 한계에 봉착하면서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효과적 증식과 성장을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성장의 한계, 경제위기는 모두 정부의 잘못된 정책, 불필요한 간섭과 규제, 과도한 사회복지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1980년대 말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되자 마거릿 대처는 신자유주의 이외에 더 이상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itive)”며 신자유주의의 전면적인 승리를 선언했다. 그 사이 대공황이 남겨주었던 교훈은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또 다시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제위기는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초고속 인터넷망에 번진 바이러스처럼 순식간에 세계의 경제위기로 번졌다. 냉전체제 해체 이후 꾸준히 추진되어왔던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결과였다. 금융경제를 넘어 세계 각국의 실물경제를 파탄 상황에 몰아넣은 위기의 원인을 두고, 한국 사회의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실패로, 보수 진영은 정치제도의 실패로 규정하고 있다. 과연 현재의 위기는 진화(鎭火)될 것인가? 아니면 더욱더 큰 위기로 진화(進化)해나갈 것인가? 지금의 위기를 불러들인 근본적인 위기는 무엇인가?


발전국가, 사회국가, 경쟁국가

조명래 교수는 지구화의 한국적 방식이거나 호명이라 할 만한 ‘세계화’가 이제 막 시작될 무렵이었던 1994년부터 지구화의 문제에 천착해왔다. 『지구화, 되돌아보기와 넘어서기』는 지구화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다양한 현상들, 특히 사회과학도로서 계몽주의 이래 지속되어온 근대적 현상인 ‘국민국가’ 중심 체제가 전복되면서 삶의 원초적 불안정성이 극대화되는 신자유주의적 현실에 주목한 결과물이다.


제1부 「지구화 시대의 공간과 환경」에서는 전 지구적 공간과 환경을 매개로 전개되는 지구화의 다양한 양상들을 살피고, 제2부 「지구화와 한국 사회의 현주소」에서는 지구화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의 구체적인 양상과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마지막 제3부 「지구화 시대를 넘어서기」에서는 또 다시 우리 앞에 닥친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인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과 삶의 가능성을 짚어보고 있다. 그는 공동체와 생태계의 생존을 위협하고, 끊임없이 불안정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병증의 현상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 이면에 드리워진 근대적 삶의 양식까지 파헤치는 근원적인 해부를 마치 내과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우선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과 환경의 구체적인 장으로서 국민국가의 변화양상에 주목한다. 근대적 패러다임의 산물인 국민국가모델, 발전국가와 사회국가라는 기존의 모델에서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따른 국가 재조직화의 결과물로 출현한 경쟁국가 체제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매뉴얼 월러스타인(Immanual Wallerstein)은 “자본주의는 시작부터 세계경제적인 사건이었으며 민족국가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자본은 자신의 열망이 민족의 경계로 한정되도록 방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출현은 처음부터 세계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으며 국가들과 사회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전 지구적인 상호연결을 시도한 세계체제의 등장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경제 체계는 무한한 부의 축적 과정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경제는 주어진 어떠한 정치구조의 경계도 초월하는 경제 단위였다.


서구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자본과 노동의 계급적 합의를 바탕으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을 통해 국민들의 사회적 삶(복지)을 책임지는 사회국가(social state)의 형태였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주도하는 저임금 노동집약형 산업을 통한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였다. 오일달러를 통한 북반부의 차관이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같은 저개발 국가들에서 권력자 개인의 착복 수단으로 망실된 반면 비교적 건전한 국가엘리트들이 주도한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은 ‘수출주의 축적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가 조정 역할을 확대하고 시민사회의 조건을 결정하는데 깊숙이 개입할수록 국가는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더욱 격렬한 투쟁의 장이 되었다.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서서히 시민사회의 이해관계와 반목하기 시작했다. 국가지배자와 국가요원들은 자신이 선택한 정책을 추구하고 집행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신흥독립국이자 개발도상국들의 국가형성기 동안엔 유력한 정치집단과 경제집단 사이에 이해관계의 동맹이 성립했지만, 그 동맹은 내부적 갈등을 미봉한 체제였다. 새로운 자본가계급은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경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봉건적 특권의 잔재에 대해 대항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와 경제를 점진적으로 분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신흥 계급은 국가가 조정 역할을 확대하고 경제에 대해 간섭함으로써 생기는 위험부담, 무역이나 사업에 대한 규제에 대한 저항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신흥 계급은 국가의 방향설정에 개입하여 국가의 재구조화를 시도했다. 지구화로 인해 생산 활동이 초국가적으로 전개되고, 금융거래의 지구적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국민국가는 국민경제의 통합적 조절자로서 거시 경제 조절 기능이 무력화되었다.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을 추구해온 아시아 각국들은 외환위기라는 자본의 지구화 앞에 무력했고, 외환위기는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로의 편입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제시된 IMF의 정책들은 국가역할의 재조직화를 의미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발전국가 모델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고, 기업과 시장을 통제할 수단을 잃은 사회는 조절력을 상실한 채 지구적 자본의 운동에 따라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구화 시대 국가들은 생산 및 유통의 모든 부문에서 자국 경제의 지구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자신의 역할을 집중시킴에 따라 대부분 ‘경쟁국가(competition state)’로 전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구적 경쟁력의 동학을 중심으로 국가의 역할이 설정되고 특화되는 ‘경쟁국가’는 지구화 시대 국가 역할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전통적인 국민국가가 국민적 합의나 명분을 바탕으로 국민경제의 안정적 성장과 발전을 도모함과 더불어 국민적 헤게모니 하에서 국민 대중을 통합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설정했다면, 경쟁 국가는 국민경제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제화․세계화되는 자본 운동 논리에 국가 경영의 방향을 맞춘다. 따라서 경쟁 국가 하에서 조절은 고용증대, 수요 관리, 분배 등과 같은 국민경제의 재생산 부문보다 신기술․신상품․신생산 체제 개발, 해외 직접 투자, 금융 거래 자유화 등과 같은 부분을 우선한다. <본문 40쪽>



지구화 시대를 넘어선 초록정치의 가능성

조명래 교수는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표면은 지구화이지만 내부는 신자유주의가 채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의 위기를 불러온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누적효과는 “전략적인 결정의 장에서 사회의 공익성이나 시민성을 보장하는 국가의 역량을 잠식”하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근대적 국민국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국민국가의 약화, 기능을 마비시키는 형태로 나타났기에 국민국가의 기력을 다시 회복시키고 강화해야 한다는 반동적인 딜레마에 빠졌다.


그러나 조명래 교수는 ‘국민국가의 덫’에 빠져서는 “초국민화 ․ 탈국가화를 수반하는 지구화의 힘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근본 원인에 대한 적절한 진단, 다시 말해 발전국가 ․ 사회국가 모델의 경제적 토대를 이루었던 포드주의 성장체제, 산업자본주의가 처한 위기를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축적 과정을 추구하는 자본의 근본적인 추동력과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소비중심의 근대적 삶의 패러다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 없이는 어떠한 대안도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 체제를 해체하고 재구조화하면서 진행되었던 현재의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촉발시킨 위기는 결국 특정한 성장체제의 종말이다. 문제는 이것이 다시 임금과 연동되는 포드주의 성장체제로의 회귀, 국민국가의 기능회복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지구 생태계와 인류공동체가 더 이상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생태적 위기는 단순히 국토 환경의 파괴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문제를 포괄하는 ‘진보의 근본 위기’이다. … 생태 위기는 사회의 존립과 지속 가능성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민주․성장․평등․참여 등 인간 중심의 전통적인 진보로는 이러한 상황을 결코 돌파할 수 없다. <본문 333쪽>


현재 우리 앞에 놓인 경제 위기의 실체, “공동체적 ․ 민주적 삶의 양식”이 해체되는 현실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산물인 동시에 근대 인간중심주의 진보의 산물이기도 하다. “더 많이 갖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다투며 약자를 차별화하고 배제하는 ‘경쟁적이고 불평등한 삶’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데서 연유한다. 결국 현재의 위기는 바로 우리 안의 경쟁적이고 불평등한 삶의 추구가 외적으로 표출된 결과이다. 진정한 진보는 사람과 사람의 평등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호혜로운 관계설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어야 하고, 사람 중심의 사회적 진보와 사람과 자연의 공존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형평성을 재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명래 교수의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병증에 대한 원인 진단이 정확하고 그에 대한 대안 역시 적절하다 할지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가 초록정치의 희망을 보았던 지난 2007년 촛불시위에 대한 해석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민주화 20년 뒤에 맞닥뜨린 대한민국은 사회국가로 발전하기는커녕 여전히 발전국가의 망령에 사로잡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에 의한 진보를 근원적으로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적 다중으로 포섭된 시민들이 초록정치의 주체로 세계체제의 바깥을 상상할 수 있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암흑 속에서 헤매야 할까.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라고 했던 루쉰 선생의 말씀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 <환경과생명>2009년 봄호(통권 59호)에 청탁 받아 쓴 글이다.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아카데미 영화제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젊어지고 싶다는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기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충고가 담겨 있다고 한다.


80세의 노인으로 태어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젊어지는 주인공 벤자민 버튼처럼 지난해 건국 60주년을 맞이했던 대한민국의 시간도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이제 며칠 후면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인데 그 사이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대통령 취임 보름 전에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탔다. 대통령인수위는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란 비판 속에 영어몰입교육과 ‘어륀지’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취임 직후 미국을 방문해 추진한 한·미쇠고기협상 결과에 분노한 100만 시민들이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 수호를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처음엔 미국의 선물이라 말했던 대통령은 취임 100일 만에 두 차례나 사과하고 재협상에 나섰다.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와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라는 미국발 금융 위기로, 외국계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주가와 환율이 곤두박질쳤다. IMF외환위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꿋꿋하게 환율방어에 나섰고, 환율이 천오백선을 오락가락하며 주식 펀드가 반토막나자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엄격한 상호주의를 내건 대북강경정책은 북핵 위기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십 수 년 동안 지켜왔던 남북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켰다. 100일 동안 진행된 삼성 특검 수사는 아무 것도 밝히지 못했고, 세밑 국회는 중점법안 처리 강행을 놓고 극한 대립까지 치달았다.

온 나라가 경축 분위기로 떠들썩할 만도 했건만 건국 60주년과 광복 63주년 행사는 건국 초기처럼 보수와 진보 둘로 나뉘어 치러졌다. 국가경축일에 물대포가 등장했고, 역사학자와 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가 이념편향 논란 속에 개정되었다. 취임 초부터 자리를 비워달라는 압력에 시달린 기관의 수장들은 불명예 퇴진했고, 방송국엔 예전처럼 사장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검찰총장은 새해 벽두부터 80년대 공안정국을 떠올리게 만드는 신년사로 간담을 서늘케 하더니 인터넷경제대통령이라던 미네르바가 허위사실유포죄로 긴급체포되었다. IT강국은 세계 언론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거꾸로 돌더니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은 지난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발표 30주년 기념 낭독회에서 이 책이 지금까지 현재성을 가지고 읽힐 줄 몰랐다던 조세희 선생을 다시 용산참사의 현장으로 불러냈다. 그는 “이렇게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동족을 괴롭혀 선진국이 된 예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며 30년 전보다 더욱 잔인하고 야만스러워진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탄했다. 급기야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국민 분열의 죄, 역사 왜곡과 폄하의 죄, 민족 분열의 죄, 민주주의 파탄의 죄”를 물어 통치 권력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도 어느덧 5분의 1이 흘렀다. 아직까지 대통령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이들에게는 남은 시간이 만회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으로 여겨질 테고, 일찌감치 희망을 접은 이들에게는 그 시간마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경험이 있으며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과정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국민을 부정하는 권력의 시작과 끝이 어떠했는지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이제 알만큼 안다.

예전에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병영 체험을 개그 소재로 엮은 적이 있었다. 그 코너의 유행어는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말이었다. 벤자민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외모는 더욱 젊어지지만 결국 아기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거꾸로 살아도 어쨌든 시간은 가는 법이다. 이제 4년 남았다. 서로 사랑만 하며 살아가기에도 아까운 시간이지만 지금은 공화국의 근본부터 다시 성찰해야 할 때다.

출처 : <경향신문>(2009.02.09.)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정체



신문을 펼쳐보니 새해 벽두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순으로 살벌한 기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대중문화의 복고열풍이 거센 탓인지 신문마다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기사들이 줄지어 실려 있다. 그중 하나가 90년대만 하더라도 자신의 소신대로 수사하는 강직한 검사 이미지로 존경받아왔던 임채진 검찰총장의 발언이다. 얼마 전 그는 검찰의 ‘신년 다짐회’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인하는 세력을 발본색원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 경제난 타개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라고 말했다.


요즘 들어 자주 보게 되고, 볼 때마다 불쾌해지는 것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 운운하며 국민들을 윽박지르는 광경이다. 언제부터인가 ‘반공’을 대신하여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시인양 울려 퍼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란 말의 정체가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은 헌법에 기초하고, 헌법에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시민의 ‘정치적 자유권’이 핵심

독재 권력과의 힘겨운 투쟁 끝에 얻어낸 자유이고 민주주의이기에 오늘날 대한민국 시민 대부분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장 소중한 정치적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왜? 그토록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며 헌법 제1조를 목 놓아 외치는 일이 생기는가. 왜 다른 한 편에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읊조리는 것일까. 국민의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이제라도 제헌정신으로 돌아가 그것을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다수의 지배’를 뜻하는 말이란 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동안 민주주의란 말이 너무 흔해진 탓인지, 아니면 그동안 민주주의를 대신해 국시 행세를 하던 ‘반공’의 약발이 냉전 해체 이후 다했다고 여겨진 탓인지 부지불식간에 반공을 대신해 ‘자유민주주의’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때의 ‘자유’란 당연히 자유주의의 자유를 뜻한다. 사실 헌법에도 나오지 않는 자유민주주의란 말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자유민주주의란 개념이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국민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이념이라는 뜻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항상 시장경제와 쌍을 이뤄 등장하는 자유민주주의란 독재와 싸우며 시민 대다수가 쟁취하고자 했던 표현과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아니라 시장의 자유만을 수식해주는 형용사에 불과하다고 느껴진다. 과연 누구의, 무엇을 위한 자유일까? 자유주의란 본래 전제왕정에 대항하는 도시의 시민들이 군주로부터 자신의 사유재산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운동이 발전된 개념이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사회주의이거나 공산주의가 아닌 것처럼 민주주의가 곧 자유주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혼동하는 터무니없는 사례는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20세기의 수많은 독재국가들이 시민적 자유권을 억압하면서도 재산의 매매와 투자처럼 시장에서 통용되는 권리를 잘 보호해온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국가들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물론 자유주의가 옹호하는 핵심적 자유권 없이 민주사회의 존립을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다른 개념이며, 민주주의를 곧 자유주의, 엄밀하게 말해 시장의 무한 자유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와 의도적으로 혼동시킬 때 시민사회의 건강한 정치성, 다수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본질은 주변으로 밀려나버리게 된다.

‘시장의 자유’로만 착각한 정부

시민의 정치적 자유보다 우선하는 시장의 자유를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만약 있다면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크게 훼손하는 세력이므로 먼저 이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검찰총장이 하고자 했던 말의 원래 의도는 그런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출처 : <경향신문>(2009.01.08.)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인천대교의 아름다운 교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인천 시민들에게 인천대교 상판 연결은 특별한 감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인천대교는 인천 앞바다를 가로질러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와 제2경인고속도로를 잇는 다리로,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할 예정이다.

인천대교는 왕복 6차로에 총길이 21.270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이며, 800m에 이르는 주경간 폭은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주탑의 높이는 국내 최고 높이인 63빌딩 보다 10m 낮은 230.5m이고, 선박이 주로 통항하게 될 교량과 수면의 높이는 74m에 달한다.

2009년 10월 개통을 목표로 마무리 작업 중인 인천대교는 동북아중심국가로 성장해나갈 대한민국과 인천시를 세계에 널리 알릴 상징물이다. 이 밖에도 인천대교는 지난 2005년 12월 영국의 건설 전문지 《컨스트럭션 뉴스》에 ‘경이로운 세계 10대 건설'의 하나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기술력과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각 구간마다 다양한 교량 형식을 접목시켰고,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을 도입해 공사기간을 대폭 단축시켰다. 진도7의 강진에도 버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당 72m에 달하는 강풍에도 안전한 다리로 건설되고 있다. 또한 10만 톤급 선박과의 충돌에 대비하는 교량 안전실험을 비롯해 교량으로는 세계 최대 재하하중인 3만 톤을 견딜 수 있는 실험도 통과했다.

그러나 우리가 인천대교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인천대교에는 인천시 정부와 시민사회가 중앙정부를 상대로 함께 싸워 얻어낸 소중한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지난 2004년 12월 12일 건교부와 해양부는 무려 8개월 여 동안 계속된, 당시 인천항 제2연륙교 주경간 폭 안전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애초에 건교부는 주경간 폭을 700m로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인천항을 이용하는 해운업체 모임인 인천항발전협의회와 인천항선주협회, 인천경실련, 새얼문화재단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선박의 대형화 추세를 고려할 때, 인천대교의 주경간 폭이 1,000m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교각 사이의 거리를 원 설계대로 700m로 할 경우 선박의 안전운항을 보장할 수 없으며 자칫 대형 사고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최소 1,000m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건교부를 비롯한 중앙정부 담당부처 장관의 최종 승인까지 난 사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중앙정부의 결정사항을 지방정부와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뒤집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천의 시민들은 피케팅이나 단식투쟁을 하는 대신 자발적으로 성금을 거둬 외국의 연구소에 연구 용역을 의뢰하는 등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건교부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새로운 대안운동을 추진했다.

실험 결과 주경간 폭이 700m였을 때, 두 대의 선박이 왕복 통항할 경우 충돌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중앙정부는 주경간 폭을 100m 더 넓히는 데 합의했다. 불과 4년 전의 일이지만 우리는 이 같은 인천시와 시민의 선택이 얼마나 올바른 것이었는지 최근 부산의 북항대교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2011년 공사가 완료되면 부산항의 한복판인 남구 감만동에서 영도구 청학동을 잇는 길이 3.331㎞, 왕복 4∼6차로의 해상 교량으로 설계된 북항대교는 주경간 폭이 540m, 수면 위 교량의 최대높이가 60m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정도 규모로는 최근 주종을 이루는 1만TEU급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은 물론 8천TEU급 선박의 통항도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이를 두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인천대교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탓에 부산항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대형 크루즈선의 통항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아 지적하고 있다.

최근 인천시 정부는 배다리 관통도로문제를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용기를 보이지 못해 시민사회의 외면을 당하고 있다. 인천시정부와 시민사회의 단합된 힘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는 인천대교의 아름다운 교훈을 잊지 말기 바란다.

<출처> : <인천일보>(2008.12.22.)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현실보다 무서운 교육은 없다


나는 고등학교 때 데모를 했다. 대단한 운동권이었던 적도, 민주화시위를 열심히 하기는커녕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기도 힘든데 나중에 들어보니 정보과 형사가 집까지 찾아와 학생이 요즘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후일담이긴 하지만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등골이 오싹했다. 주민등록증에 빨간 두 줄이 그어지는 악몽까지 꿨으니 말이다.

나는 남들보다 특별할 것 없는 고교 시절을 보냈지만 그 중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일은 국민윤리 시간에 선생님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해서 교무실까지 끌려간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히 겁이 없었거나 눈치 없는 학생이었다. 국민윤리 수업 시간 중에 남북한의 통일 방안에 대해 공부했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북한에 제의한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보다 북한이 제시한 고려연방제가 통일 방안으로 좀더 적합해 보인다며 선생님께 되물어 봤기 때문이다.

배운지 오래되어 지금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지만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은 인구 비례로 투표해서 단일국가를 이루자는 통일방식이고, 북한의 고려연방제는 남북한이 일단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여 느슨한 연방제 방식으로 갔다가 나중에 통일하자는 주장이라고 내 나름대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국민윤리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서 그렇게 단순화시켜 외웠었다. 선생님께 되물어 봤던 이유도 대단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단순히 그런 의도였을 뿐인데 선생님은 귓불까지 붉게 달아오르더니 버럭 성질을 냈다. 아마도 그 무렵 대학생들이 선량한 고등학생들까지 부추겨 이념투쟁의 도구로 삼는다는 신문 보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이 성질을 내자 아이들이 덩달아 선생님께 야유를 보냈고, 아이들의 눈치 없는 호응 덕분으로 나는 수업 중에 교무실까지 끌려 내려갔다. 교무실을 박차듯 들어간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도 들으라는 듯 ‘이 녀석이 고려연방제가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보다 낫다고 내 수업 중에 그렇게 말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도 당시는 1988년이었고, 교무실에서는 올림픽 축구 중계가 한창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축구 중계 중에 벌어진 불상사에 대해 별로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고, 2학년 때 윤리과목을 담당했던 다른 선생님이 ‘쟤는 그런 애 아니에요.’라고 말해준 덕분에 그 일은 학창시절을 추억하는 나만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학년별, 학급별로 나뉘어 음악실로 모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어두컴컴한 음악실의 불편한 의자에 줄줄이 앉자 잠시 후 불이 꺼지면서 동영상이 나왔다. 아마도 제목이 ‘삼민투(三民鬪)의 정체와 위험’이란 관제홍보물이었던 것 같은데, 영상이 끝나자 우리 학교 선생님이 아닌 외부강사가 나와서 ‘민족통일, 민중해방, 민주쟁취’라는 삼민투의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한참동안 매우 열띤 강의를 토해냈다.

고3인데 대학진학은 영 어려울 것 같았던 나와 몇몇 친구들은 부족한 수면 시간을 채우느라 고생하는 범생이 친구들과 달리 그 강연을 매우 진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우리들끼리는 삼민투의 이념이 꽤나 그럴 듯하고 심지어는 멋있기까지 하다고 여겼다. 마치 조선 시대 활빈당이 부활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그 강연을 졸지 않고 열심히 들었던 나 같은 아이들은 죄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 시간마저 아껴가며 졸았던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들어갔다.

나는 재수한답시고 순대국밥 집에서 소주만 축내던 시절, 고등학교 때 4.19는 의거고, 5.16은 혁명이며, 광주는 사태라고 달달 외우던 아이들, 내가 역사교과서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책이라며 권해주던 금서(禁書)들은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며 거들떠도 보지 않던 친구들이 대학에 가자마자 모두 운동권이 되어 나타났다. 요즘 문제가 되는 좌편향 역사교과서 논쟁이나 이념강연 논란을 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그 시절이 생각났다. 뉴라이트들은 너무 일찍 연로해져서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인데 이념교육이든 의식화학습이든 현실보다 무서운 교육은 없다.

출처 : <경향신문>(2008년 12월 11일)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시민 - 시민운동 - 시민단체



경제위기로 시민들의 후원이 줄어들면서 시민단체들은 운영에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활동가들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경제위기 보다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다.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대표적인 시민단체 중 하나인 환경운동연합의 회계부정사건이 터지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도 있다. 어떤 이들은 최근의 사건들을 정권 차원의 시민단체 길들이기로 보기도 하고, 몇몇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문제의 원인은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데 있다.

시민단체들에 대해 시민 일반이 느끼는 문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오던 것들이다. 우선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다. 시민단체들은 운동에만 집중한 나머지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운동을 기획하지 못했고, 시민들은 후원만 할 뿐 단체의 활동과 운영 등 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 원인은 비정부·비영리기구를 표방하고 나선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음으로써 시민단체의 비정부성이 훼손된다는 의심이다. 사실 시민단체의 재정관리가 문제된 지점도 본의든 아니든 지난 정권들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시민운동에 좀더 편한 환경에서 시민운동이 권력과 자본에 의해 순치된 측면이 적지않다. 거버넌스(governance)의 영역은 반정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단체의 지향에 따라 정부 지원을 받는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정부정책의 합리적인 수립과 집행을 감시한다는 점에서 정부와 시민단체 사이에는 일정한 긴장관계가 형성되어야만 한다. 국제앰네스티 같은 NGO들이 각국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대개의 정부지원이란 경상비가 아닌 사업보조금 형태로 지불되므로 시민단체들은 일부러라도 사업을 벌여야 하고, 사업을 벌이는 만큼 경상비 지출은 늘어나게 되어 있는 구조다. 한편으론 정책수립 및 집행자를 감시하고, 다른 한편으론 각종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시민단체의 독립성은 물론 정당성과 도덕성마저 훼손될 수 있다.

NGO·NPO라고 하는 시민단체가 의사회나 약사회 같은 이익단체와 변별되는 지점은 시민단체가 특정한 이익집단이 아닌 시민이라는 불특정다수를 위해 자발적으로 구성된 시민들의 참여와 후원을 통해 시민사회의 공공선을 증진시키는데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출현하기 시작한 시민운동은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정부의 합리적인 정책수립과 정책수행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카운터 파트너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시민운동은 대의민주주의 정치 활성화와 기업감시 같은 공공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국가가 스스로 감시할 수 없는 영역을 감시하고, 국가가 앞서 하지 않는 일을 주창하고, 국가 기능의 미진한 부분을 보강하고, 혁신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런 역할과 의미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상근활동가들은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활동비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평생 시민운동가를 꿈꾸다가 현장에 투신한 이들조차 몇년을 버티기 어렵다. 능력있고 전문적인 활동가는커녕 업무를 분담해줄 신규인력을 교육시키고, 훈련할 인력 재생산구조마저 없다보니 깨끗하고 투명한 회계관리는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다. 과거에 비해 기부문화가 발전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도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엄격한 회계관리를 받는 비영리법인 대신 내부규정에 따라 운영되는 임의단체 형태이다.

최근의 사건들로 인해 시민단체의 후원을 중단하려는 마음을 먹은 시민들에게 한 가지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시민단체의 실패는 시민운동가, 시민단체만의 실패가 아니라 동시에 시민사회의 실패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우선 시민운동 스스로의 냉철한 자기반성과 혁신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운동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 없이는 이같은 위기를 극복할 길도 없기 때문이다.

출처 : <인천일보>, 2008. 11.17.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희망의 교육학 /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9월


희망을 말하는 것이 두려운 시절입니다. 거짓된 희망보다는 진실한 절망에서 출발하자고 스스로 되뇔 때마다 과연 나의 절망은 희망보다 진실한지 반문해봅니다. 아시아의 희망,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범적으로 성취한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살아가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우리는 민주화 10년의 경험과 자존심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남보다 더 잘 먹고 잘 살자는 약육강식의 살벌한 논리 앞에서 공동체적 이상과 양심은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과거 우리는 광야에서 신을 발견했지만 신을 죽였고, 계몽을 통해 이성을 깨우쳤지만 근대를 거치며 이성을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역사가 우리를 심판하리라 했지만 역사의 발전은 더 이상 없다며 진보의 시계를 멈춰버렸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바깥을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신념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오늘’이 아닌 보다 나은 ‘내일’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모럴(moral)이 사라졌다는 것, 저는 그것이 당장의 경제위기보다 더 큰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남몰래 펼쳐보게 되는 책이 파울로 프레이리의 『희망의 교육학』입니다. 프레이리 말년의 저작인 이 책은 그가 평생 민중교육자로 살아오면서 체험하고 느낀 성찰을 담은 수필집입니다. 그는 ‘피억압자의 해방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해방을 추구하는 존재로써, 해방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함으로써 쟁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비판적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한줌의 희망’이라 말합니다. “민중이 자신의 언어로 억압자의 세계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상상하도록 하는 것!”



출처 : <책읽는 경향> 파울로 프레이리 - 희망의 교육학 <경향신문>(2008.10.27.)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인천을 평화통일도시로

한 달쯤 전인 지난 9월 8일 인천발전연구원 주최로 “죽산의 평화통일론과 ‘평화통일도시 인천’의 지향”이라는 제목의 작은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오랫동안 죽산 조봉암 선생을 연구해온 이현주 박사, 동국대 이철기 교수, 인천학연구원의 김창수 박사가 발제자로 나섰고, 인천의 주요시민문화단체 인사 7명이 토론자로 함께 했던 행사였다.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조만간 인천에서 개최될 도시축전과 아시안게임을 위해 찾아올 세계인들에게 우리 인천이 보여줄 비전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이었다. 속된 말로 ‘명품도시 인천’이란 슬로건으로 세계인들 앞에 서기엔 ‘쪽 팔린다’는 말이었다. 인천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을 설득하고, 더 나아가 감동을 주기 위해선 그만한 명분과 보편성을 가진 비전이 제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토론회에서 김창수 박사는 “외국인들에게 인천은 ‘인천상륙작전’의 현장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으며, 외지인들에게는 1950년 9월 15일 단 하루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이 2000년 인천역사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인천시립박물관보다 더 크고 웅장하게 다가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때마침 다음날인 9일엔 58주년을 맞이한 인천상륙작전을 재현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치러졌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사업은 국가가 존속하는 한, 존속하기 위해서라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가와 군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함이란 사실 또한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륙작전 당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희생된 민간인 피해자들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무관심했다.

외지인들이 즐겨 방문하는 인천의 명소 중 한 곳인 월미공원 입구에는 1,000여 일이 넘게 ‘월미도 미군폭격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유가족들이 농성 중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기 5일 전인 1950년 9월 10일 미군 폭격기 43대가 월미도 지역에 93개의 네이팜탄을 투하해 이 일대를 초토화하면서 최소한 228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당했고, “이들 대부분이 부녀자와 노인이었으며 지금까지 이러한 사실을 거론하는 것이 한미 동맹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기시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어떤 이들에겐 인천이 평화통일의 중심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평화를 말하는 것은 쉽지만 평화는 언제나 우리에게 너무 먼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늘 전쟁과 함께 했고, 평화보다 전쟁을 먼저 기념하는데 익숙하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대규모 군사작전이 벌어진 곳,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곳이지만 인천엔 전황을 역전시킨 작전과 지휘관을 기념하기 위한 동상과 웅장한 전쟁기념관만 있지 어디에도 온 가족이 함께 평화를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곳은 찾을 수 없다.

열전과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혹독한 피해를 입은 곳이 인천이었다. 그렇기에 인천  출신의 정치인 죽산 조봉암 선생은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목숨을 걸고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맞서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던 것인지 모른다. 인천이야말로 시대를 앞선 평화통일론의 산실(産室)이었다. 경제발전이란 측면에서도 인천은 그 어느 지역보다 평화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곳이다. 냉전의 종식으로 황해가 다시 열리고 대중국 교역의 일번지가 되면서 인천의 물동량이 급속하게 증대되었고, 평화의 공간이 열리면서 인천은 비로소 영종, 강화, 해주, 개성을 잇는 경제적 대사업권인 황해벨트를 꿈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천은 한반도 평화통일도시로, 나아가 아시아의 평화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와 현실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 작은 출발이 인천에 평화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을 ‘평화통일도시’로 탈바꿈시키자는 주장, 이 땅에서 희생당한 주민들의 목소리에 우리 인천시 정부와 시민사회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준다면 인천은 전쟁이 아닌 평화로 세계인들에게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인천일보> 2008.10.13.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전버튼 1 2 3 4 5 6 7 8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