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소나기


- 허수경



재실댁은 아파트 파출부 그 집 아재 김또돌 씨는 하수구 치는 일을 했제 야반도주 고향을 베린 지 어언 십여 년 하루떼기 벌이에 이골은 났지만 날이 갈수록 왜 이리 쪼그라만 드는 살림 단칸 월세방에 내외간이 딴이불 거처를 하는데 김또돌 씨 술이라도 한잔 들이키는 날에는 이불 싸가지고 마루에 누웠제 옌장 마누라쟁이라고 암만 고달퍼도 할 일은 해야제 맨날 돌아누우니 살맛이 나 살맛이

쓴 담배만 뻑뻑 빨다 잠이 들었는데 이쿠 소나기야 마루까지 치받고 후둑거리는 소나기 피해 우당탕탕 챙겨 방으로 들어왔는데 소나기 핑계로 들어와 누웠는데
웬일로 재실댁이 먼저 안겨오지 않나 소나기 한번 장하데이 이녁도 장하게 한번 들어오소 김또돌 씨 소나기처럼 황소처럼 달려들었제 임자요 섭했지예 몸이 천근 같으니 내사 우찌 살붙일 정이 나것소
재실댁 마른 가슴 더듬다 잠이 든 김또돌 씨는 빚에 몰려 쫓겨온 고향 짼한 고향 보리밭에 또 한 번 재실댁을 넘어뜨리는 꿈을 꾸었지러 별 숭숭 말짱한데 도시 산동네 하루벌이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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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장 마누라쟁이라고 암만 고달퍼도 할 일은 해야제 맨날 돌아누우니 살맛이 나 살맛이'
'이녁도 장하게 한번 들어오소'
'임자요 섭했지예 몸이 천근 같으니 내사 우찌 살붙일 정이 나것소'


정(情) 중에 제일은 '살정'이라 했던가, 그런데 먹물잽이들은 이런 말 쓰면 촌스럽다거나 뭔가 음탕, 음란하게 여겨지는지
좀 유식하게 말해 꼭꼭 '스킨십'이란다(그런 제약이 더 음란하구만). 허수경 시인의 "밤 소나기"는 도시 산동네 하루벌이 부부의 일상 중 한 국면만을 살짝 옮겨 우리들 눈 앞에 살갑게 묘사한다. 굳은 살 박힌 묵은 정을 부끄럽게 일깨운다. 부럽다. 아마 그런 까닭에 처음 허수경 시인이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 시인의 입담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시인이 이미 무수한 삶을 경험한, 노련한(?)  연배의 시인일 거라고 그렇게 넘겨짚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헐, 그건 그렇더라도... 허수경 시인은 어찌 젊은 나이에 저런 것들까지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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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