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童話)

- 글로리아 밴더빌트(1924~ )

옛날 한 아이는
날이면 날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르기를
바라면서 살았답니다


Fairy Tale
- Gloria Vanderbilt

There once was a child
living every day
expecting tomorrow
to be different from today





글로리아 밴더빌트는 1924년 철도왕 윌리엄 밴더빌트의 딸로 태어났다(아는 사람들은 밴더빌트 가문이 쌓아올린 이 엄청난 부가 노상강도귀족의 시대, 혹은 금빛도금의 시대라 불렸던 시대의 민중들이 흘린 유혈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밴더빌트 가문은 미국 남부의 하버드라 불리는 밴더빌트 대학을 설립할 만큼 미국의 귀족 집안이었다. 글로리아가 두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사망하자 400만 달러의 유산을 남겼다. 그러나 어머니와 고모 사이의 재산상속 다툼 끝에 결국 고모들과 살게 되었다. 재판에서는 어머니의 품행이 문제가 되었다.

유년 시절을 유럽에서 보내는 동안 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를 양육했던 고모들은 글로리아 밴더빌트가 사랑에 빠질 때마다 밴더빌트라는 성(姓)을 버리고 하찮은 성씨가 되려하느냐며 조소하고 괴롭혔지만 그녀는 네 번 결혼했다. 두 번째 남편은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세 번째 남편은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 네 번째 남편은 작가 와이엇 쿠퍼 였다. 그녀는 이외에도 배우 말론 브란도,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 등과도 염문을 뿌렸다.

미술을 공부한 뒤 유화와 파스텔화 등으로 첫 개인전을 열자 사람들은 그녀의 전시를 ‘호사 취미’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카드를 비롯한 팬시상품으로 유명한 홀마크사에서는 그녀의 디자인 감각을 높이 평가해 그녀의 디자인 콜렉션 ‘밴더빌트 디자인’을 사들여 팬시상품에 사용했고, 곧이어 직물디자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79년에는 ‘글로리아 밴더빌트 디자이너 진’을 출시하여 성공을 거뒀다.

재벌가 상속녀로서의 안락하고 부유한 삶을 대신하여 그녀는 시를 썼고,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 작가 와이엇 쿠퍼와 네 번 결혼했다. 와이엇 쿠퍼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하나가 CNN의 메인 앵커 앤더슨 쿠퍼다. 그녀의 삶을 다룬 TV시리즈 <글로리아 밴더빌트 이야기(Little Gloria… Happy at Last, 1982)>는 에미상을 타기도 했다. 그녀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태어났고, 동화의 주인공처럼 고난을 겪었으며 매일 매일을 소망한 것처럼 다르게 살았다. 그래서 과연 소녀는 '행복했을까?'라고 묻는 건 어쩌면 바보 같은 질문일 게다. 인생이 추구해야 하는 미덕이나 목적이 모든 사람에게 같을 순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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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