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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의 평화통일론과 ‘평화통일도시 인천’의 지향 - <인천발전연구원>(2008.9.8) 토론회 일시 : 2008. 9. 8. 장소 : 인천발전연구원 2층 대회의실 주최․주관 : 인천발전연구원 토론문 먼저 인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어윤덕 원장님과 인천발전연구원이 인천이 배출한 정치인이자 평화통일론의 선구자였던 죽산 조봉암 선생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오늘의 이 토론회를 마련해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는 지난 2007년 9월 대통령소속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195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당한 조봉암 선생의 명예회복을 결정했으나 그 이후의 후속작업들의 진행이 미진한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천을 대표하는 시민재단으로서 새얼문화재단은 그동안 죽산 조봉암 선생을 명예를 회복하고, 선구적인 평화통일론을 기리는 일련의 사업들을.. 더보기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우장춘 박사 일대기) - 쓰노다 후사코 | 오상현 옮김 | 교문사(1992)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우장춘 박사 일대기) - 쓰노다 후사코 | 오상현 옮김 | 교문사(1992) '우장춘 박사'란 이름 석자를 떠올리면 머리속에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건 '씨없는 수박'이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오랫동안 그렇게 암기되었기 때문이다. 선입견이란 건 그래서 무섭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쓰노다 후사코는 우장춘 박사가 씨없는 수박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수박을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은 일본 교토대학의 기하라(木原均)임에도 불구하고 우장춘 박사라고 한국인들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우장춘 하면 '씨없는 수박', '씨없는 수박'하면 우장춘이라고 하면서, 이 수박은 늘 그와 일체가 되어 거론되고 있다. 일반 대중은 우장춘을 '씨없는 수박'의 개발자로 믿어 의심.. 더보기
예술의 비인간화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미진사(1988) 예술의 비인간화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미진사(1988) "나는 단순히 난파자(難破者)의 사상을 믿는다. 나는 난파한 극적인 밑바닥에서 태어난 사상을 믿는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15~16년 전의 나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어떤 인간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대중의 반역"이라는 중요한 고전을 토해낸 스페인 출신의 학자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고, 당시엔 민중의 개념(정치적으로는 평등을 좀더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하는)이 머리 속에 제법 확고하게 들어있었으므로 가세트의 이 책들도 그와 관련된 무슨 책들이 아닐까 싶어 구입한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코미디에 가까운 구입동기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표적인 반대중주의, 반민중주의의 기수격인 사람으로 엘.. 더보기
이생진 - 사람 사람 - 이생진 어떤 사람은 인형으로 끝난다 어떤 사람은 목마로 끝나고 어떤 사람은 생식으로 끝난다 어떤 사람은 무정란으로 끝나고 어떤 사람은 참 우습게 끝난다 * 율곡 이이는 에서 배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는 줄도 모르고 허황되게 뜻을 높고 멀리하여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긴다. 특별한 사람에게 미루고 자기 자신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안일하게 생활한다면 어찌 불쌍하지 않으랴." 이생진의 시 은 진술로만 이루어진 시다. 진술로 이루어진 시는 교훈적인 느낌이 강한데, 이 시는 서글프다. 그 어떤 사람이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시(詩)의 기본은 '묘사'다. 묘사만으로도 시는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시를 처음 써보는 이.. 더보기
비잔티움 제국사 324-1453 |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 김경연 한정숙 옮김 | 까치글방(1999) 비잔티움 제국사 324-1453 |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 김경연 한정숙 옮김 | 까치글방(1999) 천년제국 : 비잔티움 324-1453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역사 공부를 즐기는 편이다. 그간 역사를 공부하면서 내가 깨우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제국은 스스로의 힘을 파악하지 못할 때 가장 강성하고, 경계를 세우는 순간부터 몰락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종말론적인 기독교에서는 종종 천년왕국의 도래를, 불교의 미륵신앙처럼 이야기한다. "천년왕국"은 "신약성서"의 '요한의 묵시록' 제20장에 적힌 문장에 대한 해석에서 비롯된 것으로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에 그리스도가 지상에 재림하여 1,000년간 통치한 뒤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해석이다. 신앙으로서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그 '천년'.. 더보기
깃발 없는 자들의 고독한 촛불을 넘어 - <실천문학> 2008년 가을호(통권91호) 깃발 없는 자들의 고독한 촛불을 넘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위와 집회가 다시 출현하리란 예상은 누구나 했지만 100일도 안 된 시점에서 이처럼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 만들어지리라고는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서울 시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살수차가 뿜어대는 최루액에 범벅이 되어 도망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경 방패에 내리 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헌법 제1조”를 노래하고 컨테이너 장벽을 ‘명박산성’이라 조소하지만 만리장성 같은 장벽, 체제권력을 넘지 못하고 돌아서는 무기력을 반복하는 두려움이었을까. 촛불의 의미는, 촛불 그 이후엔 무엇이 있을까. 대중지성, 촛불시위는 웹2.0의 돌연한 사건인가 “위대한 피플 파워”란 국.. 더보기
욕심 (欲心/慾心), 점(點), 길(路) ‘욕심’이라는 말을 뜻하는 한자어는 두 가지 모두 표준어로 쓰인다. 하나는 ‘하고자 할 욕(欲)’을 써서 ‘欲心’이고 다른 하나는 ‘욕심, 욕정을 뜻하는 욕(慾)’을 써서 ‘慾’이다. 세속도시에서 신선처럼 살다간 화가 장욱진(張旭鎭)은 늘 입버릇처럼 “나는 심플하다. 때문에 겸손보다는 교만이 좋고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뒤이어 나오는 격식과 겸손이 하나의 구(句)를 이루고, 교만과 소탈이 역시 또 하나의 구를 이룬다.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나는 심플하다 그러므로 격식을 갖추느라 꾸미는 겸손보다 소탈한 교만이 좋다’는 뜻이 된다. 장욱진의 발언이 지닌 핵심은 단순성(simplicity)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여러 장의 황소 그림을 그려놓고, 자신이 대상을 단순화시키는 과정을 설.. 더보기
‘죽임’이 아닌 ‘살림’의 정치 - <인천일보> (2008.09.01.) ‘죽임’이 아닌 ‘살림’의 정치 정권교체기마다 두드러지는 현상 중 하나는 TV드라마 중에서 특히 ‘사극’이 큰 인기를 얻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던 1998년엔 드라마 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던 2003년엔 드라마 이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엔 드라마 과 그 뒤를 이어 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정권교체기에 사극이 특히 인기를 얻는 까닭은 비록 드라마의 형태이지만 이를 통해 대중의 정치적 열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에선 ‘평화적 정권교체’를, 에선 ‘외세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통일의 대업’과 ‘지역화합’에 대한 바람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의 사극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정사(正史)보다는 야사(野史)를 주로 다뤘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었.. 더보기
손택수 - 꽃단추 꽃단추 - 손택수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개 단추가 많다 꼭꼭 채운 단추는 풀어보고 싶어지고 과하게 풀어진 단추는 다시 얌전하게 채워주고 싶어진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난폭하게 질주하는 지퍼는 질색 감질이 나면 좀 어떤가 단추를 풀고 채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는 건 낮과 밤 사이에, 해와 달을 금단추 은단추처럼 달아줄 줄 안다는 것 무덤가에 찬바람 든다고, 꽃이 핀다 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 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았다 손택수, 『창작과비평』, 2009년 봄호(통권 143호) * 시(詩)는 어째서 행과 연을 구분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리듬(律) 때문이다. 그럼, 시에서 리듬이 왜 중요한가? 그건 시가 본래 노래였기 때문이다... 더보기
자발적 복종 -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 박설호 옮김 | 울력(2004) 자발적 복종(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 -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 박설호 옮김 | 울력(2004) “여기서 나는 다만 하나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려고 한다. 과연 어째서 그렇게 많은 마을과 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독재자의 전제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재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부여한 그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민들이 그를 참고 견디는 만큼, 독재자는 그들에게 동일한 정도의 해악을 저지른다. 따라서 인민들이 모든 해악을 감수하지 않고, 무조건 참고 견디는 태도를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독재자는 인민들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인민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대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