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날 때
The Night has a Thousand Eyes



- 프란시스 윌리암 버어딜론
(Francis William Bourdillon)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졌지만
낮은 하나뿐
하지만 밝은 세상의 빛은 사라진다
저무는 태양과 함께

마음은 천 개의 눈을 가졌지만
가슴은 하나뿐
하지만 한평생의 빛은 사라진다
사랑이 끝날 때에는


The night has a thousand eyes,
And the day but one;
Yet the light of the bright world dies
With the dying sun.

The mind has a thousand eyes,
And the heart but one:
Yet the light of a whole life dies
When love is done.



*

저는 이 시를 중학생 때 알았는데 그때는 별 유치한 연애시가 다 있다 했다그런데 정말 사랑이 끝날 때, 비로소 이 시가 천하에 둘도 없는 명시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평생의 빛이 사라지는 그 느낌... 사랑이 끝날 때에는 정말 그렇더군. 절망이나 슬픔과 같이 단순한 말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바로 그 감정.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졌다는, 그래서 사랑은 보랏빛인지도 모르겠다.

보라색이 의미하는 '고귀함, 숭고, 희생' 등등의 의미가 된 까닭은 옛날 자연에서만 염료를 구할 수 있던 시절에는 천연적인 염료 중에 보랏빛을 만들기가 가장 힘들었기 때문이란다. 심해의 깊은 속에 사는 조개에서만 구할 수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귀족들의 옷을 염색하기 위해 조개로부터 보랏빛 염료를 채취하려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기 때문에 보랏빛에는 '희생'의 의미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사랑이 끝날 때, 마음엔 빛이 사라진다. 그리고 세상은 모든 색을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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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듣는 아침...
불현듯 브레히트의 이 시가 읽고 싶어졌다. 가끔 전혜린이 잘 이해되는 밤이 있고, 그리고 아침이 있고, 또 한낮이 있다. 과거 자연과학자들은 남성이, 백인이 타인종, 여성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었다. 여성은 생태학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며, 본래 자연계의 다른 생물들을 살펴보더라도 여성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그런 것들을 입증해 내기 위해 노력했다. 흑인종은 어째서 대뇌가 백인 남성에 비해서도 작은가? 혹은 백인 여성에 비해서도 작은가? 대뇌의 크기가 마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라도 될 수 있는 양, 초창기 IQ검사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지능지수가 높게 나오는 일이 빈발하자 IQ검사의 문항 자체를 남성에게 유리한 것으로 고친 적도 있다.

사람들은 수학적 진실 혹은 진리를, 과학에도 고스란히 대입시켜 과학도 역시 진실, 진리에 가깝다는 믿음을 오래도록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도 인간의 일이니 어찌 실수가 없고, 감정이 없으며, 그릇된 판단이 없을까. 오늘날 여성시대 혹은 여성의 입김을 의식한, 아니 전복적인 이라고 해두자. 과학자들은 이젠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한 생물학적 진실을 찾아 헤맨다. 부디 그 모든 것이 진실이길 바란다. 나역시 오래도록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한 존재일 것이란 추측을 해왔고, 그런 추측에 과학적인 논리를 제시하고 싶어서 생물학의 몇 가지 근거를 들이대곤 했다. 가령, 어려서 양성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 남성을 제거한 경우가 훨씬 생존율이 높다거나 훗날 성장해서도 성징이 나타날 때도 정상적인 성감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요사이 내 생각은 그렇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생물학적인 우월성을 논하려는 과학들은 과거 남성중심이 과학이 유행에 불과한 것이자, 필연적으로 우생학이 되는 것처럼 이도 그런 혐의가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날 아침...
나는 불현듯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저 싯구가 떠올랐다.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브레히트는 소문난 오입쟁이이자, 바람둥이였다. 그의 보기 드문 연애시는 그렇게 입에 닳고 닳은 허구였을까? 남자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은 "당신이 필요해요"다. 우습지 않은가? 필요라니... 소중도 아니고.... 어쨌든 이 남자는 그래서 말년 병장처럼 떨어지는 빗방울도 두려워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필요성을 충족시켜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맞아 죽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에...

그러다 문득 내 생각이 구체적인 누군가에게 미쳤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 내가 필요하다고 절박하게 외칠 수 있는 단 한 명의 사람,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말을 건네 보았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때 나는 느꼈다. 아, 이 .... 이기적인 감정.... 난 당신이 필요해. 필요하다구. 필요해... 정말.... 그 상대방의 이기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어쩌면 "사랑"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날 깍아내고, 희생시켜서라도 너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싶다는 그 마음이 어쩌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더이상 날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으마. 그 마음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널 위해 날 사랑하마. 너로 인해 내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자 불현듯 눈물이 고였다.

나 당신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아니 당신 때문에.... 당신 덕으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군요.... 하고 말이다.

사랑이 과학일 수 있을까? 과학은 사랑일 수 있어도 사랑은 과학일 수 없을 것 같다. 이때 사랑은 과학보다 큰 학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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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이유

- 체 게바라

굳건한 이념은 고도의 기술도 무너뜨릴 수 있다
전쟁에 충실한 미군들의 최대 약점은
그들의 맹목적인 전쟁관에 있다. 그들은
자기들과의 전쟁에서 죽은 자들만 존경할 뿐이다
그런 자들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단지 무모한 희생만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오로지 투쟁만이 미국을 물리칠 수 있다
이 투쟁은
단지 최루탄에 대항하여 돌을 던지는 시가전이나
평화적인 총파업이어서는 안 된다
또한 괴뢰정부가 흥분한 민중에 의해
불과 며칠 사이에 붕괴되게끔 하는 것
그런 싸움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 투쟁은 장기적이어야 하며,
또 적들로 하여금 충분히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

이 투쟁의 전선은 게릴라들이 잠복하는 곳,
바로 그곳이다
도시의 중심,
투사들의 고향,
농민들이 학살당하는 곳
적들의 포화에 파괴된 마을과 도시들이
바로 전선인 것이다

적들이 우리로 하여금 싸우지 않을 수 없도록 하였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오직 싸울 준비를 하고
그 싸움을 시작할 결단만 내릴 뿐이다

*

체 게바라 시집인 <먼 저편>을 구해서 읽고 있는 중에 문득 "전쟁에 충실한 미군들의 최대 약점은 그들의 맹목적인 전쟁관에 있다. 그들은 자기들과의 전쟁에서 죽은 자들만 존경할 뿐이다" 라는 구절이 눈에 띄어 옮겨 본다.

과연 그들은 죽은 자들만 존경한다. 살아있는 자들은 모조리 위험하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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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에게

- 베르톨트 브레히트

I

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없는 언어는 어리석게 여겨진다. 주름살 하나없는 이마는
그가 무감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웃는 사람은
단지 그가 끔직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
저기 한적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을
곤경에 빠진 그의 친구들은
아마 만날 수도 없겠지?

내가 아직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믿어 다오. 그것은 우연일 따름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나에게 배불리 먹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우연히 나는 해를 입지 않았을 뿐이다.(나의 행운이다하면, 나도 끝장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먹고 마시라고. 네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고!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고,
내가 마시는 물이 목마른 자에게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내가 먹고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먹고 마신다.
나도 현명해지고 싶다.
옛날 책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쓰여져 있다.
세상의 싸움에 끼어 들지 말고 짧은 한평생
두려움 없이 보내고
또한 폭력 없이 지내고
악을 선으로 갚고
자기의 소망을 충족시키려 하지 말고 망각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을 나는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II

굶주림이 휩쓸고 있던
혼돈의 시대에 나는 도시로 왔다.
반란의 시대에 사람들 사이로 와서
그들과 함께 분노했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싸움터에서 밥을 먹고
살인자들 틈에 누워 잠을 자고
되는대로 사랑에 빠지고
참을성 없이 자연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의 시대에는 길들이 모두 늪으로 향해 나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도살자들에게 나를 드러내게 하였다.
나는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내가 없어야 더욱 편안하게 살았고, 그러기를 나도 바랬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힘은 너무 약했다. 목표는
아득히 떨어져 있었다.
비록 내가 도달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보였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III

우리가 잠겨 버린 밀물로부터
떠올라 오게 될 너희들.
부탁컨대,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너희들이 겪지 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생각해 다오.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애썼지만
우리 스스로 친절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 다오.


An die Nachgeborenen
- Bertolt Friedlich Eugen Brecht (1898-1956)

I

Wirklich, ich lebe in finstern Zeiten!
Das arglose Wort ist töricht. Eine glatte Stirn
Deutet auf Unempfindlichkeit hin. Der Lachende
Hat die furchtbare Nachricht
Nur noch nicht empfangen.

Was sind das für Zeiten, wo
Ein Gespräch über Bäume fast ein Verbrechen ist
Weil es ein Schweigen über so viele Untaten einschliesst!
Der dort ruhig über die Strasse geht
Ist wohl nicht mehr erreichbar für seine Freunde
Die in Not sind?

Es ist wahr : ich verdiene noch meinen Unterhalt
Aber glaubt mir : das ist nur ein Zufall. Nichts
Von dem, was ich tue, berechtigt mich dazu, mich sattzuessen.
Zufällig bin ich verschont.(Wenn mein Glück aussetzt, bin ich verloren.)

Man sagt mir : Iss und trink du! Sei froh, dass du hast!
Aber wie kann ich essen und trinken, wenn
Ich dem Hungernden entreisse, was ich esse, und
Mein Glas Wasser einem Verdurstenden fehlt?
Und doch esse und trinke ich.

Ich wäre gerne auch weise.
In den alten Büchern steht, was weise ist:
Sich aus dem Streit der Welt halten und die kurze Zeit
Ohne Furcht verbringen
Auch ohne Gewalt
auskommen
Böses mit Gutem vergelten
Seine Wünsche nicht erfüllen, sondern vergessen
Gilt für weise.
Alles das kann ich nicht:
Wirklich, ich lebe in finsteren Zeiten!

II

In die städte kam ich zur Zeit der Unordnung
Als da Hunger herrschte.
Unter die Menschen kam ich zu der Zeit des Aufruhrs
Und ich empörte mich mit ihnen.
So verging meine Zeit
Die auf Erden mir gegeben war.

Mein Essen ass ich zwischen den Schlachten
Schlafen legte ich mich unter dir Mörder
Der Liebe pflegte ich achtlos
Und die Natur sah ich ohne Geduld.
So verging meine Zeit
Die auf Erden mir gegeben war.

Die Strassen führen in den Sumpf zu meiner Zeit.
Die Sprache verriet mich dem Schlächter.
Ich vermochte nur wenig. Aber die Herrschenden
Sassen ohne mich sicherer, das Hoffe ich.
So verging meine Zeit
Die auf Erden mir gegeben war.

Die Kräft waren gering. Das Ziel
Lag in grosser Ferne
Es war deutlich sichtbar, wenn auch für mich
Kaum zu erreichen.
So verging meine Zeit
Die auf Erden mir gegeben war.

III

Ihr, die ihr auf tauchen werdet aus der Flut
In der wir untergegangen sind
Gedenkt
Wenn ihr von unseren Schwächen sprecht
Auch der finsteren Zeit
Der ihr entronnen seid.
Gingen wir doch, öfter als die Schuhe die Länder wechselnd
Durch die Kriege der Klassen, verzweifelt
Wenn da nur Unrecht war und keine Empörung.

Dabei wissen wir doch:
Auch der Hass gegen die Niedrigkeit
Verzerrt die Züge,
Auch der Zorn über das Unrecht
Macht die Stimme heiser. Ach, wir
Die wir den Boden bereiten wollten für Freundlichkeit
Konnten selber nicht freundlich sein.

Ihr aber, wenn es so weit sein wird
Dass der Mensch dem Menschen ein Helfer ist
Gedenkt unsrer
Mit Nachsicht.


출전 : 한마당 출판사/브레히트 전집 시리즈 10권 브레히트 시론 <시의 꽃잎을 뜯어 내다>/이승진 편역/1997.1 초판


*



오늘 문득 1848년과 1871년, 1905년, 그리고 1968년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우리들의 1987년도 거기에 슬그머니 끼워본다.

브레히트의 시 <후손들에게>가 내뿜는 정서는 쇠잔한 것이다. 산에서 내려올 때 비로소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혁명의 퇴조기에 이르러서야 격변의 시절을 살아온 인간은 더 많은 것을, 더 잘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록 암울한 시대를 살아왔던 탓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브레히트는 그와 같은 변명 대신에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며 “우리 스스로 친절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 다오.

“관용의 세상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증오와 분노의 강을 건너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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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點)

- 파블로 네루다


슬픔보다 더 넓은 공간은 없고
피 흘리는 슬픔에 견줄만한 우주는 없다


*

때로 시는 ....
이렇다.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지만
가슴을 푹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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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픈 낮

- 파블로 네루다

헤아릴 수 없는 수난과 잿빛 꿈을 가진
창백한 겉옷을 입는다. 틀림없는 수행원.
혼자서 살아가는 쇠의 바람,
배고픔이라는 옷을 입은 하인.
나무 밑의 시원함 속에서,
꽃들에게 자신의 건강을 전해주는 태양의 정수 속에서,
황금 같은 내 피부에 쾌락이 찾아오면,
호랑이의 발을 가진 산호 유령인 당신,
장례의 시간, 불타는 결합인 당신,
내가 사는 이 땅을 정탐한다,
약간은 떨고 있는 당신의 달빛 槍을 가지고.

그 어느 날이건 텅 빈 정오가 지나가는 창문은
날개에 풍성한 바람을 갖게 되는 법.
광풍은 옷을 부풀리고 꿈은 모자를 부풀리고,
절정에 달한 벌 한 마리 쉬지 않고 타오른다.
그런데, 그 어떤 예기치 못한 발자국이 길을 삐걱대게 할까?
음산한 역의 저 증기는, 해맑은 저 얼굴은,
게다가, 이삭 실은 낡은 마차가 내는 저 소리는?
아! 흐느끼는 물결, 물결, 조각난 소금, 소금,
날 듯 흘러가는 천상의 사랑 시간,
이들 모두는 나그네의 목소리, 기다리는 공간을 가졌다.

걸어온 모든 길, 막연한 희망,
어둠과 뒤섞인 타고난 희망,
마음을 찢을 듯이 달콤한 현존,
맑은 결, 꽃의 모습으로 이루어진 날들,
나의 짧은 실존과 연약한 산물 뒤에 무엇이 남는 걸까?
나의 노란 침대, 부서진 나의 존재와
누가 같이 있지 않으며 동시에 함께 하지 않는 걸까?
튀려는 마음. 나는 밀대로 만든 화살을 갖고 있다.
연약한 심장 소리, 물로 된 끈질긴 소리는,
영원히 깨어지는 어떤 것처럼,
내 이별의 밑바닥을 지나가고,
나의 힘을 끄고 나의 비탄을 퍼뜨린다.

* 네루다가 사랑했던 여인 조시 블리스와 헤어진 뒤 읇은 사랑의 노래




같은 유럽에서 파생된 말이라도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서는 독특한 리듬을 느낄 수가 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시라는 것을 눈으로 읽기만 하는 것이 되고부터는 낭송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게 되었다. 요사이에도 가끔 아나운서나 성우들 혹은 인기몰이를 타고 연예인들이 낭송하는 시를 듣게 되는 일이 종종 있지만 어쩐지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깨끗하게 씻어내지 않은 것 같은 이물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도 낭송하는 것을 꼭 들어보고 싶은 시 중에 하나다. 이 시는 당연히 연시다. 그것도 아주 비탄으로 가득한.... 스페인 혈족의 피가 흐르는 심장은 이토록 뜨겁다. 마치 투우장에 들어선 검은 황소의 뿔처럼 힘차고 우뚝하다. 그리고 에로틱하다. 거친 호흡이 연상되고, 갈색 피부에서 흘러내리는 굵은 땀방울이 연상된다. 마치 시인이 직접 여인의 가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며 유방에 귀를 대고 심장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이 시는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동시에 소리로 들어야 한다. 분명 음악처럼 들릴 것이다. 이 순간, 시는 리듬이자 노래이고, 동시에 신음이며 호흡이 된다.

비바,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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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 체자레 파베세

지금은 도로가 펼쳐진 초원에 소년 하나
와서 놀곤 했어. 초원에는 맨발로
즐겁게 뛰노는 개구쟁이들이 있었지.
그들과 풀밭에서 맨발이 되는 건 즐거운 일.
멀리 불빛이 켜지던 어느 날 저녁 도시에서는
총소리가 메아리쳤고, 바람결에 무서운 난리 소리가
간간이 실려 왔었어. 모두들 침묵했어.
언덕 기슭에선 바람결에 실려 온 불빛들이
점점이 흩어졌지. 밤이 깊어지자
모든 건 빛을 잃었고, 졸리움 속에
신선한 바람만이 남아 있었어.

(내일 아침 소년들은 또다시 돌아다니고
아무도 난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감옥 안에는
말없는 노동자들이 있고, 누군가는 이미 죽었다.
길거리엔 핏자국들이 얼룩져 있다.
멀리 도시는 태양과 함께 잠이 깨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온다. 서로 얼굴만 바라본다.)
소년들은 초원의 어둠을 생각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어. 여자들마저
아무 말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어.
소년들은 이따금 계집애들이 놀러 오던
초원의 어둠을 생각하고 있었어. 어둠 속에서 계집애들을
울리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어. 장난꾸러기들이었지.
도시는 낮에는 즐거웠어. 저녁이 되면 말없이
멀리 불빛들을 바라보며 난리 소리를 들었어.

지금도 도로가 만나는 초원으로 소년들은
놀러 가곤 하지. 밤에도 마찬가지이다.
그곳을 지나가면 풀 냄새가 난다. 감옥 안에는
여전히 똑같은 사람들이 있고, 그때처럼 여자들은
아이들을 낳고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출전 : 체자레 파베세, 김운찬 옮김, 피곤한 노동, 청담사, 1992년



*

지난 92년 이 책을 막 구입했을 때...
무슨 생각에서인지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이 책의 간지에 마구 낙서를 해둔 게 있었다. 지금 읽어보니 다소 낯 간지러운 글이긴 하지만 옮겨 본다.

그가 말한다.
"피곤해"라고....
머리칼을 고단한 몸짓으로 쓸어 올리지.
사랑하고, 이해하고, 지친 몸을 이끈다.
아주 가난하고 지루한 삶.
어디에도 마음은 없다.

풋, 우스워. 사는 게....
커다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 어떤 사람은 알고 있다.
그가 말한다.
"피곤해, 그리고 지겨워."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눈을 감는다.

아마도 그가 다시 눈 뜨는 일이라고는 없을 것이다.
귀찮아.
다시 그의 눈에 띄는 일이라곤 없을 것이다.
사라져 버렸다.
신기루처럼....
모든 것이...
heavy한 happy!
Fuck you so much and so I love you very much.

살아가는 게 이미 비명(悲鳴, scream)이다.
살아가는 게 이미 비명(非命, accidental death)이다.
살아가는 게 이미 비명(碑銘, epitaph)이다.

노동자는 한 세대가 지나도 여전히 감옥의 주인이다.

1992년 난 아직 23살이었다. 좋은 때였지만 그것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고, 그래서 안심했다. (몇 년이 지나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함께 차를 마시던 그녀와 영원히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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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파베세

미들클래스 블루스
 
-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우리는 불평할 수 없다.
우리는 할 일이 있다.
우리는 배부르다.
우리는 먹는다.
 
풀이 자란다.
지엔피가 자란다.
손톱이 자란다.
과거가 자란다.
 
거리는 한산하다.
종전 협상은 완벽하다.
방공경보는 울리지 않는다.
다 지나갔다.
 
죽은 이들은 유언장을 썼다.
비는 그쳤다.
전쟁은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그것은 급할 것이 없다.
 
우리는 풀을 먹는다.
우리는 지엔피를 먹는다.
우리는 손톱을 먹는다.
우리는 과거를 먹는다.
 
우리는 감출 것이 없다.
우리는 늦출 것이 없다.
우리는 할 말이 없다.
우리는 있다.
 
우리는 무엇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가?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
상황은 정돈되었다.
접시는 씻겼다.
마지막 버스가 지나간다.
 
버스는 비어있다.
 
우리는 불평할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가?



*

가끔 그 놈의 중산층 허위의식이란 것이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나를 쳐다본다. 범고래가 물 위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과학자들을 자신도 관찰하기 위해 가끔 수면 위로 머리를 들어올릴 때처럼 그렇게....

누군가 문장 뒤에 말 줄임표를 많이 쓰는 사람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뭔가 불만많은 불안하고 심약하며 혹은 우쭐하고 우울하며 공격적인, 저 기만적이고 허위로 가득한 폐를 헐떡이며 성공의 지름길을 달려가는 중산층의 저 사내. 할 일이 있으므로 불평할 일이 없고, 우리는 배부르게 먹는다. GNP를 먹고, 과거를 먹어치운다. 뒤돌아보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번성한다. 가끔씩 엇박자로 돌아가는 이 불쌍한 중생들..... 마지막 버스가 지나갔으므로 우리는 기다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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