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정호승의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읽을 때 만해도 나는 이 시를 받아들이기가 참 곤란했다. 그만큼 내가 날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정호승 시인 특유의 낭만적이고 센티멘탈한 시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늘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늘 내가 책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깡패나 불량배가 되는 편이 좀더 어울릴 사람, 아니 최소한 그렇게 되어도 남들이 별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는 조건 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고, 제법 잘 살고 있다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런 나의 환상이 깨진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제법 우수한 성적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신학년 신학기의 첫 한 주가 지날 무렵 학생부 선생이 수업시간 중에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걸 별로 자각하지 못할 뻔 했다. 그는 수업 중에 날 불러냈고 복도 끝에 세워놓고 어깨에 짐짓 다정하게 손을 얹고 말했다. "결손가정의 불우한 환경 속에서 어렵고 힘들게 자란 것 다 안다. 힘들겠지만 문제 일으키기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도록 하라"고. 말끝에 한 마디 힘주어 오금 박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결론인즉 "문제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학교 다니라"는 말이었다.

내가 온통 그늘뿐이었으므로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이 온전하게 다가오지 못했다. 그러나 시인이 정말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은 두 번째 행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였을 것이다. 나만 그늘이라 생각하고 살았으나 살아보니 인간은 누구나 그늘이었다. 그로부터 나는 마지막 행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라는 시인의 말이 가슴으로 와 닿았고, 누군가의 눈물을 나역시 닦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시를 처음 접하고 냉랭하게 바라보았던 그 시절로부터 이 시를 다시 가슴으로 품을 수 있게 되까지 참 오랜 세월이 걸렸다. 아마도 그 세월을 우리는 흔히 성숙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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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년 소녀의 사계가(四季歌)

- 고은





네 작은 무덤가에 가서 보았네
가장 가까운 아지랑이에
낯선 내 살의 아지랑이가 떨었네
겨우내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로 보이는 그 마을의 슬픔
버들옷 뿌리 기르는 시내가 흐르네
어느 날의 봄 비오는 괴롬을 마감하려고
내 봄은 어린 풀밭가에 돌아왔는지
봄에는 네 무덤조차도 새로 있었네
그렇지만 나는 무언가 좀 기다리다 가네



여름


네 어릴 때 가서 살아도 아직 그대로인
한 달의 서해 선유도(仙遊島)에 건너가고 싶으나
네가 밟은 바닷가의 단조한 고동소리
네 소라껍질 모아 담으면
얼마나 기나긴 세월이 그 안에서 나올까
나는 누구의 권유에도 지지 않고 섬을 그리워하네
언제나 여름은 어제보다 오늘이고
첫사랑과 슬픔에게 바다는 더 푸르네
옛날의 옷 입은 천사의 외로움을
이제 아주 잊고 건너가지 않겠네 건너가지 않겠네



가을


내가 내리고 떠난 시골 역마다
기침 속의 코스모스가 퍼부어 피어 있고
네 눈시울이 하늘 속에서 떨어졌네
밤 깊으면 별들은 새끼를 치네
네 죽음을 쌓은 비인 식탁 위에서
나는 우연한 짧은 편지를 받았네
편지는 하나의 죽음, 하나의 삶
나뭇잎이 스스로 자기보다는 바람에 져야
가을 풀밭 벌레는 화려하게 죽고
이토록 네 지문(指紋) 같은 목소리의 잎이 지고 있네



겨울


너의 뼈가 누운 겨울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한 번만이라도 네 무덤가에 돌아가서
세상을 떠올리면서 변한 연필도막으로 쓰고
더 쓸 것이 없어서 눈물이 흐르네
아득한 네 어린 입술에 눈송이가 붙어 녹았네
어이할 수 없이 모든 것은 神이었고
겨울은 부디 가지 말아야 했고 나는 가야 했네
아무리 잘 견디었던 어릴 때의 추위도
눈이 오면 너에게 대해서 너만한 것이 되어
이제는 네 죽음에서나 나는 잠들어야 하겠네

*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젊은 날의 고은은 데카당스(decadence)했다. 우리 말로 '쇠미(衰微) ·퇴폐 ·조락(凋落)'을 의미하긴 하지만 이 단어를 우리 말로 옮기면 본래 말이 지니고 있는 뉘앙스가 어딘가 단단해지고, 우아해지는 느낌이다. 뭐랄까? 데카당스를 음식에 비유하자면 중화요리집에서 볶음밥에 곁들여 나오는 계란탕의 느낌이다. 약간의 부추와 맑은 국물에 '힘아리'없게 풀어져 있는 희뿌연 계란 국물말이다.

문학에서 데카당스란 로마제국 말기 문예의 병적인 특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하는데, 19세기 말 보들레르와 베를렌느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상징파 시인들이 스스로를 '퇴폐파'라 자칭하면서 이후 그들의 예술적 경향을 일컬어 데카당스라고 평하기 시작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데카당스란 말에는 퇴폐, 쇠락이라고 번역되지만 한 편으론 자기 연민과 파괴의 정서가 엿보인다.

계란탕은 메인 요리가 될 수 없고, 볶음밥에 곁들여진 서브 메뉴에 불과하지만 계란탕 없이 먹는 볶음밥에 목이 매는 것처럼 데카당스는 엄격하게 말해 문학사조로 자립하지는 못했지만 시대를 번갈아 가며 아니, 어느 시대에나 데카당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시인 한둘은 반드시 존재해왔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데카당스의 시인들, 그 시인들은 대개가 '천재(?)'였고 반드시 천재여야만 했다. 혹은 시인이라면 반드시 천재여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었다. 데카당스 자체가 시의 본질이 될 수는 없지만 시 혹은 시인이 지녀야 할 어떤 멋과 맛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으리라. 그런 맥락에서 나는 늘 (데카당스한)시인이 너무 오래 살면 추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데카당스가 멋있기 위해서는 우선 젊어야 하기 때문이다.

데카당스란 무엇보다 전통, 질서, 고전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데카당스의 시에서 비춰지는 이 탈출의 모습은 때때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데카당스는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일종의 위악, 의도적으로 아름다움을 공격하는 느낌을 풍긴다. 그 까닭은 이 같은 탈출을 시도했던 이들이 대체로 사회적으로 아쉬울 것이 별로 없는 부르주아 계급의 시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실을 부정하기엔 너무 나약한 풍토에서 자라난 이들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현실부정은 겉으론 파괴적으로 보이지만 그 실천은 개인적이고, 이벤트의 일종으로 보이기 쉬웠다.

현실이란 알을 깨자마자 뜨거운 물로 뛰어든 계란처럼 데카당스는 출현하자마자 곧장 힘아리 없이 굳어져 버렸다. 고은이 썼던 젊은 날의 시편들이 너무나 아름답지만 한 편으론 아쉬운 까닭은 그의 성장 혹은 노숙과 함께 그의 시세계 역시 계속해서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계속해서 데카당스한 시인으로 머무르길 바랐다면 그의 생(生)도 그와 함께 일찍 종결되길 바랐어야 했다. 그러나 시인은 계속해서 나이를 먹었고, 나이를 먹는 만큼 그의 시도 함께 성숙해갔다.

아득한 네 어린 입술에 눈송이가 붙어 녹았네
어이할 수 없이 모든 것은 神이었고
겨울은 부디 가지 말아야 했고 나는 가야 했네

시인에게 사계는 계속해서 다가왔고, 시인은 계속 가야만 했을 것이다. 이 시에서 나는 고은의 사계(四季)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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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 고정희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겅질겅 밟습니다. 내가 위로받고 싶고 등을 기대고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립니다. 내가 지치고 곤고하고 쓸쓸한 날은 지난날 분별 없이 뿌린 말의 씨앗, 정의 씨앗들이 크고 작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힙니다. 오 하느님, 말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다스리기란 나이를 제대로 꽃피우기란 외로움을 제대로 바로 잡기란 철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가요.
   나는 내 마음에 포르말린을 뿌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따뜻한 피에 옥시풀을 섞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오관에 유한 락스를 풀어 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는 더욱 없으므로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 해도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 해도, 부처님이 될 수는 없는 내 사지에 돌을 눌러둘 수는 없습니다.


*


▶ 2009년 초여름 해남 대둔사 가는 길 옆 고정희 시인의 생가(전남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를 바라보며

철 없는 마흔이다. 지리산에 휩쓸려 가버린 시인에게도 그런 마흔의 시절이 있었나 보다. 말과 정을 제대로 건사해 제 나이 값을 하며 살아가기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무거운 멍에다. 뜨거운 불덩이가 채 식지 않은 마흔이란 철 없는 나이를 포르말린에 중독시킬 수도 없고, 헹궈낼 수도 없으니 그렇게 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흥건히 젖어갈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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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 도종환



너는 왜 길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편안한 먹이를 찾아
먹이를 주는 사람들 찾아
많은 늑대가 개의 무리 속으로 떠나가는데
너는 왜 아직 산골짝 바위틈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너는 왜 불타는 눈빛을 버리지 않는 것일까
번개가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달려가던
날카로운 빛으로 맹수들을 쏘아보며
들짐승의 살 물어뜯으며
너는 왜 아직도 그 눈빛 버리지 않는 것일까

너는 왜 바람을 피하지 않는 것일까
여름날의 천둥과 비바람
한겨울 설한풍 피할 안식처가
사람의 마을에는 집집마다 마련되어 있는데
왜 바람 부는 들판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오늘은 사람들 사이에서 늑대를 본다
인사동 지나다 충무로 지나다 늑대를 본다
늑대의 눈빛을 하고 바람부는 도시의 변두리를
홀로 어슬렁거리는 늑대를 본다
그 무엇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외로운 정신들을.


*

떠돌이 생활 3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되었을 무렵 내 나이는 스물셋이었다.
모두가 연모해 마지않는 시 쓰는 아리따운 교수님의 고임을 받았고, 그것은 나만의 은근한 자부심과 자만심을 부채질하는 일이었다. 2년짜리 대학에서 1년을 보낸 뒤 교수님이 불러 내게 말씀하길...
 

'너는 고독한 마라토너의 눈빛을 지녔다....그런데 어째서 시를 쓰지 않느냐고...'

그 말씀의 끝에 내 혀끝을 감도는 말이 있었으나 끝끝내 내뱉지 못한 한 마디가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늑대 같은 사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개 같은 사내였노라. 
누군가 살짝 코끝만 쓰다듬어 주어도 금방 따라나설 태세를 갖춘...누군가에게 버림받아 다신 마음 내어주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한...'

오랜 세월이 흘러 늑대냐, 개냐하는 한껏 어깨에 힘이 들어간 폼잡는 질문은 시를 쓰는 일과 무관하단 걸 알게 되었다. 시를 쓴다는 일은 사랑하는 일과 같다. 사랑은 사랑에 대해 묻지 않을 때만 사랑일 수 있듯 시를 쓰는 일은 왜 시를 쓰는지에 대해 묻지 않고 시가 될 때만 시가 된다.  

그 눈빛은 만든 것도, 생겨난 것도 아닌 내가 잠시 지니고 있던 어떤 삶의 무게였을 테지...이제 더이상은 내 것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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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 이생진



어떤 사람은 인형으로 끝난다
어떤 사람은 목마로 끝나고
어떤 사람은 생식으로 끝난다
어떤 사람은 무정란으로 끝나고
어떤 사람은 참 우습게 끝난다


*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배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는 줄도 모르고 허황되게 뜻을 높고 멀리하여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긴다. 특별한 사람에게 미루고 자기 자신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안일하게 생활한다면 어찌 불쌍하지 않으랴."



이생진의 시 <사람>은 진술로만 이루어진 시다. 진술로 이루어진 시는 교훈적인 느낌이 강한데, 이 시는 서글프다. 그 어떤 사람이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시(詩)의 기본은 '묘사'다. 묘사만으로도 시는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시를 처음 써보는 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또한 묘사다. 대개는 묘사하는 대신 진술하거나 설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묘사의 단계를 넘어선, 시인이 가장 쓰기 어려워 하는 시가 진술이라고 생각한다. 묘사가 화려한 검술을 자랑하는 것이라면 진술은 정수리를 겨냥해 곧바로 내리치는 진검(眞劍)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나 시를 쓰면 시인이라고 생각허지만, 시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기란 매우 어렵다. 게다가 그 감동에 깊이까지 성취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시(詩)가 성취하는 진경에서 화려한 묘사란 존재할 수 없다. 꼭 필요한 묘사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이토록 우습게 끝나는 쉬운 결론이지만 무엇이든 삶 속에서 성취하기 어려운 것들 대부분이 참으로 쉬운 단어와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듯 시의 세계도 그러하다. 이생진의 이 시가 보여주듯...

"어떤 사람은 참 우습게 끝난다"

이생진의 이 시는 참으로 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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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단추

- 손택수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개 단추가 많다
꼭꼭 채운 단추는 풀어보고 싶어지고
과하게 풀어진 단추는 다시
얌전하게 채워주고 싶어진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난폭하게 질주하는 지퍼는 질색
감질이 나면 좀 어떤가
단추를 풀고 채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는 건
낮과 밤 사이에,
해와 달을
금단추 은단추처럼 달아줄 줄 안다는 것

무덤가에 찬바람 든다고, 꽃이 핀다
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
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았다

<출처> 손택수, 『창작과비평』, 2009년 봄호(통권 143호)

*



시(詩)는 어째서 행과 연을 구분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리듬(律) 때문이다. 그럼, 시에서 리듬이 왜 중요한가? 그건 시가 본래 노래였기 때문이다. 행갈이 하나가 시의 폭발력과 긴장을 좌우한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현대시는 대체로 내재율(內在律)이기 때문에 또 시를 읽을 때 요즘 사람들은 소리 내어 읽기 보다는 속으로 읽는 묵독(黙讀)을 주로 하기에 시의 리듬을 맛보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시는 소리 내어 낭송(朗誦)해봐야 그 본래의 맛을 알 수 있다. 김지하의 「오적(五賊)」이 문학적으로도 위대한 작품으로 살아남은 까닭은 단지 촌철살인(寸鐵殺人)하는 풍자의 맛이나 시대적 조건이 맞아떨어진 뿐만 아니라 이 시가 우리 전래의 판소리 리듬을 문학적으로 계승한 시였기 때문이다. 김지하의 「오적(五賊)」을 소리내어 읽어보면 낭창낭창하게 감기면서 깐족거리는 맛이 판소리의 리듬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계승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행갈이는 그렇다 쳐도 연갈이는 문제가 좀더 복잡하다. 이형기는 “의미(내용)와 소리(형식)의 유기적 결합이 운율의 핵심”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행갈이 보다 더 큰 구분이 연이다. 그러나 연 구분은 아무래도 단락의 의미가 더 크기 마련이다. 낭송보다 묵독이 일반화된 이후 시인들은 음악적인 측면보다는 회화성을 확보하는 일에 우선적으로 매달리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시란 이미지(image)라고 배우는 바로 그것 말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소재와 같은 내용을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할 것인지 고민하다보면 리듬에 대해 배려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시의 리듬은 재즈 뮤지션의 그것처럼 타고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손택수 시인의 「꽃단추」를 읽다가 갑자기 「오적」에서 재즈 뮤지션의 리듬 타령까지 흘러간 이유는 내 보기에 이 시는 한 편이 아니라 두 편의 시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시적 정황만으로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하고, 여러 개의 시적 정황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 「꽃단추」는 두 개의 시적 정황이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해와 달, 금단추와 은단추의 시적 정황과 민들레 꽃단추라는 시적 정황이 민들레의 “흔들리는 실뿌리”처럼 야무지게 두 개의 각기 다른 시적 정황을 연결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내 눈엔 그리 보인다. 아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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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설레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사랑의 데칼코마니


왜,
너는 나에게 오지 않는 거지?
왜,
너는 나를 기다리게 하는 거지?
왜,
너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거니?
VS.
왜,
너는 나에게 오지 않는 거지?
왜,
너는 나를 기다리게 하는 거지?
왜,
너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거니?

사랑하는 평범한 연인들은 다들 이런 이유로 싸운다,
전자가 나의 말이면 후자는 그대의 말이다.
시인은 기다림조차 기다림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아니, 네가 나에게 오는 길이라 말한다.

닭살 돋는 연애시이면서 동시에 선문답처럼 오묘함이 깃든 시다.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황지우!
엄살도 떨 줄 알고, 청승맞게 넉살도 좋은...

**
사랑은 할 때보다 기다릴 때가, 기다릴 사람이 있을 때가 좋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을 때는 그런 희망과 열정이 이제 막 솟아오를 때다.
다시 말해 아직 그런 존재가 없을 때가 가장 좋은 것인지도... ㅋㅋ


연애와 사랑에 대한 나의 일관된 견해는
사심 없이 바라보고, 철 없이 행동하며, 욕심 없이 차지하되,
미련 없이 사랑하고, 후회 없이 헤어지란 거... 결론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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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晩餐)

- 함민복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

누가 요즘 쓸쓸하냐고 묻길래 아니라고 답했다. 하지만 고독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겠노라 했다. 환과고독(鰥寡孤獨)이란 말이 있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사람, 젊어서 남편 없는 사람, 어려서 어버이 없는 사람, 늙어서 자식 없는 사람'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맹자가 했던 말인데 그는 주(周)나라 문왕의 사례를 들어 어진 정치를 베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더이상 나는 어리지 않기 때문에 고독하지 않다.

어쩌면 지금 나의 고독은 그런 외부적 환경에 의한 고독이라기 보다 내 마음의 거처를 정하지 못하여 오는 고독일 게다. 혼자 산다는 것의 쓸쓸함을 나는 안다. 어려서 부모와 헤어지고 10대 때부터 집 떠나와 홀로 세상 정처 없이 10여 년 넘게 떠돌아다닌 내가 혼자 산다는 것의 쓸쓸함을 모를 수 있겠나.

시인 함민복은 누군가 지인이 보내준 반찬을 놓고 마음이 그릇이고, 햇살처럼 따사로운 마음을 마음으로 먹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이 어찌 저 따사로움뿐이랴. 내어놓을 수 없어 너덜거리는 마음을 반찬삼아 마음으로 마음을 삼키는 저녁이 없었으랴.

그래서 나는 함민복 시인의 저녁 밥상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을 웅크리게 된다. 그를 알고, 나 역시 홀로 산다는 것을 알기에....



* 렘브란트 - 엠마오의 그리스도 / 1648년 / 캔버스에 유채 / H. 42 cm, W. 60 cm / 파리 루브르박물관
렘브란트는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된 지 3일 만에 부활한 예수가 예루살렘 부근의 작은 마을인 엠마오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두 제자 앞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로 여러 차례 그림을 그렸다. 렘브란트가 이 이야기에 주목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으나 나는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최후의 만찬은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난 죽음에 대해 승리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식사. 인간의 진정한 업보이자 원죄는 먹는 일에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다른 뭇생명을 섭취하여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는 더이상 밥을 먹어야 할 이유가 없을 테니...

** 어쩐지 민복이 형의 홀로 먹는 이 만찬에 어울리는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니라 렘브란트여야 할 것 같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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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

'君子不器'라 했다. 나는 <그릇1>이 오세영 시인의 시론을 보여주는 시라 평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절제와 균형은 그의 시세계를 이루는 대위법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는 언제나 중심이 도사리고 있다. 표현은 중심에서 어긋나지 않으므로 파격적인 표현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엔 언제나 힘이 있다. 까닭은 오세영의 시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중심이 아니라 '부드럽고 유연한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君子不器하므로 그의 시는 절제와 균형의 대위법으로 구성되면서도 부드러운 중심을 지닌 팽이처럼 힘차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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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上弦)


- 나희덕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


상현(上弦)달을 영어로는 'first quarter'라 부른다.
과학적인 표현일진 몰라도 매가리 없고, 풀 죽는 느낌이다.
신화의 세계에서 달은 언제나 여신의 얼굴을 하고 있다.

원시시대 인류가 사냥과 채집에서 돌아와
동굴 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서로의 온기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라고, 새로운 생명은 여인의 품속에 싹텄으므로
밤과 달은 여성에 비유되었다.

남성에게 여성의 신비로움은 언제나 경이로운 일이었으나
늘 함께 지내는 존재였기에 여성의 신비는
한낮의 태양 같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렬함일 수는 없었다.
달처럼 마주볼 수 있고, 보일듯 잡힐듯 하면서도
여성은 달처럼 달려가면 또 어느새 저만큼 달아나 있었다.

밤과 달은 언제나 쌍을 이루어 등장하지만
상현(반)달만큼은 낮과 밤의 경계 사이에 등장하기도 한다.
언덕 위에 살짝 걸친 상현달을 시인은 설레는 가슴으로 훔쳐본다.
잠시 지상에 내려온 여신처럼
그녀의 하얗고 풍만한 궁둥이가 남긴 흔적은 저기 능선 어디쯤 있으리라.
내 가슴속에도 선연하게 새겨진 듯 화끈거리는 환한 상처들이다.

여신이 다녀간 그곳
능선 근처 나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를 가슴에 품었던 나무들은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순결하게 모든 죄악으로부터 정화되었고, 구원을 얻었다.

나도 그녀의 하얗고 풍만한 궁둥이에 입술을 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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