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 이면우


숲의 나무들 서서 목욕한다 일제히
어푸어푸 숨 내뿜으며 호수 쪽으로 가고 있다
누렁개와 레그혼, 둥근 지붕 아래 눈만 말똥말똥
아이가, 벌거벗은 아이가
추녀 끝에서 갑자기 뛰어나와
붉은 마당을 씽 한바퀴 돌고 깔깔깔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와 몸을 턴다
점심 먹고 남쪽에서 먹장구름이 밀려와
나는 고추밭에서 쫓겨나 어둔 방안에서 쉰다
싸아하니 흙냄새 들이쉬며 가만히 쉰다
좋다.


*


나이 먹고 제일 많이 달라진 게 있다면... 비 맞는 일이 줄었다는 거다. 비 오는 날... 나갈 일도 없고, 비가 와도 우산 없이 다닐 일도 별로 없다. 게다가 비 온다고 젖어들, 손바닥만한 맨 땅도 도시에선 구경하기 힘들다. 이제 비오면 맨먼저 비릿하게 달려들던 흙 냄새 대신 콘크리트 냄새와 열기가 먼저 후욱 하고 달려드는 도시의 삶. 태어나면서부터 도시인이었으나 나는 흙과 콘크리트의 경계에 섰던 변방인이었기에 양쪽의 냄새를 알고 있다. 


누렁이를 앞세워 논두렁을 달려본 기억과 학교 앞에 라면박스 안에 들어있던 레그혼 새끼들을 길러 본 경험이 함께 유년의 기억 속에 늘어서 있다. 태어나 한 번도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서본 경험이 없는 나는 산 속에서 비를 맞을 때 생생하게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알고 보면 나도 식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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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에 대한 성찰


- 복효근



어디까지가 삶인지...

다 여문 참깨도 씹어보면 온통 비린내 뿐
이쯤이면 되었다 싶은 순간에도 또 견뎌야할 날들은 남아


참깨는 기름집 가마솥에 들어가 죽어서 비로소

제 몸을 참깨로 증명하는구나


그렇듯 죽음 너머까지가 참깨의 삶이라면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다
살과 피에서 향내가 날 때까지
어떻게 죽음까지를 삶으로 견디랴


세상의 가마솥에서


삶까지는 멀다


*


복효근 시인의 <가마솥에 대한 성찰>은 성찰(省察)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시이다. 비록 시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지만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향적(polyphonic)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훌륭한 시의 품격을 지니고 있다.


먼저 시인은 묻는다. "어디까지가 삶이냐?"


참깨라는 익숙한 사물을 통해 시인은 우리에게 삶을 성찰해보도록 한다. '여물다'는 말은 과실이나 곡식이 알이 들어 잘 익었다는 1차적인 뜻이 있지만, '여물다'란 말에는 사물이나 자연현상이 본래 지닌 특성이 활발해져서 제가 지닌 본성을 있는 그대로 잘 드러내고 있다는 뜻을 지녔다. 예전에 미학 세미나를 진행하다가 문화예술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친구에게 얻어들은 이야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는데, 본래 우리 말인 "아름답다"의 어원은 "나답다"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내가 나 다울 때, 비로소 우리들은 아름다워진다. 그런데 우리가 아름답기 위해선 즉, 나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잘 드러내기 위해선 먼저 잘 여물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 여문 참깨는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운 참깨조차도 이쯤이면 되었다 싶은 순간에 씹어보면 아직도 비린내가 난다. 비린내란 속세의 냄새다. 시인은 참깨의 효용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참깨의 존재를 "어디까지가 삶이냐?"고 묻기 위해 '세상의 가마솥'에 들어가 참깨가 죽을 때에만 비로소 참깨의 살과 피에서 존재의 향내가 풍겨올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간극이 있는가? 시인이나 작가들이 종종 스스로를 자학하고, 부끄러워하는 까닭, 자괴심으로 몸부림치며 스스로를 속물로 표현하길 주저하지 않고, 술안주거리로 올리는 까닭이 모두 거기에 있다. 우리는 아는 데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성찰하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하기 전에 자신의 죄를 낱낱이 생각해내는 일을 성찰이라 부른다.


죽음 너머까지가 참깨의 삶이라면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다


죽음이란 존재의 소멸이다. 나란 존재가 소멸되는데 어떻게 그것조차 긍정하고 삶의 일부라며 견뎌낼 수 있을까? 삶은 무한의 허무를 반복(윤회)하는 것이므로 이 허무를 초극하기 위해서는 깨닮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니체는 이 같은 삶의 허무를 무한반복할지라도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인간이 위대해지기 위해 내가 제안하는 공식은 '너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이다. 즉 현재의 자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되기를 바라지 않는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미래에도 과거에도 그리고 영원히."


그렇기에...


세상의 가마솥에서


삶까지는 멀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정토(淨土)인 극락(極樂) 가는 길이 어째서 나를 버리는 무아(無我)의 삼매(三昧)에 들어야만 하는지 시인은 말한다. 세상의 가마솥에 갇혀 비린내만 풀풀 풍기는 참깨 한 알에게는 극락 가는 길이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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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2
---- 붉은 달


기형도



1


그대, 아직 내게

무슨 헤어질 여력이 남아 있어 붙들겠는가.
그대여, X자로 단단히 구두끈을 조이는 양복
소매끈에서 무수한 달의 지느러미가 떨어진다.
떠날 사람은 떠난 사람. 그대는 천국으로 떠난다고
짧게 말하였다. 하늘나라의 달.



2

너는 이내 돌아서고 나는 미리 준비해둔 깔깔한 슬픔을 껴입고
돌아왔다. 우리 사이 협곡에 꽂힌 수천의 기억의 돛대, 어느 하나에도
걸리지 못하고 사상은 남루한 옷으로 지천을 떠돌고 있다. 아아 난간마다 안개
휘파람의 섬세한 혀만 가볍게 말리우는 거리는
너무도 쉽게 어두워진다. 나의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 속에서
폭풍주의보는 삐라처럼 날리고 어디선가 툭툭 매듭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내가 떠나기 전에 이미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


너는 왜 천국이라고 말하였는지. 네가 떠나는 내부의 유배지는

언제나 푸르고 깊었다. 불더미 속에서 무겁게 터지는 공명의 방
그리하여 도시, 불빛의 사이렌에 썰물처럼 골목을 우회하면
고무줄처럼 먼지 튕겨나와 도망치는 그림자를 보면서도 나는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떨리는 것은 잠과 타종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내 유약한 의식이다.
책갈피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우리들 창백한 유년, 식물채집의 꿈이다.
여름은 누구에게나 무더웠다.


3

잘 가거라, 언제나 마른 손으로 악수를 청하던 그대여
밤새워 호루라기 부는 세상 어느 위치에선가 용감한 꿈 꾸며 살아 있을
그대, 잘 가거라 약기운으로 붉게 얇은 등을 축축히 적시던 헝겊 같은
달빛이여. 초침 부러진 어느 젊은 여름밤이여.
가끔은 시간을 앞질러 골목을 비어져 나오면,
온통 체온계를 입에 물고 가는 숱한 사람들 어디로 가죠? (꿈을 생포하러)
예? 누가요 (꿈 따위는 없어) 모두 어디로, 천국으로


세상은 온통 크레졸 냄새로 자리잡는다. 누가 떠나든 죽든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턱턱, 짧은 숨 쉬며 내부의 아득한 시간의 숨 신뢰하면서
천국을 믿으면서 혹은 의심하면서 도시, 그 변증의 여름을 벗어나면서.



*


언젠가 요설(饒舌)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함"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예술은 낭비의 속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미메시스의 개념으로 파악하든, 다른 무엇으로 파악하든 모든 예술은 기본적으로 낭비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예술은 인간의 사랑과 공통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죽음(상실 혹은 소멸)을 초월하려는 헛된 의욕에 기반한다. 만약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라면 구태여 존재하는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므로 낭비라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의 현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라면 감동을 위해 장치된 수식들이 낭비의 범주에 든다. 지나치게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해보면 만약 저 위의 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삶의 허망함'이라면 사실 그 객관적인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에겐 그저 한마디 "삶은 허망하다" 혹은 "삶의 인연, 관계는 허망하다"란 한 마디면 족하다. 문학은 은폐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쓸데없이" 많은 말을 지껄이도록 되어 있는 예술이다. 다른 예술들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다. 어째서 인간의 사랑은 허망한가?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후세로 이어가기 위해 생식활동을 한다. 오로지 인간만이 쾌락을 위해 혹은 갖은 이유로 허무를 반복한다.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으므로 무의미하다. 구스 반 산트의 영화 <굿윌헌팅>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넌 진정한 상실감을 모른다. 그건 타인을 네 자신보다 사랑할 때 느끼는 거니까." 기형도의 이 시에 붙은 제목이 "비가"인 까닭? 타인을 사랑한다는 허무의 반복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삶의 진정한 의미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세상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기 위해 온 것이다. 기형도의 이 시에서 느껴지는 내 감각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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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 이성복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짝짝인 신발 벗어 들고 산을 오르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보았니 한 쪽 신발 벗어
하늘 높이 던지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들었니
인플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우우우, 어디에도 닿지 않는 길 갑자기 넓어지고
우우,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오른손에 맞은 오른뺨이 왼뺨을 그리워하고
머뭇대던 왼손이 오른뺨을 서러워하던 시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그리워하니 우리 함께
술에 밥 말아 먹어도 취하지 않던 시절을


*


시인도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럼에도 시는 아직도 저렇게 푸르고 아프도록 시리게 빛난다. 1977년 '정든 유곽에서'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해 1980년대 한국 시문학의 절정을 찍었던 시인 이성복의 시는 늪처럼 묵직하고 끈적거렸다. 그의 시에서 깨달음은 멀고도 먼 세월 저편의 일이었다. 그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 시인은 늪처럼 허우적대는 청춘의 무게를 질질 끌고 玉山에 올랐으리라.

그와 함께 玉山에 오른 것이 어디 개 한 마리뿐이었으랴. 비록 청춘의 무게는 그를 내리 눌렀을 테지만 "인플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에도 그의 웃음소리는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기만 했다. 이성복은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란 시에서 시적 묘사와 진술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분명 그 자신의 체험이었을 청춘의 연대기 "술에 밥 말아 먹어도 취하지 않던 시절"은 이제 흘러가고 없지만 기억과 그리움은 여전히 그를 괴롭힐 것이다. 아니 그의 시와 함께 지난한 세월을 견뎌 간신히 "어디에도 닿지 않는 길"에 도달한 우리들을 괴롭힐 것이다.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그리워하니"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그 길을 찾자고 죽도록 헤매고 다녀야 했던 고통의 뻘밭을...

그럼에도 이처럼 환하게 빛났던 청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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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鄕

-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어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寞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 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1938년, 삼천리문학>


백석의 이 시 "고향"은 그 자체로 참 따스하다. 하나의 에피소드, 하나의 국면만으로  구축된, 보기에 따라 참 단순한 시(미의 세계)인데, 고향이란 무엇인지 참으로 정겹다. 나는 혼자 앓아 누웠다. 굳이 여러 말하지 않아도 이 정황만으로도 충분히 쓸쓸하다. 앓아누운 탓에 어느 아침 의원을 만났는데, 인상은 좋지만 시인은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도 쓸쓸하다. 그러다 고향 이야기로 말문을 틔운다.
알고보니 아버지의 친구다. 몇 마디 대화, 고향 이야기를 하고 나니 묵묵하니 맥이나 짚던 의원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을 가진 아버지 친구가 된다. 백석에겐 고향 정주 자체가 부처님 품 속인 거다.

이 무렵의 그는 "자야"와 부모 사이에 참 많은 고민을 끌어 안고 사는 젊은 시인이었을 텐데, 그의 시는 참 따숩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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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의 들꽃



- 문효치


이름을 붙이지 말아다오
거추장스런 이름에 갇히기 보다는
그냥 이렇게
맑은 바람 속에 잠시 머물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즐거움


두꺼운 이름에 눌려
정말 내 모습이 일그러지기보다는
하늘의 한 모서리를
조금 차지하고 서 있다가
흙으로 바스라져


내가 섰던 그 자리
다시 하늘이 채워지면
거기 한 모금의 향기로 날아다닐 테니
이름을 붙이지 말아다오
한 송이 ‘자유’로 서 있고 싶을 뿐.


*

올해(2011년) 제23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문효치 시인은 1943년생으로 9권의 시집 이외에도 몇 권의 기행집과 산문집을 상재해두고 있는 원로 시인이다. 글 쓰는 사람치고 방랑이든 여행이든 길 떠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냐만 문효치 시인은 별도의 여행에세이를 펴낼 만큼 여행을, 특히 역사기행을 좋아하는 시인이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공주(公州) 공산성(公山城)은 사적 제12호로 한성 인근에 도읍하고 있던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밀려 한성 일대를 빼앗긴 백제가 절치부심하여 국력을 회복하고,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60여 년간 백제의 도읍으로 있었던 지금의 공주(웅진)를 지키기 위해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본래는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현재와 같은 석성으로 고쳤다.

고조선 이래 한반도에서 한민족을 지켜온 가장 뛰어난 군사시설은 산의 지세를 이용하여 만든 산성(山城)이었다.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한반도를 지켜냈던 고구려는 예로부터 ‘산성의 나라’로 불렸고, 고려 시대 민초들이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친 곳 역시 산성이었다. 지금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설악산 권금성(權金城)은 고려 고종(1253) 40년에 몽골의 침략에 대비하가 위해 권씨와 김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이 하룻밤 만에 성을 세웠다 하여 권금성이라 불린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산 어디에나 산성의 흔적이 있는데 공주의 공산성은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백제의 고도 공주를 1500년 넘게 지켜온 산성이다.

백제 멸망 직후에는 의자왕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고,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조선시대 인조 2년(1624)이괄의 난에 쫓겨 인조가 몸을 피했던 곳이기도 하다. 광해군을 내쫓고 조선 16대 임금이 된 인조가 반정 이후 논공행상에 실패해 일어난 정변이 이괄의 난이었다. 평안도 일대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던 이괄의 군세에 밀려 공주까지 피난해야 했던 인조는 백성들의 민심을 얻지 못했기에 수행하는 신하들도 적었고, 그 자신도 초라한 행색으로 공주 인근에 이르러 하루를 묵게 되었다.

왕은 때때로 공산성에 올라 멀리 북쪽에 두고 온 한양을 근심스럽게 바라보곤 하였다. 인근의 부호인 임씨 집에서 한 광주리에 음식을 푸짐하게 담아 왕께 진상하였다. 조심스럽게 덮은 보자기를 걷어내니 콩고물에 무친 떡이 가득 하였다. 그래도 명색이 임금이었기에 인근 백성 중 어떤 이가 임금에게 떡을 진상했는데 배가 고팠던 인조가 이를 맛있게 먹은 뒤 신하에게 “이렇게 맛있는 떡의 이름은 무엇인가” 물었지만 신하들 중에도 음식의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다. 인조는 재차 “그럼, 떡을 진상한 백성은 누구냐?”고 물었다. 신하는 진상한 사람의 이름은 모르고 다만 인근에 사는 성이 임가라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자 인조는 “그렇다면 이처럼 맛있는 떡의 이름을 지금부터 임 아무개가 썰어서 만든 떡이니 ‘임절미(任絶米)’라고 부르도록 하라.”고 했다는데 일설에는 ‘임씨가 만든 가장 맛있는 떡 절미(絶味)’라 하여 임절미(任絶味)라고도 한다. 차츰 변하여 현재와 같은 ‘인절미’가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문제가 많았던 임금으로 꼽자면 누구나 ‘연산군’을 생각하겠지만 내 개인적으론 선조와 인조 역시 ‘연산군’ 못지않게, 사실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점을 놓고 보자면 인조를 첫 손에 꼽지 않을 수 없을 듯 하다. 인조는 1595년 11월 7일에 황해도 해주에서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定遠君, 뒤에 元宗으로 추존됨)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인조가 한양이 아닌 해주에서 출생한 것은 왜구의 침입으로 왕족들이 해주로 피신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처럼 전란의 와중에 태어난 왕족이 훗날 왕위에 올랐는데 전란을 막기는커녕 되레 불러들이고, 훗날에는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 손자마저 비명에 죽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무능하고 패악한 임금이 아니었을까.

인절미 이외에도 인조와 관련한 유래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 역시 이괄의 난과 관련이 깊다. 피난길에 먹은 맛난 물고기에 즉석에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하였지만 전란이 끝나 환궁한 뒤 궁에서 먹은 ‘은어’는 옛 맛이 아니었기에 인조는 ‘도로(다시) 묵’이라 부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이야기들이 민간에 전승되어 왔다는 것만으로도 인조가 겪어야 했던 비극과 그 때문에 덩달아 고초를 겪어야 했을 민초들의 인식이 어떠했을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문효치 시인의 시에서 참 멀리 왔지만 「공산성의 들꽃」에서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은듯하여 길게 풀어 보았다.


이름을 붙이지 말아다오
한 송이 ‘자유’로 서 있고 싶을 뿐.


그것이 망국의 한(恨)과 비애가 알알이 맺힌 역사의 현장에 피어난 한 송이 들꽃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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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 이상국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 밖에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
또다른 벌레였을까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창작과 비평사)

*

숲에서...
어쩌면 구태여 미천골 숲이 아니어도 좋으리라.
어쩌면 물푸레나무 숲이 아니어도 좋으리라.
그런건 아무래도 좋으리라.

숲에서....
산꼭대기까지 자란 나무들이 물 길어 올리느라 흠씬 젖은 새벽
이기고 지는 일이야 삼겹살처럼 두툼하게 살집 오른 거리에 버려두어도 좋으리라.
그 기분 나도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아침이면 다시 작두를 타야 하는 나는...
그 기분 알면서도 오늘은 다시 푸르게 날 선 작두 위에 올라선다.
혼자서만 정수리에 햇볕 가득하면 무엇하리.
언젠가 산 아래 사람들과 섞이지 못한다면 홀로 잘 설 수 있다면 무엇하리.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이 날이 잘 선 작두 위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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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인 개가 짖을 때

- 정일근


묶인 개가 짖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다
그대, 은현리를 지날 때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움찔거리지도, 두려워 물러서지도 마라
묶여서 짖는 개를 바라보아라, 개는
그대 발자국 소리가 반가워 짖는 것이다
목줄에 묶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세상의 작은 인기척에도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모른다
그 소리 구원의 손길 같아서
깜깜한 우물 끝으로 내려오는 두레박줄 같아서
온몸으로 자신의 신호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묶인 개는 짖는 것이다
젊은 한때 나도 묶여 산 적이 있다
그때 뚜벅뚜벅 찾아오는 구둣발 소리에
내가 질렀던 고함들은 적의가 아니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불빛 같은 신호였다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쓸쓸하여 굳어버린 그 눈 바라보아라
묶인 개의 눈알에 비치는
깊고 깜깜한 사람 사는 세상 보아라




정일근 시집,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문학사상사, (2003)

*

"세상의 작은 인기척에도/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모른다"
시인의 말이 엄살이 아니란 걸 안다.
그러나 젊은 한때, 그때 내게 들려오던
뚜벅뚜벅 발소리에 대해 나는 적의에 가득차 짖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컹컹컹 적의에 가득차 짖었다하여
내 눈빛이 젖지 않았었다고는 믿지 마라.
젖은 눈으로 흘러내리는 세상
흘러내리는 증오가 사랑이 아니었다고,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라고는 믿지 마라.

믿지 마라. 외롭다고 짖는 개를
믿지 마라. 젖은 눈으로 쳐다보는 개를
믿지 마라. 쓸쓸하게 굳은 눈으로 언제라도 앙 물어댈 수 있는 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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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사랑해서

- 김승희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정말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듣기가 싫다

죽도록 사랑해서
가을 나뭇가지에 매달려 익고 있는
붉은 감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옥상 정원에서 까맣게 여물고 있는
분꽃 씨앗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한계령 천길 낭떠러지 아래 서서
머나먼 하늘까지 불지르고 있는
타오르는 단풍나무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로
이제 가을은 남고 싶다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핏방울 하나하나까지 남김없이
셀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투명한 가을햇살 아래 앉아

사랑의 창세기를 다시 쓰고 싶다
또다시 사랑의 빅뱅으로 돌아가고만 싶다

- 김승희,『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세계사

*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정말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이상 듣기 싫다는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설핏 웃음지었다. 사랑(eros)과 죽음(thanatos)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 단짝인지는 시인, 당신도 잘 알고 계시지 않은가 말이다.

중학생 때 접했던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은 대개 지산 스님의 입을 빌어 작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대목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여자는 한 몸에 생명과 죽음을 키운다던지... 하는 표현들이다. "어째서 여자는 가슴으론 생명을 키우면서 엉덩이로는 죽음을 만드는지..." 같은 표현들 말이다. 이왕 생각난 김에 몇 구절 인용해보면 아래의 부분들이 나에겐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의 소설이 지금까지도 나에게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것은 물론 이 소설을 중학생 때 읽었다는 폐해(?)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어린 나를 망친 세 권의 책을 들자면 주부생활 부록으로 딸려나온 "신혼 첫날밤에서 출산까지"라는 성생활 교재와 김성동의 "만다라" 그리고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이었으리라.

"남자와 여자가 배를 맞대고 이층이 된다는 것은 존재와 세계가 분리의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라는 저 불교에서 말하는 불이의 법칙과 합일된다는 거지. 세계는 서로 화해하고 존재는 보편적인 인식의 공간을 획득하게 되며, 그리하여 갈등과 투쟁은 무용한 것이 되는 거지.

(...) 이 세상에 이층만큼 허망한 사업이 있을까. 쾌감은 순간이었으며 존재와 세계는 다시 평행선이 되고 마는 것이었으니.....관세음보살. 그 허망감에 치를 떨며 차디찬 방바닥에 이마를 대었을 때, 귀먹는 노승의 탄식 같은 무라!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오는 거였어. 우습게도 화두가 성성해지더군."

이때, 이층이란 표현의 적실성에 대해서야 말할 것이 없지만, 가장 기대되었던 것은 그 일을 통해 세계가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능하느냐고 묻는다면... 최소한 그 순간 동안에야 가능하지 않겠나?(애들은 가라~)

"평화, 또는 사랑이라는 말은 일정한 거리를 두었을 때만 빛날 수 있는 단어야. 거리를 좁혔을 때는 이미 죽어버려. 그게 사랑과 평화의 운명이야."

나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거리'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이스라엘의 평화는 똑같이 발음되어도 다른 말이다. 즉, 그 평화의 실체(내용)를 모를 때만 비로소 동의할 수 있다는 거다.

"인간이 늙는다는 것,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구원이 아닐까.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언제까지나 팽팽한 젊음 그대로 있다면 저 산 같고 바다 같고 하늘과 같은 사랑과 미움과 원한과 그리고 저 욕정을 다 어쩌겠는가. 이것은 그 여자가 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줬다는 피의 인연이나 나를 방기하고 도주했었다는 사적 분노 따위를 뛰어넘는 근원적인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여자에게 던지는 사랑은 던지는 무게만큼 내게로 반송될 것이었다. 그 여자의 얼굴에 분가루가 남아 있고 사내들에게 던질 눈웃음 따위가 아직 남아 있는 탱탱한 살집이었다면 난 결코 뿌리 깊은 증오를 해제할 수 없었으리라."

내가 김성동에 코박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 그건 아마도 삶의 내력이 비슷했던 까닭...

"여자가 코를 골 때마다 반쯤 떨어진 가짜 속눈썹 한쪽이 엷게 흔들렸다. 화장이 밀린 피부는 거칠었고 나무뿌리 같은 잔주름이 눈가에 얽혀 있었다. 서른, 어쩌면 마흔 살쯤 먹은 노창인지도 몰랐다. 나는 여자의 벗은 하체를 바라보았다. 닭다리처럼 거칠고 메마른 육의 한 가운데에 낡은 칫솔처럼 성긴 음모가 짓밟힌 풀잎처럼 눕혀져 있었다.

나는 그런 여자의 참담한 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보다가,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방매하는 시장의 가축처럼 내던져져 있는 저 여자의 모든 것이 바로 나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무너지듯 여자의 배 위에 엎드려 이층을 만들었다.

도시는 부옇게 밝아 오고 있었다. 아직 새벽이었는데로 길 위로는 많은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나는 정거장 쪽을 잠깐 바라보다가, 차표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사람들 속으로 힘껏 달려갔다."

황석영의 "객지", 최인훈의 "광장" 그리고 김성동의 "만다라", 존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멋진 엔딩을 지닌 소설들이었다.

아마도 여성이 출산을 전담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드는 것이 여자의 몸속에 피어나는 삶에 대한 환상일 듯 싶다. 죽음이야 누구에게라도 공평할 테지만... 그런 점에서도 "사랑의 창세기를 다시 쓰고 싶다"는 시인의 욕망은 절대적으로 여성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시인이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죽도록 사랑해서"란 말은 결국 이 둘이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란 말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랑과 죽음은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다.

죽도록 사랑해서 ...
붉은 감 한 알,
분꽃 씨앗,
붉게 타오르는 단풍잎도,
세상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할 바에야 사랑하며 죽는 것도 괜찮을 터수다.
에라, 사랑이나 실컷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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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부부


- 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때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 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현대시학> (2004년 10월호)



*



어느 시인들 아름답지 않으련만은
반칠환의 시는 아름답기 보다 어여쁘다.
아니 아직 덜 여문 어린 아이 잠지처럼 예쁘다.


사랑이 온통 뜨겁기만 한 것인 줄 알았더니
사랑이 저리도 따순 것이기도 한 것이구나
사랑이 저리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리워도 되는 것이구나



반칠환의 시를 보니 알겠구나.
그 발치에 수북이 쌓인 노란 엽서들을 허투루이 밟아선 아니되겠거든
이 가을에 지구가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라는
반칠환의 덜 여문 잠지 같이 어여쁜 시를 읽어라.

* 덜 여문 잠지 같이 어떤 시는 예쁘고, 어떤 시는 아직 풋풋하다.
문학적 성취와 상관없이 그래도 좋은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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