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하석 - 버려진 병 버려진 병 - 이하석 바람 불어 와 신문지와 비닐 조각 날리고 깊은 세계 속에 잠든 먼지 일으켜 놓고 사라진다, 도꼬마리 대궁이 및 반짝이는 유리 조각에 긁히며. 풀들이 감춘 어둠 속 여름은 뜨거운 쇠 무더기에서 되살아난다. 녹물 흘러, 붉고 푸른 뜨겁고 고요한 죽음의 그늘 쌓은 채. 목마른 코카콜라 빈 병, 땅에 꽂힌 채 풀과 함께 기울어져 있다, 먼지와 쇠조각들에 스치며 이지러진 알파벳 흙 속에 감추며. 바람 빈 병을 스쳐갈 때 병 속에서 울려오는 소리, 끊임없이 알아듣지 못할 말 중얼거리며, 휘파람처럼 풀들의 귀를 간질이며. 풀들 흘리는 땀으로 후줄그레한 들판에 바람도 코카콜라 병 근처에서는 목이 마르고. 바람은 끊임없이 불어 와 콜라 병 알아듣지 못할 말 중얼거리며 쓰러진다. 풀들 그 위를 덮고 .. 더보기
김형영 - 지는 달 지는 달 - 김형영(金泂榮) 이제 지는 달은 아름답다 캄캄한 하늘에 저리 밀리는 구름떼들 데리고 우짖는 草木 사이에서 이제 지는 달은 6천 만 개 눈 깜짝이는 바람에 다시 뜨리니 누가 이 세상 벌판에 혼자 서서 먼 草木 새로 지는 달을 밝은 못물 건너듯 바라보느냐 4월 초파일 절간에 불 켜지듯 바라보느냐 한 해에도 가장 캄캄한 밤에 우리 모두 바라보는 사람들, 바라보는 눈길마다 지난 날은 되살아 머뭇거리다가 멀리 사라진다 이제 지는 달은 아름답다 * "이제 지는 달은 아름답다" 학교에서는 이렇게 앞 뒤를 같은 구절로 끝맺는 시를 수미상관(首尾相關)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처음과 끝이 서로 관련이 있다는 뜻인데 모두 4연의 이 시에서 마지막 연의 "이제 지는 달은 아름답다"는 앞의 3연이 모두 7행, 5.. 더보기
오탁번 - 꽃 모종을 하면서 꽃모종을 하면서 - 오탁번 따뜻한 봄날 꽃밭에서 봉숭아 꽃모종을 하고 있을 때 유치원 다니는 개구장이 아들이 구슬치기를 하고 놀다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모종삽을 든 채 나는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아빠 아빠 쉬도 마렵지 않은데 왜 예쁜 여자애를 보면 꼬추가 커지나? 아들은 바지를 까내리고 꼬추를 보여주었다 정말 꼬추가 아주 골이 나서 커져 있었다 꼬추가 커졌구나 얼른 쉬하고 오너라 생전에 할머니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손자에게 말씀하시던 일이 생각나 나는 목이 메었다 손자의 부자지를 쓰다듬으시던 할머니는 무너미골 하늘자락에 한 송이 산나리꽃으로 피어나서 지금도 손자의 골이 난 꼬추를 보고 계실까 오줌이 마렵지 않은데 예쁜 여자애 알아보고 눈을 뜬 내 아들의 꼬추를 만져보며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럼 그렇.. 더보기
뉴미디어 시대의 청소년문학- 오늘의 청소년들은 무엇을 읽는가(계간 <청소년문학>, 2006년 가을호) 뉴미디어 시대의 청소년문학 - 오늘의 청소년들은 무엇을 읽는가 들어가며 - 뉴미디어 시대의 신인류, 청소년 우리 젊은이들은 사치를 너무 좋아한다. 그들은 버릇이 없고 권위를 무시한다. 그들은 어른을 공경하지 않으며, 교훈 대신 잡담을 좋아한다. 젊은이들은 또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손님 앞에서 떠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그들의 선생 앞에서 횡포를 부린다. 특별히 부연설명을 달지 않는다면 위의 말을 누가, 언제 한 것인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기원전 5세기 경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이 말은 세대갈등이 존재하는 한 수없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갈등이 사회의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세대 갈등이 표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 더보기
최두석 - 달래강 달래강 - 최두석 임진강이 굽어 흐르다 만나는 휴전선, 그 달개비꽃 흐드러진 십 리 거리에서 부모 없이 과년한 오누이가 살고 있었다. 오누이는 몇 마디씩 고구마 넝쿨을 잘라서 강 건너 밭에 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고스란히 다 맞고 바라본 누이의 베옷. 새삼스레 솟아 보이는 누이의 가슴 언저리. 숨막히는 오빠는 누이에게 먼저 집에 가라 하고 집에 간 누이는 저녁 짓고 해어스름에도 아직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찾아 나섰다. 덤불숲 헤매다 반달이 지고 점점점 검게 소리쳐 흐르는 강물, 그 곁에 누워, 오빠는 죽어 있었다. 자신의 남근을 돌로 찍은 채. 하여 흐르는 강물에 눈물 씻으며 누이가 뇌었다는 말, "차라리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그래....." * 최두석 시인의 이 시를 낭송.. 더보기
베르톨트 브레히트 - 후손들에게 후손들에게 - 베르톨트 브레히트 I 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없는 언어는 어리석게 여겨진다. 주름살 하나없는 이마는 그가 무감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웃는 사람은 단지 그가 끔직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 저기 한적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을 곤경에 빠진 그의 친구들은 아마 만날 수도 없겠지? 내가 아직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믿어 다오. 그것은 우연일 따름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나에게 배불리 먹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우연히 나는 해를 입지 않았을 뿐이다.(나의 행운이다하면, 나도 .. 더보기
레이먼드 브릭스 - 바람이 불 때에 | 시공주니어(1999) 바람이 불 때에 | 레이먼드 브릭스 지음 | 김경미 옮김 | 시공주니어(1999) 이 책의 저자 이름을 보고 이 책이 그의 다른 책들 가령 "스노우맨, 산타할아버지의 휴가, 곰" 등을 연상하는 분들은 레이먼드 브릭스(Raymond Briggs)를 잘 아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약간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다른 작품들이 일종의 해피엔딩에 아동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이 책은 아동들이 읽기 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혹은 만화를 이용한 일종의 반핵계몽서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5분 17초. 핵폭탄이 투하되자 폭격기 승무원들은 눈을 보호하기 위해 서둘러 특수방안경을 착용했고, 히로시마 상공 570m 지점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은 성공적으.. 더보기
풍소헌(風蕭軒)의 유래 풍소헌(風蕭軒)의 유래 다산 정약용 선생은 "아언각비"라는 책에서 전, 당, 각, 루, 정, 재, 헌 등 각 건물을 구분하는 법을 적었다고 하는데, 이는 신분적 위계질서가 뚜렷했던 조선시대의 궁궐 건축에도 역시 그런 위계와 건축 양식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각기 달리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은 그런 위계와 의미, 건축 양식에 따라 다른데, "전"은 궁궐의 건물 중에서도 가장 격이 높은 건물로 왕과 왕비, 전왕비, 왕 어머니나 할머니 등이 공적인 활동을 하는 건물로 세자나 영의정 등은 전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당"이란 "전"에 비해 외적 규모는 떨어지지 않을 수 있어도 "전"보다 한 단계 낮은 건물을 일컫는 말로 "전"이 공적인 영역이라면 "당"은 일상적인 생.. 더보기
조은 - 동질(同質) 동질(同質) - 조은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 나 지금 입사시험 보러 가. 잘 보라고 해줘. 너의 그 말이 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밧줄처럼 잡고 있는 추레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잡을 것이 없었고 잡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 긴장을 못 이겨 아무 데서나 잠이 들었다 망설이다 나는 답장을 쓴다 --- 시험 잘 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출처: 『황해문화』, 2004년 봄호 * 문득, 잘 사느냐고... 밥은 먹고 지내느냐고 안부를 묻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서럽게 울었었지. 그래, 그래... 걱정하지마...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어때... 그래그래... 밥이 보약이지... 소식없으면 .. 더보기
부도덕한(?) 진보주의자의 불온한 욕망과 예술 - 최경태 2001년 5월 30일, 최경태는 ‘여고생-포르노그라피2'란 이름의 전시회를 열었다가 결국 이 문제로 6월 2일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검찰에 고발되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은 “단순한 누드가 아니고, 여고생의 오랄 등 보는 이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는 판결문과 함께 화가에게 벌금 200만원, 음화로 지목된 작품 31점의 압류 소각 결정이 내려졌다. 2002년 8월 음화 전시판매, 음란문서 제조 교사 판매 반포죄가 적용되었고, 대법원 상고는 기각되었다. 2003년 01월 03일 오후 01시. 여고생 그림(음화) 31점 압류 집행, 소각예정, 종로경찰서 형사 4명이 충북 음성 작업실 겸 집을 방문. 눈이 이렇게 오는데 ... 자식들을 보내자니 마음이 아픕니다. 나 혼자 ...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