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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 - 연가 연가(戀歌) - 김기림 두 뺨을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거세어 별이 꺼진 하늘 아래 짐승처럼 우짖는 도시의 소리 피해오듯 돌아오면서 내 마음 어느 새 그대 곁에 있고나 그대 마음 내게로 온 것이냐 육로(陸路)로 천리(千里) 수로(水路) 천리 오늘 밤도 소스라쳐 깨우치는 꿈이 둘 가로수 설레는 바람소리 물새들 잠꼬대…… 그대 앓음소리 아닌 것 없고나 그대 있는 곳 새나라 오노라 얼마나, 소연하랴 병 지닌 가슴에도 장미 같은 희망이 피어 그대 숨이 가뻐 처녀같이 수다스러우리라 회오리 바람 미친 밤엔 우리 어깨와 어깨 지탱하여 찬비와 서릿발 즐거이 맞으리라 자빠져 김나는 뭉둥아리 하도 달면 이리도 피해 달아나리라 새나라 언약이 이처럼 화려커늘 그대와 나 하루살이 목숨쯤이야 빛나는 하루 아침 이슬인들 어떠랴 ({.. 더보기
정호승 - 벗에게 부탁함 벗에게 부탁함 - 정호승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벗이여 저 꽃 같은 놈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 개인적으로 정호승의 시가 90년대 들어와서 휠신 더 천연덕스러워졌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위와 같은 말이 그의 진심일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욱 도지는 지도 모르겠다. 에이, 저 꽃 같은 놈! 하긴 꽃도 꽅 나름이라 이 사쿠라 같은 놈이라고 말하면 그건 욕이다. 욕도 이만저만한 욕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쿠라 꽃을 보면서 욕봤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전에 아마 이달의 영화로 '친구'를 추천했다가 그 추천을 .. 더보기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 정송희/ 새만화책/ 2004년 성폭력에 대한 단상 - 정송희의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을 빌어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 정송희 지음 / 새만화책 / 2004년 5월 "인간에게는 어두운 면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낙관론만을 어린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문화적인 관습이 되었다" - 브루노 베텔하임 1. 있잖아. 누가 그러는데 정송희의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이런 글을 쓸까말까 하는 생각에 내내 사로잡혔음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우선 작가는 나와 동년배다. 어설픈 세대 공감론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동년배라는 것은 불운한 시대라면 불운한대로 손쉽다면 손쉬운 대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 공감이 단순한 공감의 .. 더보기
오주석 선생님, 당신을 그리워하며... 미술사학자 오주석(吳柱錫) 선생이 1년 반의 백혈병 투병 끝에 지난 5일 오후 9시 반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향년 49세의 일기로 소천(召天)하셨다는 기사를 읽을 때 제 마음은 쿵하고 저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매번 당신의 건강을 묻던 김명인, 이용식, 노대명, 장석남, 백원담, 김진방 편집위원들 그리고 당신과 함께 자문회의에 참가하시던 김동춘, 홍윤기, 한홍구 선생님들이 늘 당신의 안부를 물었는데, 번번이 제가 연락을 제대로 드리지 못하다가 건강이 많이 호전되셨다는 당신의 이야기가 있었노라, 조만간 한 번 나오시겠노라, 하시더란 말씀만 그렇게 전해드렸었는데 별안간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 번도 병문안을 가보지 못하고 신문 기사로 그 소식을 접한 제 게으름에 부끄러움으로 몸둘 바를.. 더보기
2006년 바람구두의 새해 인사 "오늘도 삶을 생각하기보다/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워라// 세상이 나를 버릴 때마다/ 세상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나는// 아침햇살에 내 인생이 따뜻해질 때까지/ 잠시 나그네새의 집에서 잠들기로 했다// 솔바람소리 그친 뒤에도 살아가노라면/ 사랑도 패배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른 잎새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내가 울던 날/ 싸리나무 사이로 어리던 너의 얼굴// 이제는 비가 와도/ 마음이 젖지 않고// 인생도 깊어지면/ 때때로 머물 곳도 필요하다" - 정호승, 쓸쓸한 편지 창 밖이 부옇습니다. 여러분들이 나누는 정담과 덕담들 속에 앉아 있노라니 문득 외톨이였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계시지 않던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번번이 속절없는 마음으로 맞으며 따스한 품이 많이 그리웠더.. 더보기
문화연구란 무엇인가 - 문화연구의 위기 혹은 기회 문화연구란 무엇인가 - 문화연구의 위기 혹은 기회 - 존 스토리 엮음, 백선기 옮김(2004), 『문화연구란 무엇인가』, 커뮤니케이션북스1) 언제나 존재하였으며 결코 지배계급의 공식문화와 합쳐지지 않았던 민중의 독특한 웃음 문화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결코 과거 인류 역사의 문화적, 문학적 삶과 투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를 조명할 때에, 우리는 자주 "각 시대의 말을 믿도록", 즉 그 시대의 공식적 이데올로기(많건 적건)의 주창자들을 믿도록 강요받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민중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민중의 순수하고 흠없는 표현을 찾아서 해독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오늘날까지 우리는 중세와 중세 문화에 대해 매우 단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세계사라는 드라마의 모든.. 더보기
노동 없는 노동의 시대 - 「모던 타임즈」의 “찰리”에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찰리”까지 자본주의 - 프로테스탄티즘 혹은 자본주의 정신이 빚어낸 정신질환 “왕이시여, 로마를 이긴 후에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당연히 이탈리아를 정복해야지!” “그 후에는요?” “시칠리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그러면 전쟁이 끝납니까?” “물론 아니지. 그것은 보다 위대한 일들을 위한 시작과 전주곡에 불과하다. 리비아가 남아 있고 카르타고도 그리 멀지 않으니 말이야. 그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는 더 이상 적이 남아 있지 않게 될 걸세.” “분명히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 후엔 무엇을 하지요?” “그 후에는 조용히 인생을 즐겨야지.” “그렇다면 이곳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되나요?” 이탈리아로 건너가려고 준비할 때 피로스와 그의 부하가 나눈 대화 브레히트의 시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더보기
김동춘, 『전쟁과사회』, 돌베게, 2000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는 군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휴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지 않고 있으며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한국전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오늘의 한국정치, 한국경제, 한국사회, 한국의 법과 사회심리, 이데올로기 등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1. 또 다른 전쟁 한국인들(한국사회)은 전쟁 개시일을 전쟁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이를 기억(기념)함으로써 휴전체제를 평화로 가는 길이 아니라 “더 진행되어 끝을 보았어야 할 전쟁의 ‘내키지 않는 정지’ ”로 내면화시켜왔다. 이는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발생하기만 하면 한국의 언론과 지식인 사회가 이성을 상실하는 현상을 불러온다. 극한의 대결이 상호 파멸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초래할지라도 일단은 상.. 더보기
가족은 없다 다이애너 기틴스 / 일신사 / 1997년 7월 우리는 오늘날 스탈린이 엄청난 독재자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 중후반 소련 인민들도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오늘날 환경문제의 심각함을 알고 있다. 과연 1950년대의 사람들도 그러했을까? 우리는 오늘날 글로벌 미디어로서 TV의 엄청난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과연 1952년 처음으로 미국 전역에 최초로 1년 내내 상시 방송이 진행될 무렵, 오늘날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이 처음 발간된 1985년 무렵 이 책이 주장하던 "가족 이데올로기"의 상당수는 대한민국 사회에선 아직 낯선 이야기였고, 국내에 이 책이 번역된 것이 지난 1997년의 일이니 10년도 지난 후의 이야기이다. 올해가 2005년이므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 벌써 20년 전의 일이 된다. 따라서 기틴스가.. 더보기
의미를 둘러싼 투쟁 여전히 저질 시비에 시달리고는 있으나 오늘날 모든 계층을 망라하여 가장 많은 이들이 즐기고 경험하는 문화이며, 우리의 일상이자 역사를 형성하고 있는 대중문화. 여전히 우리의 의식 속에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법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관점을 대중들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관점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인식은 지배계급이 엘리트와 대중을 계몽 대 야만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통해 대중을 수동적, 야만적 집단으로 계몽과 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중은 엘리트에 의해 조작되는 동시에 나름대로 대중문화 텍스트를 해석하고 실천하는 주체들로서 그들 나름의 미학적 판단에 따라 취사선택하고 있다. 지금까지 예술을 바라보는 미학은 전통예술에 기초해 엘리트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일 뿐이며, 이는 서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