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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

김소월 - 가는 길 가는 길 - 김소월 그렵다 말을 할 하니 그려워 그냥 갈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져 산(山)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압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도라오라고 도라가쟈고 흘너도 년다라 흐릅듸다려* ({개벽} 40호, 1923.10) * 흐릅디다려 : '흐릅니다그려'의 준말. - 김소월의 시가 좋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이 조선인이기 때문에 그런지 모른다. 그 구질구질한 감정들. 뭔 설움이 그리도 많은지....시라는 것은 이렇게 감정에서 감정으로 흐르는 것인데도 우리가 받는 문학교육은 감정에서 감정으로 흐르는 솔직한 제 감정에 빠질 틈을 주지 않는다. 기승전결의 도치법이니 선정후경이니 선경후정이니 시적허용이니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것 아니라도 시.. 더보기
김수영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느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더보기
김기림 - 연가 연가(戀歌) - 김기림 두 뺨을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거세어 별이 꺼진 하늘 아래 짐승처럼 우짖는 도시의 소리 피해오듯 돌아오면서 내 마음 어느 새 그대 곁에 있고나 그대 마음 내게로 온 것이냐 육로(陸路)로 천리(千里) 수로(水路) 천리 오늘 밤도 소스라쳐 깨우치는 꿈이 둘 가로수 설레는 바람소리 물새들 잠꼬대…… 그대 앓음소리 아닌 것 없고나 그대 있는 곳 새나라 오노라 얼마나, 소연하랴 병 지닌 가슴에도 장미 같은 희망이 피어 그대 숨이 가뻐 처녀같이 수다스러우리라 회오리 바람 미친 밤엔 우리 어깨와 어깨 지탱하여 찬비와 서릿발 즐거이 맞으리라 자빠져 김나는 뭉둥아리 하도 달면 이리도 피해 달아나리라 새나라 언약이 이처럼 화려커늘 그대와 나 하루살이 목숨쯤이야 빛나는 하루 아침 이슬인들 어떠랴 ({.. 더보기
정호승 - 벗에게 부탁함 벗에게 부탁함 - 정호승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벗이여 저 꽃 같은 놈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 개인적으로 정호승의 시가 90년대 들어와서 휠신 더 천연덕스러워졌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위와 같은 말이 그의 진심일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욱 도지는 지도 모르겠다. 에이, 저 꽃 같은 놈! 하긴 꽃도 꽅 나름이라 이 사쿠라 같은 놈이라고 말하면 그건 욕이다. 욕도 이만저만한 욕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쿠라 꽃을 보면서 욕봤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전에 아마 이달의 영화로 '친구'를 추천했다가 그 추천을 .. 더보기
김명인 - 앵무새의 혀 앵무새의 혀 - 김명인 앵무새 부리 속에 혓바닥을 보았느냐? 누가 길들이면 따라 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 아닌 말을 단 한 번 하고 싶은 분홍빛 조봇한 작은 혀를 보았느냐? * 가끔 시를 읽고 나름대로 해석을 하려들거나 이해를 하려고 들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내가 시의 속살을, 그 깊은 속내를 얼마나 파고들 수 있을까? 김명인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나 어릴 적의 국어선생님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나는 유별나게 국어 선생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결국엔 친구 녀석 하나를 꼬드겨 국어선생님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말을 파먹고 산다. 그런데 혹시 아시는지 우리는 한동안 우리말을 우리 국어라고 가르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 시대에는 일본어가 국어였다. 그리고 전.. 더보기
김지하 - 빈산 빈 산 - 김지하 빈 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저 아득한 산 빈 산 너무 길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퍼라 지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 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 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일 줄도 몰라라. *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 끊이지 않고, 하루에 시 한 편을 올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나치게 게으른 친구. 하제누리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었고(그가 필자로 시 읽기를 전담해주기로 .. 더보기
김재진 - 살아라 친구여 살아라 친구여 - 김재진 오래오래 힘든 이 세상도 살아라 친구여 참담히 눈물 마른 들판 질러 강인 듯 기적소리 하나 흘러가고 서른을 넘겨버린 빈 날들 모아 쭉정이처럼 후후 날리며 살아라 친구여 살아라 친구여 죽자고 일하던 사람들 돌아와 새벽을 기다리던 어둠 속에서 새벽이 오면 무엇하랴 풀 끝에 맺힐 이슬 아예 시들고 굴러서 깨어질 빛의 파편만 남은 일의 무게에 눌려 눈 시린데 희망을 만드는 것은 손쉬워라. 만들었다 지우는 아기처럼 금세 지울 죽음이나 떠올리며 가만히 불러보는 세상이여 오래오래 놓치고 싶지 않은 이름처럼 서른 넘겨 견디어 온 이 세상이여 캄캄한 부름으로 살아라 친구여 살아라 친구여 * 때로 산다는 것이 몹시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게다가 우리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 않는가?.. 더보기
황지우 - 늙어가는 아내에게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 더보기
백석 - 흰 바람벽이 있어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셔츠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더보기
강은교 - 별 별 - 강은교 새벽 하늘에 혼자 빛나는 별 홀로 뭍을 물고 있는 별 너의 가지들을 잘라 버려라 너의 잎을 잘라 버려라 저 섬의 등불들, 오늘도 검은 구름의 허리에 꼬옥 매달려 있구나 별 하나 지상에 내려서서 자기의 뿌리를 걷지 않는다 * 1945년 함남 홍원 출생.연세대 영문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문학 박사. 동아대 국문과 교수. 제 2회 한국 문학 작가상 수상. 1968년 '사상계'신인 문학상에 '순례자의 집'이 당선되어 등단함. 윤상규, 임정남, 정희성, 김형영 등과 '70년대' 동인으로 활동함. 주요 시집으로는 '허무집'(1971), '풀잎'(1974), '빈자 일기'(1977), '소리집'(1982), '붉은 강'(1984), '우리가 물이 되어'(1986), '바람 노래'(198..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