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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 편지 편지 - 이성복 1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 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 …… 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2 안녕 오늘 안으로 나는 기억을 버릴 거요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요 나는 선생이 될 거요 될 거라고 믿어요 사실, 나는 아무 것도 가르칠 게 없소 내가 가르치면 세상이 속아요 창피하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하오 결혼할 .. 더보기
이현석 -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스페인에서 인도까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스페인에서 인도까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이현석 (지은이) | 한티재 | 2013-12-09 브루노 베텔하임(Bruno Bettelheim)은 오스트리아 빈출신의 유대계 정신분석학자로 1938년 빈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다하우와 부헨발트에 있는 독일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뒤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줄곧 장애어린이의 심리치료 분야에 종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옛이야기의 즐거움』 같은 책을 썼다. 그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원용해 서구의 어린이 이야기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심리를 분석하면서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어머니의 품을 떠나 낯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어린이들의 두려움과 설렘을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여행기들도 기본적으로는 이와 다르.. 더보기
피휘(避諱)와 역린(逆鱗) 피휘(避諱)와 역린(逆鱗) 다소 뜬금 없는 이야기이긴 한데, 김종인이 새누리당을 탈당한다는 소식이 저간의 화제인데 - 다른 한 편으론 이야말로 뜬금 없다는 생각이 든다. 김종인의 존재감이 사라진지가 언젠데, 경제민주화가 사라진지 언젠데 새삼스레 이걸 가지고 뉴스가 되고 그래 - 그래서 약간 다른 의미에서 아젠다로서 그나마 유의미했던 '경제민주화'가 사라진 마당에 박근혜 정부에 남은 유일한 아젠다는 '창조경제'뿐이란 생각이다(물론, 대선개입이란 블랙홀이 이 모든 걸 삼킬 게다). 조선왕조 500년, '태정태세문단세'를 달달 외워도 우리는 조선 임금들의 시호는 알아도 그들의 이름은 잘 모른다. 기껏해야 아는 이름은 드라마 '이산' 덕분에 정조 임금의 이름이 '이산'이란 정도다. 나중에 "뿌리깊은 나무" 덕분.. 더보기
임재천 - 한국의 재발견 한국의 재발견 - 임재천 (지은이) | 눈빛 | 2013-11-25 임재천의 사진집 "한국의 재발견"은 한국의 '재발견'이 아니라 한국의 '대발견'이다. 그것은 이 사진집의 첫 장만 넘겨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 제일 첫머리에 등장하는 곳은 부산 영도인데, 순간적으로 나는 이곳에서 쿠바의 말레콘(Malecon)을 보았다. 1. 사진은 최초 탄생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몇 안되는 예술장르 중 하나다. 사진의 태초는 프랑스의 니에프스가 자연 풍경을 최초로 고정한 헬리오그라피(Heliography)를 완성한 것이 1826년의 일이었다. 태초의 사진은 풍경이었다. 물론 태초의 사진이 풍경이 된 이유는 당시 기술력으로 상을 정착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8시간이라는 긴 노출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 더보기
"바람과 라이언"과 "사막의 라이언" 1. 숀 코네리와 캔디스 버겐 주연의 영화 "바람과 라이언"은 제국주의 시대의 풍경을 낭만적인 이국주의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은 비판해야겠지만 영화 자체는 상당히 유쾌한 편이다. 고민을 배제한 스펙타클 영화이기 때문인데 아마도 실화일 거라고 오랫동안 추측만 하다가 찾아냈다. 종군기자였던 제임스 빈센트 시언은 1925년 프랑스군과 스페인군의 감시를 피해 모로코의 리프족 반군 진영의 지도자 압 델 크림과 압 델 라이슐리 형제를 인터뷰하는데 성공했다. 바로 압 델 라이슐리가 숀 코네리가 연기했던 그 실존 인물이었다. 그는 1904년 그리스 출신 미국인 갑뷰 이온 페다카리스를 납치한 것으로 유명해진 인물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배경을 뒤져보는 일은 참 흥미롭다. 숀 코네리, 캔디스 버겐 주연의 "바람과 라이언.. 더보기
다크 트루스(A Dark Truth, 2012) 다크 트루스(A Dark Truth, 2012) 다미안 리 감독의 "다크 트루스"에서는 오랜만에 앤디 가르시아가 진지한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케빈 두런드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일단 나오면 그만한 정도는 항상 보여주는 포레스트 휘태커, 다미안 리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킴 코티스 등등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기본은 해준 영화다. 영화의 내용은 제3세계에서 '상수도 민영화'를 추진하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 에콰도르의 타이카란 지역에서 상수도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정수시설이 오염되면서 이 지역에 집단적으로 티푸스가 발병하자 다국적 기업과 결탁한 지역의 군사령관이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집단학살하는 사건을 둘러싼 갈등과 진실의 문제를 다룬다. 앤디 가르시아는 .. 더보기
조지욱 - 길이 학교다 : 산길, 강길, 바닷길에서 만나는 세상의 모든 역사 길이 학교다 - 산길, 강길, 바닷길에서 만나는 세상의 모든 역사 조지욱 (지은이) | 낮은산 | 2013-10-28 나는 '길'을 사랑한다. 그러나 인간에겐 문명과 소통을 상징하는 길이 생명에겐 죽음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길을 걸을 때마다 가끔이라도 그 길의 무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부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고 있는 조지욱 선생의 책 "길이 학교다"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펼쳤다. 그저그런 청소년 상식 증진용 도서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마감 뒤끝의 심심파적 읽을거리 정도로 시작했는데 "청소년들을 독자로 겨냥한 듯 난이도 자체는 높지 않지만, 깔끔한 문장과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내용에 담긴 수준 높은 통찰이 돋보이는 훌륭한 지리(地理) 입문서"였다고만 정의하고 .. 더보기
황해문화 창간 20주년 기념호 "황해문화" 창간 20주년 기념호를 화요일부터 발송작업합니다. 감개무량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감개가 무량하지요. 특별한 기념행사 같은 거 못합니다. 잡지야 잡지 그 자체가 기념인 게죠. 어떤 한 시절, 어떤 한 잡지가 있었다고 말되어지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흔하고 넘치는 듯 시절인 듯 보이나 찾아보면 이만한 잡지, 요즘 참 드물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 김명인 선생의 글이 참 좋습니다. 꼭꼭 씹어서 읽어주시길.... 길 없는 곳에서 시작되는 길 김명인 『황해문화』가 20주년을 맞는다. 1993년 겨울호를 창간호로 내고 이제 다시 2013년 겨울호를 내는 것이다. 계간지 20년이 그리 긴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척박한 한국적 문화지형 속에서도 이보다.. 더보기
‘백파이어 폭격기’로 본 '정보'에 대한 어떤 생각. ‘백파이어 폭격기’로 본 '정보'에 대한 어떤 생각. 지난 냉전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만한 전략폭격기 중 하나가 구소련이 보유하고 있던 '백파이어폭격기'란 것이 있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일은 솔직히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핵무기를 투사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핵무기를 소형화하면 할수록 사용할 수 있는 용도가 다양다종해지기 때문에 누구라도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고 싶어 하지만 핵무기란 기본적으로 원자를 분열시키기 위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온고압이 필요한 무기이므로 소형화하기 위해선 대단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간혹 우리 힘이든, 남의 힘이든 첨단 로켓을 개발하여 쏘아 올리면서 이번엔 위성의 무게가 몇 톤까지 가능하다거나 뭐라거나, 블라블라 하면서 로켓의 탑.. 더보기
루 추안 감독의 영화 <초한지: 영웅의 부활(2012)> 루 추안 감독의 영화 은 영어 제목 'The Last Supper'가 영화의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유방 역을 맡은 '류예', 항우 역을 맡은 '오언조, 한신 역을 맡은 '장첸'의 연기는 물론 여씨 부인역을 맡은 '진람'의 연기가 기존 중국 배우들의 과장되고 기름진 연기와 달리 기름기를 거둬내 담백한 편이다. 영화 속에서 만찬은 영화의 앞 부분과 뒷 부분에 두 번 반복된다. 앞의 한 번은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인 장락궁을 함락시킨 뒤 권력과 환락에 눈이 어두워진 나머지 장량의 조언을 듣지 않고, 불필요하게 항우를 자극시켜 죽음 직전의 위기에 내몰리게 되는 '홍문의 연(鴻門宴)'을 겪은 뒤 극적으로 생존하는 만찬이다. 항우와 유방은 진을 멸망시킨다는 공동의 대의로 뭉쳤으나 이후 천하쟁패를 위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