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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편집자로서 우리 세대, 정확히 내 세대는 스티브 잡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대학에서 교지를 만들 때만 해도 대지바리 작업을 위해 손가락마다 3M스프레이 접착제를 덕지덕지 붙이고 살았으니까. 초기엔 안정성이 떨어져 작업한 것들 날려먹기 일쑤였지만.. 인간의 위대한 진보는 위대한 한 사람의 거인이 독차지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갈망하며 때로 바보 같이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자들에 의해서만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흔들리지 않는 진실이다. 잡스의 명복을 빈다. 더보기
복효근 - 아름다운 번뇌 아름다운 번뇌 - 복효근 오늘도 그 시간 선원사 지나다 보니 갓 핀 붓꽃처럼 예쁜 여스님 한 분 큰스님한테서 혼났는지 무엇에 몹시 화가 났는지 살풋 찌뿌린 얼굴로 한 손 삐딱하게 옆구리에 올리고 건성으로 종을 울립니다 세상사에 초연한 듯 눈을 내리감고 지극정성 종을 치는 모습만큼이나 그 모습 아름다워 발걸음 멈춥니다 이 세상 아픔에서 초연하지 말기를, 가지가지 애증에 눈감지 말기를, 그런 성불일랑은 하지 말기를 들고 있는 그 번뇌로 그 번뇌의 지극함으로 저 종소리 닿는 그 어딘가에 꽃이 피기를... 지리산도 미소 하나 그리며 그 종소리에 잠기어가고 있습니다. * 승려란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인연(因緣)을 걸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여 대오각성(大悟覺醒)하는 것을 목표로 수행하는 자를 말한다. 태어남과 .. 더보기
이것이 명품이다 - 조미애 (지은이) | 홍시(2009년) 이것이 명품이다 - 조미애 (지은이) | 홍시(2009년) "이것이 명품이다"란 책이 어쩌다 보니 집구석에 굴러 다녔다. 아마도 아내가 어디서 구해왔을 것이다. 뒹굴거리다 손에 잡힌 이 책을 나는 나름대로 참 재미있게 보았다. 우선 코코 샤넬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트렌치코트의 대명사 버버리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사실 이 책에 실린 내용 가운데 상당수는 시공사에서 나온 "남자의 옷 이야기1.2"를 통해 이미 아는 내용도 있었지만, 명품을 중심으로 꾸려나간 책 이야기는 윤광준 선생이 쓴 책 등이 있긴 하지만 읽어보긴 처음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브랜드들을 살펴보니 샤넬이나 아르마니, 크리스찬 디올, 휴고 보스, 버버리, 루이 비통 처럼 낯익은 브랜드들도 있고, 에르메네질도 제냐, 에르메스, 세린느, 아.. 더보기
윤제림 - 길 길 - 윤제림 꽃 피우려고 온 몸에 힘을 쓰는 벚나무들, 작전도로 신작로 길로 살 하나 툭 불거진 양산을 쓰고 손으로 짰지 싶은 헐렁한 스웨터를 입고 곰인형 가방을 멘 계집애 손을 붙들고 아낙 하나가 길을 간다 멀리 군인트럭 하나 달려가는 걸 보고, 흙먼지 피해 일찍 피어난 개나리 꽃 뒤에 가 숨는다 흠칫 속도를 죽이는 트럭, 슬슬 비켜가는 짐 칸 호로 속에서 병사 하나 목을 빼고 외치듯이 묻는다 "아지매요, 알라 뱄지요?" 한 손으로 부른 배를 안고,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아낙이 수줍게 웃는다 금방이라도 꽃이 피어날 것 같은 길이다. * "아지매요, 알라 뱄지요?"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동네 어귀에서 부른 배를 뒤뚱거리며 걷는 아줌마를 본 적이 있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아줌마 저 배에 들어있는 게 .. 더보기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 움베르토 에코가 들려주는 이야기 -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웅진주니어(2005년)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 움베르토 에코가 들려주는 이야기 -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웅진주니어(2005년) 불경하게도 움베르토 에코의 이 책을 피터 L. 버거의 "사회학으로의 초대"를 읽다가 머리를 잠시 식힌다는 의미에서 옆으로 젖혀두었다가 붙잡고 10여분만에 읽어 버렸다.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에는 모두 3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첫 번째 이야기는 원자폭탄을 사랑한 지구의 장군 이야기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이야기이며, 세 번째 이야기는 우주 탐사를 나서 작은 난장이 외계인을 만난 지구 우주인의 이야기다. 당연한 말이지만, 에코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오히려 편안하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그렇다고 에코가 지은 .. 더보기
'그'와의 짧은 동거 : 장모씨 이야기 - 장경섭 지음 / 이미지프레임(길찾기) / 2005년 '그'와의 짧은 동거 : 장모씨 이야기 - 장경섭 지음 / 이미지프레임(길찾기) / 2005년 장경섭과 최초의 인연을 창비에서 나온 『십시일반』으로 생각했는데 어제 후배가 전해준 『저예산독립만화지 1996년 6월호 통권 제2호-화끈』을 보니 그와 나의 인연은 그가 데뷔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야 했다. 그런데 고백할 것은 그에 대한 내 기억을 되살려 준 것은 『화끈』에 실린 그의 작품 때문이 아니라 여기에 실렸던 김동고의 "돌아온 조단" 때문이었다. 이 작품의 그림체가 당시 내게는 꽤 특이하게 느껴졌고, 그 무렵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단이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던 무렵이라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그런 점만 놓고 보자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하고 창비에서 펴낸 작품집 『십시일반』에서도 마찬가.. 더보기
백석 - 여승(女僧) 여승(女僧) -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山)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말이 담고 있는 정경이 구구절절하게 아프고, 아프다. 머리 깎은 여승이 속세에서 겪은 삶의 내력이 한 편의 짧은 시에 모두 담길 수 있을까? 아마도 삶의 이러한 면, 저러한 면을 사려 깊게 살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가 보여주는 몇.. 더보기
나태주 - 산수유 꽃 진 자리 산수유 꽃 진 자리 - 나태주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누구에겐가 말해주긴 해야 했는데 마음 놓고 말해줄 사람 없어 산수유꽃 옆에 와 무심히 중얼거린 소리 노랗게 핀 산수유꽃이 외워두었다가 따사로운 햇빛한테 들려주고 놀러온 산새에게 들려주고 시냇물 소리한테까지 들려주어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차마 이름까진 말해줄 수 없어 이름만 빼고 알려준 나의 말 여름 한 철 시냇물이 줄창 외우며 흘러가더니 이제 가을도 저물어 시냇물 소리도 입을 다물고 다만 산수유꽃 진 자리 산수유 열매들만 내리는 눈발 속에 더욱 예쁘고 붉습니다. * "풀꽃"의 시인 나태주의 시들은 따사롭다. 얼핏 생각없이 바라보는 나태주 시인의 시들은 따사롭기 그지 없어 예쁘기만 한 시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그의 따사로운 시어들을 곰.. 더보기
프랜시스 W. 부르디옹 - 빛(Light) 빛(Light) - 프랜시스 W. 부르디옹(Francis W. Bourdillon, 1852-1921) The night has a thousand eyes, The day but one; Yet the light of the bright world dies With the dying sun. The mind has a thousand eyes, And the heart but one; Yet the light of a whole life dies When its love is done. 밤엔 천 개의 눈이 있고 낮엔 오직 하나가 있지 하지만 밝은 세상의 빛은 해가 지면 사라지고 말아 정신엔 천 개의 눈이 있고 가슴엔 오직 하나가 있지 하지만 온 생명의 빛은 사랑이 꺼질 때 사라지고 말아 * 제목이 Th.. 더보기
김시습(金時習) - 사청사우(乍晴乍雨) 乍晴乍雨 - 김시습(金時習) 乍晴還雨雨還晴, 天道猶然況世情 (사청환우우환청 천도유연황세정) 譽我便是還毁我, 逃名却自爲求名 (예아변응환훼아 도명각자위구명) 花門花謝春何管 雲去雲來山不爭 (화개화사춘하관 운거운래산부쟁) 寄語世人須記憶 取歡無處得平生 (기어세인수기억 취환무처득평생) 갰다가 비가 오고 비 오다가 다시 개이니, 하늘의 도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세상 인정이랴. 나를 기리는 사람 문득 돌이켜 또 나를 헐뜯을 터, 공명을 피하더니 저마다 또 공명을 구하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상관하랴, 구름이 가고 오는 것을 산이 무엇을 다투랴. 세상 사람들아 내 말 새겨들으시라, 즐겁고 기쁜 일 평생 가지 않나니. 조선 초기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이 지은 "사칭사우"를 우리말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