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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 사칭 사칭(詐稱) - 김왕노 나는 사람과 어울리려 사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꽃과 어울리려 꽃을 사칭하였고 나는 바람처럼 살려고 바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늘 사철나무 같은 청춘이라며 사철나무를 사칭하였고 차라리 죽음을 사칭하여야 마땅할 그러나 내일이 오면 나는 그 무엇을 또 사칭해야 한다 슬프지만 버릴 수 없는 삶의 이 빤한 방법 앞에 머리 조아리며 출처 : 김왕노, 『슬픔도 진화한다』, 천년의 시작, 2002 * 가을이라 모든 것이 허망해 보이지만 세상에 끝이 없으면 시작도 없는 법이다. 시인 김왕노의 「사칭(詐稱)」을 읽노라니 문득 얼마 전 내가 어느 젊은 영혼에게 씹어 뱉듯 내쏘아준 말이 생각났다. 나는 그에게 ‘너도 나처럼 사람들 앞에서 사기 치면서 살라’고 그렇게 충고한 적이 있다. 새나 짐승을 관찰하려는.. 더보기
앙리 미쇼 - 바다와 사막을 지나 바다와 사막을 지나(A travers Mers et Desert) - 앙리 미쇼(Henri Michaux) 효력 있다 숫처녀와 씹하듯 효력 있다 효력 있다 사막에 물이 없듯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효력 있다 효력 있다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따로 서 있는 배반자처럼 효력 있다 물건을 감추는 밤처럼 효력 있다 새끼를 낳는 염소처럼 조그맣고 조그맣고 벌써 비탄에 잠긴 새끼들 효력 있다 독사처럼 효력 있다 상처를 낸 단도처럼 그걸 보존하기 위한 녹과 오줌처럼 강하게 하기 위한 충격, 추락, 동요처럼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효력 있다 결코 마르지 않는 증오의 대양을 가슴에 심어주기 위한 모멸의 웃음처럼 효력 있다 몸을 말리고 넋을 굳히는 사막처럼 효력 있다 내팽개쳐 논 시체를 뜯어 먹는 하이에나.. 더보기
왕가위 - 중경삼림(重慶森林) 중경삼림(重慶森林) - 감독 : 왕가위 출연 : 임청하, 양조위, 왕정문, 금성무 등 '해가 뜨면 사랑이 끝난다'라는 노래가 있다. 내 심정이 지금 그렇다 어떻게 메이를 잊지? 난 혼자 약속을 했다 바에 제일 처음으로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했다. 란 잡지가 정확하게 언제 창간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에 내가 몰입하게 된 것은 실연과 함께였다. 7년을 사귀던 여자와 헤어졌을 때 나는 미친듯이 영화를 보았다. 엔 이런 대사가 있다. "실연당한 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참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땀이 흐른다. 수분이 다 빠져 나가버리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거라 믿기 때문이다." 연애를 해 본 사람들은 안다. 실연당했을 때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다. 그래.. 더보기
황인숙 - 후회는 없을 거예요 후회는 없을 거예요 - 황인숙 후회 가득한 목소리로 오, 오, 오오, 여가수가 노래한다 남겨진 여자가 노래한다 마음을 두고 떠난 여자도 노래한다 후회로 파르르 떠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인터넷 벼룩시장에서 마사이 워킹화를 산다 판매글 마지막에 적힌 ‘후회는 없을 거예요’ 그 한 구절에 일전엔 돌체앤가바나 손목시계를 샀다 작년 여름엔 소니 디지털 카메라를 샀다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후회는 없을 거예요 벌써 후회하는 듯한, 후회는 없을 거예요 서글픈 목소리로 나직이, 후회는 없을 거예요 그 시계와 카메라는 상자째 서랍 안에 있다 후회는 없다 오, 오, 오오~ 황인숙, 문학과사회, 2008년 겨울호(통권 84호) * “킥킥”, 황인숙의 신작시를 읽으며 나는 “킥킥” 웃었다. 오다가다 서너 번 스쳐갔던 것이 황인.. 더보기
정호승 - 마음의 똥 마음의 똥 - 정호승 내 어릴 때 소나무 서 있는 들판에서 아버지 같은 눈사람 하나 외롭게 서 있으면 눈사람 옆에 살그머니 쪼그리고 앉아 한 무더기 똥을 누고 돌아와 곤히 잠들곤 했는데 그날 밤에는 꿈속에서도 유난히 함박눈이 많이 내려 내가 눈 똥이 다 함박눈이 되어 눈부셨는데 이제는 아무 데도 똥 눌 들판이 없어 아버지처럼 외롭고 다정한 눈사람 하나 없어 내 마음의 똥 한 무더기 누지 못하고 외롭고 쓸쓸하다 * 아버지 없는 손자 녀석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제일 많이 했던 말 중 하나는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일어나지”라는 말이었다. 혀를 끌끌 차며 쏟아내던 당신의 무거운 한숨이 이마에 솜털도 가시기 전에 내 어깨를 내리 눌렀다. 비빌 언덕 하나 없을 내 앞의 삶이 외롭고 쓸쓸할 것이라는 걸, 해가 뜨.. 더보기
그림책 쓰는 법 - 엘렌 E. M. 로버츠 (지은이) | 김정 (옮긴이) | 문학동네어린이(2002) 『그림책 쓰는 법』 - 엘렌 E. M. 로버츠 (지은이) | 김정 (옮긴이) | 문학동네어린이(2002) 엘렌 E.M.로버츠의 "그림책 쓰는 법"을 읽고 떠오른 단상 몇 가지... 우선 이 책에 실린 엘렌 E.M로버츠의 프로필 사진은 너무 젊을 때 것이 아닌가 하는 거다. 이 책이 쓰인 것이 1981년이고 그 이전부터 20여년간 그림책 전문 편집자로 활동했다니 지금 연세가 어느 정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이 말은 웃자고 한 이야기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이 책은 창작에 관한 책이다. 일종의 창작법 책인데 이 방면에 관한 한 나도 꽤 여러 종의 책을 읽었다. 스티븐 킹의 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부터 시작해서 오규원 선생의 "현대시작법", 전상국 선생의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 .. 더보기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 - 제프리 노웰 스미스(엮은이) | 열린책들(2006)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 - 제프리 노웰 스미스 (엮은이) | 김경식 | 이남 | 이순호 | 이영아 | 이유란 | 전찬일 | 주영상 | 허인영 (옮긴이) | 열린책들(2006) 영국의 유수한 명문대학으로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를 꼽는다. 다소 엄살을 섞어 말하자면, 요사이 이들 대학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영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유학 생활하기가 그다지 까다롭지는 않아도, 생활비가 많이 들어 힘들다더라는 정도의 정보밖에 없긴 하다. 그럼에도 이 두 대학이 대영제국 전성기의 제국 엘리트들의 산실이며 수많은 명사들을 배출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떠나 내게 이 두 대학은 다음과 같은 책들로 인해 명문대학이다. 우선 케임브리지는 개마고원에서 출판하고 있는 "케임브리지 세계사 .. 더보기
최금진 - 웃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 최금진 웃음은 활력 넘치는 사람들 속에 장치되어 있다가 폭발물처럼 불시에 터진다 웃음은 무섭다 자신만만하고 거리낌없는 남자다운 웃음은 배워두면 좋지만 아무리 따라해도 쉽게 안 되는 것 열성인자를 물려받고 태어난 웃음은 어딘가 일그러져 영락없이 잡종인 게 들통난다 계층재생산,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얼굴에 그려져 있는 어색한 웃음은 보나마나 가난한 아버지와 불행한 어머니의 교배로 만들어진 것 자신의 표정을 능가하는 어떤 표정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웃다가 제풀에 지쳤을 때 문득 느껴지는 허기처럼 모두가 골고루 나눠갖지 않는 웃음은 배가 고프다 못나고 부끄러운 아버지들을 뚝뚝 떼어 이 사람 저 사람의 낯짝에 공평하게 붙여주면 안될까 술만 먹으면 취해서 울던 뻐드렁니 가난한 아버지의 더러운 입냄.. 더보기
슬램덩크 - 이노우에 다케히코(TAKEHIKO INOUE) | 대원씨아이 『슬램덩크』 - 이노우에 다케히코(TAKEHIKO INOUE) | 대원씨아이 1994년의 어느 겨울, 나는 세 명의 친구와 함께 롯데월드로부터 올림픽공원까지 걸었다. 우리 세 사람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87년 이후 세 사람이 살아간 삶의 방향은 각기 달랐다. 그 무렵 TV에선 『마지막 승부』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고, 갓 발견된 "심은하"라는 앳된 얼굴의 탤런트는 장안의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다. 『마지막 승부』가 방영되던 시절. 나와 그 두 친구는 뭔가 쓸쓸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지만 무엇도 확실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 나이에 확실한 무엇이 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확실치 않은 것 가운데는 오랫동안 신념으로 삼아왔던 무엇이 사라진 뒤에.. 더보기
크리스마스(Christmas)에 대해 알고 싶은 서너 가지 크리스마스(Christmas)에 대해 알고 싶은 서너 가지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크리스마스는 어린 시절 한 번쯤 산타클로스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보게 만드는 명절 아닌 명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선 우리나라에 국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종교적 행사를 어째서 국가공휴일로 지정(?)했는지 시비 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기독교 신자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성스러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어째서 상업적인 행사인 양 떠들썩하게 치러져야 하는지 불만을 품고 크리스마스, 본래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예수 탄생 이후 300년간 박해받았던 기독교 성탄절을 의미하는 크리스마스(Christmas)는 본래 ‘그리스도의 미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