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의 들꽃



- 문효치


이름을 붙이지 말아다오
거추장스런 이름에 갇히기 보다는
그냥 이렇게
맑은 바람 속에 잠시 머물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즐거움


두꺼운 이름에 눌려
정말 내 모습이 일그러지기보다는
하늘의 한 모서리를
조금 차지하고 서 있다가
흙으로 바스라져


내가 섰던 그 자리
다시 하늘이 채워지면
거기 한 모금의 향기로 날아다닐 테니
이름을 붙이지 말아다오
한 송이 ‘자유’로 서 있고 싶을 뿐.


*

올해(2011년) 제23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문효치 시인은 1943년생으로 9권의 시집 이외에도 몇 권의 기행집과 산문집을 상재해두고 있는 원로 시인이다. 글 쓰는 사람치고 방랑이든 여행이든 길 떠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냐만 문효치 시인은 별도의 여행에세이를 펴낼 만큼 여행을, 특히 역사기행을 좋아하는 시인이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공주(公州) 공산성(公山城)은 사적 제12호로 한성 인근에 도읍하고 있던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밀려 한성 일대를 빼앗긴 백제가 절치부심하여 국력을 회복하고,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60여 년간 백제의 도읍으로 있었던 지금의 공주(웅진)를 지키기 위해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본래는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현재와 같은 석성으로 고쳤다.

고조선 이래 한반도에서 한민족을 지켜온 가장 뛰어난 군사시설은 산의 지세를 이용하여 만든 산성(山城)이었다.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한반도를 지켜냈던 고구려는 예로부터 ‘산성의 나라’로 불렸고, 고려 시대 민초들이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친 곳 역시 산성이었다. 지금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설악산 권금성(權金城)은 고려 고종(1253) 40년에 몽골의 침략에 대비하가 위해 권씨와 김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이 하룻밤 만에 성을 세웠다 하여 권금성이라 불린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산 어디에나 산성의 흔적이 있는데 공주의 공산성은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백제의 고도 공주를 1500년 넘게 지켜온 산성이다.

백제 멸망 직후에는 의자왕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고,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조선시대 인조 2년(1624)이괄의 난에 쫓겨 인조가 몸을 피했던 곳이기도 하다. 광해군을 내쫓고 조선 16대 임금이 된 인조가 반정 이후 논공행상에 실패해 일어난 정변이 이괄의 난이었다. 평안도 일대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던 이괄의 군세에 밀려 공주까지 피난해야 했던 인조는 백성들의 민심을 얻지 못했기에 수행하는 신하들도 적었고, 그 자신도 초라한 행색으로 공주 인근에 이르러 하루를 묵게 되었다.

왕은 때때로 공산성에 올라 멀리 북쪽에 두고 온 한양을 근심스럽게 바라보곤 하였다. 인근의 부호인 임씨 집에서 한 광주리에 음식을 푸짐하게 담아 왕께 진상하였다. 조심스럽게 덮은 보자기를 걷어내니 콩고물에 무친 떡이 가득 하였다. 그래도 명색이 임금이었기에 인근 백성 중 어떤 이가 임금에게 떡을 진상했는데 배가 고팠던 인조가 이를 맛있게 먹은 뒤 신하에게 “이렇게 맛있는 떡의 이름은 무엇인가” 물었지만 신하들 중에도 음식의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다. 인조는 재차 “그럼, 떡을 진상한 백성은 누구냐?”고 물었다. 신하는 진상한 사람의 이름은 모르고 다만 인근에 사는 성이 임가라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자 인조는 “그렇다면 이처럼 맛있는 떡의 이름을 지금부터 임 아무개가 썰어서 만든 떡이니 ‘임절미(任絶米)’라고 부르도록 하라.”고 했다는데 일설에는 ‘임씨가 만든 가장 맛있는 떡 절미(絶味)’라 하여 임절미(任絶味)라고도 한다. 차츰 변하여 현재와 같은 ‘인절미’가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문제가 많았던 임금으로 꼽자면 누구나 ‘연산군’을 생각하겠지만 내 개인적으론 선조와 인조 역시 ‘연산군’ 못지않게, 사실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점을 놓고 보자면 인조를 첫 손에 꼽지 않을 수 없을 듯 하다. 인조는 1595년 11월 7일에 황해도 해주에서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定遠君, 뒤에 元宗으로 추존됨)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인조가 한양이 아닌 해주에서 출생한 것은 왜구의 침입으로 왕족들이 해주로 피신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처럼 전란의 와중에 태어난 왕족이 훗날 왕위에 올랐는데 전란을 막기는커녕 되레 불러들이고, 훗날에는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 손자마저 비명에 죽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무능하고 패악한 임금이 아니었을까.

인절미 이외에도 인조와 관련한 유래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 역시 이괄의 난과 관련이 깊다. 피난길에 먹은 맛난 물고기에 즉석에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하였지만 전란이 끝나 환궁한 뒤 궁에서 먹은 ‘은어’는 옛 맛이 아니었기에 인조는 ‘도로(다시) 묵’이라 부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이야기들이 민간에 전승되어 왔다는 것만으로도 인조가 겪어야 했던 비극과 그 때문에 덩달아 고초를 겪어야 했을 민초들의 인식이 어떠했을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문효치 시인의 시에서 참 멀리 왔지만 「공산성의 들꽃」에서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은듯하여 길게 풀어 보았다.


이름을 붙이지 말아다오
한 송이 ‘자유’로 서 있고 싶을 뿐.


그것이 망국의 한(恨)과 비애가 알알이 맺힌 역사의 현장에 피어난 한 송이 들꽃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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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 이상국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 밖에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
또다른 벌레였을까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창작과 비평사)

*

숲에서...
어쩌면 구태여 미천골 숲이 아니어도 좋으리라.
어쩌면 물푸레나무 숲이 아니어도 좋으리라.
그런건 아무래도 좋으리라.

숲에서....
산꼭대기까지 자란 나무들이 물 길어 올리느라 흠씬 젖은 새벽
이기고 지는 일이야 삼겹살처럼 두툼하게 살집 오른 거리에 버려두어도 좋으리라.
그 기분 나도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아침이면 다시 작두를 타야 하는 나는...
그 기분 알면서도 오늘은 다시 푸르게 날 선 작두 위에 올라선다.
혼자서만 정수리에 햇볕 가득하면 무엇하리.
언젠가 산 아래 사람들과 섞이지 못한다면 홀로 잘 설 수 있다면 무엇하리.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이 날이 잘 선 작두 위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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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인 개가 짖을 때

- 정일근


묶인 개가 짖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다
그대, 은현리를 지날 때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움찔거리지도, 두려워 물러서지도 마라
묶여서 짖는 개를 바라보아라, 개는
그대 발자국 소리가 반가워 짖는 것이다
목줄에 묶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세상의 작은 인기척에도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모른다
그 소리 구원의 손길 같아서
깜깜한 우물 끝으로 내려오는 두레박줄 같아서
온몸으로 자신의 신호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묶인 개는 짖는 것이다
젊은 한때 나도 묶여 산 적이 있다
그때 뚜벅뚜벅 찾아오는 구둣발 소리에
내가 질렀던 고함들은 적의가 아니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불빛 같은 신호였다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쓸쓸하여 굳어버린 그 눈 바라보아라
묶인 개의 눈알에 비치는
깊고 깜깜한 사람 사는 세상 보아라




정일근 시집,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문학사상사, (2003)

*

"세상의 작은 인기척에도/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모른다"
시인의 말이 엄살이 아니란 걸 안다.
그러나 젊은 한때, 그때 내게 들려오던
뚜벅뚜벅 발소리에 대해 나는 적의에 가득차 짖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컹컹컹 적의에 가득차 짖었다하여
내 눈빛이 젖지 않았었다고는 믿지 마라.
젖은 눈으로 흘러내리는 세상
흘러내리는 증오가 사랑이 아니었다고,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라고는 믿지 마라.

믿지 마라. 외롭다고 짖는 개를
믿지 마라. 젖은 눈으로 쳐다보는 개를
믿지 마라. 쓸쓸하게 굳은 눈으로 언제라도 앙 물어댈 수 있는 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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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사랑해서

- 김승희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정말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듣기가 싫다

죽도록 사랑해서
가을 나뭇가지에 매달려 익고 있는
붉은 감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옥상 정원에서 까맣게 여물고 있는
분꽃 씨앗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한계령 천길 낭떠러지 아래 서서
머나먼 하늘까지 불지르고 있는
타오르는 단풍나무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로
이제 가을은 남고 싶다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핏방울 하나하나까지 남김없이
셀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투명한 가을햇살 아래 앉아

사랑의 창세기를 다시 쓰고 싶다
또다시 사랑의 빅뱅으로 돌아가고만 싶다

- 김승희,『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세계사

*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정말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이상 듣기 싫다는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설핏 웃음지었다. 사랑(eros)과 죽음(thanatos)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 단짝인지는 시인, 당신도 잘 알고 계시지 않은가 말이다.

중학생 때 접했던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은 대개 지산 스님의 입을 빌어 작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대목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여자는 한 몸에 생명과 죽음을 키운다던지... 하는 표현들이다. "어째서 여자는 가슴으론 생명을 키우면서 엉덩이로는 죽음을 만드는지..." 같은 표현들 말이다. 이왕 생각난 김에 몇 구절 인용해보면 아래의 부분들이 나에겐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의 소설이 지금까지도 나에게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것은 물론 이 소설을 중학생 때 읽었다는 폐해(?)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어린 나를 망친 세 권의 책을 들자면 주부생활 부록으로 딸려나온 "신혼 첫날밤에서 출산까지"라는 성생활 교재와 김성동의 "만다라" 그리고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이었으리라.

"남자와 여자가 배를 맞대고 이층이 된다는 것은 존재와 세계가 분리의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라는 저 불교에서 말하는 불이의 법칙과 합일된다는 거지. 세계는 서로 화해하고 존재는 보편적인 인식의 공간을 획득하게 되며, 그리하여 갈등과 투쟁은 무용한 것이 되는 거지.

(...) 이 세상에 이층만큼 허망한 사업이 있을까. 쾌감은 순간이었으며 존재와 세계는 다시 평행선이 되고 마는 것이었으니.....관세음보살. 그 허망감에 치를 떨며 차디찬 방바닥에 이마를 대었을 때, 귀먹는 노승의 탄식 같은 무라!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오는 거였어. 우습게도 화두가 성성해지더군."

이때, 이층이란 표현의 적실성에 대해서야 말할 것이 없지만, 가장 기대되었던 것은 그 일을 통해 세계가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능하느냐고 묻는다면... 최소한 그 순간 동안에야 가능하지 않겠나?(애들은 가라~)

"평화, 또는 사랑이라는 말은 일정한 거리를 두었을 때만 빛날 수 있는 단어야. 거리를 좁혔을 때는 이미 죽어버려. 그게 사랑과 평화의 운명이야."

나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거리'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이스라엘의 평화는 똑같이 발음되어도 다른 말이다. 즉, 그 평화의 실체(내용)를 모를 때만 비로소 동의할 수 있다는 거다.

"인간이 늙는다는 것,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구원이 아닐까.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언제까지나 팽팽한 젊음 그대로 있다면 저 산 같고 바다 같고 하늘과 같은 사랑과 미움과 원한과 그리고 저 욕정을 다 어쩌겠는가. 이것은 그 여자가 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줬다는 피의 인연이나 나를 방기하고 도주했었다는 사적 분노 따위를 뛰어넘는 근원적인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여자에게 던지는 사랑은 던지는 무게만큼 내게로 반송될 것이었다. 그 여자의 얼굴에 분가루가 남아 있고 사내들에게 던질 눈웃음 따위가 아직 남아 있는 탱탱한 살집이었다면 난 결코 뿌리 깊은 증오를 해제할 수 없었으리라."

내가 김성동에 코박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 그건 아마도 삶의 내력이 비슷했던 까닭...

"여자가 코를 골 때마다 반쯤 떨어진 가짜 속눈썹 한쪽이 엷게 흔들렸다. 화장이 밀린 피부는 거칠었고 나무뿌리 같은 잔주름이 눈가에 얽혀 있었다. 서른, 어쩌면 마흔 살쯤 먹은 노창인지도 몰랐다. 나는 여자의 벗은 하체를 바라보았다. 닭다리처럼 거칠고 메마른 육의 한 가운데에 낡은 칫솔처럼 성긴 음모가 짓밟힌 풀잎처럼 눕혀져 있었다.

나는 그런 여자의 참담한 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보다가,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방매하는 시장의 가축처럼 내던져져 있는 저 여자의 모든 것이 바로 나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무너지듯 여자의 배 위에 엎드려 이층을 만들었다.

도시는 부옇게 밝아 오고 있었다. 아직 새벽이었는데로 길 위로는 많은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나는 정거장 쪽을 잠깐 바라보다가, 차표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사람들 속으로 힘껏 달려갔다."

황석영의 "객지", 최인훈의 "광장" 그리고 김성동의 "만다라", 존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멋진 엔딩을 지닌 소설들이었다.

아마도 여성이 출산을 전담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드는 것이 여자의 몸속에 피어나는 삶에 대한 환상일 듯 싶다. 죽음이야 누구에게라도 공평할 테지만... 그런 점에서도 "사랑의 창세기를 다시 쓰고 싶다"는 시인의 욕망은 절대적으로 여성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시인이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죽도록 사랑해서"란 말은 결국 이 둘이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란 말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랑과 죽음은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다.

죽도록 사랑해서 ...
붉은 감 한 알,
분꽃 씨앗,
붉게 타오르는 단풍잎도,
세상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할 바에야 사랑하며 죽는 것도 괜찮을 터수다.
에라, 사랑이나 실컷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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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부부


- 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때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 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현대시학> (2004년 10월호)



*



어느 시인들 아름답지 않으련만은
반칠환의 시는 아름답기 보다 어여쁘다.
아니 아직 덜 여문 어린 아이 잠지처럼 예쁘다.


사랑이 온통 뜨겁기만 한 것인 줄 알았더니
사랑이 저리도 따순 것이기도 한 것이구나
사랑이 저리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리워도 되는 것이구나



반칠환의 시를 보니 알겠구나.
그 발치에 수북이 쌓인 노란 엽서들을 허투루이 밟아선 아니되겠거든
이 가을에 지구가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라는
반칠환의 덜 여문 잠지 같이 어여쁜 시를 읽어라.

* 덜 여문 잠지 같이 어떤 시는 예쁘고, 어떤 시는 아직 풋풋하다.
문학적 성취와 상관없이 그래도 좋은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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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그리워지는 것들


- 이기철


나는 이 세상을 스무 번 사랑하고
스무 번 미워했다
누군들 헌 옷이 된 생을
다림질하고 싶지 않은 사람 있으랴
유독 나한테만 칭얼대는 생
돌멩이는 더 작아지고 싶어서 몸을 구르고
새들은 나뭇잎의 건반을 두드리며
귀소한다

오늘도 나는 내가 데리고 가야 할 하루를 세수시키고
햇볕에 잘 말린 옷을 갈아입힌다
어둠이 나무 그림자를 끌고 산 뒤로 사라질 때
저녁 밥 짓는 사람의 맨발이 아름답다
개울물이 필통 여는 소리를 내면
갑자기 부엌들이 소란해진다
나는 저녁만큼 어두워져서는 안된다
남은 날 나는 또 한 번 세상을 미워할는지
아니면 어제보다 더 사랑할는지

*

넝마 같은 삶이다. 헌옷이 된 생을 다시 펴서 주름없이 다림질하고 싶어지는 삶이란...

"유독 나한테만 칭얼대는 생"


설마 그렇지야 않겠지만 타인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니 타인의 삶을 깊이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생길 사이 없을 만큼 넝마가 된 일상의 순간에 생은 나에게만 칭얼대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어쩌겠니? 네가 아픈 것은 나도 알지만, 지금은 내가 더 아픈 것을...


시인은 지치고 쓰라린 마음을 끌고 집으로 돌아와 앉는다.
일순간 삶의 구체적인 얼굴들이 소란스럽게 달려든다.
시인은 그 순간 "나는 저녁만큼 어두워져서는 안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왜냐하면 내일 나는 다시 이 세상을 스무 번 사랑하고, 또 다시 스물 한 번 미워해야 하니까...

슬프게도 혹은 기쁘게도 내일은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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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 이하석

풀덤불 속에 입을 벌리고 누워
구두는 뒷굽이나마 갈고 싶어한다, 풀들 속으로
난 작은 길을 가고 싶어하며, 어디로든
가 버릴 것들을 놓아 주면서.

주물 공장 최 반장은 토요일에 그를 차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최씨의 바지 밑으로 그는 끈이 풀렸고
뒷굽이 너무 닳아 있었다. 일년 가까이
그는 벌겋게 달아 있었다, 술과 불이 어울어진
최씨의 온몸 밑에서. 내던져진 채
그는 이제 가고 싶은 곳을 잊었다,
최씨의 여자 속을 걸어가는 허약한 다리 대신
차가운 빗물을 맑게 담고서.

문득 흐르던 구름 하나가 구두 속에 깃들어
어디론가 가자고 한다. 그래도 최씨의 구두는
뒷굽에 매달린다.

<이하석, 투명한 속, 문학과지성시인선8, 문학과지성사, 1980>


*


처음부터 내 닉이 바람구두로 안착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대학 때 별명이었고, 뒤늦게 인터넷을 시작하다보니 적당한 닉이 없어 이메일 계정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다 무심결에 영어로 바람구두를 뭐라해야할까 싶어 생각해낸 것이 windshoes였다.

바람이 wind고 구두가 shoes니까 하는 마음에서 홀로 간단히 해결한 닉네임이었던 셈이다. 네 글자 닉네임이 흔치 않았다. 내가 처음 인터넷을 할 때만하더라도...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구두라고 불렀는데... 구두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많아서 그런지... 바람은 웬지 멋부리는 듯 하여 부담스럽기도 하고 해서 구두라고 불리우는 게 좀더 편하다.

구두...

우리 문학사에 제법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구두가 몇 켤레있다.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가 있고, 시인 이문재의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가 있다. 그러나 내게 처음 구두의 이미지가 선명해지게 한 시는 이하석의 "구두"란 제목의 시였다.

이 시는 정황만으로 이루어진다.

주물 공장 최 반장의 구두.

바려진 구두.
끈이 풀렸고, 오랫동안 술과 불이 어우러진
가고 싶은 곳을 잊은 구두.

시적 화자는 무생물인 버려진 구두이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누구나 사람이다. 한 때는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우리들... 나이를 먹으면 입부터 맛이 간다고 했던가. 어려서는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 예를 들어 아무리 묽게 끓였더라도 언제나 맛있었던 카레라이스나 간장으로 양념한 불고기, 매콤달콤한 떡볶이... 무엇하나 입에 착착 붙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천원으로 충분히 느꼈을 기쁨은 이제 10만원 아니 백만원으로도 그만큼 기뻐지지 않는다. 구름이 내 속에 담겨 어디든 가자하는데... 나는 아무 곳도 가고 싶어지지 않는다. 구두여! 구두여! 구두는 세월따라 걸음에 녹아 밑창이 닳고, 가죽은 헐거워지고, 끈도 끊어져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버림받는다. 버려지는 건 구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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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곰팡이


- 이문재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 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


'시간'은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혹은 '템푸스(Tempus)'로 구분될 수 있다. 크로노스는 객관, 물리적 의미의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주관, 감정적 의미의 시간, 다시 말해 시간을 감지하는 자신이 의미를 느끼는 절대적 시간이다.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족들은 사사(sasa)와 자마니(zamani)라는 독특한 시간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는 한, 죽은 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사'의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이들마저 모두 죽어서 더이상 기억해줄 사람이 없을 때 망자는 비로소 영원한 침묵의 시간, 즉 자마니로 떠나게 된다.


이처럼 '크로노스의 시간'엔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없지만 '카이로스(템푸스)의 시간'은 죽음마저도 초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인 이문재의 표현을 빌자면 그건 아마도 '발효의 시간'일 것이다. 추억도 초고속으로 팔아먹는 세상을 경고하는 데 '빨간색 우체통'만한 것도 없으리라. 빠르게 살아서 빠르게 잊혀지던지 느리게 살아서 오래도록 기억되던지 그건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시간이다. 오래도록 곱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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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항


- 김선우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 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짓무르고 다친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속의 상처 덧날 때가 있다


먼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손가락을 더듬어 심장을 찾는다

가끔씩 검불처럼 떨어지는 살비늘
고동소리 들렸던가, 사랑했던가
가슴팎에 수십 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하고
휘적휘적 가고 또 오는 목포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는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기를


떠나간 막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


시인 김선우. 이름만 들어선 시인이 성별(性別)이 쉽게 구분되지 않지만, 그녀의 시를 한 구절만 읽어봐도 시인이 여성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한다. 문학에 있어서 ‘페미니떼'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녀의 시에서 여성성의 시어를 느끼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인은 마치 선언하듯 말한다.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고, 세상엔 무수한 막차가 있다. 나는 막차 떠난 버스 정류장, 막차 떠난 지하철 역, 막차 떠난 기차역 벤치에서 노숙해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 목포항에서, 그것도 막배가 떠난 목포항에 있어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이 '막'이란 어휘가 주는 그 막막함만큼은 우리 누구에게도 낯선 경험이 아니다.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그 막막한 느낌만큼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안쓰럽고, 원초적인 상처가 또 있을까.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은 현관문에 쪼그려 앉은 아이의 막막함으로 시인은 우리에게 막배 떠난 목포항이란 구체적 공간 안으로 불러들인다.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는 다소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호명에서 시인은 구체적인 지명, 목포항으로 우리를 불러들인 뒤 마치 카메라가 서서히 원경으로부터 근경으로 이동해가듯 “막배 떠난 항구”의 풍경 속으로 끌어들인다. 항구의 스산함에 연이어 우리는 시인이 이끄는 대로 대기실에 쪼그려 앉은 노파에게 시선이 멈춘다. 시인은 다시 필경 노파의 가랑이께 어딘가에 놓인 복숭아에 우리를 이끌고, 다시 복숭아의 짓무른 과육을 클로즈업 해 보여준다.


쪼그려 앉은 노파와 짓무른 복숭아 사이에서 우리는 누구라도 숨겨줄 수 있을 것 같은 할머니의 폭 넓은 치마와 그 치마 속에 숨겨진, 우리 모두를 탄생시켜주었을 비릿한 자궁냄새를 맡을 지도 모른다. 모든 생명의 원초적 발상지인 바다(목포항) ‘떠나간 막배’의 심상(image)은 양수로 가득한 자궁의 심상과 일치한다.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가느다란 탯줄을 끌고 세상으로 나간다. 우리는 어머니 가랑이 사이에 놓인 항구를 탯줄처럼 가느다란 물줄기를 일으키며 떠나는 막배. “먼 곳을 돌아온 열매여” 넉넉하고 푸근한 안뜰은 그러나 그냥 생긴 것은 아니라서,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은 비릿하다.


그 상처들, 푸른 생애의 안뜰은 "가슴팎에 수십 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한 바로 그 자리에서 생겨났다. 시인은 비로소 말한다.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는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기를


시인은 헤어진 연인일 수도 있고, 떠나간 자식일 수도 있는, 어쩌면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는, 그럼으로 그 모든 것일 수 있는 “떠나간 막배”를 향해 섣불리 아파하며 돌아오라고 외치지 않는다. 시인은 떠나간 막배를 부르지도, 용서하지도 않는 대신 결코 떠나보내지도 않는다. 시인으로 하여금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하게 만든 것은 떠나간 막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쪼그려 앉은 노파의 짓무른 복숭아 때문이다. 시인은 그제야 "떠나간 막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며 심상의 원근법을 통해 원경에서 근경으로 그리고 다시 심경(心景)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 순간 우리는 시인의 거대한 흡인력을 통해 "떠나간 막배"가 되어 그녀의 몸속으로 그녀가 펼쳐 논 거대한 사랑의 결계로 들어간다. 아니, 빨려든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기를" 희망하는 바다 위의 막배는 항구를 떠날 수는 있어도 결코 바다를 벗어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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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바꾸다


- 임현정



한복저고리를 늘리러 간 길

젖이 불어서 안 잠긴다는 말에
점원이 웃는다.


요즘 사람들 젖이란 말 안 써요.



뽀얀 젖비린내를 빠는

아기의 조그만 입술과
한 세상이 잠든
고요한 한낮과
아랫목 같은 더운 포옹이
그 말랑말랑한 말 속에 담겨 있는데


촌스럽다며

줄자로 재어준 가슴이라는 말
브래지어 안에 꽁꽁 숨은 그 말
한바탕 빨리고 나서 쭉 쭈그러든 젖통을
주워담은 적이 없는 그 말


그 말로 바꿔달란다.



저고리를 늘리러 갔다

젖 대신 가슴으로 바꿔 달다.


<출처> 임현정, 『창작과비평』, 2009년 봄호(통권 143호)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는 김춘수의 시(詩)에서 꽃의 실재(實在)가 무엇이든 꽃이라 호명(呼名)될 때 그것은 몸짓에서 꽃이라는 실존(實存)이 된다. 자기존재감(自己存在感)이란 사실, 이처럼 실재와 실존이 만났을 때에만 꽃피울 수 있는 감각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내가 그것이며, 남도 그것이라 불러줄 때 비로소 존재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뽀얀 젖비린내를 빠는/ 아기의 조그만 입술과/ 한 세상이 잠든/ 고요한 한낮과/ 아랫목 같은 더운 포옹”
이 담겨 있는 말랑말랑한 말을 세상은 브래지어 안에 꽁꽁 숨겨두라고 한다. 그러나 “촌스럽다며/ 줄자로 재어준 가슴이라는 말”“한바탕 빨리고 나서 쭉 쭈그러든 젖통”이라는 실재와 실존을 담아낼 수 없는 말이다. 임현정 시인의 ‘말랑말랑한 젖’은 김춘수 시인의 「꽃」과 같은 주제를 노래하지만 세상은 정반대로 불러준다. 시인은 ‘젖’이라 부르고, ‘젖’이라 부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세상은 매순간 꼭꼭 짚어서 ‘가슴’이라 교정해준다. 아니, 교체해준다. 아니, 강제하고 만다. “젖 대신 가슴으로 바꿔” 달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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