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숀 코네리와 캔디스 버겐 주연의 영화 "바람과 라이언"은 제국주의 시대의 풍경을 낭만적인 이국주의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은 비판해야겠지만 영화 자체는 상당히 유쾌한 편이다. 고민을 배제한 스펙타클 영화이기 때문인데 아마도 실화일 거라고 오랫동안 추측만 하다가 찾아냈다.

종군기자였던 제임스 빈센트 시언은 1925년 프랑스군과 스페인군의 감시를 피해 모로코의 리프족 반군 진영의 지도자 압 델 크림과 압 델 라이슐리 형제를 인터뷰하는데 성공했다. 바로 압 델 라이슐리가 숀 코네리가 연기했던 그 실존 인물이었다. 그는 1904년 그리스 출신 미국인 갑뷰 이온 페다카리스를 납치한 것으로 유명해진 인물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배경을 뒤져보는 일은 참 흥미롭다.

숀 코네리, 캔디스 버겐 주연의 "바람과 라이언" 이야기를 했더니 뜬금없이(?)는 아니고 사실 비슷한 시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제목마저 비슷한 안소니 퀸 주연의 "사막의 라이언"과 착각하는 분이 있어서(누구라고 말 못함) 말난 김에 이 영화 이야기도 조금 하자면....





2.
시대 배경상으로는 "바람과 라이언"이 1904년으로 20세기 초엽의 사건이었고, "사막의 라이언"은 대략 1910년대에 일어나 1931년 9월 16일에 종결된 하나의 사건에 대한 영화다. "바람과 라이언"이 이국적인 풍광과 문화를 배경으로 한 엑조틱한 액션 스펙터클이라면 "사막의 라이언"은 그보다 훨씬 진지한 영화란 차이가 있다.

존 밀리어스 감독의 영화 "바람과 라이언"을 연출한 존 밀리어스 감독은 원래 영화 대본을 쓰던 작가 출신인데,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 <더티 해리>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 등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아마 1973년의 <딜린저>가 처음 영화감독 데뷔작인 듯 싶은데, 이후에도 영화 연출과 함께 각본, 제작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가 연출한 영화들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영화는 사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에게도 가장 잘 어울렸던 영화 <코난-바바리안(1981)>이었다. <바람과 라이언>은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이었다.

그에 비해 "사막의 라이언"을 연출한 무스타파 아카드 감독은 시리아 출신의 미국인 감독으로 이후 감독으로서보다는 <할로윈> 시리즈의 제작자로 더 많은 명성을 쌓긴 했지만 초기만 하더라도 감독으로서 그의 연출작들은 이슬람권에 대한 서구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진지한 작품들이었다. 1976년 "에언자 마호메트"에서 안소니 퀸과 인연을 맺고, 그가 연출한 두 번째 작품이 "사막의 라이언"이었다.

영화 연출에 능력이 있었던 그가 이후 영화 연출보다는 제작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이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의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 모두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데 여러 장애와 방해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그는 더이상 영화 연출을 하기 어려웠고, 이후 제작에만 전념하다가 2005년 11월 요르단 암만에서의 이슬람 폭탄 테러에 희생당해 그의 딸 리마 아카드와 함께 사망했다.





3.
"사막의 라이언"은 20세기 초 이탈리아와 리비아 사이에 실제로 벌어졌던 리비아 국민들의 20년 항쟁이 실제 배경이 되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대부분 실화이며 등장인물들 역시 실존 인물의 실명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는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당시 영국은 이집트를, 프랑스는 튀니지아를, 스페인은 모로코를 점령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와 에디오피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당시 리비아는 오스만제국의 식민지였다. 이탈리아는 터키의 발칸 전쟁 개입을 계기로 1911년 9월 29일 오스만제국에 선전포고를 한 뒤 10월 3일 함대를 리비아의 해안도시 트리폴리에 보냈다. 당시 이탈리아 함대 사령관 파라펠리는 리비아에 주둔하고 있는 오스만 제국 군대의 즉각적인 항복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 전체가 파괴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터키군은 트리폴리에서 퇴각했지만 항복하지 않았고, 이탈리아 함대는 3일간 함포사격을 가해, 트리폴리를 함락시켰다.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정복하여 식민지화하는 일은 어린아이 팔목을 비트는 일만큼 손쉬운 일인 듯 보였다.

결국 오스만투르크는 리비아에서 철수했지만, 이때부터 전쟁은 새로운 식민지배자인 이탈리아 점령군과 오마르 알 무크타르가 이끄는 저항군 간의 전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영화에도 잘 드러나지만 오마르 무크타르는 본래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꾸란을 가르치는 교사(이맘)였다. 다른 아랍 국가들이 그러하듯 리이바의 저항군들 역시 부족 중심이었고, 이들은 사분오열되어 각자 자신의 왕국을 추구하거나 이해관계에 따라 이탈리아군에 협력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오마르 무크타르는 비타협적이었고, 다른 부족의 게릴라들에 비해 근대민족 지도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저항 세력은 점차 그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전쟁을 치른 롬멜이나 몽고메리 장군의 회고나 증언을 살펴보면 사막에서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육군의 전략보다 해군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막이 곧 바다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광활한 사막에서는 땅을 차지하는 것보다 먼저 적을 찾아 먼저 공격하고, 궤멸시킨다는 해군의 전략이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군은 전형적인 육군의 전략을 구사했으므로 사막의 유목전술을 구사하는 무크타르의 게릴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리비아의 저항전쟁은 어느 일방도 확실한 우세를 점하지 못한 채 1929년까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1921년 뭇솔리니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이탈리아는 리비아를 과거 로마의 영광을 재현할 성지로 보았고, 새로운 지휘관으로 에티오피아 전선에서 명성을 쌓은 그라치아니 장군을 파견한다.

4.
그라치아니 장군은 초반만 하더라도 오마르 무크타르를 시골 촌부 정도로 생각하여 가볍게 여겼으나 점차 그의 탁월한 지도력과 게릴라 전술에 휘말려 치욕적인 패배를 경험한다. 그 뒤 그라치아니와 이탈리아군은 새로운 전술을 동원하는데, 한 편으론 무크타르에게 평화협상을 제안하고, 다른 한 편으론 이른바 청야(淸野)작전을 펼쳤다. 게릴라들의 바다가 될 수 있는 민중들을 제거하는 청야전술은 무자비했지만,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탈리아군의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는 동안 무크타르는 사막과 산악 지대에서 현대병기로 무장한 이탈리아군을 계속 패퇴시켰지만, 그 사이 이탈리아군은 리비아 사막에 수천 명의 인부를 강제로 동원해 수천 톤의 가시철조망을 설치했다.

12만 5천여 명의 민간인들이 살인적인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고, 사막을 통행하려는 이들은 사살당했다. 결국 '리비아의 태양'이라 불렸던 오마르 무크타르는 이탈리아군에게 부상당한 채 생포되었는데, 이탈리아 정부는 그가 탈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70세를 넘긴(사막 유목민의 정확한 나이는 알기 어렵지만) 오마르 무크타르의 손과 발에 족쇄를 채워 전리품처럼 전시했다. 그들은 늙은 반군 지도자를 재판했지만, 그의 입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말은 한 마디도 얻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도대체 누가 누구를 재판하는 거냐"는 반문만 들어야 했다.

도리어 이 늙은 죄수의 높은 인격은 이탈리아 간수들에게도 커다란 감명을 주었고, 그의 굳은 의지에 압도당했다. 이탈리아는 오마르 무크타르를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했는데, 형장에서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느냐는 질문에 꾸란의 한 구절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신에게서부터 왔고, 언젠가는 다시 신에게로 돌아간다."

20여년을 끌어오던 항쟁은 1931년 9월 16일 그의 사형과 함께 사실상 종결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적의 손에 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영화 이야기를 별도로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영화는 사실을 충실하게 재현하려고 하고 있는데,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이 영화에 대한 리뷰는 별도로 해볼 생각이다(음, 여태한 건 뭐야?). 그의 초상은 리비아의 10디나르 화폐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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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트루스(A Dark Truth, 2012)





다미안 리 감독의 "다크 트루스"에서는 오랜만에 앤디 가르시아가 진지한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케빈 두런드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일단 나오면 그만한 정도는 항상 보여주는 포레스트 휘태커, 다미안 리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킴 코티스 등등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기본은 해준 영화다.

영화의 내용은 제3세계에서 '상수도 민영화'를 추진하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 에콰도르의 타이카란 지역에서 상수도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정수시설이 오염되면서 이 지역에 집단적으로 티푸스가 발병하자 다국적 기업과 결탁한 지역의 군사령관이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집단학살하는 사건을 둘러싼 갈등과 진실의 문제를 다룬다.

앤디 가르시아는 은퇴한 전직 CIA요원으로 남미에서 반체제농민운동의 지도자 프란시스코 프란시스(포레스트 휘태커)를 체포하고, 그의 조직을 와해시키는 공작을 펼쳤던 잭 베고시언으로 등장한다. 그는 청문회에 출두해 CIA로부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위증할 것을 부탁 받았으나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까지 시인하면서 조직으로부터 축출당해 지금은 작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진실"이란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조직에겐 내부고발자로 낙인 찍혔고, 일반 대중에겐 남미에서 살인공작을 펼친 전직 비밀요원으로 여전히 그의 정체를 의심받는 잭 베고시언은 가정에도 편안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만, 조직에서의 일은 여전히 말할 수 없는 비밀이고, 비밀은 부부 사이를 멀게 갈라놓고 있다. 또 그는 아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몰라서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




영화는 잭 베고시언의 일상과 함께 과거 '농민의 희망'이란 무장단체를 이끌었으나 베고시언에게 잡혀 감옥생활을 거친 뒤 이제는 평화적인 농민운동가가 된 프란치스가 다국적기업의 음모와 군부의 학살을 피해 밀림으로 달아나는 과정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문제는 다미안 리 감독의 연출력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밋밋한 연출에 무엇 하나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던 탓인지 제대로 된 사회고발 영화로서도, 휴먼 드라마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영화의 기본 갈등은 제3세계에서 상수도 민영화 사업을 하는 다국적 기업과 에콰도르의 학살당하는 농민 사이의 갈등이지만, 작게 보면 등장인물들 간에 세 가지 갈등이 있는데 하나는 앤디 가르시아와 사회(혹은 가정)의 갈등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전직 CIA비밀공작요원 잭 베고시언과 농민운동가 프란시스코 프란시스와의 갈등, 마지막으로 다국적 기업을 이끄는 사업가 오빠 브루스 스윈톤(킴 코티스)와 여동생 모건 스윈톤(데보라 카라 웅거)의 갈등이다.

프란시스코 프란시스는 한때 무력항쟁을 이끈 인물이었지만 잭 베고시언의 공작에 의해 조직이 와해되고, 감옥에 다녀온 뒤 "마오는 틀렸고, 간디가 옳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며 자신을 구출하러 온 잭 베고시언과 손쉽게 화해한다.

선대가 물려준 기업 클리어벡을 이끄는 두 사람, 오빠 브루스는 성실한 사업가지만 선대의 기업을 잘 키워야 한다, 조직의 논리에 젖어 제3세계에서의 학살이 심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 틀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한다. 동생 모건은 철따라 결혼하고, 이혼하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며 기업의 폼나는 일들(자선사업)만 해왔지만 어느날 갑자기 자기 앞으로 찾아와 에콰도르에서의 학살을 고발하며 자살해버린 한 청년 때문에 충격을 받고 잭 베고시언을 고용해 프란시스코 프란시스를 미국으로 데려오도록 시킨다.





영화의 엔딩에 이르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그리고 기업을 살리기 위해 모든 책임을 지고) 브루스는 자살해버리고, 모건은 오빠를 대신해 앞으로 윤리적 경영을 하겠다며 기업을 물려받는다. 잭은 자신의 라디오 방송에 프란시스코 프란시스를 특별 손님으로 초대해 이런 상황에 대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누군가 브루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며 그에게 묻는다. "돈의 탐욕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돈 때문만은 아니라고..." 그러자 전화한 사람이 "그럼 무엇 때문이냐"고 되묻는다. 그는 이런 일은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서 생기는 것이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답한다. 아마도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다크 트루스(흑막)'일 게다. 영화는 볼만한 수준으로 좋은데, 연출이나 서사의 힘이란 측면에서 딱 그 정도 수준으로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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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추안 감독의 영화 <초한지: 영웅의 부활(2012)>은 영어 제목 'The Last Supper'가 영화의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유방 역을 맡은 '류예', 항우 역을 맡은 '오언조, 한신 역을 맡은 '장첸'의 연기는 물론 여씨 부인역을 맡은 '진람'의 연기가 기존 중국 배우들의 과장되고 기름진 연기와 달리 기름기를 거둬내 담백한 편이다.

영화 속에서 만찬은 영화의 앞 부분과 뒷 부분에 두 번 반복된다. 앞의 한 번은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인 장락궁을 함락시킨 뒤 권력과 환락에 눈이 어두워진 나머지 장량의 조언을 듣지 않고, 불필요하게 항우를 자극시켜 죽음 직전의 위기에 내몰리게 되는 '홍문의 연(鴻門宴)'을 겪은 뒤 극적으로 생존하는 만찬이다. 항우와 유방은 진을 멸망시킨다는 공동의 대의로 뭉쳤으나 이후 천하쟁패를 위해 투쟁하는 관계가 되는데,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가 '홍문의 연'이었다.

뒷 부분의 만찬은 항우를 제거하고 천하를 차지한 유방이 자신의 권력을 후대에 안정적으로 전해주기 위해 오랜 맹우이자 또 한 명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한신'을 처단하기 위해 마련한 만찬이다.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은 중국 춘추시대 월(越)나라 재상 범려(范蠡)의 말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이 말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한나라를 창업한 한 고조 유방이 한신을 비롯해 견마지로를 다했던 개국공신들을 차례로 겁박해 숙청했던 사례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등장하진 않지만 한신 역시 토사구팽의 세태를 한탄하며 죽었다는 일화로 이 고사성어에 빛과 그늘을 더해주기도 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중국 당국에 의한 검열에만 5개월여가 소요되었다고 하던데, 내 생각에 그 이유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최근 중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보시라이'의 실각 사건 같은)를 주는 등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보시라이는 잘 알려진 대로 중국을 건국한 혁명 주역들의 2세인 '태자당(혁명 원로 및 고위 간부 자제 그룹)' 출신으로 시진핑과 같은 계열이고, 리커창(후진타오)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이다. 이 구도를 고스란히 '귀족(항우) vs. 평민(유방)'으로 놓을 수는 없지만 - 그렇다면 '여씨 부인(상하이방)'인가? -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한신을 숙청하기 전 여씨 부인의 입을 통해 이런 대목이 두드러지는데, 여씨 부인은 자신이 만나본 인간들 중에 가장 고귀한 인격을 지닌 사람은 '항우(귀족)'였다며, 자신도 인질로 잡고 있어 죽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죽이지 않고 놓아 주었으며 유방도 여러 차례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항우는 백골이 되었다고 말한다.

평민 출신의 '유방'은 "왕후장상에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느냐(王侯將相寧有種乎)"라고 외치며 귀족 출신인 항우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지만 정작 그 자신이 권력을 잡고나자 바로 자신이 내세웠던 '이데올로기'에 의해 겁박당하는 상태가 되었다. 역사가로서 사마천은 현대의 지평으로 바라보았을 때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사마천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것은 평범한 농민 출신의 혁명가 '진승'을 역대의 제후들을 올리는 자리인 〈세가〉의 반열에 둠으로써 그를 역대의 제후들과 동렬(同列)로 평가했다는 사실이다.

"주나라가 그 도(道)를 잃자 (공자는)<춘추>를 지었다. 진나라가 정치를 잘못하자 진섭(진승)이 봉기하고 제후들도 난을 일으켰는데, 그 기세가 풍운을 일으키면서 끝내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천하를 다투는 발단이 바로 진섭의 반란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훗날 반고가 저술한 《한서》가 기본적으로 《사기》를 그대로 초록(抄錄)한 것임에도 진승을 열전에 넣고서도 그를 찬양하는 말을 모두 빼버린 것과 비교할 수 있다. 또한 사마천은 성공과 실패로 영웅을 논하지 않았으니 '항우'를 <본기>에 넣은 것도 후세인으로서 찬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유방이 천하를 쟁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새로운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나라의 시황제가 일찌감치 멸망한 까닭에 대해 중국인들이 느끼는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은 시황제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 진의 수도 함양(장락궁)을 차지한 유방에게 진의 마지막 황제 '자영'은 천하통일의 패업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대목이 있다.





장예모 감독의 <영웅(2002)>에서 천하의 자객들을 무릎 꿇게 만든 '천하'론은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는데, 진 시황제가 멸망한 까닭은 그의 대의가 그릇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급진적이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항우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간과한 복고주의자로 역사적 반동인 셈이었다. 일찌기 공자는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한다"고 하였는데, 이때의 하늘을 민중의 '시대정신'이라 보았을 때, 항우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민중의 열망과 진나라가 이룩한 변화된 세상의 구조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항우가 공자가 흠모한 주나라 문왕의 도를 따랐다기 보다는 귀족 출신의 신분적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초한지: 영웅의 부활(2012)>을 보는 내내 일본판 <멕베스>로 구로자와 아키라의 <거미의 성>이 있다면, 이것은 중국판 <맥베스>가 아니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내용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루 추안 감독이 상당히 서구적인 감감과 감수성을 지닌 감독임에 틀림 없어 보인다. 최근 중국 영화들을 볼 때마다 여러 고민들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은연 중에 미국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처럼, 중국 영화들 역시 중국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들 때문이다.

마치 우리 박근혜 대통령이 코리안시리즈 3차전 시구에서 하고 많은 브랜드 중에 굳이 일본 브랜드 신발인 '아식스'를 신고 나온 것에 대해 여러 추측을 하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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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남자에게 좋아하는 여배우란 캘린더걸처럼 계속 바뀌는 법이긴 하지만, 여배우란 말에서 '여자'를 빼고 '배우'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요근래 배우 중 내게 있어 그런 배우는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이다.





1975년 10월 5일 생이니까, 이제 곧 마흔을 바라볼 나이다. 케이트 윈슬렛을 처음 발견한 영화는 나도 물론 "타이타닉"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의 계보에는 물론 매우 다양한 배우들이 있는데, '오드리 헵번'만큼이나 '캐서린 헵번'을 좋아하고, '캔디스 버겐'을 좋은 배우로 생각하며, 한동안 '미셸 파이퍼'를 참 좋아했다. 물론, 여전히...

미셸 파이퍼가 나온 영화들은 그리 많이 보지도 못했는데,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미셸 파이퍼'만이 여배우 중에서 알 파치노의 카리스마에 대적할 수 있으며 가장 잘 맞는 배우 궁합이다. 두 사람 모두 카리스마가 넘치고, 파괴적이면서도 유리잔처럼 쉽게 상처받는 영혼을 지닌 캐릭터가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또 한없이 처량하고 궁상맞은가 싶으면 동시에 자기 분야의 전문직종 종사자로 변신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캐릭터를 지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영화는 "스카페이스"였는데, 이 영화에서 미셸 파이퍼는 알 파치노가 나중에 배신하게 될 보스의 정부(팜므 파탈) 역을 했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몇 편의 영화에서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참 좋았다. 어쨌든 오늘은 미셸 파이퍼 이야기를 하는 날이 아니므로 ... - 하여간 미셸 파이퍼 이야기만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린다능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케이트 윈슬렛이 "타이타닉"에 처음 등장할 때만해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비해 유명하지도 않았고, 워낙 디카프리오 팬층이 두텁고, 열광적이었던 토라 그에 비해 여배우가 너무 밀리는 것 아니냔 평들이 있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알 파치노+미셸 파이퍼'가 좋은 궁합인 것처럼 '디카프리오+캐슬린 윈슬렛'도 좋은 궁합이긴 한데, 알 파치노와 미셸 파이퍼가 서로 막상막하라면, 나는 디카프리오와 윈슬렛 커플의 경우엔 윈슬렛이 좀더 윗길이란 생각이 든다. 디카프리오의 영화를 보노라면 자꾸만 패트릭 스웨이지가 떠오르는데, 아역 출신 배우가 지니는 핸디캡을 디카프리오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과장되고, 넘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역배우 시절 자신의 이미지를 떨쳐내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국 배우들에겐 미국 배우들에게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기품이 있는데, 아마도 그건 액센트의 문제도 있겠지만 탄탄한 기본기 때문이기도 할 게다. 케이트 윈슬렛은 조부모대부터 배우의 길을 걸었다고 하니 오죽할까 싶기도... 케이트 윈슬렛은 덩치를 보아도 그렇지만 당당한 스케일이 있다. 아마도 그런 성향이 엿보였기 때문에 "타이타닉"에도 캐스팅되었지 싶다. "타이타닉"은 철저히 재난영화의 스토리텔링을 따르지만 그 안에 담긴 내부의 서사구조는 성장영화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케이트 윈슬렛은 한 여성으로 겉보기에 튼실하고 화려한 부르주아의 삶, 허위와 환멸로 가득찬 "타이타닉" 1등칸의 삶을 과감하게 벗어버린다. 물론 그 과정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의 러브라인이 있지만,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누가뭐래도 케이트 윈슬렛이었다. 그녀가 침몰하는 타이타닉에 갇힌 애인 디카프리오의 손에 채워진 수갑을 도끼로 부숴버리는 장면은 사실 그녀 자신을 옭죄고 있던 족쇄를 부순다는 의미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이후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 배우가 출연작으로 고르는 안목도 있고, 참 훌륭한 배우란 생각을 여러 차례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픈 영화는 상당히 많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영화 중에서 고른다면 "리틀칠드런(2006)"과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다. 두 영화는 매우 닮은 꼴 영화인데, 두 편 모두 가정 이야기를 다룬 멜로물이다.

퇴근하고서 아내가 저녁을 지을 동안 또는 주말에 집에서 쉴 때 아내에게 개인 휴식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가끔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게 된다. 그곳에 우리 딸 아이 또래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은 날 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 싶을 때가 있는데, "리틀 칠드런"이란 영화의 거의 첫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처럼 변호사도 아니고, 우아하고 세련된 차림도 아니지만 ... 굳이 자세한 영화 소개를 하지 않는 이유는 ... 섬세한 스토리라인을 따라갈 필요가 있는 영화라서 그렇다.

둘다 참 좋은 영화이므로, 감상을 권한다. 그렇게 놓고 보니 케이트 윈슬렛은 부르주아지 계급의 유부녀 역할이 참 잘 어울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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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경향신문" 구정은 기자의 '할머니를 죽인 것은 누구였나(http://me2.do/FIhV9c4r )'는 좋은 글이다. 제목도 의도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기막히다. 미셸 폴라레프의 노래는 5월 광주를 노래한 '오월의 노래' 원곡이기도 했는데....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Qui A Tue Grand-Maman)

Il y avait du temps de grand-maman
Des fleurs qui poussaient dans son jardin
Le temps a passe, seules restent les pensees
Et dans tes mains il ne reste plus rien

Qui a tue grand-maman, est-c’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Il y avait du temps de grand-maman
Du silence a ecouter
Des branches sur les arbres,
Des feuilles sur les branches
Des oiseaux sur les feuilles
Et qui chantaient

Qui a tue grand-maman, est-c’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e bulldozer a tue grand-maman
Et change ses fleurs en marteaux-piqueurs
Les oiseaux pour chanter
Ne trouv’ que des chantiers
Est-ce pour cela que l’on te pleure?

Qui a tue grand-maman, est-c’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Qui a tue grand-maman, est-c’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예전 할머니 시절에는
정원에 꽃들이 피어 나고 있었어요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는 마음만 남아있지요
그리고 두 손에는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
시간인가요?
아니면 이제 더 이상 세월을 보낼
시간이 없는 사람들인가요?


예전 할머니 시절에는
나무의 가지들과, 가지에 매달린 잎새들과
그 가지 위에서 노래하는 새들의 소리를
들을 만큼의 고요함이 있었어요


불도저가 할머니를 죽였어요
그리고 꽃들을 굴착기로 바꾸어 버렸지요
노래하려던 새들은
공사장밖에 찾을 수가 없었죠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당신을 잃은 것을 그리 슬퍼하는 건가요?


프랑스 샹송가수 미셸 뽈라레프의 <Qui A Tue Grand Maman?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 가 한국에서 5.18광주항쟁을 기린 '5월의 노래'의 원곡이란 건 잘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이 노래가 사실은 프랑스의 한 재개발 지역에서 재개발에 저항하며 자신의 정원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가 목숨을 잃은 Lucien Morrisse라는 이름의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1971년에 만들어진 노래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하다.


http://youtu.be/7a1eNTmIk5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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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존 포드 감독은 매우 가부장적인 인물이었다. 그 앞에서는 헐리우드 스타시스템 최강의 배우들도 함부로 나내거나 감독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항변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영화를 제작할 때나 그 이후나 항상 자신이 보스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 권한을 즐겼다.

그의 가부장적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는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시는 매카시즘 선풍이 불어닥쳤을 때였다. 그는 이른바 매카시즘 열기에 사로잡힌 미국의 영화제작 한복판에서 자신의 스텝들 중 '의회반미활동위원회'가 영화제작자들을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에 불러놓고 만들도록 한 '블랙리스트'에 속한 스텝들을 영화제작에서 배제하고 고발하라는 요청을 꿋꿋이 거절했다. 그가 단지 거절만 한 건 아니었다.

존 포드 감독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개소리들 하지마!"
.
존 포드 감독은 가부장적인 마초였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가부장이었던 셈이다.

----------------- 아래 내용은 내 책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중에서

전후 미국은 매카시즘이라는 ‘빨갱이 광풍’에 휩싸이게 되는데 월트 디즈니는 자발적으로 여기에 동참했다. 1947년 11월 ‘의회반미활동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HUAC)’가 연예산업에 대한 일련의 재조사에 착수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위원회에 불려가 당대의 가장 유명한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공산당인가? 아니면 한때 공산당원이었던 적이 있는가?” 1947년 11월 24일과 25일에 걸쳐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영화제작자협회 회의에서는 좌파적 성향이 짙은 것으로 평가되던 영화인 10명(이른바 ‘할리우드 10’)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이들을 영구히 추방한다는 내용의 악명 높은 ‘월도프 선언(Waldorf Statement)’이 채택되었다.

미국이 매카시즘 광풍에 휩싸였을 당시 동료 영화인들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던 미국노동총연맹 영화배우협회의 회장이었던 로널드 레이건(Ronald W. Reagan)은 가장 먼저 월도프 선언을 지지한다고 선언했고, 그 뒤를 로버트 테일러, 로버트 몽고메리, 조지 머피, 게리 쿠퍼, 잭 워너, 루이스 마이어 등이 따랐다.

월트 디즈니 역시 이들과 함께 우익세력의 선봉에 섰으며, 미키 마우스의 정신적 모델이었던 찰리 채플린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인들과 눈에 가시 같던 직원들 - 그 중에 데이비드 힐버먼(David Hilberman) 등은 디즈니에서 <백설공주>와 <밤비>를 함께 만들었던 동료였다 - 에게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여 내쫓았다. 매카시즘의 광기에 휘말린 몇몇 영화인들은 결국 자살하거나 심지어 수감되는 등 생계수단을 잃고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월도프 선언’의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보면 “우리는 아무런 보상없이 우리가 고용하고 있는 그들을 해고 내지 정직시킬 것이며, 모욕죄에 대한 고소가 취하되거나 무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맹세하기 전까지는 그들을 재고용하지 않을 것이다.”란 것이다. - 마이클 엘리어트, 원재길 옮김, 『월트 디즈니 - 할리우드의 디즈니 신화』, 우리문학사, 1993, 270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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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친구들에게 '컴뱃'을 아느냐고 물으면 100중 8~90은 바퀴벌레 약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은데, 나 어릴 적 TV에서는 이른바 반공드라마로 '전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얼마전에 최수종이 출연해서 다시 만들어진 적도 있는데, 내 기억 속 '전우'의 수준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졸작이었다.

어쨌든 드라마 '전우'는 미국의 TV시리즈 - 그러니까 미드의 원조 격이었던 여러 TV프로그램들이었던 '600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월튼네사람들', '초원의 집', '도망자', '헐크' 등등 - 들 중 하나였던 빅 모로(Vic Morrow) 주연의 <전투(combat)>의 컨셉을 따온 드라마였다. 인터넷쇼핑몰에서 이 시리즈 DVD가 염가에 나왔길래 미친 셈 치고 전 시리즈를 구매했다. 인상적인 오프닝과 귀를 찢는 듯 날카로운 총소리도 여전했다.

빅 모로는 1982년 임권택 감독이 신일룡, 남궁원, 정윤희, 윤양하, 남포동 등과 함께 <아벤고공수군단(Abengo Airborne Corps)>이란 영화에 출연했다. 광고 포스터에는 빅 모로가 마치 주연인 것처럼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특별 출연으로 짤막하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연진의 면면을 봐도 그렇고, 임권택 감독이나 촬영진도 당대 우리 영화계의 특A급 인사들이 총출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전까지 제작되었던 '특공대 반공영화'의 총집합체이면서도 모든 부분이 나사 빠진 듯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온갖 것들이 잡탕이 되었음에도 따로국밥처럼 놀아서 결국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차라리 완전히 액션반공영화로 갔다면 또 모르겠는데 1982년이란 시대상황이 그렇게만 몰고가기엔 애매한 시대였던지 끝까지 애매한 영화로 남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옛날에도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전투>를 보면서 예나지금이나 한결같이 들었던 마음은 - 그때는 어려서 그랬다치고, 지금은 작품성을 위해서(?) - 맨날 미군이 이기니까, 나도 모르게 독일군도 한 번쯤 이겨주었으면 바라는 마음이 들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탓에 이후 수정주의 할리우드 영화들에선 독일군의 시각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반전영화들도 꽤 제작되었다. 전쟁에 나가면 언제나 승리하는 인간적인(?) 미군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주류에 대한 저항의식의 단초가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패자에게 동정을 보내고(물론 독일군을 동정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것이지만), 패자의 시선에서 다시금 역사를 바라보고자 하는 의식이 생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유황도(이오지마)를 소재로 각기 다른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두 편 다 범작 이상의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본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 분명 패전하는 독일군 못지 않게 서글프고 비참함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텐데도 - 그 주인공들에게 충분한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다. 내셔널리즘이란 것에도 거리차란 것이 존재하는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가더라도 과거사가 분명하게 매듭(사과와 용서)지어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이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 나의 내셔널리즘 탓일지도?
**빅 모로가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바바라 터너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브루클린으. 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서 열연을 펼쳤던 제니퍼 제이슨 리( Jennifer Jason Leigh)이다. 그러고보니 딸의 얼굴에서 아빠의 표정 얼굴이 엿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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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돌이킬 수 없는 - 가스파 노에 (Gaspar Noe) 감독, 뱅상 카셀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3년 5월




"가스파 노에" 감독의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을 보던 날이 생각난다. 한 마디로 이토록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이 영화는 함께 본 친구들 앞에서 날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내 감정을 스스로 돌이켜 보건데 그건 분노도 무엇도 아닌 짜증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넘쳐나는 짜증이 날 분개하게 만들었고,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애꿎은 물만 벌컥벌컥 들이키게 만들었다. 영화의 내용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아름다운 한 여인(모니카 벨루치)이 지하도에서 한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자신의 애인이 강간당했다는 것을 안 남자 친구가 분개해 그날 밤 내내 강간범을 찾아다니다 결국 강간범을 찾아내 그에게 끔찍한 복수극을 벌인다는 이야기이다. 얼개만 남겨놓고 보면 흔하디 흔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설정이지만 이 영화를 본 뒤에 느끼게 되는 감정들은 결코 간단치 않다.


최근 개봉되어 관객들을 들끓게 하고 결국 시민들의 분노가 쌓여 재수사하게 된 광주 인화학교의 실태를 다룬 영화 "도가니"를 본 사람들이 영화를 본 뒤 며칠동안 밥을 먹을 수 없었다며 영화 "도가니"를 보지 말라고 충고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내게는 이 영화가 그랬으니까.



100분 동안 우리는 감독의 설계에 따라 시간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즉, 끔찍한 폭력이 발생한 순간부터 일상의 평온한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가스파 노에는 "돌이킬 수 없는"의 궁극적인 복선이 마치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운명론처럼 결코 "되돌이킬 수 없는" 잠재적으로 언젠가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혹은 반드시 그녀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의 어딘가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히 반복되고 있을 상황으로 관객들을 내몬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멈출 수 없는 짜증으로 몸부림친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나 역시 이런 강간 사건의, 폭력 사건의 공범일 수밖에 없는 냉정한 현실, 거미줄로 아름다운 나비를 몰아댄 또다른 범죄자가 아니냔 생각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이 영화가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우리 모두는 "흘러버린 시간의 죄수들이지 않느냐"는 반문을 접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도가니"는 우리가 막을 수 있었던, 막아야 했던 시간의 범죄다. 내가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평범한 일상은 순식간에 파괴될 수도 있다. 그것이 내가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에게는 말이다. 어쨌든 그 누구도 흘려보낸 시간을 되돌이킬 수 없다...시간의 냉정한 불문율.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시간."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알렉스(모니카 벨루치)의 현 애인 마르쿠스와 전 애인 삐에르는 한 게이 바에 들어가 사람 하나를 잔혹하게 소화기로 짓이겨 죽인다. 다시 역순 그들은 택시를 타고 게이 바로 들어가고, 게이바로 가기 전에 거리의 창녀들을 만나 그들이 찾는 사람이 게이바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 알렉스가 지하도에서 잔혹하게 강간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마르쿠스와 삐에르 그리고 알렉스가 파티장에서 행복한 순간들을 보내고, 그보다 다시 더... 더...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종말이 아닌 시작점에 이른다. 이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은 그래서 내러티브의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참혹한 현재에서 시작해 행복했던 과거로 되돌아가는... 내러티브보다 더 무서운 건 인간의 감정이다. 후회가 없는 인간은 없으므로,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지 못하면 사랑이 없어진 뒤엔 더이상 사랑할 대상이 남아있지 않다는 후회가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이라면 그렇듯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꼼짝할 수 없는 느낌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잘못은 오늘 당장은 아니라도 내일의 어느 날이라도 뒤통수를 가격한다. 가스파 노에는 마치 그리스희비극에서 운명의 노예가 된 오이디푸스처럼, 엘렉트라처럼 알렉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복선을 깔아둔다. 영화가 시작되면 첫 장면에서 우리는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늙은 남자의 대화를 본의아니게 엿듣게 된다.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말한다.


"내가 왜 빵에 갔다 왔는지 자넨 모르지? 내가 내 딸을 강간했기 때문이야. 참 예쁜 애였는데 말이지."


그러자 다른 남자가 말한다.


"아, 그놈의 근친상간!"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 남자들이 대화를 나눈 방 근처의 게이 바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그리고 연이어 파티장을 빠져나온 알렉스가 지하도를 홀로 걸어가다가 강간당하는 장면에서 강간범은 알렉스에게 말한다.


"네 아버지에게도 이렇게 당했지? 아, 죽이는 엉덩이군." 



 

물론 알렉스가 실제로 자기 아버지에게 강간당한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 노에 감독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내러티브의 배치 구조 상 우리는 아마 그랬을 것이다라고 추측하게 될 뿐이다. 우연의 동시성. 알렉스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듯 지하 터널의 꿈을 꾼다. 두 갈래의 길... 그 어느 한 편에서 그녀는 참혹한 범죄의 희생자가 된다. 노에 감독은 삐에르와 마르쿠스에게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신화적 세계 속에서 진짜 복수가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 처음은 알렉스의 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와 삐에르가 게이바에서 강간범이라고 생각해 소화기로 얼굴을 짓이겨 죽인 사람은 알렉스의 강간범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선량한 희생자일까? 글쎄,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 까닭은 마르쿠스와 삐에르조차도 선량한 알렉스의 남자 친구들이기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두 사람은 알렉스의 복수랍시고, 한 남자를 곤죽이 되도록 패 죽이고 만다. 하지만 강간범은 바로 그들 곁에서 이 광경을 희희낙락 지켜보고 있다.


시간이 그러하듯 운명은 우리들 사이를 빗겨간다. 이제 세 사람은 과거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채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이걸 알렉스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가? 강간당해야 할 운명, 복수되지 않는... 그걸 운명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여성들 가운데, 아니 지난 역사 시대를 모두 통틀어 어느 시대의 여성이 강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가? 알렉스가 강간당하던 바로 그날. 알렉스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확인했지만 마르쿠스에게 말하지 못했다. 세상은 과연 합리적인 이성의 적절한 통제를 받아가며, 서로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글쎄... 노에는 그걸 믿지 못하는 듯 하다. 내가 짜증이 났던 이유가 생각났다. 그건 어쩌면 노에 감독에게 내가 그런 건 아니야 혹은 꼭 당신이 말하는 대로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도가니"를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다. 그 통증과 슬픔을 외면해선 안된다는 건 알지만 정말이지, 정말이지 두렵다. 나는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 영화를 다시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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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갱스터(American Gangster, 2007)



감독 :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각본 : 스티븐 자일리언(Steven Zaillian) 
원작 : 마크 제이콥슨(Mark Jacobson)
출연 : 덴젤 워싱턴(프랭크 루카스), 러셀 크로우(리치 로버츠), 클레어런스 윌리엄스3세(범피 존슨)

<아메리칸 갱스터>는 1960년대 월남전이 한창 진행 중인 미국으로 우리를 이끈다. 극장판이 아닌 감독판은 런닝 타임이 3시간에 육박할 정도인데도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전혀 지루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같은 조밀한 짜임새와 박진감을 동시에 갖출 수 있었던 배경엔 물론 리들리 스콧의 연출 솜씨가 가장 큰 덕이겠지만 그 밑바탕엔 스티븐 자일리언의 내공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각색해 1994년을 그의 해로 만들었던 극작가이기도 하다.(
리들리 스콧이 사회성 짙은 시네아스트로 평가되지 못하는 대신 주로 시각적인 쾌감을 선사하는데 대가로 알려진 반면 스티븐 자일리언은 <쉰들러 리스트>, <갱스 오브 뉴욕>, <시빌 액션>에 이르기까지 시민과 평등이라는 사회적 주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온 각본가이자 감독이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1968년의 미국 뉴욕 할렘을 장악하고 있던 흑인 갱스터의 두목 범피 존슨(클레어런스 윌리엄스3세)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대부>에서 돈 꼴레오네가 자기 집 정원에서 숨졌다면 범피는 당시 미국에 한창 번지기 시작한 대형 마트에서 그의 오른팔이었던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진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런데 두목 범피가 죽음을 맞이한 장소가 대형 마트라는 것은 영화 전체를 통해 매우 의미심장한 사회학적인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아메리칸 갱스터>는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지만 실제 인물인 범피 존슨은 레스토랑에서 죽었다.

‘웨스턴(western)'이 미국의 신화를 대체하는 영화적 산물이라면 ‘갱스터(Gangster)’는 미국의 자본주의 구조와 현실을 투사하는 대표적인 영화 장르다. 마틴 스콜시지의 <갱스 오브 뉴욕>이 미국 건국사의 암울한 시초를 그리고 있다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미국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그려낸 3부작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는 정치적 격변을 틈타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 난민이 자본주의적 성공의 사다리에서 추락하는지를 보여준다. 리들리 스콧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구조가 무엇인지 <아메리칸 갱스터>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 초반 뉴욕 할렘가의 갱스터 두목이자 흑인 빈민들에게는 로빈 후드로 통했던 범피 존슨은 뉴욕 할렘가에 들어선 대형 마트를 바라보면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직거래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대형마트식 산법에 냉소를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 실업자가 만연하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설 자리를 점점 더 잃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1962년 아칸소 주 출신의 샘 월튼은 “월마트 스토어 주식회사(Wal-Mart Stores, Inc.)”라는 대형할인점 체인사업을 시작해 현재는 8백 40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실제로 범피가 숨진 곳이 월마트는 아니지만, 구시대 인물인 범피가 죽은 뒤 그의 자리를 계승한 루카스는 그의 사업에도 ‘월마트화(Wal-Martification)'를 도입한다.



바로 생산자와의 직거래, 저가전략이란 시장 원리 말이다. 월마트의 영업방식은 해외의 노동력부터 자체 매장 내부의 노동력에 이르기까지 최저가격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규모의 경제란 측면에서 이처럼 국제적인 괴물에 대항할 수 있는 토착 유통기업은 거의 없다. 비록 ‘월마트’가 한국에서는 ‘이마트’라는 토착 괴물에 밀려 떠나긴 했지만 이마트가 월마트와 경쟁한 방식의 기본 구조는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범피 존슨의 수행비서이자 보디가드였던 프랭크 루카스는 바로 그 같은 방식으로 인도차이나의 마약생산업자와 직거래 방식으로 마약을 거래했고, ‘블루매직’이란 브랜드명을 이용해 순도 높은 마약을 뉴욕에 공급한다(이 부분이 알레고리로서는 상당히 재미있다. 순도 높은 마약은 물론 마약 중에서는 고급제품일 테지만 그 자체로는 독약이니까. 마찬가지로 월마트로 상징되는 저가상품과 대량구매방식은 그 자체로는 소비자에게 이득처럼 보이지만 전지구적으로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조폭의 생태학에서 두목이 비명횡사하거나 명확한 후계자를 결정하지 못했을 때 대권을 승계하는 것은 대개 수행비서라고 한다. 루카스가 범피의 비서 출신이었던 것처럼 삼성 그룹의 경영진의 2/3은 비서 출신이란 사실도 의미심장하다(영화 속 리치 형사는 삼성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심지어 당시 그의 고백을 들은 신부님들조차 김용철 변호사에게 삼성에서 호의호식하다가 이제 와서 라고 말했다는데, 리치 형사 역시 절대적인 선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루카스의 체포에도 성공했고, 부패 경찰들을 일망타진하는데도 성공했다. 과연 김용철 변호사는 비서 출신의 임원진들과 회장님을 법정에 세운 것만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 사회는 성공한 걸까?). 얼마 전 <두사부일체>란 코믹 조폭 영화가 흥행 대박을 터뜨린 일도 있지만, 사실 알렉산더 대왕과 해적이 대화를 나눈 시대 이래로 조폭과 기업, 국가는 본질적으로 같은 작동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화 <대부>는 CEO들의 경영학 수업에서 빠져선 안될 교재이고, 마피아 출신 간부의 경영학 처세술서가 베스트셀러로 팔리기도 한다. 조폭과 기업은 서로를 학습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월마트에 취직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겠지만 그것은 월마트가 누구나 일하고 싶은 좋은 직장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월마트가 진출하기 전엔 자신의 매장을 가지고 있던 자영업자들이었을 테고, 비록 월마트보다는 작은 규모였겠지만 좀더 나은 보수를 지급하는 중소 마트에서 일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월마트’로 상징되는 세계화는 한해 1만 4,000개의 직장을 없애고, 그 대신에 ‘월마트’ 같은 비숙련 저임금 직장 3,000개를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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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작전명 발키리 - Valkyrie



 

난제 - 역사성과 오락성(흥행성적) 그리고 작품성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과 사건을 영화나 드라마, 소설로 재구성하는 일은 화살 하나로 세 개의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처럼 어렵다. 역사성과 오락성(흥행성적) 그리고 작품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가? 언젠가 어느 신문 기자던가, 평론가가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가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썼다가 인터넷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스포일러를 유포했다고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내가 이 일을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무렵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옆 좌석의 젊은 여성 둘이 나누는 대화를 실제로 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기자인지, 평론가인지를 혹독하게 비판했고 그 덕분에 영화 보는 재미가 반감되었다고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힐난하고 싶어서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대성(大聖) 공자도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하는데, 뉘라서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모든 고전을 읽을 수 있을까. 영화를 통해서이든, 원작을 통해서이든 누구나 그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순간은 있는 법이다. 고전이란 인류의 문화유산이란 점에서는 보배이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수많은 세월 동안 대중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널리 전파된 이야기란 뜻이기도 하다. 이것을 영화화하거나 드라마로 장르 전이(轉移)를 할지라도 기본적인 이야기 틀을 바꾸긴 매우 어렵다. 고전이 살아남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익숙한 이야기 스타일이 대중에게 이미 숱하게 검증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천재가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이에 도전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장편영화인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스릴러물에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던 신예감독 브라이언 싱어였지만, 이후 <엑스맨> 1편과 2편, 그리고 <수퍼맨 리턴즈>에서는 할리우드의 상업영화 감독으로 안주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릴 때부터 제2의 스티븐 스필버그를 꿈꿔왔던 브라이언 싱어로서는 선배가 <쉰들러 리스트>로 보여 주었던 길을 따라가고 싶은 의욕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진해서 영화 <발키리>의 감독을 맡았다. 사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매력적인 인물과 유난히 끌리는 사건, 극적인 요소들로 인해 깊이 매료되는 시대가 있는 법이다. 나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억압에 저항했던 숄 남매의 <백장미단> 이야기를 처음 접했던 것과 거의 동시에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히틀러 암살 음모 사건을 접했다.


결과를 빤히 아는 역사영화(EPIC)를 보는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돌프 히틀러는 생전에 모두 42차례의 암살 기도(『독재자들』, 교양인, 2009)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치지도자로서 가장 많은 암살 시도가 있었던 인물은 아마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였으리라 싶은데, 『피델 카스트로 - 마이 라이프』(현대문학, 2008)에 따르면 모두 600여 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그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샤를르 드골 대통령이 6차례의 암살 기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늑대 무리는 조직적으로 사냥감을 공격하지만 우두머리를 잃으면 사냥을 포기한다고 하는데, 국가조직의 수장을 제거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암살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정치수단 중 하나다.


제임스 1세를 암살하려 했던 가이 포크스(Guy Fawkes)를 비롯해서 링컨 대통령을 암살했던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이라는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을 암살한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Sirhan Bishara Sirhan)에 이르기까지 정치인을 겨냥한 암살은 성공유무와 상관없이 대중의 관심이 쏠린다. 이런 사건들이 수많은 음모론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누군가 한 개인의 죽음이 시대의 향배를 어긋나게 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올리버 스톤 감독을 비롯해 수많은 미국인들은 케네디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까닭 역시 그가 범죄와의 전쟁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법무부 장관 출신이었고,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당시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던 베트남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했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개인으로서의 위인(偉人)인지, 아니면 평범한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大衆)인지는 역사학의 오래된 논쟁거리로 남겨두자.


어찌되었든 역사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그것이 우리 인류의 생애사 속에 포함되는 실존했던 인물들이 시대를 고민했던 흔적이란 것이고, 두 번째 재미는 과연 나폴레옹이 불면증과 위장장애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며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 프랑스의 역사, 나아가 유럽의 역사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와 같은 역사 속 작은 국면들이 차지하는 결과를 되짚어봄으로써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서양의 역사를 우리 한국의 역사에 대입시켜봄으로써 우리가 처해있는 실제 현실의 문제와 한계 등을 점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영화 <발키리>는 <유주얼 서스펙트>라는 걸출한 스릴러를 연출했던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극적인 요소가 약한 편이긴 하지만 이와 같은 점들을 감안해서 본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슈타우펜베르크 vs. 김재규

정치적 수장을 제거하는 암살의 상당 부분은 브루투스와 케사르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측근에 의해 실행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최고 권력자는 항상 삼엄한 경호를 받기 때문에 암살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만 있다면 암살의 성공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나 암살이 암살만으로 정치적 의도까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면 한 개인에 불과한 정치인의 암살을 통해 정치적 의도까지 관철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버지와 마찬가지였던 케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의 의도는 로마공화정을 수호하고자 했던 것이지만 그의 죽음은 공화정의 몰락을 앞당기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겨냥해 민주주의를 회복하려고 했다는 김재규의 의도와 달리 그의 죽음으로 군부독재를 청산할 수는 없었다. 현대적인 국가조직은 ‘관료제’라는 단단한 배후조직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이다.


영화 <발키리>에서 암살 음모의 주동자였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정치인들과 군인들의 논의에 답답해했던 이유는 히틀러 암살 이후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될 최고 권력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독일 군부의 뇌리에는 쉽게 자리 잡을 수 없는 논의, ‘쿠데타’를 끌어들인 장본인이었다. 비록 규모나 역사적 의의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차이는 있지만 슈타우펜베르크와 김재규는 상당히 닮은꼴이다. 이 두 사람을 닮은꼴이라 비교한다는 것은 본의든 아니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아돌프 히틀러를 비교하게 된다.


일제 식민 통치와 한국전쟁을 치르며 출발한 신생공화국 대한민국은 좌우 갈등, 분단, 부정부패, 경제난 등으로 최악의 위기 속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부쿠데타를 통해 집권했지만 이후 형식상으로는 민주선거를 통해 연속해서 재집권에 성공한다. 그의 최대 업적은 경제개발에 성공하여 수백 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인들에게 ‘보릿고개’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3선 개헌에 성공한 뒤 유신이라는 초헌법적 쿠데타를 통해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뒤이어 오일쇼크 등으로 인한 경제위기,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철권으로 억압하는 독재에 염증을 느낀 민중의 저항 속에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의 총에 살해당한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제정을 대신해 출범한 바이마르공화국의 정치, 경제적 무능과 볼셰비즘의 발흥에 위기를 느낀 독일의 일부 민족주의자들, 군국주의자들과 결합해 국가사회주의당(나치당)을 독일 의회의 주요 정당으로 성장시킨다. 이후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사망과 독일제국의회 방화사건 등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비견할 만한 ‘비상대권’을 차지하고 독일 내 유일무이한 최고 권력자가 된다. 유신체제가 정권에 대한 어떤 비판, 헌법 개정에 대한 발언만으로 처벌되었던 것처럼 히틀러가 비상대권을 차지한 독일 역시 나치 체제와 총통에 대한 어떤 비방, 비판도 처벌의 대상이었다.


서민적 독재자와 귀족적 민주주의자

내가 아는 한 독일 역사에서 군부에 의한 쿠데타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퇴한 빌헬름 제정을 물러나게 한 키일 군항의 반란은 있었지만 그것은 쿠데타라기보다는 혁명이었다. 어떤 이는 독일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던 까닭을 독일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와 정반대의 이유로 독일에선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을 일컬어 ‘국가가 군대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군대가 국가를 소유한 이상한 체제’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독일은 국가구조 속에 군대의 전통이 강력하게 존재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적 전통 속에는 군부가 민간권력을 장악하는 일이 고려 무신정권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군부의 정치화는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일본 군대를 통해 습득하게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최고통치자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풍경 중 하나는 막걸리를 마시는 대통령이다. 민주공화정의 주인이라는 대다수 국민들이 맥주와 위스키를 섞어 마시는 동안에도 대통령은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마시는 풍경을 즐겨 연출한다. 이런 풍경이 연출되는 까닭은 단순하다. 최고통치자들의 실생활이 서민적이지는 않지만 서민적이라는 인상을 줄수록 통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그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윤보선이나 장면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이 두 사람과 달리 서민적인 풍모와 출신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의 최고통치자였던 히틀러는 그동안 독일을 지배해왔던 기존의 지배엘리트들과 달리 매우 서민적인 인물이었다.



▶ 헤밍 폰 트레스코프(Henning von Tresckow) 대령

히틀러 암살음모를 추진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물론 에빈 폰 비츨레벤 장군, 헤닝 폰 트레스코프, 메르츠 폰 크비르하임, 베르너 폰 헤프텐, 파울 폰 하세, 하인리히 폰 헬도르프 등 히틀러 암살 음모의 주역들 대다수는 중간 이름에 귀족을 뜻하는 폰(von)이 들어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독일의 전통적인 귀족(융커)계급 출신이었다. 하사출신이었던 히틀러는 귀족계급이 지배하던 독일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자초한 무능한 무리로 멸시하기 까지 했다. 그가 에르빈 롬멜을 총애했던 까닭 중 하나는 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서민 출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히틀러 암살 이후 권력수반에 앉을 계획이었던 루드비히 베크 전 독일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해 칼 프리드리히 괴들러(전 라이프치히 시장) 같은 인물들이 히틀러 암살 이후 수립하려 했던 독일은 과거와 같은 지배엘리트들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던 이들이 처음부터 히틀러의 반대파는 아니었다. 도리어 이들은 히틀러의 지지자들이었고, 그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히틀러에게 등을 돌리게 된 까닭에 대해 영화 <발키리>는 유대인학살 등 인류에 대한 범죄, 역사 앞에 선 인간으로서의 양심적 갈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히틀러가 권좌에 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볼셰비즘의 발호에 위기감을 느낀 독일 내 자본가들과 중산층, 영국과 프랑스의 무관심 등 여러 요인들이 합쳐진 결과이긴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열렬한 지지가 밑바탕이 되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외국 유학을 다녀온 지배계급의 자식들이 사회주의자가 되고, 서구로부터 들어온 기독교식 교육을 받은 피지배계급의 자식들이 청교도적 민주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의 계급적 뿌리와 이반된 사상을 지니게 되었던 것처럼 히틀러를 가까이에서 접한 귀족적 민주주의자들은 히틀러를 제거하고자 했고, 그의 통치로 가장 큰 피해를 겪어야 했던 대다수 독일 서민들은 여전히 히틀러를 지지했다.


쿠데타로 나치지배가 종식될 수 있었을까

역사가들이 가장 즐겨하는 질문이자 가장 꺼리는 질문은 “만약에~”란 것이다. 역사란 이미 과거에 일어난 사건 중에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사건을 찾아내 인과관계와 그 의미를 찾아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현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거나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없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영화 <발키리>로 우리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영화 <발키리>는 역사영화로서는 매우 훌륭한 편이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역사 영화들이 지닌 문제점의 상당수는 역사를 희화화하거나 제멋대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키리>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진지하다(물론 다큐멘터리도 허구이며 창작자의 의도가 반영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나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히틀러와 나치체제에 저항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의 이런 의도는 톰 크루즈라는 대중적인 스타에 의해 충분히 담보되었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발키리>의 장점은 이처럼 진지하다는 데 있지만, 동시에 관객들에게 왜 진지해져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역사 속의 사건이 그 자체로 극적인 요소들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관객 모두가 읽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히틀러 암살이란 대의에 목숨을 거는 요 인물들의 당위적 결의는 영화 내부에 있지 않고, 관객들의 영화 외부에서 배운 역사에서 나온다. 그 결과 논리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 정서적으로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영화 서두에 이미 히틀러의 제거를 결심한 사람이었고, 베를린의 히틀러 암살 음모 세력 역시 이미 준비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왜 목숨까지 걸면서 히틀러를 제거하려 하는지에 대해 관객들 보고 스스로 역사에서 배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의 진행상 필요한 등장인물 수가 너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영화 <발키리>자체가 지닌 극적인 요소에만 천착해버리면 역사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로부터 너무 멀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 관객들이 히틀러 암살 음모 사건을 접하게 될 때, 가장 먼저 던지게 될 핵심적인 질문이 무엇이었을까를 상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질문은 ‘만약 히틀러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과 그의 동지들이 계획했던 대로 암살당했다면 과연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였을 것이다. 역사는 정말 달라졌을까? 슈타우펜베르크의 히틀러 암살 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던 1944년 6월 6일로부터 44일이 경과한 1944년 7월 20일의 일이었고, 독일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것은 발키리작전으로부터 10개월쯤 뒤인 1945년 5월 8일의 일이었다. 과연 한 명의 정치지도자가 암살당하고, 쿠데타로 나치 정권은 전복될 수 있었을까? 그 결과 독일은 연합국, 소련 등과 휴전을 맺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 영화 <발키리>를 통해 역사 앞에 무수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김재규의 총탄이 유신에 종지부를 찍기는 했으나 뒤이어 12.12쿠데타와 5.18광주학살을 불러들인 것처럼 히틀러의 암살이 역사의 냉정한 잔혹성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와 반대의 경우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와 같은 질문은 그저 영화를 재미있게 보면 그뿐인 관객의 입장에서 호사스러운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을 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어제가 있는 법이다. 설령, 그것이 역사의 잔인한 수레바퀴 앞에서 실패라 불리게 될지라도 목숨을 걸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오늘도 있는 법이다.



영화 <발키리>는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소돔을 멸망시키지 말아달라던 아브라함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비록 실패로 끝났고, 대중의 지지도 받지 못했지만 그들이 있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광기에 휩싸인 독일이 역사 앞에서 그래도 우리 속에 이 체제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1980년 5월 광주의 마지막 날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워 광주도청으로 진격해오던 날 밤을 어떤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살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살았고 죽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죽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날 죽고자 마음 먹은 시민들의 피를 통해 산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사이기도 했다. 나는 역사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거나 이끌려 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천하흥망에는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는 법(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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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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