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의 개』 1~4(완결) | 야스히코 요시카즈 (지은이) | 미우(대원씨아이) | 2012

대체 일본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단 말인가


일본을 가리켜 우리는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릅니다. 한일 양국의 역사는 상고시대(上古時代)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지만, 해방 68년, 한일국교 정상화 48년이 지나도록 양국은 아직도 과거사를 둘러싼 불신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본의 우경화와 맞물린 잇따른 망언으로 그간 양국이 쌓아왔던 신뢰마저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일본 시민사회의 일반적인 역사 인식은 아니며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되었던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런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며, 만약 평화헌법이 개정된다면 분리 독립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 역시 전후 세대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려는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왕도의 개』 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지난호에 소개했던 『바람의 검심』이 일본의 근대화를 촉발시켰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전후한 시대를 그린 일종의 오락만화였다면 『왕도의 개』는 유신 이후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 직전까지의 일본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유신 이후 자유민권의식이 높아진 농민들이 벌였던 일본 최초의 근대무장봉기인 1884년 치치부(秩父) 사건으로 시작해서 갑신정변, 1885년 오사카 사건, 1894년 동학농민운동, 김옥균 암살, 갑오개혁, 청일전쟁을 거쳐 1895년 전봉준 처형, 시모노세키 조약, 삼국간섭, 을미개혁 그리고 1900년 중국의 삼주전(三洲田) 봉기에 이르기까지 한·중·일 삼국이 근대의 길목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의 캐릭터 디자이너이자 만화 『모빌슈트 건담 디 오리진』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는데, 그가 『왕도의 개』를 기획하게 된 까닭은 오늘날의 일본이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역사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일본이 그릇된 근대화(제국주의)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청일전쟁 때부터라고 말합니다.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의 빛과 그림자, 카노와 카자마


성인만화(成人漫畵)라고 하면 에로틱한 내용을 먼저 연상하지만 『왕도의 개』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들을 차용해 작가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역사 인식을 진지하게 풀어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본격 성인만화입니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실존과 가상인물이 무수히 교차하지만, 한·중·일 삼국이 근대화를 통해 평화와 공동번영으로 가야 한다는 왕도(王道)의 길을 걷고자 했던 카노 슈스케(加納周助)와 개인의 입신양명을 추구하며 일본 제국주의에 순응하는 패도(覇道)의 길을 걸은 카자마 이치타로(風間一太郎)라는 두 명의 가상 인물이 중심입니다. 두 사람은 자유민권운동이라는 하나의 뿌리(공동의 경험)에서 나왔지만,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와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로서 일본 근대의 명암(明暗)을 상징합니다. 두 사람이 펼쳐내는 우정과 대립은 일본 근대사의 축쇄도(縮刷圖)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카노의 배후 인물로 등장하는 카츠 카이슈(勝海舟, 1823~1899), 카자마의 스승 무츠 무네미츠(陸奥宗光, 1844~1897)는 실존인물입니다. 두 사람은 막부의 권력을 빼앗아 천황에게 되돌린 대정봉환(大政奉還)과 서남(西南)전쟁, 메이지 유신까지는 동지였지만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서로 정적(政敵)이 됩니다. 


일본 근대화의 스승으로 현재까지 일본 1만 엔권 지폐 인물로 새겨져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는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을 통해 일본의 근대화를 추동했고, 같은 아시아 국가이지만 근대화 속도가 일본에 뒤처진 조선과 청(중국)을 멸시하고, 조선을 일본의 방파제로 삼기 위해 조선을 병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서구 제국주의를 일본화한 후쿠자와의 논리는 그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후쿠자와와 함께 패도의 길을 상징하는 무츠 무네미츠는 유신 이래 일본이 서구와 맺었던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기 위해 노력했고, 영일 통상조약(1894)을 성사시켜 영국의 치외법권을 회수하는 등 외교적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선반도는 언제나 붕당 간의 다툼이나 내분·폭동이 잦은 곳으로, 사변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독립국답게 책임을 다하려는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이를 광구(匡救)하려 도모하지 않는 것은 이웃 나라의 우의에 반할 뿐 아니라 실로 우리나라 자위의 길에서도 어긋남이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인즉, 일본정부는 조선국의 안녕을 꾀하는 계획을 담당하는 데 추호도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해 왕도의 길을 주창했던 카츠 카이슈는 한때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1828~1877) 등의 정한론(征韓論)에 동조한 바도 있지만 이후 “구미 열강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일본, 조선, 중국 세 나라가 연대를 맺어 함께 대항해야 한다”며 아시아 연대론을 펼쳤던 인물입니다. 그는 조선을 멸시하던 당시 일본의 정치인, 지식인들에게 “조선이라면 반쯤 망한 나라라고, 빈약국이라고 경멸하지만 나는 조선도 소생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조선을 바보로 여기는 것은 근래 들어서의 일이며 옛날 일본 문명의 종자는 모두 조선에서 유입된 것이다”, “조선에 대한 처분은 그 처음부터 이미 잘못되었으니 어찌 그 끝을 좋게 이루겠는가. 만일 오늘과 같은 시간이 지속된다면 이웃 나라는 반드시 그에 대해 극단적인 주장을 할 것이다. 일본의 조치는 동양의 치안을 해친다. 그래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혜안이 특히 돋보이는 것은 김교신, 함석헌 선생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 같은 이조차 “청일전쟁은 우리에게 있어 실로 의로운 전쟁”이라며 지지했던 청일전쟁을 “대의명분이 없는 전쟁”이라며 반대했다는 사실입니다.

한·중·일 삼국의 근대화를 추동했던 인물들이 펼쳐내는 역사


출판사는 이 작품을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건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왕도의 개』에는 개화파의 선구자였던 김옥균과 녹두장군 전봉준을 비롯해 고종 황제,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중국의 쑨원 등이 등장합니다. 작가는 카츠 카이슈와 김옥균, 쑨원을 아시아의 연대를 통한 평화적인 근대화를 꿈꾼 이상적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인의 처지에서 보면 일본의 일개 사상가와 그 하수인 역할을 자처한 주인공의 노력만으로 그런 역사적 사건들의 물꼬가 트이고 가로막히는 일이 가능했을까 반문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탁월한 솜씨는 그런 의문을 넘어 우리에게 동아시아 근대화의 역사를 곱씹을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차근차근 공부해본다면 그것만으로도 동아시아 근대화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일본 망언의 계보(개정판)』 - 다카사키 소지 (지은이) | 최혜주 (옮긴이)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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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하시모토 도루(橋下徹.44) 오사카 시장이자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일본내 극우정당)는 이른바 '일본 정치의 젊은 피'로 얼마전까지도 유력한 차기 총리감으로 물망에 오르던 사람이다. 그가 얼마전  "(군)위안부는 군의 복지를 위해 필요했다"는 망언을 해서 새삼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 매체들에 따르면 하시모토 시장은 13일 오사카(大阪) 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해 "그 정도로 총탄이 오가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강자 집단에 위안부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수 있는 일"이라고 말해서 또다시 지탄을 받고 있다.

그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일본의 종군 위안부 제도만 문제가 되느냐"며 "다른 나라도 전시에 위안부와 비슷한 체계를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은 국가적으로 위안부를 강제로 납치해 일하게 했다고 세계는 비난하고 있지만 2007년 각의 결정에서는 그런 증거가 없는 것으로 돼 있다"며 "사실과 다른 것으로 일본이 부당하게 모욕받고 있는데 대해서는 확실히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시장은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가 된 것은 전쟁의 비극의 결과"라고 밝히고, "전쟁의 책임은 일본에도 있다. 위안부에게는 상냥한 말과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부연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성을 사고 파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하시모토 도루의 발언을 쉽게 단죄할 수만은 없다. 그 까닭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면 하나는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국가가 주도하지는 않더라도 암암리에 용인하는 성매매 제도가 여러 경로로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하시모토 도루의 발언에서 '민족' 감정을 조금 제거하고 바라본다면 그의 발언이 최소한 역사적 팩트, 현실적 팩트에는 일부 부합하기 때문이다. 괴벨스가 말했던가? “99%의 진실에 1%의 거짓을 섞으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고 했는데, 하시모토의 주장은 원천 무시해야 할 만한 거짓이 아니라 일면의 진실을 가지고 다른 부분까지 왜곡하고 있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단순하게 민족 감정으로 접근하거나 소박한 윤리의 차원으로만 접근하기에 어려운 몇몇 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여년 이상 분쟁전문기자로 활동해온 크리스 헤지스는 미국 정부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반대하는 연설을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던 <뉴욕 타임스>를 떠나야 했는데, 그는 "당신도 전쟁을 알아야 한다(수린재, 2013)"을 통해 그가 알고 있는 전쟁의 악마적 속성에 더해 퇴역군인들을 취재하고, 그들의 경험을 조사해 전쟁에 대한 FAQ를 만들었다. 다음은 그 책의 내용 중 일부로서 전시(군대) 매매춘 문제와 강간 문제에 대한 질문과 답을 재구성한 것이다.

Q.성관계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가?
A. 항상 생각할 것이고, 특히 작전이 없을 때는 더욱 생각날 것이다. 전투 중이거나, 직접적이고 극적인 스트레스 상태에 있다면 덜 생각날 수도 있다. 집을 떠나온지 오래되면 될수록 성관계에 대해 더욱 문란해질 수 있다. 2차 대전 중 유럽에 참전한 미군 병사 한 사람은 이 전쟁 마지막 해에 평균 25명의 여자와 성관계를 가졌다.

Q.매춘도 하게 되는가?
A. 미군에 의한 매춘은 많은 나라의 현실이다. 매춘은 미군 부대 주둔지역의 주요 수입원이다. 미군이 주둔해 있는 일본, 한국, 베트남, 그 외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대규모의 매춘산업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만 현제 2만 7천여 명의 매춘부들이 미군 부대 주변에 있다. 베트남전 중에는 30만 명에서 50만 명의 매춘부들이 있었다. 그린베레 병사 한 사람이 평균 25명의 베트남 매춘부와 성관계를 가졌다. 걸프전 때에는 전쟁 기간도 짧았고 그 지역에 매춘 시스템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극소수의 미군만이 매춘을 했다. 그러나, 걸프전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귀국선은 병사들을 위해 '일부러' 태국에 들러 잠시 정박했다.

Q. 성관계에 대해 흥미를 잃게도 되는가?
A. 전투를 앞두고 공포를 느낀다면 그럴 수도 있다. 걸프전에서 전투 전의 설문조사에서 22%의 병사들이 보통 정도나 극도의 불안감으로 성관계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 답했다. 70%의 병사는 성관계에 전과 다름없이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전투 후에는 7%의 병사만이 보통 정도나 극도의 불안감으로 성관계에 흥미를 잃었고, 86%의 병사는 전과 다름 없는 흥미를 보였다고 보고되었다.

Q. 전쟁에서 강간은 흔한가?
A. 그렇다. 코소보에서 1992년과 1994년 사이에 2만 명의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의 대학살 기간 동안 25만 명에서 50만 명의 여자가 강간당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1971년 시작된 분쟁에서 서파키스탄 군에 의해서 적어도 20만 명의 여자가 강간당했다. 쿠웨이트에서는 1990년 이라크의 점령 기간 동안 5천 명의 여자가 강간당했다.

Q. 강간은 전쟁범죄로 간주되는가?
A. 다른 전쟁범죄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범죄로 간주된다. UN에 의하면 "강간은 가장 적게 비난 받는 전쟁범죄"다.

Q. 전쟁에서 왜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강간을 당하는가?
A. 강간은 무기로 이용된다. 적국 여자들에게 때로 고의로 임신을 시키거나 질병에 걸리게 하기 위해 강간을 한다. 여자들은 납치되어 짐꾼으로 부려지거나 식사 준비를 하게 되거나, 군인들의 욕구를 풀어주기 위한 성노예로 이용된다. 여자는 때로 심문의 한 형태로 강간을 당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전쟁범죄다.

Q. 왜 강간은 효과적인 무기가 되는가?
A. 강간은 민간인에게 공포심을 준다. 민간인들이 공포심으로 미리 피난을 가버리면 군대가 그 지역을 쉽게 진주하게 된다. 강간범들이 활개를 치게 하고, 희생자들은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적국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Q. 강간은 희생자들에게 어떤 후유증을 남기는가?
A. 성폭력의 신체적 후유증은 상처, 원하지 않는 임신, 성적 기능 장애, 에이즈 감염 등이 있다. 성폭력의 많은 희생자는 심리적으로 다시는 회복되지 못한다. 성폭력의 잔존효과는 불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 자산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여성들이 강간으로 임신이 되면 정신적 외상은 급격하게 악화된다. 낙태를 선택한 여성들도 정신적 외상과 건강상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Q. 미군에게 강간은 어떤 일인가?
A. 평시에는 미군의 강간 범죄가 그 연령대의 민간인 강간 범죄보다 적다. 공격적인 전투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에는 강간을 포함해서 불법적인 행위들이 증가한다. 2차 대전의 막바지였던 1945년 3월과 4월에 유럽의 작전 지역에서의 미군에 의한 강간 비율은 미국 본토의 민간인에 의한 강간 비율의 3.66배였다.

이것을 남성의 본성(혹은 본능)에 기인하는 문제로 보던,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던 하는 것은 이 글의 본래 목적은 아니다. 다만 이것이 전시라는 특수상황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폭력수단(군대)이 존재하는 한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다음은 캐서린H.S.문의 "동맹 속의 섹스"에 드러난 사례(1965년)를 요약해본 것이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8군 병사들의 약 84%는 성매매를 경험했으며, 성매매의 주요원인은 동료의 압력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은 성매매와 성병을 관리하는 것은 전쟁과 전쟁 준비에 저해되는 모든 요소들을 관리할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입장에서 살폈을 때 이런 제도는 거리의 여성들에 대한 시민권의 전적인 폐지를 국가가 공인하는 최초의 정책을 의미했다. 전쟁 기간 동안 병사들이 걸리는 가장 많은 질병 1위는 성병이고, 2위가 감기였다고 한다."

근대국민국가의 거의 모든 성매매 관련 법안은 남성고객과 성매매 여성의 처벌에 차등을 두었고, 알선업자와 포주는 체포되지도 않는 법률이었다. 대한민국은 기지촌 여성들을 필요악으로 대할 때도 있지만, 이들을 "국가방어와 GNP성장을 위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는데, 1973년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민관식은 도쿄를 방문했을 때 "조국 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소녀들의 충정은 진실로 칭찬할 만하다"고 하여 한일 양국의 여성 단체들과 언론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베트남전에서 목숨을 잃은 파월 한국군 장병들이 벌어들인 달러만 경제개발계획의 밑천이 된 것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한국인의 눈에, 매춘 여성은 두 가지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비쳤다. 그 기능이란 한국사회에 끼칠 외국의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들을 견제하고, '존중받을 만한' 소녀와 여성들이 미군에 의해 매춘과 강간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본문 69쪽 - 70쪽>"

"미8군의 한 정보장교는 군대가 1960년대 남한 GNP의 25%를 차지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1987년 미군은 남한 경제에 10억 달러를 기여했으며, 이것은 전체 GNP의 약 1%에 해당한다. …<중략>… 1978년 한국 경제는 매매춘을 통해 일본인으로부터 700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본문 76쪽 - 77쪽>"

성과 매매춘 문제에 대한 시각의 상당 부분은(때로 같은 여성의 경우에도) 이것을 '필요악'으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즉, 이런 굴욕은 형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아우로서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몫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 여성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냔 의식이다. 비단 한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군 기지가 들어가 있거나 군대 제도를 유지하는 상당수 국가에서 매매춘 여성들은 (정상)가족으로부터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서도 비국민으로 간주된다.

기본적으로 모든 우파의 시각은 '사회진화론'에 입각해 있다. 다윈이 진화론을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했던 진화의 논리는 자연(현실)에 적응하는 종만이 살아남아 진화해 왔다는 것이었지만 우파들은 이것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받아들였고, 이것을 다시 사회에 적용한다. 즉,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역시 자연스러운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하시모토 도루는 군위안부 망언을 한 날 저녁에는 "위안부 제도가 아니어도 '풍속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달초 오키나와(沖繩) 후텐마(普天間) 미군 기지를 방문했을 때 병사들이 성적 에너지를 해소할 수 있도록 "풍속업을 더 활용해 달라"고 지휘관에게 제언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성의 역사학 : 근대국가는 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삼인, 2004)"의 저자 후지메 유키는 이 책에서 "일본군 '노예'제가, 1930년대에 시작된 전쟁에서 돌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근대의 군국주의.식민지주의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전개된 국가폭력 제도, 즉 공창제가 가장 흉폭한 단계로 발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시모토 도루의 발언에 대해 분개하고, 망언으로 단정해야 마땅하겠지만 그보다 앞서 나의 내면에서 혹시 하시모토의 저 발언을 일부 긍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되돌아 보았으면 좋겠다.

성을 팔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서 제기되는 '왜 굳이 성을 파는가?'라는 질문과 성을 팔고 있는 세계에서의 '왜 팔면 안되는가?'의 반문 사이에서... 나는 가끔 길을 잃고 헤맨다.





*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


당신도 전쟁을 알아야 한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185038

동맹 속의 섹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7519694

성의 역사학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097022

바나나 해변 그리고 군사기지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84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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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보세요-04>
바람의 검심 1~28(완결) - 와츠키 노부히로 지음 / 서울문화사(만화)





올해 초(2013년 1월) 개봉된 영화 <바람의 검심>은 만화가 와츠키 노부히로(和月伸宏)가 지난 1993년 일본 만화잡지 《소년 점프》에 처음 발표하여 1999년쯤인가에 전 28권으로 완결된 동명의 만화를 실사 영화로 제작한 것입니다. 일본 만화는 먼저 잡지에 연재를 시작한 뒤 그것을 단행본 시리즈로 출간하고,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으면 이것을 다시 OVA(Original Video Animation)으로 제작하는 방식인데, OVA는 대체로 공중파나 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 방송국 등을 통해 방영된 뒤 DVD로 제작됩니다. 이것이 흥행에 성공하면 일종의 외전(外傳)이랄 수 있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거나 <바람의 검심>처럼 실사 영화로 제작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출판에서 영화에 이르는 생산·수익구조가 오늘날 일본의 만화산업, 애니메이션을 세계화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

에도 막부 말기에 비천한 계급의 전쟁고아로 태어난 주인공 히무라 신타는 검술 스승으로부터 ‘켄신(剣心)’이란 이름을 받습니다. 이 작품의 시대 배경은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에 이르는 시대입니다. 어찌보면 일본 사무라이(侍, 武士)의 단순한 액션 활극 만화로 볼 수도 있겠지만, 작가 와츠키 노부히로는 역사 속의 실제 인물과 사건들 사이에 가상의 인물과 사건들을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작품의 사실성과 흥미를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일종의 ‘팩션(faction)’인데,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 동아시아의 근대화를 추동했던 메이지 유신에 대한 지식은 물론 현대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유신의 의미와 당시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을 느끼는 텍스트(text)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 근대화의 동력이 되었던 ‘메이지 유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임진왜란 이후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야 합니다. 전국 시대를 끝내고 임진왜란을 통해 주요 경쟁 세력을 제거하는데 성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어린 아들 히데요리(豊臣秀頼)에게 권력을 물려주고자 했지만 그의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도요토미 세력을 숙청하고 자신이 쇼군의 자리에 오릅니다. 세키가하라와 오사카 전투에서 잇달아 패한 도요토미 세력은 일본의 서쪽 끝 큐슈의 사츠마 번(薩摩藩)과 초슈 번(長州藩)까지 쫓겨나게 됩니다. 도쿠가와 막부는 이후 각 지역의 영주인 다이묘들로 하여금 1년 중 반년은 에도에서, 나머지 반년은 영지에서 근무하는 ‘참근교대제(参勤交代制)’를 통해 반란을 사전에 봉쇄하고, 일본 내 각 지역의 거주 이전과 물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외국과의 교류를 차단하는 쇄국정책을 통해 ‘에도 막부 300년의 평화’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막부의 쇄국 정책은 서양의 흑선(黑船)이 출몰하면서 힘을 잃게 됩니다. 쇄국정책을 고집할 수도, 그렇다고 개혁을 이끌 추동력도 상실한 막부의 권위는 점차 약화됩니다. 이때 막부의 감시 대상이자 오랫동안 서로 견원지간이었던 사츠마와 초슈 사이의 삿쵸 동맹(薩長同盟)을 체결시키며 메이지유신을 이끈 사람이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유신지사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입니다. 사츠마와 초슈 지역의 이른바 지사(志士)들은 ‘막부타도(幕府打倒)와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 와중에 벌어진 드라마틱한 사건들과 인물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막부 말기의 칼잡이 켄신은 발도술(拔刀術)의 대가로 사카모토 료마 등과 함께 존왕양이파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히토키리(人斬り)’로 활동합니다. 히토키리란 막부 말기의 전문 암살자 혹은 살인청부업자들이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하급무사도 될 수 없는 천한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신지사들과 어울리며 열등감과 울분을 더욱 폭력적인 살인과 테러로 보상받고자 했습니다. 작가 와츠키 노부히로는 켄신이란 인물을 구상할 때 실존했던 히토키리인 가와카미 겐사이(河上彦斎)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합니다. 막부파와 반막부파 사이의 대결, 같은 반막부파 사이에서 벌어졌던 끊임없는 배신과 모략은 일본을 격동시켰고, 그 와중에 사카모토 료마도 불과 33세의 나이에 암살당합니다.

근대 민족국가 만들기(nation state building)의 세 가지 방법 - 혁명·내전·유신

서구보다 근대화에 늦었던 지역 대부분은 외세에 의해 식민지가 되거나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였는데, 일본은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가장 빨리 개항하면서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성장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동아시아 삼국은 비록 진행시점과 과정, 주체는 모두 달랐으나 폭력적인 경험을 거치며 근대화를 달성하게 됩니다. 일본의 ‘대정봉환(大政奉還)’, 중국의 국공내전, 우리의 한국전쟁이 그것입니다. 동아시아 삼국은 근대민족국가 수립 과정에서 내전(무력을 동반한 내부 갈등)을 경험했습니다. 찰스 틸리(Charles Tilly)는 “국가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War made the state and the state made war)”는 테제를 주장하여, 전쟁(폭력)이 근대의 국가형성(state-building)과 국민형성(nation-building), 정당성 창출의 근거로 이용되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전쟁은 전통적인 질서를 파괴하고, 그것을 근대의 질서로 대체하는 역할을 하는데 한국전쟁은 남북한 양국의 지배집단의 국가형성과 국민형성, 정당성 창출의 근거로 이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막부가 권력을 천황에게 이양(대정봉환)하는 과정과 이후의 메이지 유신은 혁명과 달리 위로부터 온 혁신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나 내전을 통한 새로운 정권 수립이란 점에서 이후 혁명에 버금가는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대정봉환이 한국과 중국의 내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좌우 이데올로기의 개입이 발생하기 전에 벌어진 내전이었다는 것 - 그 덕분에 일본인들은 근대화 과정을 이념(선악) 대결보다는 애국지사들이 벌인 다소 낭만적인 권력 투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 이고, 다른 하나는 국공내전과 한국전쟁이 ‘국민국가 만들기’ 과정에서 전 국민이 동원되었던 총력전이었던 반면, 일본은 지배계급 사이의 내전 - 한·중의 경험과 달리 일본은 상대적으로 내전 기간이 짧았고, 지배계급 사이의 충돌이었기에 내전의 후유증이 적었던 대신 근대화 과정에서 민중의 참여가 배제되어 이후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 - 이었다는 겁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중·일이 경험한 역사의 차이는 이후 한국과 중국, 일본이 서로 확연히 구분되는 근대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비록 후반부(특히 ‘인벌’편 이후)에 이를수록 일본 만화 특유의 과장과 억지스러운 이야기 늘이기가 작품의 재미를 반감시키기는 하지만 이런 차이에 주목하며 『바람의 검심』을 읽는다면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성찰도 함께 따라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2』 |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12




** '인천교사신문' 연재는 제 개인적으로도 가장 즐기는 연재 꼭지입니다. 개인적으로 만화 읽기를 즐기는 까닭도 있지만 만화라는 매체를 통하여(간혹 만화를 장르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만화는 장르가 아니라 매체입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매체이지요.) 새로운 시각과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즐거움을 선생님들께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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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
100척(尺)이나 되는 장대 끝에 서 있더라도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시방세계와 내가 한몸이 되어 현하리라.

'백척간두진일보'란 말은 당나라 때 고승(高僧) 장사(長沙) 스님의 말이다. 1척은 대략 30.333...cm이므로 백척이란 330m 높이다. 이 높은 대나무 장대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면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라는 의미다.

조선시대 거상으로 알려진 임상옥이 중국에 갔을 때 그가 팔려고 가져간 조선 인삼을 헐값에 사려고 상인들이 서로 담합해 구입하지 않고 간만 보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위기에 처한 임상옥은 함께 갔던 추사 김정희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추사는 붓으로 '百尺竿頭進一步'라고만 썼다. 여기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임상옥은 중국 상인들이 보는 앞에서 인삼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이에 놀란 중국 상인들이 임상옥 앞에 엎드려 싹싹 빌어 결국 모두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었다는 고사로도 유명한 말이다.

아침에 쌍용자동차 노동자 고동민의 글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글귀가 이것이었다.

"화단위에서 연행은 이제 안되나보다. 피켓을 들고 앉아있던 쌍용차해고자들을 경찰은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고있다. 그리곤 경찰에 둘러쌓여 바라보기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화단에 서서 이야기 할 것이다. 우리는 물러 설 곳이 없다고."

애초에 내 생각은 이들 노동자들이 백척간두에 선 듯 위태롭고, 더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이 사회가 처한 현실이 백척간두란 것이었다.

우리는 아리따운 여성들이 주변에 많은 남자들을 농담삼아 꽃밭에 있다고 하기도 하는데, 지금 쌍용차 노동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꽃밭을 만들고, 다시 그 꽃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차단하고, 또 꽃밭을 핑계삼아 몰아내려는 이 상황이 너무나 슬프고, 우습고, 또한 위태롭다.

백척간두에 노동자들을 세워놓고 흔들어대는 저 시방세~계들! 이 시방세~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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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감상해보게."

"그럼 은유를 쓸 수 있게 되나요?"

"물론, 틀림 없이."

달에는 영원히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
인간의 말에도 영원히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
우리가 지구에 있는 한 영원히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듯
내가 그의 마음이 되어보지 않는 한 한 인간의 말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달은 지구의 적도면에 대해 경사져 있고,
타원형 궤도를 운행하는 달의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달은 자기 중심으로부터 미세하게 떨고 있다.
이처럼 지구에서 본 달의 중심이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현상을
달의 칭동(秤動)이라 한다.

달의 떨림을 느낄 수 있다면
한 인간의 떨림도 느낄 수 있으리라.

"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달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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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의 한 칼럼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세 차례나 방문한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는 음식점에 들어가 앉기 무섭게 얼른 물컵부터 뒤집는다. 그러곤 물을 따르러 온 종업원에게 물은 꼭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사람에게만 따라주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고 한다(이 대목을 읽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제인 구달이 방문한 식당은 아마도 고급 식당이었으리라 추측해보았다. '김밥천국' 같은 셀프서비스 식당이라면 어차피 자기 손으로 물을 따라마실 테니 문제 될 게 없을 테고, 보통 식당에선 물병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아주머니든, 알바 생이든 물컵에 물까지 따라주는 법은 거의 없으니까. ㅋㅋ 별걸 다 추측해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부분은 제인 구달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다지 한국적으로 유용해 보이진 않았다).

어쨌든 제인 구달이 이렇게 행동하는 의미는 지금 세계에는 줄잡아 9억명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는데 원하거나 청하지도 않는 물을 따라주며, 마시지도 않을 물을 컵 가득 채워주는 일은 일종의 물낭비(죄악)이라는 것이다. 제인 구달의 이런 행동은 존경할 만한 일이고, 우리도 함께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어쨌든 물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는 "유엔이 정한 세계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이다. '물의 날' 같이 특정한 날은 물론 MB 시대에 이르러 4대강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전국 어딜 가나 숱하게, 지겹게 듣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분명히 해두자!

UN은 한 번도 대한민국을 가리켜 '물 부족 국가'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래전 미국의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가 내놓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분석 결과를 우리 정부가 댐 건설이나 기타 개발 사업을 추진하려는 목적에서 재탕, 삼탕하여 아예 골수까지 우려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한 국가의 연평균 강수량을 인구수로 나눠 일인당 강수량을 계산했는데,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세계 평균을 거의 20~30%나 웃도는 수준이지만 워낙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인구수로 나누면 졸지에 사막국가 수준으로 떨어지는 통계의 장난이 벌어져서 그런 것뿐이다. 그런 걸 분석이라고 내놓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는 물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낭비 국가이며, 그나마 수천년 잘 흘러가던 강을 제맘대로 들쑤셔 엉망으로 만드는 바보 같은 물관리 국가일뿐이다. 비록 우리가 물부족 국가는 아닐지 몰라도 물을 잘 관리하는 치수는 국가의 대사다. 그런 중대사업을 아무 철학도, 계획도 없이 자기 임기 내 제대로 된 환경평가 한 번 제대로 거치지도 않고, 속전속결로 해치우는 나라에서 머나먼 나라에 살고 있는, 깨끗하고 시원한 물 한 잔이 절실하게 필요한 9억 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싶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물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낭비국가이며 물관리가 엉망인 국가라고 UN이 지정한들 이상할 게 없는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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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몇 차례 말한 바 있지만 미국의 무력 과시보다 두려운 것이 나로서는 현재 중국의 침묵이다. 중국이 무서운 이유는 그들의 무력이나 경제력, 외교력 보다 미국과 중국이란 힘센 두 나라의 암묵적 동맹시스셈의 성립이 한반도 평화에는 더 큰 위협이 되어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 미국은 호주, 일본, 한국, 필리핀 해군 등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태평양 해상 작전 훈련인 림팩에서 중국을 배제해 왔는데, 중국은 이에 대해 대중국 봉쇄 훈련이라며 강하게 항의해 왔다. 그런데 2년마다 한 번씩 전개되는 림팩 훈련에 내년부터 중국도 참여하기로 되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중국은 또한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채무국으로서 미국 국채를 1조 달러 이상 소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거 동서 냉전적 사고 아래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마치 미소간의 양대 블럭처럼 서로 적대적인 경쟁관계일 것으로 은연 중 예상하기 쉽지만 좀더 다른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자연스럽게 영국의 패권이 미국이란 또다른 동맹국가로 승계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미중, 중미간 동맹체제의 수립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미소 관계가 초나라와 한나라로 갈려서 서로의 궁(宮)을 노리는 장기로서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었다면, 미중관계는 장기가 아니라 바둑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소간이 치열한 대결에 의한 패권다툼이었다면 미중간에는 싸움바둑과 집바둑이 혼용되어 있는 셈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진영 사이에서 서로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패라고 생각하며 저울질하는 동안 판세가 아주 다른 방향으로 튀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미중 양강의 대립 속에 어부지리라도 얻겠다는 판에 박힌 외교적 인식만으로는 큰 패착을 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예전에 미국과 일본의 빅딜(가쓰라 - 태프트 밀약)에 농락당한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리영희 선생이 생존해 계실 때 이미 중국과 미국이 대만과 북한을 서로 딜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바도 있지만).

강자에겐 써먹을 수 있는 패가 많지만 약자에겐 제시할 수 있는 패가 많지 않은 법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평화 수호 의지가 중요하다. 잘못하면 만패불청(萬覇不聽:매우 큰 패가 나서 상대가 어떤 팻감을 써도 듣지 않게 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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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아버지로서"란의 '~로서'는 자격격 조사라 무거운 말이지만, "아버지처럼"이란 말은 무겁고, 무섭기까지 한 말이다. '~처럼'이 비교격 조사이기 때문이다. '누구누구의 ~처럼' 비교 대상이 되는 순간 부모든, 자식이든 인생은 비루하고, 피곤해진다.



02.

스스로에게 진실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진실하지 말 일이다. 타인에게 진실하기 위해 필히 나를 속여야 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므로... 입을 여는 순간 우리는 누구나 그런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죄인이여, 입을 다물라.



03.
맹세와 비밀은 본질적으로 같은 속성을 지닌다. 흔하면 천해진다는.



04.

SNS시대에는 한 사람에게 한 말이 곧 만 사람에게 하는 말이 된다.



05.
좋은 기회를 눈앞에 두고 주저하여 때를 놓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주저하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살면서 늘 고민되는 부분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언제나 많이 주저하는 사람이다. 실패는 두렵지 않은데 실수는 언제나 두렵기 때문이다.



06.

첫사랑의 맹세를 기억하는 사람은 나머지 맹세들의 무게도 함께 기억한다. 그 무게는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상대성이론(theory of relativity)은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충고하고 싶은 건 맹세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자유지만 맹세를 믿지는 말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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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에 대한 추억01 - 대마왕 신해철





한 가지 일을 오래하다보면 쌓이는 추억도 있는 법이다. "황해문화"는 인문계간지라 연예인과 인연 맺을 일이 별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편집위원들이 별난 사람들이라 그런지 가끔 내 입장에선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한 번 청탁해보라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연예인에게 원고 청탁을 했다가 보기 좋게 딱지 맞은 기억이 있다.

한창 헌법에 대한 논의가 많아서 황해문화 기획으로 <헌법을 말한다>란 특집을 기획하여 각계각층 인사들에게 '새로운 헌법 정신을 듣는다'는 주제로 청탁했었다. 그런데 그 무렵 무슨 일인지 신해철 씨가 논란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돌아보니 '대마왕'이란 그의 별명답게(나 역시 한동안 A서점에서 이런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었다. ㅋㅋ) 신해철은 시비의 중심에 선 적이 꽤 많구나.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찌어찌하여 신해철 씨와 통화를 했는데 내가 이런저런 주제로 신해철 선생에게 그런 글을 좀 받았으면 좋겠다고 어렵사리 말을 꺼내자 그는....

"음, 제가 말로 하는 거면 어떻게든 해볼텐데, 글은 제 영역이 아니라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라고 답하여 내심 말로 하듯 써주면 되는데 하면서 ... 몹시 아까웠던 기억이 난다. 2005년 8월 무렵의 일이다.




연예인에 대한 추억02 - 개그맨 서세원




신해철과의 인연이 원고 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한 일이라면 개그맨 서세원 씨와의 일은 그가 우리에게 항의하기 위해 직접 전화를 걸어온 일이라 기억에 더욱 또렷하게 남는다. 2001년 겨울호(통권 33호)에 실린 영화평론가 이효인의 문화비평 글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당시 이효인 선생은 '<조폭마누라> 대담 뒤집어 읽기'란 글을 게재했는데, 그 무렵엔 이른바 문화권력 논쟁이 한창 뜨거울 때였다. 당시 <조폭마누라>는 개봉 20여일 만에 전국 관객 320만명을 동원한 상업영화였다. 이효인은 서세원이 투자한 영화 <조폭마누라>를 자금력과 인맥을 동원한 문화권력으로 지칭하며 비판적인 글을 썼다.

서세원 씨가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서 자신이 어째서 문화권력자냐며, 자기는 약한 사람이니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황해문화의 계간 문화비평 꼭지는 우리가 직접 기획해서 청탁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 전담 꼭지인지라 어떤 글이 실릴지는 원고가 도착하기 전에는 알수가 없는 일이고, 따라서 이 부분은 우리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필자 개인의 입장이란 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이효인 선생의 연락처를 넘겨달라고 했는데, 그 부분은 편집자가 임의대로 처리할 수 없으니 내게 연락처를 주면 문의해본 뒤 연락하겠다고 말한 뒤에 끊었다.

그가 문제삼은 부분은 "하지만 정말 이 영화에 관한 문제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서세원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공중파 방송에서 이 영화를 선전했다는 점이다. 그는 공식적인 소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언급되지 않아도 될 프로그램에서도 이 영화를 언급했다. 이것은 상사가 지위를 이용하여 부하 직원을 성희롱하는 것보다 더 비루한 짓이다. 그는 <조폭 마누라>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품을 만들고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공중파 방송이라는 거대한 홍보 수단을 통하여 우리들을 희롱한 것이다. 국회의원이 지위를 이용하여 수익을 남기는 것이 범죄라면, 상사의 성희롱이 범죄라면, 이것 또한 분명히 범죄다."라는 부분이었다.

지금은 이런 방식의 영화나 드라마 홍보가 하도 흔해져서 문제제기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처럼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10년 전만 해도 이런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어쨌든 개그계의 풍운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재능과 인기를 한몸에 받던 그였지만 이 무렵이 서세원 씨를 둘러싼 여러 풍문들이 쏟아져 나올 때였던 터라 그 역시 매우 민감해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이효인 선생께 전화를 했더니 전화 번호 알려주라며 도리어 역정을 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사건이 되었고, 그 역시 당시 사건들에 대해 억울한 부분이 많았던 듯 싶다. 어쨌든 이후 서세원 씨는 연예계 비리 사건, 세금 탈루, 조폭 관련 사건이니 뭐니 해서 워낙 여러 사안들이 봇물 터지듯 연일 사건의 중심이 되었던 터라 내 기억에도 더 오래 남는 모양이다. 개그맨이 아니라 목사님이 된 서세원 씨가 며칠 전 3월 12일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 출연해서 그 시절 이야기와 관련된 오해와 해명을 했으니 좀더 자세한 내용은 그런 걸 찾아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야, 이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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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의 유골 감식결과 타살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오는 걸 지켜보는 마음이 갑갑하다. 솔직히 여태 그걸 몰랐던 사람이 누가 있으랴. 모두가 알고 있던 일이었다. 총리실 민간인 사찰부터 국정원 여론조작이 사실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나 맞는 말이고, 한국에서 울화나 불안은 좀더 공적인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생각이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우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의롭지 못하고, 무기력하며 우리가 악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일지 모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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