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OESY

장영수 - 自己 自身에 쓰는 詩 自己 自身에 쓰는 詩 - 장영수 참회는 젊은이의 것이 아닌 것. 죽음은 젊은이의 것이 아닌 것. 젊은 시절엔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미, 있는 세상에 대해 죄악인 여러 날들이 지나가고. 그것은 대개 이 세상 손 안의 하룻 밤의 꿈. 하루 낮의 춤. 그러나 살게 하라. 살아가게 하라. 고 말하는 세상에 대해 조금씩 깨어나며 살아가게 하라. * 시인은 참회는, 죽음은 젊은이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전 한 젊은이의 죽음을 보았다. 나와 동갑내기 청년이었다. 나는 내가 늙었다고 생각해왔는데, 그의 죽음을 보고 치밀어오르는 분노 혹은 슬픔의 켜켜이 쌓인 두께를 가늠하면서 아직 내가 젊다는 사실을 알았다.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미 죄악인 세상이다. 그렇게 치욕적인 여러 날들이 흘러간다. 가늠할 .. 더보기
베르톨트 브레히트 -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듣는 아침... 불현듯 브레히트의 이 시가 읽고 싶어졌다. 가끔 전혜린이 잘 이해되는 밤이 있고, 그리고 아침이 있고, 또 한낮이 있다. 과거 자연과학자들은 남성이, 백인이 타인종, 여성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었다. 여성은 생태학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며, 본래 자연계의 다른 생물들을 살펴보더라도 여성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그런 것들을 입증해 내기 위해 노력했다. 흑인종은 어째서 대뇌가 백인 남성에 비해서도 작은가? 혹은 백인 여성에 비해서도.. 더보기
체 게바라 - 싸움의 이유 싸움의 이유 - 체 게바라 굳건한 이념은 고도의 기술도 무너뜨릴 수 있다 전쟁에 충실한 미군들의 최대 약점은 그들의 맹목적인 전쟁관에 있다. 그들은 자기들과의 전쟁에서 죽은 자들만 존경할 뿐이다 그런 자들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단지 무모한 희생만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오로지 투쟁만이 미국을 물리칠 수 있다 이 투쟁은 단지 최루탄에 대항하여 돌을 던지는 시가전이나 평화적인 총파업이어서는 안 된다 또한 괴뢰정부가 흥분한 민중에 의해 불과 며칠 사이에 붕괴되게끔 하는 것 그런 싸움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 투쟁은 장기적이어야 하며, 또 적들로 하여금 충분히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 이 투쟁의 전선은 게릴라들이 잠복하는 곳, 바로 그곳이다 도시의 중심, 투사들의 고향, 농민들이 학살당하는 곳 적들.. 더보기
김형영 - 갈매기 갈매기 - 김형영(金炯榮) 새빨간 하늘 아래 이른 봄 아침 바다에 목을 감고 죽은 갈매기 * 지역이 지역인만큼 가끔 아파트 옆 더러운 개천가 담벼락 위에 앉아 있는 갈매기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냥 이 시를 읽고 나도 모르게 약간 서글퍼지면서 그렇게 비오는 날 더러운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개천가에 앉아 있는 갈매기가 떠 올랐다. 갈매기 깃털은 왜 더러워지지도 않고, 그런 순백으로 빛나는 건지 말이다. 그래서 시인의 갈매기는 "바다에 목을 감고" 죽나보다. 순백으로 빛나기 위해서.... 더보기
김해자 - 바람의 경전 바람의 경전 - 김해자 산모퉁이 하나 돌 때마다 앞에서 확 덮치거나 뒤에서 사정없이 밀쳐내는 것 살랑살랑 어루만지다 온몸 미친 듯 흔들어대다 벼랑 끝으로 확 밀어버리는 것 저 안을 수 없는 것 저 붙잡을 수도 가둘 수도 없는 것 어디서 언제 기다려야 할 지 기약할 수조차 없는 것 애비에미도 없이 집도 절도 없이 광대무변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허공에 무덤을 파는, 영원히 펄럭거릴 것만 같은 무심한 도포자락 영겁을 탕진하고도 한 자도 쓰지 않은 길고긴 두루마리 몽땅 휩쓸고 지나가고도 흔적 없는 저 헛것 나는 늘 그의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작가들, 2005년 겨울호(통권 15호) 김해자 : 1961년 목포에서 태어났다.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제8회 전태일 문학상.. 더보기
최금진 - 끝없는 길, 지렁이 끝없는 길 - 지렁이 - 최금진 꿈틀거리는 의지로 어둠속 터널을 뚫는다 덧난 상처가 다시 가려워지는 쪽이 길이라고 믿으며 흙을 씹는다 눈뜨지 않아도 몸을 거쳐 가는 시간 이대로 멈추면 여긴 딱 맞는 관짝인데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나올까 무너진 길의 처음을 다시 만나기라도 할까 잘린 손목의 신경 같은 본능만 남아 벌겋게 어둠을 쥐었다 놓는다, 놓는다 돌아보면 캄캄하게 막장 무너져 내리는 소리 앞도 뒤도 없고 후퇴도 전진도 없다 누군가 파묻은 탯줄처럼 삭은 노끈 한 조각이 되어 다 동여매지 못한 어느 끝에 제 몸을 이어보려는 듯 지렁이가 간다, 꿈틀꿈틀 어둠에 血이 돈다. 최금진, 『새들의 역사』, 창비, 2007 * 내일모레 내 나이 마흔. 사회적인 까닭이겠지만 남자의 마흔은 최승자가 노래한 여자의 서른과.. 더보기
고은 - 하루 하루 - 고 은 저물어 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하루가 저물어 떠나간 사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오 하잘것없는 이별이 구원일 줄이야 저녁 어둑밭 자욱한데 떠나갔던 사람 이미 왔고 이제부터 신이 오리라 저벅저벅 발소리 없이 신이란 그 모습도 소리도 없어서 아름답구나 * 아침 출근길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별한 뒤엔 사람이 달라진다. 보이지 않던 것들, 보이지 않던 소리들, 보이지 않던 사람들, 보이지 않던 감정들이 죄다 안아달라고 달려든다. 늙어서 더이상 이별할 것이 제 목숨 밖에 없는 사람도 이별을 구원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삶에서 이별은 불가피(不可避)한 것이다. 불가피하다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뜻이지만 이 말의 의미가 강렬하면 할수록 가능한 한 피하고 싶다는 그 마음은 .. 더보기
문충성 - 무의촌의 노래 無醫村의 노래 - 문충성(文忠誠) 바다가 휘몰아오는 어둠이 바람 속에 바람이 어둠 속을 걸어 오는 아이가 빛을 찾아 미닫이 새로 얼굴 내밀고 호롱불 곁으로 비집어드는 마을, 불치의 병든 아이들이 모여 산다, 東西南北 아이야 어디를 가나 끝이 없는 시작은 장만이 되는 것, 맨발에 빠져든다, 겨울의 깊이 그 차가운 깊이 속 아이들은 한 줌의 무게를 찾아 빈 손을 들고 바다로 떠나간다 그렇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삼백 예순 날 아이들의 발걸음은 바다 끝에서 칭얼칭얼 열려 죽음을 살려내는 자맥질 속 숨 가빠라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숨 가빠라 누더기를 벗지 못한 채 누더기 속에 바람을 키우며 떠났지만 떠난 자리로 자꾸만 떠나가고 있다, 깨어진 사발에 구겨진 꿈을 담고 꿈속에 일렁이는 바닷길을 절뚝절뚝 달려가.. 더보기
정끝별 - 안개 속 풍경 안개 속 풍경 - 정끝별 깜깜한 식솔들을 한 짐 가득 등에 지고 아버진 이 안개를 어떻게 건너셨어요? 닿는 순간 모든 것을 녹아내리게 하는 이 굴젓 같은 막막함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부푼 개의 혀들이 소리없이 컹 컹 거려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발 앞을 위태로이 달려가는 두 살배기는 무섭니? 하면 아니 안 우서워요 하는데요 아버지 난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바람 속에서는 바다와 별과 나무, 당신의 냄새가 묻어 와요 이 안개 너머에는 당신 등허리처럼 넓은 등나무 한 그루 들보처럼 서 있는 거지요? 깜박 깜박 젖은 잠에서 깨어나면 어느덧 안개와 한몸되어 백내장이 된 우우 당신의 따뜻한 눈이 보여요 덜커덩 덜컹 화물열차가 지나가요 그곳엔 당신의 등꽃 푸르게 피어 있는 거지요? 나무가 있으니 길도 있.. 더보기
고정희 - 쓸쓸한 날의 연가 쓸쓸한 날의 연가 - 고정희 내 흉곽에 외로움의 지도 한장 그려지는 날이면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쓰네 봄 여름 가을 겨울 편지를 쓰네 갈비뼈에 철썩이는 외로움으로는 그대 간절하다 새벽편지를 쓰고 간에 들고나는 외로움으로는 아직 그대 기다린다 저녁편지를 쓰네 때론 비유법으로 혹은 직설법으로 그대 사랑해 꽃도장을 찍은 뒤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부치네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소리 편에 바람 부는 날은 바람 부는 소리 편에 아침에 부치고 저녁에도 부치네 아아 그때마다 누가 보냈을까 이 세상 지나가는 기차표 한 장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네 * 시인 고정희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민족시인, 지리산, 여성의 자의식 등등 여러가지가 떠오르겠지만 난 시인 고정희 하면 무엇보다 먼저 쓸쓸함의 정조가 우선 떠오른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