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301호] 2013년 06월 14일 (금) 23:46:57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2012년 8월 내 나이 마흔셋에 처음으로 단독 저서(<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를 썼다. 그 책을 펴내기 전에도 나는 글쟁이였고, 편집자였고 공저자였지만 그냥 아는 사람들만 아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 책을 낸 뒤라 해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그나마 내가 쓴 책 한 권 있다는 점이 남들에게 나란 사람을 다르게 볼 이유가 된다는 것을 20여 년 가까이 책을 만들며 사는 동안에는 미처 실감하지 못했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책 제목이 의미심장하게도 <대한국民 현대사-국민으로 살아낸 국민의 역사>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이 책이 지닌 뜻 깊은 속이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스크랩으로 본 현대사 1959~1992’라는 설명까지 따라붙어야 이 책이 지닌 의미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오랫동안 <한겨레>에서 기자로 <한겨레21> <씨네21> 등 잡지에서 편집장으로 살아온 고경태의 부친이 34년간 모아온 손때 묻은 신문 스크랩북 스물다섯 권을 매개로 보수적인 목사 아버지(세대)와 진보 성향의 기자 아들(세대)이 때로는 회한의 시선으로, 때로는 불꽃 튀는 시비로 나눈 길고 긴 대화를 엮은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 성명에는 ‘고경태’라는 이름 옆에 아버지 존함 석 자도 함께 박혀 있어야 마땅했으리라.

개인 저서를 펴내는 가장 마지막 과정은 저자 약력을 스스로 기록해 편집자에게 넘기는 일이다. 나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내 삶이 굴절을 겪었다고 여긴 순간을 중심으로 약력을 적었는데, 되돌아보니 내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떤 순간마다 본의든 아니든 언제나 역사의 현장이나 그 시간대에 있었다. 사실 이 말은 매우 우스운 말이기도 하다. 보통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내 삶과 무관한 것이라 여기기 쉽지만 우리는 항상 역사의 순간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책을 기준 삼아 자신의 연보를 기록해보길

만약 지금의 내 말이 의심스럽거든 이 책을 기준 삼아 자신의 연보를 따라서 기록해보라. 자신이 태어난 해, 태어난 날, 처음 학교에 입학하던 해, 중학교·고등학교에 진학하던 해, 그 외에 자기가 살면서 의미 있었던 순간이라 기억하는 날들을 찾아 그 시절에 일어났던 사건들과 대비해보면 누구나 자신이 역사의 한순간을 살아냈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공교롭게도 내 책의 추천사를 써주기도 한) 역사학자 한홍구 선생의 말대로, “역사는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개입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주인이고 내가 기록한 가장 생생한 한국 현대사”를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렇게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역사책이지만, 고경태의 이 책 <대한국民 현대사>가 유별난 점은 아버지가 선택하고, 아들이 개입한 역사책이라는 점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고(高), 봉(逢), 성(星)이었다. 그동안 아버지의 스크랩에 관해 쓰며 수백 번 아버지를 들먹였지만, 실명을 꺼낸 적은 없었던” 아버지와 아들이 이 책을 통해 만나고 대화를 시도한다. 어쩌면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과거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정작 과거와는 거의 무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가 힘을 갖는 이유는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의 자식인 것처럼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동안 역사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내 삶의 일부, 그리하여 내가 행하는 모든 것 속에 현존하기 때문이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803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공화국이 위기에 처했다. 민중이여, 일어나라!"
- 김혜린의 『테르미도르』


세 가지 색(블루, 화이트, 레드)과 줄르, 유제니, 알릐느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순정만화 전문잡지 <르네상스>를 통해 발표되었던 만화를 다시 엮은 복간본 만화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예술 장르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만화만큼 성별분업(性別分業)이 확실한 장르도 드문 편입니다. 순정만화란 카테고리는 그 자체로 여성들만 보는 작품이란 뜻으로 받아들여지니까요. ‘앤서니와 테리우스’로 표상되는 순정만화 특유의 캐릭터들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순정만화란 호명 속에는 여류 시인이란 호명이 지닌 문제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는 순정만화라고 하기보다는 작품의 주제나 소재 면에서 역사만화로 분류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는 1789년 7월, 왕과 특권층이 삼부회의를 전복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프랑스 전역이 혁명의 열기로 들끓던, 이른바 1789년 ‘7월의 대공포’로 시작해 1794년 7월 27일 ‘테르미도르 9일의 쿠데타’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얼마 전 『레미제라블』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실존인물들이 무수히 교차하는 대하서사만화이지만, 주인공은 혁명의 대의에 동감하는 귀족 청년 ‘줄르’, 귀족이 되려고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며 성장한 혁명주의자 ‘유제니’, 폭도들에게 부모를 잃고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줄르의 생사마저 알 수 없게 된 귀족 아가씨 ‘알릐느’, 이렇게 세 명의 가상인물입니다. 이들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처럼 『테르미도르』를 이끌어가는 세 가지 색 주인공들입니다. 줄르는 ‘자유’, 유제니는 ‘평등’, 알릐느는 ‘박애’를 상징하지요.

김헤린의 『테르미도르』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 프랑스 혁명사를 줄줄 꿰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도리어 그 반대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유익할 수도 있지요. 역사를 재구성하는 이른바 ‘팩션: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가 하나의 흐름이 되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역사를 멋대로 희화화하거나 근거도 없이 왜곡을 일삼는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허구(虛構)라 할지라도 역사를 배경으로 삼는 이상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는 굳이 홍세화 선생의 추천사가 아니어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합니다.

민중이라는 괴물의 등에 올라탄 부르주아지 혁명


프랑스 혁명을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간단히 정리해보면 전제왕정 밑에서 세력을 형성해 가던 시민 부르주아지 세력이 절대 군주가 개최한 삼부회의를 통해 그들이 국민을 대변하는 존재임을 자처하며 국왕(및 왕당파 귀족 세력)과 벌인 권력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퀼로트도, 상퀼로트도 입을 수 없었던 노동자, 농민(무산계급)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용해 왕과 귀족들을 제압하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부르주아지들은 왕을 살해한 뒤에야 자신들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저질렀는지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르주아지들이 왕을 처형한 최초의 권력찬탈자들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왕은 원시 시대 이래 꾸준히 살해당해왔고, 프랑스 혁명 바로 얼마 전에도 영국의 청교도들이 왕을 효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진정으로 경악시킨 것은, 자신들이 왕을 제거하고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그보다 더 무서운 괴물을 감옥에서 풀어주었으며, 그들이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민중’이라는 괴물 등에 올라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이전의 혁명(영국 혁명, 미국 혁명)과 달랐던 점은 특권계급에 속했던 왕과 귀족, 부르주아지들이 서로 적당한 지점에서 권력을 나눌 수 있는(타협할 수 있는) 지점을 무서운 속도로 지나치면서 민중의 등에서 안전하게 내릴 수 있는 때를 놓쳤기 때문이었습니다.

혁명을 통해 분출되기 시작한 민중의 각성은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도시 민중들과 결합한 부르주아지 지식인들의 숫자도 많았습니다. 이들이 훗날 자코뱅이라 불렸던 마라와 당통, 에베르와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혁명은 처음부터 혁명의 자식들을 제물로 삼을 운명이었습니다. 부르주아지의 국가 프랑스를 살려내기 위해 민중의 활력은 소진되어야 했고, 혁명적 부르주아지(혁명가)들은 죽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공포정치의 내용이었고, 희생자들의 명단은 민중의 자발성이 거세되는 전개과정의 화려한 프랑스식 만찬 메뉴였습니다.

프랑스식 공포의 만찬을 능숙하게 요리한 김혜린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케다 리요코(池田理代子)의 『베르사유의 장미』나 러시아혁명을 다룬 『올훼스의 창』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는 작품의 여주인공인 알릐느가 자신의 여성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속했던 계급을 뛰어넘어 진정한 자아(박애의 길)를 찾아 각성해가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전의 다른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김혜린은 이처럼 복잡한 프랑스식 만찬(대혁명의 역사)을 훌륭한 솜씨로 요리합니다.

혁명 과정에서 폭도들에게 부모(귀족)를 잃은 알릐느는 혁명에 앞장선 유제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아 출신의 유제니는 혁명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떠납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알릐느의 연인 줄르 역시 혁명에 동참하기 위해 이미 파리에 있었습니다. 이들 세 사람은 각기 자신만의 이유로 혁명의 수도에 모입니다. 알릐느는 혁명에 복수하기 위해 왕당파의 끄나풀이 되어 자신의 미모와 노래를 팔고, 줄르는 프랑스 혁명을 기록하고, 자신이 쓴 글을 익명으로 잡지에 기고하는 작가가, 유제니는 혁명가 마라의 하수인이 되어 반혁명세력을 감시하는 특무대원이 됩니다. 이렇게 두 명의 남자를 앞에 놓고, 한 명의 여자는 처음부터 사랑한 남자와 처음엔 증오했지만 사랑하게 되는 남자 사이에서 복잡한 감정들을 엮어나가게 됩니다.

테르미도르의 반동 이후 유제니가 적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자, 알릐느는 줄르와 함께 유제니가 보살폈던 거리의 아이들을 거둡니다. 그리고 두 사람(알릐느와 줄르) 사이에 태어난 아이에게 유제니란 이름을 붙이죠. 평등을 상징하는 유제니는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자유를 상징하는 줄르는 살아남았습니다. 자유와 박애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지만, 살아남았고 평등은 죽임을 당했지요. 어쩌면 그것이 프랑스 대혁명의 진정한 비극이었을 겁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로베스 피에르, 혁명의 탄생』 - 장 마생 (지은이) | 양희영 (옮긴이) | 최갑수 | 교양인 | 2005

* 지난 2012년 2학기부터 2013년 1학기까지 "인천교사신문"에 만화비평을 연재하고 있는데(모두 6회)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선생님들과 함께 만화를 통해 역사와 우리 사회의 현실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도록 기획해보았는데 원래는 한 학기만 하기로 했던 것이었지만 반응이 좋아서 한 번 연장했었다. ^^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옛날 만화들을 뒤적이며 재미있게 보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은 어려서부터 재기가 넘치는 인물이었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운했다. 그의 나이 9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16세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고아가 된 신세였지만 이항복의 나이 19세 때에 그의 재능을 높이 산 당대의 권신 권철은 아들(권율)에게 시켜 손녀사위로 삼도록 했다. 아마도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일화 - 실화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 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그의 옆집에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영의정 권철이 살았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이라는 영의정의 지위가 높다보니 그의 집 하인들도 기세가 등등하여 함부로 굴었다.

이항복의 집에는 해마다 감이 주렁주렁 열리는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나뭇가지가 이웃한 권철의 집으로 넘어가자 그 집 하인들이 감을 함부로 따가는 통에 나무가 상할 지경이었다. 이항복 집 하인들이 나무라자 "우리 집 담으로 넘어왔으니 우리 것"이라며 몇 차례 대거리를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의 행실이 고쳐지지 않자 이항복에게 그런 사실을 고해바쳤다.

이항복은 권철이 집에 있는 날을 골라 그를 찾아갔다. 이항복은 권철이 머무는 방문을 뚫고 다짜고짜 자기 팔뚝을 밀어 넣었다. 권철이 "어허,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 묻자 이항복은 "대감마님! 이 팔뚝은 누구의 팔뚝입니까?"라고 되물었다. 권철이 "자네 몸에 붙어 있으니 자네 팔이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자 이항복은 "그런데 어찌하여 대감 집 하인들은 저희 집 감나무가 담장을 넘었다고 제 집 감이라고 하는 것입니까?"라고 따졌다. 그제야 전말을 깨달은 권철이 하인들을 불러 크게 야단을 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항복의 기개와 기지를 높이 평가해 그를 손녀사위로 삼았다. 

이런 고사를 들먹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나눈 정상회담 문건은 국가기록원에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지정되어 있어 아무나 함부로 볼 수 없도록 법으로 보호되고 있다. 그러나 처음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녹음원본을 국정원에 보내 새로 녹취하도록 시켰다. 원본은 국가기록원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국정원에 보관된 기록물은 국정원이 임의로 보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일설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 부는 국가기록원에서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보관하게 했으나 다른 한 부는 국정원에 맡겨 공공기록물로 관리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 까닭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보관되면 후임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기 때문에 후임 대통령이 앞으로 있을 정상회담에 나서게 될 때, 참고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국정원에 공공기록물로 남기는 선의를 베풀었다고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나의 마음은 복잡다단하다. 그에게 표를 준 적이 없고, 그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 개인의 선의에 대해선 일정한 믿음이 있다. 그는 거칠었지만, 한 편으로 매우 섬세한 대통령이었고, 무엇보다 사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임 대통령들은 그가 살았을 때나 죽은 뒤에도 이처럼 욕을 보인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냈던 김만복은 퇴임한 뒤 공저로 펴낸 책에 당시 정상회담 내용 일부를 소개했다. 국정원은 그를 '기밀누설'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고의성은 없었다며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당시 보수언론들은 이 사건을 과연 무어라 했을까? 남재준 현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이번 문건을 공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애초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까닭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본다면 국정원이 지켜야 할 명예 같은 건 존재한 적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국가의 이익과 명예 보다 조직 논리와 이익이 앞서는 자질 없는 사람이 국가정보원 원장에 취임했다.

이것이 누구의 책임일까?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대한민국만큼 재미있는 나라도 참 드물다. 용산참사 재판 당시 검찰은 법원의 공개 명령에도 불구하고 수사기록 3천 쪽을 끝끝내 공개하지 않았고, 과잉진압의 희생자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또 노회찬 의원은 검찰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에게 떡값 명목의 뇌물을 제공한 기업을 폭로하고, 그 명단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나라는 누구의 책임인지 또한 묻지 않을 수 없다.

* 대통령 지정 기록물

대통령 기록물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 중앙 기록물 관리 기관으로 이관 시 대통령이 지정한 기록물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의결이 이루어지거나, 관할 고등 법원장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영장을 발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 지정 기록물은 15년, 개인의 사생활 관련 기록물은 30년의 범위 내에서 열람 · 사본 제작을 허용하지 않거나, 자료 제출에 응하지 않고 보호할 수 있는 제도

** 공공기록물관리법(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정부 내 모든 기관의 문서 보관을 의무화하는 법으로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등 공공기관에 모두 적용되며, 국가 전반의 기록물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체계적ㆍ통일적으로 관리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1998년 말에 제정되어 2000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으며, 2012년 3월 21일 일부 개정되어 같은 해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률에 따르면 공문서뿐만 아니라 회의록, 비공식보고서, 비밀기록, 메모노트까지도 보존대상에 포함시켜 국정의 입안단계부터 최종종결까지 전 과정을 사후에 규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후대의 역사적 심판을 거쳐야 할 핵심기록을 철저히 보존하고 공개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대통령 통치문서는 대통령 임기종료 6개월 전부터 '국가기록원(옛 정부기록보존소)'에 이관하도록 하였다. 또한 정부 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하거나 국외로 유출했을 경우, 기록물을 중과실로 멸실했을 경우, 기록물을 고의 또는 중과실로 그 일부 내용이 파악되지 못하도록 손상시킨 경우 등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기록원장은 국장급이므로 장관의 지휘를 받는 다른 부처의 기록관리 실태를 지도ㆍ감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그래서 야근한다!"

[프레시안 books]스베냐 플라스푈러의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노동'을 '섹스'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스베냐 플라스푈러(Svenja Flasspöhler)의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장혜경 옮김, 로도스 펴냄)는 현대사회의 노동이 더 이상 먹고살기 위해 의무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즐기거나 즐길 수 있는 모든 향락을 압도하는 노동으로 새롭게 위치되는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막스 베버로부터 한병철의 <피로사회>(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에 이르는 여러 문헌들을 인용해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고 있다.

지방출장 중에도 틈만 나면 이 책을 꺼내 읽으며, 나 자신이 저자가 말하는 향락 노동자가 아닌지 고민하는 한편 저자가 펼쳐놓은 다채로운 지식의 향연, 다른 말로 촘촘한 요설(饒舌)들을 따라가느라 다소 힘겨웠음을 먼저 고백한다. 책의 원제이기도 한 1장 '향락노동-고통의 즐거움과 즐거움의 고통'부터 시작해 14장 '놓아두기의 칭송 - 무위에 대하여'에 이르기까지 모두 14개 장(章), 200여 쪽이 조금 넘는 책이지만 한두 페이지를 넘기기가 무섭게 등장하는 수많은 인용문구가 촘촘하다.


철학자들이 쓴 책들 가운데에는 두껍고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책들도 많지만, 얇고 읽기 쉬운 책들도 제법 많이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거닐고 있다 - 공산당이라는 유령이"라는 문구로 시작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로 끝맺음하는 <공산당선언>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읽고 있으며 현대 사회의 향방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책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역시 독일 철학자가 쓴 책으로 그다지 많지 않은 분량에 제법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은 물론 작년 국내에 소개되어 주목받았던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연상하게 하는 책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웃음의 의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처럼 방대한 문헌을 읽고 책을 저술한 저자야말로 향락노동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야릇한 상상이 들어서였고, 다른 하나는 1장 '향락 노동-고통의 즐거움과 즐거움의 고통'만으로도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나왔는데, 구태여 부연일 수밖에 없는 나머지 장들을 왜 그리 힘들게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차라리 1장만으로 책을 만들었더라면 더 많은 사람이 읽었을 테고, 후반부에 간단하게 제시하고 있는 해법도 좀 더 설득력 있게 보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저자 소개를 살펴보니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30대 후반의 젊은 여성철학자로 현재 <철학 잡지(Philosophie Magazin)>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여러 매체에 철학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몇 권의 책을 냈으며, 그 성과를 인정받아 아르투어-쾨스틀러 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의 첫 단락부터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무슨 취지인지 못 알아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당장 나 자신부터 그런 향락 노동자(Wir Genussarbeiter)인지 새삼 반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 동료는 물론 SNS의 지인들에게도 저자의 이 선언적인 구절에 대해 의견을 물었으나 누구 한 사람도 노동을 '섹스'는커녕 '휴가'보다 더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를 비롯해 내 주변의 누구도 노동을 자기실현의 수단으로 여기거나, 노동을 통해 향락같이 고차원적인 즐거움을 찾을 만한 여유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왜 저자는 '왜 오늘날의 우리는 탈진할 때까지 일에 매진할까? 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즐기지 못하는 걸까?'라고 물으며 현대사회에서 노동은 이제 다른 모든 향락을 압도하는 최고의 '향락'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물론, 반어법일지도 모른다.

다음은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의 첫 단락이다.

오 늘날 우리에게 노동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우리는 좋아서 일을 하고,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일에 쏟아붓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의무 노동자가 아니라 향락 노동자이다. 이 단어는 몇 십 년 전부터, 실제로는 이미 200년 전 시민 계급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 지속되어 온 발전의 정점을 표현한다. 인간이 제 몸을 망가뜨리는 노동을 기계에 떠맡기고 직업 교육을 통해 적성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며 자신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게 된 이래로, 노동이야말로 행복을 약속하는 것이 되었다. 노동은 이제 쾌락의 다른 원천들마저 몰아내고 있다. 섹스? 그럴 여유 없어. 휴가? 쉴 틈 없어. 실컷 놀아보는 건 어때? 에이, 너무 유치해. (8쪽)

향락 노동은 개인적 병리현상인가? 자본주의적 질환인가?

<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의 독일어 원제 'Wir Genussarbeiter'에서 'Genuss'란 '즐김, 향유', 'arbeiter'란 노동자란 의미이니 두 단어를 합치면 '노동을 즐기는 사람, 노동을 향유하는 사람', 즉 '향락 노동자'란 뜻이다.

저자는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있어 우선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중요한 근거로 인용하고 있다. 금욕과 신을 위한 근면, 재산 축적은 초기 산업 자본주의의 프로테스탄트적 노동 윤리였고, 현재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란 말을 '성장 사회'란 표현으로 교묘히 대체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프로테스탄트적 노동윤리는 다음과 같이 변화했다고 말한다.

첫째, 신의 뜻에 따르려는 노력의 자리에 오늘날 노골적인 야망과 끝을 알 수 없는 인정 투쟁이 들어섰다. 부지런하게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해서 마감이 코앞이더라도 원칙적으로 일요일에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일할 의욕이 없는 사람, 심지어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일을 향한 끝없는 열정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미리 알아서 주말에도 일을 하고 밤중에도 메일을 쓰는 사람, 출세의 기회라면 무조건 움켜잡는 사람, 때로 자신을 과대평가할 줄도 아는 사람들만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자리 보존을 할 수 있고 나아가 출세도 할 수 있다.

둘째, 베버와 달리 오늘날의 우리는 세계화된 바겐세일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에게는 죄악인 탐욕과 인색함이 널리 칭송받는 세상이다. 인색한 소비는 프로테스탄트의 근검절약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이다. 오늘날의 인색함은 절약하여 돈을 모으려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적게 주고 최대한 많은 것을 얻는 것이 요점이다. 바겐세일 자본주의는 낭비 자본주의이다. 저렴한 텔레비전이나 적당한 가격의 소파를 혹시라도 놓칠세라 꼼꼼하게 세일 광고를 살피고 경매 사이트에 들락거린다. 오늘날 향락이 노동이라는 사실은, 군중들이 한밤중에도 할인행사장으로 달려가, 서로 앞다투어 물건을 잡아채는 신종 국민체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자들은 절대 누릴 수 없었던 세속적 향락에게서 죄의 비늘을 벗겨내 줄 적절한 수단과 방법이 우리에게는 존재한다. 결백한 향락! 이것이 오늘날 웰니스 시대의 모토이다. 무알콜 맥주, 저지방 치즈, 사이버 섹스를 보라. (10~11쪽)

역사 이래 노동은 인간 존재, 인간의 도덕, 그리고 인간의 자화상을 형성해 왔고,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전통 속에 노동은 정치적 좌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서로 분리해낼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16세기 종교 개혁이 있던 무렵은 훗날 대규모 자본주의 생산에 필요한 자본축적의 기회가 과거 어느 때보다 컸던 시기였다. 자본주의의 핵심을 자본이라 했을 때, 자본주의에는 가능한 많은 돈을 벌려는 상인 근성과 그렇게 모은 돈을 써서 인생을 즐기려는 향락주의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점에서 보자면 신약성서에도 나오듯 - 예수가 교회에서 세리와 고리대금업자의 돈 상자를 뒤집는 - 기독교는 상업적 행위, 영리목적의 장사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모든 향락에 대해 금욕적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돈을 벌기 위한 상업 활동에 아무런 터부가 없었으며 사람들이 마음대로 영리를 추구할 수 있었던 중국이나 인도 혹은 이슬람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했다손 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런데 어째서 실제의 역사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그 의문에 대해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든 것은 프로테스탄트(신교도)들이었으며 그들은 근면과 절약을 좌우명으로 삼아 자신의 직업을 신에게 부여받은 '천직(天職)'이라 생각하여 신앙생활을 하듯 자기 목적적으로 노동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영성의 거장'이라 불리는 청교도 목사 리처드 백스터는 "만약 하느님이 어떤 방법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데도, 여러분이 이 방법을 거부하고 이익이 적은 방법을 택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명 가운데 하나를 거스르는 것이며, 하느님의 종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하느님이 요구하실 때 하느님을 위해 그 은총을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육체와 죄악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여러분은 부자가 되려고 힘써도 된다"라며, 신도들에게 부를 얻을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설교하기도 했다.

물론 서구의 근대인들이 모두 프로테스탄트들이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들 모두가 자본가였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처럼 일하기 위해 일한다는 자본주의의 정신이 부르주아지에서 다시 노동자 계급에 침투하여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고, 근대에 이르러 가정과 노동 현장이 분리되면서 노동자가 마치 수도사들이 삼종 기도하듯 일정한 시간과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일을 한다는 생활 태도가 일상화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란 세속화된 기독교이며, 자본가는 세속화된 수도원 원장, 노동자는 세속화된 수도사라 할 수 있다. 자본의 축적 과정이 신의 소명을 받든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자본의 은총이겠지만 제품을 만들기만 하고 스스로 소비하지 않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자본주의의 정신)는 - 생산된 제품에 대해 계속 금욕적이라 한다면 - 자본의 순환(성장)에 문제를 일으킨다.

자 본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만들어진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들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국가)가 식민지를 필요로 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주의란 자신들이 직접 소비할 수 없을 만큼 제품을 과잉 생산한(과잉 노동한) - 소비는 식민지, 타국인들에게 강제했던 - 국가가 세계를 제패했던 역사를 말한다. 만일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이 없었다면, 즉 일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어 인생을 즐기려는 사람만 있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만 있다면 생산과 소비는 국내에서 나름대로 자급자족에 만족하게 될 것이고, 특별히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타국을 침략하거나 착취할 필요도 없으며 대자본이 축적되어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할 가능성도 없다.

예컨대 어떤 선진국이 이른바 미개사회에서 산업을 증진하고 자본주의적 성장을 도모하고자 할 때, 선진국은 원주민들에게 그들 사회에서 볼 수 없는 사치품들을 제공(사치품을 생필품화)하여 맛을 들인 후 돈을 내지 않으면 그것들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완벽하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본에 의해 고용된 원주민들의 의식 또한 '자본주의화'되어야만 한다. 만약 어떤 원주민이 한 달분 급료를 받은 뒤 다음 날부터 한 달 간 출근하지 않는다면 자본에 의한 고용은 실패하기 때문이다. 식민화 과정에서 기독교화 과정이 필수적으로 병행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향락 노동은 비록 외견상으론 노동자 개개인의 정신적 병리 현상처럼 보일지라도 그 본질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상 더 많이 일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빚어낸 일종의 사회적 질환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푈러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향락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가 되는 길밖에 없는가?

이 쯤 어디선가 '파놉티콘(Panopticon)'에 의한 시선의 권력(미시권력, 문화권력)에 의해 노동자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던 미셸 푸코가 등장할 때라고 생각했지만, 플라스푈러는 뜻밖에 이 책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에게 의존한다. 인간은 타인의 사랑과 인정을 갈망한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하다. 애정 관계에서뿐 아니라 일에서도 탈진할 때까지 자신을 혹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런 욕망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좀 더 노력하면 가능할 거란 희망으로 인정에 대해 끝없는 야망을 불태운다"가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의 모든 원인은 아닐지라도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성 장사회(혹은 성과사회)가 되어버린 현대에 노동은 인간 생활의 다른 모든 향락을 대체할 만큼 강력하고 유일한 향락(일에 대한 현대인들의 리비도적 집착)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사례로 노동중독, 영어로 '워커홀릭(Workaholic)', 일 중독자를 제시한다.

워커홀릭은 이런 강박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지 않고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일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일을 잃지 않기 위해 일에게 봉사한다. 하루 종일 요구 조건을 들어주고 연락이 끊어질까 봐 전전긍긍이며 언제나 대기 상태다. 일과 연결되어 있다는, 필요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위해, 혹은 중요한 순간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항상 온라인 상태다. 누군가 그에게 무언가를 원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때 연락이 안 되면 어떻게 하나? 워커홀릭은 자신이 언제나 대체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에 미리 알아서 복종한다. (110~111쪽)

이런 노동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2장에서 13장에 걸쳐 프로이트를 비롯한 다양한 사례들을 원용해 현대의 노동이 가상의 향락 노동으로 전락하는 문명적 과정을 면밀히 해부해 그 정신분석적 토대를 파악하고자 했다는데, 그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된 것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인 14장 '놓아두기의 칭송 - 무위에 대하여'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가서 고작 몇 개의 단락들이다.

인간이 자신의 창조자라면 인간을 잡아줄 수 있는 단 하나는 자기 자신이다. …(중략)… 절대적 권력의 망상을 쫓지 말고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아가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몸을 맡겨야 한다. 이것은 수영을 하는 원리와 아주 흡사하다. 물에 나를 맡기면 저절로 몸이 물에 뜬다. 하지만 겁이 나서 물 위로 오르려고 버둥거리며 팔을 저으면 점점 더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물을 믿고 물을 잘 다룰 줄 알아야 몸이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197쪽)

앞서 이 책의 거의 모든 내용이 1장에 압축되어 있다고 했는데, 향락 노동의 문제점도, 그 해법도 사실 1장에 이미 등장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

노 동과 관계없는 향락은 강박적인 향락 노동자들을 불안하게 한다. 그들은 "쓸모없는" 무목적성을 두려워하며, 그것을 공허하다고 느낀다. 또한 이중적 의미에서 불쾌로 느낀다.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다른 한 편으로 때로는 자신에게 때로는 타인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한다. 이런 이유로 과도한 향락 노동자들은 어린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잘 못 참는 경향이 있다. 놀이터에서도 열심히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손으로는 블록을 쌓으면서도 생각은 계속해서 급히 처리해야 하는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향해 달려간다. 아이들은 오직 놀기 위해서 놀고 도대체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 아이들은 신비한 존재이다. 시간을 초월하며 비밀스럽게 모든 것을 결정하는 더 높은 힘에 자신을 내맡긴다. 아이들은 운명에 몸을 맡긴 존재이며 부모와 신의 힘에 자신을 내던진 존재이다. 그렇게 평화로운 마음으로 자신을 잊은 채 놀이에 몰두할 수 있다. 버팀목을 신뢰하는 자만이 놀이에 전념할 수 있다. (13~14쪽)

<개그콘서트>에 등장해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 개그우먼 박지선의 과거 유행어 "참 쉽죠! 잉"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플라스푈러는 우리에게 '아이들처럼 평화로운 마음으로 운명에 몸을 맡기고, 물 위로 오르려고 버둥거리며 팔을 저으면 점점 더 물속으로 가라앉게 되니, 아이가 버팀목을 신뢰하듯 물을 믿고 물에 몸을 맡기라'고 말한다.

이런 물에 떠 있는 인간의 이미지는 <물 위에 누워>라는 제목의 아도르노의 잠언을 떠오르게 한다. "짐승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물 위에 누워 평화롭게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 그밖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더 어떤 규정할 것이나 실현할 것도 없이…." 그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생산의 맹목적 분노"를 규탄하고, 놓아두기를 진정한 자유로 이해하라고 제안한다. "아마 진실된 사회는 발전을 식상해 하면서, 무언가에 쫓기듯 낯선 별을 정복하러 돌진하기보다 가능성들을 다 쓰지 않은 채 남겨둘 것이다."
아도르노의 구절은 지난 세기의 작품이다. 오늘날, 인간이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정신과 삶의 기반인 지구마저 망가뜨리고 있는 성장과 진보의 광기 한 가운데에서, 그의 잠언은 더욱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21세기에는 행동뿐 아니라 "그렇게 놓아두기"도 적절하고 타당하다. (197~198쪽)


과연 우리 사회는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평화로운 마음으로, 버팀목을 신뢰하듯 사회를 믿고 몸을 맡길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들 중 1위인데, 8년 연속 1위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다. 인구 10만 명당 OECD 국가들의 평균 자살률은 12.8명인데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33.5명으로 평균보다 무려 2.6배가 높다. 언론에서는 청소년들이 학교폭력이나 학업 스트레스 탓에 자살하는 경우를 많이 보도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자살률 세계 1위가 청소년들의 자살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나라 자살률이 급격히 높아진 이유 중 하나는 고령화 사회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노인인구는 늘어났지만, 사회적 안전망이 확보되지 못한 탓에 경제적 극빈층으로 내몰려 생계가 어려워진 노인들의 자살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대한민국 남자들의 평균 퇴직 나이는 53세로 평균 취업연령을 군 제대 후 27세로 보면 평균 26년간 일하는 셈이다. 이것은 OECD 국가들의 평균 생애 근로 연수보다 10년 이상 짧다. 문제는 생애 주기로 보았을 때 이 시기가 자녀 교육과 결혼 등으로 생애 가장 큰돈이 드는 시기에 퇴직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수당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밥 먹듯 연장근로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결과 우리의 연간 근로시간은 OECD 평균보다 440시간이나 길어서 세계 최장 노동 시간을 자랑한다.

이외에도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항목은 더 있다. 산재 사망률, 성별 임금 격차, 인구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 노동조합 조직률 최하위 등에서도 대한민국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과연 이 사람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섹스나 휴가보다 노동을 통해 향락을 즐기는 사람들이라 그렇게 장시간 노동하며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는 자기 직업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두 부류이다. 하나는 의사, 변호사, 교수같이 은행에 가서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하기만 해도 은행이 알아서 그들이 종사하는 직종에 따라 가능한 신용대출 액수가 정해져 있는 부류가 있고, 다른 한 부류는 사람들에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 다니는 부류가 그렇다. 모두가 선망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조차 장래가 암담하다고 하소연하는 시대, 정년이 보장되지 않아 불안한 시절을 보낸다며 우울해하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대기업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여전히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의 불안하고 우울한 직업(직종)을 선망하는 타인들이 이미 모든 조사를 완료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타인이 선망하는 직업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런 세계에 속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런 세계에 속하기 위해서는 단지 개인의 타고난 능력과 노력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동생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더욱더 많은 자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워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2030세대를 일컬어 '삼포세대'라고 하는데 어느덧 삼포를 넘어 4포 세대, 5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스펙' 쌓기와 취업경쟁에 치여서 인간관계마저 포기한 세대라 하여 '4포 세대',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대라 하여 '5포 세대'라 한다는 것이다.

그 런데 최근 일본에서는 이들 세대를 가리켜 '사토리 세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득도의 세대, 깨달음의 세대'라는 뜻이다. 사토리 세대는 지난 20년간 일본의 거품 붕괴 후유증과 장기 불황을 온몸으로 느끼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10대와 20대 초중반 세대를 말한다. 즉 사회 현실이 너무나 절망적이기 때문에 어떤 꿈도, 목표도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세대라는 것이다. 이들 세대의 특징은 깨달음에 도달한 성직자들처럼 소비에 무관심하다. 이들은 자동차를 사려 하지도 않고 브랜드 옷을 입으려 하지도 않으며, 스포츠도 안 하고, 술도 안 마시고, 여행도 하지 않는다. 연애나 결혼에도 관심이 없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의욕도 없으며 주목받는 일을 할 생각도 없다.(바로가기☞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 , "'삼포 세대'의 미래는 일본 '사토리 세대'?") 절망에 빠져 너무 이른 나이에 득도해버린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야 말로 플라스푈러가 제시한 해법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세대가 아닌가?

<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에서 느꼈던 가장 큰 아쉬움은 빈약하게 제시된 해법보다 향락 노동(혹은 노동중독) 증상에 대한 원인과 진단이었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예술을 정치나 사회와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체의 예술 지상주의는 결국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하면서, 파시즘의 특징은 '소유관계는 일절 건드리지 않으면서 사회적 모순을 정신의 강조를 통해 제거하려는 특유의 정신주의에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향락 노동의 문제와 원인을 진단하면서 현대인들을 노동중독에 빠지게 하는 원인을 자본주의가 아닌 개인의 병리현상에서 찾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향락 노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를 해보아야 하겠지만, 향락 노동이 스스로를 과잉 착취하는 정신병리학적 현상이라고 했을 때(자본주의적 착취를 자신의 행동원리로 적극 수용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그렇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와 원리에 대해 분석하지 않고, 원인을 노동자 개개인에게서 찾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일 이상이 아닐 것이다.

기사입력 2013-05-31 오후 7:13:48

* 프레시안측이 뽑은 글 제목이 내 의도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한반도의 밤하늘에서 펼쳐진 프롭전투기들의 사투


나는 항공기 매니아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뭐는 매니아가 아니냐는 반문이 스스로 들어서 좀 웃었다. 얼마 전 백일장을 치른 뒤 백일장 심사가 있었는데 김영승 시인이 오더니 반갑게 웃으며 당신도 항공기 매니아인데 내 블로그를 즐겨 보고 있다고 말씀하셔서 약간 겸연쩍은 적이 있었다. 만약 기회가 닿는다면 김영승 선생과 항공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봐도 재미있을 듯 싶다. 어쨌든 난 여러 방면의 매니아이지만 그 중에서 '항공기도 매니아'인데, 항공기 중에서도 특히 프롭(프로펠러)기 매니아다. 프롭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현재는 전쟁 무기로서의 효용 가치가 없는 종류라 정말 순수하게 좋아한다고 말해도 내 양심에 그렇게 걸리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여전히 현역 군사 무기로 이용되는 무기가 있으니 이제부터 소개하려고 하는 "AN-2"기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러니까 정확히는 국민학교 다닐 때 학교 정문 게시판에 민방위 사이렌 안내판과 더불어 적기의 실루엣을 그려놓고 이런 항공기가 날아오면 가까운 군부대에 신고하거나 방공호로 대피하라는 적기 식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80년대까지는 학교마다 붙어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엔 어떤지 잘 모르겠다. 이곳에도 AN-2기에 대한 제법 상세한 안내가 있었는데, 사실 이런 종류의 비행기들은 대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특수 임무용(적진 정찰 및 탄착 관측, 구조 및 물자 투하 임무)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국 웨스트랜드 라이산더(Westland Lysander)같은 기종인데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빨치산을 지원하거나 특수요원들을 적 후방으로 실어나르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라이산더의 경우 동체는 금속골조에 캔버스 천으로 외피를 둘러싸고 있어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으며 고도15m까지 이르는 이륙거리가 불과 250m(축구장 두개 반 정도의 길이)에 불과했다. 아마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레지스탕스가 등장하는 영화 중 야간에 몰래 내리는 비행기를 본 적이 있다면 바로 이 비행기라고 보면 된다.





소련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중 매우 뛰어난 항공기들을 많이 개발했는데, AN-2기는 ANTONOV BYREV 설계국에서 1940년 초부터 설계를 시작하여 1947년 8월 최초의 시험비행을 실시하였고, 1948년부터 양산 체제를 갖추고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같이 크지 않은 나라에서도 군 내부 수요로 연락기 등 프롭 항공기의 필요성이 요구될 때가 있는데(물론 최근엔 헬리콥터가 일반적이긴 하다) 러시아 같이 땅덩이가 큰 나라에서 수송기 혹은 연락기 용도로 개발되었었다. 어쨌든 당시는 동서냉전 시대였으므로 소련이 개발한 무기체계는 곧 이웃한 사회주의 블록의 여러 국가들로 이전되었는데, AN-2의 경우 중국은 1957년부터 Y-5(YUN SHUJI-5)란 이름으로 생산되기 시작했고, 1960년엔 폴란드 역시 생산면허권을 획득해서 현재까지 생산하고 있다.

"안토노프 AN-2는 단발엔진을 갖춘 복엽 수송기로, 시속 160km의 저속·저공비행이 가능한 경수송기이다. AN-2는 실내 공간을 넓게 하기 위해 세미-모노코크 구조이며, 기골과 표피는 가벼운 합금의 금속으로 제작되었고, 상하날개는 레이더 파를 흡수하는 도료로 피복된 특수천(?)으로 제작되었다. 200m의 짧은 활주로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하며 기상 관측 사진 촬영, 낙하산 훈련 및 소규모의 병력 투입 등에 운용된다"고, 대체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이 비행기의 외피 역시 캔버스천이고, 도료를 특수도료를 발랐을지는 모르겠지만, 특수 도료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이처럼 저속의 비금속제 항공기들은 레이더에 잡히더라도 큰 새 정도의 크기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북한이 가지고 있는 '스텔스' 항공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이 역시 비대칭무기인 셈이다. 북한의 재래식 소형 잠수함을 놓고 그렇게 평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AN-2의 공포를 과대평가(?)하여 당장이라도 AN-2에 탑승한 북한군 특수부대가 서울 한복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일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정도 이상으로 과대평가된 측면도 없지 않다. 영화를 많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상대가 무시무시해야 그들과 싸워 이기는 우리 편이 더 위대해보이는 것처럼, 국방안보 분야에 있어서도 자칭타칭 이 분야 전문가들이 상대방의 무기체계를 과도하게 높이 평가하는 경향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 이유는 국방안보 분야는 언제나 새롭고 비싼 무기체계를 도입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AN-2의 위협에 대적한다는 이유로 휴즈사로부터 500MD헬기를 도입했고, 최근 아파치 헬기 도입 근거 중 하나로도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맥락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올해로 한국전쟁 휴전 60주년이지만 한국전쟁은 항공전사에 있어 제트기 간의 공중전이 벌어졌던 최초의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은 소련의 항공기 개발 능력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근거 없는 자신감에 넘쳐 있다가 몇 차례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는 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소련이 개발한 미그(Mig)15와 미그21기의 놀라운 성능 때문에 놀랐고(미그 쇼크), 소련이 독자적인 핵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로젠버그 부부 사형), 소련의 우주기술(스푸트니크 쇼크)에 놀랐다. 그러나 실제 전사를 살펴보면 한국전쟁 당시 이루어졌던 제트기 간의 공중전은 물론 베트남전에서도 미국은 사실상 압도적인 우세였다. 그런데 이처럼 압도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미국 공군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은 야간 폭격을 주장했고, 미군은 주간 폭격을 고집했는데 한국전쟁 당시에도 제공권은 거의 완전히 UN(미)군 측에 있었고, 미군의 대규모 폭격능력은 마오쩌둥의 아들을 참전 일주일만에 전사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처럼 대낮의 하늘은 미공군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야간의 하늘은 북한이 압도적 우세라고 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미군을 골치아프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제공권을 빼앗겨 주간에 작전을 펼칠 수 없었던 북한 공군은 주로 야간을 이용해 동해안의 강릉비행장을 비롯해 백령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야간 폭격 작전을 펼쳤다. 물론 주요 목표는 미군의 공군기지가 밀집해 있던 김포와 평택 등 서부전선 지역이었다.

북한의 남한 야간 공습은 1950년 11월 18일 춘천 소양강 근처의 미군 부대를 공습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1953년 7월 16일 까지 계속되었는데, 가장 활발할 때인 1952년 5월에는 한 달 동안 50여기가 남한 상공에 잇따라 출현하기도했다. 북한 야간폭격기들은 미군 기지를 목표로 했지만, 1952년 6월 15일에는 당시 대통령 이승만이 머물고 있던 경무대를 폭격한 적도 있었다. 당시에는 다행히 별다른 피해는 없었지만 이후 옛 청와대 건물에는 그물 모양의 위장망이 설치되었는데, 박정희 시절에 가서야 제거되었다. 하마터면 전쟁 중에 대통령 유고라는 큰 일을 치를 뻔 했지만 이것은 실제 전과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커다란 피해를 입기도 했는데, 1953년 6월 15,16일 밤에는 북한 공군기 17기가 야간에 침투해 인천의 니군 유류 저장 시설을 전소시켜 버렸다(당시 오백만 갤런에 이르는 엄청난 연료가 손실). 또 당시 미국의 최신예 주력전투기였던 F-86 세이버의 기지로 이용되던 수원 비행장을 야간 기습해 세이버 전투기 9대를 파괴하기도 했다.





야심한 밤이면 덜덜거리는 엔진 소리를 내며 날아오다가 기지 상공에서 엔진을 끄고 슬그머니 침투해 폭격을 하고 사라졌기 때문에 기지 방공을 책임진 미군들은 이들을 ‘야간 점호 적기(Bed time check charlie)'라고 불렀다. 간혹 제트기를 가진 미 공군이 저속의 프롭기들을 격추하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제트기는 기본적으로 고공, 고속 성능을 위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목표물을 지나칠 수 있었는데, 당시 북한의 전투기들은 저속으로 저공을 비행하기 때문에 이들을 격추시키기엔 미 공군 제트 전투기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문제였다. 결국 미 공군은 더이상 전쟁에 쓰일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던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야간 전투기들을 다시 불러들였고, 북한 공군과 심야의 하늘에서 물고 물리는 치열한 공중전을 벌여야 했다. 이것이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의 밤하늘에서 펼쳐진 프롭전투기들 간의 사투였다.

사진1) 웨스트랜드 라이산더, 2)AN-2, 3)라보치킨 La-9, 4)Yak-18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왕도의 개』 1~4(완결) | 야스히코 요시카즈 (지은이) | 미우(대원씨아이) | 2012

대체 일본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단 말인가


일본을 가리켜 우리는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릅니다. 한일 양국의 역사는 상고시대(上古時代)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지만, 해방 68년, 한일국교 정상화 48년이 지나도록 양국은 아직도 과거사를 둘러싼 불신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본의 우경화와 맞물린 잇따른 망언으로 그간 양국이 쌓아왔던 신뢰마저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일본 시민사회의 일반적인 역사 인식은 아니며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되었던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런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며, 만약 평화헌법이 개정된다면 분리 독립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 역시 전후 세대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려는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왕도의 개』 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지난호에 소개했던 『바람의 검심』이 일본의 근대화를 촉발시켰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전후한 시대를 그린 일종의 오락만화였다면 『왕도의 개』는 유신 이후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 직전까지의 일본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유신 이후 자유민권의식이 높아진 농민들이 벌였던 일본 최초의 근대무장봉기인 1884년 치치부(秩父) 사건으로 시작해서 갑신정변, 1885년 오사카 사건, 1894년 동학농민운동, 김옥균 암살, 갑오개혁, 청일전쟁을 거쳐 1895년 전봉준 처형, 시모노세키 조약, 삼국간섭, 을미개혁 그리고 1900년 중국의 삼주전(三洲田) 봉기에 이르기까지 한·중·일 삼국이 근대의 길목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의 캐릭터 디자이너이자 만화 『모빌슈트 건담 디 오리진』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는데, 그가 『왕도의 개』를 기획하게 된 까닭은 오늘날의 일본이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역사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일본이 그릇된 근대화(제국주의)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청일전쟁 때부터라고 말합니다.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의 빛과 그림자, 카노와 카자마


성인만화(成人漫畵)라고 하면 에로틱한 내용을 먼저 연상하지만 『왕도의 개』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들을 차용해 작가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역사 인식을 진지하게 풀어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본격 성인만화입니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실존과 가상인물이 무수히 교차하지만, 한·중·일 삼국이 근대화를 통해 평화와 공동번영으로 가야 한다는 왕도(王道)의 길을 걷고자 했던 카노 슈스케(加納周助)와 개인의 입신양명을 추구하며 일본 제국주의에 순응하는 패도(覇道)의 길을 걸은 카자마 이치타로(風間一太郎)라는 두 명의 가상 인물이 중심입니다. 두 사람은 자유민권운동이라는 하나의 뿌리(공동의 경험)에서 나왔지만,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와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로서 일본 근대의 명암(明暗)을 상징합니다. 두 사람이 펼쳐내는 우정과 대립은 일본 근대사의 축쇄도(縮刷圖)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카노의 배후 인물로 등장하는 카츠 카이슈(勝海舟, 1823~1899), 카자마의 스승 무츠 무네미츠(陸奥宗光, 1844~1897)는 실존인물입니다. 두 사람은 막부의 권력을 빼앗아 천황에게 되돌린 대정봉환(大政奉還)과 서남(西南)전쟁, 메이지 유신까지는 동지였지만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서로 정적(政敵)이 됩니다. 


일본 근대화의 스승으로 현재까지 일본 1만 엔권 지폐 인물로 새겨져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는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을 통해 일본의 근대화를 추동했고, 같은 아시아 국가이지만 근대화 속도가 일본에 뒤처진 조선과 청(중국)을 멸시하고, 조선을 일본의 방파제로 삼기 위해 조선을 병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서구 제국주의를 일본화한 후쿠자와의 논리는 그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후쿠자와와 함께 패도의 길을 상징하는 무츠 무네미츠는 유신 이래 일본이 서구와 맺었던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기 위해 노력했고, 영일 통상조약(1894)을 성사시켜 영국의 치외법권을 회수하는 등 외교적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선반도는 언제나 붕당 간의 다툼이나 내분·폭동이 잦은 곳으로, 사변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독립국답게 책임을 다하려는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이를 광구(匡救)하려 도모하지 않는 것은 이웃 나라의 우의에 반할 뿐 아니라 실로 우리나라 자위의 길에서도 어긋남이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인즉, 일본정부는 조선국의 안녕을 꾀하는 계획을 담당하는 데 추호도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해 왕도의 길을 주창했던 카츠 카이슈는 한때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1828~1877) 등의 정한론(征韓論)에 동조한 바도 있지만 이후 “구미 열강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일본, 조선, 중국 세 나라가 연대를 맺어 함께 대항해야 한다”며 아시아 연대론을 펼쳤던 인물입니다. 그는 조선을 멸시하던 당시 일본의 정치인, 지식인들에게 “조선이라면 반쯤 망한 나라라고, 빈약국이라고 경멸하지만 나는 조선도 소생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조선을 바보로 여기는 것은 근래 들어서의 일이며 옛날 일본 문명의 종자는 모두 조선에서 유입된 것이다”, “조선에 대한 처분은 그 처음부터 이미 잘못되었으니 어찌 그 끝을 좋게 이루겠는가. 만일 오늘과 같은 시간이 지속된다면 이웃 나라는 반드시 그에 대해 극단적인 주장을 할 것이다. 일본의 조치는 동양의 치안을 해친다. 그래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혜안이 특히 돋보이는 것은 김교신, 함석헌 선생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 같은 이조차 “청일전쟁은 우리에게 있어 실로 의로운 전쟁”이라며 지지했던 청일전쟁을 “대의명분이 없는 전쟁”이라며 반대했다는 사실입니다.

한·중·일 삼국의 근대화를 추동했던 인물들이 펼쳐내는 역사


출판사는 이 작품을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건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왕도의 개』에는 개화파의 선구자였던 김옥균과 녹두장군 전봉준을 비롯해 고종 황제,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중국의 쑨원 등이 등장합니다. 작가는 카츠 카이슈와 김옥균, 쑨원을 아시아의 연대를 통한 평화적인 근대화를 꿈꾼 이상적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인의 처지에서 보면 일본의 일개 사상가와 그 하수인 역할을 자처한 주인공의 노력만으로 그런 역사적 사건들의 물꼬가 트이고 가로막히는 일이 가능했을까 반문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탁월한 솜씨는 그런 의문을 넘어 우리에게 동아시아 근대화의 역사를 곱씹을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차근차근 공부해본다면 그것만으로도 동아시아 근대화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일본 망언의 계보(개정판)』 - 다카사키 소지 (지은이) | 최혜주 (옮긴이)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0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하시모토 도루(橋下徹.44) 오사카 시장이자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일본내 극우정당)는 이른바 '일본 정치의 젊은 피'로 얼마전까지도 유력한 차기 총리감으로 물망에 오르던 사람이다. 그가 얼마전  "(군)위안부는 군의 복지를 위해 필요했다"는 망언을 해서 새삼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 매체들에 따르면 하시모토 시장은 13일 오사카(大阪) 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해 "그 정도로 총탄이 오가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강자 집단에 위안부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수 있는 일"이라고 말해서 또다시 지탄을 받고 있다.

그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일본의 종군 위안부 제도만 문제가 되느냐"며 "다른 나라도 전시에 위안부와 비슷한 체계를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은 국가적으로 위안부를 강제로 납치해 일하게 했다고 세계는 비난하고 있지만 2007년 각의 결정에서는 그런 증거가 없는 것으로 돼 있다"며 "사실과 다른 것으로 일본이 부당하게 모욕받고 있는데 대해서는 확실히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시장은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가 된 것은 전쟁의 비극의 결과"라고 밝히고, "전쟁의 책임은 일본에도 있다. 위안부에게는 상냥한 말과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부연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성을 사고 파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하시모토 도루의 발언을 쉽게 단죄할 수만은 없다. 그 까닭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면 하나는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국가가 주도하지는 않더라도 암암리에 용인하는 성매매 제도가 여러 경로로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하시모토 도루의 발언에서 '민족' 감정을 조금 제거하고 바라본다면 그의 발언이 최소한 역사적 팩트, 현실적 팩트에는 일부 부합하기 때문이다. 괴벨스가 말했던가? “99%의 진실에 1%의 거짓을 섞으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고 했는데, 하시모토의 주장은 원천 무시해야 할 만한 거짓이 아니라 일면의 진실을 가지고 다른 부분까지 왜곡하고 있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단순하게 민족 감정으로 접근하거나 소박한 윤리의 차원으로만 접근하기에 어려운 몇몇 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여년 이상 분쟁전문기자로 활동해온 크리스 헤지스는 미국 정부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반대하는 연설을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던 <뉴욕 타임스>를 떠나야 했는데, 그는 "당신도 전쟁을 알아야 한다(수린재, 2013)"을 통해 그가 알고 있는 전쟁의 악마적 속성에 더해 퇴역군인들을 취재하고, 그들의 경험을 조사해 전쟁에 대한 FAQ를 만들었다. 다음은 그 책의 내용 중 일부로서 전시(군대) 매매춘 문제와 강간 문제에 대한 질문과 답을 재구성한 것이다.

Q.성관계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가?
A. 항상 생각할 것이고, 특히 작전이 없을 때는 더욱 생각날 것이다. 전투 중이거나, 직접적이고 극적인 스트레스 상태에 있다면 덜 생각날 수도 있다. 집을 떠나온지 오래되면 될수록 성관계에 대해 더욱 문란해질 수 있다. 2차 대전 중 유럽에 참전한 미군 병사 한 사람은 이 전쟁 마지막 해에 평균 25명의 여자와 성관계를 가졌다.

Q.매춘도 하게 되는가?
A. 미군에 의한 매춘은 많은 나라의 현실이다. 매춘은 미군 부대 주둔지역의 주요 수입원이다. 미군이 주둔해 있는 일본, 한국, 베트남, 그 외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대규모의 매춘산업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만 현제 2만 7천여 명의 매춘부들이 미군 부대 주변에 있다. 베트남전 중에는 30만 명에서 50만 명의 매춘부들이 있었다. 그린베레 병사 한 사람이 평균 25명의 베트남 매춘부와 성관계를 가졌다. 걸프전 때에는 전쟁 기간도 짧았고 그 지역에 매춘 시스템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극소수의 미군만이 매춘을 했다. 그러나, 걸프전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귀국선은 병사들을 위해 '일부러' 태국에 들러 잠시 정박했다.

Q. 성관계에 대해 흥미를 잃게도 되는가?
A. 전투를 앞두고 공포를 느낀다면 그럴 수도 있다. 걸프전에서 전투 전의 설문조사에서 22%의 병사들이 보통 정도나 극도의 불안감으로 성관계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 답했다. 70%의 병사는 성관계에 전과 다름없이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전투 후에는 7%의 병사만이 보통 정도나 극도의 불안감으로 성관계에 흥미를 잃었고, 86%의 병사는 전과 다름 없는 흥미를 보였다고 보고되었다.

Q. 전쟁에서 강간은 흔한가?
A. 그렇다. 코소보에서 1992년과 1994년 사이에 2만 명의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의 대학살 기간 동안 25만 명에서 50만 명의 여자가 강간당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1971년 시작된 분쟁에서 서파키스탄 군에 의해서 적어도 20만 명의 여자가 강간당했다. 쿠웨이트에서는 1990년 이라크의 점령 기간 동안 5천 명의 여자가 강간당했다.

Q. 강간은 전쟁범죄로 간주되는가?
A. 다른 전쟁범죄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범죄로 간주된다. UN에 의하면 "강간은 가장 적게 비난 받는 전쟁범죄"다.

Q. 전쟁에서 왜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강간을 당하는가?
A. 강간은 무기로 이용된다. 적국 여자들에게 때로 고의로 임신을 시키거나 질병에 걸리게 하기 위해 강간을 한다. 여자들은 납치되어 짐꾼으로 부려지거나 식사 준비를 하게 되거나, 군인들의 욕구를 풀어주기 위한 성노예로 이용된다. 여자는 때로 심문의 한 형태로 강간을 당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전쟁범죄다.

Q. 왜 강간은 효과적인 무기가 되는가?
A. 강간은 민간인에게 공포심을 준다. 민간인들이 공포심으로 미리 피난을 가버리면 군대가 그 지역을 쉽게 진주하게 된다. 강간범들이 활개를 치게 하고, 희생자들은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적국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Q. 강간은 희생자들에게 어떤 후유증을 남기는가?
A. 성폭력의 신체적 후유증은 상처, 원하지 않는 임신, 성적 기능 장애, 에이즈 감염 등이 있다. 성폭력의 많은 희생자는 심리적으로 다시는 회복되지 못한다. 성폭력의 잔존효과는 불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 자산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여성들이 강간으로 임신이 되면 정신적 외상은 급격하게 악화된다. 낙태를 선택한 여성들도 정신적 외상과 건강상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Q. 미군에게 강간은 어떤 일인가?
A. 평시에는 미군의 강간 범죄가 그 연령대의 민간인 강간 범죄보다 적다. 공격적인 전투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에는 강간을 포함해서 불법적인 행위들이 증가한다. 2차 대전의 막바지였던 1945년 3월과 4월에 유럽의 작전 지역에서의 미군에 의한 강간 비율은 미국 본토의 민간인에 의한 강간 비율의 3.66배였다.

이것을 남성의 본성(혹은 본능)에 기인하는 문제로 보던,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던 하는 것은 이 글의 본래 목적은 아니다. 다만 이것이 전시라는 특수상황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폭력수단(군대)이 존재하는 한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다음은 캐서린H.S.문의 "동맹 속의 섹스"에 드러난 사례(1965년)를 요약해본 것이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8군 병사들의 약 84%는 성매매를 경험했으며, 성매매의 주요원인은 동료의 압력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은 성매매와 성병을 관리하는 것은 전쟁과 전쟁 준비에 저해되는 모든 요소들을 관리할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입장에서 살폈을 때 이런 제도는 거리의 여성들에 대한 시민권의 전적인 폐지를 국가가 공인하는 최초의 정책을 의미했다. 전쟁 기간 동안 병사들이 걸리는 가장 많은 질병 1위는 성병이고, 2위가 감기였다고 한다."

근대국민국가의 거의 모든 성매매 관련 법안은 남성고객과 성매매 여성의 처벌에 차등을 두었고, 알선업자와 포주는 체포되지도 않는 법률이었다. 대한민국은 기지촌 여성들을 필요악으로 대할 때도 있지만, 이들을 "국가방어와 GNP성장을 위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는데, 1973년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민관식은 도쿄를 방문했을 때 "조국 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소녀들의 충정은 진실로 칭찬할 만하다"고 하여 한일 양국의 여성 단체들과 언론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베트남전에서 목숨을 잃은 파월 한국군 장병들이 벌어들인 달러만 경제개발계획의 밑천이 된 것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한국인의 눈에, 매춘 여성은 두 가지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비쳤다. 그 기능이란 한국사회에 끼칠 외국의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들을 견제하고, '존중받을 만한' 소녀와 여성들이 미군에 의해 매춘과 강간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본문 69쪽 - 70쪽>"

"미8군의 한 정보장교는 군대가 1960년대 남한 GNP의 25%를 차지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1987년 미군은 남한 경제에 10억 달러를 기여했으며, 이것은 전체 GNP의 약 1%에 해당한다. …<중략>… 1978년 한국 경제는 매매춘을 통해 일본인으로부터 700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본문 76쪽 - 77쪽>"

성과 매매춘 문제에 대한 시각의 상당 부분은(때로 같은 여성의 경우에도) 이것을 '필요악'으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즉, 이런 굴욕은 형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아우로서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몫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 여성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냔 의식이다. 비단 한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군 기지가 들어가 있거나 군대 제도를 유지하는 상당수 국가에서 매매춘 여성들은 (정상)가족으로부터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서도 비국민으로 간주된다.

기본적으로 모든 우파의 시각은 '사회진화론'에 입각해 있다. 다윈이 진화론을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했던 진화의 논리는 자연(현실)에 적응하는 종만이 살아남아 진화해 왔다는 것이었지만 우파들은 이것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받아들였고, 이것을 다시 사회에 적용한다. 즉,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역시 자연스러운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하시모토 도루는 군위안부 망언을 한 날 저녁에는 "위안부 제도가 아니어도 '풍속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달초 오키나와(沖繩) 후텐마(普天間) 미군 기지를 방문했을 때 병사들이 성적 에너지를 해소할 수 있도록 "풍속업을 더 활용해 달라"고 지휘관에게 제언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성의 역사학 : 근대국가는 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삼인, 2004)"의 저자 후지메 유키는 이 책에서 "일본군 '노예'제가, 1930년대에 시작된 전쟁에서 돌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근대의 군국주의.식민지주의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전개된 국가폭력 제도, 즉 공창제가 가장 흉폭한 단계로 발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시모토 도루의 발언에 대해 분개하고, 망언으로 단정해야 마땅하겠지만 그보다 앞서 나의 내면에서 혹시 하시모토의 저 발언을 일부 긍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되돌아 보았으면 좋겠다.

성을 팔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서 제기되는 '왜 굳이 성을 파는가?'라는 질문과 성을 팔고 있는 세계에서의 '왜 팔면 안되는가?'의 반문 사이에서... 나는 가끔 길을 잃고 헤맨다.





*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


당신도 전쟁을 알아야 한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185038

동맹 속의 섹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7519694

성의 역사학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097022

바나나 해변 그리고 군사기지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84095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오늘날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는 세계 여러 나라 국가들 가운데 가장 잔인한 가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를 혁명 이전의 국가로 되돌려 놓기 위해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프랑스를 침공했고, 프랑스는 혁명을 사수하기 위해 때로는 전파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이 결정된 후인 1792년 4월 25일 스트라스부르에 주둔하고 있던 공병대 대위 루제 드 릴은 스트라스부르 시장인 디트리슈 남작으로부터 군인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노래를 하나 작곡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애국심에 충만해 있던 그는 하룻밤 사이에 노래 하나를 작곡하는 데 그 곡이 바로 라 마르세예즈이다. 그런데 스트라스부르에서 작곡한 이 노래에 갑자기 마르세이유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2개월 후 몽벨리에 출신의 프랑수아 미뢰르가 마르세이유의 의용군들과 함께 파리로 행진할 계획이었다. 마르세이유부터 파리까지 800Km를 행군하는 동안 600여명의 의용군들은 목이 터져라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있던 파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마르세이유에서 온 사람들이 부른 노래라고 해서 라 마르세예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의용병들은 유럽 여러 나라의 상비군들에 맞서 조국을 방어하고 마침내 혁명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노래는 혁명의 이상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이 노래가 다시 불린 것은 우리도 얼마 전 영화 <레미제라블>을 통해 보았던 감동적인 장면 1830년 7월 혁명 당시 파리의 바리게이트 앞이었다. 이후 이 노래는 1879년 프랑스 제 3공화국 시절 다시 프랑스의 국가가 된다. 애초 ‘루제’ 대위가 썼던 6절까지의 가사에 나중에 다른 사람이 추가한 7절 가사가 붙은 ‘라 마르세예즈’는 공식행사에서는 1절과 6절만 부른다.  

라 마르세예즈 (La Maseillaise)

나가자, 조국의 자식들아.
영광의 날은 왔도다!
폭군에 결연히 맞서서
피묻은 전쟁의 깃발을 올려라,
피묻은 전쟁의 깃발을 올려라!
우리 강토에 울려 퍼지는
끔찍한 적군의 함성을 들으라.
적은 우리의 아내와 사랑하는 이의
목을 자르러 다가오고 있도다!
무기를 잡으라, 시민동지들이여!
그대 부대의 앞장을 서라!
진격하자, 진격하자!
우리 조국의 목마른 밭이랑에
적들의 더러운 피가 넘쳐흐르도록!

Allons enfants de la Patrie
Le jour de gloire est arrive.
Contre nous, de la tyrannie,
L'etandard sanglant est leve,
l'etandard sanglant est leve,
Entendez-vous, dans la compagnes.
Mugir ces farouches soldats
Ils viennent jusque dans nos bras
Egorger vos fils,
vos compagnes.
Aux armes citoyens!
Formez vos bataillons,
Marchons, marchons!
Qu'un sang impur
Abreuve nos sillons.

내가 갑자기 이 노래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박근혜 정부가 5.18기념식을 위한 새로운 추모곡을 공모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 때 정부는 5.18추모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을 연주시켜 국민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기념과 추모는 결국 기억을 위한 투쟁이다. 올바르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는 멀리 현해탄 건너 일본의 교과서 문제만이 아니다. 바로 오늘 우리 앞에서도 역사 왜곡 시도는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역사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성(진실)을 가지고 오랫동안 추모곡으로 불려오던 노래가 있는데 새로 추모곡을 만들어 이를 대체하려는 시도야말로 역사 앞에 부끄러운 짓일 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만화책을 보세요-04>
바람의 검심 1~28(완결) - 와츠키 노부히로 지음 / 서울문화사(만화)





올해 초(2013년 1월) 개봉된 영화 <바람의 검심>은 만화가 와츠키 노부히로(和月伸宏)가 지난 1993년 일본 만화잡지 《소년 점프》에 처음 발표하여 1999년쯤인가에 전 28권으로 완결된 동명의 만화를 실사 영화로 제작한 것입니다. 일본 만화는 먼저 잡지에 연재를 시작한 뒤 그것을 단행본 시리즈로 출간하고,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으면 이것을 다시 OVA(Original Video Animation)으로 제작하는 방식인데, OVA는 대체로 공중파나 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 방송국 등을 통해 방영된 뒤 DVD로 제작됩니다. 이것이 흥행에 성공하면 일종의 외전(外傳)이랄 수 있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거나 <바람의 검심>처럼 실사 영화로 제작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출판에서 영화에 이르는 생산·수익구조가 오늘날 일본의 만화산업, 애니메이션을 세계화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

에도 막부 말기에 비천한 계급의 전쟁고아로 태어난 주인공 히무라 신타는 검술 스승으로부터 ‘켄신(剣心)’이란 이름을 받습니다. 이 작품의 시대 배경은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에 이르는 시대입니다. 어찌보면 일본 사무라이(侍, 武士)의 단순한 액션 활극 만화로 볼 수도 있겠지만, 작가 와츠키 노부히로는 역사 속의 실제 인물과 사건들 사이에 가상의 인물과 사건들을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작품의 사실성과 흥미를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일종의 ‘팩션(faction)’인데,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 동아시아의 근대화를 추동했던 메이지 유신에 대한 지식은 물론 현대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유신의 의미와 당시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을 느끼는 텍스트(text)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 근대화의 동력이 되었던 ‘메이지 유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임진왜란 이후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야 합니다. 전국 시대를 끝내고 임진왜란을 통해 주요 경쟁 세력을 제거하는데 성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어린 아들 히데요리(豊臣秀頼)에게 권력을 물려주고자 했지만 그의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도요토미 세력을 숙청하고 자신이 쇼군의 자리에 오릅니다. 세키가하라와 오사카 전투에서 잇달아 패한 도요토미 세력은 일본의 서쪽 끝 큐슈의 사츠마 번(薩摩藩)과 초슈 번(長州藩)까지 쫓겨나게 됩니다. 도쿠가와 막부는 이후 각 지역의 영주인 다이묘들로 하여금 1년 중 반년은 에도에서, 나머지 반년은 영지에서 근무하는 ‘참근교대제(参勤交代制)’를 통해 반란을 사전에 봉쇄하고, 일본 내 각 지역의 거주 이전과 물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외국과의 교류를 차단하는 쇄국정책을 통해 ‘에도 막부 300년의 평화’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막부의 쇄국 정책은 서양의 흑선(黑船)이 출몰하면서 힘을 잃게 됩니다. 쇄국정책을 고집할 수도, 그렇다고 개혁을 이끌 추동력도 상실한 막부의 권위는 점차 약화됩니다. 이때 막부의 감시 대상이자 오랫동안 서로 견원지간이었던 사츠마와 초슈 사이의 삿쵸 동맹(薩長同盟)을 체결시키며 메이지유신을 이끈 사람이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유신지사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입니다. 사츠마와 초슈 지역의 이른바 지사(志士)들은 ‘막부타도(幕府打倒)와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 와중에 벌어진 드라마틱한 사건들과 인물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막부 말기의 칼잡이 켄신은 발도술(拔刀術)의 대가로 사카모토 료마 등과 함께 존왕양이파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히토키리(人斬り)’로 활동합니다. 히토키리란 막부 말기의 전문 암살자 혹은 살인청부업자들이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하급무사도 될 수 없는 천한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신지사들과 어울리며 열등감과 울분을 더욱 폭력적인 살인과 테러로 보상받고자 했습니다. 작가 와츠키 노부히로는 켄신이란 인물을 구상할 때 실존했던 히토키리인 가와카미 겐사이(河上彦斎)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합니다. 막부파와 반막부파 사이의 대결, 같은 반막부파 사이에서 벌어졌던 끊임없는 배신과 모략은 일본을 격동시켰고, 그 와중에 사카모토 료마도 불과 33세의 나이에 암살당합니다.

근대 민족국가 만들기(nation state building)의 세 가지 방법 - 혁명·내전·유신

서구보다 근대화에 늦었던 지역 대부분은 외세에 의해 식민지가 되거나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였는데, 일본은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가장 빨리 개항하면서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성장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동아시아 삼국은 비록 진행시점과 과정, 주체는 모두 달랐으나 폭력적인 경험을 거치며 근대화를 달성하게 됩니다. 일본의 ‘대정봉환(大政奉還)’, 중국의 국공내전, 우리의 한국전쟁이 그것입니다. 동아시아 삼국은 근대민족국가 수립 과정에서 내전(무력을 동반한 내부 갈등)을 경험했습니다. 찰스 틸리(Charles Tilly)는 “국가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War made the state and the state made war)”는 테제를 주장하여, 전쟁(폭력)이 근대의 국가형성(state-building)과 국민형성(nation-building), 정당성 창출의 근거로 이용되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전쟁은 전통적인 질서를 파괴하고, 그것을 근대의 질서로 대체하는 역할을 하는데 한국전쟁은 남북한 양국의 지배집단의 국가형성과 국민형성, 정당성 창출의 근거로 이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막부가 권력을 천황에게 이양(대정봉환)하는 과정과 이후의 메이지 유신은 혁명과 달리 위로부터 온 혁신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나 내전을 통한 새로운 정권 수립이란 점에서 이후 혁명에 버금가는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대정봉환이 한국과 중국의 내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좌우 이데올로기의 개입이 발생하기 전에 벌어진 내전이었다는 것 - 그 덕분에 일본인들은 근대화 과정을 이념(선악) 대결보다는 애국지사들이 벌인 다소 낭만적인 권력 투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 이고, 다른 하나는 국공내전과 한국전쟁이 ‘국민국가 만들기’ 과정에서 전 국민이 동원되었던 총력전이었던 반면, 일본은 지배계급 사이의 내전 - 한·중의 경험과 달리 일본은 상대적으로 내전 기간이 짧았고, 지배계급 사이의 충돌이었기에 내전의 후유증이 적었던 대신 근대화 과정에서 민중의 참여가 배제되어 이후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 - 이었다는 겁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중·일이 경험한 역사의 차이는 이후 한국과 중국, 일본이 서로 확연히 구분되는 근대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비록 후반부(특히 ‘인벌’편 이후)에 이를수록 일본 만화 특유의 과장과 억지스러운 이야기 늘이기가 작품의 재미를 반감시키기는 하지만 이런 차이에 주목하며 『바람의 검심』을 읽는다면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성찰도 함께 따라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2』 |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12




** '인천교사신문' 연재는 제 개인적으로도 가장 즐기는 연재 꼭지입니다. 개인적으로 만화 읽기를 즐기는 까닭도 있지만 만화라는 매체를 통하여(간혹 만화를 장르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만화는 장르가 아니라 매체입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매체이지요.) 새로운 시각과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즐거움을 선생님들께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죠.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경향신문" 구정은 기자의 '할머니를 죽인 것은 누구였나(http://me2.do/FIhV9c4r )'는 좋은 글이다. 제목도 의도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기막히다. 미셸 폴라레프의 노래는 5월 광주를 노래한 '오월의 노래' 원곡이기도 했는데....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Qui A Tue Grand-Maman)

Il y avait du temps de grand-maman
Des fleurs qui poussaient dans son jardin
Le temps a passe, seules restent les pensees
Et dans tes mains il ne reste plus rien

Qui a tue grand-maman, est-c’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Il y avait du temps de grand-maman
Du silence a ecouter
Des branches sur les arbres,
Des feuilles sur les branches
Des oiseaux sur les feuilles
Et qui chantaient

Qui a tue grand-maman, est-c’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e bulldozer a tue grand-maman
Et change ses fleurs en marteaux-piqueurs
Les oiseaux pour chanter
Ne trouv’ que des chantiers
Est-ce pour cela que l’on te pleure?

Qui a tue grand-maman, est-c’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Qui a tue grand-maman, est-c’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예전 할머니 시절에는
정원에 꽃들이 피어 나고 있었어요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는 마음만 남아있지요
그리고 두 손에는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
시간인가요?
아니면 이제 더 이상 세월을 보낼
시간이 없는 사람들인가요?


예전 할머니 시절에는
나무의 가지들과, 가지에 매달린 잎새들과
그 가지 위에서 노래하는 새들의 소리를
들을 만큼의 고요함이 있었어요


불도저가 할머니를 죽였어요
그리고 꽃들을 굴착기로 바꾸어 버렸지요
노래하려던 새들은
공사장밖에 찾을 수가 없었죠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당신을 잃은 것을 그리 슬퍼하는 건가요?


프랑스 샹송가수 미셸 뽈라레프의 <Qui A Tue Grand Maman?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 가 한국에서 5.18광주항쟁을 기린 '5월의 노래'의 원곡이란 건 잘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이 노래가 사실은 프랑스의 한 재개발 지역에서 재개발에 저항하며 자신의 정원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가 목숨을 잃은 Lucien Morrisse라는 이름의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1971년에 만들어진 노래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하다.


http://youtu.be/7a1eNTmIk5Q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전버튼 1 2 3 4 5 6 7 ··· 83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