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공유하는 모든 것
-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
제이 월재스퍼 (엮은이) | 박현주 (옮긴이) | 검둥소 | 2013-02-28 | 원제 All That We Share (2010년)




미국의 발명가이자 철학자인 벅민스커 풀러는 "존재하는 현실과 싸우는 것으로는, 결코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뭔가를 변화시키기 위햐서는, 현존 모델을 쓸모 없게 만드는 새로운 모델을 세워라"라고 말했다. 정확히 요즘 한국의 현실을 말하는 듯 하다.

"우리교육"에서 서평을 부탁해서 읽고 있는데, 제목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개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이란 오래되었으나 현재까지 보수주의, 신자유주의 논자들의 강력한 근거가 되는 사회과학 논문이었다.

1968년 12월 13일자 『사이언스』에 실렸던 하딘(G. J. Hardin)의 논문은 개인주의적 사리사욕 추구는 결국 공동체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주장을 모두에게 공유되고 개방되어 있는 목초지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한다. 일종의 게임이론인 셈인데...

소치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저마다 가능한 한 많은 소를 키우려고 할 것이다. 공유지에 내재된 논리는 비극을 낳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소치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면,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암암리에 혹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 각자는 “나의 소를 한 마리씩 더 늘려 가면 나에게 얼마나 효용이 생길까?”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처럼 개인주의적 사리사욕의 추구가 결국 공동체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주인이 없는 한 목초지가 있을 경우(외부효과) 비용을 들이지 않기 위해 마을 사람들 모두 이곳에 소를 방목하여 풀을 먹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이 목초지는 황폐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소유권 구분 없이 자원을 공유할 경우 나타나는 사회적 비효율의 결과를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가가 경제활동에 개입해 통제하거나 개인에게 소유권을 줘 개인이 관리하도록(사유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우리에게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끊임없이 자기 이익과 권리의 극대화를 추구할 경우, 결과적으로 자신을 포함한 공동체 전부가 피해를 입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 하딘이 처음 이런 논지를 펼칠 때의 본 뜻은 '사유화(우리나라의 경우엔 '민영화'라는 언어 유희로 포장되고 있으나)' 보다 공동체의 효율적 관리에 방점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자들의 사유화 정책의 강력한 이론적 논거가 되었다.

이 책 "우리가 공유하는 모든 것 -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것에 대한 약간은 때늦은 백신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책을 읽으며 내가 느끼는 문제점 중 하나는 싸이의 말춤, 시건방춤 처럼 이런 논리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좀더 쉬운 말로 딱 집어주는 그럴 듯한 슬로건이 필요하다는 거다. 지난 선거에서도 그렇고, 번번이 한국의 진보는 이 부분을 잘 하지 못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주었던 인간미와 매력, 그리고 손쉬운 이해 같은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4036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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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
100척(尺)이나 되는 장대 끝에 서 있더라도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시방세계와 내가 한몸이 되어 현하리라.

'백척간두진일보'란 말은 당나라 때 고승(高僧) 장사(長沙) 스님의 말이다. 1척은 대략 30.333...cm이므로 백척이란 330m 높이다. 이 높은 대나무 장대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면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라는 의미다.

조선시대 거상으로 알려진 임상옥이 중국에 갔을 때 그가 팔려고 가져간 조선 인삼을 헐값에 사려고 상인들이 서로 담합해 구입하지 않고 간만 보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위기에 처한 임상옥은 함께 갔던 추사 김정희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추사는 붓으로 '百尺竿頭進一步'라고만 썼다. 여기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임상옥은 중국 상인들이 보는 앞에서 인삼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이에 놀란 중국 상인들이 임상옥 앞에 엎드려 싹싹 빌어 결국 모두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었다는 고사로도 유명한 말이다.

아침에 쌍용자동차 노동자 고동민의 글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글귀가 이것이었다.

"화단위에서 연행은 이제 안되나보다. 피켓을 들고 앉아있던 쌍용차해고자들을 경찰은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고있다. 그리곤 경찰에 둘러쌓여 바라보기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화단에 서서 이야기 할 것이다. 우리는 물러 설 곳이 없다고."

애초에 내 생각은 이들 노동자들이 백척간두에 선 듯 위태롭고, 더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이 사회가 처한 현실이 백척간두란 것이었다.

우리는 아리따운 여성들이 주변에 많은 남자들을 농담삼아 꽃밭에 있다고 하기도 하는데, 지금 쌍용차 노동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꽃밭을 만들고, 다시 그 꽃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차단하고, 또 꽃밭을 핑계삼아 몰아내려는 이 상황이 너무나 슬프고, 우습고, 또한 위태롭다.

백척간두에 노동자들을 세워놓고 흔들어대는 저 시방세~계들! 이 시방세~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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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감상해보게."

"그럼 은유를 쓸 수 있게 되나요?"

"물론, 틀림 없이."

달에는 영원히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
인간의 말에도 영원히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
우리가 지구에 있는 한 영원히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듯
내가 그의 마음이 되어보지 않는 한 한 인간의 말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달은 지구의 적도면에 대해 경사져 있고,
타원형 궤도를 운행하는 달의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달은 자기 중심으로부터 미세하게 떨고 있다.
이처럼 지구에서 본 달의 중심이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현상을
달의 칭동(秤動)이라 한다.

달의 떨림을 느낄 수 있다면
한 인간의 떨림도 느낄 수 있으리라.

"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달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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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의 한 칼럼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세 차례나 방문한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는 음식점에 들어가 앉기 무섭게 얼른 물컵부터 뒤집는다. 그러곤 물을 따르러 온 종업원에게 물은 꼭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사람에게만 따라주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고 한다(이 대목을 읽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제인 구달이 방문한 식당은 아마도 고급 식당이었으리라 추측해보았다. '김밥천국' 같은 셀프서비스 식당이라면 어차피 자기 손으로 물을 따라마실 테니 문제 될 게 없을 테고, 보통 식당에선 물병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아주머니든, 알바 생이든 물컵에 물까지 따라주는 법은 거의 없으니까. ㅋㅋ 별걸 다 추측해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부분은 제인 구달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다지 한국적으로 유용해 보이진 않았다).

어쨌든 제인 구달이 이렇게 행동하는 의미는 지금 세계에는 줄잡아 9억명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는데 원하거나 청하지도 않는 물을 따라주며, 마시지도 않을 물을 컵 가득 채워주는 일은 일종의 물낭비(죄악)이라는 것이다. 제인 구달의 이런 행동은 존경할 만한 일이고, 우리도 함께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어쨌든 물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는 "유엔이 정한 세계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이다. '물의 날' 같이 특정한 날은 물론 MB 시대에 이르러 4대강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전국 어딜 가나 숱하게, 지겹게 듣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분명히 해두자!

UN은 한 번도 대한민국을 가리켜 '물 부족 국가'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래전 미국의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가 내놓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분석 결과를 우리 정부가 댐 건설이나 기타 개발 사업을 추진하려는 목적에서 재탕, 삼탕하여 아예 골수까지 우려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한 국가의 연평균 강수량을 인구수로 나눠 일인당 강수량을 계산했는데,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세계 평균을 거의 20~30%나 웃도는 수준이지만 워낙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인구수로 나누면 졸지에 사막국가 수준으로 떨어지는 통계의 장난이 벌어져서 그런 것뿐이다. 그런 걸 분석이라고 내놓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는 물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낭비 국가이며, 그나마 수천년 잘 흘러가던 강을 제맘대로 들쑤셔 엉망으로 만드는 바보 같은 물관리 국가일뿐이다. 비록 우리가 물부족 국가는 아닐지 몰라도 물을 잘 관리하는 치수는 국가의 대사다. 그런 중대사업을 아무 철학도, 계획도 없이 자기 임기 내 제대로 된 환경평가 한 번 제대로 거치지도 않고, 속전속결로 해치우는 나라에서 머나먼 나라에 살고 있는, 깨끗하고 시원한 물 한 잔이 절실하게 필요한 9억 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싶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물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낭비국가이며 물관리가 엉망인 국가라고 UN이 지정한들 이상할 게 없는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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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울산 선생님들 모임에서 강의를 마친 뒤 몇몇 선생님들과 저녁 식사를 했어요. 그 자리에서 각자 궁금한 걸 제게 물었는데 한 선생님이 제게 "연을 쫒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와 관련해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해 참고할 만한 자료나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 몇몇 책을 추천해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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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프가니스탄을 다룬 영화로는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칸다하르"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벌써 보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슬람,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우리나라는 지역학 연구가 아직 미진한데다 지역학 연구의 대부분이 경제 중심적이거나 아니면 문학 작품 소개 위주라서 사실 아프가니스탄을 다룬 본격적인 저작을 찾기가 쉽지 않은 편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추천드릴 만한 책으로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계신 이주형 선생이 쓰신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 사라진 바미얀 대불을 위한 헌사"가 있습니다.

아프간의 탈레반들이 고대 불교미술의 진수라 할 수 있는 바미얀 석불을 파괴한 사건은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는데요. 고고미술을 전공한 이주형 선생에게도 놀라운 충격이었을 겁니다. 이 책은 1부, 2부로 되어 있는데 전반부는 미술(문화)사적인 접근이고, 후반부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습니다. 별도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다룬 책이 별로 없다는 점을 고려하시면 이만한 책이 없을 듯 합니다.

앞서의 책이 다소 전문적인 통사에 가깝다면 디디에 르페브르와 에마뉘엘 기베르가 지은 "평화의 사진가"는 만화와 사진이 어우러진 책으로 좀더 읽기 쉬운 책입니다. "앨런의 전쟁 -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송두리째 바뀐 소년병 코프의 인생 여정"의 작가이기도 한 에마뉘엘 기베르의 그림과 디디에 르페브르의 사진을 통해 당시 국경없는 의사회와 합류해 함께 활동했던 기자의 귀환기를 다루고 있지요.

서구인의 시선으로 그려졌다는 한계는 있겠으나 현장의 이미지와 직접 체험담이란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은 1980년대 후반, 그러니까 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이 전쟁을 치르고 있던 시점을 기록한 것이므로 전체적인 역사를 조망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크리스토프 드 퐁피이의 "판지셰르의 사자, 마수드"는 소련과의 투쟁을 이끌었던 아프간 북부동맹 사령관 마수드를 중심으로 그가 소련과의 투쟁을 어떻게 이끌었으며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간 내전 당시 미국과 북부동맹, 탈레반 간의 내전 상황들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마수드는 당시 아프간의 중요한 민족지도자 중 한 명이었지만 결국 암살당합니다. (물론 누가 암살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저자는 아마도 미국에게 호락호락한 정치지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암살당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해방 정국 무렵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 처럼 말이죠.)

아프간 문제를 세계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 있어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 정치지리의 세계사"란 책이 아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곳을 찾아가기 위해 지도를 보면 대략적인 감이 오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하기 위해 열강들이 어째서 치열한 쟁투를 벌이는지 지도를 펼쳐보면 이곳이 얼마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인지 매우 쉽게 보이기도 하거든요. 만약 꼭 한두 권만 추천하라고 하신다면 이주형 선생의 책과 이 책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정치지리의 세계사"를 추천드립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24200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22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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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몇 차례 말한 바 있지만 미국의 무력 과시보다 두려운 것이 나로서는 현재 중국의 침묵이다. 중국이 무서운 이유는 그들의 무력이나 경제력, 외교력 보다 미국과 중국이란 힘센 두 나라의 암묵적 동맹시스셈의 성립이 한반도 평화에는 더 큰 위협이 되어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 미국은 호주, 일본, 한국, 필리핀 해군 등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태평양 해상 작전 훈련인 림팩에서 중국을 배제해 왔는데, 중국은 이에 대해 대중국 봉쇄 훈련이라며 강하게 항의해 왔다. 그런데 2년마다 한 번씩 전개되는 림팩 훈련에 내년부터 중국도 참여하기로 되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중국은 또한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채무국으로서 미국 국채를 1조 달러 이상 소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거 동서 냉전적 사고 아래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마치 미소간의 양대 블럭처럼 서로 적대적인 경쟁관계일 것으로 은연 중 예상하기 쉽지만 좀더 다른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자연스럽게 영국의 패권이 미국이란 또다른 동맹국가로 승계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미중, 중미간 동맹체제의 수립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미소 관계가 초나라와 한나라로 갈려서 서로의 궁(宮)을 노리는 장기로서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었다면, 미중관계는 장기가 아니라 바둑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소간이 치열한 대결에 의한 패권다툼이었다면 미중간에는 싸움바둑과 집바둑이 혼용되어 있는 셈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진영 사이에서 서로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패라고 생각하며 저울질하는 동안 판세가 아주 다른 방향으로 튀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미중 양강의 대립 속에 어부지리라도 얻겠다는 판에 박힌 외교적 인식만으로는 큰 패착을 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예전에 미국과 일본의 빅딜(가쓰라 - 태프트 밀약)에 농락당한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리영희 선생이 생존해 계실 때 이미 중국과 미국이 대만과 북한을 서로 딜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바도 있지만).

강자에겐 써먹을 수 있는 패가 많지만 약자에겐 제시할 수 있는 패가 많지 않은 법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평화 수호 의지가 중요하다. 잘못하면 만패불청(萬覇不聽:매우 큰 패가 나서 상대가 어떤 팻감을 써도 듣지 않게 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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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는 내게는 조금, 혹은 아주 특별한 시인이다. 대학생은 아닌데 남들은 대학생인 줄 착각하던 시절에 나는 노가다 뛰는 젊은 막장 인생이었다. 그 무렵엔 왜 영화들도 하나 같이 그런 부류의 영화들이 많았던 건지 몰라도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의 영화들 중에는 방황하는 청춘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참 많았다. 예를 들어 이문열 원작, 곽지균 감독, 정보석, 이혜숙, 배종옥, 옥소리 주인공의 영화 "젊은 날의 초상"이 그랬고, "걸어서 하늘까지", 박광수 감독, 문성근, 박중훈, 심혜진 주연의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 같은 영화들 말이다. 한 시대를 떠받들던 이념이 무너진 시대에 한국 영화는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던 셈이다. 어쨌든 내가 실비아 플라스를 알게 되었던 시대가 대략 이무렵이었다.

89년에서 90년 무렵 실비아 플라스를 처음 접했는데, 실비아 플라스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난 조금 충격을 받았다. 소설은 중고등학생 때 이미 김성동과 황석영을 뗐는데 시는 여전히 중학생 시절에서 별반 진도를 나가지 못한 상황이었던 터라 여류 시인과 여성 시인의 차이점조차 제대로 깨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시 읽기가 중학생 수준이었다는 말은 김남조와 이해인 정도에서 별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말이다(물론 이 분들의 시를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고...다만 여류라는 표현이 주는 딱 그 수준의 감상이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듯). 물론 그런 감수성이란 것이 그 무렵 제대로 시를 읽지 않았다면 여류 시인이란 그저 "오, 아름다워라! 세상은"이란 말투라는 식의 오해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만난 여성 시인이 '실비아 플라스'였다. 그러니까 나에겐 최승자나 김혜순 보다 실비아 플라스가 먼저였다. 처음 시집을 읽는 순간 내 반응은 요즘 아이들 식 표현을 빌자면 딱 이랬다. "헉, 이뇬 모야!" 실비아 플라스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놀라움에 시집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외국 시인의 시를 통해 모던한 여성주의의 시세계를 처음 접했던 거다. 그녀가 처음이었다. 나의 감성과 맞는 여성 시인을 찾아낸 것은... 그 후 나는 고정희, 김혜순, 최승자 등등의 한국 여성 시인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마녀들의 세계에 한 발 들어선 셈이었다.

실비아 플라스를 다시 만난 건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당시 유명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남진우 선생이 진행하는 강의였는데, 수업 내용은 꽤 훌륭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남진우 선생 특유의 시니컬한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물론 걔중에는 그를 핸섬한 시인으로, 샤프하고 시크한 문학평론가로 좋아하던 여학생들도 꽤 있었다만). 어쨌든 그의 수업 시간 중에 실비아 플라스의 <아버지>란 시를 낭송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꼭 여학생에게 이 시의 낭송을 시켰다. 다소 악취미란 생각도 들긴 했지만 아마 내가 선생이라도 이 시는 반드시 여학생에게 낭송을 시켰을 게다. 사전에 이 시를 접해본 학생이라면 별 문제 없겠지만 간혹 이 시를 처음 접하는 순진한(?) 여학생들은 이 시의 마지막 행에 이르러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곤 했다. 이 시의 마지막 행은 이랬다.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넌 끝장이야!"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약간의 과장은 어쩔 수 없고) 낭송하는 여학생이 이 대목을 얼마나 리얼하게 낭송해주느냐에 따라 이 시가 죽고 산다. 당신도 한 번 소리내서 읽어보라. 얼마나 리얼할 수 있는지...

실비아 플라스의 마지막 행에 필적할 수 있는 구절은 문학보다는 '도어즈'의 짐 모리슨이 <This is The End>에서 "아버지, 난 당신을 죽이고 싶어. 어머니 난 당신을 밤새도록 사랑하고 싶어. 그건 가슴시리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정도나 되어야 하지 않을까?(나는 실비아 플라스의 이 시에서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를 엿보기도 했다만...)

솔직히 대학에서 이 시를 낭송해준 여학생과는 그리 친한 편이 아니었지만 이 시를 너무나 맛깔나게 읽어주었기 때문에 한동안 난 그 친구만 보면 이 시 이야기를 하며 '죽여줬다'고 칭찬을 했건 것 같다. 물론 졸업하고 이제는 그 친구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만...


아빠

- 실비아 플라스


이젠 안돼요, 더 이상은
안될 거예요. 검은 구두
전 그걸 삼십 년간이나 발처럼
신고 다녔어요. 초라하고 창백한 얼굴로,
감히 숨 한 번 쉬지도 재채기조차 못하며.

아빠, 전 아빠를 죽여야만 했었습니다.
그래볼 새도 없이 돌아가셨기 때문에요ㅡ
대리석처럼 무겁고, 神으로 가득찬 푸대자루.
샌프란시스코의 물개와
아름다운 노오쎄트 앞바다로

강남콩 같은 초록빛을 쏟아내는
변덕스러운 대서양의 岬처럼 커다란
잿빛 발가락을 하나 가진 무시무시한 彫像
전 아빠를 되찾으려고 기도드리곤 했답니다.
아, 아빠.

전쟁, 전쟁, 전쟁의
롤러로 납작하게 밀린
폴란드의 도시에서, 독일어로
하지만 그런 이름의 도시는 흔하더군요.
제 폴란드 친구는

그런 도시가 일이십 개는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전 아빠가 어디에 발을 디디고,
뿌리를 내렸는지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전 결코 아빠에게 말할 수가 없었어요.
혀가 턱에 붙어버렸거든요.

혀는 가시철조망의 덫에 달라붙어 버렸어요.
전, 전, 전, 전,
전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전 독일 사람은 죄다 아빤 줄 알았어요.
그리고 독일어를 음탕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유태인처럼 칙칙폭폭 실어가는
기관차, 기관차.
유태인처럼 다카우, 아우슈비츠, 벨젠으로.
전 유태인처럼 말하기 시작했어요.
전 유태인인지도 모르겠어요.

티롤의 눈, 비엔나의 맑은 맥주는
아주 순수한 것도, 진짜도 아니에요.
제 집시系의 선조 할머니와 저의 섬뜩한 운명
그리고 저의 타로 가드 한 벌, 타로 가드 한 벌로 봐서
전 조금은 유태인일 거예요.

전 언제나 아빠를 두려워했어요.
아빠의 독일 空軍, 아빠의 딱딱한 말투.
그리고 아빠의 말쑥한 콧수염
또 아리안족의 밝은 하늘색 눈.
기갑부대원, 기갑부대원, 아, 아빠ㅡ

神이 아니라, 너무 검은색이어서
어떤 하늘도 삐걱거리며 뚫고 들어올 수 없는 十字章(卍)
어떤 여자든 파시스트를 숭배한답니다.
얼굴을 짓밟은 장화, 이 짐승
아빠 같은 짐승의 야수 같은 마음을.

아빠, 제가 가진 사진 속에선
黑板 앞에 서 계시는군요.
발 대신 턱이 갈라져 있지만
그렇다고 악마가 아닌 건 아니에요. 아니,
내 예쁜 빠알간 심장을 둘로 쪼개버린

새까만 남자가 아닌 건 아니에요.
그들이 아빠를 묻었을 때 전 열 살이었어요.
스무 살 땐 죽어서
아빠께 돌아가려고, 돌아가려고, 돌아가 보려고 했어요.
전 뼈라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침낭에서 끌어내
떨어지지 않게 아교로 붙여버렸어요.
그리고 나니 전 제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었어요.
전 아빠를 본받기 시작했어요.
고문대와 나사못을 사랑하고

'나의 투쟁'의 표정을 지닌 검은 옷의 남자를.
그리고 저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그래서, 아빠, 이제 겨우 끝났어요.
검은 전화기가 뿌리째 뽑혀져
목소리가 기어나오질 못하는군요.

만일 제가 한 남자를 죽였다면, 전 둘을 죽인 셈이에요.
자기가 아빠라고 하며, 내 피를
일년 동안 빨아마신 흡혈귀,
아니, 사실은 칠년이지만요.
아빠, 이젠 누우셔도 돼요.

아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혔어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조금도 아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들은 춤추면서 아빠를 짓밟고 있어요.
그들은 그것이 아빠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어요.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젠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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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사마천의 "사기"를 모두 읽는 사람이 있긴 있을까? 드물긴 하지만 간혹 있긴 하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읽어둔 "사기"에 대한 책들을 또 구입한다. 가끔 이런 부류의 열전들을 폄훼하거나 깊이 있는 책이 아니란 식으로서 서평을 써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부류의 독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부류에 속하는지 미처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어렵게 글을 쓰면 대중적이지 못한 저작이라고 비난하고, 대중적인 수준으로 글을 쓰면 이번엔 깊이가 없다고 비난한다. 예전에 나도 그런 독자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추천하는 책은 "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이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매우 좋게 읽었고, 저자의 박식함과 깊이에 감탄했다. 그런데 A서점의 리뷰들(그리고 별점을 보니, 내가 그 서점에서 리뷰어로 활동할 당시에도 이런 식의 별점 시스템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비판했던 이유는 이 시스템이 그만큼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에 비해 간혹 말도 안 되는 우스운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을 읽어보니 앞서 이야기했던 잘못을 범한 리뷰들이 상당수였다고 생각한다.

저자인 김경윤 선생에 대한 소개를 보니 아마도 내또래가 아닐까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사 주신 한국전래동화선집과 어린이 세계문학전집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재미나게 읽은 책은《소년중앙》, 《새소년》, 《어깨동무》 같은 어린이 잡지였지요. 청소년기에는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며 간식도 많이 얻어먹었어요. 그때 막연하게‘나는 커서 작가가 될 거야’라고 생각했지요. 대학 시절에는 문학을 전공하며 시나 소설도 읽고 동서양의 고전을 많이 읽었어요.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나는 이제부터 결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거든요. 덕분에 글도 쓰고, 책도 여러 권 내게 되었어요. 그리고 도서관이나 학교, 지역 단체에서 인문학 강의도 하고 있지요. 지금은 그동안 읽은 책들을 모아 일산에서 자유청소년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어요."

상재해둔 저서가 9권에 이르는 것을 보면 그간 저술활동도 활발히 해온 편인데 그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상당히 아낄 만한 책에 들어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저술들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반해 이 책은 성인들을 위한 본격적인 교양서의 부류에 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양'을 쌓는 일은 매우 어렵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교양이 세계의 교양이 되지 못했고,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양이란 고전 시대에는 중국의 교양을 의미했고, 현대에 와서는 영미를 중심으로 한 서구의 교양을 의미한다. 다소 거칠게 말해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고, 그것만 달달달 외워서 무슨 이야기할 때마다 한 구절씩 말해도 교양 있는 척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논어나 중용 정도만 제대로 공부해도 그 비슷한 시늉을 낼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교양이란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멀리 달려야만 하고, 그래봐야 이탈리아 유학갔다 돌아와 같은 한국인들 앞에서 노래 자랑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폄훼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래봐야 어차피 우리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고 내가 국수주의자라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야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교양이 서구나 중국의 그것보다 더 많이, 더 넓게 헤아릴 수 있는 것이 될 가능성은 열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와 흡사한 측면에서 여성성을 남성성에 비해 높이 평가하는데 그 이유는 여성성이란 것이 결국 사회적 약자의 위치를 오랫동안 경험하면서 체득된 것이기에 좀더 개방적이고, 온순하며 화합의 정신을 담아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즐겁다고 영어권 아이들 만나면 쏼라대는 소리를 한 마디도 제대로 못알아듣겠지만 아시안잉글리쉬 내지는 비영어권 서구인들과의 대화는 영어로도 충분히 가능하더라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어쨌든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인데 그 이유는 이미 우리 인문학을 연구한 여러 학자들, 저자들의 저서를 김경윤이 상당히 폭넓게 꼼꼼하게 씹고 발효시켜 보통 사람들도 읽고 소화하기 쉽게 풀어내고 있으며 거기에 저자 자신의 사유도 함께 녹여냈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좋은 책이고, 아까운 책인데 그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안타까운 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권한다.


* 다만, 편집자로서 이 책의 표지 디자인은 잘못되었단 생각이 든다. "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이란 책 제목 답게 표지에 문고리를 하나 그려놓고 거기에 저자의 이름을 문패처럼 달아놓았던데 문고리 이미지가 아파트 실내 문고리처럼 서양식 문고리였다.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이 책의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정, 문고리 디자인을 이용하고 싶었다면 중국식도, 서양식도 아닌 한국식 미닫이 문고리를 했어야 의미가 정확하게 살 것이기 때문이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13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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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간혹 별로 좋아하는 저자도 학자도 아닌 사람이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분야가 흥미로운 탓에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는 저자들이 있는데, 내 경우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이다. 그에 대한 소개다.

"세계사적 전환의 시점에서 최근 경제 위기를 예측하면서 국내외 언론에서 활발한 조명을 받았다. 폴 크루그먼과 조지 프리드먼의 최대 경쟁자로 꼽힌다.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로 중국과 미국의 공생관계를 설 명해냈으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관한 수정주의 시각으로 유명하다. 그는 1964년 글래스고에서 태어나 1985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했으며, 현재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비즈니스 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옥스퍼드 대학 지저스 칼리지와 스탠퍼드 대학의 후버 칼리지 선임 연구교수도 겸하고 있다.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올랐다. 1987년 저널리스트인 수잔 더글라스와 결혼했다.

영국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Ascent of Money’의 진행을 맡으면서 2007년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의 실체와 주식시장의 폭락 원인을 파헤쳐 큰 반향을 일으켰다(한국에서는 KBS 2TV에서 <돈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주요 저서로 <제국>, <현금의 지배>, <종이와 쇠>, <실제의 역사>, <전쟁의 연민>, <콜로서스>, <금융의 지배>, <하이 파이낸셔>,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등이 있다. "



이쪽 방면의 저자 소개들이 대체로 뭔가 거창하다. 이 출판사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니얼 퍼거슨은 폴 크루그먼이 조지 프리드먼과 맞짱뜰 수 있는 정도의 학자로 자체 평가(?)하고 있는데 그 사실 유무야 내가 이 방면 사람은 아니지만 뭔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저자 소개 같은 느낌은 피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사람에 대해서 좀 깬다, 아니 많이 깬다고 느낀 이유 중 상당 부분은 민음사에서 펴낸 "증오의 세기"란 책에도 원인이 있었다. 이쪽 방면의 책들은 거의 빼놓지 않고 쫓아가려고 하는 편인데... 좀더 심하게 말해서 나는 이 책을 읽고 욕지기까지 느낄 정도로 니얼 퍼거슨에 대해 화가 났었다.

그 이유를 구구절절 쓰고 싶은 마음조차 별로 없는데 마침 내 심정과 흡사한 이유를 댄 서평이 있어서 링크(http://blog.aladin.co.kr/pressian/4602354)를 걸어본다. 이 책에 대해 상당수 독자들이 별 넷에서 다섯을 주었다. ㅠ..ㅠ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3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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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요하다면 나는 이상을 위해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쿠누에서 태어난 넬슨 만델라는 1944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합류하면서 정치인이자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2년 그는 흑인을 차별하는 남아공 백인 정부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반대하다가 체포되어, 파괴행위와 관련해 네 가지 혐의로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전 세계에서 그에 대한 석방 여론이 일면서 1990년 2월 11일 풀려났고, 1993년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F.W.데 클레르크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듬해에는 흑인과 유색인종들에게 주어진 남아공 최초의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에 대한 가장 큰 업적은 무엇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협상을 통해 백인들에게서 권력을 이양받았으며 국민의 단합을 이룩해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그가 전격적으로 중재에 나서기 전까지 불가능해보인 일이었다. 다음의 인용문을 그가 피고석에 서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말했던 매우 긴 진술(1만 1,000단어가 넘는다) 중 극히 일부이자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인 넬슨 만델라의 쾌유를 빈다.

"나는 평생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 싸움에 헌신해 왔습니다. 나는 백인 지배에 맞서 싸워왔을 뿐 아니라 흑인 지배에도 맞서 싸워왔습니다. 나는 모두가 함께 조화롭게 생활하면서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의 이상을 소중하게 여겨왔습니다. 그 이상을 위해 살면서 그 이상을 달성하는 것이 나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나는 이상을 위해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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